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라?
주기도문에는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기도 제목이 나옵니다. 이 기도 제목은 항상 외우셔야 됩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 세 가지는 인간과 관련된 제목입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것,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항상 해야 될 기도 제목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 여러분,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왜 이런 기도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본래부터 거룩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긴다고 해서 거룩해지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기든지 말든지,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이란 말의 의미는 깨끗하고 성결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죄에서 구별되신 순전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거룩하게 여기든지, 말든지 본성적으로 항상 거룩하십니다. 그러면 왜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바로 지상의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세상 인간들은 거룩하지 못합니다. 천상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항상 거룩히 여김을 받고 계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천사들도, 인간들도 100%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다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서 더럽혀집니다. 원숭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지는 않습니다. 개나 돼지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않아요. 심지어는 미물의 곤충이나, 산천초목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한 종자들! 인간만이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지 않습니다. 보세요! 평소에는 하나님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일만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해요. “하늘도 무심하시다!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는 곧, 인간을 통해서, 특히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인도해 달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 세상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
인간은 이 세상에서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명예입니다. “사람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옛 성현의 말처럼 저는 요즘,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무슨 인간 차별주의자냐고 반문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인간은 天賦人權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단 한 가지만으로도 최상의 존재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존재한다고 다 같은 삶은 아닙니다. 삶의 품질로 보면 내용이 엄청나게 달라요.
며칠 전 우리 집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워낙 주차 공간은 제한되어 있고 승용차는 많이 늘어나니까 저녁때는 주차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길 양쪽에 주차를 한 다음에 가운데 통로에 차례로 밀어 넣습니다. 이렇게 넣어 두면 누구든지 안에 있는 차를 빼려고 할 때마다 가운데 통로에 있는 차들은 다 이동시켜야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저녁 늦게 들어와서 가운데 통로 제일 뒤에 차를 놔뒀습니다.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와서 통로에 대 놓은 차 주인을 찾는데 연락두절입니다. 전화를 안 받아요. 어떻게 애를 써서 집은 찾았습니다. 그런데 10분, 15분을 기다려도 안 나와요. 할 수 없이 전철로 가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차 주인이 나타났는데, 담배를 입에 물고 천천히 신발을 끌면서 걸어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 어떻다 얘기도 없이 자기 차를 쓱 빼어 갑니다. 이런 사람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삶의 품질이 문제지요. 제가 어떤 병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는 데서 웬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 지릅니다. 싸움이 난 줄 알았어요. 자세히 보니까 전화를 걸고 있는 겁니다. 소리를 들어보니까 어떤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거는 모양입니다.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욕을 하는 데 주위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사람도 잘 먹고 잘 살아요. 다만 삶의 품질이 문젭니다. 하루 세 끼 밥만 먹고 살면 인간입니까?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면 좋은 인간입니까? 존경 받고, 대접 받는 인간이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명예가 뭡니까? 인격이요, 인품이요, 덕이요, 사랑이요, 관용이며, 바른 행실 아닙니까? 행실이 개판인데 무슨 명예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정신 상태에 따라서 분명한 삶의 등급이 매겨집니다. 그리고 그 등급은 바로 명예에 대한 태도로써 결정됩니다. 얼마나 명예를 중시하는가? 명예를 소중히 여길수록 격조 높은 삶을 살게 됩니다. 요즘 "well being"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제가 볼 때에 진정한 well being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입니다. 개 같은 인간이 외모만 뻔지르르하면 뭐합니까? 성질은 뭐 같은데 옷은 명품입니다. 인격은 돼지 수준인데 몸매는 짱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인간입니까? 인간은 명예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명예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사관학교에 가면 생활이 특이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무감독 시험입니다. 아무도 감독하지 않지만 오직 내 양심이 나를 감독합니다. 내 양심을 양심답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내 이름에 걸린 명예입니다. 사관생도의 명예, 내 인격의 명예! 이 두 가지 명예가 사관생도들의 품위를 유지시켜 줍니다. 얼마 후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그런데 방문의 등급이 국빈방문이 아닌 공식방문입니다. 국빈방문은 뭐고 공식방문은 뭡니까? 다 그게 그것 같은 데 격식이 다르고 명예가 다릅니다. 국가원수가 방문하면 의장대 사열을 하지요?. 의장대가 영어로 뭔지 아세요? "honor guard"입니다. “명예의 수호자!”란 뜻입니다. 제 아들이 국방부 의장대 출신이거든요. 국가원수가 어떤 나라를 방문했을 때 의장대가 나서서 환영하는 것은 국가원수와 국가의 명예입니다. 이렇게 인간 사회는 명예에 따라서 삶의 구조가 정해집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의 약점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입니다. 학문의 가치가 돈으로 결정됩니다.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돈 잘 버는 학과입니다. 예술의 가치가 돈으로 결정됩니다. 요즘 샤갈 전시회가 열리고 있지요?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 몰라도 됩니다. 작가가 무슨 畵風인지,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도 돼요. 입장료 비싸면 좋은 화가입니다. 비싼 것이 좋은 작품이고, 비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좋은 화가입니다. 좋은 남편은 돈 잘 버는 남편이고, 좋은 아빠는 돈 잘 버는 아빠입니다. 유능한 사람은 돈 잘 버는 사람이고, 무능한 사람은 돈 못 버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 구조가 그래요. 이런 세상에서 명예를 위해서 살라고 외친다면 미친 사람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철저하게 미친 소리만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명예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장 품위 있는 인간, 가장 격조 높은 인생은 바로 더 나은 명예를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평준화 바람이 거셉니다. 교육 기회의 평등화가 평준화라는 이상한 제도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과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을 한데 섞어 놓고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이 평준화입니까? 평등이란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똑 같은 수업을 받아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인별로 능력차가 있습니다. 능력차를 무시하면 오히려 敎育이 아니라 苦肉이요, 拷問입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상업 학교에도 명문 학교가 있었고, 공업학교에도 명문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실업계 학교는 완전히 몰락해 버렸습니다. 이런 평준화 정신의 저변에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배아파 하는 군중 심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 공부 잘하는 사람만 대학에 가느냐? 모두 가자! 이런 평준화의 결과로 우리 사회 전체가 下向平準化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학의 수준이 말이 아닙니다.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지 모두 가야만 하는 서비스 센터가 아닙니다. 아무튼, 학력만 하향 되었으면 문제가 없는데, 모든 명예심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도대체 명예로운 것이 없어요. 모든 인간이 하향 평준화 되었습니다. 도둑놈 사기꾼이 정의로운 사람보다 더 설칩니다. 수 십 명을 살해한 유영철이가 감옥에서 인권을 주장하고 있어요. 품질 떨어지는 인간들이 세상을 어수선 하게 만들어도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으로 덮어집니다. 인간성이 하향 평준화되고, 도덕성이 하향 평준화 되고, 가치관이 하향 평준화 되고, 정신 세계가 하향 평준화 되었습니다. 가장 통탄할 일은 우리 사회에 도대체 명예를 존중하는 정신 없다는 겁니다. 명예가 밥 먹여 주냐? 오로지 돈이 최고요, 그래서 돈만 된다면 명예는 헌신짝처럼 내어버립니다. 학자의 명예, 예술가의 명예, 스포츠맨의 명예, 기업가의 명예, 군인의 명예, 직업인으로서의 명예, 공무원으로서의 명예, 학생으로서의 명예.... 명예심이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뚝 솟은 봉화산봉 늠름한 기상과 맑고 고운 중랑흐름 영원한 그모습 활짝 피는 무궁화에 알뜰한 향기도 다모아서 배움의터 이루 겠노라. 평화로 자라나는 중화의 건아. 억만년 빛내리라 중화의 학원.” 모교를 사랑하는 것은 소중한 명예심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애교심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뺑뺑이 잘못 돌려서 재수 없게 다니게 된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뿐만 아닙니다. 가문에 대한 명예심도 없습니다. 저는 재산도 없고, 가족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가문에 대해서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 농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가난해도 왕족의 후예임을 잊지 말고, 왕의 품위를 지닌 인간이 되어라!”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이거든요. 나라를 고려 태조 왕건에게 바치기는 했지만 왕은 왕 아닙니까?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 명예심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입니다. 너무 돈 돈 하지 말고,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우주 가운데서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명예를 위해 사세요. 그래야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그러면 이제 다시 본문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지켜야 될 명예 중에 最上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라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명예가 높아지기고 하고, 실추되기도 합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인생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은 이름이 많으십니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성품과, 다양한 업적과, 다양한 능력을 소유하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만큼 다양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공식적인 칭호는 “여호와”입니다. “여호와”란 단어는 히브리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하야”동사에서 왔습니다. 즉, “존재”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시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출3:14) 여호와란 이름에는 永遠 自存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께 의존하여 존재할 뿐입니다. 여호와란 칭호는 주로 언약을 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으로써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구원을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십니다. 여호와라는 칭호와 함께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하나님의 칭호는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이란 단어를 최초로 한국말로 번역하신 분들은 “하나님”이란 명칭을 만들어 냈습니다. 참으로 전 세계 언어 가운에서 가장 좋은 명칭입니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입니다. 영어로는 “God”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냥 神이라고 번역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란 칭호를 표준말인 “하느님”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하나님은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하나님”이란 칭호는 唯一無二 하신 신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란 칭호는 多神論的인 명칭입니다. 산에는 산신령, 바다에는 용왕, 하늘에는 하느님, 하는 式입니다. 본래 “엘로힘” 또는 “엘”이란 단어의 의미는 “능력자”란 뜻입니다. 엘로힘은 우주의 창조주 십니다. 우주 만물을 움직이고 유지하시는 섭리의 주인이십니다. 여호와, 또는 엘로힘이란 칭호에는 수식어가 붙여져서 함께 관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호와 라파”(치료하시는 여호와),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기), “여호와 쯔바오츠”(만군의 여호와), “여호와 샬롬”(여호와 평화), “엘 솨다이”(전능자), “엘로헤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 등등. 예수님의 칭호도 그렇습니다. “예수”란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서 왕이나 제사장, 혹은 선지자를 세울 때에 머리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십니다. 예수님께는 “어린양”이란 칭호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어린 양을 대신 죽이는 상징적인 제사 행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라는 칭호로 불렀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나의 주)처럼 예수님은 성도들의 주인이 되십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神性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했던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생”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신 예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메시야(그리스도)시며,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성도들의 주인이 되십니다. 성령에 대한 칭호도 그렇습니다. “성령”(Holy Spirit), “성신”(Holy Ghost),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롬8:9), “보혜사”(comforter)등등. 성도를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는 성령님의 神性과 거룩을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성과 능력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무척 아끼십니다. 그래서 절대로 아무나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십계명의 제3계명에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아끼신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단 일분, 일초도 잊지 말아야 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해야 됩니다. 과연 지금 나는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것이 그렇게 내 인생에 필요한 일일까? 그것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이 있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는 것은 그냥 세상 명예처럼 날아가 버리는 헛된 명예가 아닙니다. 내 身上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명예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生死禍福의 결정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산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인생을 최상급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내가 만일 하나님의 명예를 욕되게 한다면 내 인생은 최악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존중한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7-18)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신18:19) 인생의 성공은 로또 복권이 아닙니다. 일확 천금 좋아하지 마세요. 영국의 어떤 사람은 400억 원이 넘는 복권에 당첨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간암 말기 환자입니다. 더구나 그는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죄수입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400억 원이 무슨 소용입니까?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입니다. 영생을 누가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救主신 줄 믿고 마음에 모신 사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의 이름은 상징물이 아닙니다. 표면적인 명예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사화복과 직결된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라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일까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로, 사람들 앞에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언행이 올발라야 합니다. 부도덕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내 행실을 보면서, 그래도 믿는 자가 안 믿는 자보다 낫다는 평가가 내려져야 합니다. 내 행실로 하나님의 이름이 칭찬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내 행실로 인해서 교회가 칭찬을 받고, 예수님이 칭찬을 받으셔야 됩니다. 내 행실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나도 저 사람이 믿는 예수를 믿어야겠다! 그런 말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 말씀이 삶의 원리가 되어야만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어떤 사람이 얼마나 깨끗한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됩니다.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대도시에서 혼자 살면서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정말 바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간다면 그는 정말 하나님을 만날 만 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몸짱”만 되지 마시고, “靈짱”, “마음짱”이 되시기 바랍니다. 청결하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세요. 예수님을 모시고 거듭난 마음이 되세요. 그리스도 중심의 생각과 사고를 하세요. 음란, 탐욕, 교만, 거짓된 생각과 싸우면서 마음을 지켜 가세요.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1:5)
셋째로, 내 삶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됩니다. 성공하면 내 탓이고, 실패하면 하나님 탓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꾸로 사는 인생입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수상자 아홉 명 가운데 일곱 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금메달만이 아닙니다. 메달 수상자의 거의 90%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많은 수상자들이 경기에 이긴 후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안 믿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제발 기도하지 말라! 꼴도 보기 싫다!” 그러거나 말거나입니다. 내 모든 삶에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공을 통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실패한 줄 알았는데 더 유익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인간이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만 가지 죄악이 나타납니다. 인간 사회의 모든 다툼과 분쟁이 바로 인간의 명예를 높이는 데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시21:13)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사5:16)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예는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기도제목 제1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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