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7
출28:6-14
이 시간에도 이어서 “대제사장의 의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대제사장이 입었던 네 가지의 옷을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대제사장은 부끄러운 하체를 가릴 고의를 입어야 하고, 그 위에 세마포 반포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 받침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도 나머지 네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5. 대제사장의 두 어께의 견대를 메었습니다.
9-12절 “호마노 두 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그랬습니다.
견대란 멜빵과 같이 어께에 메는 띠입니다. 이 양편 견대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호마노 보석을 하나씩 달았습니다. 우편 견대에는 루우벤 레위 단 시므온 유다 납달리의 이름을, 좌편 견대에는 아셀 스불론 베냐민 갓 잇사갈 요셉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12지파의 이름을 보석에 새겨 견대에 메고 다니는 것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책임입니다. 대제사장은 자기에게 맡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 메는 책임을 버리고 제사장 노릇을 하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책임 있는 중보의 기도를 하시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라도 버리지 않겠다는 주님 얼마나 귀하십니까?
이처럼 진정한 신령한 제사장이 되려면 맡겨진 양 무리와 주변의 관심 가져야 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을 달리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지체와 이웃을 위한 기도감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붙여주신 기도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심입니다. 그래서 계20:6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했습니다. 이 책임과 은혜를 지금부터 감당하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6. 대제사장의 가슴에 판결 흉패를 가슴에 찹니다.
15-30절이 흉패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 봄으로 설명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장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매보석에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간단히 설명하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12가지 보석을 단 사각 흉패를 대제사장 가슴에 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흉패는 두 겹으로 되어 주머니처럼 되어 있어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열 두 보석이 어느 지파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로 슬레밍(Slemming)이라는 학자가 유명한데 그는 창 49장의 야곱의 축복과 신 33장의 모세의 축복을 종합하고 실재 12지파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연구한 결과 각 보석이 어느 지파를 의미하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규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흉패에 12보석을 다신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보석보다 귀하게 여기시어 가슴에 품고 생명과 같이 사랑하신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런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십니다. 불가운데 지날지라도 타지 않게 하시며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빳지 않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만인 제사장들도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신앙이란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수준의 신앙을 목표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판결 도구입니다. 민27:21에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 보석이 네모반듯한 흉패주머니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네모반듯함은 공의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바르고 공의로운 뜻을 묻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이것이냐 저적이냐 양자택일케 해주시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양심의 판결입니다. 성도는 네모진 흉패처럼 바른 진리의 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양심이 검게 반응하면 즉 양심이 허락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양심이 허락하고 좋아할 때는 해야 합니다. 양심을 거슬리면 그 심령은 죽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따라 행하면 기쁨과 축복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진리에 서야 바른 양심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 양심적 병역거부는 비 진리에 선 여호와증인의 주장이므로 배격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용납한다면 공산주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 병역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용납이 될까요? 잘못된 지식의 양심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흉패는 우리가 사랑의 가슴 양심의 가슴이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7. 대제사장은 허리에 띠를 띠어야 합니다.
28:4에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했습니다.
이 띠도 금색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 즉 흰색이었습니다. 대게 띠는 봉사를 말합니다(눅17:8). 혹은 힘을 의미합니다(사22:21). 즉시 준비 태세나 겸손의 자세를 가리키기도 합니다(눅12:35, 출12:11). 그런데 이 띠는 그냥 봉사도 아니고 그냥 힘이나 준비나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단단한 모습으로 애쓰는 모습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힘이 모이는 곳이 단전이라고 합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부분인데 그 자리가 띠를 띠는 자리입니다. 이 곳에 띠가 띠어지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띠는 한 마디로 대제사장의 충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얼마나 충성된 분이십니까? 그래서 히2:17에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했고, 히3:2에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했습니다. 우리 모두 충성된 제사장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 언제나 사는 것 아닙니다. 열심히 인생을 사십시다.
8.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은 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28:36-38에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대제사장은 모자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만큼 대제사장직이 거룩하다는 뜻도 되겠지만 여기에 담겨진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지식까지도 새롭게 되어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골3:9-10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성물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생각으로 하다가 성과가 없거나 잘못 했을지라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으로 한다면 좋은 결과도 하나님이 받으시고 실패도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사 받으십니다.
그럼 사람의 마음 판은 날마다 전쟁터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생각조차도 빗나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이것이 생각까지도 새롭게 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그렇게 성숙한 것이고 완전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물을 진정 기쁨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으로 이렇게 우리를 책임지시고 아끼시고 사랑하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우리도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여 신령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여 그 아름다운 축복을 모두 누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28:6-14
이 시간에도 이어서 “대제사장의 의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대제사장이 입었던 네 가지의 옷을 말씀드렸습니다. 반드시 대제사장은 부끄러운 하체를 가릴 고의를 입어야 하고, 그 위에 세마포 반포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 받침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도 나머지 네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5. 대제사장의 두 어께의 견대를 메었습니다.
9-12절 “호마노 두 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그랬습니다.
견대란 멜빵과 같이 어께에 메는 띠입니다. 이 양편 견대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호마노 보석을 하나씩 달았습니다. 우편 견대에는 루우벤 레위 단 시므온 유다 납달리의 이름을, 좌편 견대에는 아셀 스불론 베냐민 갓 잇사갈 요셉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12지파의 이름을 보석에 새겨 견대에 메고 다니는 것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책임입니다. 대제사장은 자기에게 맡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 메는 책임을 버리고 제사장 노릇을 하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책임 있는 중보의 기도를 하시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라도 버리지 않겠다는 주님 얼마나 귀하십니까?
이처럼 진정한 신령한 제사장이 되려면 맡겨진 양 무리와 주변의 관심 가져야 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을 달리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지체와 이웃을 위한 기도감을 붙여주십니다. 그러므로 붙여주신 기도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심입니다. 그래서 계20:6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했습니다. 이 책임과 은혜를 지금부터 감당하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6. 대제사장의 가슴에 판결 흉패를 가슴에 찹니다.
15-30절이 흉패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 봄으로 설명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장광이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매보석에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인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땋은 두 금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견대의 금테에 매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편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간단히 설명하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12가지 보석을 단 사각 흉패를 대제사장 가슴에 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흉패는 두 겹으로 되어 주머니처럼 되어 있어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열 두 보석이 어느 지파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로 슬레밍(Slemming)이라는 학자가 유명한데 그는 창 49장의 야곱의 축복과 신 33장의 모세의 축복을 종합하고 실재 12지파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연구한 결과 각 보석이 어느 지파를 의미하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규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흉패에 12보석을 다신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보석보다 귀하게 여기시어 가슴에 품고 생명과 같이 사랑하신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런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십니다. 불가운데 지날지라도 타지 않게 하시며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빳지 않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만인 제사장들도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신앙이란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수준의 신앙을 목표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판결 도구입니다. 민27:21에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 보석이 네모반듯한 흉패주머니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네모반듯함은 공의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바르고 공의로운 뜻을 묻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이것이냐 저적이냐 양자택일케 해주시는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양심의 판결입니다. 성도는 네모진 흉패처럼 바른 진리의 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양심이 검게 반응하면 즉 양심이 허락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양심이 허락하고 좋아할 때는 해야 합니다. 양심을 거슬리면 그 심령은 죽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따라 행하면 기쁨과 축복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진리에 서야 바른 양심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 양심적 병역거부는 비 진리에 선 여호와증인의 주장이므로 배격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용납한다면 공산주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 병역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용납이 될까요? 잘못된 지식의 양심은 고쳐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흉패는 우리가 사랑의 가슴 양심의 가슴이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7. 대제사장은 허리에 띠를 띠어야 합니다.
28:4에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했습니다.
이 띠도 금색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 즉 흰색이었습니다. 대게 띠는 봉사를 말합니다(눅17:8). 혹은 힘을 의미합니다(사22:21). 즉시 준비 태세나 겸손의 자세를 가리키기도 합니다(눅12:35, 출12:11). 그런데 이 띠는 그냥 봉사도 아니고 그냥 힘이나 준비나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단단한 모습으로 애쓰는 모습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힘이 모이는 곳이 단전이라고 합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부분인데 그 자리가 띠를 띠는 자리입니다. 이 곳에 띠가 띠어지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띠는 한 마디로 대제사장의 충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얼마나 충성된 분이십니까? 그래서 히2:17에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했고, 히3:2에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했습니다. 우리 모두 충성된 제사장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 언제나 사는 것 아닙니다. 열심히 인생을 사십시다.
8.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은 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28:36-38에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대제사장은 모자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만큼 대제사장직이 거룩하다는 뜻도 되겠지만 여기에 담겨진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지식까지도 새롭게 되어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골3:9-10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성물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생각으로 하다가 성과가 없거나 잘못 했을지라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으로 한다면 좋은 결과도 하나님이 받으시고 실패도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사 받으십니다.
그럼 사람의 마음 판은 날마다 전쟁터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생각조차도 빗나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이것이 생각까지도 새롭게 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그렇게 성숙한 것이고 완전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물을 진정 기쁨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으로 이렇게 우리를 책임지시고 아끼시고 사랑하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우리도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여 신령한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여 그 아름다운 축복을 모두 누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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