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민3:40-51
이 시간에는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구약에는 기름부음을 받는 3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 그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한 사명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그럼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사장은 그와는 반대로 인간편에서 인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갑니다. 제사장이란 라틴어로 ‘폰티텍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서 화목제를 통하여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살펴 볼 것은 제사장의 변천과정입니다.
1. 족장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첫 제사장은 아담이었습니다. 그 다음의 족장 제사장은 아벨이었습니다. 그 후 셋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다 족장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욥도 족장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이 제사장이 되어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며 이 직무는 영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가정에서 가장이 가족을 축복하고 신앙으로 이끄는 일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족장 제사장 제도가 끝난 이 후에도 가장들에게 가족들의 신앙교육에 대하여 늘 교훈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신6:6-7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 장자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 장자 제사장은 실재로 활동한 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시에 여호와께서 초태생은 다 내 것이니 내게 돌리라고 하셨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시내산에서 그 장자를 대신하는 또 다른 제사장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장은 그 의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장자들은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제사장이 하기 때문에 장자대속금이라 해서 자기의 의무금을 그 제사장들에게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족이 다 주의 종들에 관한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을 시사해 줍니다. 내 가족에서 주의 종들 내지 않는다면 다른 주의 종들을 도와야 합니다. 최소한 한 사람의 신학생은 졸업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사명인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녀들이 십자가 지지 않으려는 것 다른 자녀들이 져준다는 의미에서도 봐야 합니다. 즉 직분적인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레위제사장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위 제사장을 세우신 이유는 장자 제사장은 그 의미는 타당하지만 실재적으로 수행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레위지파 제사장 시대를 여시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민3:40-51은 장자 제사장이 레위 제사장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레위 지파가 제사장이 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제사장의 축복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레갑 자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선조 요나답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을 300년 동안 목숨 걸고 지켰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이 레갑 자손들을 영영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레위 자손들도 애굽에서 목숨 걸고 신앙 지키며 살았습니다. 출2:1-2에 목숨 걸고 신앙 지킨 레위 지파가 나타납니다. 모세의 부모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의 평균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학자들 중에는 레위 지파가 애굽에서 남아를 나일강에 던져야 하는 등 가장 박해를 많이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신앙은 광야에서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모세가 더디 오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그것을 만드는데 금도 드리지 않았고 숭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출32:26에 그들은 여호와 편에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내려 왔을 때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하였습니다. 이 신앙이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철저한 신앙의 사람이었고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드라쉬에 의하면 이스라엘 12지파는 광야에서 하례를 행치 않았지만 레위지파만은 이동하는 고통을 감수하고서 할례를 행했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삼으셨습니다.
애굽은 세상의 예표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주의 종이 되려면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최소한의 기본입니다. 오늘날도 죄를 원수 삼고 비 진리를 원수 삼고 사탄을 원수 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쓰십니다. 세상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레위지파가 주는 현재적인 교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레위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1. 땅에 대한 기업을 받지 못하고 각 지파로 흩어졌습니다.
신10:9에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했습니다.
레위인은 땅의 기업은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업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24반으로 나누어 반차를 따라서 봉사하였습니다. 안식일마다 교대했는데 그러면 1년에 2번씩 일할 차례가 옵니다. 그리고 4주 남은 것은 모두 모여서 함께 일했습니다. 그 때가 유월절 오순절 대속죄일과 초막절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대하5:11에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레위인들은 전국에 흩어져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레10:8-11에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들의 사명은 율법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어떤 일에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다스릴 때 율법공부를 절대 금했지만 율법 교육은 계속되었습니다. 만약 율법을 교육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랍비 아키바가 태연하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형 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자 “우리는 율법 밖으로 나가면 죽고 마는 민족입니다. 잡히더라도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율법 공부를 멈출 수 없습니다. 율법을 향하여 가다가 죽을 수는 있어도 율법을 피하다가 죽을 수는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3. 레위인은 온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로 살았습니다.
민18:21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활이 평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1지파에서 낸 십일조를 레위지파는 받아서 다시 대제사장 아론족에게 바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받으면 이스라엘에 제사가 회복되지만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으면 레위지파는 살길 찾아 뿔뿔이 흩어져 이스라엘 성전의 제사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있어서 십일조는 생명과 같이 중요했습니다.
오늘날로 적용해 본다면 십일조의 의미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초대교회의 연보의 개념입니다. 모두가 평균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십일조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다른 것은 이것을 사랑과 신앙 안에서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과 신앙 안에서 놀라운 결속이 이루어진 적이 크게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에스더서에 나타나듯 파사에서였고, 또 한 때는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 때였습니다. 이 때 특징은 모두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나누었다는 점입니다. 진정 참된 신앙의 감격 속에서 산다면 십일조의 의미는 지켜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는 모두가 레위 지파입니다. 장자 제사장과 레위 제사장에서 보여 주듯 정면에 나섰느냐 협력하느냐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데 힘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민3:40-51
이 시간에는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구약에는 기름부음을 받는 3직이 있었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 그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한 사명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그럼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사장은 그와는 반대로 인간편에서 인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갑니다. 제사장이란 라틴어로 ‘폰티텍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서 화목제를 통하여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살펴 볼 것은 제사장의 변천과정입니다.
1. 족장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첫 제사장은 아담이었습니다. 그 다음의 족장 제사장은 아벨이었습니다. 그 후 셋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다 족장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욥도 족장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이 제사장이 되어 활동하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며 이 직무는 영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가정에서 가장이 가족을 축복하고 신앙으로 이끄는 일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족장 제사장 제도가 끝난 이 후에도 가장들에게 가족들의 신앙교육에 대하여 늘 교훈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신6:6-7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 장자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 장자 제사장은 실재로 활동한 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시에 여호와께서 초태생은 다 내 것이니 내게 돌리라고 하셨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시내산에서 그 장자를 대신하는 또 다른 제사장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장은 그 의무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장자들은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제사장이 하기 때문에 장자대속금이라 해서 자기의 의무금을 그 제사장들에게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족이 다 주의 종들에 관한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을 시사해 줍니다. 내 가족에서 주의 종들 내지 않는다면 다른 주의 종들을 도와야 합니다. 최소한 한 사람의 신학생은 졸업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사명인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녀들이 십자가 지지 않으려는 것 다른 자녀들이 져준다는 의미에서도 봐야 합니다. 즉 직분적인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레위제사장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위 제사장을 세우신 이유는 장자 제사장은 그 의미는 타당하지만 실재적으로 수행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레위지파 제사장 시대를 여시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민3:40-51은 장자 제사장이 레위 제사장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레위 지파가 제사장이 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제사장의 축복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레갑 자손들이 제사장이 된 것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선조 요나답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을 300년 동안 목숨 걸고 지켰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이 레갑 자손들을 영영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레위 자손들도 애굽에서 목숨 걸고 신앙 지키며 살았습니다. 출2:1-2에 목숨 걸고 신앙 지킨 레위 지파가 나타납니다. 모세의 부모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의 평균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학자들 중에는 레위 지파가 애굽에서 남아를 나일강에 던져야 하는 등 가장 박해를 많이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 신앙은 광야에서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모세가 더디 오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그것을 만드는데 금도 드리지 않았고 숭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출32:26에 그들은 여호와 편에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내려 왔을 때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하였습니다. 이 신앙이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철저한 신앙의 사람이었고 광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드라쉬에 의하면 이스라엘 12지파는 광야에서 하례를 행치 않았지만 레위지파만은 이동하는 고통을 감수하고서 할례를 행했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제사장 지파로 삼으셨습니다.
애굽은 세상의 예표입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주의 종이 되려면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최소한의 기본입니다. 오늘날도 죄를 원수 삼고 비 진리를 원수 삼고 사탄을 원수 삼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쓰십니다. 세상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레위지파가 주는 현재적인 교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레위 제사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1. 땅에 대한 기업을 받지 못하고 각 지파로 흩어졌습니다.
신10:9에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했습니다.
레위인은 땅의 기업은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업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24반으로 나누어 반차를 따라서 봉사하였습니다. 안식일마다 교대했는데 그러면 1년에 2번씩 일할 차례가 옵니다. 그리고 4주 남은 것은 모두 모여서 함께 일했습니다. 그 때가 유월절 오순절 대속죄일과 초막절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대하5:11에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레위인들은 전국에 흩어져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레10:8-11에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레위인들의 사명은 율법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어떤 일에도 그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다스릴 때 율법공부를 절대 금했지만 율법 교육은 계속되었습니다. 만약 율법을 교육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랍비 아키바가 태연하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형 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자 “우리는 율법 밖으로 나가면 죽고 마는 민족입니다. 잡히더라도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율법 공부를 멈출 수 없습니다. 율법을 향하여 가다가 죽을 수는 있어도 율법을 피하다가 죽을 수는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3. 레위인은 온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로 살았습니다.
민18:21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활이 평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1지파에서 낸 십일조를 레위지파는 받아서 다시 대제사장 아론족에게 바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받으면 이스라엘에 제사가 회복되지만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으면 레위지파는 살길 찾아 뿔뿔이 흩어져 이스라엘 성전의 제사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있어서 십일조는 생명과 같이 중요했습니다.
오늘날로 적용해 본다면 십일조의 의미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초대교회의 연보의 개념입니다. 모두가 평균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십일조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다른 것은 이것을 사랑과 신앙 안에서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과 신앙 안에서 놀라운 결속이 이루어진 적이 크게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에스더서에 나타나듯 파사에서였고, 또 한 때는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 때였습니다. 이 때 특징은 모두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나누었다는 점입니다. 진정 참된 신앙의 감격 속에서 산다면 십일조의 의미는 지켜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는 모두가 레위 지파입니다. 장자 제사장과 레위 제사장에서 보여 주듯 정면에 나섰느냐 협력하느냐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데 힘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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