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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막의 널판과 띠

하나님아들 2014. 1. 21. 15:43
성막의 널판과 띠
출26:15-30

이 시간에는 [성막의 널판 그리고 아울러 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뜰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성막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널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널판이란 무엇인가? 성막의 벽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긴 판자를 둘러 세워서 벽을 이루게 합니다. 그래서 튼튼한 성막이 완성됩니다. 오늘 말씀에 어울리는 성경구절은 히12:1절의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즉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교훈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시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널판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널판의 재료입니다.

15절 “너는 조각목으로” 그랬고, 29절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랬습니다. 29절 보면 띠 역시 조각목을 금으로 쌌습니다.
여기 재료는 조각목과 금입니다. 그러니까 조각목에 금을 싼 금널판입니다. 여기 조각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천한 인성을 뜻하고, 금은 다시 부활하신 신성을 뜻합니다. 즉 천한 가시목과 같은 주님이셨지만 다시 살으심으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의 구원이 주님의 죽으시고 다시 살으심의 은혜로 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롬10:9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은 그 뿐 아니라 온전한 영광까지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성한 성도가 되려면 무엇보다 이 함께 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먼저 잘 알고 서는 것입니다. 그 때 그 천한 가시나무 조각목이 금으로 싸여 영광스럽게 되듯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괴수 같은 우리일지라도 에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버림 받은 삭개오도 구원을 받았고, 버림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도 구원을 받았으며, 버림 받은 강도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널판의 모양입니다.

16-17절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그러니까 아주 큰 널판입니다. 폭이 75센티 정도 되는 나무판이 5미터입니다. 이것을 금으로 쌌으니 가벼운 무게는 아닙니다. 하나가 아마 수십 키로 이상이 됐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전승 기록인 미드라쉬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다 세울 수 있었는데 널판만은 못 세웠다고 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네가 가서 세어라. 내가 도와주마” 해서 모세가 세웠더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세웠다고 합니다. 이 전승이 보여주듯 이 황금널판은 대단히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점은 어떻게 그렇게 넓은 조각목을 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조각목이 수백년 자라지 않는다면 그만큼 큰 것을 얻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미드라쉬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 시내산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아 네가 네 자손과 함께 애굽으로 들어가지만 앞으로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 곳에서 내 집을 지으리라. 이 곳에 나무를 심고 들어가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성경은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만큼 조각목이 오래되고 거대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구원의 풍성함입니다.
그런데 숫자에 담긴 의미로 보아도 충만한 분량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길이가 십 규빗의 10은 장성한 만수입니다. 거기다 광이 한 규빗 반에서 0.5가 더해지는 것은 되고도 남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분량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도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리의 설계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엡4:13-15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귀히 쓰이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널판이 되려면 영적으로 장성해야 합니다.

3. 널판의 수효입니다.

20절 “성막 다른 편 곧 그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스물로 하고”
이렇게 남편에 널판이 스무 개, 북편도 널판이 스무 개, 서편에는 널판이 6개에 모퉁이에 2개 더해서 8개 합하면 모두 48개의 황금 널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막 들어오는 입구 동편에는 널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출입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널판이 48개란 우리 신앙의 원만성과 완전성입니다. 구체적으로 20은 완전 갖춤 등을 의미하는 구비수 10의 두 배로 된 수로서 이것이 두 배일 때는 영육 간에 잘 갖추어짐을 의미합니다. 6은 사람이나 육신이나 짐승이나 세상의 수요, 2는 증거의 수입니다. 이 수효가 보여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보이는 면 보이지 않는 면 영육 간의 생활적인 여러 면에서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원만하고 완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한 편만 잘한다고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생활도 원만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겨자씨와 같은 작은 천국의 씨지만 자라고 자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들어오는 입구가 막히지 않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렇게 될 때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전도이 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예수 잘 믿으면 우리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대신 잘못하면 우리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오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것도 교인들이 하지만 전도 길을 막는 것도 교인들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고 칭송 받으시기 바랍니다.

4. 널판의 받침입니다.

19절 “스무 널판 아래 은 받침 마흔을 만들지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이 말씀대로 각 널판마다 아래에 은 받침을 두개씩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널판이 모두 48개이니까 은 받침은 96개입니다. 그리고 “두 촉을 위하여” 라는 말씀이 있는데 두 촉과 은받침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이렇게 말씀했는가? 먼저 촉이란 서로 묶어지기 위하여 아래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킵니다. 은 받침은 널판을 받칠 뿐 아니라 17절을 참고할 때 은 받침은 이 촉들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은 받침에 구멍이 뚫려 촉이 들어가 널판들이 연결되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은 받침이 없으면 널판도 설 수 없고 널판이 틈이 납니다. 그래서 은 받침이 중요합니다.
그럼 은 받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이 은은 누가 드린 것인가? 출30:14절을 보면 이십 세 이상의 군사로 뽑힌 이스라엘의 장정들이 드렸습니다. 이 은은 매년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 받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가? 장성한 신앙이 되려면 예수님의 군사와 같이 견고하게 예수 복음에 서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장정과 같이 진리에 서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이 기초가 잘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인들이 그렇게 장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복음과 기도하는 경건생활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았고 기도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은 받침입니다. 이 은 받침 역할이 제대로 안되어 틈이 벌어지면 그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부족하면 사탄이 시험을 합니다. 또 기도가 부족하면 사단이 시험을 합니다. 그러므로 장성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용사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5. 널판의 금띠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28-29절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이 널판들이 하나의 울타리로 묶어지려면 띠가 필요했습니다. 널판에는 고리가 밖에는 상하 4단으로 달려 있고, 널판 중앙 부분에 속으로 띠를 꿰게 되어 있어 이 모든 것을 장치하면 튼튼한 벽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널판 중앙 부분을 꿰뚫은 띠는 속에 위치하여 보이지 않습니다. 이 띠는 모두 조각목에 금으로 쌌습니다. 여기 나무는 예수님의 인성이요, 금은 신성이나 믿음의 상징입니다. 고리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 띠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요 성령의 은혜요 성도들의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하나가 됩니다.
먼저 십자가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엡2:16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또 성령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엡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했습니다. 이 띠는 보이지 않는 띠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골2:2에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서로 늘 은혜를 받고 은혜를 끼칠 때 영적성장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 지체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기 지체와 직분과 은사의 달란트를 통해 서로 봉사함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의 널판과 같이 진리에 서고 서로 서로 도우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장성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그 축복을 받아 누릴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오게 되는 귀한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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