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파노라마
에스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6장까지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기사이고
7-10장까지는 개혁운동을 전개하는 내용입니다.
에스라서는 중심 주제는 예루살렘 성전의 황폐화와 70년의 포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폐하여지가나 중단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시는데 있습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구속사의 맥락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 시기입니다.
열왕기 상하를 통해서는 “죄”라고 하는 원인으로 말미암아“심판”이라는 결과를 가져와
바벨론에 포로가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해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시는 “회복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받을만 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을 포수(捕囚)로부터 귀환하게 하심에는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에 포로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있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내가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겔36:22)라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작정하신 바를 성취해 나가시려는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난관이나 방해에도 불구하고 철회되거나 중단됨이 없이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탄생하여야 할 혈통이요 가나안은 메시아가 탄생하여야 할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나안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셋째는
유대인의 회복은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였을 때에 성취될 대회복의 예표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를 보면 유대인의 회복과 주의 날이 겹쳐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서두는 역대하의 끝 부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대하36:22-23,스1:1-3) 그것은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1:3)는 영을 내립니다.
고레스는 그가 태어나기 약2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고레스를 들어서 쓰실 것이 이름까지 성경에 예언된 흔치 않은 인물 중 하나입니다(사44:28-45:4) 그렇다고 성경은 고레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아니합니다.
에스라 1:1절은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로 시작되는데 여기에 중심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시기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25:11-1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지키시기 위하여“.....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1:1)라고 에스라서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에는 “여호와의 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7:9,28,8:18,22,31) 이것은
포로에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나 성전 중건 및 개혁운동 등이 여호와의 손이 이루셨음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고레스와 스룹바벨고 에스라 등을 붙잡으시사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45:1에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주도한 스룹바벨은 유다19대 왕 여호야긴(여고냐,대상3:16-19)의 손자임을 역대상의 족보는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이며 왕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언제나 유다 지파에 의해 건설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 때 성막을 세우는 일에도
“내가 유다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출31:2-3)담당케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물론이요 제2의 성전도 유다 지파 자손에 의해서요
참 성전도 유다지파를 통해서 나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건설되는 것입니다.
개혁운동은 1차 귀환으로부터 약 80년 후에 제2차로 귀국한 에스라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6장과7장 사이에는 수 십년의 공백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7:6)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라”(7:5)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건설케 하시고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에 의해서 시행케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섭리를 대하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핵심장은 6장입니다.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6:15)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6:16)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목할 말씀은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수염소 열 둘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6:17)렸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분단되었던 남북이 아픔의 상처를 딛고 하나로 재결합됨을 보여 줍니다.
앗수르로 끌려간 북쪽 이스라엘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지만 그들 중에 경건한 자들은 남쪽
유다에 귀순하여 12지파으 명맥은 끊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자들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을 때에도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양이 일흔 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 둘”(8:35)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점에 관하여 에스겔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겔37:22)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이 말씀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영적인 통일을 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것은 애굽에 종되었다가 해방된 것과는
구속사적 의미가 전연 다릅니다.
출애굽 사건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세례를 의미하는 홍해도하의 “물”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수로부터의 귀환은
징계와관계가 있기 때문에“불”이 강조되어 있습니다(렘1:11-17)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3: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삼하7:14) 하시겠다던 “징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가마 속에 집어 넣으셔서 시련을 당케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
이에 대해서 이사야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을 말씀하시면서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땅의 그루터기니라”(6:13)고 “거룩한 씨“를 남겨 두시기 위해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신 노아 홍수 때에도 거룩한 씨를 보존해 두셨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로에서 귀환할 자들을 “남은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사는 예루살렘에 잔존해 있던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에서 연단을 받고 귀환한 스룹바벨,여호수아,느헤미야등 “남은자”에 의해 계승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라의 기도에서도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9:13)합니다.
성전을 중건한 후 단행된 에스라의 개혁운동의 초점이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된 통혼 문제가 중심 과제가 된 것도 (9:1-2)
“남은 자”에 대한 성별과 정화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태어나야 할 혈통을 보존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볼 때에
어느 시대에나 “극상품 포도”를 기대하셨으나 “들포도”가 되는 (사5:2) 혼합과 변질의 문제가 부패의 원인이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에스라서의 두 축을 이루는 성전재건과 백성을 거룩케 하는 개혁운동이
신약에 와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이라고 하신 “성전”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하신 “거룩함”으로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형제여!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은
에스라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적인 메시지임을 명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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