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1-마6:5-8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본문 : 마6:5-8
◉제목 :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오늘은 동탄성지교회가 첫 번째로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이 구약성경에도 나오지만 현재 우리가 11월 셋째주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청교도들이 기원이 된다.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받아 홀란드로 "순례의 길"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암스텔담과 랑덴에서 얼마동안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다가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자(1558)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청교도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고국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갈 것을 결심하였다.
1620년 9월 29일, 남72명, 여29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호리어스항을 떠났다. 2개월이 넘는 모진 고난의 항해 끝에 1620년 11월9일 메사추세츠 주 케이프카드 만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인디안의 습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첫해 겨울을 보내면서 거의 반수가 괴혈병, 폐렴 등의 질병에 걸려 죽었다. 1621년 2월28일까지 50명이 세상을 떠나고 봄이 오기 전까지 하루에 2,3명씩 죽어갔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개혁의 의지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일념으로 윌리암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의 지도 아래 정착을 시작하여 열심히 개척하였다.
<청교도들의 일곱가지 감사>
*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를 주심에 감사.
*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
*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
*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
*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됨을 감사.
*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주셔서 감사.
* 일곱째,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
1621년 3월 이후에는 인디안들과 청교도들 사이에 분쟁도 있었으나, 상호 협력 및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후 인디안들로부터 옥수수와 밀, 경작 법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청교도들이 양식이 부족해서 일 주일에 3일씩 금식을 하며 어렵게 지낼 때는 인디안들이 짐승들을 잡아다 주기도 해서 연명해 나갈 수가 있었다. 가을이 되어 그들이 심은 옥수수와 보리, 밀 등이 풍작을 이루었고 가을추수를 하였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청교도들은 지도자 브래드포드는 인디안들과 함께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축하하기로 하고 인디안 추장 마사소이드를 초청했다. 마사소이드 추장은 90명의 용사를 데리고 참석하였다. 이날 청교도들은 들새를 잡으러 나가서 많은 칠면조를 잡았고, 인디안들은 사냥을 해서 다섯마리의 사슴을 잡았다. 그 이유로 추수감사에는 칠면조 요리를 먹는 전통이 생겼다. 청교도인들은 인디안 들과 아울러 모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였다. 청교도들이 바라던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청교도들이 감사절을 지킨 것은 넉넉하고 형통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1년동안 절반의 사람들이 죽었고, 굶주림과 수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스소스톰은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들어가면 형통한다.”고 했다. 복받길 원하면 감사하자. 형통하길 원하면 감사하자. 있어서,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한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동탄성지교회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교회가 세워지고 첫 번째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워진지 7주만에 드리는 감사절이다.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를 베푸셨다. 7주 동안 하나님은 때에 맞게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은혜를 주셨다. 수요예배를 가족5명이 드려왔는데, 찬규가 아파서 교회 못가겠단다. 한 명이 아쉬운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날 찬규 대신에 한 분을 보내주셨다. 지난 주간에도 찬규가 곤하게 잠들어 두고 왔는데 가족 4명을 보내주셨다. 사람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채워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지난 주에는 전도대원 8명이 와서 함께 전도를 나갔는데, 돌아와서 보고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예비하신 많은 영혼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미리 감사하는 자가 되자. 우린 어차피 감사할 거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기로 했으니까 미리 감사해 버리자.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미리 감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 오늘부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
우리의 신앙은 기도로 성장한다.
기도라는 생명줄(탯줄)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6장 1~4절의 말씀인 구제는 이웃에게 향하는 신앙의 의라 한다면, 기도는 하나님에게 향하는 모습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 구제의 대상은 내 곁의 이웃이고,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하기에 문제가 된다. 구제는 안하고 기도만 한다.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또 반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기도하는 자신과 옆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기에 문제다. 기도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봐. 성도들이 아멘, 아멘 하쟎아. 난 역시 기도 잘 해. 나처럼 기도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오늘 말씀은 기도 안 한다고 혼내키는 말씀이 아니다. 기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분들이 있는데, 제발 “나도 혼 좀 나봐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질문해 볼 수 있길 소원한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잘못된 기도를 하는 두 그룹의 사람들을 보자.
1)외식하는 바리새인들...기도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유대인들은 쉐마를 아침, 저녁으로 암송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로 시작되는 신명기 6장 4~9절을 말한다.
시간이 되면 어디에서나 (집, 거리, 일터, 회당) 멈추어서 그것을 암송했다.
그러다보니 관습을 따라 중얼거리게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맛있는 고단백 식품일수록 부패하면 냄새가 지독하다. 우유, 계란, 고기...
그래서 그런지 기도가 형식으로 치우치면 하나님께는 악취가 된다.
이사야 1장에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가증히 여기는 것이며, 내가 견디지 못하겠다”(1:13)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40일 금식기도를 몇 번 했느니, 내가 산기도를 얼마나 다녔느니 하면서 자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1대1의 만남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기도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것이 전혀 아니다.
눅18:10-13에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를 들면서
당시에 얼마나 외식적으로 기도했는지 적나라하게 지적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경건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를 잘 한다고 거룩한 사람도 아니고
살인하고 강도짓 했다고 죄인의 대표라고 정죄해서도 안된다는 거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죄를 지을 수 있고, 구제와 봉사 하면서도 죄를 짓는다.
그러니까 기도하면서 외식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죄를 짓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팔을 펼쳐들고, 손바닥을 위로 하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하루에 9시, 12시, 오후3시, 이렇게 세 번씩 시간을 정해 기도했다.
이런 습관을 만드는 것이 무척 어렵다. 나는 이렇게 하라고 해도 힘들 것 같다.
좋은 것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에 아동부 어린이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설교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랬는데 설교하다가 보니 두 친구가 이 좁은 의자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는거다. 순간 힘들겠다 싶어 편하게 앉으라고 했지만, 그러면서 “참 예쁘다”“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우리가 너무 타락했다. 너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의 태도들이 많다. 무엇을 하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는 수 밖에 없다.
전해내려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 한다.
관습과 상식을 깨는 행동을 한 고디바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고디바(Lady Godiva)는 11세기경, 코벤트리 영주의 부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행동을 했길래 이런 말이 나왔을까?
영국 런던에서 차로 70분 거리에 있는 코벤트리(Coventry)는 2차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을 받아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새로 지은 성당 앞 광장에 이런 동상이 서 있다.
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는 여인의 모습인데 애마 부인이 아니라 코벤트리 영주의 부인이었던 고디바이다.
그녀는 백성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가 그들에게 부과된 과중한 세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세금을 대폭 감면해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욕심 많던 영주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백성들을 위해 귀부인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남편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영주는 아내의 요구를 물리칠 묘안을 짜내다가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렸다. 아내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조건을 내세우면 그냥 포기해 버릴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탄채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영주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듯 부인을 바라았지만 고디바 부인은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고디바 부인은 다음 날 아침 시종들의 눈물 어린 배웅을 받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 위에 올라타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고디바 부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구경했을까? 천만의 말씀.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영주 부인을 위해 집의 창문을 걸어 잠구고 커튼을 친 다음 그 누구도 내다보지 않았으며 그 날의 일을 모두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이때 레이디 고디바의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전해내려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정치 행동을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고 하는 것은 관습과 상식을 깨기 위해서는 고디바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해 된 형식들, 위선적인 모습들을 깨닫고 돌이키기 위해서는 용기없이는 안된다. 순수한 모습으로 기도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이런 용기가 필요하다.
2)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
왜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가? 질보다 양, 물량적인 신앙행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기복적인 신앙이 특히 그렇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왕상 18:26에 보면 엘리야와 바알선지자의 대결이 나오는데 바알의 선지자들은 반나절을 이렇게 부르짖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행19:24에는 에베소의 폭도들이 두 시간을 소리쳤다. “크다 에베소 사람들의 아데미여”
중언부언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태도이다.
내가 원하는 목적만 성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를때 가능한 모든 명칭과 형용사를 동원하여 기도했다.
어떤 유대인은 무려 16개의 형용사를 붙여 기도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거룩하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도 간혹 이렇게 기도하곤 한다. 특별한 의미없는 형용사로 하나님을 부른다.
또 그들은 쉐모네 에스레라는 18개의 기도문으로 기도했는데 매우 아름답다.
다섯 번째 기도를 보면 이런 내용이다.
“오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율법에 돌아가게 하소서.
오 왕이시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참된 회개로 당신께 이끄소서. 오 주여 찬양을 받으소서.
당신은 우리의 회개를 열납하시나이다.”
참,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하지만 이 쉐모네 에스레를 반복하는 것은 미신적인 주문에 불과하게 되었다. 반복하다 보면 의미없는 단어의 나열이 된다.
주기도문도 마찬가지이다.
우르과이의 작은 성당에 이런 기도문이 붙어 있다고 한다.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우리가 반복하는 모든 것은 형식화 될 수 있다.
매주 드리는 예배도, 기도도, 훈련도! 중독처럼 끌려가게 된다.
타성에 젖지 않도록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형식화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종교행위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번 주에 이 말씀을 생각하며 모든지 천천히 해보자.
식사기도로 늘 주문처럼 나온다. 고개 숙이면 기도가 줄줄 나온다. 이게 위험한 거다.
천천히,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또박 또박 한마디씩 기도해 보자.
주기도문도 천천히 생각하며 진실한 기도로 드려보자.
천천히 기도하면 상당히 많이 고칠 수 있다.
기도의 사람이 불린 사무엘 차드윅(Samuel Chadwick)은 매일 아침 6시경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조반 먹기 전에 밀실인 조그마한 방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개인적인 경건의 예배를 계속 가졌기 때문에 공중기도에도 능했다. 그는 기도할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역사하시기를 분명하게 구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좀더 기도를 많이 했더라면, 비록 내가 일을 좀더 적게 할지라도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좀더 나은 기도를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기도의 사람이 불린 차드윅도 좀 더 진실한 기도를 드리고 싶은 열망을 가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보자.
6절에 보면 외식하지 않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다.
골방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만 있는 것을 말한다. 한적한 곳이다.
8절에 보면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라 참된 기도를 하려면 네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째재한 분이 아니시다. 무리하게 조르고 떼를 써야, 성가시게 굴어야 들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이상을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시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아신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다 못해도 주님 사랑해요
주님 찬양해요 주님 찬양해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다 못해도 주님 찬양해요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다 못해도 주님 감사해요
<2008년 11월 설교계획>
주 |
절기/말씀본문/행사 |
1주 |
오순절후 스물다섯번째주일 마28:19-20 / 훈련 |
2주 |
오순절후 스물여섯번째주일 마28:19-20 / 전도 |
3주 |
추수감사주일 마6:5-8 / 주기도1 |
4주 |
오순절후 스물여덟번째주일 마6:9 / 주기도2 |
5주 |
대강절 첫번째주일 마6:10 / 주기도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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