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울타리
출27:9-19
이 시간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은 [성막의 울타리]입니다. 성막 울타리에 관해서 잠시 설명하면 크기가 가로 50규빗 세로 100규빗입니다. 1규빗을 약 50cm로 본다면 가로 25m 세로 50m입니다. 한국에서 늘 사용하는 평수로 치면 378평입니다. 울타리의 주재료는 흰세마포입니다. 이 세마포 울타리를 치기 위해 기둥이 모두 60개입니다. 기둥과 받침의 재료는 놋입니다. 그리고 울타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갈고리나 가름대는 모두가 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울타리가 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이 울타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견고한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10절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받침만이 아니라 기둥도 놋입니다. 놋은 성경에서 십자가 사랑을 뜻합니다. 놋이 나오면 대부분 예수님의 고난이나 심판에 관계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심판을 받으사 고난 받으신 장소입니다. 그런데 놋으로 된 기둥과 그 받침은 십자가 은혜의 견고성을 시사합니다.
즉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그 효력에 있어서 결코 폐해질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관하여 히5:9에 “영원한 구원”이라 했고, 히10:12에는 “영원한 제사”라 했으며, 히10:14에는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하셨고, 히9:12에는 “영원한 속죄”라 했으며, 요이1:2에는 “영원히 함께 할 진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울타리 신앙의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은 영원히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둥이 60개입니다. 60은 사람의 수 6에 완전 구비수 10을 곱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울타리에 오도록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65:4에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했습니다.
2. 이 울타리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9절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여기 세마포는 백색으로 성결을 뜻합니다. 그래서 세마포 옷을 입는다는 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 세마포 높이가 5규빗입니다. 5규빗이면 2.5m입니다. 이 정도의 높이면 일반적으로 사람의 키보다 높아서 너머를 볼 수 없는 높이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 2m 40여 cm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울타리 높이라면 아무도 넘 볼 수 없는 높이입니다. 성전의 울타리는 아주 낮지만 성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합니까? 예수 안에 있으면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교훈입니다. 세속을 이깁니다. 정죄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야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겨 주시고 또 성령으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을 시사하기 위해서 길이가 100규빗입니다. 100은 온전 구비수 10을 제곱한 수입니다. 그러니까 온전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히10:14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하셨고, 고후7:1에도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했습니다.
3. 이 울타리에서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심을 봅니다.
16절 “뜰 문을 위하여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이 문은 오직 하나인 문입니다. 뜰의 동쪽에 한 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만이 죄인의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고 요14:6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종교는 다 같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어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 말고 다 같을 수 있습니까? 세상 어떤 종교를 보아도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같은 분이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성령 말고 세상 어떤 신이 참 신입니까? 세상 신을 받았다 하면 모두 귀신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인 문에서 하나님의 유일성과 구원의 유일성을 봅니다.
4. 이 울타리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여러 은혜를 봅니다.
그 은혜는 먼저 보호의 은혜입니다.
이 울타리는 사막의 폭풍에서 보호합니다. 계11:1-2에 “성전의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어 마흔 두 달간 짓밟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보호가 있습니다.
다음은 안전의 은혜입니다.
시91:10에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장막에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막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계21:3-4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했습니다.
그리고 소유의 은혜입니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밖에 있으면 마귀의 것입니다. 혹은 공급의 은혜입니다. 혹은 구별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울타리의 안과 밖은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하는 큰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느냐 아니 믿느냐는 것은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율법을 해석하면서 수많은 울타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라는 율법이 248개, 하지 말라는 율법이 365개, 도합 613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율법에 다른 조항을 붙여 수천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라 하면 율법을 연상시키지만 성막의 울타리는 그런 울타리가 아니라 은혜의 울타리입니다.
5. 그럼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를 은으로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둥 위 끝부분에 갈고리가 양편으로 두 개씩 있는데 그 기능은 거기에다 세마포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노끈으로 양편 고리에 걸어 말뚝을 매어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름대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고정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갈고리와 가름대를 모두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울타리를 이편으로나 저편으로나 기울어지지 않게 튼튼히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요? 은이란 본래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하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서 은 갈고리는 하나님의 붙드심의 은혜와 섭리적 사랑인 징계요, 가름대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지체를 통해서 주시는 여러 신령한 직분과 은사들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있을 때 우리 신앙은 견고해집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기에 우리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도 역사해 주시고 교회를 통하여도 순탄한 영적생활을 하게 해 주십니다. 교회는 엘림의 오아시스와도 같이 광야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최고의 고통은 안정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입니다. 은퇴하신 목사들의 고통은 평신도들의 고통보다 더 큽니다. 이 분들이 교회에서 존재해도 불편하지 않는 의식적 풍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계속하여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6. 19절에 놋 말뚝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울타리를 견고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놋은 고난의 사랑이요, 말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귀하지만 우리 성도들의 신앙을 가장 견고하게 해 주는 말씀은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사랑의 말씀을 마음 깊이 둘 때 그 믿음은 영원히 견고해집니다.
어릴 때는 축복의 말씀도 성장의 좋은 촉진제이지만 더 자란 성도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동하는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좌우편만 노리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발아래서 고난의 말씀을 들었던 베다니 마리아의 차이입니다. 이 주님의 고난을 깨닫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신앙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박해를 피해 도망할 때 예수님게서 십자가를 지시는 환상을 보고 다시 가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막의 울타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보여줍니다. 또 거룩하게 하심과 오직 예수님만이 구언이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에수님 잘 믿고 큰 은혜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출27:9-19
이 시간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은 [성막의 울타리]입니다. 성막 울타리에 관해서 잠시 설명하면 크기가 가로 50규빗 세로 100규빗입니다. 1규빗을 약 50cm로 본다면 가로 25m 세로 50m입니다. 한국에서 늘 사용하는 평수로 치면 378평입니다. 울타리의 주재료는 흰세마포입니다. 이 세마포 울타리를 치기 위해 기둥이 모두 60개입니다. 기둥과 받침의 재료는 놋입니다. 그리고 울타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갈고리나 가름대는 모두가 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울타리가 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이 울타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견고한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10절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받침만이 아니라 기둥도 놋입니다. 놋은 성경에서 십자가 사랑을 뜻합니다. 놋이 나오면 대부분 예수님의 고난이나 심판에 관계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심판을 받으사 고난 받으신 장소입니다. 그런데 놋으로 된 기둥과 그 받침은 십자가 은혜의 견고성을 시사합니다.
즉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그 효력에 있어서 결코 폐해질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관하여 히5:9에 “영원한 구원”이라 했고, 히10:12에는 “영원한 제사”라 했으며, 히10:14에는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하셨고, 히9:12에는 “영원한 속죄”라 했으며, 요이1:2에는 “영원히 함께 할 진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예수님의 울타리 신앙의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은 영원히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둥이 60개입니다. 60은 사람의 수 6에 완전 구비수 10을 곱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울타리에 오도록 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65:4에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했습니다.
2. 이 울타리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9절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여기 세마포는 백색으로 성결을 뜻합니다. 그래서 세마포 옷을 입는다는 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이 세마포 높이가 5규빗입니다. 5규빗이면 2.5m입니다. 이 정도의 높이면 일반적으로 사람의 키보다 높아서 너머를 볼 수 없는 높이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 2m 40여 cm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울타리 높이라면 아무도 넘 볼 수 없는 높이입니다. 성전의 울타리는 아주 낮지만 성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교훈합니까? 예수 안에 있으면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교훈입니다. 세속을 이깁니다. 정죄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야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겨 주시고 또 성령으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을 시사하기 위해서 길이가 100규빗입니다. 100은 온전 구비수 10을 제곱한 수입니다. 그러니까 온전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히10:14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하셨고, 고후7:1에도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했습니다.
3. 이 울타리에서 오직 예수만이 구원이심을 봅니다.
16절 “뜰 문을 위하여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이 문은 오직 하나인 문입니다. 뜰의 동쪽에 한 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만이 죄인의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고 요14:6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종교는 다 같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어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 말고 다 같을 수 있습니까? 세상 어떤 종교를 보아도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같은 분이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성령 말고 세상 어떤 신이 참 신입니까? 세상 신을 받았다 하면 모두 귀신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인 문에서 하나님의 유일성과 구원의 유일성을 봅니다.
4. 이 울타리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여러 은혜를 봅니다.
그 은혜는 먼저 보호의 은혜입니다.
이 울타리는 사막의 폭풍에서 보호합니다. 계11:1-2에 “성전의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어 마흔 두 달간 짓밟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보호가 있습니다.
다음은 안전의 은혜입니다.
시91:10에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장막에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막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계21:3-4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했습니다.
그리고 소유의 은혜입니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밖에 있으면 마귀의 것입니다. 혹은 공급의 은혜입니다. 혹은 구별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울타리의 안과 밖은 천국과 지옥을 판가름하는 큰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느냐 아니 믿느냐는 것은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 율법을 해석하면서 수많은 울타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라는 율법이 248개, 하지 말라는 율법이 365개, 도합 613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율법에 다른 조항을 붙여 수천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라 하면 율법을 연상시키지만 성막의 울타리는 그런 울타리가 아니라 은혜의 울타리입니다.
5. 그럼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를 은으로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둥 위 끝부분에 갈고리가 양편으로 두 개씩 있는데 그 기능은 거기에다 세마포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노끈으로 양편 고리에 걸어 말뚝을 매어 어떤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름대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고정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갈고리와 가름대를 모두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울타리를 이편으로나 저편으로나 기울어지지 않게 튼튼히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요? 은이란 본래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하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서 은 갈고리는 하나님의 붙드심의 은혜와 섭리적 사랑인 징계요, 가름대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지체를 통해서 주시는 여러 신령한 직분과 은사들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있을 때 우리 신앙은 견고해집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붙드시기에 우리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도 역사해 주시고 교회를 통하여도 순탄한 영적생활을 하게 해 주십니다. 교회는 엘림의 오아시스와도 같이 광야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최고의 고통은 안정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입니다. 은퇴하신 목사들의 고통은 평신도들의 고통보다 더 큽니다. 이 분들이 교회에서 존재해도 불편하지 않는 의식적 풍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계속하여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6. 19절에 놋 말뚝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울타리를 견고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놋은 고난의 사랑이요, 말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귀하지만 우리 성도들의 신앙을 가장 견고하게 해 주는 말씀은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사랑의 말씀을 마음 깊이 둘 때 그 믿음은 영원히 견고해집니다.
어릴 때는 축복의 말씀도 성장의 좋은 촉진제이지만 더 자란 성도에게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동하는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좌우편만 노리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발아래서 고난의 말씀을 들었던 베다니 마리아의 차이입니다. 이 주님의 고난을 깨닫는 마음이 있을 때 그 신앙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박해를 피해 도망할 때 예수님게서 십자가를 지시는 환상을 보고 다시 가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막의 울타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보여줍니다. 또 거룩하게 하심과 오직 예수님만이 구언이심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에수님 잘 믿고 큰 은혜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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