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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5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하나님의 뜻

주기도문의 세 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느 누구의 뜻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할까요? 이런 우화로 그 이유를 설명 드리지요. 어느 연못에 개구리 100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도 임금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임금을 뽑자!” 그래서 마침내 임금을 뽑기로 했습니다. 누구를 임금으로 뽑을까? 논의 끝에 원하는 자들은 다 임금이 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결과 100 마리 중에 99 마리가 임금이 되겠다 하고, 신하가 되겠다고 한 개구리는 단 한 마리에 불과했습니다. 99 마리의 임금과 단 한 마리의 신하가 있는 개구리 나라가 되었습니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회를 했는데, 각자의 의견을 다 들어주기로 했기 때문에 99 가지의 뜻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점심도 먹지 못하고 저녁까지 굶으면서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임금의 옷도 각자 원하는 대로 입었으므로 99 가지였습니다. 한 번은 이웃 나라가 쳐들어 왔습니다. 임금들이 모여서 작전회의를 했습니다. 99 가지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다 따르기로 하고 99 가지 작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작전은 시행하지도 못하고, 회의를 하는 중에 적의 공격으로 다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솝 우화가 있지요? 팔려 가는 당나귀 얘깁니다. 나이 많은 방앗간 주인이 당나귀 한 마리를 시장에 팔려고 아들과 함께 끌고 갑니다.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조롱합니다. “타고 갈 수 있는 당나귀를 어슬렁어슬렁 걷게 하다니!” 그래서 아들을 태우고 갔습니다. 마침 노인들이 모여서 잡담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새파란 녀석은 편히 타고 노인은 걷게 하다니!” 이 소리를 듣고 노인이 타고 아들은 걷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아가씨들 대여섯이 조롱합니다. “아들이 지쳐서 걷는데도 혼자만 타고 가다니!” 그래서 둘이 다 올라탔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그 당나귀 당신네 거요?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허리가 부러지게 둘이 타고 가면 어쩌려는 거요? 내 생각엔 차라리 나귀를 메고 가는 것이 낫겠소.” 아버지와 아들은 나귀의 네 발을 묶어서 막대기에 꿰어 메고 갔습니다. 가다가 시냇가에 이르렀습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서 놀려댑니다. “아니 멀쩡한 당나귀를 힘들게 메고 가나니!” 사람들 소리에 놀란 당나귀가 깜짝 놀라 몸부림치는 바람에 줄이 끊어지고 나귀는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 세상 일이 다 각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가 원하는 지위를 얻고,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각자의 뜻이 다 이루어지고, 각자의 생각이 다 받아들여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은 아무 뜻도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완전히 무질서와 혼돈의 지옥이 될 겁니다. 개구리 나라나, 팔러 가는 당나귀 신세가 될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얘기하기 전에 반드시 따라야 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KJV)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라는 말은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은 천사들과 천국 시민의 처소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100% 받들어지고, 순종됩니다. 그래서 누구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거부당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100% 실현되기 때문에 천국이 됩니다. 그러나 땅은 사탄의 무대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자들의 처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땅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이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인간의 뜻은 멈춰지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게 해 주옵소서!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인생 최대 과제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평생 목표 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내 뜻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내 뜻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평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99%는 다 사람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직업, 내 사업, 내 소유, 내 가정, 내 지식, 내 의지... 모든 것이 내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나는 부자 되기만을 원하나 하나님은 때때로 내가 가난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높아지기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내가 낮아지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유명해지기를 원하나 하나님은 무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성공만을 원하나 하나님은 실패도 원하십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패배를 원하십니다. 나는 건강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병드는 것을 원하십니다. 나는 항상 안락한 것만을 원하나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 받는 것을 원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뜻을 꺾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挫折입니다. 요즘 30대 이하 사망률의 둘째 원인이 자살이라고 합니다. 20대 事故死 비율은 전체의 70% 정도이며 자살은 14%입니다. 30대의 경우 사고사 비율이 45%이고 자살률은 16%에 이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욕을 빼앗아가는 것은 좌절입니다. 자신의 의지나 뜻이 꺾일 때,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선택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뜻은 삶을 포기할 만큼의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모든 뜻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기도제목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내 뜻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 되었든지, 육체적인 것이 되었든지, 가정적인 것이든지, 사회적인 것이든지, 우리는 일단 나의 모든 생각이나 뜻을 접고 백지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힘든 결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참 신앙의 출발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75세의 나이면 요즘으로 인생 말년입니다. 말년에 여러 가지를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본토를 포기하라! 노년이 될수록 생활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정든 이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 뿐입니까? 전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가라는 겁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10억 벌어서 노년의 WELL BEING 준비 다 해 놨는데, 버리고 떠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평생 소원이 성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에든지, 평화시든지 그는 銀金銅鐵을 준비했습니다. 성전 설계도를 장만하고, 인부들을 준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뜻을 거절하셨습니다. 너는 성전을 지을 수 없다! 네 아들이 지을 것이다! 이와 같이 때로는 평생소원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질병 때문에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전12:9) 건강은 만인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평생 지병을 갖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광야 40년의 고행도 가나안의 소망으로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의 소원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너는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다!
오늘 여러분은 인생의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십니까? 아니면, 남은여생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요즘 CONSULTING이란 단어가 유행입니다. 부동산 투자 consulting, 재테크 consulting, 생활설계 consulting, 등등. 어떤 좋은 생각으로 인생 설계가 되어 있든지, 하나님은 오늘 먼저 그것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내 뜻을 꺾는 것이 참다운 신앙입니다. 요즘 신앙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이 왜곡되고 있어요. 인간의 뜻을 이루는 것을 믿음인양 선전합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내 뜻대로 되지 못하면 믿음이 적다고 합니다. 내 뜻대로 성취되면 속된 말로 “기도빨”이 센 사람이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기도가 약한 사람 취급을 합니다. 속지 마세요. 인간의 사업인지 하나님의 사업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인간 교회인지 하나님의 교회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인간의 가정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인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어떤 생각이라도 먼저 무조건 포기해야만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마26:39,42) 저는 20대 중반에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내 인생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가 세웠던 모든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가 원했던 직업, 내가 원했던 일, 내가 원했던 결혼, 내가 원했던 가정 생활, 내가 생각한 삶의 방법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사고방식, 가치관, 사상을 다 버렸습니다. 완전 백지 상태로 하나님께 반납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첫 단계입니다. 참신앙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누구나 반드시 이 결심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포기했다면 그 다음은 당연히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뜻을 포기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것은 더 힘든 일입니다.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은 포기로써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삶을 포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병드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자 되는 것은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빈 털털이가 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자식을 향한 내 뜻을 포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식을 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칭찬받고 출세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배신당하고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그런 일이 욥에게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런 일이 요셉에게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원치 않는 일이 닥쳐왔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노예 생활도 억울한데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빈 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 그렇게 되었다면 이해가 갑니다. 전국 제일의 갑부가 갑자기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들 딸 창창하던 집이 갑자기 적막한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건강하던 몸이 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뜻을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정말 하나님 뜻이라면 어떤 처지가 되어도 좋습니까? “어-어-메!” 차마 “아멘”은 못하실 겁니다. 오늘 우리가 순종해야만 되는 하나님 뜻은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일에 전적으로 순종해야만 합니다.
순종의 모델은 하늘의 천사들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어떤 모습으로 순종할까요? 첫째로, 순종을 존재의 법칙으로 알고 순종합니다. 순종 중에 최고의 순종은 “왜?”라고 묻지 않는 순종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무조건 순종을 가르쳤습니다. 요즘 부모가 뭐라고 하면 “왜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왜요는 일본 놈 담요가 왜요다!” 묻지 말고 순종해라! 자연 생태계가 자연 법칙에 철저히 순종하듯이, 인간 세계도 하나님 뜻에 철저히 순종하면 됩니다.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존재의 법칙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천사들의 순종입니다. 둘째로, 천사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순종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순종하는 게 아닙니다. 내 인생에 어떤 일이 발생하든지 항상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는 한 밤중에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로, 천사들은 어떤 명령이든지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천사들의 업무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천사들은 어린이나 어른, 왕이나, 선지자나, 국가나 개인, 군중, 거룩한 자나 비천한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명령대로 위해서 일합니다. 위로의 일, 책망의 일, 축복의 일, 심판의 일, 구원하는 일, 멸망과 심판의 일, 시험하는 일, 고상한 일, 낮고 천한 일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좋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시키십니다. 쉬운 일만 아니라, 힘든 일도 명령하십니다. 명예로운 일만 아니라 모욕적인 일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성공 뿐만 아니라, 나의 실패를 통해서도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건강을 통해서만 아니라 병드는 것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낮아짐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나의 안락함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그것이 하늘 천사들의 순종입니다. 넷째로, 천사들은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구약의 법궤에 만들어진 그룹 천사의 모양은 날개를 펼친 모습입니다.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순종할 준비를 한 모습입니다. 순종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순종하기에 게으른 것도 죄인 줄 알아야 됩니다. 다섯째로, 천사들은 지속적으로 순종합니다. 한 번의 순종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에, 그들은 정말 유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식도, 경험도, 지혜도, 신앙도 왕초보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뭔지, 왜 주님을 따르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주님께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순종을 통해서 진리를 배웠습니다. 순종을 통해서 성숙했습니다. 순종을 통해서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 뜻을 이룰 곳은 이 땅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천국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땅을 위한 기도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나의 삶이 펼쳐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없어질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서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천국에서는 기도가 일상 업무가 아니고 찬송이 가장 중요한 일상 업무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힐 존재가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고, 시험에 들 일이 없으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 마귀는 없으니까 악한 자에게서 구해달라는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히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세요. 천국에 가서 선한 일 하겠다는 생각은 마십시오. 천국에 가면 나 아니라도 모든 사람이 다 선한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한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 뜻일까요? 하나님 뜻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만인 공통의 하나님 뜻입니다. 즉,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삶의 원칙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공의를 행하는 것, 거룩한 삶, 진실 된 말과 행실 등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6:40) 만인 공통의 하나님 뜻은 불변합니다. 삶의 원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모든 삶에 적용됩니다.
둘째는 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개인의 삶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진행되는지 여부를 묻는 삶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하나님 자녀가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꾸어주되 꾸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때에 고난의 길을 원하시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배신당하고 누명을 쓰고 고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 고난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다른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야곱 집안을 애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작은 가족을 큰 민족으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려는 뜻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은 매우 심오하고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욥이 재앙을 당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 뜻인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다만 모든 일이 진행 된 후에야 그것이 하나님이 욥의 신앙을 깊게 하시기 위한 계획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보다는 개개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이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오늘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바로 깨닫고 순종하게 해 주옵소서!”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오늘 우리가 제일 바라는 말은 바로 “형통”이란 말입니다. 만사 형통케 해 주옵소서! 여러분, 형통이 뭡니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형통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겁니다. 성경은 요셉이 생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 요셉에게 무엇이 형통입니까? 형들에게 배신당한 것이 형통입니까? 남의 집 노예가 된 것이 형통입니까? 누명을 쓴 것이 형통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요셉을 통해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형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는 결국 축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형통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땅에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뜻을 이루기를 힘쓰면서, 바로 이런 형통한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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