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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4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 1)

// 마태복음6:9-13(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이렇게 기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9절) 기도의 모범 답안을 말씀하십니다. 앞서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해야 될까요? 바로 그 기도의 내용이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까지의 이 말씀을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란 뜻입니다.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서 주기도문의 내용을 차례로 강해해 드릴 계획입니다. 먼저,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내용을 가르쳐 주신 이유부터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마땅히 구할 것을 알지 못하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서양 동화 중에 이런 얘기가 있지요? 어떤 가난한 夫婦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千載一遇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딱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부부는 서로 이것을 구해야 된다, 저것을 구해야 된다 계속 다투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한 마디 했습니다. “제발 소시지나 실컷 먹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시지가 끝도 없이 생겨났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소원을 겨우 소시지 얻는 데 써버린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남편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저 소시지가 몽땅 마누라 코에나 가서 붙어버려라!” 그랬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소시지가 정말 부인의 코에 붙어버린 겁니다. 남은 소원은 이제 단 한 가지 뿐입니다. 별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이 소시지가 코에서 떨어지게 해 달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소원을 날려 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앞에 마땅히 구해야 될 것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요. 무엇이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내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요! 그저 돈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다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우선 돈부터 구합니다. 마치 동화의 주인공이 소시지부터 구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無知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무식한 신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이 다 영적으로 무식해요. 수제자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한 말을 보세요. 그는 주님이 기도하실 때에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주님과 엘리야와 모세가 회담하시는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영광의 광채 속세 나타난 세 인물을 보니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잠시 후에 보니 모세와 엘리야는 떠나고 주님만 계십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주님께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눅9:33) 전후좌우 생각지도 않고 그냥 거기서 계속 살자는 겁니다. 그 말씀 끝에 성경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눅9:33) 베드로 다음의 서열에 있었던 야고보와 요한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10:37) 순교하러 가시는 분에게 주님이 왕이 되시면 좌우에 높은 자리를 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한심한 요청입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10:38)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할 때에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이 부친을 이어 왕위에 올랐을 때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정성껏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 솔로몬은 이렇게 구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7-9)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3:10-13)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응답의 보너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응답의 보너스를 얻는 기도를 하세요. 그게 어떤 기도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드는 기도를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지요? 주기도문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의 의제 선정을 바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구할 것을 구한다 해도 무엇을 먼저 구하고 무엇을 나중 구해야 될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事案의 輕重을 모르고, 優先順位를 몰라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다 똑 같은 대화가 아닙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보면 그 사람의 인격, 학식, 직업, 가치관이 금방 드러납니다. 대화에는 話題, 혹은 議題가 중요합니다. 국가 원수끼리 회담을 할 때에 보면 사전에 실무자들이 수 없이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지 미리 정합니다. 무슨 의제를 나누느냐에 따라서 회담의 格이 정해집니다. 그래서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議題, 요즘 흔히 말하는 “agenda”의 선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창조주십니다. 주인이십니다.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과 마주하여 어떤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물론, 무슨 얘기든 대화의 agenda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쓸 데 없는 얘기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말씀드릴 주제들을 올바로 선정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의제들이 一目瞭然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부터, 작게는 내 인생의 문제들까지 중요한 순서대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아하, 이렇게 기도해야 되겠구나!” 알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기도하든지, 주기도문의 모범을 생각하면서 기도한다면 가장 좋은 기도자, 가장 축복된 기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구조

그러면 이제 주기도문의 구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굳이 명칭을 붙인다면,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서론은 기도의 대상을 말씀합니다. 본론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의 기도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결론은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든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찬미를 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을 좀 더 부연하여 설명을 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서론 부분입니다. 서론에서는 기도의 대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대상자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 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요,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요, 예수님을 보내셔서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오, 지금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바로 내가 기도하는 대상입니다. 나는 지금 막연한 상대를 향하여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막연한 대상을 향해서 부르짖습니다. 나무, 돌, 산과 바다, 해, 달, 별, 짐승, 물고기...다 헛것입니다. 소월 시의 한 구절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너무나 절망적인 부르짖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 아닙니다. 나와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고, 영원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아니라 부르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라면 기도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바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이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 자녀의 자격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기도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겁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겁니다.
두 번째 부분은 본론 부분입니다. 본론에서는 기도할 내용을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라고 한 것은 마지막 부분을 둘로 나누기도 하고, 하나로 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본론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부분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 내용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 내용입니다. 첫 부분은 다시 세 가지 제목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인칭대명사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영문 성경에 보면 모든 구절에 인칭대명사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KJV)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될까요?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족하셔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내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통해서 거룩히 여겨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제발 내 인생을 통해서 하루라도 하나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명예롭게 해드리는 것이 이 기도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거저 떨어집니까? 아닙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애쓰는 삶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어디에 이루어지라는 말입니까? 바로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주기도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는 모두가 내 자신의 헌신을 전제로 한 내용들입니다. 즉,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내 자신의 끊임 없는 헌신이 있어야만 됩니다. 바로 그 헌신을 위한 기도가 이 부분의 내용입니다.
본론의 두 번째 부분도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두 번째 부분의 첫째, 즉 전체적으로 넷째 제목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다섯째 제목은 사죄와 용서를 비는 기도입니다. 여섯째 제목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여섯 째 기도 부분은 둘로 나누어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시험에 들지 말게 해 달라는 부분과,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분리합니다. 이렇게 분리하는 해석자들은 마지막 부분에 정관사가 붙어 있는 것을 주목합니다. 즉, 악이란 말은 악한 자, 곧 사탄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보면 앞선 구절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과는 내용이 좀 다릅니다. 아무튼지 이렇게 여섯째 제목을 둘로 나누면 본론 부분은 전체적으로 일곱 가지 제목이 됩니다.
세 번째 부분은 결론 부분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13절)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응답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냥 순종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정당하고, 옳으십니다. 내게 가장 타당한 응답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응답에 만족하며 기뻐합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할 뿐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결론입니다.


주기도문의 구조에서 얻는 교훈

지금까지 주기도문의 구조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주기도문은 그 구조에서부터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교훈일까요?
첫째로, 서론 부분이 주는 교훈입니다. 서론 부분에 보면 기도의 三者關係가 나타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첫째는 기도의 대상자인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기도자 자신입니다. 셋째는 내가 속한 공동체입니다. 어디에 공동체가 언급되어 있지요? 바로 “우리”란 단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나 홀로 사업이 아니예요. 기도에는 언제나 삼자 관계가 맺어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진정한 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자는 먼저 기도의 대상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하나님께 무엇을 구한다면 당연히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서 구해야만 합니다. 참된 기도자는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시143:10)
뿐만 아니라, 기도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기억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라는 단어만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도 공동체를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남을 외면한 채로 나만을 위한 기도하는 것은 도대체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기도가 바로 이기적인 기도입니다. 남은 손해를 보든지 말든지 나만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 형제들의 형편을 모른 체 하면서 부르짖는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자에게 요구하시는 게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주기도문의 보충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세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형제 사랑이 없는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기도하는 도중에라도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고 하셨겠습니까?(마5:23-26)
둘째로, 본론이 주는 교훈입니다. 본론이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시기 때문에 구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내 인생을 말하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 무엇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만 합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만 합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항상 해야 될 기도 제목의 영 順位입니다.
본론이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영적인 것을 위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 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집이나 땅을 위한 기도, 돈이나 재산을 위한 기도, 직장이나 사업을 위한 기도, 입시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도, 건강을 위한 기도, 신병 치료를 위한 기도, 자녀들의 결혼을 위한 기도....모든 기도가 현세적이고, 육신적이고, 물질적입니다. 주기도문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영적인 것이 중심입니다. 주기도문에 언급된 기도 제목 여섯 가지 중에 육신적인 것은 일용할 양식 단 한 가지뿐입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섯 번째는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영혼의 건강을 위한 기도입니다. 영혼 건강이 육신 건강보다 백 배 천 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자가 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인생을 파멸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매일매일 유혹을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를 명시합니다. 마지막 부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영적 원수인 사단입니다. 사단은 단 일초도 쉬지 않고 우리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뛰어다닙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우리의 전투는 매일매일 사방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1-12) 우리는 사단을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만 합니다. 주기도문의 전체 제목 중에 단 한 가지만 빼고는 다 영적인 것들이란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인 것을 구해야 합니다.
본론이 주는 세 번째 교훈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정작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양식입니다. 양식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지 못합니다. 양식은 육신의 생존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점을 인정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기도의 첫 번째 제목이 일용 양식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기왕이면 일 년 치 양식을 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좀 더 나아가서 십년 치 양식, 아니면 평생 먹을 양식을 구하면 안 됩니까? 야속하게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위한 유일한 기도가 바로 양식인데, 그나마 하루치 밖에 안 됩니다. 양식이 중요한 것인 만큼 양식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왜 양식을 쥐고 계실까요? 양식은 신앙의 절대적인 도구라는 뜻입니다. 광야 시절 하나님은 여러 날 분의 양식을 주시지 않고 하루하루 양식을 주셨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 때문입니다. 양식이 넘치는 사람은 하나님을 쉽게 떠나버립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그 점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결국은 주기도문은 전체적으로 영적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육신을 위한 유일한 제목이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조차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직장을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세요. 그러나 평생보장의 개념으로 기도하지는 마세요. 차라리 일용 양식을 구하시고, 감사하세요!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주기도문의 정신입니다.
셋째로, 결론 부분이 주는 교훈입니다. 모든 기도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응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빠른 응답이 있습니다. 더딘 응답도 있습니다. 때로는 거절하시기도 하시는데 거절 또한 분명한 응답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든지 기도자의 태도는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높이는 일입니다.
내 인생은 결국 하나님께 귀속된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 품 안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권세 아래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있고 없고는 전체적으로 보면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결국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조차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어떻게 나타났든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기도자의 본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찬미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솔로몬 역시 전도서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 영광! 모든 기도의 결론입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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