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19-24)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십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외식의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종교 의식입니다. 기도의 외식, 구제의 외식, 금식의 외식 등입니다. 둘째는 물질 생활의 문제입니다. 돈과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라는 교훈입니다. 잘못된 종교 의식이 신앙에 해롭듯이 잘못된 물질 생활도 신앙에 해를 끼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물질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재물의 보관 문제, 둘째는 재물과 마음의 관계, 셋째는 재물의 권세와 영향력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첫 번째 주제는 재물을 보관하는 문제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19-20절) 우선 보물이란 뭘까요? 헬라어로는 qhsaurov"(데사우로스)입니다. 뜻은“저축, 부, 저장소, 보관함” 등으로써, 보물이라는 의미보다는 값진 것을 보관하는 장소나, 혹은 보관하는 것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말하는 보물은 일반적인 재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됐든지, 부동산이 됐든지, 현금이 됐든지, 가장 큰 문제는 보관 즉, 가치의 보존 문제입니다. 주님은 먼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땅이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어디를 가든지 재물을 완벽하게 보관할 곳은 없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좀과 동록이 해하기 때문입니다. 좀과 동록은 자연적 손실을 의미합니다. 좀은 옷을 갉아 먹는 벌레입니다. 동록은 금속을 腐蝕시킵니다. 좀과 동록을 말씀한 것은 예수님 당시 가치 있는 물건이 의복이나, 동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재물이든지 세월이 지나면 낡아지고 해집니다. 박물관에 가면 옛날 물건들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지요? 유물의 가치는 역사성에 있습니다. 오래 보관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돌이든지, 쇠붙이든지 값이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물건들도 결국에는 다 사라지고 말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재화를 돈으로 은행에 저축해 둡니다. 그러면 은행은 안전할까요? 상대적으로 다소 안전한 것 같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은행도 기업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폐의 가치는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하락합니다. 최근 어떤 신문에 보니까 연간 1억 원을 은행에 맡겨 두면 실질 가치는 연간 97만 원씩 감소된다고 합니다. 은행 이자가 물가 상승률을 따르지 못하는 겁니다. 독일의 경제 공황 시절에 웃지 못 할 얘기가 있습니다. 돈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고기 한 근을 사려면 돈을 수레로 가득 싣고 가야 했습니다. 한 번은 강도가 나타나서 길가는 부인의 돈이 가득 담긴 들통을 뺏었습니다. 그리고는 돈을 쏟아 버리고 들통만 들고 도망쳤습니다. 요즘 돈 가치가 떨어지니까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은 산업 활동에 활용할 때에만 가치가 나타나는 것이지 소유한 것만으로는 생산성이 전혀 없습니다. 잘못하면 오히려 소유한 것만으로도 손해를 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도적질 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위적인 손실입니다. 재산이 많으면 가져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강도, 사기꾼, 도적놈, 날치기, 퍽치기...부당하게 가져가려는 놈들이 많습니다. 그 뿐입니까? 합법적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세금 많이 내야지요. 기부금 많이 내야지요. 자식들에게 나눠 줘야지요. 재물이란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간사한 사람에게 빼앗기고, 권력자에게 빼앗기고, 잘못 투자해서 빼앗기도, 이리저리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재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전5:13) 땅에는 재물을 완전하게 보관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늘에 보관하면 됩니다. 재물의 영원한 보관 장소는 하늘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2절)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뭘까요? 이 땅에서 얻은 재물을 천국에서 되찾을 수 있도록 천국 은행에 저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천국 은행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십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3:16) 우리가 이 땅에서 얻은 재물을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하나님께 맡기는 구체적인 방법이 뭡니까?
첫째로, 복음 사업에 사용하는 일입니다. 영혼 하나를 인도하여 천국에 인도하면 하늘에서 하나님은 천만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재력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복음 전파하는 일에 재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처음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온 선교사들입니다. 이들 선교사를 보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들 나라의 크고 작은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이들에 의해 한국 땅에 신식 병원이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지고, 구호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개화기의 한국 역사는 기독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의 번영은 기독교의 전파와 하나님의 축복 위에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네팔이나 감비아에 선교사를 보낸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 같지만 선교사들이 나가 있는 현지에서는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네팔을 방문했을 때에 몇몇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라고 하는 곳이 마치 허름한 창고 같아요. 교무실이란 곳이 문도 없는 헛간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시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50년대 학교보다도 못합니다. 운동장이 갖춰진 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체육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체능 과목이 전혀 없습니다. 전 국민의 절반 정도가 不可觸賤民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교육이나 의료 혜택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위해 재물을 사용한다면 바로 천국에 저축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구제에 사용하는 일입니다. 누가복음에는 구제를 가리켜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이 말씀은 잠언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구약 성경에 보면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와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을 돕는 것을 성도들의 의무로 규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적게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많게는 십 분의 삼을 구제를 위해 썼습니다. 정규적인 십일조 외에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구제는 교회의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부자와 빈자의 有無相通에 힘썼습니다. 성도들의 구제는 하나님께 기록됩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상급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19:27) 이에 대하여 주님은 이렇게 대답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주님의 보상은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에서도 충분히 갚아주십니다. 몇 배나 되돌려주신다고 했습니까? 백배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구제 활동이 백배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
두 번째 주제는 재물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절) 우리의 마음은 재물을 따라 움직입니다. 돈이 서울로 가면 마음도 서울로 갑니다. 돈이 부산으로 가면 마음도 부산으로 갑니다. 돈을 증권에 투자하면 밤낮 증권 시세만 바라봅니다. 돈을 은행에 두면 밤낮 은행 금리만 바라봅니다. 돈을 땅에 투자하면 항상 땅 값에 관심을 둡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도 따라 갑니다. 이 원리를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인간관계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마음을 두고 싶으면 아내를 위해 돈을 쓰면 됩니다. 자녀에게 마음을 두고 싶으면 자녀를 위해 돈을 쓰세요. 친구에게 마음을 두고 싶으면 친구에게 돈을 쓰면 됩니다. 부모님께 마음을 두고 싶다면 부모님을 위해 돈을 쓰세요. 어려운 이웃에게 마음을 두고 싶다면 이웃을 위해 돈을 쓰세요. 돈이 가면 마음이 따라 갑니다. 이 원리를 신앙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싶다면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천국에 정말 마음을 두고 싶으시면 천국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세요. 영혼에 관심이 있다면 영혼을 위해 돈을 쓰세요. 돈이 가는 곳에 내 마음도 따라 간다! 대단한 진리 아닙니까? 어떤 철학자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두고 싶은 곳이 있다면 우선 그곳을 위해 돈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재물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22절) 이 구절에 대해서 해석이 다양합니다. 눈을 마음으로 해석하는 사람, 눈을 인생의 목표로 보는 사람, 눈을 사리 판단의 지혜로 보는 사람 등등. 그러나 앞뒤의 문맥에서 본다면 해석은 간단합니다. 본문은 분명히 재물에 대한 교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재물이 가는 곳에 마음이 따라간다면, 중요한 것은 재물을 사용하는 방향입니다. 바로 그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눈이란 경치를 바라보는 눈이 아닙니다. 사리를 판단하는 눈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 인생의 輕重을 판단하는 눈,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판단하는 눈입니다. 좋은 사업가는 투자의 안목이 있습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자합니다. 가망 없는 곳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별로 가치도 없는 일에 재물을 사용한다면 눈이 나쁜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5:20) 분별력이 없는 것만큼 한심한 인생이 없습니다. 저는 가끔 “성인아동”(adult children, 심리학의 용어)들을 봅니다. 나이는 어른인데 생각은 아이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지고 싶으면 돈이 있든지 없든지 무조건 삽니다. 마이너스 통장, 카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무조건 쓰고 봅니다. 마침내는 신용불량자 되고, 가정 파탄이 납니다. 오늘 말씀에 보세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워진다고 햇습니다. 인생 전체가 어두워집니다.
성숙된 사람과 미성숙 된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오늘 말씀을 본다면 한 가지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됩니다. 돈을 제대로 된 곳에 쓰면 성숙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돈을 아무데나 쓰면 미성숙 된 사람, 미련한 사람입니다.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는 줄 알고, 올바로 쓰세요. 천국에 재물을 쌓고 싶다면 천국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소유자를 종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재물에 대한 세 번째 주제는 재물의 권세입니다. 재물은 소유자를 종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가 알면서도 잊고 있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돈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돈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를 명령합니다. 내가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재물이 나의 주인입니다.
1835년에 태어나 1916년에 죽은 헤티 호올랜드 그린이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이 부인은 너무나 유명한 구두쇠였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기록된 사람입니다. 81년을 사는 동안, 은행에 3천 14만 달러를 저축했습니다. 총 재산을 헤아려 보니 9500만 달러였습니다.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200억 원 정도 됩니다. 거의 100년 전 달러 가치로 본다면 오늘날 우리 돈으로 일조원도 넘을 겁니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부인은 평생 차거운 음식만 먹었습니다. 음식 데우는 것이 아까워서 찬 오트밀만 먹었습니다. 아플 때는 병원비가 아까워서 그냥 누워서 앓았습니다. 한 번은 자기 귀한 아들이 다리뼈에 이상이 생겨서 앓아 누웠습니다. 그런데도 병원 가는 것이 아까워서 무료 진료소를 찾아다니다가 다리를 절단하고 말았습니다. 이 부인은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돈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돈에 지배를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을 위해서 돈벌이 나선 사람들이 돈에 맛이 들어서 가족도 방치하고 타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 뉴스위크 잡지에 나온 통계를 보다가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10대 성매매 종사자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무려 50만 명이나 됩니다. 숫자가 잘못 됐나 하고 몇 번이나 들여다봤지만 틀림없었습니다. 아무데서나 조사한 통계가 아니라 유엔 산하 기관이 조사한 공신력이 있는 통계입니다. 어른들만 돈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돈의 노예가 된 겁니다. 돈 좋아하다가 돈의 노예가 되고 마침내는 돈의 명령을 따라서 동방예의지국이고 뭐고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돈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이 여러분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요즘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에 무얼 보고 선택합니까? 돈을 보고 선택합니다. 적성이나, 보람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배우자 선택할 때에 뭘 보고 정합니까? 우선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지 않습니까? 돈이 직업을 바꾸라고 하면 바꿉니다. 돈이 이사 가라고 하면 이사 갑니다. 돈이 결혼하라고 하면 결혼하고, 돈이 이혼하라고 하면 이혼합니다. 돈이 강도질 하라면 강도질 하고, 돈이 사람을 죽이라면 죽입니다. 돈이 싸우라면 싸우고, 배신하라면 배신합니다. 돈이 거짓말 하라고 하면 거짓말 합니다. 여러분은 돈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돈은 너무나 막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그 명령을 감히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창세 때에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사람이 물질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물질을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물질에게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질을 섬기고,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네 눈을 밝혀라! 마음의 눈을 밝혀라! 눈이 어두우면 만사를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 눈을 밝혀서 재물이 뭔지, 돈이 뭔지 올바로 보아야 합니다. 재물이 무엇입니까? 재물은 단순히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요, 우리가 다스려야 될 땅의 종입니다. 이렇게 재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안목을 가리켜서 물질관이라고 합니다. 물질관이 바르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한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요, 이삭도 야곱도 다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도, 아리마대 요셉도, 바나바도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물질관이 바르니까 결코 물질에게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떠서 재물이 무엇인지 바른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인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명령을 받아도 하나님께만 받고, 충성을 해도 하나님께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재물이 우리에게 복종하고, 모든 재물이 우리의 다스림을 받을 겁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19-24)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 물질은 따라 옵니다. 그러나 물질을 섬기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까닭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재물은 우리를 종 삼으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물질에게 정복당하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수단입니다. 재물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편리하게 합니다. 풍성하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재물은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재물은 이 땅에서는 보관이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보관하려는 헛된 노력보다는 보람있게 쓰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많이 벌어서 보람있게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로, 재물이 가는 곳에 마음이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두고 싶은 곳에 재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재물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는 안목, 즉 바른 물질관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셋째로, 재물은 우리에게 주인 노릇 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만 종노릇 하되 재물은 철저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재물을 바로 알고 바로 사용하셔서 축복된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처럼 되시기 바랍니다. 욥처럼 재물을 다스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주기도문1-마6:5-8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0) | 2013.11.20 |
---|---|
[스크랩]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0) | 2013.11.20 |
[스크랩] 나라 권세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0) | 2013.11.20 |
[스크랩]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0) | 2013.11.20 |
[스크랩]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0) | 201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