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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기도문2-마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37

주기도문2-마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본문 : 마6:9
◉제목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경제가 무척 어려워지고 있다. 한 외국계 경영컨설팅사 임원은 말하기를 “이번 위기를 ‘내년만 견디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란다. “97년 외환위기가 맹장염이라면 지금은 암이다. 맹장염은 별것 아니지만 고통스럽다. 그러니 처방도 빨리 한다. 반면 암은 더 중증이지만 증상이 더디게 나타난다. 서서히 고통을 받다가 치료할 시기를 놓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10월에 임시직은 24만 명이나 줄었다. 일용직의 경우 같은 기간 18만 명 가까이 급감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9월까지 실업급여 수급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다. 실물경제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기도 전인 9월까지의 고용 사정이 이 정도라면, 올 4분기와 IMF 체제 이후 가장 낮은 경제 성장이 확실한 내년 상반기가 걱정이다. 갈수록 실직자 증가폭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처럼 “이번 겨울이 국민에게 얼마나 길고 혹독할지 걱정”이다. 소비가 줄고, 재고는 쌓여가고, 수출 길은 막히고,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연구소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3.3(KDI)~3.9%(현대경제연구원)로 보는 반면에 외국 기관은 1.1%(UBS)~2.2%(무디스)~3.0%(JP모건)으로 본다. 세계경제 상황이 추가로 악화하면 3%대 유지가 어려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성장률이 1% 떨어지면 5만~6만 명의 고용이 줄고 2% 중반 이하로 내려가면 40만 명 이상의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96년 명예퇴직 바람, 97~98년 대량 정리해고·부도 사태 때처럼 수많은 기업과 직장인이 ‘공포의 도미노 라인’에 서 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경영자, 위정자들이 지혜롭게 이 경제난국을 풀어갈 수 있도록! 또한 모든 국민들이 함께 고통을 분담하며, 지혜롭게 견딜 수 있도록! 더불어 우리는 소망을 품어야 한다. 위기가 기회이며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켜 불순물을 제거함으로 정금처럼 만들어지는 훈련의 시간임을 믿어야 한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정신차리고 당당하게 대처해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세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부동산에 거품 낀 것이 빠지듯이 우리 신앙에도 형식화되고, 위선적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사해보자. “정신차립시다.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엄마가 아이에게 뒷마당에 있는 빗자루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엄마, 바깥은 지금 캄캄해서 무서워요.”
“아가, 밖에는 예수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니? 널 지켜주실거야.”
“정말 밖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럼, 그분은 어디에든 계신단다. 네가 힘들 때 널 도와주신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했다.
“예수님, 거기 계시면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우리가 힘들때, 어둠속에도 예수님은 함께 계신다. 믿는가?
그런데 기도할 때 막연히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있으면 하나님이 계시면 도와달라는 식이다.
급한 상황에서 “부처님, 하나님, 공자님, 마호메트님.. 누구든 도와주세요”하는 식으로 기도한다면 전혀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잘못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말하길, 이세상의 모든 별들의 숫자가 10의24승(10다음에 0이 24개인 수)이라고 한다.(우리 은하계에 별이 1,000억개, 이런 은하계가 우주에 1,000억개가 있다) 그리고 그 많은 별들 중에 지구를 찾는다는 것은 미국 전체 넓이의 모래더미를 700미터 깊이로 쌓아올린 후 그 중에 모래알 하나를 찾는 것과 같이 힘든 일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 우주는 130억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인간은 오직 일만년정도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건 정말 우주의 역사에 비한다면 1초도 안되는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인간이란 정말 보잘 것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릴 사용하시고 찾아오신 것이다. 오늘도 은혜로 돌봐주시는데도,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대하고 있다.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을 안 믿기에 잘못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좋은 동기와 경건한 습관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비집고 나온 죄성이 마치 물속에 넣은 젓가락을 굽게 보이게 하듯 왜곡시키고, 잘못 찾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 같은데 실상은 사람에게 잘 보이고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하기에 잘못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 우리는 6장 5~8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지적하신 잘못된 2가지 기도를 보았다. 첫째는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기도이다. 사람들이 보게 기도한다고 외식하는 기도는 아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다. 그것은 생명을 건 기도였다. 다니엘 총리를 좌천시킬 방법은 그의 신앙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을 정적들은 알았다. 그래서 왕에게 요청했다. 30일 동안 왕 외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게 해달라고! 그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찾았다. 다니엘에게 기도는 급할 때 한번 찾아보는 119 앰블런스가 아니었다. 매일 하루 3번 밥을 먹어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가듯이 기도는 그의 생명과도 같았던 것이다. 이런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그것도 느부갓네살왕, 그의 아들 벨사살왕, 그 다음의 새 정권인 메대왕 다리오왕까지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건한 믿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다니엘은 정치인일 뿐 아니라 예언자이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그에게 많이 보여주셨던 것은 그 만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왜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고 아름다운 표현과 화려한 수식어를 사용하는 말잔치로 만드는가?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말이 필요치 않다. 말은 입을 가진 사람들, 귀를 가진 사람이 듣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들으신다. 내 사정을 하나님이 모르시니까 알려드리려 기도하지 말라. 기도는 말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마음 만시는 분이시다. 지치고 상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만이 만져 주신다. 왜 부르짖어 기도하는가? 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 내기하려고?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내 간절한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There is none like You. No one else can touch my heart like You do.
I could search for all eternity long and find. There is none like You.
Your mercy flows like a river so wide. And healing comes from Your hands
Suffering children are safe in Your arms. There is none like You

주님 밖에 없다. “나를 도우실 분은 당신 뿐입니다”그런데도 진실한 기도가 안될까?
어떤 집사님이 산을 등산하다가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는 떨어지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을 허위적거리다가 바위틈에 자라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위를 쳐다보니 까마득한 정상에 구름만이 감돌고 있었고, 밑을 내려다보니 험한 바위 골짜기였다. 그는 위를 쳐다보면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질렀다.
"나를 도와주세요. 위에 누구 없습니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구름 사이로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두려워 말라."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를 빨리 도와주세요."
이때 구름 사이로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너는 나를 믿고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지만 그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는 것을 험한 바위 골짜기에 떨어져 분신쇄골하는 것이었다. 그는 "잡고 있는 가지를 놓아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는 음성에 결코 순종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설령 하나님의 음성이라도 이 순간만은 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위를 향하여 다시 소리 질렀다. "그 위에 또 다른 분은 없나요?"

다른 분 찾지 말라. 내 마음 만져주시고, 내 인생 책임져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하나님 아버지. 저겐 당신 뿐입니다. 도와주세요.” 여기서 진실한 기도가 나온다.
창문을 열고 사람들이 다 보이도록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었다.
이 것, 저 것 다 내려놓고 우리가 찾아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때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다.
많은 미사어구가 필요하지 않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시다.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시115:9)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시115:15)
하나님은 온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하20:6)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저 도와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미국, 일본, 대한민국도 직접 다스리신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시33:13)
나라, 세계의 큰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들의 삶을 살펴보신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아무 곳에나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마음 뿐 아니라 깊은 무의식의 세계까지, 시간도 제한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누구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다. 얼굴 가리고 “아빠 없다”하듯 말라.
내가 없다 말한다고 없는 것인가? No. 개가 짓어도 기차는 가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다 해도 하나님은 역사와 우주의 주관자가 되신다.

지난 주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장 중에 최연소시장을 만났다. 비서실로 전화해서 약속을 잡은지 10일만이다. 원래는 수요일로 약속을 잡았는데, 경기도에 급한 일이 있어 목요일로 일정이 바뀌었다면서 괜챦냐고 연락이 와서 목요일에 만났다.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것인데 고집할 수 없지 않는가? 내가 일정을 바꿔야지! 그 날 만난 분이 누구냐 하면 오산시장인 이기하 시장이다. 내가 대학교 2학년때, 3학년 복학생이었으니까 4살 정도 더 많다. 목요일 오후에 전도팀 10명이 전도하고 돌아오니 오후4시였다. 보고를 받다보니 4시 15분, 약속시간은 5시였다. 급히 준비해서 오산시청으로 가는데, 늦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지만 길이 안 막혀 거의 20분 전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온 것 같아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10분전에 비서실에 들어갔더니 기다리란다.
잠깐 비치된 잡지들을 보고 있으니 들어가라고 표시한다. 오산시장이 걸어오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20분만에 나왔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시장을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면 나는 평생 하나님을 1~2번 이상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시장이나 대통령 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만나기 힘든 분이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를 보면 그게 느껴진다.
자기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브루스에게 하나님께서 1주일 동안 하나님이 되어보라고 한다. 브루스가 하나님 일을 하는데 하루 동안 152만 7503통의 기도가 날아왔다. 파일로 정리하니 온 방으로 가득찼다. 보기 쉽게 포스트잇으로 바꾸니 도배한 것처럼 가득찼다. 드디어 생각한 아이디어, 컴퓨터로 보면서 자판을 두들겨 Yes, No을 응답해 주는데 밤을 새고 말았다. 그런데 다시 30만통의 기도가 온 것 아닌가? 너무 힘들어 모두 Yes해 버렸다. 세상은 난리가 났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공평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았다. 또한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자주, 언제든 갖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요8:44, 엡2:3, 롬8:15) 나는 시장을 만나려면 약속을 하고, 절차에 따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 때나 찾아가도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셨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롬8:15)
아빠는 아가가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다. 부자지간에 정이 두터우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라 부른다. 아빠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아빠의 사랑스런 아가라는 자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감히 불경스러워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운 분이 아니라 친근하고 가까운 분이심을 알기에 부를 수 있다.
한번 불러보자. “하나님! 아빠”

아빠는 아들은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용서해 주고 기다려준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살인자 아들에게도 그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민족반역자를 향하여 모든 국민이 욕을 하고 저주해도 그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식은 “당신은 내 어머니, 아버지도 아니다”고 소리쳐도 부모는 그를 잠잠히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너무 추하다. 집나간 탕자처럼 더럽고, 추하고,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아빠 하나님은 사랑으로 품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분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기도하려고 하지말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아빠가 되심을 알고 간절히 불러보자.
“아빠. 내 답답한 마음 아시죠! 만져주세요. 나를 품어주세요.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젠 아버지 품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젠 헛된 것을 찾지 않겠습니다. 내겐 주님 밖에 없어요. 아빠! 하나님 아빠!”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도서 5:2)
말을 많이 하려말라. 그냥 그분의 품에 안겨라. 주님의 위로하시는 음성을 들어보자.
“너는 내 아들이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돌아와 주어 고맙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 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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