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성령감동을 받은 사람

하나님아들 2014. 4. 18. 15:43

성령감동을 받은 사람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9-10)

 

계시를 받은 사람이 누구이며, 그 당시에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상황, 계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모습에 관한 말씀이다. 계시를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과 핍박가운데 밧모라는 섬의 위치를 말했다. 그때가 주의 날이라 하였으며 상태는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고 증거 한다. 여기에서 이해를 해야 되겠기에 대지를 셋으로 나누게 된다.

 

(1) 대서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1:9)

(2) 계시를 받게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1:10)

(3) 이 계시를 받게 되는 교회들에 대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1. 계시를 받아 쓴 대서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1:9a)

 

대서하는 사람은 나 요한이라고 시작한다. 요한은 사도가 분명한데도 예수의 제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당시의 특별한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Allusion)한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게 되는 교회의 성도들은 요한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기 때문에 나는 너희 형제요 환난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2. 형제라는 말속에 담긴 의미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입장에서의 형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너희들과 함께 구속받은 사람이요,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라는 의미를 첫 번째로 보아야한다. 고난을 통해서 같은 동질에서의 형제라는 뜻이다. 요한은 너희가 환난을 당하듯이 나도 환난을 당하고 있다. 너희가 환난 속에서 고난 받는 그 어려움과 같이 나도 너희들처럼 같은 조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같은 입장에서의 형제라 한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1:9b)

 

3. 환난에 동참하는 자

 

너희가 하나님나라 때문에 환난을 받는 사람이 아니냐! 나도 너희들처럼 그런 환난에 처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한이 환난에 처한 그 환난의 내용이 무엇인가? 요한은 무엇인가압박하고 짓누르는 것과 같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압력이나 중압감을 갖도록 하는 것을 환난이라 한다. 고통과 환난의 차이점이란, 내가 진리 앞에서 진리를 지키려할 때 나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을 환난이라 한다.


그리고 내가 진리 앞에서 진리를 지키려하지 않을 때 나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환난이 아니라 고통(고난)이다. 사람들은 내가 잘못하고 내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행하지 않으면서도 내게 오는 것을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핍박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라 악이 가져다주는 환난이며, 악이 나를 지배하고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와지는 징계가 고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1:9c)

 

요한이 당하고 있는 환난을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주후 94년경에 도미시안 황제의 제사로 인한 종교탄압이 있었을 때 요한은 밧모라는 섬으로 귀양을 갔다가, 주후 95년경에 도미시안황제가 죽으면서 풀려났다. 그때는 로마제국에 속한 모든 곳이 황제예배로 인하여 교회나 신자들은 핍박을 받았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리스도의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요 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요한은 나도 예수 믿는 신앙 때문에 환난 받고 있는 그 환난에 동참한 사람이다.


당시에 로마사람들은 로마정부가 요구하는 황제예배와 황제경배 우선에 순종해야 했다. 먼저 황제에게 절한 다음에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예배하게 했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나의 죄를 도말시켜주시고 영원한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일시적인 땅에 살고 있는 제한된 인간이 우선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먼저요, 그 다음에 군주인 황제이기 때문에 황제예배를 반대했었다. 이것이 환난의 근원이 되었다. 하나님이냐, 황제냐? 어느 편을 택하겠는가?


멀지 않은 날, 대환난 때에도 같은 상황이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냐, 적그리스도냐? 선택하는 문제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준비한 성도는 주님의 강림 때 구속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냐, 적그리스도냐? 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요한은 자신을 참음에 동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참는다는 뜻은 어떤 상황에나, 환경에나, 대세를 따른다는 말이 아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참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대세에 치우쳐서는 안 됨을 교훈한다. 바꾸어서 말하면 예수를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라도 자신의 안전이나 안일을 찾기 위해서 상황이나 환경이나 대세를 따른다면 배교의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참는 것은 예수를 부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자격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상황이나 대세나 환경의 외로움을 뚫고 나아가며 견디는 일이 참는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예수가 인류의 구주라고 선포하다가 핍박을 받으며 밧모라는 섬까지 귀양을 온 것도, 새 예루살렘의 왕권을 잃지 않으려고 환난을 당하고 있는 너희 형제라고 말한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1:9d)

 

요한은 자기가 있는 장소를 알리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밧모라는 섬에 있다고 알린다. 요한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다. 혹은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다. 누구를 때리거나 하는 세상적인 범죄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인이 된 것 때문에 이렇게 당하고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예수를 증거하는 일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다. 말세에는 주의 강림을 선포하게 되면 반드시 핍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처럼 부활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고 하늘나라 왕권을 잃지 않으려면 어떠한 핍박이라도 참아야 된다.

 

4. 계시를 받게 된 상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10)

 

요한이 계시를 받던 날은 분명하게 주의 날이었다. 주의 날은 시편 118편과 강림에 대하여는 요엘서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주의 날은 창조하신 날이요, 부활하신 주님의 날이다. 이러한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고, 이 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은 주의 날이라고 증명한다. 말씀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모세도 십계명을 주의 날에 받았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도 주의 날이다. 오순절 성령감림 하시던 날도 주의 날이다. 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도 주의 날이라 한다.


이 계시를 받을 때, 그의 상태는 성령에 감동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말씀을 전하거나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받게 되고, 계시를 받게 된다.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은 것처럼 받을 수 있다.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 같이 요한도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쓴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읽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기도할 때 환난을 피하는 길은 오직 진정한 구속이라는 휴거의 길을 알려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그분의 소원이 구속에 있기 때문이다. 휴거라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속이라 하셨다.(1:5참조)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4:30)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5-9)

 

구속은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휴거될 자들이 복된 자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강림 때 부활이나 휴거에서 탈락되면 대환난에서 죽임을 당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속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하셨다.(고전15:22-24) 여기에서 나중이니 하신 그 후가 언제인가를 알면 된다. 그 후는 둘째부활 때에 심판대 앞으로 나올 자임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속은 휴거 때를 말한다.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 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5-29)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들은 대로 행하여 주님의 강림 때 들림 받도록 준비하라고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감화 시키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사야를 통하여서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하시고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 성령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니라

 

5. 이 계시를 받게 되는 교회들에 대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1:11)

 

성경을 모르는 이유의 첫째는 한 구절만 보고 성경전체 말씀의 흐름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사사로이(벧후1:20), 자기 지식대로, 자기들의 조직에서 정한 원리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영생에 관련된 말씀이 성경임을 깨닫게 되면 오류에서 벗어나게 된다. 요한은 이 말씀을 들을 때 큰 음성이 나팔소리 같다고 분명하게 증거 하였다. 그리고 또 너는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바꾸어 말하면 일곱 교회에 이 메시지를 써서 보내라는 음성이 큰 나팔소리 같더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보고 들은 것을 일곱 교회에 알리라는 큰 음성이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가 보고들은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낸 것은 명령에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에게 알려주신 동일한 성령께서 구름을 타고오실 주님의 강림을 보여줄 것이다. 그때 듣게 되는 소리를 사람의 경고로 받을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알리는 일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말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감동시켜서 알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역사를 볼 때 많은 실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언제나 성경에 조명하여서 진부를 가려야한다. 말씀을 믿는 자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인간의 환경이나, 의지, 또는 생활 상태에 따라서 환상이나 꿈으로 잘못받기도 한다. 심판에 대한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믿고 말씀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성경을 하나님보다 위에 올려놓아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성경 속에 가두어서 그의 능력을 제한시키는 무모함이 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서 말씀을 하시지만, 성경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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