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大韓-敎長老會(合同),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설립연도 : 1912년(1959년 통합 측과 분리)
소재지 : 서울 강남구 대치3동 1007-3
설립목적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주요활동 : 복음 전파, 해외 선교, 교역자 약성
규모 : 노회 86개, 교회 6,795개, 교역자 1만 8038명, 평신도 230만 명, 선교사 1,076명(200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는 1901년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를 모체로 1912년 창립되었는데, 창립 당시의 명칭은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였다. 1949년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꾼 뒤,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에큐머니즘 신학에 대한 이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분리되면서 WCC를 영구히 탈퇴하였다.
1963년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에 총회를 사회단체로 등록하고, 1965년부터 《기독신보》(지금의 기독신문)를 발행하였다. 1977년 주교교사통신대학을 설립하고, 1982년 총회유지재단 설립 인가를 받은 뒤, 1986년 연건평 2,300평의 총회 회관을 준공하였다.
개혁주의 신학을 근본 이념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교리문답)을 교리의 표준으로 삼는다. 또 장로교 헌법의 정치원리를 가지며, 교회의 성례전적 전통과 권위·질서의 준수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와 함께 예수교장로교단를 대표하는 교단으로, 2002년 현재 전국에 86개의 노회와 6,795개의 교회가 있다. 목사·전도사 등 교역자는 1만 8038명, 평신도는 230만 명이며, 해외 86개국 53개 지부에 1,076명의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그 밖에 총신대학교·총신대학원·신학대학원·교육대학원·선교대학원 등 5개의 직영 총회신학원과 10개의 총회 인준 신학교가 있다. 총회 회관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3동 1007-3번지에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大韓-敎長老會,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설립연도 : 1912년 9월 1일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연지동 135
설립목적 : 장로교회간 협력, 장로교 전파
주요활동 : 선교활동, 신앙교육활동, 사회봉사활동
규모 : 노회 60개, 교회 6,494개, 목사 1만 3409명, 전도사 4,036명
장로교의 대표적 중도교단으로 예장통합측이라고도 한다. 성서를 하느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믿고, 이를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으며, 칼뱅주의에 입각한 장로회헌법과 12신조 및 대소교리문답의 교리를 기본신조로 한다.
1884년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앨런(H.Allen)이 고종의 지시에 따라 광혜원을 운영하고,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소속 로스(J.Ross)가 신약성서를 번역하여《예수셩교젼서》를 출간하면서 장로교 선교가 시작되었다. 1893년 선교사들이 장로회선교공의회를 조직하였고 이것은 1901년 한국교회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로 발전하였다. 1907년 9월 17일 조선예수교장로회 대한로회가 조직되어 독로회(獨老會)라 불리었으며, 같은 해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 7명이 최초의 한국장로교회 목사가 되었다. 1912년 9월 1일 독로회시대를 청산하고 7개 노회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하였으며, 1922년에는 헌법을 제정하여 장로교의 신앙노선과 교리체계를 확립하였다.
1938년 9월 10일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으나, 이에 반대하는 50여 명의 목 사들이 순교하고 평양신학교는 폐쇄당하였다. 1943년 일제의 강압으로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으로 개편된 뒤 1945년 7월 18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 통합되었다. 광복후 1947년 총회를 재건하고 1949년 4월 22일 교단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꾸었다. 1952년 9월 11일 고려신학교측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조직하여 분리해나가고, 1953년 6월 10일 조선신학교측이 대한기독교장로회를 조직하여 분리해나갔다. 1959년 9월 28일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 분리해나갔으며, 그 이후 50개가 넘는 교단이 생겼다.
주요 활동은 ① 선교, ② 총회산하 각 교회의 신앙교육 장려, 총회산하 각 기독교학교의 신앙교육 장려, 교육부 산하 각 연합회 지도 관리, ③ 노회 및 지교회의 사회선교·사회봉사 활동을 위한 지원활동, ④ 사회선교를 위한 인력 발굴, ⑤ 효과적인 구호를 위한 정책개발과 집행, ⑥ 소외된 농어촌교역자 재교육, ⑦ 각노회 농어촌부 활성화, ⑧ 농어촌살리기 운동, ⑨ 군종목사 지원, ⑩ 선교사 파송 및 관리업무 등이다. 기관지로는《기독공보》를 발행한다.
최고의결기관인 총회의 임원은 총회장·부총회장·서기·부서기·회계·부회계·회록서기·부회록서기로 구성되며, 총무단은 총무·사무국장·기획국장·7개부로 구성된다. 산하기구로는 10개 상임부, 10개 위원회, 24개 특별위원회, 4개 재단, 2개 기관, 7개 신학대학교, 19개 자치단체, 18개 국내연합선교기관, 해외선교협력교단, 해외교회연합기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이 있다. 그밖에 노회 60개, 교회 6,494개, 목사 1만 3409명, 전도사 4,036명, 장로 1만 6138명이 있다. 본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5번지에 있다.
감리회 [監理會, Methodist Church]
<<요약>>
1729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하여 시작된 그리스도교 교파.
<<본문>>
옥스퍼드대학교를 중심으로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그리고 G.휘필드 등의 대학생 그룹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은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格式主義者)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및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감옥의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이 모인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집회소에 참석하여 오후 8시 45분경 인도자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로마서(書) 서문을 읽을 때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이 회심의 사건은 존 웨슬리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이 되었고, 감리회의 구원·신앙·성결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원래 존 웨슬리는 고교회파(高敎會派)로서 영국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독자적인 운동을 하였는데, 영국교회에서는 그의 교회 내 설교를 금하였으므로 야외설교의 방법을 택하여 그 운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1744년 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파 신자들을 런던에 모아놓고 전도사업 방침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것이 곧 감리회의 최초의 연회(年會)이다. 이때까지도 존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분리하려는 뜻은 없었고 교회에 속한 채 전도하려 했지만, 1784년 런던 감독에게 미국으로 파견할 선교사를 안수하여 주도록 청하자 감독이 거절하므로 그 자신이 안수를 베풀어 T.코크 박사를 미국의 총감독으로 삼고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안수를 주어 목사로 세우니 이때부터 감리교회는 실제적인 한 교파를 이루게 되었다.
감리회의 발전은 교구제도와 경건한 신앙을 고수하는 데 있었다. 존 웨슬리의 인격·조직력·지도력, 그리고 야외설교·평신도설교 등 꾸준한 복음활동 및 엄격하고 규율적인 생활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1791년 존 웨슬리가 서거하였을 때의 교세는 영국 전역에 확장, 잉글랜드를 본거지로 하였던 감리회 부흥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 이르렀고 미국에서는 휘필드의 주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의 기본단위는 구역이며, 그것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교회로 조직된다. 구역들은 지역적으로 지방회를 조직, 감리사가 피차 협동하여 교회조직과 사업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지방회는 다시 더 큰 집단을 형성하여 연회를 조직하며, 연회는 감독이 관할한다. 그리고 최고기관인 총회가 있다.
감리회 교리는 사도신경 속에 제시된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다. 감리회의 특색은 교리보다도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감리회에는 모든 신도가 각기 행하지 않으면 안될 규율, 곧 규범이 있고, 25개조의 종교강령이 있으며, 이것은 감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감리회 전도방법의 특색은 부흥설교를 통한 전도와 평신도를 통한 개인전도 및 심방전도이다.
감리회의 신앙과 교리는 존 웨슬리가 발표한 25개조의 종교강령과 그의 53개의 ‘표준설교’, 그리고 그가 지은 신약성서 주석에 잘 나타나 있다.
성결교 [聖潔敎, Holiness Church]
<<요약>>
1901년(광무 5) 2월,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OMS) 소속 선교사인 C.E.카우만과 E.A.킬보른(한국명 吉寶倫)에 의해 세워진 프로테스탄트의 교파.
<<본문>>
장로교·감리교와 함께 한국에서는 3대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하나이다. 감리교 목사인 이들 선교사는 일본의 도쿄[東京] 간다구[神田區]에 동양선교회 전도관을 세우고 일본인 목사 나카다[中田]의 후원 아래 동양일원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교육에 힘쓰라는 선교회 본부의 지시도 있었으므로 전도관 1층에 성서학원을 개설, 성경 ·신학 등을 가르쳤다. 한국인 유학생 김상준(金相濬)·정빈(鄭斌) 등이 이 학원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하자 1907년 염곡(鹽谷:현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마련한 것이 한국성결교의 효시이다.
1911년 이명직(李明稙)·이명헌(李明憲) 등 5명이 동경성서학원을 마치고 귀국, 안수를 받고 장로사(長老師:순회목사)가 되어 선교사들의 후원 아래 아현동 고개 위에 새로이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을 열면서 본격적인 목회자 양성과 노방전도(路傍傳道) 등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21년 9월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愈)·재림(再臨)의 사중교리를 내세운 ‘기독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문제로 수백 명의 성직자·신도들이 수난을 겪고, 교단이 강제 해체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1950년대 한국 교계를 휩쓴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문제를 둘러싸고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 현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예수교대한성결교회 및 중도파 등 몇 개파로 나뉘어져 있다.
침례교 [浸禮敎, Baptists]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본문>>
특히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원리(聖書原理)·침례·만인사제(萬人司祭), 각 교회의 독립,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청교도(퓨리턴)의 여러 파 가운데 하나로 생겨났으며, 창시자는 J.스미스(1554∼1612)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교직자로 1608년 국교회의 압박을 피하여 동지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망명했는데, 그 중 T.헬위스와 몇몇 동지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1612년 침례교회를 창설하였다. 아르미니우스파(派)의 입장을 취한 일반침례파와 칼뱅적 입장에 선 특수침례파의 구별이 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크게 퍼져서, 현재 미국 최대의 교파를 이루고, 대소 27개의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는 1890년 캐나다의 M.위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함남 원산(元山)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05년 제1회 총회를 가지면서 보급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총회'와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총회'의 두 그룹이 있었다.
두 그룹은 1959년 '한국침례회연맹'으로 통합하였고, 1969년 재단법인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 유지재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성공회 [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요약>>
영국의 국교회.
구분 : 영국교회
설립연도 : 1534년
소재지 : 영국
설립목적 :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 독립
주요활동 : 종교활동
규모 : 영국의 성공회 및 세계의 성공회
<<본문>>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교회, 영국성공회, 잉글랜드교회, 앵글리컨처치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감독제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교회(Episcopal Church)라는 명 칭을 사용한다.
영국에 처음으로 가톨릭이 전파된 것은 1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596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세(540∼604)가 어거스틴(?∼604)과 수도사 40명을 영국에 파견한 이후 로마가톨릭은 영국교회는 물론 정치적으로 영국을 지배하였으며, 교회법정에서는 국가의 사법권을 대행하였다. 성공회의 개혁은 헨리 8세(1491∼ 1547)와 캐서린 왕비의 결혼무효소송으로 시작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이 소송을 거절하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하여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 을 발표한 데 이어,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하였다.
개혁은 대주교 크랜머에 의해 프로테스탄트적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크랜머는 1549년 성서적 요소를 회복시킨 공동기도서를 만들었다. 1553년 여왕 메리 1세(15 53~ 1558)가 로마가톨릭으로 복귀했으나,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즉위 후 종교개혁의 정착기를 맞이하였다. 1559년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포용하는 기도서를 제정하고 1563년 중용 노선을 추구하는 39개 신조를 발표하여 가톨릭적이며 개혁적인 성공회의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1570년 교황 비오5세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파문하자 성공회는 로마교회와 완전히 갈라섰다.
성공회는 온건한 칼뱅주의로, 성세·성체·고백·혼인·견진·종부·신품성사의 7성사를 행하며, 구약과 신약 66권 외에 외경(外經) 14권을 준정경(準正經)으로 삼고 있다. 신앙의 판단은 성서와 이성, 전통에 의거하며, 다음의 람베드-시카 고 4개 조항을 신앙적 기준으로 삼는다.
① 구약과 신약 66권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이다.
②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은 그리스도신앙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선언이다.
③ 세례와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두 가지 성사다.
④ 역사적 주교직은 교회의 일치를 위한 적절한 처리방법이며,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성직에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계급이 있다. 네 개 이상의 교구가 있으면 관구를 형성할 수 있고, 교구는 많은 전도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도구에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교회가 속해 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북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 니아로 확대되었으며, 대표 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관구와 통공(通共)관계에 있 는 모든 교회를 일컫게 되었다. 세계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 통치의 체제 를 갖지 않으며,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여 캔터베리 대주교 관할 하에 있는 소수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성공회는,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 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구세군 [救世軍, Salvation Army]
<<요약>>
그리스도교 교파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창설한 교파.
구분 : 종교기관
설립연도 : 1865년 7월 2일
소재지 : 영국 런던
설립목적 :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전인적 구원
주요활동 : 복음선교, 예배, 자선 및 사회사업
<<본문>>
1865년 7월 2일 런던에서 당시 감리교(監理敎) 목사이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와 그의 부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가 창시하였다. '그리스도교 전도회(Christian Mission)'라는 명칭으로 서민층을 상대로 동부지역 빈민가 등을 찾아가 노방(路蒡)전도를 한 데서 시작하였다.
그리스도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교리를 가지고 선도와 교육, 가난구제, 기타 자선 및 사회사업을 통해 전인적 구원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1878년 구세군으로 개칭하였다. 조직은 군대식 제도를 모방하고 교회를 국제적인 단일조직으로 하여 부스가 초대 대장이 되었다.
각 군국(軍國)에는 사령관이 있고 지역사령부에는 지역사령관이 있다. 또한 군국마다 각 지방을 관장하는 지방장관이 있으며, 각 지방에는 소속된 영(營)이 있어 담당 사관이 복음선교와 예배, 지역사회 봉사사업을 지도한다. 영문(營門)에는 병사가 있는데, 이들은 구세군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의 죄악과 싸울 것을 다짐하고 병사로서 동참하고 있다.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신구약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으며, 성서만을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으로 믿는다.
② 하느님만을 만물의 창조자요 보존자요 통치자로 믿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③ 하느님 안에 성부·성자·성령의 3위가 있는데, 본질상 동등하며 권능과 영광으로도 동등함을 믿는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는 신·인성(神人性)이 합쳐 있어 예수는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임을 믿는다.
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느님의 진노의 대상의 실존임을 믿는다.
⑥ 예수의 죽음은 만인의 죄를 대속한 은총이므로,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⑦ 구원의 조건은 하느님께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새로 나는 것이다.
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마다 구원의 체험을 갖게 됨을 믿는다.
⑨ 구원 상태의 지속은 순종하는 믿음을 계속 가져야 한다.
⑩ 예수의 재림을 믿으며 신자는 그때까지 성결을 보전하게 됨을 특전으로 믿는다.
⑪ 영원한 생명은 현재적이요 미래적임을 믿으며 육체의 부활, 세상 끝의 총심판,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영원한 행복을 믿는다.
이상 11개 교리에서 신학적으로 하느님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 연구하는 한편, 윤리면에서는 하느님에 관한 일반적 지식[神認識]은 반드시 성서적 지식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하고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제규모의 복음전도와 각종 사회사업을 전개, 세계 80개국 나라에 1만 6000개의 전도센터가 있으며, 3,000여 개의 사회복지단체·기관·학교·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도 1908년 영국에서 파견된 로버트 호가트(Robert Hoggard) 정령(正領)이 이끄는 10여 명의 사관이 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그 교세를 확장하는 한편, 의료선교 및 고아원·양로원·육아원 등을 경영하며, 그밖에도 교육기관을 통해 포교에 힘쓰고 있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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