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복 있는 사람 / 요한계시록 1:1~3

하나님아들 2014. 4. 18. 16:01

복 있는 사람 / 요한계시록 1: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지난번에 예수는 누구인가? 에 관한 메시지는 시간 관계로 다 마치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못다 한 메시지를 계속하 된다. 예수님의 본질과 영원성에 관하여 히브리서 1장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더 강조하였다. 산헤드린총회 회원들이 율법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음에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잘못을 지적하였다. 옛적에 선지자들과 조상들에게 알려주신 내용은 메시아를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모든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마21:35~36).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요1:18)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셨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히1:2a)


히브리서 기자는 “이 모든 날 마지막”이라고 한다. 여기에 관한 뜻은 신약시대를 의미하며 계시의 완성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약에 계시되신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선지자들을 보내시지 않으시고 예수로서 모든 계시를 완성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말씀이다.


이 예수님이 세계를 만드신 후사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요1:3)라고 설명하였다. 이분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분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1:3a) 라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설명한다.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2c)


말씀을 받을 대상은 “우리에게” 라고 한다. 히브리서 1절에서는 말씀의 대상이 구약의 조상들이었지만, 2절에서는 말씀의 대상이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전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구약이 없이 신약의 근원을 알 수 없고, 신약이 없이 구약의 완성이 될 수 없음이 이 말씀 속에 담겨져 있다.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1:2b)


아들”이라고 증거 하였다. 이 아들에 관한 뜻은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란 뜻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입증시켰다. 독생자라는 ‘모노게네스’는 하나뿐이라는 뜻보다는 ‘홀로 출생됨’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라고 입증시켜 준다.


예수님을 ‘만유의 후사라고 증거 하였다. 후사에 관한 뜻은 우주뿐만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란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이 땅에 오시기 1,000년 전에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시2:7)” 하셨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기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만유의 상속을 예수님께 주셨음을 설명하였다.


여기에 대한 약속대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8:18)라고 입증시켰고,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심판하는 권세까지 예수님이 위임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세계의 상속자이시며, 모든 것의 권세자이시고, 모든 세계의 심판자라고 설명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창조주이시라고 증거한다. 예수님을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계의 모든 만물을 만드셨기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신 분"(1:2c)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가르쳐준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라는 복수로 말하였다.


따라서 “우리”라는 말에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예수도 창조에 동참했음을 설명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라고 증거한다. 예수님을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라는 뜻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라고 아들에게서 아버지의 영광된 빛이라는 뜻이다. 타락한 육신을 가진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을 볼 수 없다. 죄 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된 광채를 보게 되면 죽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방법은 인간이 하나님을 보아도 죽지 않도록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인간의 몸을 입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된 광채를 인간이 직접보고 대면해도 죽지 않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죄 된 몸을 입고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잘 나타내주신 일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본체의 형상”이라고 증거 한다. 본체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뜻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무도 하나님의 본체를 본 사람이 없다. 그리고 아무도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도 없고 만날 수 도 없었다고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주기를 간구할 때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완전한 본체를 나타내시는 길은 예수님으로만이 할 수 밖에 없었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본체의 완전한 표현이라고 알려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만물을 만드신 분”이라고 증거한다. 만물을 붙드신다는 뜻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라고 바람도 다스리고 지배하고, 모든 세계를 섭리하고,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질서를 유지케 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21:19~21). 이처럼 나무도 다스리시고, 예수님이 없으면 세계가 파괴되고, 모든 역사가 무효가 된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죽음도 다스리시며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은 자연과 세계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히브서기자는 예수님은 “죄를 정결케 하시는 분”이시라고 증거한다. 예수님께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1:3d) 라고 증거한다. 죄를 정결케 한다는 뜻에 대하여는 인간의 모든 죄를 예수님만이 깨끗케 하고 대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천사도 마귀도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의 죄를 자신의 피로 깨끗이 씻어주고, 사해주고, 대속해주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증거하여,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라고 설명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위엄의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라고 증거한다. 높은 곳에 계시는 위엄에 대하여 너무나 크고 위대하시며 엄위하신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e) 라고 가르쳐준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구름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본체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심을 말한다. 우편이라는 낱말의 뜻은 처음에 세상에 초림하시기 이전에 계셨던 영광스러운 위치라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천사가 직접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라고 천사의 확인함을 설명하였다.


이처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는 말씀이라고,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만물을 지탱시키며 다스리는 말씀이라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죄를 정결케 하는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1장 1~3절까지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어서 잘못된 신앙을 일깨워주려고 애쓴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상에서 재물이 많으면 물질축복을 받았다 할 것이고, 자녀가 많으면 자손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육신적으로 튼튼하면 건강축복을 받았다 할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복도 받아야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영적 복을 받아야 복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절에서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셨는데, 그 종들은 누구인가? 선생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지시하신 것이라면 선생들은 계시록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읽어야할 내용은 앞으로 “속히 될 일”이다. 그 일은 무서운 환난이 있음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라고 ‘지시’하셨다. 목자는 종말에 과한 내용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다.


지키다: 테로운테스(τηρούντεs)는 테레우(τηρέω)의 현재능동이므로 기록된 말씀을 읽는 목자들은 성도들을 가르쳐서 듣고, 성도들은 들은 대로 준행함이 ‘지킴’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 요한을 통하여 계시록을 주신 목적을 알렸다. 때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 환난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해당되고,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요한계시록에 관한 말을 하면 잘못된 신앙인이거나, 또는 종말론자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성경은 그러한 사상을 허용하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명령으로 보라고 지시하셨는가? 따라서 읽지 않으면 역시 불순종하는 죄다. 이것이 대환난에 남겨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할 때가 가까움을 알리신다. 때는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실 주의 강림 때와 그 후 환난이 있음을 말한다. 강림 후에는 환난이 있으므로 모든 내용을 ‘읽은’ 종들은 전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들은’ 성도들은 들은 내용대로 ‘준행하면’ 환난에 남겨지지 않음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은 목자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환난의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준행하도록 하려면 말로만 환난을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라는 말씀이다. 목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요한에게 쓰도록 하신 것이 주님의 뜻이다. 그러면 주의 종들은 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되는가? 속히 될 일들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속히 될 일의 내용을 읽지 않으면 어떠한가?


읽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섬기는 교회 성도들까지도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왜 읽어야 하는가? 예수께서 읽으라고 ‘지시’ 셨기 때문에 읽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헬라어 세마이노는 창세기에서 아담에게 먹지 말라는 히브리어 ‘차와’과 함께 동사로서 “명령”으로 쓰인다. 이처럼 지시는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인봉된 책이니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읽어보지 아니하고 어떻게 구원관을 정립할 수 있으며, 또한 양무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목자가 모르는 상태에서는 결코 성도들에게 진정한 구원관을 가르칠 수 없다. 읽지 않았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계시록에 관계되는 말만하면 이단시 하거나, 잘못된 신앙인으로 매도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왜 요한계시록을 목자들은 읽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가? 20절에서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하셨다. 목자들에 관한 비밀과 성도들에 관한 비밀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있다. 읽지 아니하고 듣지 못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는 유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시하신 것이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예언의 말씀을 제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2:19)


제하면: 아파이레오’의 능동태 아페레는 ‘반역하고, 멀리하고, 끊어버린다’ 등이다. 미래 직설법 ‘아페레이(ἀφελεί)’는 ‘빼앗아 가고, 없애 버리고, 가져가 버린다’ 등이다. 계시록을 읽지 않는 것은 읽으라는 지시에 대한 불순종이다. 목자들이 계시록을 읽지 아니하고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은 예언이 전달되지 못하게 끊어놓는 행위가 제이다. 목사는 읽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서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리를 빼앗기고, 성도들은 듣지 못해서 행하지 아니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리가 ‘박탈(ἀφελεί)’당하게 된다. 이것이 대 환난에 남겨지는 원인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τηρούντε?)자들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22:7)


휴거에서 탈락되고 환난에 남겨진 자체가 복을 받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 환난에 남겨진 것이 복이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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