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덮개 2
출26:1-14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막의 덮개”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드립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막의 덮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주보에 소개 되어 있듯이 천연색 세마포 덮개는 죽으셨으나 다시 다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염소털로 짠 덮개는 우리를 위해 낮게 오셔서 버림 받은 예수님으로서 우리의 질고와 저주까지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붉은 수양의 가죽 덮개는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자범죄까지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해달가죽의 덮개는 시험을 이기시는 예수님으로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됩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전달 됩니다.
4절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성막의 제 1, 2덮개는 길게 두 쪽으로 만들어 지붕에서 갈고리로 연결했습니다. 그 때 갈고리를 끼울 양 말폭 가에 뚫은 구멍이 바로 고입니다. 그런데 이 고의 색깔이 청색입니다. 청색은 생명의 색깔입니다. 이 청색 고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덮개의 고를 청색으로 했을까요?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가장 중요한 생명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구멍을 뚫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두 쪽으로 하여 서로 고가 짝이 되어 마주 보게 했습니까? 신구약의 말씀을 잘 깨달아 확실한 믿음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약만 가지고도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결론을 구약에 적용함을 통해서 신앙생활하는 법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을 통한 구체적인 설교가 그 예입니다.
이 고를 통해 보여주는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복음으로 준비되어 있어도 우리가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히4:2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잘 붙들어 꿰어 메야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 네 종류의 사랑 모두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믿고 영생을 얻으며, 우리의 질고와 저주까지도 지신 그 은혜를 믿고 자유함을 받고,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 사랑을 받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혜가 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벧전1:9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이 믿음은 은혜로 와지는 것이니 잘 믿기 위해서 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덮개의 갈고리는 금과 놋의 두 종류 갈고리로 되어 잇습니다. 세마포 덮개는 6절에 나와 있듯 금 갈고리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덮는 염소털 덮개는 11절에 나와 있듯 놋 갈고리입니다. 이 금과 놋의 갈고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은혜입니다. 이 금은 신성의 상징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이요, 놋은 고난과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니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육신의 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이 갈고리를 잘 걸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곧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고백 따라 영생이냐 영사냐가 결정됩니다.
마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렇게 구원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요일3:23-24에도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금과 놋의 두 갈고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이 갈고리를 채웠느냐에 따라 구원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이단 분별법도 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라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예요. 하나라도 부인하면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갈고리를 잘 걸으시기 바랍니다. 잘못 믿으면 영생이 없어요. 이단이란 지엽적인 문제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와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이단이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물론 나와 다르다고 아무나 이단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렇게 성경은 우리 신앙을 정확하게 진단해 주고 어떻게 믿을 것인가 가르쳐 줍니다.
3.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6절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11절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
이 놋과 금 갈고리는 무엇일가요? 이미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갈고리도 결국은 예수님이예요. 그렇다면 50개씩의 갈고리는 무엇일까요?
성막 학자인 솔타우는 하나님께 왜 하필이면 갈고리가 50인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에 예수님을 의미하는 단어가 50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소개하면 강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 여호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독생자, 첫 태생, 말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 영생, 처음과 나중, 임마누엘, 예수, 메시야, 주, 영광의 주, 생명의 왕, 평강의 왕, 영원한 아버지, 창조자, 확증자, 하나님의 거룩한 자, 동일하신 자, 놀라움, 상담자, 사람의 아들, 여인의 씨, 부활, 영의 소생, 빛, 진리, 의, 길, 의의 태양, 새벽별, 아멘, 만왕의 왕, 만물의 상속자, 다윗의 뿌리, 다윗의 자손, 목자, 하나님의 어린양, 반석, 진리의 증인, 보냄을 받은 자, 구속자 등입니다. 즉 이런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든든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솔타우의 말대로 이 50개의 이름은 우리에게 귀한 은혜가 됨은 사실입니다.
성경 해석이란 솔타우처럼 신비한 방법으로도 아는 경우가 있지만 성막은 충분한 비유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충분히 성경 안에서 풀 수 있습니다. 즉 50 갈고리라 해서 꼭 50개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기보다 50이 주는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50은 오순입니다.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강림과 깊은 관계가 있는 수입니다. 그리고 50개 50개 모두 100개의 의미도 보아야 합니다. 제 3, 4덮개에 대하여는 그 수효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계시하신 데까지만 가야 하기 때문에 제 1,2덮개의 갈고리만 가지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즉 50+50=100개는 온전 구비수 10의 제곱이니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령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솔타우가 말한 예수님의 은혜로운 이름과 같은 해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은혜로운 이름은 결국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부어집니다. 그 때 회개하여 예수 믿게 되고 그 때 회개하여 참 신앙을 갖게 되며 저주도 물러가고 삶 자체가 변화하며 임재의식로 오는 참 행복감을 누리게 됩니다.
즉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 완전하신 이름이 있기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구비된 사람으로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1:4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히12:2에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도 주시고 체험도 주시고 훈련도 주시고 징계도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님에 대한 은혜의 갈고리가 잘 채워져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갈고리에 걸리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안 믿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갈고리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귀한 축복의 부르심 앞에 더 이상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 은혜의 갈고리가 있었기에 그 많은 것을 알고 체험하고도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갈고리가 있었기에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하나 목숨 걸고 로마의 황제 앞에 서기 위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갈고리야 말로 복 중에 복입니다. 우리는 이 갈고리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준비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26:1-14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막의 덮개”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드립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막의 덮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주보에 소개 되어 있듯이 천연색 세마포 덮개는 죽으셨으나 다시 다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염소털로 짠 덮개는 우리를 위해 낮게 오셔서 버림 받은 예수님으로서 우리의 질고와 저주까지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붉은 수양의 가죽 덮개는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자범죄까지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해달가죽의 덮개는 시험을 이기시는 예수님으로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됩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전달 됩니다.
4절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성막의 제 1, 2덮개는 길게 두 쪽으로 만들어 지붕에서 갈고리로 연결했습니다. 그 때 갈고리를 끼울 양 말폭 가에 뚫은 구멍이 바로 고입니다. 그런데 이 고의 색깔이 청색입니다. 청색은 생명의 색깔입니다. 이 청색 고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덮개의 고를 청색으로 했을까요?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가장 중요한 생명의 말씀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구멍을 뚫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두 쪽으로 하여 서로 고가 짝이 되어 마주 보게 했습니까? 신구약의 말씀을 잘 깨달아 확실한 믿음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약만 가지고도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결론을 구약에 적용함을 통해서 신앙생활하는 법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을 통한 구체적인 설교가 그 예입니다.
이 고를 통해 보여주는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복음으로 준비되어 있어도 우리가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히4:2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잘 붙들어 꿰어 메야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 네 종류의 사랑 모두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믿고 영생을 얻으며, 우리의 질고와 저주까지도 지신 그 은혜를 믿고 자유함을 받고,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 사랑을 받아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혜가 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벧전1:9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이 믿음은 은혜로 와지는 것이니 잘 믿기 위해서 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덮개의 갈고리는 금과 놋의 두 종류 갈고리로 되어 잇습니다. 세마포 덮개는 6절에 나와 있듯 금 갈고리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덮는 염소털 덮개는 11절에 나와 있듯 놋 갈고리입니다. 이 금과 놋의 갈고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은혜입니다. 이 금은 신성의 상징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이요, 놋은 고난과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니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육신의 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이 갈고리를 잘 걸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곧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고백 따라 영생이냐 영사냐가 결정됩니다.
마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렇게 구원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요일3:23-24에도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금과 놋의 두 갈고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이 갈고리를 채웠느냐에 따라 구원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이단 분별법도 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도 적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라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예요. 하나라도 부인하면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갈고리를 잘 걸으시기 바랍니다. 잘못 믿으면 영생이 없어요. 이단이란 지엽적인 문제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와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이단이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물론 나와 다르다고 아무나 이단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렇게 성경은 우리 신앙을 정확하게 진단해 주고 어떻게 믿을 것인가 가르쳐 줍니다.
3.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6절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11절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
이 놋과 금 갈고리는 무엇일가요? 이미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갈고리도 결국은 예수님이예요. 그렇다면 50개씩의 갈고리는 무엇일까요?
성막 학자인 솔타우는 하나님께 왜 하필이면 갈고리가 50인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에 예수님을 의미하는 단어가 50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소개하면 강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 여호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의 독생자, 첫 태생, 말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 영생, 처음과 나중, 임마누엘, 예수, 메시야, 주, 영광의 주, 생명의 왕, 평강의 왕, 영원한 아버지, 창조자, 확증자, 하나님의 거룩한 자, 동일하신 자, 놀라움, 상담자, 사람의 아들, 여인의 씨, 부활, 영의 소생, 빛, 진리, 의, 길, 의의 태양, 새벽별, 아멘, 만왕의 왕, 만물의 상속자, 다윗의 뿌리, 다윗의 자손, 목자, 하나님의 어린양, 반석, 진리의 증인, 보냄을 받은 자, 구속자 등입니다. 즉 이런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든든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솔타우의 말대로 이 50개의 이름은 우리에게 귀한 은혜가 됨은 사실입니다.
성경 해석이란 솔타우처럼 신비한 방법으로도 아는 경우가 있지만 성막은 충분한 비유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충분히 성경 안에서 풀 수 있습니다. 즉 50 갈고리라 해서 꼭 50개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기보다 50이 주는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50은 오순입니다.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강림과 깊은 관계가 있는 수입니다. 그리고 50개 50개 모두 100개의 의미도 보아야 합니다. 제 3, 4덮개에 대하여는 그 수효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계시하신 데까지만 가야 하기 때문에 제 1,2덮개의 갈고리만 가지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즉 50+50=100개는 온전 구비수 10의 제곱이니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령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솔타우가 말한 예수님의 은혜로운 이름과 같은 해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은혜로운 이름은 결국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부어집니다. 그 때 회개하여 예수 믿게 되고 그 때 회개하여 참 신앙을 갖게 되며 저주도 물러가고 삶 자체가 변화하며 임재의식로 오는 참 행복감을 누리게 됩니다.
즉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 완전하신 이름이 있기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구비된 사람으로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1:4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히12:2에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도 주시고 체험도 주시고 훈련도 주시고 징계도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님에 대한 은혜의 갈고리가 잘 채워져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갈고리에 걸리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안 믿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갈고리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귀한 축복의 부르심 앞에 더 이상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 은혜의 갈고리가 있었기에 그 많은 것을 알고 체험하고도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갈고리가 있었기에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하나 목숨 걸고 로마의 황제 앞에 서기 위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께 붙들리는 갈고리야 말로 복 중에 복입니다. 우리는 이 갈고리에 걸려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준비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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