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스바냐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3. 8. 14:41

                                스바냐 파노라마


                   주제 : 여호와의 심판의 날, 여호와의 구원의 날


스바냐서는 세 장에 불과한 짧은 예언서이면서도,

여호와의 심판의 날”(1:18)과, “여호와의 구원의 날”(3:14)이라는 상반(相反)된 주제가 극렬하게 대조되어 있는 예언서입니다.

“여호와의 심판”은

인간이 행한 “죄, 특히 반역”에 대한 결과요,

여호와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같은 시기

, 즉 요시아 왕 때(습 1:1, 렘 1:2)에 세움 받은 선지자입니다.

 요시아 왕은 31년을 치리했는데 예레미야가 요시아 왕의 말기에 세움을 받았다면

스바냐는 초기로 여겨집니다.

 이때는 악명이 높은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의 패역으로 인하여 극도로 타락한 시기였습니다.

스바냐의 제일성(第一聲)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地面)에서 모든 것을 진멸(盡滅)하리라”(1:2)

 심판선언입니다.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1:3) 하십니다.

 

이는 마치 홍수심판 당시에,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7) 하신 선언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스바냐 선지자의 심판예언은 예루살렘의 심판에 머물지 않고 이를 예표로 하여 “지면(地面)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1:2) 하고 최후심판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5) 하신

그 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슨 죄가 이러한 진노를 받아 마땅한가?


1장,

이점을 본문에서는, “여호와를 배반(背叛)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1:6) 하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두 방면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교회 내에 있는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둘째는 교회 밖에 있는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

즉 대적하는 불신자입니다.

이 두 방면에 대한 경고가 교차적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란 어떤 자들인가?

 이는 요즘 말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곧 교회인 신정왕국(神政王國)입니다.

 그러므로 “배반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을 망각한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모였고 예배(제물)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1:5)도 드리는

혼합종교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중심적인 기복신앙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고 복을 주시려 하는데,

저들은 우상을 통해서 복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교회가 우상을 숭배하다가 멸망을 당했다(여호와를 배반했다)는 말을

교훈적으로만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이를 구속사의 맥락으로 보면

 메시아언약을 배신했다는 뜻이라는 점에 확고해야만

 신약교회도 정신을 차리고 복음을 보수(保守)하며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노라하면서도 목적(目的)과 동기(動機)를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즉 하나님중심에 두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기복신앙에 두게 되면 마치 두 주인을 섬기는 것과 같아서 이것이 영적 간음이요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1:12) 하십니다.

이는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눌어붙은 “찌끼”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믿어도 아주 오래 믿은 사람, 그래서 화석(化石)과 같이 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라는 묘사는

 심판이 빈틈이 없이 시행될 것을 나타내는데,

알곡은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암 9:9) 것이요,

 반면 가라지는 한 알갱이도 예외가 없이 심판에 이르리라는 뜻입니다.

명심해야할 점은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6하),

즉 대적하는 불신자들에게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2:4-15절에서 상론(詳論)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두 방면으로 나타나게 되는 점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 1:18) 하고 말씀합니다.

죄에는 억만 가지가 있다하여도 크게는,

“경건치 아니함과, 불의두 가지 죄뿐입니다.

 “경건치 아니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의 죄인데

,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구하지 않는 불신앙의 죄와,

 믿노라하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한(시 78:37) 형식적인 신앙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불의”는 대인관계(對人關係)에서의 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게 되면 필연적으로 불의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을 경고하시면서 두 번이나

“질투의 불”(1:18, 3:8)이라 말씀함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질투”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강한 새암”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질투가 불일듯 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랑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 대속제물로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려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언약 곧 복음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다니,

그래서 진노의 날에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하고 “진노와 질투”를 함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장,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 지어다 모일 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러할 지어다”(2:12) 합니다. 이는 심판을 시행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2:3)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장에는

유다 족속의 남은 자(7), 나의 남은 국민”(9)이라 하고

남은 자”가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3장에서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12), 이스라엘의 남은 자”(13)는 하고 말씀합니다. 홍수심판 당시에도 “남은 자”가 있었듯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남은 자가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계획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영예가 걸려있기 때문에 기어코 이루시고야 말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열방에 대한 심판경고(2:4-15)가 나오는데

, 이 열방은 이스라엘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있는 이웃 나라들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교만하여 스스로 커서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함이니라”(2:10) 합니다.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방에 대한 심판예언은

1장의 심판경고와, 3장의 회복예언의 중간에 끼어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의도는 환난 중에 있는 남은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3장,

회복을 말씀하시기에 앞서서

먼저 예루살렘이 이처럼 타락한 원인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 방백들(정치지도자)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3-4) 합니다.

이리하여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그 성읍이 화가 있을 진저”(1)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패역, 더러운 곳, 포악”한 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패역”은 반역이고,

 “더러운 곳”은 창녀를 가리키고,

“포악”은 백성에게 불의를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 하였도다”(2) 합니다.

이렇게 된 책임이 “왕, 선지자, 제사장”과 같은 지도자들의 책임이라는 말씀입니다.


3장에서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세 번이나 등장하는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5, 15, 17)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어떤 방도로 다스리시는가?

그 가운데” 세우신

 “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3-4)들을 통해서 다스리신다는 점을 명심한다는 것은 중요한 요점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후에 “만물을 다스리라”(창 1:26)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 “왕, 선지자, 제사장”

메시아적 사명의 예표가 되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역기능(逆機能)으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이요, 반역입니다.

이제도 교회나 가정을 세우신 목사, 장로, 가장(家長)들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기능(順機能),

 즉 하나님의 뜻대로 섬겨야한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느냐 아니냐가 걸려있는 중요한 요점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7) 합니다.

무슨 뜻인가?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마자 거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1:2) 하신 심판은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에게 소망은 없단 말인가?


3:9절은 분기점(分岐點)이 되는 말씀인데

우리 성경에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그러나”(키) 하고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一心)으로 섬기게 하리니”(9) 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除)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11) 합니다.

 그리고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지라”(12) 하고 “남은 자”(13)가 있게 되리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全心)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14)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기뻐하라 하시는가?

여호와가 너의 형벌(刑罰)을 제(除)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진단 말인가?

구속사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을 뿐이라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만일 이를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된 것으로 여기고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벌을

“제하심”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대신 정죄를 당하심으로만이 가능하여 진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15중) 하심은

“임마누엘” 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명백한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셔서, “형벌은 제하시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니, 다시는 화(禍)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15),

그래서 “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 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17).


19-20절에는 “그 때에” 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그 때에”,

 ㉮ 내가 너를 괴롭게 한 자를 다 벌하고,

 ㉯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名聲)을 얻게 하리라 하십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만이 가능하여지는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진멸하리라, 멸절하리라” 하고 시작된 스바냐서

구원하며, 모으며,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말씀으로 마치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진노와 진멸”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죄의 값입니다.

그러나 “형벌을 제하시고, 구원하시고, 명성을 얻게 하심”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이루어주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 이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림을 목전에 둔 현대교회 지도자들의 결의와 결단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신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고, 복음을 증거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찬양하며 감사하게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출처 : 구속사 파노라마
글쓴이 : 바람이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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