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건축 비용
출38:24-31
이 시간에는 “성소 건축 비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물질이 필요합니다. 성막을 건축하는데도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을 짓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정확히 계산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계산은 할 수 있습니다.
1. 건축비용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4-25절에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이십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조사를 받은 회중의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달란트와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그랬습니다.
본문을 보면 건축 재료들이 나와 있습니다. 간략히 말씀하면 우선 금이 29달란트 730세겔이 들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약 1톤 반입니다. 은이 100달란트 1775세겔입니다. 놋이 70달란트 2400세겔,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 양가죽, 염소 털, 해달가죽, 14개의 보석, 조각목 등입니다.
이상의 것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500억원이 훨씬 넘습니다. 이 성소는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든다한들 남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호화롭게 만들고자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값진 재료가 든 것은 그 재료가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마음의 성소를 짓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시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우리 각인의 신앙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물질적으로 규모적으로 대교회와 비교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참 신앙을 보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사랑하는 교회가 된다면 그 비전은 심히 큽니다. 우리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건축 비용에서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것은 우리의 것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화로움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가진 우리로서 힘써야 할 것은 항상 하나님의 것을 더 낫게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것보다는 훨씬 나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는 후하고 주을 위해서는 초라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삼하7:2을 보면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런 고통이 바로 우리의 양심이어야 합니다. 자기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지 못하다면 복 받을 수 없습니다.
2. 그럼 이 재료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창15:13-14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예언하신대로 출12:35-36을 보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 애굽 사람들이 준 물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쓸 것을 미리 백성들에게 주셔서 예비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 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그렇게 소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도록 다윗에게 많은 것을 주셔서 예비시키셨고, 하만이 유다인들을 해하고자 하실 것을 아시고 에스더를 왕후로 예비하셨습니다. 에4:14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랬습니다. 이렇게 사명이란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할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오는 전설 즉 미드라쉬를 보면 여러 사람들이 준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먼저 야곱이 준비했다고 합니다. 70명의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지시로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또 성막에서 가장 긴 나무를 어디서 구했을까? 본래 조각목은 보통 2-3m 밖에는 안 되는 나무인데 널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꿸만한 15m가량 되는 나무를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찌됐건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르셔서 준비하셨겠지만 미드라쉬를 보면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했다 했듯이 이 나무가 400년 동안 자라서 널판을 꿰는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지도 않으신 것을 달라 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면 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3. 건축헌금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드린 것을 보면 약 4가지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즐거움의 원칙입니다. 출25:1-2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지 않으면 안 받으시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후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왜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현물의 원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 은, 놋, 실, 양가죽, 염소털, 향, 해달의 가적, 여인의 거울 등 물건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무엇에 쓸지도 모른 체 가지고 나왔지만 광야에서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구하시지 않고 우리의 가진 것으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성소를 짓는 데도 100% 우리가 가진 것이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생명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다음에는 청지기의 원칙으로 드렸습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드린다는 정신입니다. 분명히 볼 때는 그것이 내 것이지만 실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것을 드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다윗만큼 하나님께 많이 헌금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을 짓도록 많은 물질을 모았다가 솔로몬에게 넘겨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성막에 든 것과 비교해 보면 금은 20배, 은은 100배, 놋은 250배가 됩니다.
이렇게 많이 하고서도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대상29:14-16)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그 다음에는 풍요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넘치게 드렸다는 점입니다. 출36:4-5에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했는데 얼마나 백성들이 풍성하게 드렸으면 이렇게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성전건축헌금을 그만 가져오라” 얼마나 이색적인 광고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일들은 항상 이렇게 넘칩니다. 가난한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유대교인들을 위해서 헌금했지만 고후9:12을 보면 넘쳤다고 했습니다. 왜 넘쳤습니까? 은혜로 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라고 많이 하는 것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적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교인들이 많아도 은혜를 받으면 더 아름답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부자는 도리어 주의 일에 방해만 놓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넘치고 넘칩니다. 그러한 성도의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성막을 짓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똑 같습니다.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소를 요구하심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성소부터 잘 지으십시다. 신앙생활 잘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슨 일이 되었든지 기쁨으로 풍요롭게 청지기 정신으로 잘하여 하나님께 복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38:24-31
이 시간에는 “성소 건축 비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물질이 필요합니다. 성막을 건축하는데도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을 짓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정확히 계산 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계산은 할 수 있습니다.
1. 건축비용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4-25절에 “성소 건축 비용으로 드린 금은 성소의 세겔대로 이십구 달란트와 칠백삼십 세겔이며 조사를 받은 회중의 드린 은은 성소의 세겔대로 일백 달란트와 일천칠백칠십오 세겔이니” 그랬습니다.
본문을 보면 건축 재료들이 나와 있습니다. 간략히 말씀하면 우선 금이 29달란트 730세겔이 들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약 1톤 반입니다. 은이 100달란트 1775세겔입니다. 놋이 70달란트 2400세겔, 그리고 청색, 자색, 홍색, 가는 베실, 양가죽, 염소 털, 해달가죽, 14개의 보석, 조각목 등입니다.
이상의 것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500억원이 훨씬 넘습니다. 이 성소는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든다한들 남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호화롭게 만들고자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값진 재료가 든 것은 그 재료가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마음의 성소를 짓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시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우리 각인의 신앙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물질적으로 규모적으로 대교회와 비교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참 신앙을 보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사랑하는 교회가 된다면 그 비전은 심히 큽니다. 우리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건축 비용에서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것은 우리의 것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화로움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가진 우리로서 힘써야 할 것은 항상 하나님의 것을 더 낫게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것보다는 훨씬 나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는 후하고 주을 위해서는 초라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삼하7:2을 보면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런 고통이 바로 우리의 양심이어야 합니다. 자기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지 못하다면 복 받을 수 없습니다.
2. 그럼 이 재료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창15:13-14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예언하신대로 출12:35-36을 보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 애굽 사람들이 준 물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쓸 것을 미리 백성들에게 주셔서 예비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 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그렇게 소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도록 다윗에게 많은 것을 주셔서 예비시키셨고, 하만이 유다인들을 해하고자 하실 것을 아시고 에스더를 왕후로 예비하셨습니다. 에4:14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랬습니다. 이렇게 사명이란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할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오는 전설 즉 미드라쉬를 보면 여러 사람들이 준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먼저 야곱이 준비했다고 합니다. 70명의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지시로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또 성막에서 가장 긴 나무를 어디서 구했을까? 본래 조각목은 보통 2-3m 밖에는 안 되는 나무인데 널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꿸만한 15m가량 되는 나무를 어디서 구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찌됐건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르셔서 준비하셨겠지만 미드라쉬를 보면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했다 했듯이 이 나무가 400년 동안 자라서 널판을 꿰는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준비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지도 않으신 것을 달라 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면 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3. 건축헌금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드린 것을 보면 약 4가지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즐거움의 원칙입니다. 출25:1-2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즐거운 마음으로 내지 않으면 안 받으시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후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왜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현물의 원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 은, 놋, 실, 양가죽, 염소털, 향, 해달의 가적, 여인의 거울 등 물건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무엇에 쓸지도 모른 체 가지고 나왔지만 광야에서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구하시지 않고 우리의 가진 것으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성소를 짓는 데도 100% 우리가 가진 것이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생명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다음에는 청지기의 원칙으로 드렸습니다. 즉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드린다는 정신입니다. 분명히 볼 때는 그것이 내 것이지만 실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것을 드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다윗만큼 하나님께 많이 헌금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솔로몬 성전을 짓도록 많은 물질을 모았다가 솔로몬에게 넘겨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성막에 든 것과 비교해 보면 금은 20배, 은은 100배, 놋은 250배가 됩니다.
이렇게 많이 하고서도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대상29:14-16)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그 다음에는 풍요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넘치게 드렸다는 점입니다. 출36:4-5에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했는데 얼마나 백성들이 풍성하게 드렸으면 이렇게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성전건축헌금을 그만 가져오라” 얼마나 이색적인 광고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일들은 항상 이렇게 넘칩니다. 가난한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유대교인들을 위해서 헌금했지만 고후9:12을 보면 넘쳤다고 했습니다. 왜 넘쳤습니까? 은혜로 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라고 많이 하는 것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적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교인들이 많아도 은혜를 받으면 더 아름답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부자는 도리어 주의 일에 방해만 놓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넘치고 넘칩니다. 그러한 성도의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성막을 짓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똑 같습니다.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소를 요구하심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성소부터 잘 지으십시다. 신앙생활 잘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슨 일이 되었든지 기쁨으로 풍요롭게 청지기 정신으로 잘하여 하나님께 복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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