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신약의 역사

하나님아들 2013. 6. 13. 22:43

신약의 역사

 

 



Everett Furguson, ?Backgrounds of early christainity: 초대교회배경사?, Helmut Koester,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F.F. Bruce, ?신약사?, 보 라이케. ?신약성서시대사?

제1장 역사적인 개요


1. 서론

1) 시간적 관점: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페르시아의 통치~콘스탄틴(BC. 539 ~ AD. 330)

?바벨론 포로기: BC. 586~539

?페르시아의 통치: BC. 539~332

?헬라시대(Hellenistic Age)의 문화투쟁: BC. 332 ~ BC. 142

?하스몬 왕국: BC 142~63

?유대교의 정치적 파국의 시기: BC 63 ~ AD. 66

?사도 이후의 시대: BC. 66 ~ AD. 100

?로마시대(Roman Age; 아우구스투스~콘스탄틴)

2) 문화적 관점:

-BC. 330~200: 창조적이고 확장적인 그리스문화의 지중해 동부에 까지 지배적 영향력

-BC. 200~0: 이집트, 팔레스틴, 시리아, 아시아문화 강화, 그리스쇠퇴.

-AD. 0~200: 로마제국의 확장적 영향, 근동의 헬라문화 보전

-AD. 200~330: 로마의 위기(내부:경제적 ; 외부:야만족의 압력)

3) 자료

-구약: 예언서(학개, 스가랴, 말라기), 성문서(전도서, 에스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상하)

-구약의 외경, 위경, 쿰란 문서

-요세푸스(AD 37-95)

-미쉬나에 있는 랍비문서(AD 200)

4) 역사적 개요

(1) 페르시아 시대(BC 538-332)

①고레스와 분산(Dispersion): 불확실한 시대; 남왕국 생존자들의 중요성(‘유대인’(유대로부터 유래된)); 고레스의 정책(앗수르(왕하 17), 바벨론(왕하 24-25)의 정책을 바꿈); 히브리인들의 성경(역대서를 맨끝(대하 36:22-23; 스 1:1-4)은 성전재건을 위한 고레스의 선포로 끝남; 바벨론에 남기로한 많은 유대인(예레미야의 충고에 따라)과 번성(다니엘, 모르드개, 느헤미야)과 영향력 증가; 어떤이들의 애굽으로 탈출, 유대인 정착자; ②성전과 토라(Torah): 성전재건과 법(유대율법)수집연구;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의 지도력,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위로로 두 번째 성전건축(BC 515; 스 1-6; ‘제2성전기간’ or '제2유대 공동체‘기간); 두번째 귀양그룹(스 1-7): 에스라의 지도, 예언적 계시가 없는 동안 학자의 해석이 큰 권위, 율법의 복구1)

(느 8-10); 성전과 율법의 복구로 신변의 안전(BC 445-444년의 느헤미야의 성벽복원); 사회의 문제(고리대금업, 안식일을 범하는 것,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일, 이방인들과의 결혼); 대제사상은 공동체의 지도자; ③사마리아와의 분열: 귀한한 포로들의 우월감(렘 24; 왕하 17:24; 스 4:1); 사마리아 정부의 성전과 도시 재건의 반대(스 4:1ff; 느 6:1ff); 개혁운동으로 사마리아 종교 정화(에스라, 느헤미야시대); 분쟁은 예배드리는 장소때문2)

(그리심산의 사마리아인을 위한 성전)

(2) 헬라시대(BC 332-167)

①알렉산더의 도래: BC 332년 팔레스틴 정복; 헬라화과정 가속(주둔지의 형성, 도시화, 체육관, 경기장, 경마장, 극장, 헬라축제, 아테네식 화폐제도, 헬라어, 문학과 교육); 유대인들의 분산과 확장(알렉산드리아, 시리아(상업도시 안디옥), 소아시아); ②톨레미 왕조의 지배(BC 301-198): 323이후 제국의 분열; 디아도키(Diadochi: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인 안티고누스(Antigonus: 소아시아지배)와 톨레미(애굽지배)의 팔레스틴 쟁탈전(입수스(Ipsus; BC 301)이후 1C동안 톨레미의 통치), 유대인의 애굽이송(애굽의 유대인의 번성); 구약의 헬라어로 번역; ③실루쿠스 왕조의 통치(BC 198-167): 안티오쿠스 3세(BC 223-187)의 애굽탈환(219), BC 190년 로마의 간섭; 유대집안의 갈등(오니아드: 사독으로 계승된 대제사장직; 토비아드: 세금징수의 권한)과 헬라화된 유대인들의 정치욕; 야손 아래 헬라 문명화 과정(성전국가형태에서 평의회, 시민명록, 체육관, 청년 훈련단(ephebeia)의 도시국가형태로; 안디옥이라 재명명; 실루쿠스의 관원이된 대제사장); 사독 계열이 아닌 메넬라우스의 뇌물로 대제사장이 되고, 헬라화를 추진했으나 유대의 반발 > 안티오쿠스 4세3)

의 예루살렘 노략(BC 169); 유대종교의식 금지칙령(BC 167-164; 돼지제물4)

)

(3) 마카비 시대(BC 167-63)5)


?하스모니안 가문의 제사장 맛다디아의 다섯아들 => ①유다(Judas, BC 160d): ‘마카미’(망치)라는 별명; 게릴라 전; 거룩한 전쟁으로 인식; BC 164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금지령 해제; 예루살렘수복(성전지역 재봉헌, BC 164년 기슬레월 25일(12월 4일) 매일드리는 번재 재시행-‘빛의 축제’(수전절: Feast of Lights, 하누카, 봉헌절(요 10:22))); 유다의 예루살렘장악(BC 163); ②요나단(BC 160-143): 셀류키드 왕인 알렉산더 발라스에게 대제사장직을 선물받음으로 미혹을 사고 143년 사형당함; ③시몬(BC 143-134): 셀류키드 왕 데메트리우스 2세의 즉위(BC 142, 공세폐지-유대인의 완전한 독립); BC 140, 합법적인 기관으로 시몬의 통치(지배자와 대제사장); ④요한 힐카누스(BC 134-104): 확장정책(이두매인6)

 정복과 합병, 사마리아 정복(BC 109)); 사두개인들의 지지; ⑤아리스토불루스 1세(BC 104-103): ‘왕’직함사용(헬라화의 증가); ⑥알렉산더 얀네우스(BC 103-76): 최대한의 정복지, 이중언어 동전발행, 헬라식의 독재자, 바리새인은 주된 적; ⑦살로메 알렉산드라(BC 76-67): 얀내우스의 아내, 바리새인들의 산헤드린에서 지배적인 위치; ⑨힐카누스 2세(제사장)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군대권: BC 67-63): 사두개인과 결탁, 이두매총독 안티파터(Antipater)는 힐카누스를 이용; 미드리다테스와 로마의 싸움7)

; 폼페이장군의 등장과 로마화(BC 64)8)


(4) 로마정권시대(BC 63년 이후)

①로마 정복: 힐카누스편을 든 폼페이(대제사장직으로 공세를 바치고 시리아총독의 감독하); 안티파터의 권력; 데카폴리스(Decapolis: ‘열도시’)지역의 헬라도시의 독립; 노예의 로마후송(유대인수효증가 역할);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세차례 반란과 실패(힐카누스의 내정권박탈, 시리아총독 강한사법권); 로마의 격동(안티파터의 계략); 시저에 호의, BC 48 폼페이 암살; 로마와 동맹(공세의 절감, 군대징집면제, 안티파터9)

의 유대총독직함과 로마시민권부여); 43년 안티파터의 암살 >헤롯과 파사엘의 분봉왕10)


헤롯대왕(BC 37-4): 도망간 로마에서 왕이라고 선언받음; 안티고누스11)

를 제거하고 안토니12)

 설득; 성전재건, 예루살렘의 극장, 가이사랴시 건설; 종교상 유대인, 혈통은 에돔인; 유아살해(마 2)13)


③헤롯의 아들들: 로마에 의해 분할(마 2:22; 눅 3:1); 아켈라오(Archelaus):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방백; 저항으로 AD 6년 하야 -> 로마 영지가 됨; 빌립(Philip, AD 34d): 이두레아와 트라코니티스 분봉왕; 파니온의 수도재건(가이사랴 빌립보라 칭함); 이방인들이 거주함(황제 동전 주조); 헤롯 안티파스(Antipas): 갈릴리와 페레아(Perea)의 분봉왕; 디베랴건설(유력한 이방인 도시); 정략결혼14)


④초기 총독들15)

(AD 6-41): 아켈라오 영토의 로마제국총독의 통치16)

; 통치자들의 수탈17)

; 총독들의 가이사랴의 도시건설; 유대문화의 인정18)

; 그라투스(AD 15-26; 대제사장들의 재임명-요셉 가야바); 본디오 빌라도(AD 26-36; 시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의 빌라도 축출)

⑤헤롯 아그립바 1세: 로마에서의 삶(가이우스 칼리굴라와 친구); AD 37 왕이라는 명칭과 분봉왕직 하사; AD 41 클라우디우스의 아그립바 지지(속주 유대를 영역으로 더해줌); 유대인의 환심얻으려 노력(세베데의 아들 야고보 참수, 베드로 투옥(행 12)); AD 44 죽음(행 12:20-23)

⑥헤롯 아그립바 2세: 유대업무의 전문가; 바울의 변론 청취(행 26); 66년 폭동제지; 92사망으로 헤롯영토는 시리아와 합병

⑦후기의 총독들(AD 44-66): 아그립바 1세의 죽음으로 유대정부는 총독에게 복귀; 디베리우스 알렉산더(필로의 조카, 유대교에서 출교, 애굽의 장관, 베스파시안을 황제라고 선언), 펠릭스와 페스투스(바울의 재판 담당: 행 24,25)

⑧제1차 유대인폭동(AD 66-70): 혁명의 추종자; 총독 플로루스의 66년 성전고의 17달란트 강탈로 폭동 촉진; 네로의 베스파시안 진압 임명; 67년 갈릴리 진압(유세푸스: 갈릴리 폭동의 지도자); 68년 유대정복(네로의 죽음으로 진압지연); 69년(로마의 ‘네황제’-베스파시안); 70년 티투스의 점령; 74년 마사다(Masade) 정복으로 유대는 완전한 속주가 됨(집정관급 보좌관의 통치, 산헤드린 해체)

⑨유대의 재편성: 얌니아에 학원설립(행정적인 소재지역할); 성전중심의 듀대교에서 지역공회 중심의 합체된 유대교로의 변화

(10)후기의 폭동들과 그 결과들: AD 115-117, 구레네, 에굽, 키프러스의 유대사회발란(트라잔황제); AD 132년 팔레스틴폭동, 하드리안황제의 두칙령(거세에 대한 사형, 옛성전자리의 제우스신전으로하고 예루살렘을 ‘Aelia Capitolina'로 재건), 135년 바 코흐바의 반란진압(유대의 민족주의 종식, 생활중심지의 갈릴리이전); 유대교는 이미 성전과 토지로부터 결별된 공회와 율법의 종교로 행로가 정해지다.


제2장 페르시아 통치하의 유다: BC 539 ~ 332

유대교 조직을 가능케 했던 시기: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소생하는 시기(단 11: 1-2에 보면, 다리오 I세→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I세→다리오 III세)

1. 이란의 세력권

1)

2. 알렉산더이전의 근동19)


(1) 페르시아 제국

?한 사람의 대왕이 영도하는 하나의 방대한 제국(동부 지중해 지역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6세기 후반 정복에 의해 세워짐(상이한 특성을 지닌 방대한 지역 포함)

?자기의 통치하에 있는 신민들에게 자기의 문화를 강요하지 않고, 국교나 황실 제의에 묶어두려고 하지않음 > 아람어를 매개어로한 지속적인 통일 결속

-고레스(Cyrus, 538-529): 안산(Anshan)의 왕-미디아의 봉신(vassal) > 반역-미디아통치-아케메니드왕조(Achaemenid dynasty)창시 > 539 바벨론 통합-“바벨론의 왕이요 만국의 왕”-근동의 이전 황제들의 정책과는 달리 페르시아는 정복당한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의 문화를 유지하도록 허락, 성전재건(스 1:1-4; 대하 36:22-23).

-캄비세스(Cambyses, 529-522): 이집트정복(525)

-다리우스(Darius, 522-486): 아케메니드 제국 견고, 확장

-크세륵세스(Xerxes, 485-465): 「에스더」의 아하수에로-이집트진압, 바벨론 파괴, 그리스침공(480-479).

-아닥사스다(Artaxerxes, 464-424): 「느헤미야」, 그리스,시리아,이집트와의 갈등

(2) 그리스

?다수의 민주적, 과두적, 또는 귀족적 국가들로 나뉘어 있는 농업위주의 작고 가난한 나라

?사회조직: 폴리스(Polis)의 독립국가, 개인들이 차례로 정치함(과두정치국(oligarchy)때엔 제한된 소수) > 4C-단합을 원치않음(‘매 야구 시합때마다’)

-8세기부터 지중해와 흑해의 대부분의 지역에 그리스 식민지 형성(밀레투스, 고린도) > 6세기에 이르러서는 지중해 지역 대부분에 그리스 도시들이 건설됨(‘아포이키아이’:모 도시의 주민 일부가 이주) -> 모 도시로의 독립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적대감이 지중해 동부를 지배함 > 반페르시아 운동: 이오니아(Ionia)의 반페르시아반란(500-494), 그리스의 사르디스(Sardis)점령 > 페르시아의 공격(다리우스지휘-트레이스(Thrace)점령; 밀티아데스지휘-마라톤승리; 480년 크세륵세스지휘-살라미스해전의 패배) > 그리스의 저항(479; 플라테이아(Plataea)전투 완승-그리스동맹의 성취 => 그리스의 승리는 동방과 서방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상고하는데 기여(동방의 초강대국에 저항했고, 교육, 문화, 신들의 우수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후에 로마인들의 정신 속에도 형성되었다)

-그리스 동맹: 5세기에 이르자 아테네의 지도자적인 역할-해군력을 앞세워 페르시아점령지를 해방시킴-아테네 동맹 >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고전적 시대(페리클레스(Pericles)의 시대-5C)-그리스 문명의 시초를 기록(교육의 혁명, 궤변론자들(Sophists)의 발생 > 인간을 인간으로 의식하게 됨(“모든 것의 기준은 인간이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 황금시대의 끝(펠로폰네소스 전쟁, 433-404)

-아테네와 스파르타: 민주주의자(아테네), 과두정치인(스파르타)의 펠로포네시안 내전(Peloponnesian Wars) > 404년 스파르타의 아테네 격파.

-알렉산더 등장: 4C, 데베(Thebes)의 멸망(335), 두가지변화(①실용과학에 관심(시나 체육이 아닌, 궤변론자들로 인해 자연법칙, 수학, 의학, 천문학에 관심), ②개인주의의 증가)-아테네의 이소크라테스(Isocrates)에 의해 나타남.

-로마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통치

(3) 그 밖의 서부 지중해

-로마, 시라쿠사(시실리 남동부의 항구도시), 카르타고(아프리카, BC 146 멸망) 사이의 권력 투쟁이 시작




제3장 헬레니즘 세력하의 유다: BC 332 ~ 142

3. 알렉산더 대왕

(1)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 산악지대에 거주, 자급자족의 경제생활, 호머타입의 왕권, 5C부터 그리스의 문화 새오할에 참여, 헬라문명도입(필립2세의 알렉산더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 영입)

-필립 2세(359-336): 겨울에도 전쟁하는 왕, 그리스전체 지배(338, 케로니아(Chaeronea)전투) => 새로운 권력구조로의 중대한 전환

(2) 알렉산더 3세의 생애(356-323)

-그리스 반란 진압(335, 테베(Thebes) 정벌),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해방(334, 그레니스(Granicus)전투), 이수스(Issus; 페르시아왕 다리우스 3세)전투이후 서부개척(베니게, 팔레스틴, 이집트, 두로), 페르시아 점령(가가멜라(Gaugamela; 331)전투), 인더스강까지 정복(327), 바벨론에서 사망

?파괴가 아닌 보전을 목적으로 함, 신전건축(종교적인 강요)

?알렉산더 자신은 페르시아 군주의 역할을 하여 헬라 세계에 동양의 절대군주개념을 도입했는데, 그를 자신들이 지도자로 삼았다고 여기는 헬라인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개념이었다.

(3) 알렉산더의 영향

?알렉산더는 헬라시대를 등장시켰지만 그시대의 요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변화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①그리스의 해외진출, ②그리스 문명의 가속된 정복, ③경제적 단일 세계의 등장-아티카(Attica)의 근거한 은화로 通貨(통화), ④헬라어의 확장-5C의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주장, 코이니 헬라어(Koine Greek)형태, ⑤ 많은 외국인들도 헬라사상을 받아들임, ⑥높은 수준의 교육, ⑦그리스의 들과 종교의 분포-그리스 신들과 토속신들이 동일시(팔레스틴의 옛 셈족의 신들에게 헬라 이름이 주어짐), ⑧철학의 대두, ⑨ 폴리스중심의 사회, (10)개인주의의 증가-전통적으로 세습되었던 행동 양식의 붕괴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옴.

4. 헬라시대의 왕국들

*알렉산더의 여섯 장군과 그들의 제국

?페르딕카스: 왕실수비대의 사령관 > 아시아 지역 섭정역할(바벨론 수도)

?크라테로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왕실의 수호자’로 임명되어 군대의 총사령관이 됨(안티파터가 마케도니아의 지방장관이 됨)

?안티고노스 모노프스탈무스: 소아시아의 중남부 지역(프리기아, 밤빌리아, 리키아)

?리시마코스: 트라키아

?카르디아의 유메네스: 카파도키아의 총독이 됨

?프톨레미: 이집트 차지

 -> 페르딕카스의 패배로 안티파터가 대신 섭정하며(321), 페르딕카스를 대항했던 실루커스가 바벨론을 차지, 안티고노스의 아시아확장을 유메네스와 셀류코스가 저지

*복잡한 연속의 동맹과 음모, 배반과 전쟁의 헬라 시대

-후계자(입수스 전쟁 이전):

                아시아(안티고누스 1세(Antigonus I)): 소아시아와 서부 시리아 > 강력한 왕국

                마케도니아(안티파터(Antipater) > 아들 카산더(Cassander)의 반란): 그리스까지 통치

                이집트(톨레미 1세(Ptolemy I)),

                이란 동부(셀류코스, 312)

                서부의 트라키아(리시마코스) > 소아시아

                -> 입수스(Ipsus, 301)전쟁으로 안티고노스의 죽음으로 각각의 왕조가 됨

-왕조:    이집트(톨레미왕조(Ptolemaic)),

                                시리아와 아시아(실루커스왕조(Seleucid)),

                                마케도니아(안티고누스왕조(Antigonid)),

                                아시아(아탈리드왕조(Attalids))

-3세기 전반엔 알렉산더의 여섯장군의 후손들의 통치(이집트:프톨레미 2세, 시리아:안티오코스 1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

-3세기 중반의 켈트족의 침입으로 파괴와 전쟁 > 무정부상태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약화 -> 반-마케도니아 동맹결성(아이톨리아 동맹)

(1) 알렉산더 대왕 사후의 그리스와 마케도니아(The Diadochi)

?빌립2세(359-336) > 알렉산더 대왕(336-323) > 카산더(317-297, 316:데살로니가 건설, 안티고노스 왕조) > 데메트리오스 1세(294-287, 294:데메트리아스 건설,아테네 점령) >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283-239, 반-마케도니아 결성, 277:켈트족 정복, 273-271:피로스와 전투, 267-261:케레모니디아 전쟁) > 데메트리오스 2세(239-229) > 안티고노스 3세 도손(229-221, 222:스파르타에 승리거둠) > 빌립 5세(221-179, 로마의 간섭, 220-217:사회전쟁(對스파르타와 아이톨리아 동맹), 마케도니아 전쟁:215-20520)

, 200-19721)

) > 페르세우스(179-168, 3차 마케도니아 전쟁:171-168) => 4개 지역으로 분할(168-149) > 안드리스코스 반란(149) > 로마의 속주(148이후) > 로마의 아케아 동맹 격파, 고린도 멸망(146) > 미트리다테스의 로마 대적으로 인해 불행 야기(88-83) > 후일 시저의 재건(44)

(2) 소아시아

-리시마코스의 멸망으로 서부 지역이 독립적으로 발전(셀류시드와 프톨레미의 쇠퇴)

?버가모: 리시마코스를 배신하고 셀류코스를 지지하여 공국이 됨(281) > 필레타이로스(281-263) > 유메네스 1세(263-241: 사르디스에서 안티오코스를 무찌름) > 앗탈로스 1세 소터(241-197: 켈트무찌름, 로마지지) > 유메네스 2세 소터(197-159: 로마의 축복하에 강대국이 됨) > 앗탈로스 2세 필라델포스(159-138: 앗탈로스 왕조, 2세기의 그리스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 > 앗탈로스 3세 필로메토르(138-133: 원로원에 기증) > 아리스토니코스(133-130: 노예해방)

?비두니아: 니코메데스(셀류시드의 안티오코스 1세,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고나타스에 저항) > 프루시아스 1세(230-182: 한니발의 피신처) > 74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감

?본도 왕국: 미트리다테스 2세 크티스테스(302-266: 셀류시드에 독립) > 미트리다테스 6세 유파토르 디오니소스(120-63: 영토확장으로 로마전쟁(86)승리, 술라에 패배(동맹했던 아테네의 파괴), 폼페이의 정복(63)

?갑바도기아: 그리스의 주변에 있다가 폼페이에 정복되어 봉신왕국이 됨, 로마총독의 다스림

(3) 톨레미왕조-이집트

-톨레미왕조: 도시발전-노크라티스, 톨레마이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를 헬라 세계의 지적, 영적인 중심지로 만듬. 강력한 중앙 집권.

-경제적으로 번영, 그리스 예술과 과학의 중심지

-내부적인 반란, 시리아의 침입 > 168년 로마의 간섭

?프톨레미 1세 소텔(323-283: 알렉산더의 이집트 원정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건설(322), 멤피스에서 알렉산드리아로의 천도, 남부시리아, 밀레도, 에베소차지) >2세 빌라델포스(283-246: 가장 번영, 1차 시리아전쟁(對셀류시드, 276-271), 2차 시리아전쟁(260-253)) >3세 유에르게테스(246-222: 권세의 정점, 강한 해군력, 3차 시리아전쟁(246-241)) >4세 필로파토르(222-205: 악화, 나일강 남쪽의 누비아의 독립왕국(206-185), 2차 카르타고 전쟁으로 지중해 교역악화, 4차 시리아전쟁(219-217)) >5세 에피파네스(205-180: 시리아의 안티오코스3세와 마케도니아의 빌립5세의 이집트 분할조약, 팔레스틴이 시리아의 지배를 받다(195)) >6세 필로메토르(180-145: 왕위 계승투쟁) >클레오파트라 2세(170-116: 안티오코스 4세의 이집트 원정(170-168)은 로마의 간섭으로 실패) >8세 유에르게테스2세(145-116: 학자추방으로 로도와 버가모가 새로운 중심지가 됨, 사실상 로마의 속국) >9세 소텔2세(116-108) >10세(108-88) >9세(88-80) >12세 아울레테스(80-51: 로마군 수비대의 이집트 주군(55)) > 클레오파트라 7세(51-30: 폼페이의 살해(48)) >프톨레미 13세(51-47) > 안토니의 자살(30)

(4) 실루시드-시리아

-바벨론 통치, 메데 동쪽의 모든 지역 점령(동쪽의 박트리아에서 서쪽의 아나톨리아:버가모, 갑바도기아, 본도까지), 3세기에 이집트의 시리아와 팔레스틴을 빼앗기위해 노력 점령, 동쪽의 파르티아와 서쪽의 로마와의 긴장, 안티오쿠스 3세(223-187)의 부흥과 확장, 129년 몰락

-다수의 고대성전국가포함(제사장의 지배적인 위치, 신전노예와 신전 매춘부)

-영토의 대부분을 헬라화로 도모(많은 도시건설: 안디옥-쾌락도시라는 평판의 거대한 무역도시; 카토시아(catoecia:정착지)형태: 퇴역장병을 위한 것)

?셀류코스 1세 니가토르(312-281: 티그리스 강변에 셀류키아 건설(312), 안디옥건설(300)) >안티오코스 1세 소텔(281-261: 켈트족 무찌름(275), 1차 시리아전쟁(276-271)과 버가모에 패함(262)) >2세 데오스(261-246: 2차 시리아전쟁(260-253), 박트리아 양도(256), 파르티아 왕국 건설(247:이란영토 전체상실)) >셀류코스 2세 칼리니코스(246-225: 3차 시리아전쟁(246-241)으로 아나톨리아왕국의 강화, 안티오코스의 왕국 독립(240-226)) >3세 소텔(225-223) >안티오코스 3세대왕(223-187: 무기력 극복, 안티오코스의 침입(212-205:동부로의 대원정), 팔레스틴 정복(195), 로마에 패함(191:스키피오형제/마그네시아 전투)) >셀류코스 4세 유파토르(187-175)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테스(175-164: 이집트정복(6차 시리아전쟁:170-168), 마카비반란(168-164)) > 소도시로 전락, 5세, 데메트리오스 1세 알렉산더 발라스, 안티오코스 6세(164-139: 팔레스틴에서 하스모니아가의 통치(164-64)) >7세 시디테스(139-129) >8세 그리포스(126-96) > 아르메니아의 티그리네스의 시리아 점령(83-69) > 폼페이의 로마속주(64)

?파르티아: 미트리다테스 1세의 통치(171-138: 바벨론 정복, 페르시아 본토 정복)

?아르메니아: 파르티아에서 분가하여 갑바도기아 지배, 셀류시드 정복(86) > 로마(루쿨루스:69, 폼페이:64)등장

(5) 시실리와 남부 이탈리아

-그리스인들의 거주지, 4C후반부터 로마와 카르타고에 압력, 아가토클레스의 결속(306)

-에피로스: 피로스(Pyrrhos)왕, 에피로테동맹의 지도자, 마케도니아 군대가 왕으로 선포, 280년 로마침입

-시실리: 시라쿠사는 1차 포에니전쟁(264-241)에서 로마의 속주

5. 정치 이데올로기 및 통치자 제의

(1) 헬라적 정치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특징

?셀류코스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프톨레미는 파라오의 왕조의 상징물들을 점유하면서 합법적인 계승자라고 여겼으나, 헬라인들은 비범한(카리스마)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제우스가 하늘에서 일한다는 스토아 철학의 개념이 도움

?왕은 신적인 기림을 받을 수 있지만, 도시국가(polis)는 시민들의 소유였다. 연맹을 결성하여 지배권을 확보하는 정책(땅이 왕의 소유일때만 무한한 주권을 행사)

?마케도니아: 국민들의 인정을 얻은 왕(그리스같은 외부에서만 신으로 숭배, 로마는 신이 아닌 은인의 수준) => 여러국가에서의 통치자 제의는 각기 다른 형태를 취했다.

(2) 통치자 제의의 기원과 시작

?기원은 동양의 개념이 아니다. 이집트(파라오의 신성은 왕실의 주권형성에 기초이지만, 그것은 직무에 기초를 둔 것이다), 페르시아(왕실 의식을 거행했으나 신으로 추앙되지는 않았다), 그리스(영웅숭배는 이미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임)

?BC 5-4의 위기의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각 -> 알렉산더: 사후에 신으로 숭배

(3) 이집트의 통치자 제의

?마케도니아의 왕을 신으로 숭배 > 프톨레미왕조 > 로마

?프톨레미 1세: ‘왕’이 아닌 ‘프톨레미 구세주(소텔:σωΤηρ)’의 신적 호칭사용22)


?프톨레미 4세 필로파토르(222-204): 디오니소스의 후손이라고 주장, 담쟁이 덩굴문신23)


-> 2세기: 소아시아와 에게해 지역을 잃어버린후 더욱 이집트의 특색을 띰

(4) 셀류시드 제국의 통치자 제의

?셀류코스 2세의 아버지를 신격화(제우스 니카토르)로 관습도입

?지역적 제의들을 장려: 자치권 부여(BC 2C의 예루살렘의 유대처럼 대제사장이 그 땅을 다스림)

(5) 버가모 및 아나톨리아의 다른 지역의 통치자 제의

?사후에 신격화



제4장 하스몬 왕국: BC 142 ~ 63



제5장 로마와 헤롯 치하의 팔레스틴: BC 63 ~ 4

6. 로마

(1) 로마의 특징

내부적인 성취원인: 완벽한 조화의 입헌구조(군주적-집정관, 과두적-원로원, 민주적-의회)와 신앙심(폴리비우스(Polybius))

시민권의 확장 > 단일화-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방자였지만, 빌린 것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 고대의 거대한 도가니

정치: 법의 나라, 이우스(Ius:사법)와 파스(Fas:종교법)가 함께 통치함 > 진선미가 아닌 위대한 정치가의 꿈을 가진 지배자들 > 건축가(전략적 도구), 높은 기준의 도덕적 권위우선

(2) 로마와 서부

포에니 전쟁(카르타고의 용병 vs 로마의 시민병정) - 1차(262-241:사디니아, 코르시카, 시실리회득), 2차(218-201:한니발 vs 스키피오(Scipio Africanus)), 3차(149-146:카르타고의 궁극적 패배) > 라틴어와 라틴문화는 스페인, 골, 영국, 라인 강 지역,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심어졌다.

(3) 로마와 동부

280-275년의 그리스의 이탈리아 남부출정 - 로마와의 전투; 4번의 마케도니아 전쟁으로 결국 로마의 도시가됨(148), 헬라동맹 분해(146), 고린도파괴; 로마의 지방이 되었다(아시아(129), 시리아(63), 이집트(31))

헬라어로 ‘힘’이라는 뜻인 로마는 알렉산더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되었다. ‘정복당한 그리스는 그의 야만적 정복자를 포로로 삼아 거친 라틴 세계에 문명을 가져다 주었다’(호라티우스(Horace)).

(4) 공화국말기: 내란

133년부터의 사회적격변과 내란: 티베리우스 그라추스(Tiberius Grachus; 132.d)의 토지개혁

카이우스 그라추스(Caius Grachus; 122.d)의 사회적 정치적영역으로의 확대

마리우스개혁(2세기말, 외교적전쟁(니미디아, 튜톤족)으로 직업군인 소개-지휘자의 영향력, 100년에의 국내분쟁 군대개입)

코넬리우스 술라(L. Cornelius Sulla; 90년의 민족동맹의 반란 제압,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의 도전(87), 마리우스 지지세력 제거(80))

제1차 삼두정치(59): 폼페이, 크라수스(Crassus), 줄리우스 시저 > 루비콘 도하(49) > 파살루스 전투(48)의 시저승리 > 44년의 영구적 독재자로의 즉위 > 시저암살(44.3.15)

제2차 삼두정치: 옥타비안, 안토니, 리피더스 > 액티움해전(Actium)의 옥타비안 승리 > 톨레미왕조끊김(30,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옥타비안이 할 일은 새로운 제도를 세우는 것이었다.

(5) 아우구스투스(BC31-AD14)

새로운 상황:강력한 지배력, 국경선에 관한 중앙정책, 지배 계급의 지지확보, 질서와 안정필요 > ‘레스 케스테(res gestae:주목할 행위나 일들)’ 공식문서(27) >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음: 로마 군단의 지휘자 > 지방 군대의 임페리움 마이우스(imperium maius): 군단지휘관 위원회의 권력 > ‘팍스 로마나(Pax romana)’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눅2:1)

초기 기독교를 위한 아우구스투스의 중요한 공헌은 평화, 경제적 번영, 향상된 의사소통, 안정된 정부, 개혁분위기를 포함한다.

(6) 초기 로마제국24)


티베리우스(Tiberius: 14-37): 아우구스투스의 의붓 자식(아우구스투스의 둘째 아내인 리비아가 그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 사위(방탕한 율리아와 결혼), 양자로서 55세에 권좌에 오름; 명석한 군지휘관, 지배자숭배 불인정, 점성술에 관심; 격리생활(26년부터 키프리에서)과 세자누스(Sejanus)25)

 처형(31) ⇒ 국경선에 안정을, 지방에 더 나은 질서를(매년 바꾸던 지방총독들을 오래 관리하게 함: 10년동안의 빌라도 유대총독생활)

가이우스 칼리굴라(Gaius Caligula: 37-41): 티베리우스의 형제인 드루수스(Dru년)의 손자; 정신분열증, 국고탕진, 신격숭배요구, 암살; 유대인과의 마찰(알렉산드리아의 반유대폭동)

클라우디우스(Claudius: 41-54): 칼리굴라의 삼촌, 절름발이, 역사가에서 왕좌로(50세); 크레스투스(Chrestus)26)

의 선동으로 로마의 유대인 추방27)

; 해외정책으로 영국을 포함

네로(Nero: 54-68): 선정(quinquennium; 세네카(Seneca)와 부루스(Burrus)의 고문역할)28)

; 폭정(부루스사망(62), 세네카사망(65), 아내 옥타비아살해(62), 로마의 대화재(64)29)

, 팔레스틴 유대인대반란(66; 베스파시안의 반란 책임), 헬라물건들 애호와 체육과 예술의 아마추어적인 참여; 서부 군단의 반란과 친위대의 반란으로 도주, 자살(30세)30)


68/69년의 내란: ‘프린켑스는 로마외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로마의 비밀을 발견한 장군들; 일년동안 네명의 왕좌(스페인 총독 갈바, 루시태니아의 전총독 오토, 독일에 있는 군단장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안)

베스파시안(69-79): 플라비안 왕조(Flavian)를 시작; 경제적 안정, 중앙정부에 대한 자신감, 지방 정돈을 통한 질서회복에 역점; 군대와의 밀접한 관계(아들 티투스의 유대진압(71))

티투스(79-81): 베수비오 화산폭발(79)사후 처리, 경기장의 개장으로 시민들의 호의를 삼

도미티안(Domitian: 81-96): 원로원의 귀양과 처형; 신격화(‘주와 신’(dominus et deus)), 기독교의 핍박자요 요한계시록의 기록된 황제; 살해됨

네르바31)

(Nerva: 96-98): 과도적 인물; 부대지휘관 트라쟌을 양자삼음(군대의 지지를 얻기위한 응급조치); 최상의 발전

트라쟌(Trajan: 98-117): 스페인출신(이때부터 지방의 위치 동등한 동역자로의 상승); 해외원정(최대영토: 다뉴브강-유프라테스강); 2세기부터의 산발적인 기독교 탄압

하드리안(Hadrian: 117-138): 안정정책; 팔레스틴의 두 번째 유대인반란(바 코바(Bar Kokhba)의 반란: 132-135, 예루살렘을 식민지 앨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짓고 성전자리에 주피터와 자신의 신전을 지으려 햄)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us Pius: 138-161): 평화롭고 무사한 통치; 학식있는 자들과 철학자들을 모음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 전염병(메소포타미아에서의 병정들의 전염)의 해결; 의무와 원리의 기간; 가장 많은 기독교 순교자

(7) 후기 로마제국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코모두스(180-192)의 세습의 나쁜 결과로 살해되고, 전쟁이 뒤따름 > 세베란 왕조 시작; 로마에서의 시리아 영향대두

3세기에 이르러 문제들: 국경문제(중앙 아시아 민족의 이동으로 북방경계에 압력, 파티아의 동쪽압력), 경제문제(돈의 구매력 감소와 통화가치의 저하로 중산층의 부도), 제국내 종교적 갈등문제

로마제국의 회복: 군인황제(데시우스, 일리리아)의 상황안정; 황제의 권력장악(디오클레티안, 콘스탄틴)-실제적인 절대군주로 통치함.

6. 로마 제국의 행정 제도

(1) 도시들

권력과 정부에 관한 한 도시들의 집합; 특권에 따라 분류됨

① 콜로니에 씨비엄 로마노럼(로마 시민들의 거류지): 타향에 있는 로마 식민지로 퇴역 군인들의 거주지(빌립보, 고린도, 피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움, 루스드라, 토로아)

② 뮤니시피아(municipia) 또는 오피다 시비움 로마노룸(oppida civium romanorum:로마 시만들의 도시들):

③ 라틴도시들: 공무원직을 가짐으로서 로마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음

④ 자신들의 내부적 행정소유: 에베소, 서머나, 다소, 시리아의 안디옥

⑤ 연방 도시: 아테네, 두로, 로도

서부도시의 행정부: 로마의 것을 본따는 경향

① 두명의 집정관(consuls), ② 치안관(praetors): 일년에 12명으로 재판관들, ③ 재무관(quaestors):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직위, 매년 20명, ④ 조영관(aedile): 공공건물, 도로, 공중 위생관리(롬 16:23절의 성의 에라스도)

동부도시의 행정부: 지방 정부에 있어서 다양성 보임, 자치 조직 유지

아테네: 시민집회(에클레시아:헬라 도시들의 시민들의 정치적 집회를 통칭하는 말. 행 19:39,41참조)의 입법적, 사법적 결정하는 직접적 민주주의 제공. 아레오바고(Areopagus)는 최고 행정 기관(행 17: 19,22에서 바울은 언덕이 아니라 재판소에 섰었다).

폴리튜마로 나뉨: 민족성에 따라 나뉘어진 도시들의 자치 관할 구역

(2) 속주(屬州)

원로원 관할: 군단의 주둔이 필요없던 10개의 지방은 원로원에 의해 관할됨; 속주의 총독(프로콘설(proconsul): 행 19:38, 집정관의 대리); 원로원 의원 경력의 전성기는 로마에서 집정관이 된 후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총독으로 일하는 것; 아우구스투스의 절대권력(BC 23년 이후)으로 관할뺏김.

황제 관할: 군사 속주였음(시리아); 중요한 속주엔 전직 집정관이나 치안관이었던 원로원 의원을 보조로 두어 총독의 역할 맏음; 작은 속주(유대)는 보조병력을 지휘하는 기사 계급중에 총독선출32)


이집트: 황제의 특별한 개인 소유로 취급

콘실리움(concilium, 코이논(헬)): 속주의 집회로 지역의 지도자들의 견해를 로마에 표현하는 통로, 황제 숭배를 선도하는 황제의 도구(행 19:31의 아시아 관원들)33)


(3) 섭정왕국

동방에서 헬라화가 미비한 지역에서 정부를 본국인들에게 맡김; 섭정왕(로마의 황제에게 피보호자 관계로 로마의 허락에 의해서만 왕의 칭호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 헤롯(마 2:1)과 그의 후손), 국내 정치에 간섭받지 않고, 자신들의 사용을 위해 세금 거둠, 군대 소유; 야만인들과 본국사이의 완충역할



제6장 예수와 사도시대의 팔레스틴: BC 4 ~ AD 6

2. 대제사장의 역사

①포로후 시대에 신정국가의 우두머리 역할; 바사 등 제국의 인정을 받음; 사독계열에 국한(솔로몬 성전부터); 행정이 아닌 성례에 관한 의무 부여; 24명의 제사장과 삼절기, 속죄일에 대제사장 역할

②마지막: 오니아스 3세(BC 174); 메넬라우스; 알키무스(BC 161); 7년간 공백; 유다 마카비의 형제 요나단(BC 152); 시몬(BC 143: 영원한 제사장-몰락할때까지 하스모니아에서 이어짐34)

); 쟁탈전 끝에 로마의 점령(BC 63)후에 힐카누스에 주어짐; 안티고누스가 힐카누스이 귀를 자르고 대제사장이 됨(BC 37년 로마에 사형) -> 헤롯의 정권

③무기력: 헤롯에 의한 대제사장의 이동; 아켈라오는 5년간 세 번 바꿈

④로마의 지배하에서 권력을 다시 잡음: 의복을 돌려받음(36년 루키우스 비델리우스: 디베료의 화해)/ 요아잘; 안나스(AD 6-15); 사위 가야바(AD 18-36);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 헤롯 아그립바의 유대 왕때 3명의 대제사장 임명

⑤아그립바 죽음후 요셉(44-47)과 아나니아(47-55); 안나스 2세와 가말리엘의 아들 예수(63-65)

3. 초기 로마제국시대의 유대인

앗수르와 바벨론의 분산이 로마제국과 파르티아제국으로의 확산; 로마제국의 약 7 헬라인과 로마인의 반유대인감정; 헬라와 로마문화를 접함(보편주의와 개인주의 영향); 로마제국에서의 유대교의 특권적 위치(자신의 율법에 따른 삶)

4.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의 유대문헌 및 그 외의 자료들

(1) 헬라어로 된 구약

①70인 역(LXX, Septuagint): 폴 카알(Paul Kahle)의 연구, 제롬(삼중적 형태), 라가드(Paul Anton de Lagarde)의 연구; 히브리인의 종교 이념들을 헬라언어에 적용하는 일은 기독교의 전파를 준비하는 종요한 전환단계; 구약을 인용한 대부분의 신약성서는 70인 역을 따름; ②다른 헬라어 역본들: 얌니아 시대의 역본(아킬라(Aquila),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던 70인역을 부분적 대체하기 위함); 심마쿠스; 데오도티온; ③알렉산드리아 정경(Alexandrian Canon)

(2) 헬라어로 된 유대문헌: 단편들(Fragments)

알렉산더 폴리히스터(BC 80-35: ?유대인에 대하여?); 요세푸스의 역사적 저술; 필로의 철학적 저술

(3) 외경

개신교의 ‘외경’(Apocrypha), 카톨릭의 ‘제2정경’(Deutero Canonical); 유대문헌중 임의로 선택; ①에스드라 상(Esdras I): 역대서와 에스라, 느헤미야 내용에 기반, BC 621년의 역사관련, 세청년의 왕실이야기(포도주, 왕, 여자); ②에스드라 하(Esdras II): 에스라 4서로 알려짐, 일곱 개의 환상; ③토빗(Tobit): 분산된 상황에서의 유대의 경건함 유지; ④유딧(Judith): 이방 침략군들로부터 구출받게 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율법에 대한 애국적 충성심 강조; ⑤에스더서의 첨부서들(Additions to Esther); ⑥솔로몬의 지혜(Wisdom of Solomon): 헬라철학과 유대잠언전통을 화합시키려는 노력을 대표하는 일과 신약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생각들을 합체시킴; ⑦시락(Sirach); ⑧바룩(Baruch); ⑨예레미야의 편지(Letter of Jeremiah); (10)다니엘서의 첨부서들(Additions to Daniel):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청년의 노래, 수잔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11)마카비 1서(Maccabees I); (12)마카비 2서(Maccabees II)

(4) 위전(Pseudepigrapha)

어떤 다른 종류에도 속하지 않은 유대문학; ①마카비 3서; ②마카비 4서(영감되어진 이성이 정욕을 지배하는 최고의 통치자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헬라어 논문); ③아리스테아스의 편지(톨리미 2세 필라델푸스의 궁중에서 일하던 공무원이 필로크라테스에게 쓴 보고서); ④주빌리서(창조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심까지의 역사를 고쳐 씀); ⑤에녹 1서(Enoch I); ⑥에녹 2서; ⑦ 12족장의 증언(야곱이 열두아들이 죽기전에 각자 자신의 가족들에게 한 유언); ⑧모세의 승천(Assumption of Moses): 신명기 31-34의 개정본; ⑨이사야의 승천; (10)바룩 2서; (11)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 (12)모조 포킬리데스(Pseudo-Phocylides): 교훈적인 시; (13)시빌의 신탁집(Sibyline Oracles)

5. 당파들과 분파들

(1) 하시딤

포로기 이후에 경건한 유대인35)

 단체들의 서로 격려(말 3:16ff); ‘경견한 사람들’로 헬레니즘의 생활 방식이 톨레미와 셀류키드 지배하에서 유대교속에 잠식함을 개탄; 에피파네스의 말살 정책에 하스모니아와 제휴하여 저항; 평화이후 갈등의 조짐(알키무스-요나단); 요한 힐카누스때에 동맹의 완전 붕괴

(2)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충실했으며, 지도적인 분파에 속함;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

바리새파는 모든 것을 운명의 신과 하나님의 섭리 탓으로 돌리며, 의를 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사람에게 달려있지만 운명의 신이 늘 간섭하고 있다고 믿음; 모든 영혼은 영원하며, 선한 자의 영혼은 다시 다른 육체로 들어가고, 악한 자의 영혼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고 믿음; 이런 교리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드릴때나 제사를 드릴때에는 바리새인들의 지시에 따라서 행했다. 바리새인들은 말과 행동에서 온전한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큰 신뢰를 줌;

바리새파의 공동체 생활은 서로간에 아주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이루어 감; 바리새파 사람들은 생활의 수준을 단순화하고, 사치와 낭비하는 생활을 싫어한다. 그들은 생활에 유익한 것으로 선택된 율법을 철저히 따르며, 그들에게 주어진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여김; 그들은 윗사람을 잘 공경하고 보호하며, 성급하게 추정하여 자신들의 제안을 부정하려 하지 않음;

유대인의 한종파로서 나머지 유대인들보다 율법을 정확히 해석하고 종교 제도를 엄격히 준수한다36)

는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은 알렉산드라의 통치하에 급속도로 늘어나고 세력를 확장하였다. 알렉산드라는 종교적 경외심이 남달리 뛰어났기 때문에 이 바리새인들의 말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였고, 이에 바리새인들은 이 순진한 여인을 이용하여 마침내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였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추방하고, 소환하고, 권좌에서 밀어내기도 하고 속박하기도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왕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그들이 누리고 그에 따르는 비용과 뒷감당은 알렉산드라의 몫이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800명의 동료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왕에게 간언했다고 디오게네스를 고소하여 알렉산더의 친구였던 디오게네스(Diogenes)를 살해하기까지 함;

헤롯왕의 통치시대에서는 헤롯을 대적; 로마지배하에 있을 때는 로마에 반대하기 위해 마사다를 점령한 상태에서 위기의 상태와 구제불능의 재난상태임을 생각하여 대제사장들과 함께 선동자들을 설득하는 위치를 담당하기도 함

(3) 사두개파(Sadducees)

사두개파의 교리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영혼이 몸과 함께 죽는다고 생각하며37)

, 철저하게 율법에 있는 것만 준수하려고 한다. 그들은 구전을 배격하고 성문법(成文法)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단지 극소수에 의해서만 이해되어졌는데 그들은 최상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실제적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음; 사두개인들은 운명의 신을 거부하며,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도 거부한다.

그들은 생각을 악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선악의 선택에 있어서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쪽을 택하는냐는 인간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사후 영혼의 지속성에 대해서 형벌이나 보상을 전부 거부하는 입장; 사두개인들은 자기들끼리도 행동에 있어서 그리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같은 동료들끼리 교제를 할 때도 이방인들을 대하듯이 거칠게 행동

요한 힐카누스(BC 130) 이후로 하스모니안 지배자들을 지원함(BC 76년 얀네우스의 죽음까지:여당인 사두개인, 야당인 바리새인 ⇒ 88년경의 반란으로 바리새인 800명의 십자가형); 그러나 얀네우스가 죽고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정권을 잡자 바리새인이 정권획득

(4) 에세네파

①그들의 생활습관: 에세네파는 특별히 고결한 수도생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대인출신의 사람들로서 다른 분파보다, 동료들간에 느끼는 애착심이 더욱 강함; 그들은 쾌락을 악으로 간주하여 기피하고, 대신 절제와 감정의 억제를 귀중한 것으로 봄; 결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고, 대신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가족같이 대하여 그 아이들을 자기들의 원칙대로 교육시킨다. 그 어떤 여자도 한 남자에 대해서 정조를 지키지 못하리라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여자들의 음란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함; 그들은 부에 대해서도 마음을 쏟지 않는다. 그들의 법에 따르면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면 그의 재산은 모두 그 파(sect)에다가 바쳐야 한다. 개인의 소유는 공공의 소유와 연결이 되며, 형제들처럼, 마치 유산과 같이 위에서 내려오는 재산만을 소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봉사할 책임자를 선출하는데 책임자의 임무는 전체의 뜻에 따라 결정; 필로의 ????선한 사람은 참으로 자유롭다????/ 요세푸스의 경험

②그들의 거주지: 한도시에만 몰려살지않고 여러명씩 그룹으로 모든 도시에서 흩어져 삶;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아주 친분이 두터운 관계; 입는 옷과 여러 가지 행동에 있어서 그들은 마치 엄격한 훈련을 받고 있는 생도들 같았다. 옷이 찢어져 누더기가 되거나, 오래되어 닳아 헤지기 전에는 외투와 신발을 바꾸지 못함;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경건은 특이한 형식을 띤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는 세속적인 일을 하지않고, 선조들로부터 전해오는대로, 마치 태양이 떠오르기를 간청하듯이 몇가지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 그들의 말 한마디는 맹세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 말한 것을 어기는 것은 법정에서의 위증보다 더 나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고함없이 말을 어겨 신의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미 심판받은 것; 그들은 고대의 문서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과 육체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것에 대한 글들을 하나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것을 사용해서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에 대한 안목을 넓혀, 의학적인 근거와 여러 보석(부적으로 사용)들의 효력을 연구; 그들의 육체는 부패하고 또 그 구성요소가 언젠가는 사라질 물질로 되어 있지만, 영혼은 영원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음; 그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확립하고, 선을 추구하여 악에서 떠나고자 함;

유다의 안티고누스가 살해될 것을 예언; 메나헴의 헤롯왕 예언(행 13:1);

(5) 열심당원들

-종교적 열심의 전통: 비느하스의 ‘열심’(히:퀴네/ 헬:젤로) → 엘리야의 열심(왕상 19:10) → 맛다디아의 열심(마카I 2:24-7)

-BC 47 히스기야(애국적인 저항자); 아들 유다(43)에서 66-73년의 마사다까지 평민들의 투쟁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존경받음

-요세푸스: AD 6년:아켈라오 파멸이후 로마의 속국으로 퀴리니우스의 인구조사(행 5:37)로 유다가 창설; 바리새파의 신앙노선이지만 (반대로) 멍에를 끊고 주도권을 잡으려고 함; 주후 66년 67년 겨울에 예루살렘에서의 전쟁을 준비하였다. 즉 모두 성벽을 수리하고 도시 모든 곳에서 창과 전쟁 무기들을 준비; 전국에 산재하던 도둑무리의 두목들은 약탈을 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이제는 하나로 연합하여 통치자가 없는 예루살렘을 습격한다. 강도들은 자신들이 열심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치 악한 일보다 선한 일에 더욱 열심인양, 그리고 다른 사람의 본이 되는 것 이상으로 더욱 선한 일에 모법이 된다는 것처럼 열심당이라는 이름을 붙임; 열심당은 성전에서 나와서 성문을 이두매인들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폭풍중에 성전을 침입한 이두메인들과 함께 잔인하게 살육하는 모습; 열심당은 시몬을 공격하였지만 시몬에게 격퇴당하였다. 상당한 숫자의 열심당원들이 죽었고, 나머지는 예루살렘으로 쫓겨감; 열심당원들은 시몬의 아내를 붙잡았는데, 이로인해 시몬은 열심당에 대한 분노를 더 크게 만들게 됨; 결국 열심당원들 간의 배반으로 예루살렘 성은 시몬에 차지; 열심당은 이름 그대로 악한 행동에 열심을 다하는 일단의 무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선한 행동에 대해 열심히라는 뜻에서 열심당이라고 자칭했다. 그들은 야만스런 그들의 성품을 보여주는 악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든지 아니면 최고의 악을 선으로 생각했든지간에 아무튼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데 열심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악을 자행하는 열심당들은 행한 짓에 합당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며, 하나님이 이들 모두에게 벌을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처벌을 그들에게 내리셨으며, 심지어 다 죽어가는 자들도 마지막까지 갖가지 혹심한 고통가운데 죽어가게 만드셨다(요세푸스)

(6) 쿰란 공동체

-BC 2세기의 하시딤에서 소급; 다니엘서의 ‘마스킬림(지혜로운 사람들)38)


-하스모니안의 대제사장직 장악으로 마스킬림의 불평 > 의의 교사의 지도아래 ‘마스킬림’은 유대 광야에 나가서 사회를 이룸39)

; 엄격한 생활윤리:공동체의 규율서, 엄격한 입문과 서약; 바리새파보다 엄격한 율법해석(예언서의 우선성)

-‘의로운 남은 자들’,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단 7:22,27)로 자기해석

⇒에센파의 한 그룹으로 생각할 수 있다.


I. 메시야의 대망

-메시야(히,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시 105:15; 왕상19:16), 대제사장(레4:3,5,16; 6:22), 왕(삼상16:6; 24:10; 애 4:20)

-메시야의 대망은 낙담된 환경하에서 영광(호 3:5)→야웨의 날에 대한 소망과 다윗 주권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혼합됨(렘 23:5)

-표현들: 스룹바벨(순:슥 6:12)→레위지파(하스모니안 왕조)→솔로몬의 시편과 유사한 눅2:11(그리스도 주)

-구약의 기록물: 약속들의 총화(사 55:3):고레스→‘인자와 같은 이’(단 12:3):단체적 의미

-복음서의 인자란 명칭은 단지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발견되며, 그 사용과 의미에는 독창적인 발전을 한 것임

-두가지 기대: 압제자의 멍에를 끊어버릴 다윗가/영적인 사회에 대한 기대(눅 2:30)


II. 초대교회 당시의 유대교

-세계에 널리 흩어짐(헬:디아스포라); 행2:9-11;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의 후예; 애굽(알렉산드리아, 구레네)의 다수거주; 로마에까지 거주

-국민적 삶의 중심에의 예루살렘 성전: 타미드의 기록(향 소제 전제 쉐마기도 시편으로 끝); 3대 절기(7일간의 무교절(춘분무렵,유월절로 시작):농경의 시작→무교병(출12:39)/ 7주후 오순절(보리와 밀의 수확의 끝맺음)→율법(출 19:1)/ 초막절40)

(추분무렵):수확의 끝인 포도와 감람열매의 수확→광야(레 23:42))

-반세겔의 인두세로 성전 유지(한세겔=드로의 은드라크마: 마 17:24-27), 십일조는 레위인에게(레위인의 십일조가 제사장에게)

-성전중심에서 회당중심으로 변함: 회당:방랑후기의 여러세기들을 통하여 발전; 비희생적 예배로 율법과 예언서 통독과 해석이 순서에 들어있음(눅 4:16; 행 13:14); 순서:부름 웨마암송 기도 십계명 율법과 예언서낭독 해석 축도; 이방도시에 영향(행 15:27; 17:17); 열명의 정족수(행 16: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할례를 요구했기에 방관자일 뿐이다(행 10:2); 그러나 회당에서의 복음은 유대인들과 아무런 구별이 없었다. 70년이후 회당은 성전을 이어받는다.

-성경:율법(오경)+예언서(전기예언서:수삿삼왕, 후기예언서:사렘에12소선지서)+성문서(시잠욥아룻애전에단스느대); 눅11:51


III. 침례요한

-요세푸스(고대사)에 언급

-예언자적이며, 종말론적 설교; 에센파, 쿰란파, 유대인들에게도 침례의 개념은 있으나, 다르다; 에논에서 베뢰아로 돌아와 분봉왕 안디파에 의해 체포(막 6:18)

IV.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치안기록의 수준: ‘크레스투스’(49,수에토니우스), 네로의 로마대화재(64,타키투스), 기독교의 득세(112,플리니)

-유대의 기록: 유대전승(70-200,탄나이틱시대), 고대사(93,요세푸스)

-요단에서 침례(막 1:10-11; 사 64:1)→40일 광야→세겜의 요한과 요단의 예수(바리새인의 악용으로 유대로 물러감(요 3:22))

-하나님의 나라: 요한의 체포(막 1:14f)→갈릴리의 사역(마 4:12-16; 사 9:1)→“하나님 나라”(막 1:15)

                정복되지 않는 영원히 지속될 나라(단 2:44; 7:14,18,27); 아바(신뢰성있는 기대로 의뢰하라; 갈4:6; 롬 8:15ff)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다(눅 11:20; 막 9:1; 눅 12:32; 막 10:45)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의 사역에 현존한다/ 예수님 자신이 그 나라라는 예수의 인격

-인자와의 관련성: 다니엘, 대속물(사53:10); ‘나’의 대명사(막 8:27; 눅 9:18; 마 16:13)

V. 예수와 세상의 나라들

-AD 6 직접적인 로마의 통치: 헤롯의 복권; ?전쟁의 규칙?(쿰란); 다른 종파들과의 차이(마 11:30; 23:4; 요 8:6); 회당에서의 반대로 군중들에게 설교: 안식일의 해석차이(막 2:27)

-예수의 제자선택의 포용성: 난폭한 개인주의자들의 집합(세리(증언할 수 없음), 열심당원 시몬, 우레의 아들, 가룟(그리욧의 사람))

-갈릴리: 사도파송(마 10:17; ‘합당한 자’:에센파의 규칙이 아니라, 요한의 설교를 들은 신의 현현을 기다리는 자) → 갈릴리 분봉왕의 의심(막 6:14-16)+팔레스틴의 헤롯당과 바리새파의 동맹 → 빌립의 영토로 건너감 → 무리의 따름(지휘관없는 군대: 막 6:34; 요 6:15) → 예수의 거절과 제자들의 떠남

-유대: 초막절에 예루살렘 도착(막 10:1; 요 7:2ff):가르치는 일에 주력 → 평화적 사역(눅 13:4)임을 강조 → 마지막 방문(30,유월절):나사로 → 나귀(평화의 방법:슥 9:9) → 무지한 백성(호산나:승리를 주소서; 시 118:25) → 성전청결사건(성전의 신성모독에 항거:이방인의 예배처로써의 외정이 박탈당했다: 사 56:7) → 대제사장들의 위기(최근의 폭동:막 15:7) → 유다의 거래 → 마지막 유월절 식사(막 10:45) → 경고(슥 13:7; 막 14:27; 눅 22:35-38; 막 14:78(‘먼저 가리라’))

VI. 예수의 심문과 처형

-감람산 → 절호의 기회(요 18:3,12) → 체포(막 14:48) → 안나스의 집(요 18:13):비공식 심문(요 18:24) → 산헤드린의 의장인 가야바에게 심문(막 14:58):메시야냐?(막 14:62; 시 110:1) → 참람죄 → 로마의 재가:빌라도(요 18:29; 눅 23:2) → 빌라도의 변화:갈릴리인이므로 안디바에게(화해: 눅 13:11), 눅23:16; 요 18:31; 요 19:12 → 바라바(막 15:6)



제7장 예수와 사도시대의 로마제국: BC 4 ~ AD 66





제8장 속사도 시대의 로마제국: AD 67 ~ 100

VII. 초대 예루살렘 교회

-예수의 부활신앙

-성령의 시대 도래(욜 2:28; 민 11:29); 침례요한의 선포의 내용; 예수의 약속(요 14-16)

-초대 공동체: 12사도(12지파의 심판관:마 19:28; 눅 22:30; 약 1:1); 맛디아의 합세;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지도력(막 3:21; 요 7:4; 고전 15:7; 행1:14; 갈2:9; 1:19; 행15:13); 공동재산 소유; 일반 유대인의 예수에 관한 관념(고전1:23; 신21:23)=가장 원초적 기독론(행3:12-26); 호칭:나사렛파(Nazarenes:행9:2; 19:9); 반응:광범위한 환영(행6:7)과 적대심(사두개당, 성전맡은자)

VIII. 스데반, 빌립, 헬라파들

-히브리파(아람어)와 헬라파(헬라어)는 본래 언어와 문화적인 것; 철벽같은 언어적 장벽은 없었으나 히브리파가 더 애국적인 느낌(행21:40-22:2)

-일곱 헬라파 집사 임명; 스데반의 성전의식에 대한 비난과 기소; 일단의 자유주의 유형의 율법폐기론자들도 있었으나 스데반은 나사렛 예수와 관련이 있음(삼하7:6; 왕상8:27; 사66:1); 재판(행7:56; 눅12:8); 사형판결과 빌라도의 묵인

-박해운동(갈1:13, 22ff); 히브리파일색의 예루살렘교회; 흩어진 헬라파;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도시디안 단체의 지도자 시몬-노스틱적 교훈)와 가사선교(‘전도자 빌립’:행21:8); 마가 베드로(가이사랴:행9:32ff); 수리아 안디옥의 대복음화(행11:20)→그리스도의 사람들(christianoi); 바나바의 파견과 다소의 사울과 동역

IX. 바울: 그 초창기

-다소(길리기아의 수도, 자유도시, 학문의 중심지, 로마 시민권 소유:행22:38; 21:39)

-바울(롬11:1; 빌3:5); 다소의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예루살렘의 가말리엘에게 수학(행23:6); 율법학자(갈1:14; 빌3:6); 스데반이후 지도자로 등장(고전15:9); 회심(빌3:12; 고전15:8; 9:1; 갈1:15: 역설(갈3:10-14)); 변화(롬10:4; 빌1:21)

-여정: 아라비아(갈1:17: 나바티안 왕국(고후11:32))에서의 전도(?:행9:19ff); 3년만에 예루살렘으로(베드로, 야고보와 만남:갈1:18,19); 2주동안 들음(‘전수된 복음41)

’:고전15:3-7); 고향 다소로(행9:29ff); 잠적(수리아, 길리기라로 8-10년:갈1:22-24; 고후12:2); 바나바와 안디옥에서의 동역(AD 45)

X. 가이오 치하에서의 위기

-디베료 사후 가이오(게르마티쿠스의 아들, ‘칼리굴라’)가 황제가 됨; 37년 중병이후 광기; 헤롯 아그립바의 석방과 ‘왕’ 호칭하사; 누이 헤로디아가 남편 안티바를 부추겨 ‘왕’ 칭호를 받게했으나 도리어 파면됨 → 안티바의 속령(갈릴리, 베뢰아)이 아그립바에게 귀속(39)

-알렉산드리아: 톨레미왕조(유대인과 헬라인의 평화) → 로마시대(유대인의 친로마주의로 헬라인의 반유대주의 감정42)

) → 플락쿠스(33) → 가이오가 황제가 되자 공포 → 헬라인의 협력(유대인의 권리 제한)

-잠니아에서의 유대인의 가이오 숭배의 반대(막13:14-19) → 헤롯 아그립바의 중재 → 가이오 암살(40) → 글라우디오 취임

XI. 유대인의 왕 헤롯 아그립바(아리스토 불루스의 아들)

-글라우디오와 친숙 → 왕국에 유대를 포함시킴(아그립바로 하여금 유대통치)

-백성들에게 호감이 가는 인물(마리암의 손자: 하스모니아의 혈통; cf. 신 17:14-20)

-대제사장 임명권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적의(행12:1,3) → 무교절기간중 베드로의 탈출 →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이후 사도들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되고 야고보가 교회의 주도지도자가 됨(행12:17; 갈2:12) → 사망(48, 행12:23ff)

XII. 초대 이방 기독교

-안디옥: 흩어진 유대인 중심지; 종교 혼합주의(니골라) →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할례없이 기독교에 동화(행10:1-48; 11:1-18) →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호칭을 받음(christis + -ianos[어떤 사람의 노예들이나 가족식구:caesariani(빌4:22)]: 유대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으나(나사렛당) 헬라인에게서는 chrestos[쓸모있다:노예이름]처럼 본명처럼 느껴졌다. → 2C가 되어야 스스로 사용(행11:26; 26:28; 벧전 4:16)

-글라우디오의 흉작 → 예루살렘으로의 연보(행11:27-30) → 할례의 문제(행15; 갈2:3-5) → 예루살렘 합의사항

-1차바울의 전도여행(행13:2):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을 위해 회당을 찾는 선교정책) → 밤빌리아의 버가, 구브로(요한 마가의 이별) → 비시디아 안디옥(군사상 중심지: 행13:45,47; 사49:6; 살전2:15ff) ⇒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분리시킴(살전1:9) 한편 이교도(루스드라)에게는 합당한 복음제시(행14:15-17)

XIII. 예루살렘 결의 사항

-급격한 이방의 선교는 ‘혼합주의’의 위험이 있다 → ‘그리스도’보다 ‘주님(kyrios),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theos hypsistos: 행16:17)’ → ‘하나님 나라’보다 ‘영생’같은 교량적 역할의 용어를 사용

-단어의 한계: ‘주님’이 ‘많은 신들(kyrioi)'처럼(고전 8:5) → ’영생‘이 신비종교의 ’불멸‘의 개념으로 곡해되기도 했다. → 기독교 윤리의 전작에의 위협(당시 이교도의 도덕: 롬1:18-32)

-예루살렘 교회의 요구: 예수에 의한 제사폐기는 인정하나, 생활방식은 어떻게? (행15:5) → 할례묵인(힐렐학파) → 베드로의 안디옥에서의 크쉐르가 아닌 식사(갈2:11-14)

-예루살렘에서의 정상회합에서의 이방인 용납(행15:16-18) → 새로운 시도(15:28-29) → 융통성있는 바울(고전8:7ff; 비교. 롬14:13; 행21:21)

XIV. 글라우디오와 기독교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유대인의 동일특권회복(AD41) → 유대인의 알렉산드리아 이주금지(‘온세상을 감염시키는 점염병’:행24:5)

-다른 지역에서: 로마(글라우디오의 유대인구 팽창억제: 유대인과 기독교의 구별불가 → 행18:2[글라우디오 로마추방령] → 그 칙령과 유사한 소요(행17:6ff)

XV. 마게도냐와 아가야

-에게해 지역전도를 위한 안디옥의 부적합 → 바나바와 결별 → 실라를 택함 → 루스드라의 디모데:할례(갈5:6; 고전7:19)

-에베소나 비두니아로 가지 않고 드로아로 가다 → 누가의 여행동료추가 → 빌립보의 선교(행16:16ff) → 아마 누가는 빌립보에서 머무른 듯(행20:5) → 데살로니가의 소동으로 피신(데살로니가 서신)

-베뢰아에서 아덴으로(행17:15-34): 아레오바고의 연설(롬1:19-23처럼 섭리속의 하나님을 얻지못한 책망이 아니라 롬3:25처럼 하나님의 인내를 보여주는 것43)

)

-고린도: BC27년 아가야의 행정수도, 경제적 부와 타락,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갈리오의 재판으로 좋은 선례가 됨

XVI. 에게 연안 전도를 마침

-고린도 공동체를 견고하게 함 →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자름(나실인의 서원) → 에베소(아굴라, 브리스기라 머뭄) → 예루살렘 → 안디옥 → 소아시아 여행하며 교회방문 → 에베소의 3년 복음화(52-55)

-에베소: 아시아의 행정수도, 자체 시의회를 가진 자유 헬라 도시

-고린도 교회 문제(방언, 아볼로의 방문, 베드로파, 방종-일루미나티 단체44)

)

-에베소 사역: 열두제자들과 만남(행19:1-7) → 회당추방사건(행19:9)이후 두란도 서원 → 마술사(행19:13ff) → 커다란 야외극장에서의 소동(19:23ff) → 에베소에서의 심각한 위기(고후1:8-11) → 화해의 곡조(고후 1-9; 11:28) → 화해의 겨울(56-57) → 행 20:2 → 스페인 복음화 계획(롬15:19)

XVII. 유대: 후기 총독들

-총독 바두스의 헤롯 아그립바 사후 일어난 계속된 분쟁과 해결45)

 → 알렉산더(AD 46) → 쿠마누스(유대인에 대한 요령 부족; 아그립바와 사마리아 문제로 갈등) → 벨릭스:글라우디오의 어머니 안토니아에게 자유를 받음; 신약심취로 유대인의 인기감소; 바울과의 만남(57-59: 행24:25); 가혹한 성품(타키투스) → 베스도(62년 재임중 사망46)

): 아그립바와 성전지도자의 분쟁 → 알비누스: 인질극등의 타협으로 무질서 팽배; 재임말에 80년의 성전 복구공사완료로 실업자 증가 → 플로루스: 유대인 반란


XVIII. 바울: 그 마지막 활동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연보(갈2:10; 고전16:1ff; 고후9:5ff; 롬15:25-27) → 예루살렘 방문(행20:ff) → 4명의 나실인가 성전예배중 소동 → 안토니아 수비의 군인에 의한 구조 → 산헤드린(아나니아) 앞에서 → 가이사랴의 벨릭스에게 → 대제사장의 고발과 변론(행 24:14-18) → 벨릭스의 해임(59)과 베스도의 부임(황제에게 상소47)

:행 25:10ff)

-로마황제가 더 복음에 호의적인 것 → 로마행 → 로마의 유대인(행28:28)

-이후: 법정 업무의 폴주로 2년간 유예 → 목회서신서를 통해서 확실한 바울의 동정을 살피기는 무리이다.

XIX. 예루살렘 교회와 성전의 종말

-예루살렘 결의와 디도의 군대로 인한 멸망까지 20년동안 예루살렘의 유대인 선교의 기록이 전무 → ‘초대 사도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남아있지 않음

-야고보의 지도력(요7;5; 행1:14; 고전 9:5; 15:7) →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후 산헤드린의 핍박대상(62년 베스도의 사망으로 안나스 2세의 야고보 사형 → 66년 이전에 요단강 건너편으로 피난(계12:14))

-가이사랴에서의 유대인과 헬라인의 갈등 → 플로루스의 성전 보고 급습(17달란트 강탈) → 로마제국을 위한 희생제물중지(반란) → 반란군의 안토니아 요새 점령(엘레아잘)

-마사다 점령(메나헴) → 엘레아잘과 메나헴의 전투에서 메나헴 사망(마사다로 도망가 73년까지 대항)

-66년 갈무스가 왔으나 돌아가고 67년 베스파시안이 왔으나 68년 네로의 사망으로 중지 → 70년 디도의 예루살렘 포위 → 73년 마사다 함락 → 황제의 영토

-요하난(힐렐)의 잠니아 율법학교 → 산헤드린의 율법조직화 → 2C말 ‘미쉬나’ 종교법 집대성(아키바, 메이르) → 이방인들에 대한 적대의식 표출과 이에 거부하여 파문을 당한 유대인 기독교

-히브리성경의 정경화: 잠니아에서 논의, 확장, 본문과 해석까지 결정됨

-73-132년 사이 폐허의 예루살렘에 정착민 이주 → 70년 이후 세금 확대 → 132년 하드리안의 할례금지령 → 벤 코세바의 장악하에 성전재건 계획 → 폭동 진압과 예루살렘에 엘리나 캐피톨리나라는 이교도 도시 건설 → 추방 → 에비온파(가난한 사람들) 등장

XX. 로마의 기독교

-54년 글라우디오의 죽음이후 문을 열다 → 네로 즉위 3년 안에 소문나다(롬1:8) → 다수의 이방인 포함(이방인의 교만의 경계: 접붙임: 롬11:18) → 통일된 로마 교회는 없었다(롬1:7) → 유대인(회당), 이방인(에클레시아)

-바울: 2년간 로마의 복음(빌1:14,16)

-히브리서와의 연관성(로마법의 보호를 받는 옛 종교인가?)

-로마대화재(64.7.19) → 네로의 기독교인 고발 → 네로의 핍박:인류를 미워하는 자들이라는 반사회적 평판48)

 → 베드로와 바울의 최후: 클레멘트의 정보

-도미티안: 기독교 문헌이 증언하는 박해자, '우리 주와 하나님'

-기독교는 유대교와 무신론의 혼합체로 간주됨

-2C초에 기독교가 로마 상류층의 문학에서 처음 언급(미신으로 서술, 행 25:19); 타키투스: AD 64년의 로마의 대화제와 네로에 의한 기독교인의 탄압기술; 비시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Pliny)는 트라쟌과의 통신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미신’이라고 평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전해지는 것들의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아는 동안,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들에 대한 어떤 점을 알게 됨; 이교도들은 단지 ‘몸을 먹는 것’과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사랑의 교제’그리고 ‘형제들과 자매들’(부인과 아내을 일컫는 애굽의 용어)에 대해 말하는 것만 듣고 그릇된 개념을 갖게 됨; 기독교에 대한 대중적인 조소49)


-로마 정부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종종 사회적인 비난도 함께)를 공유; 트라잔황제의 통치(기독교의 법적인 지위에 대한 불변적인 지침)

XXI. 신약 말엽의 기독교

-1C 말엽: 신약문서들이 기록되었지만 신약은 공인받지 못했음 → 사도적 기초: 구전되는 가르침50)

 → 노스틱주의: 교사 세린두스; 이원론적 세계관; 희한한 기독론(침례받을 때 그리스도가 되었고, 죽기직전에 떠났다: 가현설51)

) → 대항한 가르침(요일 2:24; 2:19; 요이 7절) → 2C의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오네시모 같은 대감독의 역할 → 2C 중반에는 모든 교회에 대감독이 세워짐 → 2C 후반: 카톨릭 교회의 형태가 드러남

-주변 도시에서의 박해: 벧전4:11-19; 계17:5; 18:24)

-플리니가 트라얀에게 보낸 글








부록: 신약시대의 배경

1. 사회와 문화, 경제

1. 헬레니즘과 헬라화

(1) 헬레니즘이라는 개념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스적 요소와 비그리스적 요소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있었다.

?드로이센(J.G.Droysen)의 ????헬레니즘의 역사(1836)????: 알렉산더의 시대부터 기독교가 시작된 시기까지(로마인들의 동방 정복)의 기간에 그리스 교육의 후원하에서 이루어진 서방문화와 근동지방의 문화의 혼합(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국가들을 마케도니아와 그리스가 정치적으로 지배)

(2) 헬라 제국의 그리스들과 여러 국가들

?헬라화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집권자마다 다르게 진행됨: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들의 집권화 > 원주민들과의 구별된 생활(체육관, 신전) > 정부의 공식용어(그리스문화의 우월성

?혼합주의는 종교적 역사분야에서 먼저 발견됨 > 중심지는 외곽으로 옮겨졌지만, 그리스의 표준따름

?이집트: BC3세기경 그리스의상을 입은 지방의 신 등장, 왕실주도의 사라피스와 이시스 숭배 > 프톨레미왕조: 새로운 도시건설 안함, 고유의 방언 그대로 사용

?셀류시드: 방대한 영토이기에 많은 도시를 건설하여 헬라화(다원주의로 시작했으나 통제권 유지위해 헬라화필요)52)


2. 행정과 경제의 기본구조

?광대한 지역: 국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 >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행정 체계 의지(그리스는 폴리스 공동체) -> 그러나 그리스는 확립된 화폐체계로 경제 성장을 자극함(새로운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 생성)

(1)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그리스안에서 발판을 구축하려했기에 전쟁이 계속됨

?아테네: 마케도니아의 지배하 장기간 번영, 무역 중심지, 높은 생활수준(델포이)

?스파르타: 경제의 침체

?에게 해의 섬들: 로도의 번성(독립유지, 어음교환소, 강력한 해군, 문화의 중심지), 델로스의 번성(프톨레미>로도>로마의 보호국, BC88년 본도의 미트리다테스 4세에 멸망)

(2) 소아시아의 헬라 도시들

?이오니아 도시들(에베소, 밀레토스): BC 3세기의 프톨레미지배 > 셀류시드 제국의 지배 > 본도의 미트리다테스 전쟁으로 경제적 몰락

?흑해 연안 도시들(카지코스, 비잔티움, 헤라클레아, 시노페, 트라페조스): 한동안 독립유지 > 일부도시의 본도왕국에 합병

?소아시아 남쪽해안(리키아. 밤빌리아): 프톨레미 > 셀류시드 > 로도 > BC 2세기부터 독립

(3) 소아시아의 왕국들

?버가모: 도시계획안(도수관, 급수체계), 항구보유, 이집트식 중앙집권체계 > 경제적 독립확보

?비두니아: 천부적인 자연의 혜택(농업, 삼림, 보석), BC 74년까지 독립국가

?본도(Pontus): 농업지역과 광산지대, 알렉산더와 셀류시드의 영향을 받지 않음, BC 2세기 미트리다테스 5세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왕, 6세때는 로마에 도전

?갈라디아: BC 3세기 고대 프리기아 지역에 정착한 켈트족, 헬라화가 없었으나 BC 168년의 반란 진압이후 로마의 분봉왕 치하에서 서서히 헬라화

(4) 이집트와 키프로스

?알렉산드리아에 집중한 헬라인(경제적 전문지식으로 프톨레미 왕조의 국가 경영)

?종이(파피루스)의 생산, 광산 자원의 비약 > 해외 속령을 상실하며 경제적으로 몰락

(5) 셀류시드 왕조

?광대한 영토 > 알렉산더와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통일된 행정체계 제정: 중앙 집중적인 재정 행정(왕실의 사유지 관리를 위한 행정가로서 마케도니아 인들과 헬라인 고용)

?남부 시리아, 팔레스틴, 페니키아는 1세기동안 프톨레미의 지배를 받았으나 오히려 셀류시드 왕조와 유사한 행정 체제를 가짐

(6) 세금

?직접세, 간접세 > 새로운 수입원으로 정복된 땅은 법적으로 왕의 소유

?세금 징수 청부인 제도

3. 사회

(1) 본토인들의 형편

?왕실의 행정체계와 세금징수제조, 헬라화의 기회를 얼마나 활용하는가, 도시와 농촌의 차이점에 따라 다름

?프톨레미: 완전히 다른 사회계층(비특권층) > 3-2C의 관료제도의 압박증가(중앙집권적 독점 체계)로 소요와 반란 > 인구감소와 농경지의 감소, 국가적인 경제의 위기

?셀류시드: 새로운 사회구조로 승진의 기회제공 > 헬라화(서부지역이 동부지역보다)

?신흥도시들(셀류키아, 안디옥): 사회적 구분안함, 대규모 집단들의 이주 정착(디아스포라), 본토인들에 유익

(2) 외국인들과 헬라인들의 지위

?구분된 인종집단으로 행정부와 군대의 요직을 차지, 정치구조안에서 별개의 범주로 구분되어 많은 협회를 구성

?숙련된 전문가들의 필요로 독립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증가(길드와 전문적인 협회들이 관리)

(3) 노예와 노예제도

?특정한 형태의 농업이나 산업생산으로 노예의 노동력 의존(그리스:BC 6C, 로마:BC 4C에 도입)

?전쟁과 해적으로 공급, 로마 공화국시대(150-50BCE)에 절정53)

> 제국시대에 해방노예 증가

?법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하지 않음, 능력에 따라 경제적 형편이 다양함

?셀류시드와 이집트엔 노예제도가 큰 역할없음(노예제도 제한), 버가모만 노예제도

?반란: 에우누스(136-132BCE), 스파르타쿠스(73-71BCE), 아리스토니코스54)

(133-130BCE)

?다양한 노예제도에 대한 의견: 진정한 자유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다(스토아),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근동지방의 신흥종교: 기독교)55)

> 콘스탄틴 대제의 노예해방

?고대 말기에 엄격한 규제, 중세엔 사라짐(노예 노동력을 선호하지 않은 경제 구조상의 변화)

(4) 해방 노예의 지위

?유익: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짐56)

, 로마 시민권

?해방되었다해도 보은의 관계로 주인에게 더 속박됨

?일부 해방노예들은 유명한 부자가 되지만(호라티우스) 대부분은 최하층 계층이 됨

(5) 여인들의 지위

?고대: 법적지위 제한, 정치적 권력없음, 아버지나 남편에 예속, 가정에 제한, 가문간의 경제적 거래로 결혼

?헬레니즘: 상류층에 많은 기회와 여가

?공화국 말기: 많은 권리와 특권소유, 극장과 파티에 참석, 능력있는 인간으로 재산관리

?종교활동에 기회: Vestal Virgins, 프리타네이스(에베소), 여성 관리등장(회당장, 사도57)

, 집사, 후원자)

(6) 집과 가정

?집안(oikos)과 가정은 사회의 최소단위, 경제적으로 반자립적 단위

?가부장적인 구조, 사랑과 관계없는 결혼, 낙태가 성했으며 자녀를 버림

(7) 부와 가난

?동부지역의 농업이 경제적 번영의 기초(농촌은 가난하지만 무산계층은 아니었으나, 도시는 가난한 무산 계층으로 사회문제)

?그리스: 두계층(귀족가문과 중산층)의 빈부의 격차심화로 도시 노동자의 소요, 반란이 일상적

?전쟁과 해적행위

(8) 협회

?헬라시대와 로마제국의 정부는 시민생활을 크게 규제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음(공백을 협회가 맡음)

?사설협회의 연무장(교역과 제조사업, 청년들의 육체적 지적훈련의 중심지) 후원

?그리스 도시의 사회 생활의 중심은 주연으로 예배의식, 공통의 이해관계에 의해 구성됨.

?협회의 구분: ①공동체 전체를 위한 일을 수행하는 협회들(연무 협회:체육관을 짓고 설비를 제공하고 유지함으로 청년들의 헬라식 교육 증진), ②전문적 협회58)

, 상인들의 조합(길드), 노동조합, 카르텔, ③사회적 목적을 수행하는 단체, ④종교 협회들(디아소이, 근동지방에서 생겨난 새로운 종교들59)

을 보급하는 수단,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없는 유토피아적인 공동체 의식부여)

?로마시대: 협회는 정치적 특권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주요한 사회적 하부구조

4. 헬라 도시

(1) 새로운 도시와 군사 식민지 건설

?초생달 지역의 고대도시문화 > 알렉산더와 로마에 이은 도시화 과정60)


?셀류시드 왕조: 도시건설을 정치계획(군시 식민지로서 건설, 교역로와 군사보급선 역할), 중요한 도시들(안디옥61)

, 라오디게아, 셀류키아62)

), 메소포타미아 출신의 유대인이 소아시아에 정착

(2) 도시 계획 및 건축

?고대 헬라도시의 연속: 성벽, 광장, 신전

?건축가 히포다모스의 도시계획63)

(BC 5C): 헬라도시 건설을 위한 기본 패턴64)


?광장: 고대(불규칙, 개방) > 헬레니즘(직사각형, 폐쇄), 생활의 중심지(토론, 휴식, 메시지 선포)

?신전과 공공건물: 정사각형 배치, 중요한 신전은 광장에 접한 곳에 건축

?극장: 솟은 무대가 있는 무대 건물(헬레니즘) > 원형극장(로마)

?연무장, 육상 경기장      ?가옥: 전통양식에 따라 건축

?로마시대: 정교한 목욕탕, 도시의 쇄신으로 지중해 세계는 새로운 번영이 도래함

5. 농업

(1) 농업 생산과 그 배경

?도시화: 상업의 중심지(생계 유지를 위한 곡식 재배: 농산물과 채소65)

), 비싼 육상운송 비용(수입 수출에 제한)

?프톨레미 왕조: 그리스의 곡물 시장을 지배(로마시대 까지)

?셀류시드 제국: 다양한 농업,        ?로마: 자급자족에서 올리브유와 포도주생산(곡물 수입)

(2) 농업 분야의 혁신

?농경지의 확대(배수시설)

?셀류시드: 경제를 중앙집중화하려 하지 않음

?이집트: 목제연장대신 철제보습, 호미, 삽, 물레방아 도입, 올리브유 생산장려, 양모수입66)


?로마: 그리스양식을 개선하지 않고 따름, 근동지방의 방법을 서유럽에 소개하는 중개자 역할

6. 공업과 산업

(1) 기술, 그리고 기술자들의 사회적 지위

?기술자: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중추(전문화의 결여, 지도자와 기술자가 구분되지 않음), 존경받는 지위를 차지하지 못함67)

, 만성적으로 부족

(2) 광업과 제련 산업

?금속류(금,은,동,주석) 필요: 강에 사금, 광산개발; 정복 지역의 넉넉한 광원이용

?근동지방의 야금술의 발달: 사치품의 수요 증가

(3) 방직업

?직물은 가정에서 여인들이 제조(로마시대 초기에 수직 베틀의 발명); 직물생산은 대규모 공장(동방 국가들이 주도); 염색에 흥미(값비싼 염료)

(4) 도자기와 유리

?그리스에서 동방으로의 수출; 금속세공 제품이 더 유행함;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데라 시길하타’

?유리: 페니키아와 이집트에서 수입; 로마시대에 불어서 유리 제품 만드는 기술 발명

(5) 문방구와 서적

?고대에는 모든 종류를 사용했으나, 헬라시대엔 상업적으로 생산된 동물가죽(vellum)과 파피루스만 사용

?파피루스: 식물, 나일강의 늪지대(30cm×50cm), 수평으로 놓인 렉토(recto)라는 곳에 글씨를 씀(두루마리)

?양피지: 동물의 가죽, 버가모의 유메네스 2세(양피지: parchment; pergamina(chartea): 버가모산 종이)

?고대의 책: 두루마리로 몇장의 파피루스를 일정한 길이로 접착제를 붙임(6-10m, 25-30cm)68)


?초대교회 시대: 양면지(codex:몇장의 파피루스를 겹쳐서 종간을 접은 후에 각각의 단위들을 꿰매고 가죽으로 제본)가 두루마리를 대체

?프톨레미 왕조의 경제정책: 엄청난 행정 기록을 수록할 목적, 수출 장려

?책의 생산: 언셜체(uncial)사용(멋을 낸 대문자들을 연결기호없이 사용, 단어와 단어를 띄지않음)

7. 무역, 화폐 체계, 금융업

(1) 가장 중요한 무역업

?BC 7C:장거리 무역과 화폐 체계발달 > BC 5C:그리스의 화폐 전지역에 퍼짐 > 알렉산더 정복:근본적인 변화 초래 > 헬라시대:국내교역의 특성 > 로마:상이한 문화와 경제구조를 지닌 나라들과 교역

?동기: 수출시장 확보보다 원료확보, 전쟁이 촉진요소, 사치품의 수입이 우세

?헬라왕국간의 거래: 헬라의 도시는 곡식을, 셀류시드와 이집트는 공산품을

?이집트: 수입(금속류, 해군용 목재, 말, 군사용 코끼리), 수출(곡물, 파피루스)

(2) 주요 교역로


제2-1장 사회와 문화, 경제

2. 로마 군대

로마 제국을 창조한 장본인; 가장 중요한 문화적 요소중 하나; 로마의 평화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문화적 발전을 가능케 함; 다양한 동방종교의 보급에 역할

(1) 군단(The Legions)

흐름: 시민사병으로 구성; 시민권을 얻을 권리를 확장시킴으로써 지방들은 많은 군단들을 가질 수 있게 됨; BC 2세기말부터 자원자들로 구성된 전문적 병사로 이루어짐.

조직: 한군단(6,000명); 티베리우스때엔 25군단(라인강(6), 스페인(3), 이집트(2), 시리아(4), 아프리카(2), 다뉴브강(6)); 7명의 집정관

군단: 여섯 개의 100인으로 구성된 10개의 연대로 나뉨; 지방총독이 지휘; 60명의 백부장들이 중요한 전술장교역할

운영: 20년의 복무기간(아우구스투스); 25년(플라비우스); 전쟁이 아닐때는 사회봉사적 기능수행(가도건설과 보수)

(2) 상징, 무기, 의복

상징: 독수리(아킬라); 각 막사의 예배당에는 독수리, 군기, 신들과 황제의 像(상)들이 보관됨

무기: 짧은 칼과 창(행 19:34)

의복: 튜닉(tunic)은 칼이 부착된 허리띠로 졸라매짐(엡 6:10)

(3) 보조부대

비슷한 숫자의 보조부대의 지원(기병대, 투석자들(slingers), 궁수같은 특수부대); 본토주민중에서 모집; 25년복무후 로마시민권 획득69)


구성: 500-1000명으로 연대구성; 기사계급의 제독이 지휘관; 기병대(‘알라(ala)’); 보병대(‘코호스’(cohors))70)


행 10:1의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 행 12:31이하의 ‘스페이라’(연대)의 ‘킬리아크’(천부장) 언급; 행 23:23의 보조부대 언급

(4) 친위대

500명이나 1000명으로 이루어진 9개나 12개의 연대들이 프린셉스의 경호대 구성; 가장 중요한 직위중 하나71)


(5) 다른 군대들

호민관 지휘와 도시장관 관할하의 세도시 연대들은 로마시에 경찰력과 군대수비력 제공; 비질(vigiles)들은 군사적인 소방대와 경찰들; 해군은 낮은 서열, 아우구스투스는 두 개의 해군기지 지휘(미세눔과 라베나)

3. 사회 계급들

개방성의 계층사회; 군복무가 사회적 계급의 상승의 길; 귀족계급의 구성은 원로원과 기사계급; 부와 사회적 지위의 결정은 토지소유

(1) 원로원

600명으로 고정(아우구스투스); 자격재산은 최소 250,000데나리온; 로마 행정직(재무관(quaestor), 치안관(praetor), 집정관(consul))중의 하나를 맡음; 토가(toga)에 있는 넓은 자주색 줄이 지위의 표시; 노빌리스(noblis): 집정관의 직위를 가졌던 자들의 자손들;

원로원의 공헌: 정치에는 공헌이 적음; 군의 고위직 간부들을 배출(‘쿠르수스 어너룸’(cursus honorum:직위의 단계): 20살에 낮은 직책으로 공직시작, 참모 장교로 근무, 재무관의 직무와 원로원 의석의 길, 중요한 지방 총독을 지내고 최고 절정인 집정관의 직위를 감당함);

(2) 기사계급(The Equestrian Order)

자격: 100,000데나리온의 재산; 부유하고 교육을 받은 자들로 원로원 가문과 관련이 있음; 사업과 무역은 원로원 의원의 위엄에 맞지 않는 것이라 여겨 기사들이 부를 축적

직책: 군대(군단 호민관 또는 보조 군대의 지휘관, 라베나와 미세눔에 있는 함대의 지휘관, 기마병 파견대의 지휘관), 재무적인 직책(지방 수세관, 지방 소유의 관리자, 지방의 재무 관료), 관료나 행정적인 직책(국가 서기관, 로마 소방대와 경찰대 지휘관, 음식 공급 책임자, 친위대장, 작은 지방들의 지방 총독, 이집트의 지방 총독)

(3) 자치 구역 귀족들(Municipal Aristocracies)

데쿠리온(decurions): 자치구역 원로원의 의원; 로마를 모방한 식민지중에 100여명의 데쿠리온들이 있다; 부유한 자(지도자 역할의 대가로 많은 돈 지불의무); 공공 건물들의 건축비용 담당

(4) 시민(Plebeians)과 자유인

이상의 계급에 들지않는 자; 티베리우스의 선거권 원로원에 위임시 시민의 정치적 중요성 상실

(5) 자유민

삶의 모든 중요한 역할 담당; 과거 노예들(주인과 상호책임관계로 남아있음); 관료직과 제사장직은 닫혀있었으나 기사계급까지는 가능; 클라우디우스의 기용(집의 노예로 있던 자유민을 높은 관료적 기능 담당케 함)72)


(6) 보호자-피보호자(Patron-Client)

전주인과 자유민, 부자와 가난한 자, 장군들과 피정복인, 귀족들과 사회단체들이 로마사회의 피보호민 제도속에서 생활(예절 규범의 의무)73)


4. 노예제도74)


고대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 전쟁 포로들; 초기 로마제국의 안정으로 집에서 키운 노예들이 주 공급원(비싼 과정); 5명중 1명은 노예; 법적으로 하나의 물건: ‘살아있는 재산’(아리스토텔레스); 중요한 일75)

에서부터 광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에 종사(신전 노예, 가정 노예, 선생들, 산업 노예, 대리인); 자유인들의 노동력에는 불리하지 않음; 노예해방: 성례적 해방(sacral manumission) 형태, 주인의 유언

5. 로마 시민권

이중 시민권의 개념발견76)

; 충성을 촉진하는 도구; 제국의 단일화의 상징;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시대에는 정치적 중요성보다 하나의 명예로서 추구됨; 클라우디우스는 시민권 확장(라틴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시민권취소; 뇌물을 받고 이름을 넣어주기도 함77)

)

시민권의 획득방법: ①시민 부모아래 출생(출생 증명서 발급), ②로마 시민들의 노예가 해방될 때, ③제국에 특별한 봉사업적78)

, ④보조부대에서 제대할 때나 군단에 비상시에 입대할 때.

시민권의 특권: ①투표권(로마상주), ②굴욕적인 형태의 형벌의 면제(행 16:22; 22:25)79)

, ③로마에 상소권이 있어서 지방권세나 주통치자들의 판결로부터 면제(행 25:10-12).

플라비안, 안토닌의 시민권 확장정책(로마 제국의 모든 자유 거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줌, 결국 시민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의미 상실)

6. 로마법

근원: 회중에서 투표로 제정(AD 97이 마지막), 원로원의 결정(아우구스투스 때부터 법의 발전이 수단이 됨), 관료들(주 통치자와 치안관)의 칙령, 황제들의 헌법들80)

(edicta: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decreta:법정에서의 사법판결; rescripta:요구나 사절들에 대한 반응; mandata:공직자에게 내려지는 지시들), 상고될 때 주는 법률가들의 대답, 관습이나 관례 > 2C이후엔 수집하고 조직하기 시작(살비우스 쥴리아누스(2C), 가이우스(2C), 울피안(3C초)) > 위대한 법전(테오도시우스(4C), 유스티아누스(6C))

지방총독: 임페리움(imperium)의 무제한적인 권한행사, 임페리움을 가진자만 사형선고 가능(요 18:31), 황제와 원로원에게만 책임을 보고함, 지방 총독이 가는 곳마다 소송신청이 있었다.

오르도 주디시오룸 푸블리코룸(ordo judiciorum publicorum): 상세한 법률 규정; 코르니티오(cognitio): 개인적으로 정의행사81)


사법적 절차: 사적인 발의(사적 집행인 딜레이터(delator)82)

): 예수님의 재판에서 유대관리 > 담당 관료가 직접 법관석(bema; 요 19:13; 행 18:12)에 앉아들음83)

> 관료의 판단 (> 법을 공부한 자84)

에게 상고)

양자제도: 바울의 신학적 원리에 이용(갈 4:5; 롬 8:15,23; 9:4; 엡 1:5); 로마에서 빈번하고 중요함; 이전 상태에서 벗어났고 모든 이전의 빚이 탕감되었고 새 가장(paterfamilias)의 아들로 새로운 삶 시작, 가장의 성을 따르고 그의 상속원을 갖음, 모든 것이 친자녀에게 대하는 것과 똑같았다

7. 사회적 도덕성

도덕가치의 하락: 노예제도의 잔인성과 성적타락의 기회; 죄수들의 징벌(광산, 십자가형); 검투 및 야생동물과의 싸움

평가: 이방인의 도덕성에 대한 질책(롬 1:18-32); 그리스-로마시대 성적타락인정(유대인, 기독교작가들)85)

; 우상숭배로 기인(유대인 변증론자); 모든 죄의 범주들이 음탕함과 동의어(고전 6:9; 갈 5:19; 골 3:5); 십대나 이십대 초반의 허다한 동성연애; 잡신들과 연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매춘체제(소아시아, 시리아, 페니키아의 다산 숭배의식 영향을 많은 사원에서 강요적으로 행해진 종교의식86)

; 디오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만이 비유대인으로 매춘비판; 바울의 계도(롬 2:12-16의 지적과 이방인들의 이해 교정); 그러나 묘비에 새겨진 평민들의 관점의 비문들은 정숙한 삶의 내용을 닮고 있다

가르침87)

: 철학의 공공의 의무를 가르침(플루타크(Plutarch)의 ????자녀 교육????; 신약성경의 가정준칙(엡 5: 21-6:9; 골 3:18-4:1; 딛 2:2-10; 3:1; 벧전 2:16-3:7); 초기 기독교 문헌(폴리갑, 빌 4-6장)

(1) 결혼88)

과 가정

구성: 남편, 아내, 자녀, 친척, 노예로 경제적인 상호 의존뿐만 아니라 공통되는 종교 의식들로 맺어짐;

그리스법은 결혼전에 약혼을 규정; 아버지의 맹세는 증인들앞에서 공식적인 행위 > 공화말기엔 허식적인 사회제도로 변함(사업 거래같이 약혼을 파기할 수도 있었음)

그리스-로마식 예식: 신부의 목욕과 특별의복 치장(엡 5:26-27; 계 21:2); 신랑과 신부의 머리위에 화관얹음; 여신 주노가 맺어줌; 그리스: 드라마틱한 결혼예식; 로마: 결혼의 법적 개념

유대 예식: 양가의 계약(약혼과 결혼); 약혼은 결혼을 집행하고 이혼을 통해서만 파기됨(마 1:18-19); 약혼의 성사: 산부이 값을 지불할 때; 케투바(ketubah): 관습적인 서면 계약(남편의 의무, 재산 상속등); 7일간의 축제

연령: 여자들은 십대초반; 남자: 그리스 30세, 유대 18세(Aboth 5:21)

결혼형태: 일부일처제이나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혼외정사 빈번; 매춘 간음 일반적; 쉬운 이혼89)

;

가정법: BC 19-18년 아우구스투스의 국가법이 가정을 다스리도록 함(건전한 가정으로 출산율 증가목적, 총각의 상속권제한, 재혼요구, 간음시 외딴 섬에 유배); 법은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사회의 도덕성을 높이지는 못했다.

(2) 여자의 지위90)


제한된 삶의 영역91)

(그리스: 공식적인 장소에 참석제한); 창녀는 연회석에서 말동무와 오락(음악, 곡예, 만담)제공; 마케도니아 여인의 독립성과 영향력92)

(빌립보 교회의 여인들의 두드러진 활동(행 16:14-15; 빌 4:2-3)); 로마의 여인들은 점차 더 큰 자유를 소유

유대여인: 그리스여인과 로마여인의 사이에 위치; 증인의 자격없음; 종교적 의무면제; 정규적 부부관계(고전 7:5); 가족내에선 부인의 영향력이 남편들보다 더 컸다.

(3) 신생아 유기

헬라세계: 그리스엔 BC 230년 이래로 한가정이 보편; 4-5명은 드물었고 두아들의 경향; 딸은 적음(일종의 경제적인 부담)

인구과다 해결책: 유아 살해; 공공연한 낙태로 일반적인 유산과 높은 유아 사망률; 여아는 창녀됨; 그리스-로마는 아버지가 인정하고 종교적인 의식으로 받아들일때까지 인정하지 않음(도덕적 관점이 다름); 유대법은 낙태금지

8. 경제 생활

지중해 농업은 올리브, 포도, 곡물, 양; 초기 로마 식량공급은 아프리카나 이집트; 전통적인 산업은 요업, 광업, 직조업, 수공업; 신약초기엔 유리공업등장(1C 페니키아 최초개발); 상업적인 투자로 광범위한 무역가능; 도시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생성(생활의 중심부, 대화의 장소(행 17:17)); 빈부격차

톨레미 왕조: 철저한 국가주의 체계; 왕의 땅(사원땅, 이주자들을 위한땅, 관리에게 주어진 부동산, 개인이 경작하는 개인의 땅)엔 사용료 지불로 막대한 부획득

실루시드 왕조: 국민적 입장에서 관리됨; 영토구분(왕의땅, 사원땅, 도시땅)

1C의 팔레스틴은 타지역보다 덜 번영했지만 생산성은 있었다93)

; 곡류중생산(올리브유, 포도주, 보리, 밀); 요르단 계곡(대추야자, 발삼나무)

(1) 무역과 여행

제국의 지배아래 번영; 인도, 세일론과 중국까지 거래94)

; 상업활동지:델로스섬(로마와 동방을 잇는 항구, 노예시장번성) > BC 88년의 미트리타테스에 의해 멸망 > 이탈리아의 푸테올리(행 28:13) > 오스티아의 클라우디안 항구(트라잔황제)

주요한 무역로(2개의 육로와 2개의 해로95)

): ①오스티아-알렉산드리아(해로), ②아피아가도-브룬디시움(육로)-고린도(해로), ③고린도-에베소(육로)96)

, ④브룬디시움(육로)-디라키움(해로)-마게도니아-소아시아(육로)

해로: 여행도 무역로(해로)를 통해서 이루어짐; 이집트의 곡물선은 항시 정박(행 27:6; 28:11); 저렴한 여행비(가족당 2드라크마); 겨울동안 금지(11월 10일-3월 10일; 행 27:9-12; 딤후 4:13)

육로: 전략적, 통신적 가치(스코틀랜드-유프라데스(53,000마일)); 도적의 위험(고후 11:26)있지만 육로여행선호; 아피아가도:로마-카푸아-이탈리아-타렌툼-브룬디시움, BC 312착공, 바울이 사용(행 28:15-16); 에그나티아가도(Via Egnatia):마케도니아 점령직후 착공(BC 145), 디라키움-네아폴리스-비잔티움, 사도바울(행 16:12; 17:1; 17:10).

질낮은 여관들의 횡포; 초기 기독교의 자신집에 손님을 모심이 미덕이 됨(롬 16:23; 벧전 4:9; 요일 10:3; 요삼 5-8; 히 13:2); 교회는 확장된 가정의 역할(막 6:10); 유대회당엔 딸려있는 방이 있었다

(2) 화폐주조

최초의 동전(BC 600 사르디스 출신의 리디아왕(호박금)) > 아테네: BC 580 은> BC 525 올빼미 은전(5세기에 흔함) > BC 516 페르시아동전(금전: 다릭(스8:27); 은전: 시글로스) > 알렉산더(헤라클레스 표시) > 알렉산더의 후계자(인간의 상)

로마: 최초의 화폐다운 동전(BC 269, 디드라큼) > BC 211 데나리우스(10개의 청동동전가치), 세스테르티우스(2.5개) > 정부 정책과 이념을 밝히고 중요한 사건 기념

팔레스틴: BC 5-4세기엔 페르시아 화폐사용 > 알렉산더이후엔 그리스화폐 > 구약의 세겔은 무게를 나타내는데 나중에 동전으로 변했다 > 알렉산더 쟈나우스(BC 103-76) 유대 화폐시작97)

> 화폐의 가치(금,은,동; 마 10:9); 은 데나리온:마 22:19의 ‘셋돈’98)


(3) 과세

정기적인 인구조사(아우구스투스; 눅 2:1); 직접세:트리뷰타(tributa), 지방총독징수, tributum soli(농산품 소득세), tributum capitis(땅이아닌 소유자; 인두세(마 17:25; 22:19)); 간접세:vectigalia(마 17:25)99)

; 세리들은 실질적인 징세관이 아닐뿐만 아니라 세금을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으며 다른 지방장관들에게 문제를 넘겨주어야 했다100)


랍반 가말리엘 2세: “로마제국은 네가지-조세, 목욕탕, 극장, 수확세-로 존재한다”; 세금과 오락(빵과 써커스)

9. 오락

기독교인은 극장, 경기장, 서커스에 대해 비판101)


(1) 극장

그리스의 연극은 디오니수스의 축제에 기원; 노천극장들은 도시에서 대중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중에서 제일 큰 곳이며 공공생활의 중심(행 19:29); 극작가들 사이의 경쟁(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6), 유리피테스(Euripides, 485-406),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450-385), 메난더(Menander, 342-291, 고전 15:33)); 제국시대엔 판토마임의 인기; 이동하며 연극하는 극작가 무리(국제적인 보호)102)


라틴작가의 그리스답습(플라우티우스(251-184), 테렌스(195-159)) > 다른 오락 선호: 검투사103)


(2) 운동경기

그리스: 운동경기는 종교적인 축제와 병행; 스타디움에서 달리기(스타디온: 약 200야드); 운동종목: 달리기, 권투, 격투, 5종경기; 나체 경기(유대인의 반대(마카비하 4:7-17))

로마: 서서히 받아들임; 사도바울의 체육용어(고전 9:24-27)와 신약저자들의 은유법(히 12:1; 딤후 4:7; 딤후 2:5)

(3) 원형경기장

그리스인들이 체육관이나 스타디움에서 운동하기를 좋아했던 반면, 로마인들은 원형극장의 행사나 서커스를 좋아함; 콜로세움: 베스파시안착공, 티투스확장, 3층 5만명, 연극, 검투사, 야생동물, 가상해상전투; 경기의 잔인성으로 도덕적 감수성저하; 기독교황제의 규제(검투사 325금지, 430사라짐)

(4) 곡마장

그리스의 귀족정치의 경기; 로마의 전문적 오락; 최초:서커스 막시무스(Circus Masimus); 4륜전차; 비잔틴시대까지 정치적당파의 초점

(5) 운동장과 목욕탕

체육관은 그리스, 목욕탕은 로마; 잘사는 시민을 위한 것; 목욕탕의 건설은 일반인에게 주어지는 은전(恩典); 뜨거운 물을 위한 화로, 온돌기술발달; 큰목욕탕은 컨트리클럽같음

(6) 연회

그리스와 로마의 연회는 일종의 회의의 형태; 술:물과 포도주의 비율이 2-4대 1104)

; 고대문학:철학적 수준의 대화 플라톤의 ?심포지움?, 세속적인 부유층 풍자한 페트로니우스의 ?트리말티오스의 연회?

(7) 음악

늘 음악이 있었다(마 11:17; 9:23; 눅 15:25); 세가지 주요악기(아울로스(플륫같은 피리), 키타라(하프), 트럼펫; 고전 14:7-8); 커다란 극장에 음악극장있었음(오데이온(odeion)); 고대 그리스 교육에 체육과 음악이 중요했으나 기독교시대엔 정규과정에서 빠졌다.

10. 교육

파이데이아(paideia; 그리스어, 훈련,단련; humanitas(라틴어), 인간형성); 규모작은 사립학교; 고대엔 비천한 직업; 3단계체제(초급, 중급, 고급); 초급(7세입학): 읽기와 쓰기, 엄격한 계율, 암기와 베기기 방법, 노예가 따라다님(갈 3:23) > 중급(11-12살): 문법선생으로부터 고전공부, 키케로와 퀸틸리안의 자유과(전과목105)

) 교육주창, 읽고 설명, 체육의 전학년강조(완벽한 신체, 도덕적훈련) > 고급(18세): 에페베이아(ephebeia, 신체적 교육, 연설, 철학, 공공생활의 경험, 지적보다 사회적 강조); 젊은이들은 철학, 의약, 법률의 직업선택; 웅변학(보편적 고등교육, 철학, 천문학, 역사등등 포함)

유대: 피상적 그리스-로마방법; 내용적으로는 종교적인 목적(토라의 실천, 성경과 서기관의 구전106)

); 성경암기의 강조; 가정교육 > 2차학교(성경 주석(미드라쉬), 율법의 주제별 연구(미쉬나)) > 고등교육(대학자에 위탁(행 22:3), 예루살렘멸망이후 쟘니아의 학원, 성경의 고등해석과 법적인 견해습득); 모든 소년은 빈부 교육정도 막론하고 무역을 배웠다(행 18:3)

11. 문학과 언어

(1) 작가

라틴문학: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 라틴문학의 황금기 > 마에케나스(아우구스투스의 장관): 문학가 등용 >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 70-12)107)

: 전원생활과 문학의 관습(전원시(Eclogues), 농사시(Georgics), 아에네이드(Aeneid))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BC 65-8): 동정적인 자세, 종교심유발 > 리비(Titus Livius, BC 59-AD 17): ?로마역사? > 가이우스(Gaius Velleius Paterculus, BC 19-AD 31): ?내전?(폼페이와 시저의 투쟁) >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 > 세네카 > 대(大)플리니(Gaius Plinius Secundus, BC 79d): 백은 시대작가, ?자연역사? > 소(小)플리니(AD 61-114): 트라얀통치자료 > 마르티알리스(Marcus Valerius Marialis, AD 40-104): ?Epigrams? > 주베날(Decimus Iunius, AD 50-130): ?Satires? > 퀸틸리안(Marcus Fabius Quinilianus, AD 35-100): 웅변학의 대표 >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AD 55-120): ?Histories?, ?Annals?(1C 제국역사자료) >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 AD 69-140): ?Lives of Illustrious Men?, ?시저들의 삶?(줄리우스-도미티안) > 아울루스 겔리우스(Aulus Gellius, 123-165): ?Attic Nights? > 프론토(Marcus Cornelius Fronto, 100-166): 웅변가 > 아풀레이우스(Apuleius): ?황금당나귀?(2C 문화연구서) > 로마에서 북아프리카로 옮겨짐

(2) 책 편찬

고대: 이집트산 파피루스108)

 두루마리에 기록 > AD 4C에 양피지109)

사용(양이나 염소의 가죽); 요한3서 13절은 갈대 펜과 숯으로 만들어진 잉크를, 요한2서 12절은 종이와 잉크를 의미 > 사본(codex, 왁스판에 철필로 기록)110)

 기독교: AD 130년경 파피루스 사본을 사용하여 출판, 양면에 써서 부피감소, 보관용이111)

, 타종교는 2-3세기에 파피루스 사본나타남, 분량: 최대한계 32, 35장

출판: 전문적인 서기(롬 16:22; 벧전 5:12), 저자가 마지막인사말을 쓰고 자신의 손으로 서명(갈 6:11)

(3) 편지쓰기

라틴과 그리스의 일반적인 편지글의 형태

① 서문: 저자와 받는 사람, 건강을 비는 소망인사말, ② 본문: 신에게 감사나 기도로 시작, 혹은 저자의 근황(저자와 독자간의 기준), ③ 결말: 마지막 인사

사도행전 15:23-29과 23:26-30은 전형적인 헬라식의 편지

(4) 독서와 연구

헬라시대: 많은 책편찬(파피루스와 노예덕분); 소리를 내서읽음(행 8:30); 헬라의 낭만소설, 모험소설의 발전; 왕들이 도서관설립(알렉산드리아: 고대학문연구의 중심지, 70만권); 제노도트스의 본문비평개발; 학자들의 우화개발(헤라클리투스의 ?호머의 질문들?)

(5) 명각과 파피루스

전문적인 연구분야; 독립적인 훈련; 역사, 문화, 그당시의 일상생활에 자료공급, 초기기도교의 단어의 뜻의 자료제공; 명각은 실체를 보여줌, 파피루스는 일반백성의 생활을 보여줌

(6) 언어

1C 표준어는 헬라어; 코이네헬라어 > 비잔틴헬라어; 신약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그 시대의 언어였다(데이스만); 신약은 헬라종교에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언서사용을 피했고, 이방 종교의 종교적인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12. 예술과 건축

예술: 헬라시대: 예술에 대한 고전적인 억제가 사라짐; 평정의 부족, 자기제어, 낭만주의, 추함에 가까운 사실주의, 개인주의(개인 초상 조각); 인물묘사의 황금기; 로마시대: 헬라예술의 풍부함에 제약을 가함; 초상화에 대한 관심의 일부분은 집에서 죽은 조상들의 형상을 보호하려는 관습과 두상을 두는 관습에서 출발

건축: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아테네의 파르테논, Erechthum) > BC 4C의 에베소의 아데미신전, 고린도신전; 그리스사람은 기둥세우기, 로마인은 교각건설하기; 신전, 시장, 극장, 건물, 체육관, 목욕탕, 초기 제국의 건축물의 업적; 개인주택은 4층 높이, 꼭대기층은 식당(가장 큰방112)

, 테라스와 연결); 많은 사람들이 5,6층정도의 건물에 있는 셋집에서 살았음(커다란 지역형성)

최초의 기독교인들의 모임 장소: 콘스탄틴의 평화시대엔 바실리카 양식113)

의 공공기념물이 교회

13. 클럽들과 협회

(1) 그리스 클럽

orgeones(제사모임: BC 5C): 가장 초기의 사회로 종교적인 성격; thiasos(BC 4C): 종교적인 색채와 사회적인 성격; eranistai(BC 3C-제국시대):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요소가 종교적인 것을 대체114)

;

공통적인 관심사나 공통적인 직업(무역조합, 중세의 길드, 근대의 노동조합)

(2) 로마 협회들

세기간의 협회역사

① 공화 정치의 마지막 세기 중엽까지: 법으로 사적 단체 형성에 제한못둠

② AD 3C 말까지: 협회의 권리가 법에 의해 규정115)

, collegia(무역, 전문종사자)의 공적인 성격

③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정치: 공적인 기관으로 변해감

collegia(라): 일반적 협회를 뜻함; 목적(경제, 종교, 사회); 로마의 협회들은 그리스의 협회들보다 사회조직의 양상을 많이 따름

(3) 이집트의 협회

협동체에 대한 개념은 원래 이집트에서 발전되지 않았으며, 각 회원들의 권리나 의무 이상의 권리나 의무를 지닐 수 없었다.

(4) 협회의 규칙

영향력있는 그리스 협회활동; 그리스인 개종자들은 그들의 모임에서 우상들을 섬기던 것과 같이116)

 기독교 모임에서도 그렇게 다루었으며 여전히 그리스인으로서 행사했다

(5) 결론

클럽들과 협회들은 일방적인 예배의식, 사회적친교, 단수한 직책을 맡는 기회제공; 동료의식, 상호협동; 외국인의 자유단체(외국 우상숭배유입); 신을 숭배와 연관(신전, 음주, 제사, 우상의 고기)117)



제3장 그리스-로마 시대의 종교

1. 고대 그리스 종교118)


그리스 종교의 중심이 되는 특징은 알렉산더 대왕이전에 형성; 종교는 일상 생활의 부분119)

, 교의(creed)가 없음; 본질적인 집단적 공동체적 문제

(1) 서사시대(The Epic Age): 호머

호머: BC 800년경의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의 헬라종교사상에 근본적 인물; 문화적 배경은 세속적;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신인시대;heroic age의 민요문학에서 유래, 유흥의 목적);

신들: 신인동형적(anthropomorphic); 초도덕적(ammoral), 영생; 모든 것들의 기준은 인간120)

; 올림푸스(높은 산을 총칭; 구름이 있는 북 데살리의 넓은 지역)

헬라이름

로마이름

특징

제우스

주피터

가부장적 의미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가족생활, 권위, 규율의 중심), 천둥번개로 상징되는 하늘과 날씨신(행 14:12)

헤라

주노

결혼, 여자와 관련된 제우스의 아내

포세이돈

넵튠

바다, 물, 지진의 신(지진은 지하의 강에 의해 생긴다고 알고 있었음), 말들을 복종시키는 신이며 제우스의 동생, 상징은 삼지창

아폴로

-

젊은 남성미의 이상적 타입인 팔방미인의 헬라소년으로써 음악, 궁술, 예언, 의술, 양떼와 소떼, 법, 문명, 그리고 후에는 태양과도 관련됨, 수금과 활이 그의 상징

아데미

다이아나

아폴로의 쌍둥이 남매, 전원과 야수의 순결한 여신, 또 분만도 관장

아데나

미네르바

지혜, 기예의 처녀여신, 아테네의 수호자완전 무장한 상태로 제우스의 머리에서부터 나왔음

헤르메스

머큐리

신들의 사자이며 도로와 모든 도로 사용자(강도들과 여행자들)을 관장했으므로 쌓은 돌(헤름스)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음, 목동의 신, 영혼들을 저승에 보내는 자이며 총명함에 대한 헬라인들의 선망을 유형화(embody)한 장난꾸러기이며 책략가(행 14:12)

아리스

마르스

전쟁신

아프로디테

비너스

사랑, 아름다움, 번식력의 여신-성적 본능의 화신이며 에로스의 어머니

디미터

세레스

곡물의 여신

디오니소스

바카스

술의 신

헤파스터스

불칸

불과 공예의 신


외: 하데스(Hades: 플루토; 죽음과 지하세력의 신, 제우스의 형제), 크토니안(chthonian: 지상이나 지하에 거주)121)


도덕성: 도덕적 규칙을 보호; 위증(신에대한 모독); 성행위(음욕이 아닌 번식문제)

종교행사122)

: 제사(바라는 일들의 성취나 원치않는 것의 제거); 일반인이 제사드림; 맨티스(mantis; 전문화된 점장이)

영혼과 내세: 두려움에서 죽은자에대한 친절로; 다수의 저승행, 소수의 낙원행; 미지의 것에대한 두려움

(2) 헤시오드(Hesiod, BC 8세기)

호머의 시들과 정반대123)


정의: 인간의 도덕적 의무; 응보의 정의; 사회정의가 신의 뜻; ?농사와 달력?(The Works and Days)

근원: ?신들의 탄생?(Theogony): 우주의 발생에 관심, 신들 체계화 계보정리

영웅들: 영웅숭배가 처음나타남; 특정한 장소에서 숭배(그들의 무덤장소와 연관); 델피(Delphi)의 격언124)

; 디오스쿠리(Dioscuri:제우스의 아들들), 카스토르, 폴리데우케스(뱃사람의 수호신(행 28:11))

(3) 고풍시대(The Archaic Period)

신전들: 숭배자들에게 편한 곳이 아닌 이미 거룩한 곳에 위치; 제단은 신전앞에; 숭배자들의 집회의 장소가 아닌 신들의 집(엡 2:20-21; 고전 6:19); 개인적 기도보다는 봉헌제물을 드리려

종교행사: 많은 인구의 적극적 행사참여; 봉헌제물과 정화(淨化)중요; 농업주기를 토대(농작물과 다산의 신); 진정한 인간의 삶이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삶의미(강한 시민적 기초를 둠)

신들에 대한 경향: 성문화; 국가차원의 숭배로 법적 규범화

디오니소스: BC 7C에 숭배확립; 술, 다산의 신; 남근(phallus)이 상징; 무아지경적인 광란이 특색

오르페이즘 문학: BC 6C부터; 공동의 관심과 생각으로 특징지어질수 있는 운동을 대표함; 우주창조와 의식과 행동의 규범을 다룸; 기독교의 처음 몇세기동안에는 로프페이즘의 부활(또는 생존)이 오르페우스 찬송가(Orphic Hymns)에 의해서 증거됨; 일반적 헬라 전통과의 차이125)

; 인간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죄의식반영) > 비관주의(5C)

(4) 고전시대의 붕괴의 징조들

BC 5-4C의 그리스종교의 화려한 시기; 파르테논(Parthenon) > 알렉산더 대왕: 개인주의(5C말), 국가의 주요신보다 하급신과 영웅을 찾음; 궤변론자(신들을 잉성의 대상); 시인들의 도전126)


그러나 거의 아무도 옛 종교를 벗어버리려고는 하지 않고, 전통적 신들이나 민간종교는 오래 지속되었다127)


2. 고대 로마 종교

상상력도 없는 거친 사람들; 누마(Numa)왕이 종교창시; 에트루리아인(Etruscans)들에게로부터 인수

(1) 신들

‘누멘'(numen: 살아있는 인격체와 관련되지 않는 신적능력이나 영향력, 복수는 numina); ‘제니우스’(genius: 장소의 영); BC 3C부터 그리스신들과 동일화(로마의 근원이 트로이라는 전설의 대중성)

BC 500 캐피톨린(Capitoline)언덕의 신전(주피터, 미네르바, 주노); 신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의 특성은 신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정의를 내리고 그들에 대한 의무감을 갖음

(2) 종교인사(Religious Personnel)

국가는 가족; 콜레기아(collegia; 종교활동책임 작은그룹이 업무다룸); 플라멘(flamen; 제사장); 폰티펙스(Pontifex; 15명의 비전문화된 제사장)와 그들의 지도자 폰티펙스 막시무스

(3) 종교행사

인간은 뉴멘(numen)을 발생시킬 수는 없으나 적절한 의식을 통해 이를 조종할 수 있었다; 가정예배(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 국가적 연례행사(신의날:dies nefasti; 인간의날:dies fasti); 승인받은 종교만 종교활동가능; 법적인 성격을 띄므로 정확하고 상세한 규정(인스타우라티오(instauratio; 의식을 되풀이함)); 머리를 가림(그리스인은 가리지않음)128)


(4) 혼과 죽은 자

개인적인 삶이 없음; 죽은자=메이니스(manes); 묘비의 디스 메니부스(Diis Manibus: 신적인 교인에게, D.M.); AD 1C이후 그리스로부터 개인의 생존 믿음소유; 젠스(gens:집단, 같은 성) > 제니우스(genius:가부장, 가족의 삶의 원칙(누멘)) > ‘지키는 영’(그리스의 다이몬과 동일); 가부장 제니우스의 숭배는 레어리스(lares: 가정의 수호신)과 연결되어 국가종교가 됨

(5) 로마 종교의 특징

집합적(단체적 견고성), 법적(계약 관계); 개인참여의 그리스, 위원회(collegia)에 집중된 로마; 피에타스(pietas: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 경건한 사람은 모든 의식을 철저하게 지킨자), 렐리기오(religio:신의 존재앞에서의 양심이나 경외심으로 피에타스를 수행치못할때의 거북한 마음); ‘서약’: 보티 레우스(voti reus: 서약에게 고발되는 자), 보티 담나투스(voti damnatus: 그의 서약으로 인해 정죄 아래있는 자); 관습이 중요(사물이 오래 지속되는 힘)

고대로마(카톨릭의 발전): 입법, 사법적 정확성, 조직의 발달, 제사장직의 권력 독점, 의식과 올바른 절차강조; 그리스(희랍정교회의 발전): 서역의 더 큰비중, 민중의 자발적 신앙심, 교리에 대한 사색적 관심 발달

3. 헬레 시대와 로마 시대의 종교: 일반적 특징

로마: 종교의 뼈대에 헬라적 내용을 채움

①포용적 다신론주의: 배타적이 아닌 이방종교,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 ②신들의 동일화로 일신론적 사상: 각 민족의 신은 다 같은 인물로 생각(혼합주의); ③신의 인간화는 힘이 숭배로 약화; ④미덕이나 이익을 신격화: 의인화(곡식: 세레스, 살루스(Salus: 구원), 리베르타스(Libertas: 자유), 빅토리아(Victoria: 승리), 콩코디아(화합), 팍스(평화), luck(운)); ⑤일신론의 경향; ⑥종교의 귀신화: 중간급의 신은 귀신; ⑦운명의 힘(스토아 철학의 숭배(아스클레피우스, 이시스, 사라피스: 그리스-로마시대의 신의 특징은 운명의 힘); ⑧점성학: 인과율의 법칙; ⑨마술의 인기: 미신,예언,부적,신상의 마술적능력증가; (10)종교의 단체적, 사회적인 면, 조직화된 숭배표현 요구; (11)여러단체들의 종교적인 면; ?`?종교와 친밀하지않은 도덕성129)


4. 가정 종교와 지방 종교

(1) 그리스

가정의 문옆: 제우스 헤르케이오스(Zeus Herkeios: 울타리의 제우스) 제단; 문근처의 돌기둥: 아폴로 파트로오스(Apllo Patroos); 집: 제우스 크테시오스(Zeus Ktesios: 저장실의 제우스); 가정의 제단: 아가토스 다이몬(좋은 귀신, 뱀으로 상징)130)

; 난로: 가정종교의 중심; 식사: 종교적인 행위로 시작하고 끝남; 예식행사동반: 출생, 사춘기, 결혼, 장례; 시골131)

: 영들이 가득찬 곳(강신(river gods), 여자요정(nymphs), 켄타우루스(centaurs:半人半馬), 실레니(sileni), 사티로스(satyrs:半人半獸), 판(Pan:염소의 다리와 얼굴, 목자들의 삶))

(2) 로마

1C까지 가정종교지속; 출입문: 레어스(lares:가정 수호신, 뱀과 연관); 나무별장: 라라리움(lararium:가족 신당); 페나테스(penates: 음식저장실의 수호신); 베스타(불의 여신); 야누스(출입문의 신); 레어스 아우구스탈레스(중요한 네거리의 신)

가정: 도로와 밭의 신 애호(페나테스, 레어스); 교회는 전통적 신앙심을 다른 물체에게로 옮김으로서야 이런 여러 신들의 숭배를 이길 수 있었다132)


5. 민간종교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종교는 사회의 기초(공적이며 사회체제의 한부분); 인간의 삶은 완전히 종교로 물들어 있었으며, 여러 의식적 행사들이 인생의 여정에 이정표를 기록했음; 각 도시의 보호신 보유(아테네: 범헬라적신; 델로스:아폴로, 아데미; 델피:아폴로; 올림피아:제우스)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종교를 범우주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만듬; 헬라 동방의 도시들의 자치제도의 쇠퇴, 민간종교가 깨어나기 시작

지역적 민간 종교의 중요성(로마가 자신을 그들에게 맞춤133)

); 황제나 국가 신들과 연결된 것을 제외하고는 쇠퇴함; 아우구스투스의 종교적 통제(82개의 신전재건; 시민의 생활과 종교적 의식간에 관계를 맺어줌)

(1) 제사장직134)


특정한 신을 섬기는 성전에 임명된 사제(officiant); 임무: 행정(관리자)과 의식(대중제사, 신의축제); 자격조건(시민권소유, 연령제한없음135)

, 도덕성보다는 의식적정결, 부자); 상속, 선출, 매입제사장제도; 혜택: 제물의 일부소유, 사회생활과의 밀접성

(2) 의식 규정

신당출입(여자, 시민이 아닌자, 노예는 금지)136)

; 제사와 세정(ablutions)등의 정화과정(죄의 개념)

(3) 희생 제사

예배의 주요행위:제사, 봉헌, 기도; 제사: 하늘의 신에게의 제사는 동물을 태우고, 제사장은 제물중 신전에 속하는 부분을 시장에 팔기도 함137)

; 제사의 목적은 교제가 아니라138)

, 선물과 공납이었고, 신들의 도움을 구하는 행동이었음; 렉티스터니움(lectisternium: 남자신을 맞았을 때), 셀리스터니움(sellisternium: 여자신을 맞았을 때); 종교적 식사를 위해 신전에 인접한 식당이 있음(고린도지역에 흔했음, 고전 8-11장)

제사는 교환(‘당신께 드리오니 당신도 내게 주옵소서’)

(4) 서원제(Votive Offerings)

엑스-보토(ex-voto: 서약을 위해 신들에게 바쳐진 물건); 명칭: 아나테마(anathema: '세워짐‘, 즉 신전에 세워져 신에게 바쳐짐), 도론(doron), 아파르케(aparche)또는 데카테(dekate: 십일조); 전쟁에서의 신의 도움(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침)

(5) 기도와 찬송

기도: 불러냄, 찬양, 탄원의 형식

6. 그노시스교, 연금술 문헌, 갈대아 신탁

2C엔 교회에게 교리적 도전을 주어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에피파니우스의 논박의 글; 낙 하마디(Nag Hammadi)의 문서들: ?도마복음?: 112-118개의 예수님이 하신 말들의 수집(금욕주의적); ?진리복음(발렌티누스)?: 정식 복음은 이니고 구속의 진리에 대한 명상; ?빌립복음(발렌티누스)?: 말씀이나 강연을 담음(예배행습의 정보); ?요한의 외경?; ?레기누스에게 쓰는 서신, 부활에 관하여?: 정통기독교와 가까운 입장; ?야고보의 외경?: 예수님의 부활후의 계시; ?지배자들의 삼위일체?: 창1-6장의 세상 지배자들이 인류를 속이려는 모습; ?삼자문서(Tripartite Tractate)?: 정통파의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그노시스교의 가르침; ?복된자 유그노스토스?;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 예수의 제자에게 계시적 강연

(1) 그노시스교의 근원

낙 하마디의 문서가 그노시스교의 연대기를 해결하는 도움을 주지는 못함; 비기독교적인 표현들을 증거하기에 기독교가 그 형성기에 그노시스적 개념, 표현, 용어를 기독교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는가의 가능성은 없음139)

; 일종의 헬라적 추론들로 생성한 듯140)

; ?헤르메티가?: 그노시스적 구조를 비기독교적 형태로 제시; 그노시스적 추론들이 창세기의 앞부분을 숙고한 듯; 교부들은 그노시스교 이단을 사마리아의 시몬 마구스(행 8)로 추적; 신약의 많은 것들(바울의 글)이 그노시스교적 해석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증명; 2C의 독립적 종교로 발전하기 까지는 기독교와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자람(다른 근원으로); 1C엔 상호작용(기독교의 발전에 긍정141)

 부정적인 공헌);

(2) 특징들

헬라세계는 종교적, 신화적, 그리고 철학적 개념들을 조화시켜 자신의 나름대로의 해석을 만듦142)

; 개인적 해석을 모두 포함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음; 가장 잘 알려진 체제는 2C 중반의 발렌티누스; 악의 근원과 구원의 방법으로서 ‘영지’(gnosis: 사물의 본질에 대한 계시된 통찰력)에 관심; 반우주적(물질세계의 부정적 평가143)

); 개념(①악의 문제에 대한 편견: 악의 문제를 인간들에게가 아니라 신에게 궁극적으로 돌림; ②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느낌: 세상에 대한 일반적 절망의 부분; ③우주의 비밀에 대한 특별하고 친밀한 지식에 대한 열망: 구원은 무지로부터, 지식은 구원의 방법이 아닌 구원 자체, 지식은 신적세계에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감; ④이원론: 심리적144)

, 윤리적145)

 이원론과 물질 세상과 천상의 영적 세상의 이원론의 혼합물; ⑤우주론: 플레로마 또는 신의 세계는 1원리부터 방사 또는 퇴화딘 존재들의 계층을 포함, 아콘(중간적 존재)의 세상운명 지배; ⑥인간론: 본질에 따른 분류, 영적인 존재들, 정신적 존재들, 물질적 존재들; ⑦과격하게 이미 이루어진 종말론: 우주적 성질의 미래적인 종말론을 강조하지 않음, 내적인 나라로 영적인 자는 진정한 상태를 경험하고 플로로마로 간다고 함; ⑧윤리적 의미: 영적인 자는 운명으로 자유한 것 처럼 도덕적 법규에서 자유함, 금욕주의(육체를 부인함))

(3) 신약의 그노시스주의

행 8장의 시몬 마구스의 이단; 골로새서와 목회신서: 천사중재자를 섬겼고 금욕주의를 실천, 비밀적 가르침, 우월한 지식을 보유, 창조와 부활의 기독교 교리 부인; 딤전 6:20(‘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요한서신: 성육신을 부인, 구원에 대한 개인적이고 자유사상적인 견해, 지식을 강조; 고린도의 부활과 영적 은사의 열심인 문제도 그노시스적 생각으로 추적됨; 신약의 오류를 범한 자들은 유대교, 이방종교, 그리고 기독교의 요소를 합친 것으로 보이나 이런 성분들은 잠재적으로 거의 무한대적인 조화를 가질 수 있음

(4) 헤르메티카(Hermetica)

헤르메스의 글들은 그노시스주의의 이방 지류라고 묘사됨(시초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는 우주적 결론을 갖지 않은 채 지식에 대한 개인적 구석의 체제 때문); ?헤르메티카?: 신비주의, 진정한 지식(그노시스)은 내적 계몽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비젼, 무아경(신격화, 육체적인것과 감각적인 것은 무아경을 방해한다); 구원은 명상적인 황홀경(영혼은 일곱 개의 혹성의 영역을 지나 악을 벗어버리고 옥도드(ogdoad: 여덟 번째 영역으로서 영원한 완전의 영역)에서 영혼은 영적인 세력으로 변하여 결국 하나님에게로 흡수됨); 유대교의 영향(창 1:28의 인용); 기독교 접촉은 간접적146)


(5) 갈대아 신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 통치 때 신적계시들에 근거했다고 주장되는 헬라 구절들의 모음; 후에 신플라톤학파들의 ‘성경’; 마법(theurgy)을 정당화하기 위함; 철학의 마귀론에의해 조직화; 그노시스적 구조의 일부 요소를 철학적 옷을 입힌 것; 가장 높은 신과 세상 사이에 있는 많은 권세들이 내려가며서 수직적 정렬; 영혼은 불같은 본성이고 육체와 싸움으로 아버지(그가 나온 근원인 불)에게 돌아가려고 노력

7. 후기의 발전: 유일신론과 태양숭배

제노파네스(Xenophanes)와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모든 민족들이 다른 이름아애 동일한 신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은 헬라인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 혼합주의는 로마시대에 상례적인 것; 종교 혼합주의는 너무 많은 ‘과대한 보따리’를 이전의 다신론주의로부터 가져옴; 태양신학은 스토아철학(태양이 이성으로서 불, 그리고 신적권력과 동일하다는 것)과 태양이 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당시의 대중 점성학의 혼합의 결과; 3C의 시리아의 태양신은 새로운 철학과 대중적 사상에 맞추어 해석되었으며 황제 숭배와 결합됨; 274년 아우렐리안황제(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무적의 태양)의 제국종교; 줄리안(361-363: 헬리오스(태양) 숭배로 기독교에 대항); 지식층과 지배계급의 종교; 대중에게 영향(혹성의 이름으로 된 주(week)중의 하루에 일요일이라는 이름, 시저와 아우구스투스의 양력(solar calendar)은 태양의 축제를 격려하기 위한 것임147)

)


제4장 그리스-로마의 철학

1. 종교로서의 철학

철학은 그들의 종교; 이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학문이 아닌 삶의 방식; 각학파는 독특한 신념들과 행동 양식을 포함한 자체적인 삶이 방식(agoge)을 갖음; 윤리학이 주된 관심사; 신자들의 공동체 형성; 신은 비인격적 존재; 삶의 방법을 가르침이 목적; 전통적 신화의 신인동형론과 부도덕함, 다신론, 미신적 종교행위, 희생 제사의 거칠고 상스런면을 비판; 개인주의의 권장(보편적인 사상을 구축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의 결별); 영혼은 지적이고 도덕적 인격이며 인간의 첫째 의무는 자신의 영혼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받고 이용함(상이한 헬라의 철학 학파들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개발)

2. 궤변론자들(Sophists)과 소크라테스

(1) 궤변론자들

헬라철학의 근원은 소크라테스; 궤변론자들의 운동이해 선결조건; BC 5C에 나타남;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는 자’를 지칭했음; 대중생활에 필요한 연설기술을 전해줄 목적(구체적인 증거보다 일반적인 근거에서 논증하는 방법, 사실들을 새롭게 해석하여 자기들에게 유익하게 만드는 방법); 본질적 방랑자, 세계주의자 타입; ‘관습’(nomos,법)과 '본성'(physis)의 대조제기(보편적이 아닌 그리스, 구별필요, 전통의 근원 맹타하고 도덕적 상대성의 개념 유도); 일반적인 질문으로 이성주의적 경향148)

; 신의 기원에 대한 이성적 이론제기(프로티쿠스, ‘유용한 물질들의 신격화’; 크리티아스, ‘인간의 잘못을 저지하는 억제용으로 발명’; 유헤메루스(Euhemerus), '위대한 사람들의 신격화‘); 궤변론자 운동은 사상이 아닌 의식적인 지성주의의 탄생

(2) 소크라테스(BC 469-399)

자연철학이었던 과거에서 일상 생활의 실질적인 일에 관심을 둠(‘철학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키케로); 개인주의 강조의 기초; 궤변론자는 아님(궤변론자에 반대); '질문의 사명감'(사람들은 올바른 것을 알면 그대로 행한다149)

) ; 태도와 훈련의 철학; 플라톤의 ?대화?와 제노폰의 ?중요기사?; 신들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아니라 새 다이몬(daimon: 양심)을 소개해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고발됨

3. 플라톤과 1세기까지의 아카데미

(1) 플라톤의 생애(BC 429-347)

아테네의 귀족가문 출신; 소크라테스와 개인적인 접촉한 생애(그의 죽음은 플라톤에게 일종의 종교적 각성을 초래); 12년간 여행을하고 387이후 아카데모스(Akademos)신에게 바쳐진 과수원근처에서 가르침(아카데미라고 불림)

(2) 대화(The Dialogue)

대화형식의 저작; ?대화?(세개의 시대: ①유티프로, 크리토, 프로타고라스와의 초기대화, ?변명?-용기, 절제, 거룩, 정의 규정, ②‘참된 세상은 순수한 형상(감각의 세상은 관념의 모방)’, ?공화국?, ?파에도?, ?심포지움?, ③이데아 이론의 비평(수학과 감각적 세계과의 관계), ?궤변론자?, ?정치가?, ?필레부스?, ?티메우스?, ?법률?

(3) 플라톤의 사상

①이데아의 이론: 관념이란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시간과 공간밖에 있는 것, ‘이데아’는 실체이고 물질적세계는 서툰 모방150)

; 선의 이데아(완전의 원리)에 귀결,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에 플라톤이 가장 가깝게 접근, 플라톤의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완전의 원리; ?공화국?의 ‘동굴신화’(이데아의 세계를 본 철학자가 그림자와 같은 감각적인 이 세상만을 아는 사람들보다 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최선의 삶은 명상(contemplation: 산의 정상)과 행동(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동굴로 돌아옴)하는 이론과 실제가 결합된 삶151)


②영혼: 육체로부터 구별된 영적 실체에 대한 강조, 불멸에 관한 교리, 영혼 및 그와 관련된 윤리적 이론의 분석들은 그의 이데아의 이론이 받지 못했던 인정을 받음;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적 사상 이용(두개의 구별된 실체, 영혼이 개념을 이해하는 이데아의 세계); 육체와 영혼의 이원화는 플라톤의 산물; ?파에도?(영혼 불멸에 관한 논증); 이주(transmigration), 보상, 형벌들의 옛사상이용; 인식론(epistemology)은 영혼과 관련(지식은 회상(recollection), 관념은 경험과는 무관한 선험적인 것); 삼분적인(threefold) 영혼분석(지적인 부분:지혜, 진동하는 또는 활발한 혼적인 부분:용기, 욕구적인 부분:절제)의 균형과 조화가 있을 때 인간은 정의의 미덕을 나타냄152)


(4) 플라톤의 영향

교부신학(Patristic theology)에 영향끼침; 빗물질적인 실체에 대한 강조, 육체로부터 구별된 죽지 않는 영혼, 우주적 종교의 개념(천체 질서의 아름다움),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의 이론은 막대한 영향

(5) 구 아카데미

BC 347에 조카 스퓨시푸스(Speusippus)에 아카데미 교장계승, 연구계속; 제노크라테스(Xenocrates: BC339-314까지 교장): 신들과 악마들의 본질을 조직화, 실제적인 도덕성에 주의; 폴레몬(Polemon: 314-270까지 교장): 윤리에 관심; 크라테스(Crates: 270-268): 구아카데미의 마지막교장

(6) 회의주의적 아카데미(Skeptical Academy)

아르케실라스(Arcesilas: BC 316-241): 제2아카데미 시대를 염, 질문의 방법(소크라테스적), ‘판단의 유보’, 철저한 회의주의; 카르네아데스(Carneades:214-129,180-136): 제3아카데미 소개, 더욱 회의론(결코 어떤 것도 동의해서는 안되지만 3개의 개연성의 정도(단지 있음직함, 있음직하며 모순되지 않음, 있음직하며 모순되지 않으며 시험되었음)), 소요학파의 크리톨라우스(Critolaus)와 바벨론의 스토아 학파 디오게네스(Diogenes)와 로마에 감(로마에 충격적인 효과)

(7) 절충주의적 아카데미(The Eclectic Academy)

필로(Philo of Larissa: 160-80): 제4아카데미의 절충주의 학파등장, 아무것도 결정될 수 없다면 살 수 없는 인생이므로 회의주의와 결별; 율법을 철학용어로 해석/ 아스칼론의 안티오쿠스(Antichus of Ascalon: 130-68): 제5아카데미의 완전한 절충주의, 플라톤의 계승자는 스토아학파라고 함, 아카데미는 스토아학파가 플라톤적이 되어갈 때 스토아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음(중간플라톤학파와 신플라톤학파의 태동에 기여)/ 키케로

4.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요학파(The Peripatetics)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BC 384-322)

칼시디케의 스타기루스에 출생; 17세에 아카데미옴; 마케도니아 젊은 알렉산더의 가정교사; 334년에 체육관 건물 빌려 학교 설립(안마당(페리파토스, peripatos)을 거닐며 가르쳤으므로 소요학파라 함); 칼키스 사망

(2)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플라톤이 형상들(forms)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더 높은 종류들로 분류함; 부분들을 연구함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

①실체로서의 세계: 본질적인 모습; 형상과 물질, 양식(pattern)과 가능성으로 분리; 이데아는 개체로부터 분리해서 개체 외부에 존재; 사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상화해야함; ②동작으로서의 세계: 변화자체를 연구; 동작의 4가지 원인(물질적 원인, 효과적인 원인, 형식적인 원인, 최종적 원인); ③가능력으로서의 세계: 능동적 가능성과 수동적 가능성; ④신: 성경의 개념과 다름; ⑤영혼: 세종류의 영혼(영양이 되는 혹은 식물적인 영혼들, 민감한 혹은 동물적인 영혼들(오감 충동본능), 생각하는 영혼; ⑥지식의 이론: 플라톤의 인식론을 거꾸로 돌림; 지식은 감각적 경험에 의존; ⑦도덕론: 이론적 이성(생각하고 이해하며 명상할 수 있는 능력)과 실천적 이성(행동에 적용된 이성) 모두 지닌 인간

(3)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플라톤의 사상은 기독교 시대초기에 부활되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독교 사상에 대한 지대한 영향은 수세기 후에 나타남;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연구기관으로 공헌

(4) 데오프라스투스(Thepphrastus:BC 370-285)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경건에 관하여(On Piety)?: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에 반대, 기독교 변증자들에 의해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무기로 환영받음; ?성격들(The Characters)?: 30가지의 성격스케치153)

; ?철학자들의 견해들(The Opinions of the philosophers)?

(5) 스트라토(Strato)

형이상학의 개념포기하고 역학에 연구;

(6) 후기 역사와 일반적 특성

스트라토 이후 3C 중엽의 아테네의 소요학파는 윤리학이나 웅변술에 관심; 거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실들을 공급해 주는 공급원

(7) 소요학파의 유산

①세계관: 자연세계에 관심과 종교적인 함축; 세상은 우주 신의 표현; ②전기적 저술: 인물에 찬양(Tacitus, Agicola), 문화적 통일을 목적으로한 소요학파적 전기(?플루타크의 영웅전?), 알렉산드리아적 전기(수에토니우스의 ?시저들의 생애?), 대중적인 로맨틱한 생애(이솝의 생애)

5. 회의주의(Skepicism)

도그마(dogma: 견해나 의견으로 무엇인가를 조사한 후 어떤 사람이 갖는 입장); 스켑테스타이(skeptesthai: 반드시 결론에 도달함이 없이도 조사하는 것)

(1) 퓌론(Pyrrho: BC 360-270)

판단의 회의적인 유보에서 마음의 평안(ataraxia)을 찾을 수 있음; 온유함(praotes: 신약의 praies참조)과 무관심(혹은 냉담)의 특징; 조직적인 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삶에 대한 견해

(2) 에이네시데무스(Aenesidemus)

BC50년에 퓌론주의부활; 두가지 논법(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이것이지 않다154)

, 어떠한 논증이든지 반대 논증은 있다155)

;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공격하는 대신 회의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지식의 가능성을 공격

(3)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AD 200)

엠피릭(Empiric: 경험에 의존하는 의사) 학파의 의사로 간주; ?퓌론주의의 개요?, ?교수들에 반대하여?

(4) 회의주의의 영향

부정적이어서 효과적인 학파가 되지 못함; 그 사람이 처한 사회에 의거해서 살라고 함; 고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든 고대의 교의들을 공박하는 데 사용

6. 견유156)

주의(Cynicism)와 대중철학

(1) 견유주의의 기원

시노페의 디오게네스(BC 400-325); 공중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아나이데이아, anaideia) 때문에 ‘개 같은 디오게네스’라는 이름을 받음; 최소한의 생필품으로 사는 자족의 삶 옹호; 교훈을 담은 예리한 이야기들이 설교의 특징; 크라테스(Crates: BC 365-285): 방랑적, 자발적인 빈곤과 독립적인 삶의 방식; 제논(Zenon): 크라테스의 제자, 스토아학파157)

의 창시자

(2) 견유학파의 특징

비난을 도발하기 위해 사회의 관습에 어긋나는 행위158)

를 함으로 스스로 경멸의 대상이 됨; 쾌락거부, 불명예를 찾음으로 고난과 무관심, 자유추구; ‘나는 미덕과 본성에 의거해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그러한 삶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다’; 연설에 대한 대담성(집회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인데, 무례한 독설로 욕하는 것에 자신들의 독립성을 표현하는데 사용); 독특한 외모(양털로 된 외투, 지팡이, 구걸하는 가방, 긴 수염); 소유물을 포기하고 철학자의 외투를 걸치며, 스스로 고난을 초래함으로 기독교 수도사로 이끄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가 됨

(3) 다이아트라이브(The Diatribe)

비온(Bion: BC 325-255)과 메니푸스(Menippus: BC 3C 전반)이 다이어트라이브(통렬한 비판, 혼란) 스타일을 개발; 텔레스(Teles: 3C중반)의 최소의 일용품 생활, 온건한 견유주의 대표, 디오(Dio)로 알려짐; 대화와 유사(직접적인 제언, 질문들과 대답, 실례에 호소, 시, 다른 전거들로 인용); 신약의 예(롬 2-4, 약 2:14ff)

(4) 대중설교의 주제

자급자족(autakeia)가 목표; 사람들이 사치와 방종과 미신으로부터 자유, 훈련, 그리고 명상의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 메시지; 케베스(Cebes: AD 1C)는 선한 삶과 악한 삶묘사; 양심의 개념

(5) 프루사의 디오(Dio of Prusa: AD 40-112)

후에 크리소스톰(Chrysostom: 황금입술)이라 불리운 디오의 연설; 디오와 루키아노스(Lucian)는 참 견유주의자를 다른 유형과 구분(Dio, Discourse 32:9; 살전 2에서 바울은 자신을 다른 거리의 설교자들과 구분했으며, 행 17:18에서는 자신을 묘사하기 위해 spermologos란 용어사용); AD 1C말부터 로마의 거지철학자가 많음; 스토아적 금욕주의 신학(포시도니우스, Posidonius에 의존)

(6) 루키아노스(Lucian of Samosata: AD 120-180)

철학자들이 주 표적으로 풍자(?헤르모티우스?, ?연회?, ?리피트스?)

7. 스토아주의(혹은 금욕주의)

헬라시대의 주요 철학 학파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혹은 쾌락주의: Epicureans; 행 17:18참조); 윤리에 관심; 실체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

(1) 초기 스토아

①제논(Zeno: BC 335-263): 창시자; 초기의 사상은 견유주의의 영향; 아테네의 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에서 가르침; 논리와 지식의 이론, 물리학과 신학, 윤리의 세분과 완전한 철학적인 체계를 개발; 인생의 목표는 미덕; ②클레안테스(Cleanthes: BC 331-232):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설명을 보다 종교적인 방법으로 봄; ‘제우스에 대한 찬송’; 아카데미의 공격을 받은 시기; ③크리스푸스(BC 280-207): 스토아철학의 재탄생 목격(보다 학구적, 전문적); 심리학과 논리에 관심; ④솔리의 아라투스(Aratus: AC 315-240): 교장은 아님; 스토아적 색채를 띄는 시(신약에 인용159)

)

(2) 스토아 물리학

①유물론: 비물질적인 것은 없다(신, 세상, 말(words), 감정도 물질); 세가지 요소(말, 개념, 물리적 대상); ②범신론: 두종류의 기본적인 물질(거친물질, 정제된 숨(breath) 혹은 영(pnuema)); 모든 것에 신적인 실체 발견(제우스는 어디에나 있다-운명의 의인화); ③영혼과 섭리: 두종류의 물질로 구성된 인간(육체의 무거운 물질, 영혼의 가벼운 물질); ④풍유(Allegory): 고대신화에서 물리적 이론을 찾음으로 우화적 해석 진척160)

; ⑤대화재와 중생: 불에 의한 세계론(상호교환에 의한 균형, 안정, 질서(로고스); 헤라클리투스에게 영향을 받음; 창조적인 불의 원리161)

)

(3) 스토아 학파의 논리와 인식론

우주가 질서정연하다는 그리스사고의 근본원리 이해를 위한 논리연구에 관심; 인간은 백지이므로 오감에 의한 정보는 자신의 자유에 의해 선택된다(자유의지); ‘붙드는 지각(kataleptic phantasia:매우 강한 흥미를 돋우는 것은 반드시 믿어야 함)'; 감정(마음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과다한 소원(마음과의 접촉)혹은 과장된 충동(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 마음을 정도 이상으로 움직임)), 영혼(생각하는 기관)

(4) 스토아적 윤리

①덕: 삶의 목표; 이성적 인간은 이성(로고스)에 의거한 삶; 미덕 또는 완전함은 이성적 본성에 의거한 삶; 실제적 판단(phronesis)에 귀착; 이론적으로 상당히 지성적; 참현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정; ②중요하지 않은 것들: 삶과의 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한 것들(가족, 집, 건강)과 바람직하지 않은 것; ③결정론: 순환이론; ‘자유의지’신봉

(5) 중간 스토아(Middle Stoa)

①파나에티우스(Panaetius: BC 185-109): BC 144년 로마행, 폴리비우스(Polybius)와 스키피오(Scipio)집단에 속함; 로마인들에게 맞는 스토아주의를 적용, 세계 대화재 개념을 포기하고 세상의 영원성을 받음; 플라톤적인 이해; 4개의 욕구(정치적, 지적, 자신을 위한 완전, 심미적); 3종류의 신(자연적인 신, 정치적인 신, 신비적인 신); ②포시도니우스(Posidonius: BC 135-50): 자연계의 과학적인 관찰과 인과관계에 관심; ‘삶과 성장, 그리고 차이점의 근원은 태양-생명을 주는 힘-이다’, 인종학 이론과 결합; ‘세상의 모든 부분들 사이에는 공감의 관계가 있다’, 조수간만에 미치는 달의 효과발견, 일치의 이론 생성(다른 개인들이 조화롭게 기능함, 각 부분이 다른 부분에 연결됨, 한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침); ‘우주는 등급-힘-별 존재로 이루어진 질서적인 세계이다’

(6) 후기 스토아: 로마의 스토아주의

AD 1C-2C엔 윤리적이고 실제적인 관심; 광범위한 흥미(세네카, 노예인 에픽테투스-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①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AD 1-65): 마술사 가정의 출신, 형제 갈리오(Gallio)는 아가야의 총독(행 18:12), 네로의 가정교사; 8년간 정부에 지침(with 집정관 부루스); ?대화집?(10개의 윤리적 논문); 스토아의 일원론은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수정, 철학을 도덕적인 권면에 종속; 고대 철학자보다 더 기독교적162)

; ②코르누투스(Cornutus: AD 20): ?그리스신학에 관한 전통들의 요약?(신화들에 대한 우화적인 설명); ③무소니우스 루푸스(Musonius Rufus: AD 30-101): 미덕의 실천강조; 도덕적 가르침; ④에필테투스(Epictetus: AD 55-135): 노예, 내적자유를 얻기위해 모든 것에 무관심 강조163)

; ?편람?164)

; 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 121-180): ?명상록?다소 금욕적인 사람의 보수주의 반영; ⑦스토아주의의 종말: ‘왜냐하면 모두가 스토아주의자가 되었기 때문’165)


(7) 스토아주의와 기독교

스토아주의에 숙달된 용어 사용(영, 양심, 로고스, 미덕, 자급자족, 말의 자유, 합리적인 봉사);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의 영향(엡 5:21-6:9; 골 3:18-4:1; 벧전 2:13-3:7); 인류의 악, 자기 반성의 필요, 인류와 신과의 유사성, 세상가치 부인, 내적 자유강조, 스토아의 자연 신학은 헬라적 유대주의를 지나 로마서 1-2장 행 17장에 영향

현실을 부인하여 소수를 위한 철학으로 남은 스토아와는 반대로 기독교는 대중들의 관심을 끔; 스토아의 무관심에 반대로 기독교는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줌; 사랑의 기독교와 자기 존중의 스토아주의

8. 에피쿠로스주의(Epicureanism)

(1) 에피쿠로스와 그의 학파

BC 341-270;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고대세계의 어떤 철학자보다 매력적인 인물; BC 306 아덴에서 학교를 염

(2) 루크레티우스(Lucretius: BC 94-55)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내세에서의 책벌과 이세상에서 신들의 간섭에 대한 미신적인 공포를 폐지하기 위함)

(3) 에피쿠로스의 물리학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의 원자론에 의존; 물질과 공간, 원자에 의한 구성, ‘임의적인 벗어남(탈선)’, 자유의지의 여지; 유물론자(종교의 붕괴); 섭리가 없다(인류를 종교의 어둠에서 구원하기 원함)-> 영혼의 불멸을 부인함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코자 함.

(4) 에피쿠로스의 인식론

철학: 물리학과 윤리; 감각적 인지가 기초, 이성이 감각들로부터 구성(충분히 감지하면 그것은 개념(prolepsis)을 만듬); 방출혹은 발산의 교리(아이돌라:‘우상’)

(5) 에피쿠로스의 윤리학

물리학과 정전학은 윤리학을 위해 존재; 삶의 목표는 쾌락(hedone); '쾌락은 선하고 고통은 악하기 때문에, 본성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한다‘; 쾌락을 강도, 지속기간, 순도에 의해 측정; 동적쾌락(저급인 육적쾌락), 정적쾌락(평형상태, 휴식, 건강); 고통의 세유형(필수적(배고픔), 자연적이나 필요없는(성관계), 불필요(변태성욕)); 영혼과 마음의 쾌락(동적쾌락: 부와 권력; 정적쾌락: 영혼의 평정, 동요의 부재)(6) 평가와 비교들

AD 200년경의 디오게네스166)

; 전통종교 거부, 공동사회와 분리167)

; 스토아학파와 경쟁(에피쿠로스: 쾌락주의의 극단적인 키레네철학, 소크라테스 이전 데모크리투스의 물리이론, 평정(ataraxia), 사상 무변화, ‘정원’의 삶-공공에 관심없음, 강한 결속력과 종교적인 힘; 스토아: 세상부인의 극단적인 견유주의, 헤라클리투스의 물리이론, 무욕(apatheia)168)

, 사상의 변화, ‘현관’의 삶-중립적인 입장, 능동적인 교의)

9. 절충주의(Eclecticsim)

(1) 특징

BC 1C의 특징

(2) 키케로(BC 106-43)

로마의 교육(파에드루스:에피쿠로스; 디모도투스:스토아; 라리사의 필로의 가르침); 그의 지성은 플라톤적이고 그의 양심은 스토아적이며 그의 정보는 소요학파적; 인식론-?Academica?, 윤리-?선과 악에 대해?, ?도덕적의무에 대해?, 신학-?신들의 본질에 대해?

10. 신피타고라스주의(Neopythagoreanism)

(1)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6C인물; 4가지 견해와 연관(①숫자 근원설; ②메템수코시스, 윤리의 이론; ③종교적인 열심; ④금욕적인 훈련 확립; BC 5C에 초기주의자들 소멸

(2) 피타고라스주의의 부활

닉디우스 피굴루스(Nigidius Figulus: BC 45)의 관심으로 부흥; 숫자나 금욕주의 철학의 종교적 이해에 관심

(3) 타나의 아폴로니우스와 필로스트라투스

아폴로니우스(A,D 1C): '신적인간의 개념의 대표자; 필로스타라스(BC 170-249): ?아폴로니우스의 생애?(마술사요 협잡꾼); 아폴로니우스의 생애와 예수와 유사함(기적적인 탄생, 제자모음, 순회하며 가르침, 기적, 재판중에 사라짐)

(4) 누메니우스(Numenius)

AD 2C 후반; ‘피타고라스화한 플라톤주의자’

11. 중간 플라톤주의(Middle Platonism)

(1) 특징

플라톤사상이 스토아의 윤리,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신피타고라스의 형이상학과 종교의 영향을 받음; BC 1C(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부흥)-AD 2C; 2C기독교 변증자(저스틴마터, 타티안, 아케나고라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지적배경제공; 최상의 마음(신)의 절대적인 초월성 강조

(2) 플루타크(AD 50-120년 이후)

?병행의 삶(Parallel Lives)?; 경건한 이성주의(‘신에대한 참되고 가치있는 개념을 형성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철학의 절장이다’); 박애주의자

12. 플로티누스(Plotinus)와 신플라톤주의

헬라철학의 발전의 절정기; 기독교에 대한 마지막 지적도전을 위한 초점을 4C기의 이교주의에 공급; 오리겐에 영향, 어거스틴의 지적발달에 영향, 중세 라틴발전에 큰영향

(1) 플로티누스의 생애(AD 205-270)

이집트 출생; 40세의 로마정착

(2) 플로티누스의 체계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스피노자사이의 위대한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신피타고라스가 포함된 플라톤주의로 구성; 최고의 원리는 완전히 초월적(초월(a transcendence)이 모든 존재뿐 아니라 비존재까지도 포함한다고 가정함으로 플라톤을 능가함); 창조대신 방사(emanations)의 교리; 영혼이 모든 존재의 구원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은 일치에 대한 욕구(이 일치가 구원)

(3) 후기 신플라톤주의자들

신학과 철학을 통일함; ①포르피리(AD 232-305):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에 대한 개론?; ②이암블리쿠스(AD 250-325): ?신비에 관해?(후기 고대 종교); ③살루스타우스(Sallustius): ?신들과 세계에 관해?(신플라톤적 경건의 안내서, 이교도사상의 뛰어남을 요약); ④줄리안(Julian: 332-363): 이교주의 재건시도(‘배교자 쥴리안’), 혼합주의(태양신); ⑤프로클루스(Proclus: AD 410-485): ?신학적 요소들?; 아카데미는 저스티니안(Justinian) 황제에 의해 AD 529년 폐쇄될때까지 존재




    


      - 미주 -


1) 고대사회에서 유대인들은 문서종교(book religion)로 전 국가를 교육시키려고 노력한 유일한 사람

2)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동일한 율법책(모세 오경)을 인정

3) 직함, 에피파네스(Epiphanes: ‘현신한 하나님’)을 에피마네스(Epimanes: ‘미친 자’)로 부르는 말장난

4) 디오니수스의 축제에 돼지들이 제물로 바쳐졌고, 이것은 유대인의 하나님과 디오니수스를 동일시함

5) 조상인 하스몬(Hashmon)으로부터 유래된 하스모니안(Hasmonean)이름이 더 정확

6) (Idumean:에돔의 라틴어식 표기)

7) 폰투스의 왕으로 아시아를 로마의 손에서 되찾으려 했으나, 40년간의 걸친 로마의 싸움(술라, 루쿨루스, 폼페이) 끝에 패전 > 마지막 남은 셀류키드 세력

8) 쿰란 주석은 로마의 점령을 하스모니안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다. 한편 로마의 점령은 치욕이며, 폼페이는 성전에 들어갔다. 솔로몬의 시편은 15년 후에 천벌을 받은 폼페이를 말하고 있다.

9) 방백(ethnarch: 백성의 지배자)라고 명명, BC 43년 독살

10) ‘방백’보다 낮은 것으로 지방의 어느부분의 통치자

11)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로 파르티아의 힘을 입어 유대를 점령, 파사엘을 처형하나 헤롯은 로마로 도피

12) 친구관계, 동부를 지휘하게 되나, BC 31년 악티움해전의 패배로 자살

13) 헤롯의 품행과 유대인들의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를 아는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함

14) 자신의 이복 형제인 헤롯빌립(분봉왕 빌립이 아님)의 아내인 자신의 조카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나바테안왕 아레타스 4세(BC 9- AD 40; 고후 11:32)의 딸과 이혼; 침례 요한의 저주(막 6:17-28); 막 10:11

15) 군단 병력이 아닌 지원부대에 의해 수비되고, 황제의 사절보다 낮은 기사계급인 총독이 통치함(그라투스:15, 빌라도:36, 쿠마누스:52, 플로루스:66)

16) 아켈라오가 폭정을 계속하자, 아구스도는 아켈라오를 추방하고, 로마에서 두명의 총독 파견됨(하나는 유대출신, 하나는 사마리아출신)

17) 아구스도는 총독을 매우 자주 바꾸었으나, 디베료는 오랜 동안 머무르게했다.

18) 대제사장 요셉 가야바(AD 18-36, 안나스의 사위); 70명의 산헤드린 위원단의 내정 간섭 권위; 유대주조 동전의 인물상 제거

19) 역사기호인 BC. 생략

20) 로마와 대적한 한니발에 동맹함(2차 포에니 전쟁 중)

21) 에게 해의 프톨레미 영지를 지배하려다가 로도와 버가모의 로마에 대한 호소로 로마군대의 개입 > 결국 마케도니아로 영토가 제한됨

22) 전통적으로 파라오를 숭배하는 이집트의 관습도 프톨레미 왕조시대에 헬라식의 통치자 제의가 제도적으로 발달하는데 영향을 미침

23) 마카비 3서 2:28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문신을 새기라고 강요.

24) 여기부터의 연도는 AD임(역시 생략)

25) 반유대주의자, 본디오 빌라도를 지명했음(빌라도에게 영향?), 유대인들의 로마추방

26) 많은 학자들이 이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 당시 노예 이름으로 널리 쓰였던 크레스투스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고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음.

27) 수에토니우스, ????클라우디우스????, 25. 4; 행 18:2)

28) 로마서 13장의 바울이 로마 국가에 대해서 설명한 것은 이 기간에 쓰여졌다.

29) 전통에 의하면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의 순교는 그 여파에 의한 것.

30) 줄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막을 내림

31) 다음 5명은 다섯명의 선한 황제들로 기억됨

32) 클라우디우스 이전에는 제독(perfect; 신약의 ‘헤게몬’(헬), ‘프래펙터스’(라); 가이사랴에서 나온 본디오 빌라도 비석은 유대의 총독으로서의 빌라도의 공식적 라틴 명칭이 프래펙터스였다)이었으나, 이후엔 지방 수세관이라 불리움.

33) 속주의 지도자들이 그 속주의 수도에서 정기적으로 모였던 것이 2세기에 소아시아에서 모이기 시작한 교회 모임들에게 하나의 패턴을 제공했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34) 아시딤: 반감을 품음/ 바리새인: 묵인/ 쿰란 공동체: 더럽다고 물러나와 사해의 서북쪽에서 은둔하여 사독계열에 충성유지

35) 다니엘은 하시딤의 견본적인 인물(단 1:8; 마카비 2서 6:18-7:42)

36) 율법을 전통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체계를 세움: 율법 자체로서의 지고한 효력: 모세-여호수아-장로들과 선지자-대회당의 직원-의인 시몬-안티고누스-요세 벤 요에셀/요세 벤 요하난-요수아 벤 페라크야/알벨릿 닛타이-유다 벤 탑바이/시므온 벤 쉐타크(BC 70)-쉐마야/압탈리온(BC 40)-힐렐: 부드럽게 해석/샴마이: 엄격하게 해석(BC 10)

37) 육체의 부활 교리와 죽음 후 심판의 개념을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보아 거절하였다.

38) 단 11:33

39) 사 40:3

40) 초막절의 물붓기 관습(슥 14:17): 예수의 재명명(요 7:37ff).

41) 자신은 계시된 복음(갈1:12)

42) 아비욘의 유대국가 공격에 요세푸스가 ‘아비욘에 반박함’을 씀

43)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글: 그들이 당신을 위해 무덤을 쌓았다.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게 / 그레데이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들이며, 악한 짐승들이며 그리고 얼마나 게으른 탐식가들인지! / 그러나 당신은 죽지않고, 영원히 살며, 부활한다. / 그러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살며, 기동하며 그리고 생존한다.

44)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전 6:12; 10:23)

45) 메시야니즘의 증가: 드다의 무리설득

46) 공백기간중 야고보의 처형: 대제사장 안나스2세의 사법권 월권행위(약 5:11-16의 정죄 배경)

47) lex lulia de ui publica(BC23) → 2C 시민권의 급증과 부패발생

48) 희한하고 해독한 미신에 말려든 부류(수에토니우스), 타락으로 악명높은 자들(타키투스)

49) 서커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근처의 팔리틴 언덕(Palitine Hill)에 있는 간수의 방의 돌 위에 긁어 놓은 고대의 낙서

50) 가르침을 방해하는 세력들: ‘노스틱주의(Gnosticism)'로 골로새서에서 공격을 받은 대로 유대교를 기초로 하고 이교를 상층으로 하는 비국교도의 혼합주의적인 천사숭배

51) 물질을 본래 악으로 보는 주의로 신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없다.

52) 고대 리시디아의 수도인 사데에 정착했던 바벨론 출신의 유대인 군사 식민지 개척자들은 완전히 헬라화되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회당 공동체로 등장함

53) 로마 시의 200,000명에서 300,000명 사이로 전체 주민의 1/3 해당

54) 앗탈로스 왕의 유언에 따라 버가모를 물려받은 로마에 대항한 반란으로, 노예 제도의 종식을 선포하고 추종자들을 태양시의 시민들이라고 부름(유토피아적이고 사회변혁적인 사상의 일부 반영)

55) 주인에게 순종하는 기독교 노예들이 교회내에서는 장로나 집사로 봉사했다.

56) 벨릭스(행운아), 오네스모스(유익한 자), 첫째, 둘째 등의 모욕적인 이름을 지녔음

57) 롬 16: 7

58) 여행하는 동료들에게 숙박과 편의를 제공했으며, 그들이 외국의 도시에서 일자리를 발견하고 정착하는 일을 도와줌, 바울의 천막만드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행 18: 1-3)

59) 사라피스, 이시스, 아티스, 멘 티라노스, 기독교

60) 이집트의 예외: 나우크라티스(BC 650), 프톨레마이스 헤르미오우(프톨레미), 알렉산드리아(셀류시드 제국의 수도 안디옥과 티그리스의 셀레오키아 다음 가는 도시)

61) 오론테 강변, 최초의 헬라 기독교 회중이 위치함

62) 티그리스 강변, 동서 교역의 중심지, 바벨론의 위치 차지

63) 거리는 직선으로 배치, 동일한 직사각형 블록으로 도시가 나뉨, 시민들의 동일한 크기의 땅을 소유

64) 요새의 도시에서 성벽에 의존한 도시로 수정되기도 함

65) 육류는 주요 음식이 아님, 특산품(올리브유와 포도주)은 부수적인 수입의 원천)

66) 헬라인 거주지들의 전통적인 의복때문에

67) 바나우소이: 손으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간주,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기술자를 나타내는 적절한 이미지

68) 신약 성경의 긴 책들은 평균 길이의 두루마리 하나의 분량에 해당됨(누가만 두권으로 나누었다)

69) 이런 관습과 부대들의 이동은 로마 문화를 보급시키는 것과 민족들을 혼합시키는데 많은 역할.

70) 기병대의 한 알라와 다섯 연대의 보병대가 유대땅에 주둔되어 있었다.

71) 빌 1: 3에는 시위대로 나와 있음

72) 벨릭스(행 23:26)는 황실 출신의 자유민, 클라우디우스의 장관 중 한명인 팔라스(Palas)의 형제

73) 겐그리아 교회를 섬기던 뵈뵈는 보호자(롬 16:2), 즉 도움을 주며 그럴만한 자원을 가진 자로 묘사됨

74) 노예(douloi)와 노예제도(douleia)는 신약에서 빈번히 언급; 빌레몬의 도주한 노예로서 노예가 가졌던 흔한 이름을 지닌 오네시모; 당시 존재하던 사회적 구조에 대하여 지시함(몬 5-9; 골 3:22-4:1; 딤전 6:1-2; 벧전 3:18이하) 더 중요한 일들로 주의를 돌렸다(고전 7:21-24).

75) 중요한 직책에 노예들을 사용한 관습은 자유인들이 다른 사람과 상호 책임 관계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예를 고용하는 것을 선호했던 사실과 부유한 자들이 명령을 복종하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이 신용하는 노예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76) 지방인들이 본국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도 로마 시민의 지위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다소의 시민이면서(행 21:39), 로마의 시민이었다(행 22:26-27).

77) 호민관 클라우디우스 리시우스가 그의 시민권을 얻게 된 배경을 제공(행 22:25-28). 시민권을 받을 때는 자기의 노멘(nomen)으로서 자기의 보호자나 당시 통치하던 황제의 이름을 갖는 것이 정상적.

78) 아마 바울의 가족이 이 방법으로 시민권을 얻어서 그가 시민으로 태어났을 것이다(행 22:28).

79) 구전: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바울은 참수됨(빨리 숨이 끊어지는 것이 자비로운 유형이었다).

80) 황제가 죽을 때 함께 사라질 수 있음(원로원이 징죄한 네로나 도미티안의 결정은 후계자가 새롭게하지 않는한 무효)

81) 많은 사법적 소구역들은 그 지역의 법정에 맡겨졌고, 로마 공직자들은 주로 공적인 질서의 유지에 영향을 끼치는 일에만 관련(행 18:12-16; 19:40; 21:31이하).

82) 남용을 방지키위해 ‘칼룸니아(calumnia)’제공하여 허위고소자는 고소당하는 자와 같은 형벌을 받게됨.

83) 피고가 원고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만나는 원칙(행 25:16)은 아피안(Apian)에 의해 확증

84) 전문 변호사는 아닌 웅변가들(행 24:1-8의 더둘로)

85) 성적 관계에 대한 무수한 낱말들이 그리스어에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타락한 생활의 일면을 보여줌

86)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사원의 1000명의 ‘거룩한 창녀’거주

87) 도덕적 가르침이 철학자들이나 교사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그리스-로마의 이교 사상에 있어 일종의 종교와 윤리의 분리를 반영하는 것. 우상 숭배의식은 무덤에 대한 어떤 모욕을 제외하고는 전혀 도덕성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사제들은 도덕적 인도자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88) 결혼은 이스라엘의 랍비들로부터 칭송을 받음. 격언: ‘아내가 없는 자는 기쁨과 축복과 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89) 로마와 그리스는 남녀가 권리를 가지지만, 유대법에서는 남자가 이혼권리를 가짐(막 10:11-12; 마 5:32).

90) 아폴로도루스(BC. 4C중엽): ‘우리는 쾌락을 위해 창녀를 가지고, 신체를 매일 관리하기 위해 하녀들을 가지고, 자녀들을 놓고 집안의 물질 안전을 위해 아내를 가진다’

91) 목회서신에 묘사된 여자의 지위는 그리스의 개념과 흡사함(딤전 5:14; 딛 2:3-5)

92) 마게도니아 공주의 영향으로 그리스시대의 여인들은 큰 자유를 누림

93) 요세푸스, ‘우리 나라는 해양국가가 아니다. 바깥 세계와의 어떤 교류나 상업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도시들은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내륙에 설립되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은 이같이 축복받은 생산성있는 나라에서 여러 가지 산물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Againt Apion)

94) 요한계시록 18:11-13절은 로마의 무역로로 수송된 무역품들의 자세한 목록을 보여준다.

95) 서풍을 이용할 경우에는 배들이 동쪽지역에서 서쪽으로 가지만 더 돌아가는 길이 있었으므로 해안가까이서 행해를 해야했다(행 27:1-8).

96) 가장 많이 이용한 길, 에베소, 고린도의 도시형성

97) 특정 그림이나 상징사용하지 않고, 뿔, 닻, 석류등을 새겼다

98) 앞면: 월계관쓴 황제, ‘신적 군주인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우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시저’; 뒷면: 티베리우스 어머니, ‘Pontifex Maximus' > 평화와 번영의 근원인 로마 상징

99) 간접세를 거두기 위해 고용된 publicani

100) 눅 19:8에 나오는 삭개오의 ‘누구를 토색한 일’이란 것은, 삭개오에게는 다른 관리들에게 고발할 수는 있지만 남을 구속하거나 재산을 차압할 권리가 없었음을 암시한다.

101) 터툴리안, “미친듯한 서커스, 피에 굶주린 원형 경기장, 선정적인 극장의 관습적인 쾌락”

102) 연기자(hypokrites)라는 단어에서 한부분을 연기하는(마 6:5) 위선자(hyphcrite)파생

103) 요세푸스는 헤롯 아그립바의 치명적인 병(행 12:19)의 원인을, 그가 황제를 추앙하는 의미에서 만든 대규모의 구경거리가 행해지는 가이사랴에 있는 극장이라고 기록

104) 포도주의 농도는 연회 저녁에 가지는 친밀도와 밀접한 관계

105) 자유 7과, 즉 문법, 논리, 수사, 산수, 기하, 음악, 천문학

106) 3세기의 랍비, 유다 테마(Judah B Tema): ‘아이가 5살이 되면 성경을 배울수 있고, 10살이 되면 미쉬나를, 13살이면 율법을 지킬 수 있고, 15살에는 탈무드를, 18살이면 결혼을 하고, 20살이면 무역을 할 수 있다(피르케 아봇(Pirke Aboth) 5:21)’

107) BC 40년에 쓰여진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 4권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졌던 메시아적인 분위기를 보여줌

108) 10인치 × 7.5인치

109) BC 3C에 페르가멈 왕인 유메네스2세는 알렉산드리아에 잇던 톨레미 왕조의 도서관리인을 납치하려고 했다. 그결과 톨레미는 도서관리인을 가두고 파피루스의 반출을 금했다. 이에 유메네스는 글을 쓸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양피지를 개발했다. 양피지(parchment)란 말은 Pergamum에서 유래. 가죽을 씻은후에 문질러서 털을 제거한 후 다시 돌로 문질러서 부드럽게 만들고 그 위에 분을 칠함.

110) 딤후 4:13에는 ‘책’(성경책을 의미하는 두루마리)과 ‘양피지’(바울사도의 노트나 다른 글들)이 언급됨

111) 사본은 성경을 보관할 수있도록 허락한 신의 섭리

112) 행 1:13; 9:37; 20:8; 막 14:15에 나오는 다락방, 중앙에 식탁이 있고 기댈 수 있는 세 개의 소파있음(‘triclinium')

113) 중앙으로 주의를 기울이기 쉽도록 장방형의 형태에 반원의 형태를 끝부분으로 만든 것

114) BC 300년이후 구성원 폭증: 이러한 협회의 자유들이 헬라 문화에 깊은 뿌리

115) 사적인 단체들의 정치적인 음모

116) Iobacchi 협회: ①서식을 사제앞에서 맹세, ②투표를 통과, 입회비 50데나리온, ③신들의 축제일에 만나며, 존경할만한 행동(연설이나 연극), 매달 포도주값, ④사제의 의식집전(박카스신에게 술제사를 드리고 연설을 함)

117) 사회모임의 종교적인 요소의 증가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정면 충돌, 고전 8-10장, 초기 기독교 교회들도 이방인들의 눈에는 비록 그들처럼 사제나 제사하는 방식이 없다해도, 여러 이방신들을 섬기는 일종의 종교적 모임으로 비쳤을 것이다

118) 후기 발전의 일반적 배경을 형성하는 것과 헬라 시대에 중요한 것으로 남게 되는 것이 기준

119) 내세주의는 주류를 이끌지 않음. 숭배되는 신들은 일상 생활의 일들을 관장

120) 그리스의 종교: ‘아름다움의 거룩함’을 숭배; 이스라엘의 종교: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숭배

121) 고전 8:5의 ‘하늘에나 땅에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는 올림푸스신과 크토니안 신들을 각각 암시함, 또는 신격화된 통치자들을 의미할 수 있음

122) 예배(cultus): 은총을 보답으로 받거나 악운을 제거하기 위해 제물을 바침; 의식(tendance: 제사를 지내거나 경의를 표하는 행사): 친절과 경의를 나태내는 행사

123) 호머: 미케네 시대말기의 헬라세계전체, 서사시, 약한 도덕성; 헤시오드: 당대의 과두정치의 보오샤지방, 교훈적인 시, 도덕성 강조

124)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너는 신이 아니고 인간’임을 깨달으라는 것, 인간의 이상이 되려는 야심(신의 위상을 얻은 인간: 헤라클레스, 아스클레피오스)이 그당시에 있었다.

125) 호머: 가려진 영혼, 육신이 사람의 실체; 오르페이즘: 현재의 육체적 삶의 전후에 존재하는 인격체로의 영혼, 영혼이야말로 사람의 실체

126) 유리피데스, ‘만일 신들이 수치스러운 짓을 하나라도 한다면 그들은 신이 아니다’

127) 루스드라의 바울의 경험은(행 14:8) 예전의 다신교적 종교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함

128) 실용적이고 법적인 이유: 제사장이 눈옆으로 아무 불길한 것을 보지 못하도록 가림

129) 신의 계신에 근거해서 윤리와 종교적 믿음을 결합시킨 것은 고대 세계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장점중의 하나였다.

130) 그리스 집들은 흙이 바닥이었다. 독이없는 작은뱀이 저장실에 살면서 쥐, 토끼등을 없애주었다. 가정을 지키는 영의 화신

131) ‘집밖에 한발자국 내딛자마자 작은 신당이나 성역, 상, 신성한 돌이나 신성한 나무를 눈으로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132) 한때 영웅들, 그리고 자연과 가정의 영들이 받던 숭배를 순교자들과 성자들이 받게된 것이다. 고대 헬라와 로마의 영웅 및 영들 숭배와 중세 기독교(로마와 헬라)의 성자 숭배와의 유사성을 자주 발견된다. 기독교가 이방 종교를 대신했을 때 성자들은 지방 신들의 역할을 대신 맡았다.

133) 로마는 도시간에 시합, 신전봉헌등을 위해서 대사들을 상호 교환하는 풍습을 더 발전

134) 플라톤, ‘또한 제사장 계층이 있는데 그들은 법이 규정하듯이 인간의 선물을 신들에게 그들이 받을 만한 형태의 제사로 드리고 그 대가로 신들로부터 우리를 위해 축복을 비는 사람들이다.

135) 제사장직을 노년에게나 매우 어린 아이에게 임녕한 것은 성적활동은 의식적으로 부정하다고 보는 고대사상과 일치(fp 22:4-6참조).

136) 퍼가멈의 아데나 성전의 규율, 이 여신의 신전을 방문하고자 하는자는 이 도시의 거주자이던지 다른 사람이던지 그날은 배우자와 성관계를 감가고 배우자 외의 다른 사람과의 성관계는 방문 이틀전부터 삼가며 정화(lustration)조건을 채워야 한다. 똑 같은 금지가 죽은 자와의 접촉과 여자의 출산에도 적용된다.

137) 고전 8:10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9:13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 10:25의 시장에서 파는 것을 먹는 것

138) 고전 10:20은 제사 드려진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의 해석

139) 그노시스교의 형태: 이방 사상, 유대교, 기독교의 요소를 모두 함유

140) 신피타고라스주의나 중간 플라톤주의와 놀라운 유사성

141) ‘구속자 신화’: 초자연적인 사람의 지구로 내려옴

142) 2C의 그노시스주의 선생들과 기독교와 관련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상들도 무명으로 남아있을 것임

143) 신의 세계에서의 ‘타락’을 사실로 가정, 그 결과가 물질이다. 데미우르지(Demiurge: 열등한 신)가 세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신성의 흔적이 일부 영혼에게 심겨있다.

144) 육신과 혼-플라톤주의로부터

145) 선과 악-유대교, 특히 쿰란으로부터, 또한 우주적인 것과 관련된 것은 페르시아의 사상으로부터

146) 헤르메스주의에서 새생명이란 그노시스교의 일부 형태와도 같이 개인을 도덕적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 반면 기독교에서는 개인으로 하여금 도덕적 갈등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

147) 무적의 태양의 생일인 12/25을 기념하기 위한 것임. 이 축제 새터날리나의 이방 시대 후기에서의 인기도는 교회가 12/25일을 예수님의 탄신일로 송축하기로 선택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였던 것으로 보임

148) 프로타고라스, ‘나는 신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또 그들의 형상이 어떠한 지도 알지 못한다. 확실성을 가로막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 예를 들자면 물질의 불명료함과 인생의 짧음 등이다’

149)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그가 자신의 의지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시킨 데 있다'라고 평가함

150) 원의 이데아는 완전하게 둥글지만 실제로 완벽하게 둥근 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151) 의문: ‘무엇이 사슬을 깨뜨렸는가?’, ‘무엇이 전환을 가능하게 했는가?’에 대해 기독교는 플라톤의 철학에 중요한 수정과 접촉점을 제공

152) 네가지 미덕-정의, 절제, 용기, 지혜-은 헬라시대에 두드러진 것이며 여기에 세가지 초자연적인 미덕(믿음, 소망, 사랑)이 첨가되어 중세의 일곱가지 미덕을 이루게 됨

153) 헬라어로 ‘케릭터’란 동전을 주조할 때 사용된 스탬프를 의미하므로, 성격이란 독특한 틀을 지는 것으로 봄

154) 즉 다른 것들보다 더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55) 모든 것은 동일하다. 이러한 논법의 결과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것이다.

156) 헬라어로 키온(kyon, 개)

157) 스토아학파가 사회의 규범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데 비해 견유학파는 그들이 원할때는 무엇이든지 예의와 규범적인 언행을 버림으로서 그리스를 놀라게 함

158) 난폭하고 사나운 언어, 더러운 옷, 공중앞에서 변을 보거나, 성행위, 미친척

159) 바울(행 17:28)이 그리스의 시 중에서 종교적인 것을 인용하려 했을 때, 아라투스의 ?페노메나?의 첫줄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도 또한 그의 후손이다”

160) 여신 헤라(Hera)의 이름에 있는 ERA를 다시 배령하면 공기(AER), 디미터(DEMETER)를 쉽게 어의적으로 변화하면 GE METER: Earth Mother가 된다

161) 안정의 시기를 지난후 대화재(ekpyrosis: 참조 벧후 3:10-12의 단어)에 휩싸였다. 그 후 이 순환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중생-팔린게네시아(palingenesia); 마 19:28; 딛 3:5)

162) 사상의 유사점으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바울과 세네카 사이의 외경적인(apocryphal) 서신왕래를 가능케함

163) 사람들은 사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물에 대한 그들의 견해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게 된다.

164) 스토아: ‘당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는 것을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느껴라’, 기독교: ‘당신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느껴라’

165) 스토아주의가 말했어야 했던 것이 일반의 소유물이 되었다. 스토아주의에서 가치가 있던 것은 신플라톤적 종합으로 흡수

166) 신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죽음안에는 느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선(쾌락)은 성취될 수 있다. 악(고통)은 참을 수 있다.

167) 살전 4:9-12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공중 생활로부터 물러난 조용한 삶을 묘사하는데 썼던 말들을 사용했다

168) 내일 우리가 죽을 것이므로 먹지고 말고 마시지도 말라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