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스크랩] 사도행전의 서론

하나님아들 2014. 3. 25. 18:24

 

 

 

 

 

사도행전의 서론
 

우리들 중에 누가 세계적인 규모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한 기초가 이루어진 후에는 그 사업을 전세계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과 재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기독교는 그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한 지도자로 십자가에서 죽은 갈릴리 출신 랍비를 내세웠다. 그리고 그 복음을 선포할 사람들로 어부와 세리와 문맹자들(4:13)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일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불과 1세기도 못되어 그 메시지를 지중해 전체에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성경은 역사 이래로 계속해서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정신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그 성경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듣고 또 계속하여 복음을 확장시키고 있다.   
 

1. 사도행전의 가치

 

1-1.  역사적 가치

  사도행전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역사적 기록 때문에 중요하다. 누가는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것과 성령 충만한 교회 공동체의 행복했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사도행전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시기는 유대 당국의 방해로 인해 갑자기 끝나 버린다. 그는 계속해서 스데반의 순교와 빌립의 전도, 사울과 고넬료의 회심으로 이방 선교의 기초가 놓인 과도기적 단계, 그리고 안디옥에 첫 번째 헬라 선교가 설립된 것에 대해 기술한다. 이 국제적 도시와 교회로부터 범세계적인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와 갈라디아를 복음화 했다.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 회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두 번째 선교 여행기간에 유럽에 복음이 들어갔으며(아덴과 고린도를 포함하여), 또 세 번째 선교 여행 때에는 에베소에 복음이 들어갔다. 그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으며, 여러 차례 재판을 받고, 가이사에게 상소하며 그가 꿈에 그리던 도시인 로마로 항해를 한다. 거기에서 누가는 그와 헤어지는 데, 그는 자신의 셋집에서만 거하도록 거주 제한을 받았으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제한을 받지 않았다. 사도행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바울의 대담무쌍한 선교 여정을 복원해 볼 수도 없었을 것이며, 어떻게 복음이 로마 제국의 전략적 도시들에 전파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1-2. 독자들에게 주는 감화력

  그러나 사도 행전은 현재 독자들에게 주는 감화력을 인해서도 중요하다. Calvin은 사도행전을 '일종의 광대한 보물'이라고 불렀으며, M. 로이드 죤스는 '가장 서정적인 책'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여러분이 그 책 안에 거할 것을 권합니다. 그것은 내가 알기로는 성령의 영역 안에서 가장 강력한 강장제입니다." 사실상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자신을 초대 교회와 비교해 보고, 초대 교회의 확신, 열심, 비젼, 능력 등을 어느 정도 되찾으려 애쓴 것은 유익한 훈련이 되어 왔다. 동시에 우리는 실제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초대교회를 낭만적으로 본 나머지, 숨을 죽이고 마치 초대교회에는 아무런 결점도 없었던 것처럼 말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교회를 괴롭혔던 경쟁, 위선, 부도덕한 행실, 이단 등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께 압도되었으며, 성령은 교회를 내어 몰아 증인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2. 저자

 

 2-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해서

  사도 행전은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제 2부와도 같다. 원래 누가복음-사도행전은 한 권의 책으로 정경 속에 포함되었는데, 주후 2세기경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사도행전을 한 권의 책으로 읽는 것이 원래 저자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다. 누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누가 기록했을까?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도 저자의 이름이 익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인지 추적해 볼 수 있다. 다행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서문이 기록되어 있다(눅 1:1-4, 행 1:1). 이 서문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과 수신자가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과 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서문에서 "말씀(예수)를 (직접)목격한 사람과 일꾼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주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먼저 복음에 대한 증언을 기록했다"고 했고, 저자 자신도 그들과 같이 여러 가지 자료들을 조사해서 그 내용을 차례대로 써 보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볼 때에 저자는 당시 교육을 많이 받은 지적인 사람으로 책을 기록할 자료를 얻기 위해 신중하게 여러 자료들을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약해 보면 누가복음의 저자는 1) 주님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으며, 2) 학식 있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과연 그는 누구였을까? 누가복음의 저자를 알아보기 위해서 초대교부들의 증언과 누가복음 자체의 기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초대 교부의 증거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최초의 증거는 A. D. 2세기 말엽에 나타나고 있다. 무라토리안 정경과 말시온주의자에 대한 반박 서문, 이레니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그리고 오리겐과 터툴리안의 저작에는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증언에 대해 반대하는 아무런 증언이 문헌에 없다. 이것을 보면 아마 초대 교회에서 누가복음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것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캐드베리라는 학자가 이러한 전승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이러한 전승들을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복음을 누가가 기록했다는 견해는 아마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우리"(행 16:10-17, 20:5-21:18, 27:1-28:16))라는 "항목"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 견해를 전적으로 뒤집을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 명백하게 받아들여진 초대교회 교부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가 아니었다면, 초대 교회 교부들이 먼저 나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가 누구였는지(마가, 에바브라, 또는 바울 등)를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 교부들이 모두 일치하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였다고 증언한 것을 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였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자체의 증거
  그러면 이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자체의 내용을 살펴보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두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모두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헌정된 책이었다(눅 1:1-4, 행 1:1). 저자는 누가복음을 첫 번째 기록이라고 불렀고, 사도행전은 그 첫 번째 글을 잇는 속편이라고 소개했다. 이 두 책은 사용한 언어와 문체가 비슷하며,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이 두 책이 한 저자가 기록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이 두 책이 모두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초대 교부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한 사람이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우리"라고 표현된 곳이 몇 군데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행 16:10-17, 20:5-15, 21:1-18, 27:1-28;16). 필자가 이렇게 자신을 "우리"라고 부른 것은 자신이 바울 선교 여행에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타난 곳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자는 처음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동행하였다가, 나중에 바울이 빌립보에 돌아왔을 때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에 함께 동행했는데, 그 도중에 그는 빌립과 함께 가이사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에 그가 복음서 기록에 필요한 일부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나중에 바울을 따라 로마로 가다가 도중에 배가 난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보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동참했던 사람으로 보이며, 그 후보자는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디도, 유스도, 누가 정도가 될 수 있다.

 

 3) 간접적인 증거들
  이러한 내용과 초대 교부들의 증언을 함께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누가는 마가와도 친한 관계에 있었다(골 4:10,14, 몬 24절 참조). 그러므로 누가는 누가복음을 쓸 때에 마가복음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누가에 대해 많이 언급을 했으며(행 28:14-31, 골 4:14, 딤후 4:11, 골 4;14 등), 심지어 누가를 "사랑 받는 의원 누가"라고 불렀다. 이 기록을 보면 누가가 마가복음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바울의 선교 사역에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누가복음의 문체는 어느 정도 소양을 갖춘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와 문체들을 사용하고 있고, 의원들이 사용하는 어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어휘와 문체는 누가복음의 저자가 의사인 누가였다는 것을 지지해주고 있다(눅 4:38, 눅 5:12, 눅 8:43-).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치료받을 필요가 생겼는데, 이 때에 바울이 의사 누가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 선교 여행 중에 바울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것이다.

 

 4) 누가가 저자라는 데에 대한 반대 견해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가. 누가복음의 내용과 바울 서신의 역사적, 신학적인 내용이 다르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은 이방인 사도로 소명을 받을 때에 사람의 개입이 없이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아나니아를 통해서 안수를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바울 서신에서 바울은 할례를 반대한다고 했지만, 사도행전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차이를 들어 누가가 이 두 책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해석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누가의 저작을 반대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나. 사도 행전의 "우리"라는 말은 당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에 불과하다.
  일부 학자들은 사도 행전에 나오는 "우리"라는 말이 당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라는 말로 인해서 필자가 반드시 바울의 선교 현장에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도 행전의 내용을 보면 필자가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다. 누가복음이 2세기에 쓰여진 글과 비슷하다.

  또 일부 학자들은 누가복음의 내용이 2세기의 순교자 저스틴의 글과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누가복음이 2세기에 누군가가 져스틴의 글을 보고 기록한 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져스틴이 누가복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누가복음의 글을 인용해서 글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이 주장도 누가의 저작을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될 수는 없다.
 

 2-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한 결론
  그러면 우리는 누가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앞에서 생각해 본 것과 같이 누가복음의 저자가 누가라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그것을 반대하는 증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많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학자들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정적으로 누가가 이 책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는 의사 누가였다는 초대 교부들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3. 역사가로서의 누가(눅 1:1-4)


 가. 역사적 사건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
 나. 당시 목격자에 대한 언급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2)  
 다. 누가 자신의 개인적인 조사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3)
 라. 사건과 목격자들의 전승과 이에 대한 조사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들이 많은지라....나도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1-3)
 마. 독자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도록"(4) 데오빌로에게" 이 글을 씀 
 바. 의사로서의 학적인 훈련
 사.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참함(바울의 의사이며 친구)
 아. 바울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거함(행 21장 이후)
 

 2-4. 외교가로서의 누가

 가. 정치적 변론
  - 로마의 관원들은 기독교에 호의적이었고, 때로 기독교인이 되기도 했다.
  - 로마 당국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해 아무 잘못도 발견하지 못했다.
  - 로마 당국은 기독교가 인가 받은 합법적인 종교임을 인정했다.

 나. 교회 안에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을 함
  - 베드로의 이방인에 호의적인 대한 태도와 바울의 율법을 준수하는 모습 등을 보임으     로써 교회에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함.
 

 2-5. 신학자와 복음 전도자로서의 누가.

 가. 누가의 신학-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예비 되었다(눅 2;30-31).

 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다(눅 2;11, 2: 38-39, 13:38-39, 19:10, 15:1-32,).

 다.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된다(눅 2:31-32).


3. 독자: 데오빌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해 쓴 책이었을까요? 누가는 서문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데오빌로를 위해 쓴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눅 1:3-4, 행 1:1). 누가는 그를 "각하"(크라티스테: "지극히 훌륭한 자"란 뜻임)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은 명예와 존경을 표시하는 사회적 지위를 언급하는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W. Manson은 그의 책 "누가복음"에서 이 용어는 로마 제국 안에서 행정장관직이나 그와 비슷한 직책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데오빌로는 누구였을까요? "데오빌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러한 뜻을 근거로 해서 이 사람이 특정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서문이 당시 유명한 사람에게 책을 헌정 할 때에 사용되던 서문과 비슷한 것을 생각해 볼 때에 데오빌로는 실제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서문에서 "데오빌로 각하가 이미 배운 것(기독교 교리)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썼다"고 말하고 있다(눅 1:4, 행 1:1). 이러한 기록을 보면 아마도 데오빌로는 이방인이었으며, 기독교 교리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데오빌로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입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와 같이 비기독교 세계에 살면서 기독교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기원과 전파과정을 순서대로 설명하기 위해 기록했다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일로 끝을 맺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이 이방인인 로마 관리에게 헌정된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4. 기록시기-주후 90년경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1세기 말(90-100년)에 기록되었다는 견해이다. 사람들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 연대를 이렇게 잡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누가가 마가복음을 참고했다는 이론을 받아들이면 누가복음은 최소한
마가복음이 기록된 후(68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2) 마가는 예루살렘 성 공략 사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막 13:14). 그러나 누가는 이 사건을 이렇게 바꾸어서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눅 21:20). 성경학자들은 "마가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사건(70년)을 모호하게 기록한 반면, 누가는 그 사건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을 보고, 마가복음은 70년 이전에, 누가복음은 그 이후에 기록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누가복음은
70년후에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3) 누가는 그의 서문에서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70년 이전에는 이런 기록이 많이 저술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은 70년 이후에 기록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4) 일반적으로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비슷한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만일 마태복음이 9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한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학자들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시기를 1세기 말(90-100년)로 보고 있다.


5. 기록 목적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에서 복음이 전파된 과정을 기록한다. 유대인 중에서 시작된 복음이 로마 세계에 전파되면서 로마 정부의 박해가 예견되었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연관하여 "기독교는 로마의 법과 질서에 위협이 되는 종교가 아님"을 변증하고 있다.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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