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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6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 주기도문의 마지막 기도제목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기도문 순서대로 한다면 우리 자신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첫째로, 육신의 양식이고, 둘째는 영혼의 죄의 문제이고, 셋째는 시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시험이란 뭘까요? 오늘 말씀에 “시험”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조”(peiravzw)입니다.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시험”이고, 둘째는 “고난”의 의미이고, 셋째는 “유혹”의 의미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시험”이란 말은, 영어 성경에 보면 세 가지 단어로 번역됩니다. 첫째는 "test"입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듯이,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시험하셨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22:1) 그리고 그 시험에 합격한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둘째는 “trial", 즉 “고난” 혹은 “시련”입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 욥이 당한 재앙과 같은 시련을 시험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temptation" , 즉 “유혹”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것도 시험입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시험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세 번째 유형의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나 시험은 참고 견디기만 하면 대부분이 승리합니다. 전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peirasmoi'")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dokivmion )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1-4) 문제는 유혹의 시험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이 시험(peirazovmeno")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1:13) 하나님께서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시험하시지도 않으신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유혹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녀들의 믿음을 시험(test)해 보십니다.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악한 의도에서 유혹하지는 않으십니다. 악한 유혹은 전적으로 마귀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또한 마귀에게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날마다 해야만 하는 겁니다.

유혹의 원인들

그러면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유혹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성경은 세 가지 원인을 말씀합니다.
첫째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유혹의 주체입니다. 마귀는 사탄이라고도 합니다. 히브리 말로는 사탄이고, 헬라어로는 디아볼로스입니다. 이 단어는 항상 단수로 사용되며, 그 의미는 “對敵者”, 혹은 “讒訴者”, “告訴者”란 의미입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 마귀는 자기만 하나님을 대적할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게 만듭니다. 사람들로 죄를 짓게 유혹합니다. 마귀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모든 불신자들 위에 군림하며 지배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그러나 마귀는 한시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세상 종말에는 영원히 결박당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귀는 이 세상에서 최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우리 중 누구도 사탄을 대항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사탄은 대단한 능력으로 멸망당하는 그날까지 인간을 유혹할 것입니다.
둘째로, 유혹의 환경이 되는 이 세상, 즉 현세입니다. 이 세상은 그 자체로써 모두가 한 편의 유혹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이 세상의 특징은 육신의 욕망, 안목의 욕망, 생의 자랑(the lust of the flesh, and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이 지배한다는 점입니다. 그 첫 번째 유혹은 육체입니다. 육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스니다. 현세 환경의 두 번째 유혹은 안목의 욕망(the lust of the eyes)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 유혹입니다. 최근 제가 사는 집이 전세 만기가 돼서 이사를 좀 해 볼까 하고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에 들었어요. 새로 지은 아파트를 보니까 우리 집은 구석기 시대 집이예요. 새로 짓는 집들을 보면 멋진 주방에, 다양한 수납 공간, 가구와 조명, 정말 눈을 즐겁게 합니다. 백화점에 진열 된 상품들을 보세요. 옷이니, 가방이니, 보석이니... 돈만 있다면 무조건 사고 싶습니다. 가장 웃기는 것은 식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면 그만인 식품을 뭘 그렇게 멋있게 포장을 해 놓습니까? 눈이 문제입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 눈만 없다면 세상 fashion 산업은 완전히 망할 겁니다. 현세 환경의 세 번째 유혹은 이생의 자랑(the pride of life)입니다. 짧은 인생 살다 가는 데 자랑이 많아요. 돈 자랑, 권세 자랑, 지식 자랑, 명예 자랑, 자식 자랑, 학벌 자랑, 가문 자랑, 미모 자랑.... 남보다 조금 나은 처지를 가지고 교만하고 남을 무시합니다. 자랑과 우월감으로 우쭐합니다. 그맛에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래저래 이 세상 환경은 그 자체가 거대한 유혹의 場입니다.
셋째로, 유혹의 도구가 되는 육체입니다. 육체는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악의 도구로 사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우선 성적인 욕망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최근에 이런 뉴스가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사촌 남매끼리 동거하다가 남자가 바람이 나서 함께 자살했다. 20대 남자가 처제와 함께 자살했다. 네티즌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불륜 드라마 보더니 드라마처럼 됐구나!” “죽은 사람 가지고 너무 나무라지 마라!” 요즘 성매매 단속을 바라보는 시각도 두 가지입니다. “산업 인력도 모자라는데 잘 하는 일이다!” “단속 해 봐라, 별 수 있나! 똥통을 깨뜨리면 전체가 똥으로 오염된다!” 무슨 소린지 아시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육체적 욕망을 동물적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일부일처 제도가 종족 번식에 걸림돌이 된다느니, 윤리나 도덕은 육체를 속박하는 굴레라는 소리를 고상한 학문을 빙자해서 주장합니다. 형이상학의 철학에서 형이하학의 철학으로, 정신적 웰 빙에서 육체적 웰 빙으로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고상한 감정도 육체적 감각으로 해석해버립니다. 성욕만이 아닙니다. 맛있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는 食慾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얼굴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모에 대한 욕망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육체의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생각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욕망을 이렇게 경고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2-13) 성욕, 식욕, 과시욕, 안일함의 욕망... 육체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다 채우려 하다 보면 죄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유혹의 원인 세 가지를 명심하십시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환경이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육체의 갖가지 욕망이 우리를 유혹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알고 경계한다면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길

그러면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유혹의 원인을 안다면 유혹에 적절히 대항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마귀를 對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매일매일의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넘어뜨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적하는 겁니다. 정면으로 물리치라는 말입니다. 마귀와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즉, 마귀와 싸울 때의 三不政策입니다. 첫째는 굴복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마귀에게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셨을 때에 마귀가 와서 여러 제안을 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 그리고 마지막 제안은 자신에게 굴복하라는 겁니다. 마귀에게 굴복하면 세상 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축복과 영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마귀가 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미신을 믿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마귀는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절대로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타협하지 않는 겁니다. 마귀의 두 번째 작전은 타협입니다. 현대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fusion 문화라고 합니다. 짬뽕 문화예요. 음식도 fusion, 의복도 퓨전, 사상도 퓨전... 현대 사상의 특징은 퓨전적인 多元主義입니다. 진리가 없어요. 절대가 없어요.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절대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무 신이면 어떠냐? 섬기면 됐지! 죄가 어딨냐? 타협하면 된다! 공산당 전략의 핵심이 그거 아닙니까? 적이 약하면 공격하고, 적이 강하면 타협하라! 마귀가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이 약하면 공격하고, 강하면 타협을 유도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와 타협하지 마십시오. 셋째는 뒤로 미루지 않는 겁니다. 마귀의 가장 기가막힌 전략은 중요한 일들을 뒤로 연기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을 뒤로 미루게 합니다. 선한 일 하는 것을 뒤로 미루게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미루고, 기도하는 것을 미루고, 봉사하는 것을 미루고... 언제까지 미룹니까? 죽을 때까지 미루게 합니다. 그래서 평생 선한 일 한 번 못해보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마귀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하게 대적하는 겁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마귀를 어떻게 대적합니까? 우리는 마귀만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마귀를 대적할 무장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2-17) 마귀와의 전투가 영적인 만큼, 마귀와 싸울 때는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全身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으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무장입니까?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하나님의 말씀 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음입니다. 중국 무협 영화를 보면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칼싸움으로 시작합니다. 한 참 싸우다가 고수가 나타납니다. 장풍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더 높은 최고수가 나타납니다. 최고수가 사용하는 기술은 내공입니다. “내공”이 센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영적 전투에서 이기는 사람은 혈기 왕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무장한 영적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은 강합니다. 우리는 무능하지만 성령님은 유능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마귀에게 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기 바랍니다. 사도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이 뭡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한 겁니다.(행9:29,16:18)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유혹의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유혹의 환경에 직접 노출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놀음 좋아 하는 사람이 도박장에 들어가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하고 기도해 보세요. 바람 잘 피우는 플레이보이가 여성들을 만나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믿음의 용사였던 다윗이 어떻게 간음죄에 빠졌습니까? 할 일 없이 남의 집 담 너머에서 이웃집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시험에 빠졌습니다. 잠깐 봤으면 그것으로 끝나야 되는 데 더 자세히 봤어요. 그래도 궁금해서 신하를 보내서 누군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 다음은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장수의 아내임을 알고 나서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다음은 증거 인멸을 위해서 장수를 전쟁터에 앞세워서 전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유혹의 환경에서 범죄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경건 생활 제대로 하려면 환경을 잘 선택해야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죄악의 환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묻지 마 관광 미팅, 카지노, 경마, 경정, 경륜, 대 도박, 소싸움 도박, 휘황찬란한 서울의 유흥가... 가까이 하지 마세요. 특히 사람 사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인생 여정이 달라집니다. 놀자판, 먹자판, 즐기자 판의 사람들과 어울리면 필경은 쫄딱 망합니다. 유혹의 환경으로부터 될 수 있는 한 멀리 피해 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육체적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필경 망합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적당한 선에서 통제해야 합니다. 먹는 것 통제하고, 입는 것 통제하고, 성관계 통제하고, 치장하는 것 통제하고, 안락한 것 통제해야 합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인간은 동물과 같이 천박해 집니다. 요즘 사람들은 통제를 아주 싫어합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이 때렸다고 파출소로 몰려 갔어요.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가장 큰 비극은 아이들이 선생님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도 없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선생님은 누구일까요? 그저 지식을 가르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그렇다손 치고 학부형들을 또 뭡니까? 애들보다 더해요.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되겠습니까? 완전히 animal 되는 겁니다. 누구든지 나를 귀찮게 굴면 다 고소하고 고발하겠다!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모르는 인간, 나만 알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반푼이 인간이 되는 겁니다. 자기 통제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구실 합니다. 예수쟁이들, 그저 믿사오니만 하면 다 복을 받습니까? 자기 통제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지 않고, 해야 될 것을 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통제를 잊지 마세요. 육체적 욕망을 통제할 줄 알면 절대로 유혹의 시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항상 이 기도를 하십시오

주기도문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세 번째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기도입니다. 시험은 인생 최대의 과제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시험 때문에 하루아침에 망합니다. 그러나 시험은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만은 아닙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혹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유혹의 주동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은 유혹의 환경입니다. 육체는 유혹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에 적절하게 대응해야만 합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합니다. 유혹의 환경은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육제는 절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주제가 기도이듯이 기도해야만 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섯 번째 기도 제목을 마치면서 잠깐 부연 설명드릴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함께 시험의 주체인 마귀에게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악”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tou' ponhrou'”입니다. 정관사가 붙어서 “the evil one”(NIV)입니다. 즉, 그 악한 자, 마귀를 뜻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마귀를 이기지 않으면 마귀가 나를 정복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망하는 전투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차리고 마귀를 대적하기 위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영적 전투는 나홀로 전투가 아닙니다. 공동의 전투입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함께 싸워야 합니다. 공동체의 사랑과 연합이 필요합니다. 마귀는 군대처럼 활동합니다. 마귀는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항상 단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귀의 하수인들을 “귀신들”(daimovnion)로써 항상 복수 형태로 나타납니다. 마귀가 군대라면 우리도 군대로 대항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적 군대입니다. 서로 연합하고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나홀로 기도만 하지 마시고, 함께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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