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주기도문 서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짤막한 부분을 주기도문 서론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기도하는 사람과 관련된 三者 관계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자 자신입니다. 기도자는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 하나님의 자녀,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대상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셋째는 기도자가 속한 공동체, 즉“우리”입니다. 이 삼자 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의 대상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기도자는 마땅히 자신이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바로 이점을 밝혀주는 것이 이 구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기에 어떤 깊은 뜻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버지여!
본문의 첫 번째 부분은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아버지여!”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바로 나의 아버지십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십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산자입니다.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됩니다. 육신의 부모가 우리를 낳아주셨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은 물론 자연 만물의 源泉的인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말2:10)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64:8)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고전8:6) 하나님은 인생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인생의 소유권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소유에 대해서 먼저, 철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얼마나 관심이 많으실까요? 저는 8월 18일 갑자기 “구안와사”라는 顔面 근육 마비증세가 나타나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오전에 소파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 점심을 한 술 입에 넣었는데, 음식이 주루룩 새어나오는 겁니다. 입이 이상해 진 것 같아서 거울을 보니까 입술이 한 쪽으로 씰그러졌습니다. 중풍이나 뇌졸중은 아닐까? 손과 발을 움직여 보니까 아무 이상이 없어요. 큰 병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 한 대 맞고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이틀 동안 한의원, 양의원, 종합병원, 찾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봤어요. 결론은 마찬가집니다. 중풍도 아니고, 뇌졸중도 아니고, 그냥 안면 마비라는 겁니다. 한 달 쯤 치료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저를 어떻게 사랑해주시는지, 지금 열흘 쯤 지났는데 겉모양으로는 다 돌아왔습니다. 웃을 때에만 한 쪽으로 쏠리는데, 저를 웃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 며칠 동안 묵상을 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성전에 올라갔을 때에 평소 좋아하던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내려와 앉았습니다. 마치 커다란 영혼의 닻처럼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네가 강물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불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너의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사43:1-3) 아멘! 내가 살든지 죽든지, 결국은 나를 지으신 아버지 손에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소유권자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인생에 철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한, 내 인생은 안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내 인생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내 인생에 대관하여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나를 만드셨으니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나는 내 몸의 구조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섬세하게 아십니다. 나는 평소 눈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일을 당하고 보니까, 속눈썹을 움직이는 근육과 겉눈썹을 움직이는 근육이 달라요. 음식을 씹는 근육과 입술을 움직이는 근육이 다릅니다. 눈을 깜박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어요. 눈을 깜박이지 않으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서 바람만 눈이 시리게 들어오고 사물이 제대로 보이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몸을 참으로 섬세하게 만드셨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할렐루야! 내가 기도하는 아버지는 나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내게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시며, 철저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께 기도하는 겁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십니다. 진정한 아버지는 자녀가 잘못 된 길을 가거나, 위험에 빠지는 것을 결코 수수방관치 않습니다. 평소에는 늘 바른 삶을 살도록 지도합니다. 만일 죄에 빠지거나, 위기에 빠진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건져냅니다. 몇 년 전에 서해 바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섬에 놀러갔던 일가족이 바닷물이 밀려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바닷 가운데서 고립되게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서 가족들은 차량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냥 있다가는 꼼짝 없이 파도에 휩쓸릴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가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육지로 나가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구조되고 아버지는 그만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내 목숨을 잃더라도 자식을 살리자!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인류가 죄에 빠져 멸망하는 것을 내버려 두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외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아버지십니다. 그냥 구하신 게 아닙니다. 자기 아들 목숨을 대신 주고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십니다. 바로 그런 분께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도록 돌봐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저는 유복자로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으면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함께 놀아주고, 어디든지 함께 가고,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했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열심히 아버지 노릇을 했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고, 장난감 사 주고, 여기 저기 데리고 다녔습니다.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자, 걸음마 배울 때부터 야구 글러브를 사다 주고, 농구공을 사 줬어요.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고, 야영을 하고, 강 가에 가서 야구를 했습니다. 우리 아이 또래 중에 유치원에 안 다닌 애들은 우리 애들 밖에 없을 거예요. 집이 유치원보다 훨씬 재밌으니까! 그런데도 사춘기가 되니까 아버지가 어디 가자고 하면 가지를 않아요. “아빠, 혼자 가세요!” 고약한 놈들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가장 큰 일은 자기 삶을 잘 사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항상 우리가 건강하고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생명을 주시고, 양식을 주십니다.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인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상에서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캐나다에 가면 베버라는 짐승이 많습니다. 베버는 개울을 막고 댐을 쌓습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생활을 합니다. 포플라 잎이나 연꽃 뿌리를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어떻게 그런 식의 생존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기르시는 겁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마6:26,28-30)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게 살도록 돌봐주시는 아버지십니다. 그런 아버지께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실 줄 믿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하늘에 계신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하늘에 계신”이란 단어입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아버지”란 말이 친근하고 가까운 느낌이 든다면,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뭔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지만,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이란 단어에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은 땅과 대조되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곳입니다. 땅이 어떤 곳입니까? 땅은 죄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땅은 불순종과 불신앙이 가득합니다. 죽음이 있습니다. 병들고, 아프고, 고생스러운 곳입니다.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는 곳입니다. 온갖 불행이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이 땅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어떤 곳입니까? 하늘은 정의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영생하는 곳입니다. 건강하고 편안한 곳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화목한 곳입니다. 모든 행복이 충만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그렇게 다릅니다.
왜 이렇게 하늘과 땅이 다를까요?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땅을 더럽혔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는 순간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그래서 성경은 땅과 관련된 것이면 대개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부정한 음식을 보세요. 배를 땅에 대고 다니는 동물, 진흙탕 속에 사는 비늘 없는 물고기, 땅에서 뛰어오르지 못하는 곤충, 대부분이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요즘도 땅은 가장 큰 골칫거립니다. 땅 값 비싼 곳을 보세요. 대개가 죄가 많은 땅입니다. 카바레, 고급 요정, 술집, 나이트글럽 있는 곳 보세요. 다 비싼 땅입니다. 우리는 이 죄 많은 땅에 몸을 붙이고 날마다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죄로 오염된 땅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 전에 죄부터 털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점을 기억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도대체 내가 지금 욕심으로 기도하는 것인지, 정말 정당한 것을 구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명백히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에 대해서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에게 이런 권면을 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4-16) 육신에 병든 사람들이 있다면 성도들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서로의 죄를 고백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잘못을 깨닫고 서로 시인하라는 겁니다. 그래야 기도가 응답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기도문 본론에서도 언급이 됩니다. 아무튼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마다 더러운 땅에서 깨끗한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내 모든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향하여 “이것은 안 된다!”즉, "no!"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에는 해도 되는 게 있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십시오.
둘째로, 하늘은 인생의 영원한 목적지입니다. 땅은 인생에게 임시 거처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이 세상의 나그네라고 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13) 최근 제 친구 하나가 평생 교직에 몸 담고 있다가 명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서 환송 모임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일찍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별명이 기러기 아빠였습니다. 자식들은 미국에 있는데 아버지는 한국에 있어서 늘 떨어져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한국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자식들 곁으로 가게 되었으니 한국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기러기 아빠는 자식을 따라 미국으로 갔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땅으로 이민 오실 가망성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한시적인 곳이요 영원한 거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름휴가 때 잠시 텐트 치고 야영 생활 나갔다가, 휴가 끝난 후에 아파트 팔아서 텐트로 이사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임시 거처에서 완전한 거처로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늘 나라는 영원한 거처입니다. 땅은 임시 거처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아버지가 계신 하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살기 좋다 해도 하늘 아버지 집만은 못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때에 우리는 땅에 있는 것을 위해서 목숨 걸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과연 천국에까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서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인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산업이 뭡니까? 자동차 산업, 의류 패션 산업, 건축 토목 사업, 통신, 영상 산업, 식품 산업...놀고 즐기는 오락 산업, 유통업, 각종 서비스업...과연 이런 것들이 천국에까지 필요할까요? 천국으로 이민 갈 때는, 단 한 가지도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저는 가끔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남북 이산가족 찾기 할 때 보세요. 북쪽 사람들, 입에 발린 말이 뭡니까? “우리는 어버이 수령님 덕분에 이밥에 고깃국 먹고 잘 살고 있습네다!” 잘 사는 게 뭔지 상상이 가질 않는 겁니다.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에 한국 사람은 한 집에 지게가 세 개요, 미국 사람들은 자가용이 세 대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한 집에 자동차가 몇 대씩 굴리는 게 얼마나 잘 사는 걸까? 가서 보지 않으면 몰라요! 천국도 그렇습니다. 천국이 도대체 얼마나 좋은 곳일까? 사도 바울은 단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4) 인간 언어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곳이더라!
어찌 되었든지,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죄 없는 거룩한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 고향 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제대로 된 것을 구하고 있는지?
우리 아버지
세 번째 부분은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혼자가 아니요, 공동체의 일원임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즉, 나만을 위한 이기적 기도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형편을 아뢰면서 공동체의 형편도 살펴야 합니다. 우산 장수와 소금 장수가 같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한 쪽에서는 비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한 쪽에서는 햇볕 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입시철이 되면 80만 명의 자녀들이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 반 만 붙여 주셔야 됩니다. 욕심이 과한 자식은 부모를 독점하려고 합니다. 내 기도만 들어주시는 하나님! 그런 문제 때문에 하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공유를 선언하도록 하십니다.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사용치 않으시고, “우리”라는 말만 사용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인의 아버지십니다. 적어도 기도할 때만은 이기적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공동체를 생각하십시오. 내 아픔을 탄원할 때에 남의 아픔도 생각하십시오. 내 억울함을 하소연 할 때에 남의 억울함도 기억하세요. 내 궁핍을 아뢸 때에 남의 궁핍도 생각하십시오. 나의 소원이 간절한 만큼 남의 소원도 간절함을 잊지 마세요.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기도자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로,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십니다. 나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내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나를 관찰하고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죄와 파멸에서 구원하신 아버지십니다. 내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시면서 복을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둘째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땅의 죄에서 구별되신 분입니다. 기도자는 마땅히 죄를 회개하고 성결한 모습으로 기도에 임해야 됩니다. 하늘은 우리가 돌아가야 될 영원한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기도하면서 땅만 생각지 말고 천국도 생각해야 됩니다. 과연 내가 구하는 것이 영적으로 제대로 된 것인지? 하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세요. 셋째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한 아버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기도문 서론에 포함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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