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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라 권세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6

나라 권세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주기도문 결론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부분은 주기도문의 결론부입니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사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보면 이 부분이 괄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중요한 고대 사본인 바티칸 사본, 시내산 사본, 베자 사본 등에 이 부분이 없고 후대 사본에만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원본에 없는 것을 형식을 갖추기 위해 후대의 筆寫者들이 삽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형식상의 중요성보다는 오히려 내용상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인정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형식상 이 부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식상 이 부분은 기도자의 찬송을 담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지요? 첫 번째 부분은 서론으로써, 기도의 대상을 밝힙니다. 두 번째 부분은 본론으로써 여섯 가지의 기도 제목을 말씀합니다. 세 번째 부분은 결론부로써 찬송 부분입니다. 기도자는 응답의 결과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순종해야만 합니다. 바로 그런 의미의 찬송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마다 “아멘”이란 말로써 화답했습니다.(신27:15-26)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결과에 대해서 화답하는 것은 예배의 중요한 절차요,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16:3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8:6)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5:14) 구약 시대나, 포로 시대나, 미래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이런 예배 형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이 부분은 “나라, 권세, 영광”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의 의미를 살펴 보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기도하는 자가 이런 고백을 해야만 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가 주기도문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현세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세는 인간에게는 행복보다는 불행의 장소입니다. 그 불행의 이유는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습니다. 가뭄, 홍수, 기상 이변, 병충해, 질병과 같은 자연 재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불행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전쟁, 살육, 강도, 사기, 도적질, 간음, 시기, 투쟁, 분노...이런 것들로 인하여 인간은 더 불행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삶의 격변은 인간이 추구하는 세 가지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첫째는 나라이고, 둘째는 권세이고, 셋째는 영광입니다. 나라, 권세, 영광이 어떻게 인간이 추구하는 그릇된 욕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나라입니다. “나라”(basileiva)라는 말은 왕국(kingdom)이란 말입니다. 즉, 어떤 통치권이 미치는 領域을 말합니다. 세상 나라가 다투는 중심에는 항상 영역의 싸움이 있습니다. 일제 36년의 강점, 남북한의 대립, 독도 영유권 문제, 동해인지 일본해인지의 地名 다툼, 간도 문제, 고구려사 왜곡, 일본의 북방 4개 섬 문제, 포클랜드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남사군도 영토 분쟁, 소련의 해체와 유고 연방의 붕괴, 카시미르 분쟁, 이스라엘과 아랍의 영원한 싸움.... 이 모든 배경을 보면 항상 영역 싸움이 들어 있습니다. 아마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국가나 종족간의 모든 전쟁과 살육에는 반드시 이런 영역 다툼의 문제가 들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영역 다툼은 국가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과 기업 사이의 경쟁에도 영역 싸움이 치열합니다. 소위 말하는 市場 占有率입니다. 국내 시장에서나 국제 시장에서나 시장을 많이 점유하는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어떤 경제학자의 말처럼, 대략 1등, 2등, 3등 이내에 들지 않는 회사들의 대부분이 시장 싸움에서 밀려납니다. 전자 제품, 자동차, 선박, 비행기, 의류, 식품... 자세히 보세요. 시장 싸움에서 밀리면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도태됩니다. 마케팅 전쟁입니다.
정치인들이 국회 의석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영역 싸움입니다. 누가 다수를 차지할 것인가? 누가 여론을 더 얻을 것인가? 합법적인 영역 싸움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불법적인 영역 싸움은 더 치열합니다. 조폭들이 영역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살벌합니다.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합니다.
둘째로, 권세(duvnami"=power)입니다. 누가 더 힘이 있는가? 힘에 의한 지배가 인간 사회의 존재 법칙입니다. 정의나 명분은 다음 문제입니다. 우선 힘이 있어야 됩니다. 물리적 힘이든, 돈의 힘이든, 지식의 힘이든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모인 곳에는 항상 힘자랑과 기싸움이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존재 법칙도 힘입니다. 미국은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입니다. 단번에 아프카니스탄을 궤멸시키고, 이라크를 점령했습니다. 아무도 힘 있는 미국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유엔도 있긴 하지만 미국에 의해서 상당 부분 좌우됩니다.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은 권세 싸움의 중심입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 주일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우리에게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위한 대통령이지 한국을 위한 대통령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의 지배 권력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바로 미국 대통령 선거전입니다. 우리 정치인들도 집권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기 싸움 하는 바람에 민생이 날아갑니다. 그래도 기 싸움은 영원히 계속되리라! 왜 그럴까요? 그것이 권세의 속성입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도 막강한 권력입니다. 뉴스위크 최신호에 보면 이런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억만장자 소로스가 부시를 패배시킬 수 있을까?” 소로스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반 부시 운동을 하는 것을 빗대어 한 말입니다. 정치권력 못지않게 막강한 것이 돈의 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변호사를 많이 살 수 있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입니다.
지식의 힘도 그렇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입시 제도가 몇 번 바뀌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수 십 번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또 바꾸자고 합니다. 요즘의 다툼의 중심에는 항상 서울의 강남 지역이 들어 있습니다. 지식은 곧 돈으로 연결되고, 돈은 곧 권력이기 때문에, 지식과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세습시킬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힘 있는 자의 독과점을 어떻게 하든지 막자는 겁니다. 큰 틀에서 보면 결국은 권세 싸움입니다.
셋째로, 영광(dovxa=glory)입니다. 현세의 모든 싸움에는 최고의 명예를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합니다. 육상 선수는 1등을 하기 위해 달립니다. 월드컵에 나가는 사람들은 한 경기라도 더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뜁니다. 인간 사회의 구석구석에 서열 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국가 서열, 권력 서열, 학교 서열, 기업 서열.... 누가 가장 부자인가? 누가 가장 머리가 좋은가? 누가 가장 힘이 있는가? 누가 가장 좋은 집을 가졌는가? 누가 가장 잘 생겼는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우월감을 가지고 행복해 합니다. 남보다 못한 사람들은 열등감을 느끼고 불행하다는 의식에 빠집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세에서의 명예와 영광은 영역 다툼, 세력 다툼에서 이긴 자들이 획득하는 최후의 전리품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한 투쟁이 곧 인류의 역사입니다. 인간 역사는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요, 권세와 힘을 획득하기 싸움의 역사요, 그 결과로써 얻는 영광을 차지하려는 경쟁의 역사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한 싸움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러면 앞서 말씀드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누가 차지합니까? 인간 중에 누구도 이런 것들을 궁극적으로 차지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생각해봅시다. 인류 역사에서 영토 싸움을 해서 영원히 차지했던 나라가 있습니까?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원나라 제국, 잉카 제국, 소련, 유고...온전히 보전된 영토가 없습니다. 기업도 그렇습니다. 시장 점유율은 매년 바뀝니다. 10년 전의 1위가 오늘까지 계속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어제의 일등 기업이라고 오늘도 일등 기업은 아닙니다. 항상 변합니다. 권세도 마찬가집니다. 어제의 강국이 오늘도 강국입니까? 어제의 다수당이 오늘도 다수당인가요? 어제의 권력자가 오늘도 권력자입니까? 그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어제의 두목이 오늘도 두목입니까? 역사는 변합니다. 세월 지나면 다 바뀝니다. 명예도 마찬가집니다. 어제의 1등이 오늘도 1등은 아닙니다. 서열이 바뀌면 명예도 바뀝니다. 대통령도 권좌에서 물러나면 감옥에 끌려 갑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봅시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도대체 누구의 것입니까? 말하면 잔소리지요. 당연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나라, 모든 영역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 시장님이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해서 비난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굳이 바치고 자시고 할 일도 없는 문제입니다. 바쳐도 하나님 것이요, 안 바쳐도 하나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울시는 서울 시민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의 서울 시민 가운데 100년, 200년 후에도 서울시민으로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떠납니다.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만 영원히 계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우주 창조 시부터 하나님 것입니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 것입니다. 모든 인간, 모든 나라가 하나님 것입니다. 각 가정도, 개인도 하나님 것입니다. 그 육체도 영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 공간에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 세상 떠날 때에 소유를 단 한 가지라도 가져가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은행 계좌에 있는 돈, 가져 가십니까? 어떤 부자가 죽으면서 재산을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유언을 했어요. “너는 내 재산 중 절반 만 가지고 나머지는 내 무덤에 넣어주기 바란다” 아들은 엄숙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한 지 아세요? 아들은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당좌수표와 약속 어음으로 관속에 넣어 드렸습니다. 진시황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살기 위해서 지하에 어마어마한 궁전을 만들었습니다. 수 만의 병사들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서 동서남북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항우 이후로 도굴되었고, 그의 시신은 간 곳 없고, 무덤만 유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몇 십 억 원이 넘는다는 강남의 아파트라 해도, 단 한 평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만 하나님의 땅에서 잠시 살다가 갈 뿐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29:11)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단4:17,25) 현세뿐만이 아닙니다. 내세도 그렇습니다. 세상 종말이 오면 현존하는 모든 세계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입니다. 현세가 하나님의 것이듯이 내세 천국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권세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잠깐 위임하신 권세일 뿐입니다. 왕들의 권력 다툼, 기업 간의 경쟁, 세상 사람들의 권력 투쟁은 다 소용 없는 짓들입니다. 권세는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花無十日紅이요 權不十年입니다. 정치 권력이든, 돈의 권세이든, 지식의 권세이든, 인간이 가진 것은 모두가 限時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한시적인 권세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요즘 보세요. 대통령의 권세도 별 것 아닙니다. 국회가 절대 다수로 결의한 법도 별 힘이 없습니다. 영적 권세는 어떻습니까? 귀신을 이기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병을 이기는 권세, 죽음을 이기는 권세 있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권세가 있으십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대상16:31)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시89:9)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시96:10)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45:13)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6:7)
영광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성공과, 승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20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던 개발도상국 열 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오직 한국만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영광입니까? 한국인의 근면성 때문입니까? 정직하기 때문입니까? 정치를 잘 하기 때문입니까? 머리가 좋기 때문입니까? 그런 원인들도 있기는 하겠지요. 그렇다 해도 그런 원천적인 자원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모든 성공과 성취, 승리에 대한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나라도, 권세도, 영광도 다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시113: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아멘!

주기도문의 마지막 말씀은 “아멘”입니다. 이 아멘이라는 말에 주기도문의 모든 결과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나라, 권세,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는 말씀이 바로 아멘입니다. 기도자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든지 -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권세가 있든지 없든지, 높든지 낮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고난을 당하든지 형통하든지 - 나라, 권세, 영광은 영원불변토록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인간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모든 나라,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권세를 가졌든지 그 권세는 하나님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것을 얻고, 혹은 잃었든지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고백이 바로 아멘입니다.
아멘에 대해서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아멘은 히브리어로 동사로는 @mEa;인데 그 의미는 “의뢰하다,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아멘”으로써 “진실로, 참으로”의 뜻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헬라어)에는 히브리 발음 그대로 ajmhvn(amen)으로 사용합니다. “아멘”이란 말은 몇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첫째, 상대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왕상1:36) 둘째, 진실을 맹세한다는 의미로써 사용됩니다.(민5:22,신27:15-26) 셋째, 예배시 기도에 대한 화답의 의미로 사용(주로 문장 말미에서)됩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16:36)
그러면 우리가 기도 말미에 “아멘”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굳게 믿고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때에 이런 의심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이 칼로 나를 찔러 죽이려는 것은 아닌가?” 만일 강도가 칼을 들고 온다면 어떨까요? 만일 내 친한 친구가 내 몸을 찢겠다고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의사가 칼을 들고 내 몸을 찢을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나를 고치려고 찢는 것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도 마찬가집니다.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십니다. 내가 평안하기를 바라십니다. 내가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내 가정이 잘 되고, 직장이 잘 되고,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내게 복을 주시되 천대까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그래서 잠시 고난이 올지라도 아멘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는 모든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아멘!
둘째로, 어떤 응답의 결과든지 인정하고, 복종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입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선, 내가 구한대로 주시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시되 즉시 주실 수도 있고, 잠시 후에 주실 수도 있고, 수 십 년 후에 주실 수도 있습니다. 혹시 죽은 후에 자식들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내가 구한 것을 거절하시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거절하시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내가 지금 구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주시려고 거절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욕심으로 구했기 때문에 내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내 육신에는 좋으나 영혼에는 해로운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좋습니다. 내가 구한대로 주시든지, 거절하시든지,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멘”입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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