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3
출29:1-9
이 시간에는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 29장 본문은 제사장 위임식장입니다. 위임식이란 제사장이 되는 것으로 오늘날 용어로 임직식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제사장 위임식은 먼저는 대제사장 되신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고,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우리 성도들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 위임식은 이런 순서로 진행됩니다. 먼저 몸을 씻깁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옷을 입히고 허리에 띠와 머리에 관을 씁니다. 그런 다음 제사장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와 요제와 거제와 상번제를 드립니다. 그런 다음 회막문에서 제사장들이 남은 제물로 식사를 합니다.
그럼, 제사장 위임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령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제사장은 성결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4절에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먼저는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이 씻음이 보여주는 진리는 대제사장 되신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히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고, 히7:26에 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씻음의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양심과 행실이 깨끗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심에 문제가 생기면 거리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첫째가 씻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확신 가지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2. 제사장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5-6절에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아론에게는 대제사장복을 그 아들들에게는 제사장복을 입혔습니다. 미드라쉬를 보면 제사장복을 입는 데도 엄격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만 제사장복을 입습니다. 아론계열이어도 성막이나 성전에서만 입어야 합니다. 성막 안일지라도 제사의 일이 아닐 때는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옷을 다 착용하되 한 가지라도 빼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특수한 옷을 입게 하신 것은 제사장은 성별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란 행실 그 자체가 하나님께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찬미와 구제도 제사가 됩니다(히13:15, 16).
그런데 행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대제사장복의 에봇 조끼 앞 중앙에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고 거기 12지파의 이름이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가슴으로 사랑하심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것은 제사장된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함을 교훈합니다. 사랑 으로 모든 사람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된 우리에게 사랑은 필수입니다.
3. 제사장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7절에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 머리에 기름을 붓되 많이 부어 수염을 통해 아래 옷깃까지 흐르도록 부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충만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제사장직을 행하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찬미를 부를 수 있고 이웃을 섬기며 죄인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부터 수염과 옷깃까지 기름이 흐름은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133:1-3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했는데 왜 형제의 연합을 기름부음에 비유했을까요? 성령 충만할 때 주님과 우리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성도 간의 연합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2:5에 “신령한 제사장이 되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신령합니다.
4. 그 다음 제사장은 매일 신령한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29:10-28절 내용인데 거기 보면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드려야 할 제사가 나타납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먼저 속죄제를 드렸고 번제를 드렸고 화목제를 드렸고 요제와 거제와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속죄제란 자기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요, 번제란 태워 드리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의 상징이며, 화목제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제사이고, 요제란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것이고, 게제란 제물을 높이 들어서 드리는 것이고, 상번제는 매일 조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 제사장에게 이런 의식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히5:1-3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한 대로 그들은 인간이기에 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런 제사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이 구약 의식대로는 할 필요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렸듯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행하려면 자기 죄와 남의 죄를 위해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흠만 보고 방치하거나 흉보는 것은 제사장이 할 일이 아닙니다. 내 눈에 그것이 보인 것은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책임입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리듯 나 자신과 성도들이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세상 욕망에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사장일지는 몰라도 신령한 제사장이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이 드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번제를 기뻐하시듯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화목제를 드리듯 우리 만인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나,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제사장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른 소리의 선지자 역할도 필요하지만 제사장 역할이 더 앞서야 하고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선지자 역할을 하겠다고 외치는 사람 많지만 눈물 없는 선지자가 많습니다. 예레미야처럼 기도하는 제사장 역할까지 겸한 눈물의 선지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흔들어서 요제를 드리고 높이 들어 거제를 드리듯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는 것 우리 제사장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리고 매일 조석으로 상번제를 드렸듯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번제를 조석으로 드림은 하루 두 번의 예배의 개념도 있지만 시작과 나중이라는 점에서 하루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각종 제사는 우리에게 제사장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 가르쳐 줍니다.
5. 그리고 무엇보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행복해야 합니다.
31-32절에 “너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 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 후에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나머지 제물은 삶아서 제사장들이 거룩한 회막문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때 광주리에 남아 있는 떡도 함께 먹습니다. 그러나 아침까지 남은 것은 모두 불태워야 합니다.
이 때 먹는 고기가 넓적다리와 갈비를 먹는데 모두 풍요롭고 맛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하나님의 풍성한 그 은혜를 받아 누릴 때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잘 믿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제사장으로서 누리는 성도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먼저 우리가 은혜 받고 남까지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29:1-9
이 시간에는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 29장 본문은 제사장 위임식장입니다. 위임식이란 제사장이 되는 것으로 오늘날 용어로 임직식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제사장 위임식은 먼저는 대제사장 되신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고,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우리 성도들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 위임식은 이런 순서로 진행됩니다. 먼저 몸을 씻깁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옷을 입히고 허리에 띠와 머리에 관을 씁니다. 그런 다음 제사장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와 요제와 거제와 상번제를 드립니다. 그런 다음 회막문에서 제사장들이 남은 제물로 식사를 합니다.
그럼, 제사장 위임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령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제사장은 성결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4절에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먼저는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이 씻음이 보여주는 진리는 대제사장 되신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히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고, 히7:26에 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씻음의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양심과 행실이 깨끗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심에 문제가 생기면 거리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첫째가 씻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확신 가지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2. 제사장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5-6절에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아론에게는 대제사장복을 그 아들들에게는 제사장복을 입혔습니다. 미드라쉬를 보면 제사장복을 입는 데도 엄격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만 제사장복을 입습니다. 아론계열이어도 성막이나 성전에서만 입어야 합니다. 성막 안일지라도 제사의 일이 아닐 때는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옷을 입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옷을 다 착용하되 한 가지라도 빼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특수한 옷을 입게 하신 것은 제사장은 성별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란 행실 그 자체가 하나님께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찬미와 구제도 제사가 됩니다(히13:15, 16).
그런데 행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대제사장복의 에봇 조끼 앞 중앙에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고 거기 12지파의 이름이 쓰인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가슴으로 사랑하심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것은 제사장된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함을 교훈합니다. 사랑 으로 모든 사람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된 우리에게 사랑은 필수입니다.
3. 제사장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7절에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랬습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 머리에 기름을 붓되 많이 부어 수염을 통해 아래 옷깃까지 흐르도록 부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충만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제사장직을 행하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찬미를 부를 수 있고 이웃을 섬기며 죄인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부터 수염과 옷깃까지 기름이 흐름은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133:1-3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했는데 왜 형제의 연합을 기름부음에 비유했을까요? 성령 충만할 때 주님과 우리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성도 간의 연합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2:5에 “신령한 제사장이 되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신령합니다.
4. 그 다음 제사장은 매일 신령한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29:10-28절 내용인데 거기 보면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드려야 할 제사가 나타납니다.
제사장 위임을 위해서 먼저 속죄제를 드렸고 번제를 드렸고 화목제를 드렸고 요제와 거제와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속죄제란 자기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요, 번제란 태워 드리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의 상징이며, 화목제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제사이고, 요제란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것이고, 게제란 제물을 높이 들어서 드리는 것이고, 상번제는 매일 조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 제사장에게 이런 의식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히5:1-3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한 대로 그들은 인간이기에 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런 제사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이 구약 의식대로는 할 필요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렸듯 우리가 제사장 직분을 행하려면 자기 죄와 남의 죄를 위해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흠만 보고 방치하거나 흉보는 것은 제사장이 할 일이 아닙니다. 내 눈에 그것이 보인 것은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라고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책임입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리듯 나 자신과 성도들이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세상 욕망에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사장일지는 몰라도 신령한 제사장이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이 드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번제를 기뻐하시듯 아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화목제를 드리듯 우리 만인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나,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제사장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바른 소리의 선지자 역할도 필요하지만 제사장 역할이 더 앞서야 하고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선지자 역할을 하겠다고 외치는 사람 많지만 눈물 없는 선지자가 많습니다. 예레미야처럼 기도하는 제사장 역할까지 겸한 눈물의 선지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흔들어서 요제를 드리고 높이 들어 거제를 드리듯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는 것 우리 제사장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리고 매일 조석으로 상번제를 드렸듯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번제를 조석으로 드림은 하루 두 번의 예배의 개념도 있지만 시작과 나중이라는 점에서 하루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각종 제사는 우리에게 제사장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 가르쳐 줍니다.
5. 그리고 무엇보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행복해야 합니다.
31-32절에 “너는 위임식 숫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 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 후에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나머지 제물은 삶아서 제사장들이 거룩한 회막문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 때 광주리에 남아 있는 떡도 함께 먹습니다. 그러나 아침까지 남은 것은 모두 불태워야 합니다.
이 때 먹는 고기가 넓적다리와 갈비를 먹는데 모두 풍요롭고 맛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하나님의 풍성한 그 은혜를 받아 누릴 때 더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잘 믿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제사장으로서 누리는 성도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먼저 우리가 은혜 받고 남까지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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