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신명기 파노라마 (성경66권의 파노라마 마지막 책입니다)

하나님아들 2014. 3. 8. 16:05

                                  신명기 파노라마


              주제 :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는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直前)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세 편의 설교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고 간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3:25-26) 하고, 허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약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행한 유언과 같은 설교입니다.

 신명기 앞에 놓여있는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중에 무릇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만한 자를 계수하라”(민 26:2) 하고, 두 번째 인구조사를 명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이라 이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軍人)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기”(2:14)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계수함을 받은 군인(軍人)들은 1차 계수 때에는 들지 못한 어린아이들과, 광야 40년 동안에 새로 태어난 제2세대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십계명을 주시고 언약을 맺게 하신 시내산 언약(言約)에는 참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해야할 주역(主役)들이고, 모세는 떠나야 할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죽기 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하나님께 받은 율례와 법도를 전수해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26: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8:1) 하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모세가 신명기를 기록하게 된 동기(動機)입니다.


그러면 신명기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가?

첫 번 설교(1:1-4:43)는,

 1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원인(原因)을 2세대들에게 일깨워주는 내용이고,

 두 번째 설교(4:44-26:29)는

신명기의 본론(本論)이라 할 수가 있는데, 2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설교(27:1-34:12)는

 결론(結論)부분인데, 2세대들을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면서, 예언적인 경고와 축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 설교(1:1-4:43)는,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하루”길이었더라”(1:2) 하고 시작(始作)이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기를, “제 40년 11월 그 달 초 1일에”(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신명기를 말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장 2절과 3절 사이에는 38년의 간극(間隙)이 있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12족장을 정탐꾼으로 파송한 곳입니다

. 그렇다면 “열하루”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을, 38년이나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원인을 2세대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너희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 지니라”(1:8) 하고 명했으나, “그러나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 하고 하나님 명을 거역하며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1:26-27) 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4)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반역(叛逆)이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너희는 1세대들처럼 불순종하지 말라는 경계인 것입니다.


 두 번째 설교(4:44-26:19)는,

 2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입니다. 가나안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닙니다. 소돔 고모라와 같이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을 당하게 된 땅입니다. 마치 전염병(傳染病)이 창궐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전염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여러 방면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크게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아니 될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행해야할 점은

한마디로 주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신,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설교 중에는 “잊지 말라”는 말이 12번, “기억하라”는 말이 15번 이상 등장합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6:12), “너는 광야에서 (1세대들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9:7) 하고, 거듭거듭 권면을 합니다.


 그러면 해서는 아니 될 치명적(致命的)인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다른 신”, 즉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우상숭배”를 십계명의 1-2계명을 범한 것인 양, 점(點)으로 여겨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이를 구속사(救贖史)라는 선(線)으로 보면 어떤 의미가 되는가?

우상숭배는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에 대한 배신(背信)행위라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 만민이 복(福)을 받게 하시려는데, 저들은 우상을 통해서 복을 받으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즉 기복신앙은 우상숭배와 같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설교의 요점입니다.


 세 번째(27:1-34:12) 설교의

 핵심은 2세대들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는데 있습니다.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 하니라”(29:1) 합니다. 즉 제2세대들은 시내산 언약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소집해놓고,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맹세에 참여하기”(29:12)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점은 “언약과 맹세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십계명, 즉 율법이 아닙니다.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는 목적(目的)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십시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29:13) 합니다. 여기 중요한 요점 둘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과, 맹세”입니다.

 

 바로의 종이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시내산 율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권적으로 세워주신 메시아언약 안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맹세”란 보증(保證)의 의미가 있는데 율법은 “맹세”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다윗에게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시 89:35) 하신 “메시아언약”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서는 “언약과 맹세”를 가리켜서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히 6:18)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돌비는 깨졌고 율법은 폐하여졌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가 2세대들을 “언약과 맹세에 참여”시키려는 목적에는, 신학적(神學的)인 면과 윤리적(倫理的)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여 “언약백성,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을 확고하게 세워주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시내산 언약에도 참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명기는 서두(序頭)에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1:8)으로 시작(始作)하여

 마지막 장 결론(結論)에 이르러,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34:4) 하고 마치는 구도(構圖)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中間)에는 “열조에게 맹세” 한 것이라는 말이 무려 30회 정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맹세로 보증하여주신 것은 가나안 “땅”만이 아니라, 핵심은 그의 자손(子孫)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 하신 “메시아언약”이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모세는 신명기를 말씀하는 내내 결코 이 “언약”을 망각하거나 놓치고 있지 아니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에 근거해서 마지막 유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에 입각해서 이것을 명하노라 하고 말씀합니다. 가나안은 메시아가 탄생하실 장소를 준비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동떨어진 “교훈 집”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열조에게 언약하시고, 출애굽기에서 언약하신대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시고, 레위기에서 “구속교리”를 5대 제사(祭祀)와, 3대 절기(節氣)를 들어서 계시해주시고, 민수기에서는 시내산을 출발하여 모압 평지까지 인도(引導)하시고, 여호수아서에서 열조에게 언약하신 대로 약속의 땅을 주어 안식(安息)하게 하시는 문맥 안에서 주어진 것이 신명기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가 무엇인가?

“십계명”이라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십계명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한 사람도 구원(救援)에 참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롬 3:20)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들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성막식양”도 주셨던 것입니다.

“성막”은 임마누엘의 모형이요,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제물은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드려주실 대속제물에 대한 그림자로 주어진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이 아니었다면 바로의 노예에서 구원 얻을 수가 없었을 것이요,

속죄제를 드릴 번제단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이 일이 없다”(행 4:12)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그림자로 주어진 제사제도를 행함으로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고, 신약의 성도들은 잊지 않기 위해서 성찬을 행하면서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차이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는 십계명만이 아니라, 실체(實體)가 오시기까지 메시아 언약을 대망(待望)케 하는 제사제도를 올바로 준행해야 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남북으로 갈리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언약을 우상과 바꿔치기를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 보면,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31:20) 하고, 저들이 메시아언약을 배신할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 멸망”이 끝이 아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모으실 것이며, 이끄실 것이라, 돌아오게 하사”(30:3, 4, 5) 하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을 당하고 추방을 당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행위 때문이지만,돌아오게” 하심은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아가는 동안, 메시아언약을 잊지 않고 준행해야할 “율례와 법도”요,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복음을 보수하면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世上)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딛 2:12-13) 한, 주님의 재림 때까지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할 지침들인 것입니다.

 

 끝으로 증거할 말씀이 남았습니다.

신명기에서는 그리스도가,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18:18) 하신 중보자로 계시가 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베드로는 이 약속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가 되었음을 증거(행 3:22)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와 같은”이라 하셨는데 모세와 그리스도는 어떤 점이 같은가?

 “중보자”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중보도 한분”이라 하는가?

형제는 참 중보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 값으로 팔린 자들의 “죄를 대속”해주는 일입니다.

모세는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을 주었을 뿐 대속할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 그리하여 모세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할 수가 없었고,

예수”를 예표하는 여호수아에게 인도(引導)하고,

구속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했던 것입니다.

 


   


    

출처 : 구속사 파노라마
글쓴이 : 바람이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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