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책이다. 따라서 저자는 누가다. 누가는 복음서에서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승천하심까지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하였고,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승천하심부터 교회의 탄생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선교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여기 선교의 역사를 기술할 때 누가는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행1:8). 이처럼 교회의 탄생과 선교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사도행전이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말해 주고자 하는 것은 ‘선교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성령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성령님은 선교사(宣敎師)와 선교지(宣敎地)를 택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시고 필요한 메시지를 주신다. 그러므로 선교에 참여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청되는 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사도행전은 교회의 일군 됨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가신다. 다만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준비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살펴볼 때, 선교를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일에 탁월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된 선교 역사는 헌신 된 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 증거 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는 앞으로도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 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의 역사는 완성된 역사가 아니고 완성을 행하여 진행 되어가고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고 우리는 이 역사에 참여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이 역사에 참여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지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이 영광스런 역사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볼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은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연결시켜주는 책으로서 우리에게 서신서들의 배경을 알게 해 주고 또한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과 그들이 믿고 고백했던 신앙의 고백이 무엇인지 말해 주는 책으로서 신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작 시기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인정되는 시기는 A.D.61년경이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A.D.59) 2년 동안 그 도시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을 끝마치고 있는 것에 근거한다(28:30).
2. 사도행전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을 먼저 기록한 복음서에 이어 그 후의 교회의 역사를 서술하려는데 있다고 했다. 이 역사는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시작된 교회의 역사이고 성령님의 역사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4,5)'라는 약속과 더불어 시작된 역사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백 이십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분부하심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했고 성령님의 분부하심에 따라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사도의 수에 가입시켰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역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주님의 분부에 따라 백 이십 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여 기도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1:14)' 이와 같은 기도는 성도들에게 능력의 원천이 되었다(1:6-26). 그들이 이처럼 기도하는 일에 전심하고 있을 때 오순절이 이르러 모인 무리 위에 성령님이 임하였고 그들 모두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때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각 지방과 각 나라로부터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방언을 통하여 각자 자기 나라의 말로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일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때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일어나서 지금 여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이미 성경에 약속된 일이고 이스라엘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 날 베드로의 말을 들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온 사람은 3천명이었다. 그 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는데 이 사건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었다(행3,4장).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음을 말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권하였다. 이날에 주님께 돌아온 사람은 5천명이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중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것이었음으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도들은 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사도들 가운데 나타나는 능력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음으로 종교 지도자들도 사도들을 계속 옥에 가두어 둘 수만은 없었다. 이와 같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루살렘은 회심한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나눔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교회가 설립된 얼마 후 교회는 내외(內外)로부터 큰 시련을 만났다(행4.5장).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로 오는 시련을 말한다(행4장). 그들은 사도들이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금했고, 사도들이 명령을 듣지 않았을 때는 그들을 옥에 가두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내부로부터 오는 시련도 있었다(행6장). 이런 시련은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거짓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시련은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보다 더 위험하여 교회의 기초를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우리는 내적 시련의 전형적인 모습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공동체에 헌금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판값의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인 것처럼 위장하여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베드로가 그들의 거짓된 행위를 꾸짖었을 때 그들의 영혼은 떠났다. 그리고 이 일은 들은 모든 사람은 크게 두려워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이처럼 무서운 심판이 임한 것은 그들의 거짓된 행위가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를 세속화 시켜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공동체에 헌금해야할 의무도 없었고 또한 그들에게 헌금하도록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원하여 땅을 팔아 헌금 할 것을 약속했고, 판값의 일부를 감추고 거짓으로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했던 것이다. 이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다만 형식적인 신앙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탐욕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가 이런 행위를 용납할 때 사람들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함으로 결국 거룩한 공동체로서 교회는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켜 주는 공동체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의 거짓된 행위를 용납지 않으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거짓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 받아야 할 것이다(2:1-5:42). 교회가 외부로부터 받은 시련의 대표적인 예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은 사건일 것이다(행6-7장).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과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흩어졌지만 이들로 인하여 복음은 더욱 넓은 지역에 전파 되었다. 실례로서 빌립은 박해를 피하여 사마리아 지방과 가이사랴 지방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 했다. 특별히 사마리아에서 그의 전도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박해자들을 자극시켜 유대인들 사이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은 더욱 고조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스데반은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전하였는데 이 일은 유대인들을 격노케 하였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고 이로 인하여 스데반은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때 스데반의 순교를 지켜보고 있는 사울이라고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유대교에 지나치게 열심인 자로서 스데반의 죽음을 합당한 것으로 그 후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다.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행9장). 그러나 그는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 길에서 자신이 박해하고 있는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가 되었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고 선교 사역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 바울은 후에 초대교회 선교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역(主役)이 되었다. 이처럼 교회와 선교의 역사는 처음부터 박해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교회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 될 때마다 그곳에는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일어났지만 이들은 복음의 확장을 막지 못하였고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들의 대적하는 행위를 섭리하심으로 복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할 때 반대자들을 만날지라도 그들과 다투기보다는 오히려 주와 및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고 우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6:1-9:31). 이스라엘 가운데 전파된 복음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이방 세계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전파되고 있었다. 초기 이 사역의 중심적인 인물은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으며 환상 중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이사랴에 이르러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다(행9,10장). 이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베드로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자신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거역할 수 없는 자’라고 말함으로 이들의 비난에 대하여 변명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할 줄 알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종적인 권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의 변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자들을 잠잠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가 인정되는 곳은 언제나 다툼이 중단된다. 특별히 베드로와 교회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사랑하심과 같이 동일하게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방 세계에 대한 복음 증거는 사도들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각 지방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이 증거 되었다. 박해를 피하여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 했다. 이들의 사역으로 인하여 복음이 증거 된 지역 중 안디옥은 주목할 만하다. 안디옥은 성공적인 복음 전도가 이루어져서 이방인 그리그도인들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이방 세계의 선교를 주도한 모교회가 되었다(9:32-12:25). 안디옥교회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선교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 하였다(행13장). 그들은 마가를 수종자로 하여 구부로, 비시리아, 안디옥, 니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증거 했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들을 돌보며 안디옥으로 귀환하므로 제 1차 선교여행을 마쳤다(13:1-15:41). 그들은 제 1차 선교여행을 마치며 한 가지 풀어야 할 과제를 앉고 왔다. 그것은 유대의 거짓 교사들로 인한 선교 현장에서의 분열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어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을 때 거짓 교사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이들의 거짓 가르침은 전도자들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모든 수고를 헛되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에 파송 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최초로 공의회를 열었다. 이것이 예루살렘 공의회다. 이 공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살폈고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재확인해 주었다.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 중 각 처에 공의회의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증을 전해 주었고 이로 인하여 교회는 다시 평화를 찾아 든든히 서 갔다. 얼마 후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선교 여행을 떠나고자 했었지만 마가의 문제로 인하여 서로 뜻을 같이하지 못하였다. 이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마가는 제 1차 선교 여행 도중에 임의로 귀향하여 선교 여행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던 자다. 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려고 했을 때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반대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들을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바울은 선교 역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 먼저 제 1차 선교 여행 중에 방문했던 지역들을 돌아보고 소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유럽 지방인 마게도니야에 이르러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 고린도에 이르기까지 선교 지역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다시 안디옥에 돌아옴으로 제 2차 전도여행을 마쳤다(16:1-18:23). 그는 안디옥에서 잠시 머문 뒤 다시 몇몇 지역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복음 안에서 굳게 세웠다. 제 3차 선교 여행은 주로 교회를 돌보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이 여행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에베소 사역일 것이다. 그는 에베소에서 2년 6개월을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는데 그 일은 에베소에 영적 각성을 가져오게 했다. 바울은 에베소 사역을 마치고 다시 마게도니아와 헬라를 거쳐 밀레노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부탁하고 예루살렘을 향한다.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중 곳곳에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루살렘에서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는 전언을 들었지만 그는 심령에 매인바 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된다. 이로서 제3차 선교 여행을 마치게 된다.(18:24-21:16)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선교는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의 전적인 헌신 그리고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곳에는 언제나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다. 바울은 제3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각 곳에서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어려움을 당했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성전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붙잡혀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그 위험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 이후 바울은 유대 법정으로부터 자신의 문제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앞에 호소했다. 하나님은 바울이 이와 같은 시련 가운데 있을 때에 '그가 로마도 보아야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이와 같은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구약의 전쟁사 속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고백은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것'이다. 이와 같은 고백은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계속 되고 있다. 대적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 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시도를 무효케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백성들을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셨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셋집에 머무르면서 복음을 증거 하였다(21:17-28:31).
2012. 9. 10.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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