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뜰문
출27:9-19
오늘은 성막론에서 [뜰문]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모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을 말씀한 것입니다. 요5:46-47에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것을 몰랐기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에 덮인 수건을 예수 이름으로 열고 그 내막을 보아야 합니다. 성막의 뜰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교훈합니다. 요10:17에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 요10:9에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한 것을 보아 이 문은 보통 문이 아니라 구원의 문입니다. 이처럼 성막의 뜰문도 구원의 문을 상징합니다.
그럼, 성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1. 오직 구원자가 예수님 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성막에는 오직 한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성막 사방에 이스라엘 12지파가 3지파씩 진치고 있었지만 오직 문은 한 개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언급했던 대로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새 예루살렘의 문은 12문으로 하나님께서 설치하신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은혜 받는 법에 대한 것이라면 성막의 문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고, 행4:12에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모두 잘못 인도하는 절도요 강도며 그 길은 시망길이요 지옥길입니다.
2. 성막의 뜰문은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기만 하면 다 구원 받음을 보여줍니다.
16절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성막의 뜰문은 아주 컸습니다. 동쪽 50규빗 중에 20규빗이 문입니다. 우리 교회문은 몇 미터 되지 않지만 성막의 문은 무려 10미터가 됩니다. 300여평 되는 땅에 그토록 넓은 문을 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20규빗이란 넓다는 뜻도 되지만 2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도 그것입니다. 그것은 증거의 수입니다. 10은 모두를 가리키는 만수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 증거를 듣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듣지 아니하고 어찌 믿으리요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이 누구든지란 선하든 악하든 부자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배웠든 못 배웠든지 남녀노소 누구든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리도 창기도 왕도 제사장도 보통사람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막 문을 보면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의 문은 크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실 때 어떤 사람이든지 무엇을 하든 사람이든지 가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옆에 달린 한 강도도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3. 성막 뜰문은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소망을 얻음을 보여줍니다.
문이 동쪽으로 났는데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해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천국문과 지옥문의 차이점입니다. 지옥문은 소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소망을 얻습니다. 영생의 소망 행복의 소망 든든한 소망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 문은 죄를 짊어지고 어둡게 왔다가도 나갈 때는 다 부리고 기쁨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홀메스와 라헤가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했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사망할 때 받는 스트레스를 100으로 볼 때 이혼시 73% 질병 53% 은퇴 43% 성문제 39% 직업전환 시 36% 상사와 알력 23% 임신 30% 이사 20% 그런데 스트레스 수치가 200을 넘으면 병들기 시작하고 300이 넘으면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200 300의 수치를 가지고 나왔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받으면 울고 들어왔지만 웃으면서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멀었기에 그들 심령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1:5-8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했습니다. 이런 심령 상태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문을 활짝 여신 것처럼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4. 이 문은 아름다운 4가지 색깔의 문입니다.
16절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청색은 생명의 색깔로 생명이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가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교훈입니다. 자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깔로 나의 왕 되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오면 그 방황은 끝납니다.
홍색은 피의 색으로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에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도 이 문으로 들어와 예수 믿으면 다 용서 받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늘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무죄하시고 거룩하신 에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심령의 거룩함을 입혀주시고 변화되게 하십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뜰문에 돈 달아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하면서 먼저 우리는 영적인 은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추구하면 돈도 은혜도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으면 영육 간에 채우심을 받게 됩니다. 이 뜰문에만 들어오면 이러한 복을 받는다는 것이 뜰문의 문양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진실로 내가 바로 되는 신령한 신앙에 관심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성막의 뜰문은 문턱이 없습니다.
즉 누구든지 들어가기 쉽습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니 쉬운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을 우리 주님께서 다 이루어놓으시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은혜를 믿고 누리면 됩니다.
옛날 은행은 문턱이 높아서 아무나 돈을 빌려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은행은 웬만한 사람에게나 돈을 가져다가 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와 은혜 받는 문은 이보다 그 문턱이 낮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습니다. 문턱이 있다면 거지 나사로가 어찌 구언을 받았겠습니까? 문턱이 있다면 세리 마태 삭개오, 귀신들린 죄 많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문턱이 있다면 저부터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문제요 우리 관념의 문제입니다. 안 된다 못 한다 어렵다 난 불행하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했는데 그 일을 한 공신 중에 상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앙은 백성들의 신뢰를 받아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문 곁에 석자 나무를 심고 거기 방을 붙였습니다. “이 나무를 북문 앞에 옮겨 심는 자는 황금 10근을 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또 옮겨 심어도 주지 않을 줄 알고 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앙은 다시 10근에서 50근으로 올리고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거금을 준다니까 비웃기만 하고 옮겨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장난 삼아 나무를 옮겼는데 상앙은 그에게 정말 금 50근을 주었습니다. 그 소문은 온 나라에 퍼졌고 그 후부터 사람들은 상앙이 무슨 말을 해도 믿었다고 합니다. 사람도 그렇거니와 우리 하나님을 왜 못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모든 은혜를 믿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막의 뜰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귀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맙시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면 구원을 받습니다. 소망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귀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27:9-19
오늘은 성막론에서 [뜰문]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모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을 말씀한 것입니다. 요5:46-47에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것을 몰랐기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에 덮인 수건을 예수 이름으로 열고 그 내막을 보아야 합니다. 성막의 뜰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교훈합니다. 요10:17에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 요10:9에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한 것을 보아 이 문은 보통 문이 아니라 구원의 문입니다. 이처럼 성막의 뜰문도 구원의 문을 상징합니다.
그럼, 성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1. 오직 구원자가 예수님 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성막에는 오직 한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성막 사방에 이스라엘 12지파가 3지파씩 진치고 있었지만 오직 문은 한 개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언급했던 대로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새 예루살렘의 문은 12문으로 하나님께서 설치하신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은혜 받는 법에 대한 것이라면 성막의 문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고, 행4:12에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 말고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모두 잘못 인도하는 절도요 강도며 그 길은 시망길이요 지옥길입니다.
2. 성막의 뜰문은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기만 하면 다 구원 받음을 보여줍니다.
16절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성막의 뜰문은 아주 컸습니다. 동쪽 50규빗 중에 20규빗이 문입니다. 우리 교회문은 몇 미터 되지 않지만 성막의 문은 무려 10미터가 됩니다. 300여평 되는 땅에 그토록 넓은 문을 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20규빗이란 넓다는 뜻도 되지만 2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도 그것입니다. 그것은 증거의 수입니다. 10은 모두를 가리키는 만수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 증거를 듣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듣지 아니하고 어찌 믿으리요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이 누구든지란 선하든 악하든 부자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배웠든 못 배웠든지 남녀노소 누구든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리도 창기도 왕도 제사장도 보통사람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막 문을 보면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의 문은 크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실 때 어떤 사람이든지 무엇을 하든 사람이든지 가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옆에 달린 한 강도도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3. 성막 뜰문은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소망을 얻음을 보여줍니다.
문이 동쪽으로 났는데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해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천국문과 지옥문의 차이점입니다. 지옥문은 소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오는 자는 소망을 얻습니다. 영생의 소망 행복의 소망 든든한 소망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 문은 죄를 짊어지고 어둡게 왔다가도 나갈 때는 다 부리고 기쁨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홀메스와 라헤가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했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사망할 때 받는 스트레스를 100으로 볼 때 이혼시 73% 질병 53% 은퇴 43% 성문제 39% 직업전환 시 36% 상사와 알력 23% 임신 30% 이사 20% 그런데 스트레스 수치가 200을 넘으면 병들기 시작하고 300이 넘으면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200 300의 수치를 가지고 나왔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받으면 울고 들어왔지만 웃으면서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멀었기에 그들 심령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1:5-8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했습니다. 이런 심령 상태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의 문을 활짝 여신 것처럼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4. 이 문은 아름다운 4가지 색깔의 문입니다.
16절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청색은 생명의 색깔로 생명이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가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교훈입니다. 자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깔로 나의 왕 되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오면 그 방황은 끝납니다.
홍색은 피의 색으로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에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도 이 문으로 들어와 예수 믿으면 다 용서 받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늘게 꼰 베실은 흰색으로 무죄하시고 거룩하신 에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심령의 거룩함을 입혀주시고 변화되게 하십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뜰문에 돈 달아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하면서 먼저 우리는 영적인 은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추구하면 돈도 은혜도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으면 영육 간에 채우심을 받게 됩니다. 이 뜰문에만 들어오면 이러한 복을 받는다는 것이 뜰문의 문양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진실로 내가 바로 되는 신령한 신앙에 관심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성막의 뜰문은 문턱이 없습니다.
즉 누구든지 들어가기 쉽습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니 쉬운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을 우리 주님께서 다 이루어놓으시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은혜를 믿고 누리면 됩니다.
옛날 은행은 문턱이 높아서 아무나 돈을 빌려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은행은 웬만한 사람에게나 돈을 가져다가 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와 은혜 받는 문은 이보다 그 문턱이 낮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습니다. 문턱이 있다면 거지 나사로가 어찌 구언을 받았겠습니까? 문턱이 있다면 세리 마태 삭개오, 귀신들린 죄 많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문턱이 있다면 저부터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문제요 우리 관념의 문제입니다. 안 된다 못 한다 어렵다 난 불행하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진나라가 6국을 통일했는데 그 일을 한 공신 중에 상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앙은 백성들의 신뢰를 받아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문 곁에 석자 나무를 심고 거기 방을 붙였습니다. “이 나무를 북문 앞에 옮겨 심는 자는 황금 10근을 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또 옮겨 심어도 주지 않을 줄 알고 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앙은 다시 10근에서 50근으로 올리고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거금을 준다니까 비웃기만 하고 옮겨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장난 삼아 나무를 옮겼는데 상앙은 그에게 정말 금 50근을 주었습니다. 그 소문은 온 나라에 퍼졌고 그 후부터 사람들은 상앙이 무슨 말을 해도 믿었다고 합니다. 사람도 그렇거니와 우리 하나님을 왜 못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모든 은혜를 믿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막의 뜰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귀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맙시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오면 구원을 받습니다. 소망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귀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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