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연이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하듯이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주지 않고 기다리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훈련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우리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고 싶지만 때로는 주지 못하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시진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때로는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빼앗길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 26P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 -----
..나는 아브라함과 가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믿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렇다. 믿음은 내가 익히 아는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해 나가는 것이다." ...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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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를 비우는 시기 -----
당시 함께 유학하던 교인 한 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다윗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에게 쫓겨 오랜 기간을 광야에서 머물며 지냈지요. 그것도 그
기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젊은 날을 그렇게 보냈어요. 과연 우리가 그러한 고난 후에
왕위를 얻게 된다고 약속을 받은들 그 고난의 길을 쉽게 갈 수 있을까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많은 분들이 개발되지 않은 몽골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할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복 많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 많은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복을 나누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모르고 지낸다. 또한 복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으로 가려고만 한다. 서울로, 강남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느 땅에 있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어디가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눅10:3)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이리는 세상 또는 세상의 유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양은 이리에게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게 되면 양은 반드시 지게 된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기 어려운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법이다. 양이 세상의 유혹이라는 이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자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는 한 안전하다. 유혹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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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
내려놓는 삶은 한마디로 온유함을 이루는 삶이다
온유의 그리스 원어는 통제된 힘이라는 함의를 가진다.
예수님은 세상 유혹이나 권력자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것이 진정한 온유한 자의 모습니다.
내 속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가 곧 온유한 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실때 내가 온유함의 성품을 덧입고 살아한다.
=비움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주관할때
우리 삶의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순결한 영이 부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게 된다.
내 욕구와 계획과 자아를 하나님게 의탁할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내 안에 부으신다.
=내려놓음의 제사
행복해지려는 열망과 행복해질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않고서는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우리는 내려놓으면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움켜쥐려하고 결국 그렇게 잡고 있는 한 그것은 진정한 우리 것이 되지 못한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가 없는 것에 집착하는 한, 우리가 받은 것을 기쁨으로 누릴 수 없다.
그만큼 하늘로부터 오는 자유를 놓치게 된다.
인격이 존중받는 것도 내려놓아라.
우리의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한 복의 문을 여실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
100%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하고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 하지 않기때문이다.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 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다 누리고 싶다면 실은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양은 이리에게 반드시 지게 되어있다.
세상에 발 하나를 걸쳐놓게 되면 양은 반드시 지게 된다. 양이 세상의 유혹이라는 이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자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는 한 안전하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불행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내 행복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할때 두려움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순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실대 미래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다음에 선택하게 하지는 않으신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래를 내려놓는 순종의 결단을 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려져있다
주의 말씀은 내가 가야할 곳을 인도하시고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신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도 오랜 밀고 당김이 있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 가운데 그에게는 여러 번 실수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도해주셨다.
우리 관점에서 선택한 길을 내려놓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흘러간다.
기적은 순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착각
근대사회를 맞으면서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대도시에는 근대의 문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시계탑이 솟아오르고,
시계가 문명의 상징으로 부상하여 시간의 폭압이 우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시기와는 다른 시간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시간에 오차가 생기면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배가 멈추어서는 위험한 순간을 맞는 시스템 속으로 우리의 삶이 맞춰졌다. 그에 따라 점차로 더 부지런히 더 바쁘게 살아야 성공한다고 믿게 되었다.
시간은 내가 아끼려고 노력한다고 아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타이밍이 변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인정하고 안온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분주함을 벗어버리고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기를 원하신다.
=고난
하나님과 내것이 뒤섞여있을때 그것등능 고난을 통해 정제되어간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 고난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세상과 분리되어 옛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빛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마찰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땅에 대해서 나그네이고 이방인이다.
크리스천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지만
허락된 기간을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야한다.
잠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익숙한 곳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그것에 의지하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고난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사탄이 계락을 꾸미는 것을 내버려두시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복의 근원임을 모르고 지낸다. 복 있는 곳을 찾아서 그곳으로 가려고만 한다.
=고백
하나님은 선한 일을 시작하실때 먼저 우리 안에 기쁨의 소원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절대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분이 아니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고백할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고 하나님은 선하신 뜻 가운데 최상의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과 그 최상의 것이 우리의 눈에 보기 좋은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할때 마음속에 평안이 흐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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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함으로 평안 속에 거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친밀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까지도 그분의 계획 가운데서 완벽하게 이용하는 분이시다. 우리의 무지마저도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하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먼저 일하신다.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 처했을때, 자신의 목표만 붙잡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 우리의 삶은 두려움과 절망에 구속되고 만다. 그 실패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함과 자유함 간우데 거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실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된다. 우리 믿음의 반응만큼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을 체험하게 된다. 믿음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는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더 큰 믿음을 누리게 된다.
==물질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물질을 가져다 줄 사람이 없다. 나의 공급처는 나의 고용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돈이 많아지면 우리는 돈을 의지하게 되고 돈이 우리의 신앙이자 안식처이며 성벽이 되기 십상이다.
하나님은 창의적이신 분이시기 때무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물질을 제공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가신다.
집과 차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이 공간을 위해 늘 기도하는 것이 영적으로 유익하다.
내가 하나님과 동일한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신다.
행복은 반드시 소유와 소비를 통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에는 위안과 힘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비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이나 상황의 절박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우리에게는 생명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나는 매일 네 앞에 있었단다."
"네게 안정이 더 필요하니? 내가 더 필요하니?"
"네 학업의 현장에서 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를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 네가 나에게 드릴 영적 예배란다. "
"네가 나에게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는가가 나에게는 중요하단다. "
내가 처한 현장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있으면서
주님이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이다.
임종의 순간 삶의 졸업장을 따면서 하나님을 깊게 체험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던 것을 기쁘고 감사하기를.
==판단
판단하는 사람을 판단의 흉악한 결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판단이 가져다준즌 크나큰 영적 해악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상처 받은 쪽은 죄를 짓는다. 악한 영은 상처를 분노나 미움으로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잘못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되 책임은 지려하지 않는다. 판단의 영은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는 한 우리는 영적으로 순결해질 수도 건강해질 수도 없다.
==교만
영적으로 가장 핵심적이고 궁극적인 악이 교만이다.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사람과의 비교의식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한다.
하나님은 나의 **을 사용하시기 전에 그 **을 향한 나의 마음자세를 점검하게 하신다. 우리가 묶이는 곳에 항상 사탄이 우리에게 올무를 걸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자아가 성령의 검에 찔려 부수어질때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진다.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오더라도 성령님보다 앞서 나가지 말라.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은 나 자신의 변화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개어지고 예수님의 인격의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이 내가 해야할 가장 큰 사역이며, 내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헌신 자체가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