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예수님?의 영원성과 구속사역

하나님아들 2014. 4. 18. 15:58

예수님의 영원성과 구속사역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계1:4)


일곱 교회에 관한 메시지는 2~3장에서 상고하게 되기에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영원성에 관한 그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구속사와 다시 오실 심판주의 강림에 관한 내용입니다. 때로는 계시록의 첫 부분을 소홀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함은 첫 부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기대하기로는 세상에 대환난이 언제 있으며 주님의 공중 재림은 언제 있는가? 이런데 초점을 두고서 여기에 관해서는 관심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첫 부분인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첫 부분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람이 집을 지을 때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이 계시록을 이해하려 할 때 계시의 말씀을 주신분에 관하여 알아야 되므로 첫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1. 그리스도는 전에도 계셨다.


예수님은 창조이전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신자는 요한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형태도 없고 시작도 마침도 없는 무한하신 존재이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의 무한을 ‘말씀이라’로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모든 지혜와 이해와 납득을 초월하시며 신비가 무한히 어울려지는 곳에서 스스로 계신 상태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무한(성부)과 무한(성자)이 발출(성령)하는 영의 위격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으로 교훈합니다. 더 쉽게는 사랑 안에 생명을 살리는 빛이 있다는 뜻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로 이 무한과 무한이 발출하는 영원한 숨길인 본체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하시는 예수께서는 전에도 계셨다고 한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이제도 계신다


계시를 주시던 그때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후에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영광의 보좌에 다시 앉으시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이 세상이 되어져가는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장 36절과 마가복음 13장 32절, 두 곳의 말씀을 여기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두 곳에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기의 강림 때를 모른다고 말씀하시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광의 하늘 보좌에서 계시기 때문에 지금은 아신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장차 심판하러 오시는 심판주가 당신의 재림 날을 모른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물론 성경에는 자신의 때는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올라가 계시므로 앞의 두 곳은 바꾸어 해석하여야 될 것이며, “아무도 모르나니”라는 원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헬라어 ‘오이덴(οἱδεν)’은 희구법 현재완료 단수 3인칭입니다. 희구법은 강한 우연성 또는 가능성을 나타내며, 확정적인 실현성을 조금도 예상하지 아니하고 다만 상상할 뿐입니다. 가정법보다 더 가상적인 것을 나타내며, 현재와 미래에 상반성을 나타낼 때 쓰이는 문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보좌에 앉아계시는 지금은 당신의 강림하실 때를 알고 계신다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는 장차 오실이 분이다


강림을 시점으로 하여서 이 땅에 오시고 천년왕국과 심판이 끝날지라도 예수님은 영원까지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을 합해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인 AΩ라고 예수님의 본질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영원하신 예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종말까지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8절에서 전능이란 말씀 속에 그 뜻이 담겨있습니다.


전능은 한 아들이 낳는데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9:6)하신 말씀이 예수님은 누구라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알려주십니다.


4. 그리스도 보좌 앞에 일곱 영


하나님의 보좌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를 말합니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예수에게 일곱 영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보통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일곱 천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인데 어째서 일곱 영이라고 합니까? 구구한 해석이 있으나, 그러한 해석과 이론은 성서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일곱 영은 예수님께 일곱 가지 신의 성품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성자 하나님께 있는 일곱 가지 신의 성품에 대하여 증거한 말씀은 이러합니다.


성자에게 여호와의 신이 있다. 히브리어 ‘야웨’를 한글로 여호와라 발음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십니다. 여기서 성자는 하나님이심을 밝혀줍니다. 그래서 요한은 “성자 예수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합니다.


성자에게 지혜의 신이 있다 성자는 지혜로운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지혜는 만물을 창조하실 정도 이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만물이 성부와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자가 없이는 하나도 만들어 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성자에게는 총명의 신이 있다. 성자는 총명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총명이라는 말은 귀가 맑고, 눈이 예민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정도로 귀가 맑습니다. 귀가 어두우면 영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성자는 항상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신 것은 귀가 맑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속마음까지 영으로 보시기 때문에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의논하느냐? 라고 하시는 것은 예민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성자에게는 모략의 신이 있다, 성자는 모략의 성품이 가지신 분이십니다. 모략이라는 말은, 슬기로움과, 방책이라는 뜻입니다. 성자는 항상 슬기로움 말로 말씀하신 것은 슬기로운 성품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올무를 놓아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방책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⑤성자에게는 재능의 신이 있다, 성자는 재능의 성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재능은 못하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물은 만드실 정도이상으로 재능을 말합니다. 바람은 잠재우고, 파도를 멈추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자에게는 지식의 신이 있다, 성자는 지식이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말과, 기술과, 문명과, 과학까지 성자의 지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자에게는 경외하는 신이 있다. 성자는 여호와 본체를 경외하는 성품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경외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성품을 말합니다. 성자가 항상 아버지를 공경하신 것은 공경하는 성품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성자가 항상 아버지를 두려워하신 것은 그의 성품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차오실 전능하신 영원성을 ‘일곱 영’이라는 뜻입니다. 일곱 영은 천사들을 지상에 보내서 개개인의 모든 행위를 보고 받아서 처리하는 영들입니다.


또 다른 뜻은; 셋째하늘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일곱 신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양으로 하나님과 비슷하게 살고 있는 신들입니다. 신들로 부터 왕의 칭호를 받는 신들은, 천국의 모든 존재가 여호와의 속성에 조금이라도 이탈하는 것을 감시하는 존재들인데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들입니다.


이들 일곱 신들은 각기 맡은 임무에 대하여 이사야가 말한 특징을 담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이 자기가 오실 강림 때를 알까요? 모를 까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버지라 하셨고 성령님이 예수님 자신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되시는 주님이 자기 때를 모른다면 예수님은 전능하실 수 없고,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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