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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8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간절한 기도의 필요성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기도와 관련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 주기도문의 내용, 금식 기도 등등.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기도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라는 말은 간절히 요청한다(ask)는 뜻입니다. 찾으라는 말은 마치 잃은 물건을 수색하듯이 찾는다(seek, search)는 뜻입니다. 두드린다는 말은 굳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 끈질기게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이 세 가지는 다 열심히 기도하라는 내용을 반복한 것입니다. 간절히 구하고, 열심히 찾고, 끈질기게 두드려라! 그것이 우리가 날마다 해야 될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이런 식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기도해야만 하고, 기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도의 모습은 주님의 다른 교훈과 모순처럼 보입니다. 주님은 앞서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7-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굳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도 보통 기도가 아니라, 간절히, 열심히, 끈질기게 기도해야만 될까요? 주님은 왜 이런 모순되는 듯한 교훈을 하셨을까요? 이점에 대해서 Halle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조용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를 직접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성공적인 기도자가 되는 것은 평생 연구하고 훈련해야만 될 과제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을 잘 아십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요구를 날마다 직접 듣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의 이런 기도가 왜 필요할까요? 기도의 본질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정도의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요, 인간은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단순한 기계적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이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끼니때마다 먹입니다. 철철이 옷을 사서 입힙니다. 학교에 보내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도록 도와줍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까? 자식은 부모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합니다. 자식이 다 장성하면 요구 사항이 없겠지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계속 뭔가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싫어하거나 미워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섭섭해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하나님께 복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께 아뢰고,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청을 원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사람은 건방진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복된 삶을 얻는 비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노력으로 잘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잘 살아보려고 온갖 애를 씁니다. 인생은 노력만으로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만 잘 살아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하나님께 날마다 복을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인생의 모든 것을 아뢰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세요. 영적인 것도 구하고, 물질적인 것도 구하고, 육신적인 것도 구하고, 구하세요.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날마다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기도를 하되 어영부영 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대로 본다면,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끈질기게 두드려야 합니다. 기도 생활은 다른 어떤 것보다 열성적이어야 합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풍성한 축복은 열심 있는 기도와 노력의 산물입니다.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창3:) 인생은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대충대충 사는 것은 인생모독입니다. 루빈슈타인은 짧은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최소한 50 번 이상의 연습을 했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하늘을 날기 위해서 수 만 번 높은 데서 떨어지는 연습을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가 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야곱은 20년 간 머슴살이를 하면서 품삯을 열 번이나 속아서 받지 못했습니다. 요즘 사람들 같으면 당장에 집어치웠을 겁니다. 그러나 야곱이 어떻게 일했는지 아세요?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38-40)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아세요? 17살의 소년으로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렸습니다. 종살이 하다가 간통죄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매 순간마다 열심을 다했습니다. 노예면 노예로써 열심을 다했습니다. 죄수이면 죄수로써, 억울하던 말던, 최선을 다해서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왕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노력 없는 소득이 축복이 아닙니다. 노력하는 자에게 더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모두 열심히 일해서 갑절이나 이익을 남겼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시고 그들이 남긴 이익을 축복으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는 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25:24-25)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26-30) 하나님은 열심 있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우리 시대의 최대 비극은 한탕주의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단번에 성공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큰 행운이나 되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정부도 거기에 한 몫 하고 있어요. 복권 장사, 카지노 놀음, 경마, 경정, 경륜, 소싸움, 개싸움, 닭싸움, 돈내기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로또 복권 당첨으로 하루아침에 100억 원이 넘는 벼락부자가 됩니다. 연예인들 한 번 뜨면 수 십 억 원이 단번에 들어옵니다. 노력 없는 재산, 노력 없는 명성, 노력 없는 지위, 이 모든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수능 시험 보는 애들이 노력할 생각은 않고, 부정행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땀 흘려 돈 벌 생각은 않고, 사기 한 번 쳐서 평생 먹고 살 생각을 합니다. 노력 없는 소득, 땀방울이 없는 성공이 우리 시대를 망치고 있어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요청하세요.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찾으세요. 그래도 안 되면 두드리세요. 두드리는 것은 마지막 단계입니다. 신앙 생활, 특히 기도 생활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비유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한 밤중에 찾아 온 친구의 비유입니다.(눅11:5-8) 밤 늦게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다 취침중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계속 문을 두드립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집에 손님이 왔는데 떡 세 덩이만 달라는 겁니다. 친구 사이이긴 하지만 거절했습니다. 일어나기가 번거로웠습니다. 문제는 친구의 행동입니다. 그는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참다 못해 할 수 없이 문을 열어 줬습니다.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귀찮아서 열어 준 겁니다. 두 번째 비유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눅18:1-8) 한 도시에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약하고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물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재판관 집에 한 과부가 나타났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좀 풀어달라는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계속 찾아 옵니다. 밤이고 낮이고 찾아 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참다 참다 이 여자의 소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들어 준 겁니다. 이 두 가지 비유의 공통적인 주제는 끈질긴 기도입니다.
끈질기게 요청해야 합니다. 끈질기게 찾아야 합니다. 끈질기게 두르려야 됩니다. 그래야 문이 열립니다. 옛날에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했습니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슨 물건이든지 많이 사는 법이 없습니다. 두부 한 모, 쌀 한 봉지, 콩나물 5원 어치, 연탄은 새끼줄에 매달아 한 장씩, 숯도 한 봉지, 그랬습니다. 언젠가 추운 겨울날 밤 늦게 가게 문을 닫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유리문을 닫고 덧문을 닫고 자물통까지 채웠습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문들 두드립니다. 못들은 척 하고 있었습니다. 두드리다가 가겠지? 그런데 어떤 족속인지 계속 두드립니다. 집이 흔들거릴 정도로 두들깁니다. 할 수 없이 나가서 뭘 사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연탄불이 꺼져서 그러는데 숯 한 봉지만 달라는 겁니다. 별 수 있습니까? 줘야지!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이렇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한두 번 해 보고 그만두지는 않습니까? 새벽기도 생활은 끈질기게 하고 계십니까? 定時祈禱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십니까? 혹시, 생활환경이 바뀔 때마다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이사 가서 그만두고, 바빠서 그만두고, 낙심해서 그만두고, 기회만 되면 포기해버리지는 않습니까? 끈질기게 기도하세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이제 기도의 결과를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린 결과가 뭡니까? 확실한 응답입니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습니다. 찾는 사람마다 찾습니다. 두드리는 사람마다 문이 열립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하시는 너무나 좋은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악한 아버지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잘 해 주려고 애씁니다. 심지어 마피아의 두목도 자기 자식은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좋은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기도는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좋은 것”이란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ajgaqov" 인데 의미상 좋은 것이란 뜻보다는 “선한 것, 착한 것, 유익한 것”(good gifts)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한 것, 유익한 것, 가치 있는 것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주시는 것이 응답이 아닙니다. 선한 것으로 주시는 것이 응답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도둑놈이 도둑질 하기 전에 오늘 밤 도둑질을 성공적으로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구한대로 응답해 주실까요? 도박꾼이 돈을 많이 따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구한대로 응답하실까요? 사기꾼이 사람을 성공적으로 잘 속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들어주시겠습니까? 또,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어린 아이가 쥐약을 달라고 졸라대면 주겠습니까? 허랑방탕의 소지가 있는 사람이 억만 장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들어주실까요? 정신병자가 생선회 칼을 달라고 하면 주시겠습니까? 정욕적인 사람이 더욱 건강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 들어주실까요?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 우리가 잘못 구할 때에 하나님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선한 것, 유익한 것을 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며 선한 것일까요? 누가복음에 보면 “좋은 것”이란 말 대신에 “성령”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우리가 육신의 떡을 구할 때에 하나님은 영의 양식이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것을 구할 때에 영적인 것을 주십니다. 돈을 구할 때에 믿음을 주십니다. 억울함을 하소연 할 때에 사랑의 은사를 주십니다. 병 낫기를 기도할 신유의 은사를 주십니다. 의식주를 구할 때에 영생과 천국의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영적인 응답을 주실 때에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값진 것을 주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구하는 것들도 마찬가집니다. 당장은 내가 구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재산이 더 중요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튼지 오늘 내게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선한 것인지, 유익한 것인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해서 확실한 응답이 있고, 좋은 응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응답이든지 항상 순종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병 낫기를 위해서 세 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절하심으로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약할 때일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응답이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근본적인 존재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인간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될 존재입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해야 됩니다. 산상수훈에서 이런 기도를 가르치신 주님의 의도를 알아야 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인 기도는 책망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진실한 기도는 날마다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는 열성적이어야 됩니다. 끈질긴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기도 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풍성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구한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열심 있는 기도자들이 되셔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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