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문제 자료집==== 1
A DATA BOOK CONCERNING
MODERN CHURCH PROBLEMS
김효성편
Edited by Hyo Sung Kim
Th.M., Ph.D.
머리말
본 자료집은 편집자가 쓴 글들도 약간 있으나 대다수는 캘버리 컨텐더(Calvary Contender),1) 크리스챤뉴스(Christian News),2) 파운데이션즈(Foundations)3) 등의 미국의 정기간행물들과 국내의 기독교 신문들 등에서 인용했거나 내용을 요약하고 때때로 간단히 논평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주로 편집자가 그 동안 옛신앙지4)에 게재했던 것들이며 이제 그것들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책자로 만들어 내어놓는다. 그것들의 출처는 대부분 각주에 제시되어 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여러분에게 현대교회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려 줄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한마디로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회의 바른 길은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연합운동과 윤리적 부패와 은사운동과 신복음주의를 배격하고, 성경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교훈을 그대로 믿고 지키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일어나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고 배격하고 좌우로 치우침 없이 신앙의 바르고 선한 옛길을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는 본서가 오늘날 기독교계를 분별하고 바른 신앙의 옛길을 지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참고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제목 차례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칼 바르트(Karl Barth)
씨 에취 다드(C. H. Dodd)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불트만(Rudolf Bultmann)
틸리히(Paul Tillich)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조향록 목사
허 혁 교수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김경수 목사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67년 신앙고백
케이스맨 목사 사건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로버트 슐러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한 길 이상인가?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WCC의 과격 단체 지원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전국 기도의 날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미국 기독교회들 연합
여행 길을 위한 초청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잘못된 일치운동
장로교 연합예배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3. 교회의 윤리적 부패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낙태/ 안락사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입장
미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낙태를 허용함
낙태에 대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입장
프린스톤 대학의 생명 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
낙태는 매우 크고 심각한 현대적 죄악
동성애
[교회 일반]
세계교회협의회(WCC)
미국 교회 협의회(NCC)
동성애 활동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회협의회 회장이 됨
미국 콜로라도 교회협의회와 동성애 교단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순결 규정에 대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
동성애에 대한 소수파 보고서 채택
동성애자 제인 스파(Jane Spahr)에게 시상함
동북대회가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함
총회재판국이 동성애자 ‘결합식’ 주례 및 동성애자 목사후보생 인정
동성애 금지조항 통과
동성 결합식을 허용함
미국 장로교인들이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려함
미 장로교의 자유주의 총회장
장로교 목사가 동성애 결혼을 주례함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동성애에 대한 빅터 퍼니쉬(Victor Paul Furnish)의 의문
1982년의 동성애에 대한 보고서
1995년, 파운드리 감리교회의 공개토론회
지미 크리치 목사와 그 옹호자들
동성애 옹호 목사들
미 연합감리교회의 내분
동성결합식을 집례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감리교 목사들이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미 연합감리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반대함
동성 결합 예식 인도로 인한 감리교회 내의 고소 사건
연합감리교회 목사가 성 전환 수술을 받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보수적 결정
[미국 감독교회(ECA)=성공회]
1987년, 동성애 결혼을 인정한 교구들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동성애관
미국 감독교인들의 동성애관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감독교회 지도자들의 동성연애 옹호 입장
죤 스퐁(John Shelby Spong) 감독
동성애자를 수석 주교로 임명함
미 감독교회 동성애 주교 임명 논란
동성애자인 성공회 주교가 선출됨
동성애자 주교 서품식 거행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1972년, 최초로 동성애자에게 안수함
동성애자를 목사로 허용함
폴 쉐리와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의 동등권을 지지함
총회장 폴 쉐리의 목회서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동성애 지지자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미국 루터교회, 동성애 용납
[미국침례교회(ABC)]
동성애 목사 내디안 비숍
동성애적 교회들을 출교
미국 침례교회의 동성애 ‘교회들’
[하버드 대학]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
신학교수 피터 고움즈(Peter Gomes)의 동성애 견해
동성연애 교수들
[미국의 기타 교회들]
미국 형제교회의 최초의 동성애자 안수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의 동성애 지지 대표자
미국 남침례교회 머서대학교의 폴 듀크(Paul Duke) 교수
[캐나다 교회들]
1988년, 동성애 목사 안수를 합법화함
동성애 목사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안수함
1992년,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한 대회들
캐나다에서 동성 결혼식이 합법적으로 행해짐
캐나다 성공회 동성애 승인
뱅쿠버 교구는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영국교회(성공회)]
성공회의 보수적 결정
영국 성공회의 수장의 윤리관의 문제
영국교회의 소요(騷擾)
동성애와 영국교회
동성애자가 영국교회의 주교로 임직함
[기타 영국과 호주의 교회들]
영국 연합개혁교회는 동성애 목사를 허용함
남 호주 연합교회는 동성애자를 지도적 직위에 허용함
호주연합교회의 동성애 용납
[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 신학회(ETS)와 동성애자 행크스
친(親)동성애적 신복음주의자들?
친(親)동성애주의자 스미즈
루이스 스미즈(Lewis Smedes)의 동성애관
페기 캄폴로(Peggy Campolo)는 ‘동성애’를 긍정함
동성애에 대한 제리 팔웰의 태도
[기타]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동성애에 대해 호의를 가지기를 원함
YWCA의 여권주의적 동성애 지도자
가정을 파괴하려는 동성애자들의 계획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문제
1994년, 예장 통합측의 여성 안수안 통과
남녀평등주의
미국 교회에 여자 목사들의 증가
‘중성’(中性) 성경 번역에 대해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여성안수 반대를 비평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여성 안수 30주년을 기념함
미국 아프리카 감독교회(AMEC)는 여성 주교를 선출
윌로우 크리크 교회와 여자 목사들
예일 신학대학원의 여성신학
조용기 목사는 여자 목사를 옹호함
예성 교단 여성안수 통과
예성, 여목사 안수 허용
기성, 여성안수 압도적 통과
현대기독교음악(CCM)
교회 음악에 대한 릭 워런의 견해
크리스웰 목사 교회의 춤추는 록 연주회
세속적 음악
남침례교에서의 록 음악
남침례교단의 신년 록 댄스 청년 축제
현대기독교음악(CCM)은 어디로?
예배와 음악의 혁명?
현대 기독교 음악이 점점 유행함
세상이 교회 음악을 지배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복음성가의 영예의 전당에 앉혀짐
상업적 현대 음악
현대기독교음악은 신복음주의로 이끈다
현대기독교음악은 세속 음악에서 기원함
예배 음악이 중요하지 않는가?
‘거룩한 힙팝(Hip-Hop) 음악?’
열린 예배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참된 예배
하이벨즈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워십 댄스’에 대해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릭 워런의 장사광(狂)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적 풍조
릭 워런의 실용주의
극장 교회들
기타
제자 훈련이 성경적 목회 방식인가?
그리스도인의 전쟁관
4. 은사운동
베니 힌(Benny Hinn)
베니 힌의 저주와 축복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함
몇 가지 예언들
큰 사기꾼
신유센터 건립연기
은사주의적 혼란
기타 은사운동
펄시 콜레는 거짓말쟁이?
릭 조이너(Rick Joyner)
한 은사주의자의 고백
은사주의자들의 허황한 금 기적 주장들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쉽의 그렉 로리(Greg Laurie)
은사주의자 죠이스 마이어
은사주의 설교자 로버트 틸톤
은사주의자 하워드-브라운은 딸을 치료할 수 없었음
빈야드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에 대한 한 내부인의 보도
브라운스빌 ‘부흥’과 부유한 설교자들
은사주의적인 펜사콜라 건물이 불탐
알파코스(Alpha Course)
‘알파 코스’를 조심하라
천주교는 알파 코스를 좋아함
알파 코스에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대치함
천주교회는 알파 코스를 지지함
알파 코스의 위험스런 경향들
알파 코스가 선술집에서 모임
알파 코스가 천주교와 더 가까워짐
알파 코스의 주된 목표는 ‘초자연적 능력’을 받는 것
프로미스 키퍼스
‘프로미스 키퍼스’는 은사주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임
프로미스 커퍼스 운동의 한국 본부
프로미스 키퍼스가 리버티 대학교에서 모임
앤드류 러프트의 지적들
은사운동과 연합운동
은사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함
천주교회의 은사운동
성령과 세계전도 북미 대회에서의 한 예언
거대한 수의 천주교 은사주의자들
교황이 은사주의적 갱신을 환영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복음주의와 은사운동
‘만국을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the Nations) 선교회
대학생 선교회(CCC)와 은사주의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함께 사역함
빌 브라잇과 베니 힌
E. V. 힐(Hill)이 베니 힌과 함께 연사로 섬
청년 지도자 대회 강사들
R. 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미국 NAE의 은사주의 회장
NAE의 회장 테드 해가드
켄달은 은사주의의 길로 달려감
죤 해기의 은사주의적 사상
한국의 은사운동
조용기 목사를 인정하는 목사들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정체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통합측 목사들, 레마 선교회에 관여
잘못된 신비주의 경계해야
조용기 목사의 종교다원주의적 발언
방언과 병고침에 대한 이의(異議)
도날드 버딕의 이의(異議)
언어학자들의 이의(異議)
인위적 방언훈련의 예
악령도 병을 고친다는 쿠르트 코흐의 진술
5.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는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그레이엄은 교황을 ‘금세기의 인물’이라고 함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양에게 경고하지 않음
[빌 브라잇]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용납함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빌 브라잇과 천주교인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F. F. 브루스가 ‘복음주의자’인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단체들/ 기관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신임 회장 케빈 매노이아의 입장
은사주의와 천주교회를 포용하기를 원함
회장이 포용주의적임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교회를 용납함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NAE가 로버트 슐러를 연사로 세움
로버트 슐러와 NAE에 대해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타협적 태도
C. S. 루이스를 칭송함
[기독학생회(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자유주의 교단의 목사를 강사로 세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한기총’의 분별력?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4년의 연합사업 계획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
신년 하례회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한목협’ 형성 움직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한목협, 3대 개혁과제 천명
한목협은 어디로?
[기타 사례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학교들
[풀러신학교]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에 포함함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마가렛 서스터가 안식교 세미나에서 설교함
풀러신학교의 문제들
[달라스 신학교]
자유주의자 브루스 메츠거가 강연함
위클립 성경번역회와 협력함
달라스 신학교의 신복음주의적 연관
달라스 신학교 대럴 보크 교수의 잘못된 사상
[리버티 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포용적 행보
[베델 신학교]
베델 신학교 그레고리 보이드의 열린 신관(神觀)
[비손 신학부]
비손 신학부의 에큐메니칼 광태(狂態)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본래의 입장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칼빈대학]
칼빈대학의 변질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개교 15주년 찬양축제
합동신학교가 신대원 학생 대표자협에 참여
교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박형룡 신학의 의의
예장 통합측과 연합예배를 드림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니?
예장 통합과 가까와짐
예장 통합과의 연합의 서곡
예장 통합과의 교류 증진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예장 합동 총회장의 통합, 기장과의 교제
합동, 통합, 기장의 비성경적 강단 교류
한국교회도 배도에 동승할 것인가?
전북과 목포의 교회연합운동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의 강단 교류가 넓어짐
고신의 이성구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파문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미국 남침례교(SBC)]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그 외의 문제들
[잘못된 사상들의 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하는 자들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장로교회
[선교와 사회사업에 대한 생각]
복음주의자들의 ‘넓어진 선교 개념’
RES의 폴 슈로텐보어의 선교 개념
미국 NAE 인사의 자유주의적 ‘전도’ 개념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인류에의 봉사가 예배인가?
[천주교회에 대한 생각]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교황 비디오 광고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교황 칭송자, 반 임페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척 콜슨과 천주교인들
촬스 콜슨과 천주교인들
척 콜슨(Chuck Colson)을 후원치 말아야 할 이유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의 혼란
복음주의자들의 천주교회관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의 천주교회관
톨키엔, C. S. 루이스, 천주교회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신복음주의에 대한 평가
박형룡의 비평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극단적 중립
신복음주의의 평가
6.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개념
커솝 레이크의 정의
케넷 라투렛의 정의
죠지 마스든의 정의
박형룡 박사의 정의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신조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의 선언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CCC)의 선언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중립주의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근본주의의 지도력
성경적 근본주의
근본주의의 필요성, 기초, 요소, 임무
근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잘못된 관용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순결을 희생한 평화
관용이 타협이 될 때
이단과 배교(背敎)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속임: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배교의 길
옛 복음과 새 복음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극단적 중립
오류는 지적되어야
침묵의 죄
현대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가?
오류를 취급하기를 지체치 말라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진리를 위해 싸우라
공적인 오류는 공적으로 교정되어야 함
인기 있는 저자들의 에큐메니칼 정신
오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전투성과 분리
감리교회의 보수주의자들
공적으로 타협하는 형제들로부터의 분리
다리들을 불태우고 벽들을 쌓기
거대함이 복 받은 표시는 아님
스펄젼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가?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의 한 결의문
편의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자유주의 교회나 천주교회를 떠나야
성경적 분리
‘신앙이 건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전투적 근본주의자
7. 기타
천주교회
[반개신교적]
교황이 개신교에 대한 전쟁을 촉구함
천주교회의 유일성 자주장(自主張)
죤 매카더의 천주교회관
[마리아 숭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숭배
마리아에게 바쳐진 교황
마리아와 카톨릭 신자들
교황은 ‘전체 교회’를 마리아에게 맡김
[이방 종교들에 대한 태도]
교황은 회교도들이 같은 신을 섬긴다고 말함
교황이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에 입맞춤
김수환 추기경이 고유제에서 절함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교황의 아싯시 평화 기도회
[기타 교리들]
천주교회는 여전히 교황의 권위를 주장함
천주교회 교황의 구원관
가장 위대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의 불신앙
교황은 유신적 진화론을 받아들임
교황은 지옥이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함
지옥은 장소가 아닌가?
교황은 거짓 교사들과 그 교훈들을 포용함
[윤리적 문제들]
동성애
천주교회는 성 문제 사건으로 10억 달러를 씀
천주교 성직자의 절반이 ‘동성연애자’이다?
천주교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매우 높다
천주교는 신부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숨김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천주교회 대주교가 인정함
폭력적 동성연애자들
수만명의 수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는가?
천주교 신부들의 동성애 경향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테레사 수녀와 선행
[천주교 세계]
이태리의 천주교인들은 마술과 신앙을 혼합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이단종파들/ 이방종교들
이단종파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함
[안식교]
안식교가 엘렌 화이트를 재확인함
[몰몬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몰몬교 제국
몰몬경은 사기(詐欺)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지방교회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이단 및 사이비 종파들]
예장 합동측 총회(초창기부터)의 결의 연도 및 내용
예장 통합측 총회의 결의 연도 및 내용
[통일교]
통일교 활동, 관련 상품 조심
통일교 단체, 기업 및 상품 조심!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안상홍 증인회에 대하여
교주 안상홍에 대한 잘못된 신앙
안식일과 유월절 교리에 대하여
[구원파]
구원파 박옥수 목사의 오류
[뉴에이지 운동]
뉴에지 운동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거짓 종교
[종교연합]
종교연합이 오고 있다!
종교연합 발기인 헌장이 서명됨
윤리 문제, 질병, 세속 문화
[술/ 담배/ 마약]
대학생의 살해범
술독에 빠진 대학생들
술, 마약,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
[낙태]
피임약 RU-486은 ‘아기 독약’임
낙태는 흑인들 가운데서 주된 사망의 원인
낙태약 RU-486은 산모에도 위험함
[안락사(安樂死)]
화란의 안락사
화란에서 아프지 말라
화란은 안락사를 더 완화함
안락사: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인간 복제]
인간 복제를 반대하라
인간 복제술은 살인을 포함함
[음란]
청소년들의 성 의식 문제
매매춘 24조원의 나라
청소년 성매매 위험 수위
[음란물]
피해자 없는 범죄인가?
제목 차례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칼 바르트(Karl Barth)
씨 에취 다드(C. H. Dodd)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불트만(Rudolf Bultmann)
틸리히(Paul Tillich)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조향록 목사
허 혁 교수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김경수 목사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67년 신앙고백
케이스맨 목사 사건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로버트 슐러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한 길 이상인가?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WCC의 과격 단체 지원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전국 기도의 날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미국 기독교회들 연합
여행 길을 위한 초청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잘못된 일치운동
장로교 연합예배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3. 교회의 윤리적 부패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낙태/ 안락사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입장
미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낙태를 허용함
낙태에 대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입장
프린스톤 대학의 생명 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
낙태는 매우 크고 심각한 현대적 죄악
동성애
[교회 일반]
세계교회협의회(WCC)
미국 교회 협의회(NCC)
동성애 활동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회협의회 회장이 됨
미국 콜로라도 교회협의회와 동성애 교단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순결 규정에 대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
동성애에 대한 소수파 보고서 채택
동성애자 제인 스파(Jane Spahr)에게 시상함
동북대회가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함
총회재판국이 동성애자 ‘결합식’ 주례 및 동성애자 목사후보생 인정
동성애 금지조항 통과
동성 결합식을 허용함
미국 장로교인들이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려함
미 장로교의 자유주의 총회장
장로교 목사가 동성애 결혼을 주례함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동성애에 대한 빅터 퍼니쉬(Victor Paul Furnish)의 의문
1982년의 동성애에 대한 보고서
1995년, 파운드리 감리교회의 공개토론회
지미 크리치 목사와 그 옹호자들
동성애 옹호 목사들
미 연합감리교회의 내분
동성결합식을 집례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감리교 목사들이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미 연합감리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반대함
동성 결합 예식 인도로 인한 감리교회 내의 고소 사건
연합감리교회 목사가 성 전환 수술을 받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보수적 결정
[미국 감독교회(ECA)=성공회]
1987년, 동성애 결혼을 인정한 교구들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동성애관
미국 감독교인들의 동성애관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감독교회 지도자들의 동성연애 옹호 입장
죤 스퐁(John Shelby Spong) 감독
동성애자를 수석 주교로 임명함
미 감독교회 동성애 주교 임명 논란
동성애자인 성공회 주교가 선출됨
동성애자 주교 서품식 거행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1972년, 최초로 동성애자에게 안수함
동성애자를 목사로 허용함
폴 쉐리와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의 동등권을 지지함
총회장 폴 쉐리의 목회서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동성애 지지자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미국 루터교회, 동성애 용납
[미국침례교회(ABC)]
동성애 목사 내디안 비숍
동성애적 교회들을 출교
미국 침례교회의 동성애 ‘교회들’
[하버드 대학]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
신학교수 피터 고움즈(Peter Gomes)의 동성애 견해
동성연애 교수들
[미국의 기타 교회들]
미국 형제교회의 최초의 동성애자 안수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의 동성애 지지 대표자
미국 남침례교회 머서대학교의 폴 듀크(Paul Duke) 교수
[캐나다 교회들]
1988년, 동성애 목사 안수를 합법화함
동성애 목사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안수함
1992년,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한 대회들
캐나다에서 동성 결혼식이 합법적으로 행해짐
캐나다 성공회 동성애 승인
뱅쿠버 교구는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영국교회(성공회)]
성공회의 보수적 결정
영국 성공회의 수장의 윤리관의 문제
영국교회의 소요(騷擾)
동성애와 영국교회
동성애자가 영국교회의 주교로 임직함
[기타 영국과 호주의 교회들]
영국 연합개혁교회는 동성애 목사를 허용함
남 호주 연합교회는 동성애자를 지도적 직위에 허용함
호주연합교회의 동성애 용납
[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 신학회(ETS)와 동성애자 행크스
친(親)동성애적 신복음주의자들?
친(親)동성애주의자 스미즈
루이스 스미즈(Lewis Smedes)의 동성애관
페기 캄폴로(Peggy Campolo)는 ‘동성애’를 긍정함
동성애에 대한 제리 팔웰의 태도
[기타]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동성애에 대해 호의를 가지기를 원함
YWCA의 여권주의적 동성애 지도자
가정을 파괴하려는 동성애자들의 계획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문제
1994년, 예장 통합측의 여성 안수안 통과
남녀평등주의
미국 교회에 여자 목사들의 증가
‘중성’(中性) 성경 번역에 대해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여성안수 반대를 비평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여성 안수 30주년을 기념함
미국 아프리카 감독교회(AMEC)는 여성 주교를 선출
윌로우 크리크 교회와 여자 목사들
예일 신학대학원의 여성신학
조용기 목사는 여자 목사를 옹호함
예성 교단 여성안수 통과
예성, 여목사 안수 허용
기성, 여성안수 압도적 통과
현대기독교음악(CCM)
교회 음악에 대한 릭 워런의 견해
크리스웰 목사 교회의 춤추는 록 연주회
세속적 음악
남침례교에서의 록 음악
남침례교단의 신년 록 댄스 청년 축제
현대기독교음악(CCM)은 어디로?
예배와 음악의 혁명?
현대 기독교 음악이 점점 유행함
세상이 교회 음악을 지배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복음성가의 영예의 전당에 앉혀짐
상업적 현대 음악
현대기독교음악은 신복음주의로 이끈다
현대기독교음악은 세속 음악에서 기원함
예배 음악이 중요하지 않는가?
‘거룩한 힙팝(Hip-Hop) 음악?’
열린 예배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참된 예배
하이벨즈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워십 댄스’에 대해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릭 워런의 장사광(狂)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적 풍조
릭 워런의 실용주의
극장 교회들
기타
제자 훈련이 성경적 목회 방식인가?
그리스도인의 전쟁관
4. 은사운동
베니 힌(Benny Hinn)
베니 힌의 저주와 축복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함
몇 가지 예언들
큰 사기꾼
신유센터 건립연기
은사주의적 혼란
기타 은사운동
펄시 콜레는 거짓말쟁이?
릭 조이너(Rick Joyner)
한 은사주의자의 고백
은사주의자들의 허황한 금 기적 주장들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쉽의 그렉 로리(Greg Laurie)
은사주의자 죠이스 마이어
은사주의 설교자 로버트 틸톤
은사주의자 하워드-브라운은 딸을 치료할 수 없었음
빈야드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에 대한 한 내부인의 보도
브라운스빌 ‘부흥’과 부유한 설교자들
은사주의적인 펜사콜라 건물이 불탐
알파코스(Alpha Course)
‘알파 코스’를 조심하라
천주교는 알파 코스를 좋아함
알파 코스에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대치함
천주교회는 알파 코스를 지지함
알파 코스의 위험스런 경향들
알파 코스가 선술집에서 모임
알파 코스가 천주교와 더 가까워짐
알파 코스의 주된 목표는 ‘초자연적 능력’을 받는 것
프로미스 키퍼스
‘프로미스 키퍼스’는 은사주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임
프로미스 커퍼스 운동의 한국 본부
프로미스 키퍼스가 리버티 대학교에서 모임
앤드류 러프트의 지적들
은사운동과 연합운동
은사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함
천주교회의 은사운동
성령과 세계전도 북미 대회에서의 한 예언
거대한 수의 천주교 은사주의자들
교황이 은사주의적 갱신을 환영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복음주의와 은사운동
‘만국을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the Nations) 선교회
대학생 선교회(CCC)와 은사주의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함께 사역함
빌 브라잇과 베니 힌
E. V. 힐(Hill)이 베니 힌과 함께 연사로 섬
청년 지도자 대회 강사들
R. 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미국 NAE의 은사주의 회장
NAE의 회장 테드 해가드
켄달은 은사주의의 길로 달려감
죤 해기의 은사주의적 사상
한국의 은사운동
조용기 목사를 인정하는 목사들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정체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통합측 목사들, 레마 선교회에 관여
잘못된 신비주의 경계해야
조용기 목사의 종교다원주의적 발언
방언과 병고침에 대한 이의(異議)
도날드 버딕의 이의(異議)
언어학자들의 이의(異議)
인위적 방언훈련의 예
악령도 병을 고친다는 쿠르트 코흐의 진술
5.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는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그레이엄은 교황을 ‘금세기의 인물’이라고 함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양에게 경고하지 않음
[빌 브라잇]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용납함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빌 브라잇과 천주교인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F. F. 브루스가 ‘복음주의자’인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단체들/ 기관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신임 회장 케빈 매노이아의 입장
은사주의와 천주교회를 포용하기를 원함
회장이 포용주의적임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교회를 용납함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NAE가 로버트 슐러를 연사로 세움
로버트 슐러와 NAE에 대해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타협적 태도
C. S. 루이스를 칭송함
[기독학생회(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자유주의 교단의 목사를 강사로 세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한기총’의 분별력?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4년의 연합사업 계획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
신년 하례회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한목협’ 형성 움직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한목협, 3대 개혁과제 천명
한목협은 어디로?
[기타 사례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학교들
[풀러신학교]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에 포함함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마가렛 서스터가 안식교 세미나에서 설교함
풀러신학교의 문제들
[달라스 신학교]
자유주의자 브루스 메츠거가 강연함
위클립 성경번역회와 협력함
달라스 신학교의 신복음주의적 연관
달라스 신학교 대럴 보크 교수의 잘못된 사상
[리버티 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포용적 행보
[베델 신학교]
베델 신학교 그레고리 보이드의 열린 신관(神觀)
[비손 신학부]
비손 신학부의 에큐메니칼 광태(狂態)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본래의 입장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칼빈대학]
칼빈대학의 변질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개교 15주년 찬양축제
합동신학교가 신대원 학생 대표자협에 참여
교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박형룡 신학의 의의
예장 통합측과 연합예배를 드림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니?
예장 통합과 가까와짐
예장 통합과의 연합의 서곡
예장 통합과의 교류 증진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예장 합동 총회장의 통합, 기장과의 교제
합동, 통합, 기장의 비성경적 강단 교류
한국교회도 배도에 동승할 것인가?
전북과 목포의 교회연합운동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의 강단 교류가 넓어짐
고신의 이성구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파문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미국 남침례교(SBC)]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그 외의 문제들
[잘못된 사상들의 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하는 자들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장로교회
[선교와 사회사업에 대한 생각]
복음주의자들의 ‘넓어진 선교 개념’
RES의 폴 슈로텐보어의 선교 개념
미국 NAE 인사의 자유주의적 ‘전도’ 개념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인류에의 봉사가 예배인가?
[천주교회에 대한 생각]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교황 비디오 광고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교황 칭송자, 반 임페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척 콜슨과 천주교인들
촬스 콜슨과 천주교인들
척 콜슨(Chuck Colson)을 후원치 말아야 할 이유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의 혼란
복음주의자들의 천주교회관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의 천주교회관
톨키엔, C. S. 루이스, 천주교회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신복음주의에 대한 평가
박형룡의 비평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극단적 중립
신복음주의의 평가
6.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개념
커솝 레이크의 정의
케넷 라투렛의 정의
죠지 마스든의 정의
박형룡 박사의 정의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신조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의 선언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CCC)의 선언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중립주의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근본주의의 지도력
성경적 근본주의
근본주의의 필요성, 기초, 요소, 임무
근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잘못된 관용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순결을 희생한 평화
관용이 타협이 될 때
이단과 배교(背敎)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속임: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배교의 길
옛 복음과 새 복음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극단적 중립
오류는 지적되어야
침묵의 죄
현대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가?
오류를 취급하기를 지체치 말라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진리를 위해 싸우라
공적인 오류는 공적으로 교정되어야 함
인기 있는 저자들의 에큐메니칼 정신
오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전투성과 분리
감리교회의 보수주의자들
공적으로 타협하는 형제들로부터의 분리
다리들을 불태우고 벽들을 쌓기
거대함이 복 받은 표시는 아님
스펄젼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가?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의 한 결의문
편의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자유주의 교회나 천주교회를 떠나야
성경적 분리
‘신앙이 건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전투적 근본주의자
7. 기타
천주교회
[반개신교적]
교황이 개신교에 대한 전쟁을 촉구함
천주교회의 유일성 자주장(自主張)
죤 매카더의 천주교회관
[마리아 숭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숭배
마리아에게 바쳐진 교황
마리아와 카톨릭 신자들
교황은 ‘전체 교회’를 마리아에게 맡김
[이방 종교들에 대한 태도]
교황은 회교도들이 같은 신을 섬긴다고 말함
교황이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에 입맞춤
김수환 추기경이 고유제에서 절함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교황의 아싯시 평화 기도회
[기타 교리들]
천주교회는 여전히 교황의 권위를 주장함
천주교회 교황의 구원관
가장 위대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의 불신앙
교황은 유신적 진화론을 받아들임
교황은 지옥이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함
지옥은 장소가 아닌가?
교황은 거짓 교사들과 그 교훈들을 포용함
[윤리적 문제들]
동성애
천주교회는 성 문제 사건으로 10억 달러를 씀
천주교 성직자의 절반이 ‘동성연애자’이다?
천주교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매우 높다
천주교는 신부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숨김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천주교회 대주교가 인정함
폭력적 동성연애자들
수만명의 수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는가?
천주교 신부들의 동성애 경향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테레사 수녀와 선행
[천주교 세계]
이태리의 천주교인들은 마술과 신앙을 혼합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이단종파들/ 이방종교들
이단종파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함
[안식교]
안식교가 엘렌 화이트를 재확인함
[몰몬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몰몬교 제국
몰몬경은 사기(詐欺)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지방교회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이단 및 사이비 종파들]
예장 합동측 총회(초창기부터)의 결의 연도 및 내용
예장 통합측 총회의 결의 연도 및 내용
[통일교]
통일교 활동, 관련 상품 조심
통일교 단체, 기업 및 상품 조심!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안상홍 증인회에 대하여
교주 안상홍에 대한 잘못된 신앙
안식일과 유월절 교리에 대하여
[구원파]
구원파 박옥수 목사의 오류
[뉴에이지 운동]
뉴에지 운동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거짓 종교
[종교연합]
종교연합이 오고 있다!
종교연합 발기인 헌장이 서명됨
윤리 문제, 질병, 세속 문화
[술/ 담배/ 마약]
대학생의 살해범
술독에 빠진 대학생들
술, 마약,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
[낙태]
피임약 RU-486은 ‘아기 독약’임
낙태는 흑인들 가운데서 주된 사망의 원인
낙태약 RU-486은 산모에도 위험함
[안락사(安樂死)]
화란의 안락사
화란에서 아프지 말라
화란은 안락사를 더 완화함
안락사: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인간 복제]
인간 복제를 반대하라
인간 복제술은 살인을 포함함
[음란]
청소년들의 성 의식 문제
매매춘 24조원의 나라
청소년 성매매 위험 수위
[음란물]
피해자 없는 범죄인가?
인터넷 음란물이 심각함
인터넷 음란물 문제
한국어 유해사이트 세계 2위
화란이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곳인가?
외설물이 현대 사회의 주된 위협이다
좋은 질문들
음란사이트 아르바이트 성행
번창하는 외설 산업
현대의 음란 문화
[동성애]
캐나다, 동성애 배우자 인정
캐나다는 동성애자들을 가족 단위로 확정함
동성애에 대한 큰 거짓말
동성애가 학교에서 가르쳐짐
화란에서의 최초의 동성 '결혼식'
동성애 관계의 평균 지속기간
미국의 동성애 경향
동성애의 사실들
[도박]
건강에 해롭다
도박은 자살과 이혼과 가난의 원인임
[질병]
에이즈(AIDS, 후천적 면역결핍증)는 여전히 치명적임
에이즈(AIDS)로 인한 사망자수
에이즈 전염병이 아프리카 대륙을 강타함
아프리카의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
에이즈는 현대적 재앙
아시아의 에이즈 상황
[세속음악]
록 콘서트 폭력
[텔레비젼]
텔레비젼의 중독적인 힘
공산주의/ 독재정권
공산주의의 살인 통계
소련 비밀경찰(KGB)과 세계교회협의회
[북한]
굶주리는 군사 대국인 북한
북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자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
황장엽씨의 비장한 충고
북한 김정일의 진실
북한은 위험한 국가이다
북한의 테러 행위들
김정일 제거 전략
6·25 남침 확실한 증거 많다
[중국]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200개의 가정교회를 폐쇄시킴
공산 중국은 종교를 제한함
팅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기독교를 매도함
모택동은 역사상 가장 악한 집단 살인자
중국에서의 핍박
공산주의자들이 통제하는 중국 기독교 협의회
중국은 가정교회를 파괴함
[베트남]
베트남에서 핍박이 심각함
베트남의 기독교 탄압
[이라크]
이라크인들에 대한 한 여론조사
이라크 전쟁 1년 후의 변화
[박해와 전쟁]
콜럼비아에서의 박해
오늘날의 세계 기독교 박해 상황
테러 국가들에 의한 세균 전쟁
인도에서의 기독교 박해
한국의 정치 이념
한총련, 실체부터 공개하라
남북통일과 반공(反共)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자
조선일보를 때려잡자?
한미동맹의 붕괴?
한국, 적과 내통하며 동맹을 내쫓고 있다
애치슨 라인 재연?
민노당 '전력증강 없는 미군감축' 주장
북이 훈계하고 지시한 회의
북한 지원에 대한 이견(異見)
서해교전 유족이 조국을 떠나겠다는 이유
그 외의 주제들
[성경본문 문제]
킹제임스 영어 성경(KJV)이 무오(無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교회의 쇠퇴]
미국 교회의 쇠퇴
기독교가 서양에서 시듬
[시대적 사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가장 영향력 있었던' 기독교 지도자들?
포스트모더니티: 하나님 없는 생활
예수님 모독하는 것을 항거할 수 없는가?
[통계들]
한국의 개신교회 통계
일본의 교회 통계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들
슬픈 통계들
[과학]
우주 비행사들의 바른 고백
휴머니스트(인문주의) 선언의 진화(進化)
슈퍼 컴퓨터
[지진과 기근]
1988년-1999년 세계의 대지진과 사망/실종자수
30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
[덧 없는 생명]
한 건강식품업체 창업자 휴즈의 44세 요절
[세계 연합]
유럽연합(EU)의 점진적 권력
유럽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감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매우 인상적이게 말했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는 오는 세대들을 위해 우리 세대에 의해 아마 해결될 문제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와 현대주의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어느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어느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그리스도인가, 어느 성경이 기독교의 성경인가, 어느 교회, 어느 하나님의 나라, 어느 구원, 어느 종말이 기독교의 교회,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의 구원, 기독교의 종말인가? 미래가 말해 줄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67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해든은 미국의 10000명의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실제로 7441명이 대답해 왔다고 한다. 그 설문 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미국 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증거한다:
1) '귀하는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임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95%,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82%,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67%, 미국 루터교회 성직자들의 77%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귀하는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62%, 감독교회의 37%, 연합 장로교회의 47%,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4%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귀하는 예수의 처녀탄생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0%, 감독교회의 44%, 연합 장로교회의 49%, 미국 침례교회의 34%, 미국 루터교회의 19%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귀하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51%, 감독교회의 30%, 연합 장로교회의 35%,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3%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미국 남침례교신학교 학생이었던 노엘 홀리필드는 1976년에 제출한 그의 신학석사(Th.M.) 논문에서 남침례교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적 상태를 알 수 있는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 제목은 "남침례교 신학교의 선정된 학생들 가운데서의 '기독교 정통성'의 정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남침례교신학교는 미국의 남침례교단 소속의 신학교이다. 그 교단은 세계에서 제일 큰 교단으로서 세계교회협의회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교단이다. 그러나 홀리필드의 설문 조사는 미국 교회들의 배교가 남침례교회에까지도 미쳤음을 보인다:
M.Div. M.Div. Th.M.
1학년 3학년 & Ph.D.
-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는다. 74% 65% 63%
- 마귀의 실제적 존재는 확실하다. 66% 42% 37%
- 기적들이 성경의 증거대로 실제로 일어났음을 믿는다. 61% 40% 37%
-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은 확실하다. 66% 33% 32%
-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음은 확실하다. 59% 44% 22%
- 예수께서 신적인 하나님 아들임을 의심치 않는다. 87% 63% 63%
-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85% 60% 59%
-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다. 42% 33% 21%
- 죽음 너머의 삶이 있음은 확실하다. 89% 67% 53%
- 예수께서 어느날 실제로 땅에 돌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79% 56% 53%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신조)' 프로그램은 영국교회(성공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그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 (11명),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②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③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신다"고 확신시켰던, 예수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1985년에 약 125명의 개신교와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말씀하시지 않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 중심 인물은 로버트 펑크인데, 그는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신약학자이며,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부 교수이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 웨스타 연구원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학자 협회인 성경문헌협회의 증경회장이기도 하다. 이 세미나의 결과, 1988년에는 예수의 비유들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빨강색, 분홍색, 회색, 검정색으로 예수의 비유들의 역사적 신빙성의 정도가 표시되었다. 또 1993년에는 오복음서: 예수가 참으로 말한 것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1994년 초까지 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 연구 혹은 신학이 얼마나 배교적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인다:
(1) 예수의 말씀들의 오직 20%만이 실제로 그의 말씀으로 생각되며, 요한
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2) 주기도문도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3)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4)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5) 예수는 죽은 자들로부터 결코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
(6)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
(7) 성경에 묘사된 신화적 의미의 지옥은 없다.
(8) 예수는 독신이 아니셨고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으셨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1999년의 한 보도에 의하면, 로버트 펑크는 미국의 한 연합 그리스도 교회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경에서 예수의] 말들 중에 확실한 것은 20퍼센트도 안된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의 신성(神性)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비유들과 재치 있는 말들은 역사적이다," "니케야 신조는 넌센스이며 수정할 가치가 없다," "고대 교회의 신조들은 상상의 산물들이다."
펑크는 그 모임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인 21개의 명제를 배부하였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창세기 이야기의 비(非)문자적 해석은 원죄의 교리를 종결지었다.
(4)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5)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6)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7)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8) 예수의 처녀탄생은 현대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을 모욕하는 것이다.
(9) 속죄의 교리는 반(半)이성적이고 반(半)윤리적이다.
(10)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1)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2)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젼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3) 예수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다.
(14) 예수는 축제를 믿었다.
(15) 예수는 성적 성향으로 인한 차별을 포함한 사회적 차별들을 거부하였다.
(16)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중보자들은 없다.
(17) 예수는 예배 의식들을 믿지 않았다.
(18) 하나님의 나라는 끝 없는, 영구적 방랑의 여행이다.
(19) 다른 신화들이 그러하듯이, 성경의 정경(正經)은 시대에 맞추어 축소되 고 확장되어야 한다.
(20) 성경은 객관적 행동 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
(21) 예수의 비젼의 재구성은 항상 수정되어야 한다.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캘버리 컨텐더지는 바나 연구회(Barna Research Group)의 보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바나 연구회의 새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개신교 목사들의 49퍼센트가 핵심적인 성경적 신념들을 거부한다. 바나(Barna)는 모두가 긍정할 수 있을 기본적 성경 교훈들의 최소 목록을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즉
- 성경에 기초한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다.
- 성경의 교훈은 정확하다.
-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
- 사탄은 실제로 존재한다.
-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다.
-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
-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해야 할 개인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두 교단들 중에서, 남침례교회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가장 많은 퍼센트(71%)의 목사들을 가지고 있고, 감리교회는 가장 적은 퍼센트(27%)를 가지고 있었다. 바나는 말하기를, 네 명의 남침례교 목사들 중의 한 사람이 성경 교훈을 진지하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망적이라고 말한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하르낙은 기독교의 핵심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What Is Christianity?, pp. 21, 22).
그는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다"고 말했다(Ibid., p. 159).
칼 바르트(Karl Barth)
1.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심지어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심지어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도, 심지어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기록에 있어서 잘못을 범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범했다(Church Dogmatics, I. ii. pp. 528, 529).
2.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65).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불가능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Ibid.).
진정한 역사 속에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이 동반하고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의무적이다(Church Dogmatics, III. i. p. 81).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전체 진리가 위치한 앞뒤 문맥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자체로는 그것이 거짓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관계된다는 사실에서만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Christ and Adam, pp. 54, 55).
3. 성경의 천지 창조 기록은 사가(saga)이다.
그것은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에서 오직 순수한 사가(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Church Dogmatics, III. i. p. 42).
[그는 사가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시적 묘사"라고 설명했다(Ibid., p. 81). 그것은 신화와 같은 개념이다.]
4. 아담의 타락은 사가(saga)이다.
그 첫번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된 자로서 존재했다고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오직 사가(saga)일 뿐이다. . . . 그리고 타락, 즉 그 첫 사람의 타락이 발생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다시 말해 예언적으로 증거된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이었다(Ibid., IV, i, p. 508).
5.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은 신화이다.
우리의 세계가 예수 안에서 다른 세계에 의해 접촉될 때, 그것은 역사, 시간, 혹은 사물로서 직접 관찰될 수 있기를 그친다. . . . 그리스도로서, 즉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역사의 종말이시다. 그리고 그는 오직 역설로서(키에르케골), 승리자로서(블룸하르트), 원시 역사로서(오베르베크)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있는 지평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 지평을 수직적으로 위로부터 가로지르신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역사 안에서 오직 문제 혹은 신화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Ibid., pp. 29, 30).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을 분명히 긍정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Church Dogmatics, IV. i. p. 5, footnote).
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이 아니다(The Epistle to the Romans, p. 3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Church Dogmatics, IV. i. p. 335).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의] 부활의 역사는--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Ibid., pp. 335, 336).
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 사건 즉 비록 그것이 역사 안에서의(in) 유일한 실제적 사건이지만 역사의(of) 한 실제적 사건이 아닌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들은--물론 그것이 그들의 확신을 파괴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재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9.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하나님의 '예'[용납]는 선언되었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 . . 그것은 영원 전부터 그가 아들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인류에 대한 그의 '예'이었고 '예'이다(Ibid., IV. i. p. 356).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가, 심지어 가장 쓸데 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The Humanity of God, p. 5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그 어떠한 종류의 제한을 가할 아무런 신학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의 신학적 의무는 그것[하나님이 인자하심]이 우리가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고 깨닫는 것이다(Ibid., p. 62).
10.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은 스캔달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다(죽은 자의 부활, 89쪽).
11. 성경은 윤리의 객관적 규범이 아니다.
사람은 자유의 은사(gift)에 내재한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선을 행한다. 그는 그의 자유에 반대되는 법에 복종할 때 악을 행한다. . . . [그러나] 어떻게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지침과 기준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유인은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명령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이 명령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가 권위적 형태를 취하고 인간이 직면하고 측정되는 바 그 명령이 확고하게 되기 때문이다("The Gift of Freedom: Foundation of Evangelical Ethics," The Humanity of God, p. 84).
선과 악의 문제는 결코 사람이 일련의 규범들로서의 하나님의 권위적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답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법전,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잣대로서 사람에 의해 발견되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부과되지 않는다(Ibid., p. 85).
씨 에취 다드(C. H. Dodd)
1. 성경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바울이 했다는 설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나 다른 이들이 했다는 설교들은 사도행전 저자의 자유로운 작품일지 모른다는 것은 가능한 생각이다(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s, p. 17).
비록 우리는 아마 디모데전서를 진짜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지만(Ibid., p. 30).
요한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하나의 추가적 기록보다 하나의 해석, 즉 새로운 대중을 위한 하나의 해석을 의도했다(About the Gospels, p. 31).
그렇다면 그[가나의 기적]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더 깊은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더 깊은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 단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p. 297).
2.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14).
문자적 의미에서 성경은 사람의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 . . 그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로마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울이다. . . .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가 아니고, 성경의 저자들이 나누어 가진 그 생명의 조성자이시다(Ibid., p. 16).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self-subsistent)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objective)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Ibid., p. 289).
3.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한다.
성경 무오(無誤)에 대한 옛날 견해가 과학적 발견과 역사 비평학의 연속적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과정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다.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서 성경의 정확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성경 무오의 변호자들이 희망 없는 입장을 택했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벌써 분명했다. . . . 성경의 그 옛 교리적 견해는 과학과 역사 비평학의 입장에서 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신중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와 공중도덕에 위험물이 된다(Ibid., p. 13).
바울이 잘못이라고 나는 때때로 생각하고, 과감히 그렇게 말해 왔다, 비록 전체적으론 그가 말하는 바가 내가 보기에 충분히 참된 것 같지만(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p. xxxv).
4. 하나님의 형벌적 의의 속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을 인격의 가장 높은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면서 비(非)이성적인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일관하지 않다(Ibid., p. 24).
5. 아담은 신화적 인물이라고 한다.
비록 바울에게는 그가 실제적 인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나의 신화이다(Ibid., p. 79).
6.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누그러뜨림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The Romans, p. 55).
7. 보편 구원론적이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서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Ibid., p. 186).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내면적 필요성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208).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1. 교의(敎義)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교의(敎義, dogma)는 기껏해야 언약 공동체의 공동 견해를 나타낸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93).
2. 기독교 진리 일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기독교 종교에서 참된 것은 어느 정도 임시적이고 표면적인 거짓을 포함하는 상징들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 . . . 우리는 거짓에 의해 진리를 가르친다(Beyond Tragedy, p. 3).
기독교는 원시종교적, 예술적 신화들과 상징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한 종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Ibid., p. 7).
성경의 상징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지성들이, 역사를 초월하고 성취하는 것[신]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 p. 289).
3. 창조는 신화적 개념이다.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Beyond Tragedy, p. 7).
4. 아담의 타락은 신화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는 원시적 신화이다. 현대 신학은 현대 문화가 그런 신앙을 종교의 개화반대론의 증거로 간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즐거이 타락 이야기를 부정했다(Ibid., p. 10).
타락의 개념은 동산, 과일, 그리고 뱀이라는 원시적 신화를 역사적으로 참된 사실로 간주하는 오류에 굴복한다. . . . 타락은 역사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어떤 구체적 인간의 행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행위들의 전제이다(Ibid., p. 11).
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불합리하다.
영원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Ibid., p. 13).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Ibid., p. 14).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신화이다.
사람들은 처녀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Ibid., p. 17).
'처녀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들이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66).
7.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는 신학적 오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Beyond Tragedy, pp. 17, 18).
8. 영혼불멸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사상으로부터 온 유산에 불과하다(Ibid., p. 290).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 속인 교리이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Ibid., p. 21).
10.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의 개념은 물론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Beyond Tragedy, p. 290).
불트만(Rudolf Bultmann)
1. 성경은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책이다.
비록 그것이 요한의 예수님 세례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막 1:9-11)는 하나의 전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26).
예수께서 어떤 종류의 메시아인지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종류의 메시아를 믿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는 시험받으신 이야기(막 1:12 이하, 혹은 마 4:1-11)는 전설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전설로 채색되었고, 수난 이야기도 상당히 전설로 덮여 있다(Ibid., I, p. 27).
첫눈에 우리는 [요한복음의] 서두를, 그 주제로 판단하여, 신화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신적 존재,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운명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The Gospel of John, p. 14).
요한복음 서두는, 혹은 그것의 자료는, 그노시스 신화의 언어로 말한다. . . . 그 복음서 저자는 기독교 전파와 신학을 위하여 이 신화를 사용한 첫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비록 그 자신이 로고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을지라도 안트로포스(사람) 신화의 용어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의미를 빈번히 해석함으로써, 요한보다 앞섰었다(Ibid., p. 28).
2.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은 그노시스 신화이다.
[요한복음 17:1-5의] 언어는 신화적이다. 아들의 소원은, 그의 지상의 존재로부터 한때 그의 선재 상태에서 가졌던 하늘의 영광 안으로 다시 올리움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노시스 신화의 사상 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Ibid., p. 496).
3.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전설이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그들은[아주 초기 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고, 예수의 처녀탄생의 전설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그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50).
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신화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그 후 역사적 인물 예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화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5.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전설이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야기의 주제,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디오니서스 전설의 전형적 주제이다(The Gospel of John, pp. 118, 119).
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증거들을 부정한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아주 초대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50).
여하튼, 아주 초대교회는, 비록 예수를 주라고 불렀다 하더라도, 그를 예배하지는 않았다(Ibid., I, p. 51).
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신화적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Gnostic)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8.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전설이다.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한 바 그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45).
만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Hans Werner Bartsch, ed., Kerygma and Myth: A Theological Debate by Rudolf Bultmann and Ernst Lohmeyer, Julius Schnie-wind, Helmut Thielicke, and Austin Farrer, p. 42).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여하튼,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와 같이 그를[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가 세상의 심판자로서 구원과 저주를 내리시려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人子)로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했다. . . . 요한에게는 예수의 부활, 오순절, 그리고 예수의 재림(파루시아)은 한 동일한 사건이며,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33).
10.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
종말론적 드라마의 개념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Ibid., p. 14).
틸리히(Paul Tillich)
1. 근본주의는 마귀적이다.
그들은 영원한 진리와 이 진리의 시간적(temporal) 표현을 혼동한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근본주의로 알려져 있는 유럽의 신학적 정통주의에서 명백하다. . . . 근본주의는 현재의 상황과 접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상황을 초월한 곳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이 아니고, 과거의 상황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어떤 것을 무한하고 영원한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높인다. 이 점에서 근본주의는 마귀적 특성을 가진다(Systematic Theology, I, p. 3).
2. 기독교는 최종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기독교 자체는 최종적이지도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단지 그것이 증거하는 바가 최종적이고 보편적일 뿐이다. 기독교의 이 심오한 변증법을 잊어 버리고 교회적인 혹은 정통적인 자기 주장들로 기울어져서는 안된다. 그러한 자기 주장들에 대항하여, 소위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의 종교가 최종성이나 심지어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함에 있어서 옳다(Ibid., I, pp. 134, 135).
3. 특별 계시의 종결성을 부정한다.
예언 활동을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 . . 예언자적 비평과 약속은 교회의 전 역사에서, 특히 수도원 운동과 종교 개혁과 복음주의적 급진주의에서 활동적이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와 어떤 헬라 신비종교와 이슬람교와 많은 작은 개혁 운동들에서와 같이, 기독교 밖의 종교적 혁명들과 협회들에서 활동적이다(Ibid., I, p. 141).
4. 성경의 영감을 부정한다.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기계적, 혹은 기타 모든 형태의 비무아경적(非無我境的) 영감 교리는 마귀적이다. . . . 영감이란 이성의 주체-객체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지식의 복합체에 아무것도 더해 주지 않는다(Ibid., I, p. 114).
성경 저자들의 영감이란 가능적으로 계시적인 사실들에 대한 그들의 수용적이며 창조적인 반응이다(Ibid., I, p. 35).
5.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율법적으로 생각되고 작성되고 인봉된 기록, 그래서 그것에 근거해 우리가 어떤 주장들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기록이 아니다(Ibid., I, p. 35).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른다면, 신학적 혼동이 거의 불가피하다. 그러한 동일시로부터, 구수적(口受的) 영감 교리, 성경 본문을 취급함에 있어서의 부정직, 한 책의 무오성(無誤性)이라는 '일성론적'(一性論的, monophysitic) 교의 등과 같은 결과들이 나온다(Ibid., I, p. 158).
6. 정경의 개방을 주장한다.
정경(正經, canon)을 창조한 자는 바로 성령이시며, 영적인 모든 것들과 같이, 정경은 율법적으로 확정적 방식으로 고정될 수 없다. 정경의 부분적 개방은 기독교회의 영성(靈性)의 안전 장치이다(Ibid., I, p. 51).
7.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는 본질과 존재를 초월한 존재 자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를 부정하는 것이다(Ibid., I, p. 205).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질문될 수도, 대답될 수도 없다. . . .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무신론적이듯이 그것을 긍정하는 것도 그러하다(Ibid., I, p. 237).
8. 인격적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러한 가장 높은 존재에 대한 무신론의 반항은 정당하다. 그의 존재에 대한 아무 증거도 없고 그는 궁극적 관심의 주체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참여가 없이는 하나님이 아니다. '인격적 하나님'은 하나의 혼동을 주는 상징이다(Ibid., I, p. 245.).
9. 진노의 하나님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사랑과 병행하는 하나님의 어떤 감정이나, 섭리와 병행하는 어떤 행동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저항하는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망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랑의 활동의 정서적 상징이다(Ibid., I, p. 284).
정죄란 피조물이 자기가 택한 비존재(非存在)에로 내버려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Ibid.).
[하나님의 진노의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아니면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Ibid., II, p. 77).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의 죄책에 따라 계산된 특별한 형벌 행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는 그가 실존적 소외의 자멸적(自滅的) 결과들을 그대로 허용하는 행위일 뿐이다(Ibid., II, p. 174).
10.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상징들은 변증법적이다. 그것들은 삶의 변증법 즉 분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반영한다.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라는 진술은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가장 나쁜 왜곡이었다(Ibid., III, p. 284).
11. 창조를 부정한다.
창조 교리는 '옛날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 간의 관계의 기본적 묘사이다(Ibid., I, p. 252).
'창조의 목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피해야 할 애매 모호한 개념이다. 창조는 그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Ibid., I, p. 263).
12. 천사와 귀신을 신화라고 한다.
천사와 귀신의 세력들에 대한 교리의 진리는 선(善)의 초개인적 구조들과 악(惡)의 초개인적 구조들이 있다는 것이다. 천사들과 귀신들은 존재의 건설적인 그리고 파괴적인 세력들을 위한 신화적 명칭들이다(Ibid., II, p. 40).
13.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 혹은 기적을 부정한다.
기적들은 자연 과정에 대한 초자연적 간섭으로 해석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해석이 참되다면, 존재의 근거의 나타남은 존재의 구조를 파괴할 것이다. 종교적 이원론이 주장했듯이, 하나님은 자신 안에서 분열될 것이다(Ibid., I, p. 116).
섭리는 간섭이 아니다. . . . 그것은 한 추가적 요인, 즉 초자연주의에 의한 어떤 기적적인 물질적 혹은 정신적 간섭이 아니다(Ibid., I, p. 267).
14. 인류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신학은 분명하게 그리고 애매모호하지 않게, '타락'을 옛날에 일어난 한 사건 이야기로가 아니고 보편적으로 인간의 상황을 위한 한 상징으로 표현해야 한다(Ibid., II, p. 29).
1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부조리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인 말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Ibid., II, p. 94). ['역설적'(paradoxical)이라는 말은 '일견 모순된 것 같으나 바른'이라는 뜻임.]
문자적 해석은 옛날에 그의 하늘 처소로부터 내려보내져 사람으로 변형된 한 초월적 존재를 상상함으로써 네번째 단계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참되고 힘있는 상징이 한 불합리한 이야기가 되며, 그리스도는 하나의 반신(半神, a half-god),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독특한 존재가 된다(Ibid., II, p. 109).
16.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증거들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복종시키고 또 본질적인 부분들 뿐만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복종시킨다(Ibid., II, p. 107).
17. 예수 그리스도는 오류를 가지셨다.
유한성은 오류로의 개방을 뜻하며, 오류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실존적 곤경에 참여하심에 속한다. 오류는, 우주에 대한 그의 고대적 개념, 사람들에 관한 그의 판단들, 역사적 순간에 대한 그의 해석, 그리고 그의 종말론적 상상에서 분명하다(Ibid., II, p. 131).
18.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를 부정한다.
['대리적 고난'이라는 용어]는 불행스런 용어이며 신학에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실존적 소외의 고난에 참여하지만, 그의 고난은 피조물의 고난을 위한 대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고난도 사람의 고난을 위한 대체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고난은, 보편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여와 변형에 의해 피조물의 자멸을 극복하는 능력이다. 대리가 아니고 자유로운 참여가 신적 고난의 성격이다(Ibid., II, p. 176).
1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명료한 신화적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한 자의 십자가이다. . . .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실존적 소외의 죽음에 복종시켰던 자의 부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적인, 의문의 기적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 . .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Ibid., II, p. 153).
역사적 연구는, [부활의 상징에서] 그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아마 그럴 것이라는]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Ibid., II, p. 155).
사건과 상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하는 자신의 승리의 확실성이다. 역사적 확신이나 성경 권위의 수납이 이 확실성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넘어서는, 어떤 확실성도 없고, 단지 개연성--흔히 매우 낮고 때로는 높은 개연성--만이 있을 뿐이다(Ibid., II, p. 155).
20.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은] 부활이 표현하는 동일한 사건의 다른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우리가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공간적 상징 표현은 우스꽝스러운(absurd) 것이 될 것이다(Ibid., II, p. 162).
21. 영혼의 불멸을 부정한다.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플라톤의 교리일 가능성은 있을지라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Ibid., II, p. 66).
불멸성의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너머의 삶'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기 때문이다(Ibid., III, p. 409).
22. 영원한 심판을 부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용어는 신학 용어들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Ibid., II, p. 78).
23. 천국과 지옥의 장소성을 부정한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Ibid., III, p. 418).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 종교의 시대는 끝났다.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는 것은, 오늘 우리를 위해, 기독교가 참으로 무엇인가, 혹은 그리스도가 참으로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이다. 신학적인 말이든지 경건한 말이든지 간에, 사람들이 모든 것을 말로 들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고, 종교 일반의 시대를 의미하는 내면성과 양심의 시대도 그러하다. 우리는 전적으로 비종교적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단순히 더 이상 종교적일 수 없다(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1967], p. 152).
2. 종교의 개념 자체를 반대한다.
여기에 기독교와 모든 종교들 간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사람의 종교성은 그를 세상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은 데오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절박한 상황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력(無力)하심과 고난을 향하게 눈을 돌리게 한다. 오직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만 도우실 수 있다. . . . 이것이 아마 우리의 '세속적 해석'을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Ibid., pp. 196, 197).
'종교적 행위'는 항상 부분적인 것이지만, '신앙'은 사람의 삶 전체에 관계하는, 전체적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종교로 부르시지 않고 삶으로 부르신다(Ibid., p. 199).
3.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비종교적(religionless) 해석을 옹호한다.
만일 종교가 오직 기독교의 옷이라면 . . . 비종교적 기독교란 무엇인가? 이런 식의 생각을 시작한 유일한 사람인 바르트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으나, 하나의 계시의 실증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결국 근본적으로 하나의 회복이다(Ibid., p. 153).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관해 종교 없이, 즉 시간적 제한성을 가지는 형이상학과 내면성 등의 전제 없이 말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관해 '세속적' 방식으로 말하는가?(Ibid., p. 153).
나는 네가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에 관한 불트만의 논문을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오늘날의 나의 견해는 대분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가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충분히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기적, 승천 등과 같은, 윈리상 하나님, 신앙 등의 개념들과 분리될 수 없는 '신화적' 개념들만이 아니고, '종교적' 개념들 전반이다. 너는 불트만이 상상하듯이 하나님과 기적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 둘을 다 '비종교적' 의미로 해석하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Ibid., p. 156).
나의 견해는, 신약성경이 보편적 진리의 신화적 옷이 아니고 이 신화들(부활 등)이 본질이므로 '신화적' 개념들을 포함하여 그 모든 내용이 보존되어야 하지만, 그 개념들이 종교를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Ibid., p. 181).
4. 기독교는 속죄적 종교가 아니다.
다른 동양 종교들과 달리, 구약의 신앙은 구속(救贖)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항상 구속의 종교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구약과 분리시키고 구속에 관한 신화들에 맞추어 그를 해석하는 기본적 오류가 아닌가?(Ibid., p. 185).
오늘날 구속은 무덤 너머의 더 좋은 세계에서 근심과 고통과 공포로부터의 구속,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속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참으로 복음서들에서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내용과 바울이 선포한 내용의 본질적 성격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말해야 하겠다(Ibid., p. 186).
5. 성경 전반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 . . 이것에 대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고, 우리는 단순히 그것이 그러하다고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성경과 기독교의 신앙은 이러한 문제들에 의해 서거나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Ibid., p. 210).
6. 창조 사건을 부정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과학적으로 매우 천진 난만하게 표현된 고대의 세계 묘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자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식이 급속히 변화되는 것을 볼 때, 너무 조소하거나 자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지만, 의심할 것 없이 이 구절에서 성경 저자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기인하는 모든 제한성들을 노출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그가 말하는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진술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매우 나쁜 양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축자영감[글자 영감]의 관념이 그것을 피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저자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신하고 있다(Creation and Fall: A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Genesis 1-3, p. 26).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흙과 진흙으로 그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더욱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이 진흙으로 모양을 만드시고, 사람은 흙 한 줌으로 빚어지는 그릇같이 빚어진다는 표현들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람의 기원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줄 수 없다. 확실히,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것은 다른 어떤 창조 신화처럼 부적절하거나 혹은 의미 있을 뿐이다(Ibid., p. 44).
7. 사람의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피조물들로서 그리고 악의 목소리의 장소로서 뱀, 하와, 지식의 나무의 애매함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고 명확한 해석으로 미숙하게 부숴지게 해서는 안된다. . . . 성경의 목적은 악의 기원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고, 죄책으로서의 그리고 인간의 무한한 짐으로서의 그것의 성격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악의 기원에 관해 질문하는 것은 성경 저자의 마음과 거리가 멀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대답은 명백하거나 직접적일 수 없다(Ibid., p. 65).
8.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으로 설명한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이러한 존재에의 참여이다. . . .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는 가장 높으신 분,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으신 분--그것은 진정한 초월성이 아니다--께 대한 '종교적'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는 예수의 존재에의 참여를 통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로서의 새로운 삶이다(Letters from Prison, p. 209).
9. 교회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할 때만 교회이다. 우선 그것은 그것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목사들은 오로지 그들의 회중들의 자원하는 헌금에 의하여 살거나, 가능하면 어떤 세속적 직업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지배함으로써가 아니고 돕고 섬김으로써 인간의 일상생활의 세속적 문제들에 참여해야 한다(Ibid., p. 211).
10.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의 절대 표준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확립된 규범들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각기 다른 상황마다 새롭고 다른 어떤 것이며, 이 이유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Ethics [1955], p. 161).
[하나님의 계명은] 역사적이며 시간적인 것과 대조되는 보편적으로 타당하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Ibid., p. 244).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 성경은 사가(Saga)들과 신화들을 포함한다.
그 동일한 구속적(救贖的) 선(line)은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건들 뿐만 아니라 또한 역사적 시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 예를 들면 역사적 구조 안에 있는 사가들(sagas)이나 창조와 자연의 과정들을 취급하는 신화들도 포함한다. 우선, 원시적 기독교는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 . . 원시적 기독교 글들의 저자들에게서는 역사 의식이 완전히 없으며,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와 신화 간의 구별은 선천적으로 멀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오늘날 낡은 세계관이 사용된 것과 같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역사, 사가, 그리고 신화가 동일한 수준에 놓여지는 것이 원시적 기독교에서 어떻게 쉽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해 줄 뿐이다(Christ and Time, p. 94).
만일 원시적 기독교가 소위 원시적 역사나 종말론적 역사를 실제의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오직 그 둘을 분리시킬 능력이 정식으로 없었던 결과라면, 우리가 역사적 지식을 통해 그 선의 역사적 요소들과 비역사적 요소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 때에 곧, 그 연결은 없어도 되게 될 것이다(Ibid., p. 95).
이와 같이, 불트만이 논리일관하게 구속의 과정을 하나의 전체로서 취급하고 '신화를 벗기는' 그 동일한 방법을 역사적 연구가 가능한 그 선의 부분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적어도 더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식하는 것은, 원시적 기독교에서 그 선은 실제로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형성한다는 것과, 오직 처음과 마지막으로부터만 시간 구조를 벗기고 그 역사적 중간 부분을 이 시간의 옷이 입혀진 채로 내버려둠으로써 그것을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Ibid., p. 96).
2.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가진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그러므로, '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첨가해야 한다--우리가 그 개념을 본체와 본질들에 관한 후대의 헬라적 사색들과 연결시키지 않고, 그것을 엄격하게 '구속사'(Heilsgeschichte)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조건에서(The Christology of the New Testament, p. 306).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후대에 혼란한 여러 가지 이단적 위장들에 대해 교회는 정당히 정죄했는데, 그러한 혼란이 초대 기독교에게 낯설었던 것은 정확히 말해 초대 기독교의 사고가 '구속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혼란의 위험은 오직 사람이 기독론의 문제를 본체와 성질들에 관한 사색들로써 풀어보려 할 때에만 일어난다(Ibid., pp. 306, 307).
3. 보편 구원론적인 경향을 가진다.
신약에 의하면 기독교적 보편주의가 있다. . . . 그것은 창조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화목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말론적 완성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의 모든 것이신 하나님께 복종될 것이기 때문이다(Christ and Time, p. 179).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한다(Salvation in History, p. 160). 하나님의 계획에서 선택에 주어진 구원역사의 집중이 어떻게 궁극적으로 보편주의를 그 목표로 가지는가 하는 것은 특히 바울의 구원 역사관(롬 9- 11장)에서 분명하게 된다(Ibid., p. 162).
우리는 모든 구원 역사가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방향을 띤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는 노선'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에 이르며, 그 다음엔 전세계에 이른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구원 역사는 여전히 선택의 원리에 의존하지만, 이제 선택은 이전보다 더욱, 단순히 구원을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을 세계에 선포하는 특별한 사명을 위한 선택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든 구원 역사의 길이다. 즉 보편주의는 그것의 목표요, 집중(선택을 의미함)은 그것의 실현의 수단이다. 여기에서 그 길은 심지어 비기독교 종교들, 혹은 더 잘 표현하면, 성경 밖의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다. 왜냐하면 확실히 유대교는 좁은 의미에서 구원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다(Ibid., p. 310).
4. 영혼 불멸은 헬라 철학사상이다.
만일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죽음과 영생이 항상 그리스도 사건과 묶여져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처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혼이 본질적으로 불멸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그러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Immortality of the Soul or Resurrection of the Dead?, p. 17).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영혼 불멸]의 이 개념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Ibid., p. 15).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부정한다.
우리는 그의 이름, 그의 말씀을 통한, 혹은 율법과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 자기 계시의 개념을 거절한다. 그와 대조하여 최종적으로 나타난 바는, 역사 속에서의 그의 행위의 반사(reflex)로서의 하나님의 간접적 자기 계시의 생각이다(Revelation as History, pp. 13, 14).
2. 사람이 성경을 판단하기에 자유롭다고 한다.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에의 참여는 사람을 모든 다른 궁극적 권위로부터 자유케 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자유롭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 생활 형태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교회적 조직들과 형식들에도 적용된다. 자유의 선물과 특권은 교회들에 의해 제출된 선언들, 교회들의 교리적 결정들, 성경의 책들, 그리고 심지어 예수 자신이 전한 내용에 관련하여 시행되어야 한다(Revelation as History, pp. 13, 14).
3. 사도신경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사도신경의 진술들이 부분적으로 현대인의 마음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 진술들 중의 많은 부분은, 이런 혹은 저런 방식으로, 상당히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The Apostles' Creed, p. 10).
사도신경의 표현형식들은 믿음의 기초적 사실들의 요약이며 또한 그것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그것들은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언어는 더 이상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언어일 수 없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는 질문하면서, 숙고하면서, 비평하면서 그 진술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이런 방식은 초대교회의 방식과 다를 것이다. 또한 현대 그리스도인은 항상 동일한 결론들에 도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초대교회의 그 신조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아직도 그것을 반복할 수 있는가? 책임 있게 이렇게 할 수 있는 때는 오직 우리가 그 근본적 의도들에 동의할 때 뿐인데, 이 근본적 의도들은 그 신조의 진술들에서 시대적으로 제한된 그 표현형식을 찾았다. 이 의도들의 언어적 심지어 지적 표현은 더 이상 항상 우리 자신의 현대적 사물인식을 표현할 수 없다(Ibid., p. 13).
4. 창조 대신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만일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같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오늘 바라보는 미래는 이전의 각각의 현재(現在)가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미래일 것이다. 지금의 나의 미래는 또한 쥴리어스 시이저의 미래이었고, 역사 이전 시대의 도마뱀들의 미래이었고, 약 10조년 전의 최초의 물질 과정들의 미래이었다(Theology and the Kingdom of God, p. 61).
5.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전설이다.
기독론적으로, 처녀탄생의 전설(legend)은 그 계시적 사건의 한 근본적인 요소, 즉 예수가 최초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에 대한 한 예비적 표현이라는 의의를 가질 뿐이다(Jesus--God and Man, p. 146). 신학은 예수의 처녀탄생을 그의 지상 생애의 기원에 요구되는 한 기적적 사실로서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만큼, 처녀탄생이 사도신경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Ibid., p. 149).
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 진술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Jesus--God and Man, p. 89).
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그러므로 본래는 육신적 아들의 신분을 의미하지 않았고, 예수를 신적, 초자연적 존재로 표시한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진 유다의 왕은 확실히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단지 예수의 역할, 즉 그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시행하도록 임명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본질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The Apostles' Creed, pp. 63, 64).
8. 보편 구원론적 경향을 가진다.
그의 죽음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단지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짊어지셨다. 그를 통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버리신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극복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홀로 그리고 소망 없이 죽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그 내용인 새 새명은 이미 예수 안에서 나타났고, 그 자신이 그 새 생명에 장차 참여하리라는 소망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Jesus--God and Man, p. 269).
물론,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효과는 이제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제부터는 아무도 더 이상 홀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특별히 죽음에서 그는 예수의 죽음과 교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 죽음과 예수의 죽음 간의 이 교통은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의미의 본질적 내용이다(The Apostles' Creed, p. 89).
9. 죽은 자들의 부활은 비유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죽은 자들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또한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 개념을, 사람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감추어진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일종의 초자연 지식으로 보는 자에게, 그것은 사람의 경험에서 낯설은 요소로 계속 남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자기 이해에 있어서의 그의 상황의 표현으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비유로서의 그것의 독특한 성격에서일 뿐이다(Ibid., p. 104).
10. 지옥의 개념을 부정한다.
지옥 개념은, 수많은 심판의 그림들에서 묘사된 대로의 그 독특한 특징들에 있어서, 확실히 공상적이다. 이러한 그림들이 지옥의 고통들에 관해 말하는 바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진정으로 결정적인 특징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통으로부터 제외됨은 끝없는 구덩이의 전통적인 묘사들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제외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옥일 것이다. 지옥이 어디냐 하는 '장소' 문제는, 그러므로, 부적당한 그리고 우리에게 폐지된 사고방식에서 나온다(Ibid., p. 91).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1. 성경의 기적 사건들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비평적인 문학적, 언어적 분석을 하면, 기적 이야기들의 내용은 매우 상당히 감소된다(New Testament Theology, p. 86). 기적 이야기들의 문학적 비평적 조사는 기적 요소를 높이는 경향을 나타낸다. 수가 증가한다. 기적들은 정교해진다. 이중적 보도들이 전달되어 내려온다. 요약들은 예수의 기적 행하는 행위를 일반화한다. 몇 가지 경우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적 이야기가 언어적 오해에서 자라나왔는지 볼 수 있거나 혹은 적어도 상상할 수 있다(Ibid., p. 86 footnote).
심지어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신 이야기(막 6:45-52; 요 6:16-21)도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막 4:35-41 참조)로부터 언어적 오해의 결과로 자라나왔을 것이다(Ibid., p. 87 footnote).
만일 우리가 랍비주의적 그리고 헬라주의적 기적 이야기들과 비교한다면 그 내용은 더욱 감소된다(Ibid., p. 88).
우리는 또한 특히 헬라주의 환경으로부터의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들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것의 주위 환경으로부터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으로부터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Ibid., p. 88 footnote).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 보도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수난은 며칠의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하나의 관찰할 수 있는 사건이었던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顯現)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아마 여러 해들에 걸쳐서 계속된 다른 종류의 다양한 사건들이었다. 전통은 오직 비교적 후대에 그리스도의 현현들의 기간을 40일에 한정했다(행 1:3)(Ibid., p. 301).
처음에 보기엔, 부활의 주님의 나타나심들이 그 처음 증인들에게 직접 경험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우리의 자료들이 그 사건들로부터 수십년 동안 떨어져 있고 부활적 기사들이 그 동안 정교화되고 여러 점들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아주 절망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사고로부터 시작한다면, 하나의 가설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Ibid., p. 308).
부활절 사건들이 주는 직접적 인상의 추가적 반향은 예수의 부활이 그의 보좌에 앉으심이라는 생각에 보존되어 있을지 모른다. . . . 그렇다면 이것은, 그 종말을 향하여 재촉하는 역사의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독특한 능력의 행위로서가 아니고(비록 이것은 그것이 짧은 기간의 간격 후에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음에 틀림없는 것이지만), 종말 사건의 여명으로서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직접적 경험이었다. 그들은 비추는 빛 안에서 예수를 보았다. 그들은 그의 영광 안으로의 들어감의 증인들이었다. 다른 말로 말해, 그들은 파루시아[재림]를 경험했다(Ibid., p. 310).
3.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법정적(法廷的, forensic) 성격을 약화시킨다.
우리는 이와 같이, 법정적(法廷的) 비교가 묽어졌거나 심지어 완전히 포기된 것처럼 보이는 디카이우스다이의 용법을 보았다. 나는 이 용법을 법정적 용법과 구별하기 위하여 '구원론적' 용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의롭다고 하다'(혹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용법이 법적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법정적 측면이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 . 구원론적 의미가 그의 말을 지배한다. 바울에게서는, 능동태 디카이운은 '은혜나 기뻐하심을 베풀다'는 것을 의미하고, 수동태 디카이우스다이는 '은혜나 기뻐하심을 얻다'는 것을 의미한다(The Central Message of the New Testament, pp.53, 54).
4. 성례가 구원의 은혜를 전달한다.
칭의가 어떻게 주어지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경건한 자들을 용납하시는가? 이 문제에서 우리는, 이 주어짐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세례에서라는 것을 지난 수십년 동안 배웠기 때문에, 오늘날 더 분명하게 사실들을 본다(Ibid., p. 59). 칭의와 세례의 연관이 바울에게 매우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세례에서라는 것을 그렇게 많은 말로 진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Ibid.).
바울은 성찬이 세례와 동일한 은사, 즉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에와 그의 몸의 친교에 참여함을 전달한다고 이해했다(Ibid., p. 65).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 범신론적이다.
그렇다면, 성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혼합이나 멸절의 독이 조금도 없는 훌륭한 형태의 '범신론'이다. 즉 그것은 각 요소가 그것에 깊이 빠져 동시에 우주로서의 그것의 완성에 이를 완전한 일체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294).
2.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들의 진화 즉 자연적 진화의 마지막 지점이고, 그러므로 진화는 거룩하다(Hymn of the Universe, p. 133).
모든 비교물을 초월하는 지구의 과제는 신실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고 그러므로 하나님 안으로 합병하는 물질적 합병이다. 그리고 이 최고의 일은 자연적 진화 과정의 정확성과 조화를 가지고 이루어진다(Ibid., pp. 143, 144).
무엇이든지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그것을 그것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로 환원시키는 것과 동등하다. 그것들의 근원들의 방향으로 가능한 한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 집합체의 마지막 섬유들은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의 눈에서 바로 우주라는 물건과 합쳐지는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39).
원자가 단순한, 원소적 물질의 자연적 미립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포는 생명의 자연적 미립자이다. . . . 세포는, 만일 우리가 그것을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진화론적 선상에 두지 않는다면,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즉, 우주의 합리적 조직 속에 병합될 수 없을 것이다)(Ibid., pp. 79, 80).
쥴리안 헉슬레이의 인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진화가 자체를 의식하게 된 것 외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의 현대적 지성들은 (그들이 현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 견해에 정착하기까지는 결코 안식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정상(頂上)에서 그리고 이 정상에서만 휴식과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 우리 자신의 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은 진화가 자체를 쳐다보고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Ibid., p. 221).
우리의 시간 척도에 의하면, 생명이란 3억년 이상의 거대한 시대의 현상이다. 더욱이 그것은 수만개의 분리된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온 세계에 덮여 있다(The Future of Man, p. 66).
3. 죽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란, 생물들의 경우와 같이, 한 개인이 종족의 혈통을 따라 다른 개인으로 대치되는 일정한, 불가피한 상태이므로, 그것[분해의 악]은 더 악화되고 이중적으로 운명적인 형태라고 덧붙여 말해야 하겠다. 죽음이란 기계에서의 레버요 생명의 증가인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312).
4. 에큐메니칼 운동을 옹호한다.
내가 믿기는, 이와 같이 기독교 사상에 의한 현대 진화론적 견해들의 병합과 동화는 수 세기 동안 계속 이성과 신앙 사이에 일어났던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하다. 그 부동(不動)의 장애물이 제거된 한, 미래에 카톨릭 교인들과 비카톨릭 교인들이 발견의 고속도로를 따라 손에 손 잡고 함께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 없다. 오늘날 양측의 협력은 가능하게 되었다(Science and Christ, p. 190).
이 순간, 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형태가 스스로를 주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지구의 정신적 성숙과 결합되어 있고 그러므로 그것은 확실히 올 것이다(Ibid., p. 197). 이러한 조건들에서, 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향한 유일한 두 가지의 효과적인 길들이 이런 것들이 아닌지 생각한다. 즉 (1) 참으로 '우주적' 척도에서 극단적 정통 기독교와 극단적 인본주의 기독교를 제시하려는 관심을 가지는 기독교인들 간의 (정상 에큐메니즘). (2) 인류의 미래에 하나의 공통적인 인간의 '신앙'의 기초들을 정의하고 확장하려는 관심을 가진 일반 사람들 간의 (기초 에큐메니즘). 이 두 노력이 결합된다면, 그것들은 자동적으로 우리를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에큐메니즘으로 인도할 것이다(Ibid., p. 198).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마태복음은 마태 학파에 의해 쓰여졌다.
본 답슈는 [마태복음의 저자가] 개종한 랍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 . . 만일 우리가 그 복음서를 개종된 랍비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그가 전적으로 혼자서 사역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가 살았고 봉사했던 교회의 생활 속에서 활동적인 역할을 했다고 상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태의 교회 안에 활동적이었던 한 학파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The School of St. Matthew and Its Use of the Old Testament, p. 30).
이와 같이 마태 학파는 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한 학파로서 이해되어야 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저 학파의 저작품은 교회 내에서의 가르침과 행정을 위한 안내서의 형태를 취한다(Ibid., p. 35).
바울은 교회의 전통에서 잘못 해석되었다.
여기에 바울과 루터 사이의 차이점들을 분별하는 것이 동등하게 중요한 점이 있다. 바울의 경험은 서방의 신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회심의 내면적 경험이 아니다. 이 차이점 배후에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서방에 있는 특히 종교개혁의 전통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바울을 루터나 칼빈과 같은 인물들의 경험을 통해 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의 오해들에 대한 주요한 이유이다(Paul among Jews and Gentiles, p. 12).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의 교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에서 그 신학적 맥락을 가지고 있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것인가 혹은 사람의 행위들이 어떻게 인정을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에서가 아니다(Ibid., p. 26).
신약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임을 부정한다.
현대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본문이 액면 그대로 해석될 수 없고, 그것이 초대교회의 신학적, 선교적 및 교리 문답적 관심들의 표시들을 보인다는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다. 또한, 신약성경이 초대교회 내의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과 상호충돌적 경향들과 행위들을 증거한다는 것도 명백하다(The Scrolls and the New Testament, p. 3).
우리가 방금 인용한 '[교의와 신적 계시로서 선전되었다기보다] 단순히 인간 역사의 한 에피소드[혹은 삽화]라는' 기독교에 관한 윌슨의 진술이 심각하게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 여기이다. '에피소드'와 '계시'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시초부터 기독교 신학의 기본적 신학적 문제이었다. 1세기에 기독교 사상의 주관심은 기독교를 영원한 진리의 체계로 변형시키려는 모든 경향들에 대항하여 그 에피소드의 면을 보존하는 것이었다(Ibid., p. 4).
기독교의 절대적, 불변적 성격을 부정하고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진다.
지구가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다원주의는 부채가 아니고 자산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실지 모르나, 종교들은 여러 개이다. 그것들은 그 문화가 가장 특징적인 곳 즉 바나라스, 메카, 로마, 예루살렘 같은 곳들에서 그 세력의 중심을 가진다. . . . 내가 이 책을 넘겨볼 때, 나는 우리가 동등한 것을 동등한 것과 비교해야 한다는 모든 종교 연구의 기본 법칙을 기억한다. . . . 사실,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과 구조는 문화에 따라 드러나게 다르다("Foreword," in Great Reli- gions of the World, p. 7).
우리는 또한 오늘날 우리 자신의 신앙과 고대의 종교적 행위들을 비교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교들은 발전하고 변화한다. 족장 아브라함과 신학자 아브라함 헤쉘에 의해 표현된 종교적 견해들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그 둘은 다 정당하게 유대교적이라고 불리운다. 혹은 복음서 기자 요한과 교황 요한 23세 간이나, 마르틴 루터와 마르틴 루터 킹 간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오늘날의 어떤 것과 오늘날의 다른 것을 비교해야 한다(Ibid..).
그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는 모든 경계선들을 넘는 능력을 가진 생명력 있는 종교들이다. 그리스도가 동양에서 자기 증인들을 가지게 될 것처럼 부처는 서양에서 자기 증인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Ibid.).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무신론적임
미국 감독교회의 유명한 자유주의자 죤 스퐁 감독은 인격적 하나님이 없으며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다. 그는 유신론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공격함으로써 유명해졌다. 2002년 4월 27일자 월드(World)지는 스퐁의 왜 기독교는 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인용한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의 한 방법으로서의 유신론은 명백히 부적절하게 되었고, 유신론의 신은 죽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마 회생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미래의 종교가 유신론의 개념들을 지키는데 의존한다면,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인간적 현상은 끝날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유신론적 신 개념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 . . 이 고상한 종교적 체계가 그 자신의 죽음의 고통의 좁은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 속죄, 부활, 지옥 등을 부정함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스퐁의 판단에는,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그리고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인식을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퐁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안에서 조성된 것이며' '지식의 팽창으로 낡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숭배하기보다 증오하기를 택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어린 소녀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들로서의 예수의 기적들, 동정녀 탄생, 부활, 그리고 승천을 부정하고 천국과 지옥, 영원한 형벌과 보상에 대한 '옛 견해'를 버린다. 또 그는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2000년 1월 29일 은퇴하였으나 그 후 몇 달 동안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보편구원론자
스퐁은 "만일 모든 사람이 구속(救贖)함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완전히 구속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보편구원론자이다.
모든 성경을 믿지 말라고 강권함
미국의 은퇴한 감독교회 감독 죤 쉘비 스퐁은 최근 6백명 이상의 감리교인들에게 성경에서 읽는 모든 내용을 다 믿지 말라고 강권했다.
'새 기독교'를 제안함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및 역사적 기독교의 다른 많은 교리들을 부정한 죤 쉘비 스퐁은 지금 "우리의 실재(實在)의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할 "새 기독교"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우리 각자 속에 함께 오도록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 . . . 그것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예수와 유다, 남성과 여성, 이성연애자와 동성연애자를 연합해야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마귀적인 사상인지! 그러나 이런 사상을 가진 자가 교회의 주교이었고 교회는 이런 자를 권징치 않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자들을 제명출교해야 한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미국 연합감리교회 감독 죠셉 스프라그는 2002년 6월 25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의 일리프 신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정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고 나타나는 교회에서 경험되는 예수에 관한 진리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태와 누가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 . . 나는 예수의 부활을 믿으나 그의 부활이 그의 육체적 몸의 회생을 포함한다고 믿을 수 없다. . . .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배타적 생각들과 의견을 달리해야 한다. . . . 나는 다른 종교들이 열등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밖에 있다고 혹평하는 것보다 예수의 계시를 나의 삶과 교회의 삶에서 사는 것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 . 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흠 없는 양과 염소의 제사들이 하나님의 노를 누그러뜨리며 모든 사람의 죄를 속한다고 이해되었던 것처럼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피를 한 엄위한 희생적 인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신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묘사하는 대속의 이론을 찬성하지 않는다. . . . 피의 제사 개념은 최선으로 생각해도 미신이다.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루터파 신학자 마틴 마티는 그가 편집인으로 있는 크리스천 센추리(Christian Century)지 1999년 4월 7일자에 "나는 성경을 포함한 아무 책도 무오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교리를 포함하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오래 전부터 부정해왔다. 그런데 그는 1992년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연사이었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머서 대학교 총장 커비 갓세이는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버리고, 회개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구원의 근거'임을 거부하고, "교리적 건전함이란 교만한 신학적 난센스[터무니 없는 생각]이다"고 주장한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영국교회(성공회)의 수장(首長)인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확실성을 가지고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 . . . 우리는 그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ELCA)의 교수 필립 헤프너는 뉴스위크 2000년 5월 1일자의 한 면 전체에서 "왜 나는 기적들을 믿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나는 정말 어떤 관습적인 의미로도 기적들을 믿을 수 없고, 오직 복(福)들을 믿는다. 그것들은 매일 일어난다"고 글을 끝맺는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루터파 신학교(Lutheran School of Theology)의 조직신학 교수이며 자이곤 종교-과학 연구소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공격해왔다. "기적 이야기들--신앙에 대한 증언인가 신빙성의 세대 단절(credibility gap)인가"라는 그의 글은 루터파 신학교의 컨텍스트(Context)지 1968년 봄-여름호에 실렸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의 임원들은 인간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하여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교단의 교수들에 대해 어떤 권징적 조치를 취하기를 오래 전부터 거절해왔다.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머서 대학교 신약과 설교 교수 폴 듀크는 "동성애와 교회"라는 제목의 1994년 협동 침례교 협의회(남침례교단의 자유파)의 총회전 학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우리의 최종적 권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에 그것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 . . 동성애는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니다. . . . 나는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 행위를 정죄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듀크는 동성애적 짝들의 결합에 대한 자신의 '넓은 후원'을 긍정하였으나, 자신의 개인적 취향은 이성애적 짝들이라고 주를 붙였다. 머서 대학교는 미국의 보수침례교협의회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교이다. 오늘날 보수적이라는 명칭을 가진 교단들이 다 참된 보수적 교회가 아니다.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83년 8월 5일자는 당시 미국의 남침례교단의 목사이었고 후에 온건-자유파 협동 침례교단의 초대 전국 의장이었고 현재 자유주의적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침례교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시실 셔만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인용하였다:
성경에 의해 또한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게 될 선생은 해고되어서는 안된다. . . . [동정녀 탄생은] 두 복음서들에 있으나 다른 두 책들에는 있지 않다. . . . 마가와 요한은 그것을 나열하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실수를 범했는가? 만일 동정녀 탄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 [마가와 요한은] 잘못을 범한 것일 것이다.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남침례교 소속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대학교수인 로버트 앨리는 신자에 대한 반란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E. J. Daniels, Family Magazine, May-June 1986, p. 13):
어떤 사람은 '성경무오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 신념이 계시 신학의 유일하게 타당한 출발점과 구조'라고 계속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미소로 지으며 들어야 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사회의 조례에나 넣어져야 할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을 조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직하다. 그들은 교육과 독서를 통해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섬기며 구원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는 무지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거짓된 교리를 이용하여 성공과 명성과 큰 교회들을 얻는다. 그러한 도덕적 태만은 현대의 많은 공적인 종교활동들에서 너무 일반적이다. 이런 종류의 속임에 대해 오직 경멸과 거부가 있을 뿐이다.
로버트 앨리는 또한 1977년 12월 6일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제1 유니테리안 교회에서의 무신론자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E. J. Daniels, p. 14):
예수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이라거나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 . 나는 예수가 참으로 유대인이라고 본다. 나는 그가 자신의 신성(神性)을 주장하는 오만함을 가졌을 것이라고 잠시라도 상상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가르친 구절들은 후대의 편집, 즉 교회가 그에 관해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남침례교 소속 베일러(Baylor) 대학교 종교학부 교수 C. W. 크리스챤은 워드북 출판사에서 간행한 신앙을 형성하기라는 책 67쪽에서 "창세기와 다윈 간의 차이는, 만일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다윈 편이라고 참으로 결정되었다"라고 썼다(Daniels, pp. 18, 19).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켄터키주 남침례교 신문인 웨스턴 레고더지의 이전 편집자인 C. R. 데일리는 1984년 7월 20일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Daniels, p. 20):
내가 이 신학교에 왔을 때, 나는 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강하게 지지하는 단 한 명의 교수를 기억할 수 있다. . . . 신학교들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유럽 대륙의 신학사상으로 가고 있었고 그 사상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것이 신학교들의 방향이었다.
만일 여러분이 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창세기 처음 11장들의 역사성과 욥과 요나를 역사적 인물로 보기를 원한다면, 중부(Mid-America) 신학교로 가라. 여러분은 거기에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신학교가 여러분이 그것을 얻을 유일한 곳이다.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골든 게이트 신학교의 구약교수이었던 로버트 케이트는 남침례교 주일학교부의 브로드만 출판사에서 간행된 평신도 성경주석, 2권 9쪽에서 "창세기의 언어와 본문의 주의깊은 비교 연구들은 현재의 형태로서의 창세기가 아마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의 어느 때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Daniels, p. 20).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켄터키주 엘리자베스타운의 남침례교 소속 죠지타운 대학에서 헬라어와 구약 교수인 죠엘 런스포드는 1963년 봄 경건회 설교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하나님 안에 있는 '공의'나 '의'나 '거룩' 같은 어떤 추상적 특질을 만족시키기 위한 유화적(宥和的) 제물로 만드는 것은 내 판단에서 신성모독의 첫번째 사촌이다"라고 말했다(Daniels, p. 18).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플로리다주 오란도의 델라니가(街) 침례교회의 목사인 짐 윌슨은 그가 남침례교 신학교 학생이었을 때 교수가 모든 학생들 앞에서 "나는 이 모든 피의 종교에 진저리가 난다! 우리는 '피, 피, 피밖에 없네' 같은 이 우스광스러운 찬송들을 부른다. 나는 남침례교의 모든 교회들의 찬송가집에서 그것들을 찢어내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썼다(Daniels, p. 18).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캐나다의 맥매스터 신학교(McMaster Divinity School)의 신학 교수 클라크 피나크는 배교자라고 불리웠고 아마 정당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에 그는 남침례교단 소속 뉴올리언즈 침례교 신학교의 보수적 교수이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성경 영감과 지옥의 본질 같은 교리들에 대해 매우 비(非)정통적인 이해에 도달한 변화를 겪었다. 그는 최근의 복음주의 신학회에서의 논문에서 종말 사건들에 대한 '더 포용적인' 복음주의 이해를 요청했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포함한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하나 이상의 언약과 하나 이상의 백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다양한 길들'에 대해 말했고, 많은 이방인들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개인이 "다른 이들의 봉사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생활 방식에 참여함"이라고 했다.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영국 감리교회의 저술가요 이전 총회장인 레슬리 웨더헤드는 그의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예수가 아마도 여러 번 성육신(成肉身)한 한 영일 것이라는 견해를 표현하는 마지막 책을 썼다. 크리스챤 뉴스 2001년 3월 5일자의 한 글은 "이런 견해들은 그가 비참하게 신비주의(occult)에 떨어졌음을 반영했다. 에프워스(Epworth) 출판사는 그 책을 출판하기를 거절하였다"라고 썼다. 웨더헤드는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내 생각에 기독교는 확실히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6과 충돌된다. 그는 매우 중요한 다른 교리들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이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적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이 배교자가 40여년 전 그의 런던 전도대회에 참여하도록 허용하였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미 연합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수석 위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는 것을 너무 강조하지 말고 그 대신 다른 이들과 평화로이 사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멜빈 탤버트 감독은 예수께서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했을 때 거기에는 기독교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께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호소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한다.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라이드 기념 연합감리교회 목사 시실 윌리암즈는 자기의 정박소는 '해방의 신학'이라고 말했다. 해방의 신학이란 민중들을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구원이요 복음이라고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일파이다. 또 그는 "규칙들과 교리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많은 기독교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고 그녀의 책들이 수백만권씩 팔린 애니 래못(Anne Lamott)은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좌파 평화주의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견해들에서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하며 "나는 극단적 우파 기독교의 지옥불과 유황불 정죄와 부끄러운 용어에 단지 움츠리며 반발한다(recoil)"고 말한다. 2003년 1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자'라고 소개된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신앙들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의 인격성이 임신 때에 시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자가 인기를 끄는 시대는 말세가 확실하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대한기독교감리회 소속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그의 불신앙적 사상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죽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분이 두 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에녹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엘리야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에서 불의를 모르고 가장 뛰어나게 의롭게 살다가 죽은 에녹과 엘리야의 사랑하던 제자들과 가족들과 친지들이 에녹과 엘리야의 죽음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하던 에녹과 엘리야의 이미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강하게 그들에게 심어졌기에 도저히 죽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선생이 그들과 같이 앉아서 말씀을 하시는 것만 같고 길을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 죽지 않고 산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박하게 기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 교수(조직신학)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안병무(한신대 대학원장, 한국신학연구소 창설, 현존지 발행)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예수교인'이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삼위일체, 신인양성(神人兩性), 성육신, 대속 등을 믿는 자이다. 그러나 안병무는 역사적 예수를 어떤 분으로 보았는가? 안병무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 곧 민중이 해방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붙잡혀 십자가 형틀에서 처참하게 죽임 당한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투쟁은 패배로 끝났다. 예수는 로마의 침략 세력을 쫓아내지도 못했고 헤롯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전복시키지도 못했다. 이리하여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민중해방자로서 예수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면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고 한 역사적 전거(패라다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송기득 교수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와 역사적 예수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론, 양성론, 육화론[성육신론], 대속론 따위는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교리로서 그 나름의 진리성을 갖는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교리는 부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한 안병무의 역사적 예수는 삼위일체적 존재, 성육신(成肉身)한 존재, 신인 양성(神人兩性)을 가진 존재 등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안병무가 '예수는 철저하게 "사람"이었다. 그것도 "보통사람"이었다'고 말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 . 사실 역사의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민중해방운동을 벌이다 그 대가로 십자가 형틀에서 살해된 것이다. 만일 예수의 죽음을 굳이 '대속'이라는 말로 이해하려면 그것은 이스라엘 민중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지배 세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를 대신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속론을 펴려면 '민중의 대속론'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속론에서 대속을 받아야 할 진정한 죄는 구조악에 연원하고 있다. 예수는 죄의 대속자가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죄, 즉 구조악에 대한 항쟁자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실로 보아 우리는 역사의 예수의 실상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송기득 교수는 안병무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자유주의 신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장이었던 안병무, 그리고 그에 대해 해석하고 있는 대한기독교감리회의 목원대학 조직신학 은퇴교수 송기득, 이들의 사상이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단면을 잘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송기득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교리들, 즉 성육신과 신인 양성과 대속의 진리들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부정할 수 있는 주제로 보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에 의하면, 안병무는 이런 교리들을 명백히 부정했다. 안병무에 의하면, 예수는 민중해방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한다. 단지, 예수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감신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홍정수 교수는, 첫째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베짜는 하나님에서 "신 없는 종교를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리고 무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종교까지는 몰라도 꼭 신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 . . 만일 신은 계신가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이단적 무신론 사상이다.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라고 했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의 신성과 대속 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셋째로, 그는 골고다 산상에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광주 망월동 민주 항쟁으로 죽은 많은 민주 인사들의 죽음을 동일시하였다. 그는 그의 책에서 말하기를, "예수라는 설교자의 죽음은 억울한 희생이 아니라 '말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선택된 죽음이다. 이런 현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구호를 외치면서 투신 또는 분신해 쓰러져 간 젊은이들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은 신성모독적이다.
넷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동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빈 무덤이 아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다른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그의 저서에서도 그는 "만일 예수 부활 사건이 오늘날의 우리가 소박하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발생했다면, 그 사건은 자연 현상 중의 기이한 일에 불과하며, 전혀 '하나님'의 행위가 아님을 뜻한다. 따라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 육체성을 실증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성격에나 하나님의 성격에 전혀 맞지 않는 이치임을 시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부정하는 명백한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의 사실을 확증한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사도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 실존적으로 동참함으로 주의 부활에도 동참한다고 믿었다. . . .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부활한 몸에 관한 호기심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둔다고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 믿는 자가 전인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 구원받은 우리에게 새 새명을 주는 원동력이지만, 또한 그것은 미래의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조향록 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 . . 문제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용 자세에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기는 하나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요 대상이 된다. 신앙은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문제나 사건이 신앙하는 자에게 의미적으로 받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큰 문제가 아닌가?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만 돌리고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인식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허 혁 교수
그러므로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허 혁 교수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과 부활의 보도를 구별하는 배면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있어 보인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 사건을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긍정을 보류하는 회의적 태도일 뿐이다.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그들은 1973년 부활절 메시지에서 한국교회가 인간의 영혼불멸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부활은 2천년 전의 골고다의 예수의 부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곳 한국 땅에서 날마다 사는 부활의 승리에서 영광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무시하고 현재적 부활의 의미만을 붙드는 것은 불신앙의 맛을 남길 뿐이다.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예장 통합측 장로회신학대학 학장이었고 기독교 학술원장이었던 이종성 박사는 2001년 2월 15일 제22회 학술세미나에서 성경에 대한 그의 견해를 말했다. 거기에서 그는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의) 영감과 성경 내용에 오류가 없다는 견해를 근본주의자들의 견해라고 배격하고, 성경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소위 신정통주의적(칼 바르트의) 견해를 '복음적 성서관'이라고 표현하며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성경을 우주와 인류 역사에 관한 기록으로 이해하는 보수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창세기는 우주 생성에 관한 과학적 기록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신정통주의 성경관은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증한다.
김경수 목사
한국신학대학 출신 제주 남부교회 김경수 목사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3권)을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썼다:
신학적으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신학자는 김재준, 칼 바르트, 폴 틸리히라고 할 수 있다. . . .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조직신학 교수는 폴 틸리히의 신봉자였고, 그는 폴 틸리히를 빼 놓으면 신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틸리히 신학에 빠져 있었다. 내가 폴 틸리히에게 몰두하게 된 것도 그의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틸리히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을 빼앗곤 했고 공감을 일으켰다.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23년 미 북장로교회에서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라는 것이 작성되어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것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다음의 다섯 가지 교리들이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첫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며, 셋째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며, 넷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며, 다섯째는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다섯 가지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주장했다.
1967년 신앙고백
1967년, 미 연합장로교회(현,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1967년 신앙고백'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그에 대하여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유일하고 권위 있는 증거를 한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되고 복종을 받는다. 성경은 다른 여러 증거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비길 데가 없는 증거이다. . . .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1. 3. 2).
타종교들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스도인은 타종교들과 자신의 종교 간의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며, 모든 종교들에 대해 열린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갱신을 도전하시기 위해 비기독교인들의 통찰력을 사용하셨다(2. 1. 3).
속죄의 교리를 한 이론으로 돌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화목의 행위는 성경이 여러가지 방식들로 묘사하는 한 신비이다. 그것은 어린양의 제사,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주심, 제사장의 속죄로 불리우며, 또한 종의 속전(贖錢), 빚의 지불, 법적 형벌의 대리적 만족, 그리고 악의 세력들에 대한 승리로 불리운다. 이것들은 모든 이론의 범위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에 머무는 한 진리의 표현들이다(1. 1. 1).
화목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보인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은 그의 화목케 하시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보내지는 것이다. 이 공동체 곧 세계적 교회는 하나님의 화목의 메시지를 위탁받았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적의(敵意)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수고에 참여한다(2. 1. 1).
이 진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화목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목이라는 성경적 개념을 혼란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 넓어진 화목 개념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그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사명이 이러한 화목의 사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 신앙고백서는 또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하였다:
교회의 회원들은 화평의 밀사(密使)들이며 정치, 문화, 경제면에서 세력 있는 자들이나 집권자들과 협력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 세력들이 인간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가장(假裝)과 부정(不正)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1. 3. 1).
인간을 향한 그의[그리스도의] 봉사는 교회가 모든 형태의 인간 복리를 위하여 일할 것을 위탁한다. 그의 수난은 교회가 인류의 모든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여 각종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도록 만든다(2. 1. 1).
교회는 모든 민족 차별의 폐지를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으로 인해서 상해를 받은 자들을 위하여 봉사한다(2. 1.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인간 생활 전체 곧 사회와 문화, 경제와 정치, 과학과 기술, 개인과 단체, 전부를 포괄한다(3. 1. 1).
이 뿐만 아니라, 미 연합 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았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되었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의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했다.
케이스맨 목사 사건
1981년 미 연합장로교회(오늘날의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상설재판국은, 그 총회에서 봉사하던 연합그리스도교회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무죄성, 대리적 속죄, 육체적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판결하기를,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했다. 이단을 권징하고 제거할 의지가 없는 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닌가?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루이즈빌 장로교 신학교와 루이즈빌 대학교가 수여하는 2000년 루이즈빌 그로메이어 상과 상금 20만불을 받았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3년 1월 11일자는 그를 "금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크리스챤 뉴스 1993년 1월 23일자는 몰트만이 삼위일체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거절하고 마르크스주의적 해방의 신학을 위해 문을 연다고 증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많은 신학적 토론 후, 2002년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는 배타주의자들과 다원주의자들을 둘 다 기쁘게 하려는 중도적 진술을 승인하였다. 수년 동안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신가 여부에 대해 나뉘어져 있었다. 497대 11의 표로 승인된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진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구주와 주님이시며,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그에게 두라고 요청된다. 아무도 내재적 선이나 바람직한 삶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엡 2:8).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救贖)을 떠나서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딤전 2: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주제넘게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께 대한 명백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제한하거나 또는 모든 사람이 신앙에 관계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두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참된 사실을 분명히 부정한다.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2002년 10월과 2003년 1월 사이에 3500명을 상대로 우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 장로교인들의 거의 4분의 3은 "인류를 위한 절대적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믿으나, 기독교인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는 절반도 안된다. 미합중국 장로교회 교인들의 주기적 설문 조사에 의하면, 교인들의 70퍼센트, 장로들의 75퍼센트, 목사들의 71퍼센트, 그리고 군목 같은 특수 성직자의 55퍼센트는 "인류를 위한 유일한 절대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동의하였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교인들의 43퍼센트, 장로들의 50퍼센트, 성직자의 39퍼센트, 그리고 특수 성직자의 24퍼센트가 동의하였다. 또 교인들의 3분의 2 그리고 목사와 장로들의 80퍼센트는 "예수께서 어느날 지구로 돌아오실 것이다"라고 믿는다고 대답했고, 교인들의 86퍼센트와 목사들의 96퍼센트는 죽음 후의 생명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또 교인들의 93퍼센트는 천국을 믿는다고 했으나, 지옥을 믿는다고 대답한 자들은 오직 78퍼센트이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이었으나 근래에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더 이상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드(World)지 1998년 7월 25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사실들을 긍정하지 않는 자들과 영적 동반자일 수 없다," "우리는 본교단에서 연합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 또 분열에 대한 존 웨슬리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되어 있다: "불경건과 배교가 우세한 교회들 안에서, 분열의 악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있다."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전에 남침례교인이었던 대주교 드미트리 로이스터는 현재 헬라정교회의 독립적 인사이다. 그는 말하기를, 그의 교회의 많은 방문자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적 대교단들 내의 문제들 때문에 왔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거기에는 약점,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부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연합감리교단 소속 퍼킨즈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한 사건을 회고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믿는지 물었다. 내가 말뜻을 정의하여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생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하자, 그 반의 학생들 중 한 명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시카고의 연합감리교회 감독 C. 조셉 스프라그(C. Joseph Sprague)는 한 반대자의 주장들(Affirmation of a Dissenter)이라는 그의 새 저서에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그의 육체적 부활과 구원에서의 그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또 그는 작년 덴버 신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동정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부활이 그의 물질적 몸의 회생을 내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그의 견해를 취소하든지 그의 직책을 사임하라고 요청하는 28명의 보수주의자들의 고소를 다룬 위원회는 그 고소가 잘못이며 그는 이단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미연합감리교회는 바른 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버린 배교된 교회임이 분명하다. 그 교회와 교제하는 기독교대한감리교회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교단이다. 그 교단의 듀부크(Dubuque) 신학교 신학교수 도날드 블뢰쉬 박사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 교회가 된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삼위일체의 삼위를 구별된 존재보다 비유로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블뢰쉬는 성경적 증거 협의회(Biblical Witness Fellowship)의 간행물인 위트니스(The Witness) 1996년 겨울호에 실린 한 대담에서 "유니테리안들은 이단종파가 되고 있다. 유니테리안들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 유니테리안으로의 표류, 즉 하나님을 양성적(兩性的) 혹은 자웅동체적(雌雄同體的)으로 보려는 강한 경향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의 중심적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읽혀지는 자라고 위트니스가 말하는 블뢰쉬는 주장하기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 사상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 교단은 이미 만인구원론적이다. 천국과 지옥, 구원과 멸망 같은 구별들은 이미 상실되었다. 유니테리안들과의 통합을 실제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과 기타 자유주의 교단들을 떠나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131개 교회들이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을 떠났고, 1960년대 이후 3분의 1이 떠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이 공식적으로 낙태를 지지하고 현재의 동성애자들이 목사로 봉사하는 것을 허용하고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공격하고 신학적 자유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미국 루터교회 미주리 대회(LCMS)의 회장인 A. L. 배리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에 관하여 이렇게 글을 썼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오늘날 성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포기했고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하고, 천명 이상의 여자 목사들을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과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교회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 루터교회로 간주될 수 없다."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포트리스(Fortress) 출판사는 최근에 도로시 죌러의 조용한 부르짖음--신비주의와 저항(The Silent Cry--Mysticism and Resistance)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크리스챤 뉴스 신문은 그 여자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자요 신학적 무신론자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이전의 책에서 상당히 길게 인용하였다. 죌러는 또한 공산주의를 옹호한다.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침례교 세계 연맹에서 이제까지 가장 큰 회원 교회이다. BWA 회원 교회들의 다수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계가 있다. WCC에서 BWA 회원 교회들은 전체의 15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도자요 침례교인인 빌리 그레이엄은 여섯 번의 BWA 대회에서 연설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그 단체를 후원하라고 격려하였다. 또 1995년 BWA는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BWA나 WCC는 현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배교적 단체들이다. 남침례교단 같은 BWA 회원 교회들은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를 포함하여 완전히 다양한 다른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대화에 참여하여 왔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교회들 간의 기구적 연합을 향한 어떤 움직임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침례교인들도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상황에서는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기 쉬울 것이다. 남침례교단이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 교단이 BWA와 WCC 등 배교적 에큐메니칼(하나의 세계교회) 운동 단체들과 가지는 연관성을 기억해야 한다. 남침례교단이 참으로 '보수적'이라면, 그 교단은 배교적 단체들과 연관을 가져서는 안된다. 참된 성도들과 교회들은 마땅히 배교적 단체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남침례교회 신학교 부학장인 대니얼 에이킨(Daniel Akin)은, 1998년 11월 앨러배머주 남침례교인들에게 한 연설에서, 미주리 주의 보수적 남침례교인들이 자유파 협동 침례교 협의회를 비판하며 준비한 비난 내용들의 목록으로부터 "그들[CBF]은 급진적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장막을 너무 크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에이킨은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과 처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협동 침례교 협의회 지도자들은 낙태와 동성애에 관한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버지니아주 남침례교회들의 뱁티스트 배너(Baptist Banner) 1999년 1월호는 남침례교단과 협동 침례교 협의회 간의 몇 가지 '대조되는 점들'을 열거하면서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속해 있다고 하였다:
(1)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 혹은 그의 동정녀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 (2) '그리스도-소피아(Sophia)'(그리스도의 여성화 주장)에 대한 예배를 요구하는 여권주의 신학 지도자들, (3) 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兩性愛者, bi-sexual), 성(性)전환자들(transgendered)의 안수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4) 하나님께서 때때로 여자에게 인구 억제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명령하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들, (5) 낙태를 위한 연방 정부의 기금이나, 부모의 승락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의 폐기를 옹호하는 지도자들, (6)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적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는 지도자들, (7) 여성을 담임 목사로 안수하기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8) 펜트하우스(음란물 출판사), 전국 남녀 동성애자 전문위원회, 가족계획 협회와 연합하여 활동했던 지도자들, (9)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지도자들, (10) 성경적 학문이 침례교인들과 무신론적 '세속 인본주의자들' 간의 공통적 기반의 영역이라고 진술하는 선언서에 서명한 지도자들, (11) 동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에게 특별한 일자리의 보호를 제공하는 고용-비차별 법령과 같은 입법 활동을 위하여 일한 지도자들. . . .
그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하기를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는 현재 동성애 활동을 하는 자들을 안수하는 교회들을 포함하고, 지도자들이 상황적 낙태 지지를 공공연히 선언한 기관들과 협력하고, 동성애를 환영 혹은 주장하는 교회들에게 지난해 모든 '선교 지원금들'을 제공한 단체와 협력하고, 핵심 지도자가 어린이들을 사용한 음란물의 복제와 판매를 옹호한 단체와 협력한다고 했다.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미국의 앨러배머주의 헌츠빌 타임즈 2000년 1월 15일자의 한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천주교 신부가 침례교회에서 연설하고 안식교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대희년 예배를 위한 기독교일치 축제'에서이다. . . . 기독교 공동체는 1월 23일 [헌츠빌] 제1침례교회에서 예배와 찬양의 시간으로 모일 것이다." 주최측은 이것이 이 곳에서의 새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천주교 연사는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와 개신교와 복음주의자들/은사주의자들이 대화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안식교 목사는 말하기를, "우리의 소망은 모든 분열의 장벽들이 제거되고 우리를 연합하고 함께 모으는 것들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 더 낫다.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침례교회 세계연맹은 2000년 7월 2-8일의 총회에서 매우 특이한 초청 연사인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을 듣도록 예정되었다. 큐바의 공산주의 독재자인 카스트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최초로 열리는 침례교회 세계연맹 모임을 위해 하바나에서 그 모임에 참석한 지도자들에게 연설하게 된 것이다. 침례교회 세계연맹 회장인 빌리 김(김장환 목사)과 사무총장 덴톤 로츠는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침례교회 세계연맹은 유엔의 비정부조직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1998년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연사이었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이 배교적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중심적인 후원교단이다.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미국 남침례교단 내의 자유주의자들의 단체인 협동 침례교 협의회는 2000년 7월 1일 배교적인 침례교 세계연맹에 회원 신청을 하기로 결의했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조정자인 댄 베스탈은 적어도 5000개의 남침례교회들이 최근의 '침례교회 신앙과 메시지'의 변경 때문에 교단을 떠나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 가입할 것이라고 예측한다[*그 변경이란 목사직을 남성에게 제한하는 것 등의 내용임.] 보수적인 남침례교회의 주류적 지도자들은 그 수를 훨씬 적게 예상한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 회원이며 침례교 연맹의 회장인 스탠 해스티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들을 목회자로 부르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또 그리스도를 믿게 되지 않는 사람들이 지옥에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나는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결코 건전한 보수교단이 아니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Battle for the Bible in the 21th Century)은 미국의 R. L. 히머스 2세 박사가 쓴 최근의 책의 제목이다. 미국의 보수적 남침례교단의 지도자들은 남침례교단의 지배를 위한 싸움은 끝났고 그들이 이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가? 그들이 이겼는가? 히머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서는 남침례교단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직 끝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 확실히, 교단의 지도층과 6개의 남침례교단 신학교들에서 성경에 관한 보수적 입장을 향해 급진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것은 그 조류가 남침례교단의 교회들과 교단적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단 안에 54개의 자유주의적 학교들이 있고 단지 12,748명의 학생들을 가진 6개의 보수적 학교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같은 시간에 113,581명의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남침례교단의 학생들의 90퍼센트는 자유주의 학교 기관들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35쪽).
그의 책은 60개의 학교들의 이름과 학생수를 열거한다. 히머스는 머서 대학교 총장 R. 커비 갓세이 같은 어떤 남침례교단 대학교 총장들의 극단적 자유주의 사상들을 인용 열거한다. 그는 페이지 페터슨과 폴 프레슬러 판사가 성경 무오성을 위한 초기의 투쟁을 인도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프레슬러 판사가 최근의 책에서 성경 무오성의 싸움에서 해롤드 린젤이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는 언급을 생략하였고 또 빌 포웰의 주요 저작을 비평하였음을 꾸짖었다. 데이빗 비일은 "이 책은 구체적으로 남침례교단 내의 그리고 전체적으로 좀더 넓은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 문제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진술이다"고 말했다.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교인 300만의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 새 총회장 빌 필립 목사는 10월 24일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가 하나님이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천국과 지옥의 성격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나는 지옥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지옥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 땅 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 . . 천국이 장소입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떤 지 모릅니다. 그것은 부적절한 문제입니다"고 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첨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신적이지 않다는 노골적인 진술은 잘못된 인상을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의 본질을 계시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전체적 개념은 예수에게서 표현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신비하고 더 거룩합니다"고 하였다. 그의 발언으로 한 달이 넘도록 교단내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주의 진영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 보도에 의하면, 논쟁이 가열되자 85명의 교단 집행위원들이 대책 회의를 연 후, "캐나다 연합교회는 개인의 신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총회장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존중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 캐나다 연합교회의 신학 노선과 총회장 신임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크리스챤 뉴스 1996년 2월 12일자(15쪽)에 의하면, 영국교회의 교리위원회가 준비한 "구원의 신비"라는 보고서는 많은 전통적 입장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의 교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지옥불과 영원한 고통과 형벌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가학적(加虐的) 괴물로 만든 두려운 신학들을 고백했다. . . .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해 아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의 최종적이고 취소할 수 없는 선택 . . . 즉 유일한 종말은 완전한 비(非)존재이다.
이 보고서는 지옥을 영원한 고통과 형벌의 장소로 보지 않고 악인들의 최종적 멸절을 주장한다. 이것은 지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43).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등이 소속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몇 가지 증거들을 열거해보자.
첫째로, 예장 통합측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오랫 동안 재직하였던 이종성 박사가 신정통주의자이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로서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신학사상을 가리킨다.
둘째로, 같은 교단에 속한 학자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자 및 전 원장인 한철하 박사가 장로회 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이라고 논평한 적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셋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이 오래 전부터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로, 그 신학교가 성경의 처음 다섯 권 즉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인 문서설을 용납하고 또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자유주의 학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자, 우선 이상의 것들이 사실이 아닌가?
다섯째로, 예장 통합측 교단지도자들은, 비록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인물들까지도, 오늘날 심히 배교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교단 안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문제점들과 그 단체로부터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원의 한 석사논문은 그 결론 부분에서 솔직히 진술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고 하였다.
일곱째로, 예장 합동측 신학교에 3년간 재학하였다가 통합측으로 옮겨 수년 간 공부했던 필자의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은 "과연 예장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가 다르기는 다르더라. 그러나 구약교수 한 명은 보수적이며 문서설을 반대하고 있다. 나머지 교수들은 '고뇌하는 신학자들'이라고 보인다"고 증거하였다.
여덟째로, 1980년도에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 부근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예장 통합측의 한 목사는 학교에서 배운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적 설교를 요구하는 현실적 교회의 목회 사이에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음을 필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아홉째로, 예장 합동측 기관지였던 기독신보의 주필로 오랫 동안 일했던 채기은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본교단(예장 합동측)을 비롯하여 고려측, 성경장로회측, 호헌파, 재건파, 복구파, 중립파는 전적으로 보수주의 신학편에 들 수 있으며, 통합측은 반반[半半]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에는 절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열째로, 1994년 예장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다시 말해, 통합측 총회는 사도적 교훈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목사와 여자장로를 세우는 잘못을 허용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8에는 여성 목사와 여성 장로가 비성경적이라는 다섯 가지의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이상의 사실들은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교단의 목사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적이라면, 또 교단의 지도자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의 뱅쿠버 총회는 세계교회협의회 35년 역사상 최초로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섯 개 세계종교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으로 연설케 했다.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의 지도자인 죤 테일러(John Taylor)는 대표자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종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데 협의회 회원들 가운데 일치가 있다고 하면서, "이슬람교도들과의 대화가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선교 활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방해된다. 우리는 이슬람교도들 가운데서의 모든 선교적 노력들을 중지해야 한다. . . . 많은 유대교인들이 우리를 제발 그냥 홀로 놔두라고 말한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그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더크 멀더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느끼십니까?"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였다.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세계교회협의회의 타종교들과 이념들과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판한 성경과 타종교인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였다. 그는, "절대적 의미에서의 진리는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고, 우리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이 성 요한, 성 바울,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27쪽). 그가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성경이 명확한 기독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서로 다르고 모순된 기독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21, 22, 67쪽), 성경의 언어는 신앙의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6, 9, 24, 26쪽). 또한 그는 이교도들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회개해야 할 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신, 힌두교의 신, 이슬람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힌두교적 이해, 이슬람교적 이해가 있을 뿐이다. . . .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형제 자매요, 순례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는 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다"(9-11쪽). "힌두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순례자이다(56쪽).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의 가장 큰 방해거리이었던 한 가지 요인을 골라내라고 요청한다면,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하는 이 절대적 주장들이 그것이라고 말할 것이다"(53쪽).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0년 1월, 세계교회협의회의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과의 대화 분과'의 스위스 바아르에서의 모임은 15개국으로부터 온 21명의 헬라 정교회, 개신교회, 천주교회 신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였고 '종교적 다원성: 신학적 관점들과 선언들'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과 백성들 가운데 항상 하나님의 구원적 임재(臨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문서는 선언하기를, 다른 종교적 전통들의 '추구와 발견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셨다,' '그들의 가르침에서의 진실과 지혜와 그들의 삶에서의 사랑과 거룩은 . . . 성령의 은사이다,'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 문서는, 종교적 다원성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성취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과의 그리고 이웃들과의 우리의 만남을 깊게 할 기회로 본다. 또 그 문서는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 외의 다른 길들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선함과 진실과 거룩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 . .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인격적 의탁에 제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서 나아갈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라고 한다. 그 문서에 의하면, 그 세계적 차원이 십자가와 부활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적 신비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 성취를 향해 펼쳐질 때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들로 매개(媒介)되고 표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우리 밖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고 감동하는 종교적 전통들의 구조 안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로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문서는 주장하기를,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의 삶과 전통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우리가 다른 종교들의 진리와 선을 해석할 수 있는 것는 바로 성령의 세계 안에서이다"라고 하였다.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7차 총회에서는 한국 이화여대의 조직신학교수 정현경은 주제 강연에서 한(恨)을 안고 죽어간 영들, 예를 들어 하갈의 영, 우리아의 영, 입다의 딸의 영, 헤롯에게 죽임 당한 어린 아이들의 영, 잔다르크의 영, 십자군 파병 때 죽어간 백성들의 영, 지구상의 토착민들의 영, 나찌 시대에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의 영, 히로시마와 나카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죽임 당한 자들의 영, 광주에서, 천안문에서, 리쿠니아에서 죽은 자들의 영,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을 부르는 초혼(招魂)적 행위, 즉 샤마니즘적 행위를 하였다. 그는 또 독일 영화인들 앞에서 "하나님은 나의 문화에서 부처를 통해, 무당들을 통해 . . .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해방-생존-혼합주의의 영'이라고 고백했고, 또 "나는 여러분처럼 혼합주의자이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감신대학 학장 변선환 교수는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하였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또 그는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동일시 할 때 거침돌이 된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예수님을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 . .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현대사조라는 책에서 "교회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선행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의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를 비기독교 세계에 가지고 오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나라는 거기서 역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명백한 이단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유일성을 밝히 증거한다(출 20:3; 요 14:6; 딤전 2:5).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1998년 6월, 미국의 알라바마 주 헌츠빌의 '종교간 선교봉사회'는 그 월례회에서 미합중국 장로교단 소속 페이스(Faith) 장로교회에서 '거룩한 소리들'에 대한 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바하이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및 세 개의 '기독교' 교단들을 포함하는 종교 대표자들은, 소리가 그들의 예배 형식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로버트 슐러
로버트 슐러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기독교 일치 학교의 (뉴 에이지) 연례 대회를 위해, 문선명과 함께 통일교회 행사에서, 그리고 몰몬교 성전에서의 종교인 조찬 기도회에서, 주강사로 나타났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 몰몬교인들, 그리고 천주교인들은 그의 수정 대성전 강단에서 연설했었다. 그의 가르침들과 행동들의 일부는 자유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이단적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잃어버리고 죄악된 상태를 깨닫게 하려는 비기독교적이고 투박한 전략보다, 더 인간 개성에 대해 파괴적이고 따라서 전도 사업에 반생산적이라고 증명된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기독교의 깃발 아래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래 전에 죄에 대한 바울의 교훈과 이별을 고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신을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우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정현경의 사상에 대한 논평
한국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김경재는 정현경 교수의 캔버라 주제 강연에 대해 동감하면서 이렇게 썼다: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서 유대땅에 화육하셨지만, 영원한 그리스도로서 연민의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모든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 속에 현존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 기독교 전래 이전 불교와 유교를 믿고 살고간 우리 조상들은 지옥갈 우상숭배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혹은 그림자처럼 우리 가운데서 창조와 구원과 속량의 일을 행하여 오셨다고 믿고 신앙고백하는 것이 정 교수의 신앙고백이다. 필자는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한다."
그의 종교다원주의 사상
한신대학의 김경재 교수는 조선일보에 실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종교다원주의적 신념을 표현하였다. 유일신 신앙이 어떻게 다른 종교들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일신'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신(神)이란 모든 것을 통섭(統攝)하고 근원지우는 존재를 말합니다. 여호와, 야훼 등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신의 모습을 일컫는 것입니다. 로고스(Logos), 법(法), 도(道), 이(理)는 모두 진리를 가리키는 용어들로 문화권에 따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이중 로고스만이 옳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이지요."
종교다원주의에서는 기독교가 절대적인 종교로서의 위치를 잃게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면 정체성과 본질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가 예수와 바울을 거치며 그 울타리를 벗어났듯이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도 다른 문화와 전통을 만나면서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런 인식이 늦은 편이지만 인터넷 보급 등으로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편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러 종교 중 왜 하필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른 종교가 진리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 종교가 자신의 실존적 고민을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이 개인의 '궁극적 선택'이 갖는 진지성, 결단성, 고유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에 철저한 사람만이 다른 종교와의 진정한 대화와 협동도 가능합니다."
유일신관 비평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며 한신대학교 교수인 김경재 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그의 저서 이름 없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유일신관을 강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책에서, "각 역사적 종교는 서로 다양한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고백된 '구원의 길들'을 열고 있다"고 전제한 뒤, "타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존경심을 갖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깊이 헌신한 것, 이것이 신앙의 자세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하느님은 이름 없는 존재로 인간이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와 풍토와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실한 언어로 붙인 이름들이 있을 뿐이다"며 "그것은 하나님이기도, 알라이기도, 비로자나불이기도, 브라만이기도, 한울님이기도하며 신, 로고스, 태극이거나 혹은 이름 없이 가슴 속에 담아두며 흠모하는 우주적인 어떤 존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비록 그 언어적 표현과 문화적 형식, 역사적 행태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 진리성에서는 하나로 수렴되고 또 동일한 종교심의 발로라는 점에서 서로 소통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따라서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
또 그는 "45억년 동안의 생명 진화 과정에서 불과 300만년 전에 출현한 인간 종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지구촌 각 지역에서 '영적 진리 체험', '하나님과 구원 체험', '인간의 제한성과 자기 초월성 체험'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경이로움을 넘어서 신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증험하는 커다란 증좌가 아닐 수 없다"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은 물론이고 우리의 동학이나 원불교, 무교 등과 같은 종교들도 지구촌이라는 정신적 삶의 동산에서 피어난 영적 꽃들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종교다원주의적 사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진리와 명백히 반대되는 오류이다. 성경은 성경의 하나님만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다른 신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의 하나님만이 자신의 뜻을 성경에 충족히 계시하셨기 때문에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알 수 없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사야 45: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요한복음 8:24,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구약 시대에 종교가 부패되었을 때마다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혼합주의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이다.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지도자들은 교회 단체들에게 세계의 선교와 전도의 역할을 새롭게 보라고 요청하고 있다. WCC의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는 200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WCC의 '폭력 극복 10년'이라는 행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선교적 활동과 세계적 전도가 많은 국가들에서 충돌과 폭력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1년 4월 25일자 연합 감리교 뉴스 서비스 보도에 의하면, 라이저는 너더댓 나라들에서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과 불교인 간의 긴장 상황들을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교회는 선교 활동의 초점을 나라들 안에서나 관계에서 "화평과 화해의 사역"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 보도에 의하면, 라이저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화해의 중개자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대신 그들의 선교 활동이 충돌의 원천이 되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면 선교에 실패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라고 했다. 연합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위원인 멜빈 탤버트 주교는 라이저와 동감하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와 사랑의 복음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 보도에 의하면, 탤버트는 믿기를, 교회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초점을 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이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탤버트는 말하기를,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다른 종교나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시각은 전혀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탤버트는 요한복음 17장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예수께서 지구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즉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호소하고 계신" 기도로 언급하였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부언했다.
한 길 이상인가?
다음의 인용문은 2002년 10월 22-24일간 미국 미주리주 모네트에서 모인 미국 기독교회협의회에서 통과된 일곱 개의 결의안 중 하나에서 발췌된 것이다.
개신교 대교단들, 몰몬교회, 여호와의 증인, 로마 천주교회, 이슬람교, 불교 등 가운데서 구원의 길에 관한 혼란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적 다원주의가 널리 용납되고 있기 때문에('모든 길은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신념,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께 경배하며 천국을 향한 길을 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는 성경에서 발견되는(행 4:12; 딤전 2: 5; 요 3:36; 14:6) 기독교의 유일한 메시지를 선언할 것을 결의한다.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성경에 의하면 오직 구원의 한 길이 있다. 구원은 은혜로만, 믿음을 통해서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다(엡 2:8-10).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기독교회협의회 회원 교회들은 성경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왜곡을 경계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유일한 길을 선포하기를 요청할 것을 결의하는 바이다.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미국 감독교회는 수년 동안 이방종교를 용납해왔다. 뉴욕의 성 요한 대성당이나 샌프란시스코 은혜 대성당에서는 불건전한 신비주의 의식들이 집행되었다. 캘리포니아 감독교회 감독 윌리암 스윙은 1996년 국제연합(UN)처럼 모든 종교를 모아 대화케 하려는 종교연합 발기인회를 설립했다.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1980년 멜본에서 열린 세계선교 및 전도대회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의 참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위로 선포할 교회의 전체적 선교[사명]의 중심적 요소이다"라고 선언했다.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필립 포터는 "우리는 경제적 정의와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쟁들을 하나님의 선교를 통한 세계의 전체적 해방의 요소들로 본다"고 진술했다.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심지어 사회적 전도 개념을 주장하기를, "복음 전도에서 우리는 개인적 문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 질서 전체의 변혁을 목표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선포는 그 나라에 참여하는, 그 투쟁들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혁명적 참여가 된다"고 말했다.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세계교회협의회의 1983년 선교와 전도선언서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개인의 회개를 요청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 . . 복음 전도는 이 세상의 구조들,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해 말한다"고 진술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이러한 새로운 선교 개념은 특히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선교 및 전도위원회로 통합된 이후 그 위원회의 의장이 되었던 필립 포터의 지도 아래 나타났다. 그 후, 그 선교 개념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웁살라 총회에서 공적으로 제안되었고, 1973년 방콕에서의 세계선교 및 전도대회에서 강조되었다. 현재의 상태는 이전 역사의 계속일 뿐이다.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미국의 9개 교단의 통합을 추구하는 교회연합 협의회(COCU)는 교회의 공동적 선교(사명)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라고 선언했다.
WCC의 과격 단체 지원
세계교회협의회의 인종차별투쟁 프로그램(PCR)은 총체적 선교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1970년 이후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 국가회의'(ANC)와 나미비아의 '서남 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등 과격한 마르크스주의 폭력단체들에게 1992년 9월말 현재 1,007만불 이상을 지원하였다.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전의 소련 통신사인 타스 통신은 러시아 비밀경찰 요원들과 동독의 비밀경찰이 유럽 교회들의 대회와 세계교회협의회에 침투하였으며 1984년에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선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하였다. 3천명이나 되는 많은 교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자들로 행동했을 것이다. 일부의 러시아 정교회 신부들과 지도자들은 위험을 면하며 그들의 일들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그들의 성직자의 복장을 사용하였다. 1986-87년 미국 연방수사국 보고서에 의하면, 소련 사람들은 미국교회협의회나 세계교회협의회를 그들의 선전 목적들에 사용하고 공산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이것을 조종하였다. 한 신문은 보도하기를,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 아래의 정부의 도구이며 "어떤 정교회 신부들은 단순히 비밀경찰의 협력자들로서가 아니고 실제적 요원들로서 활동했다고 보인다"라고 하였다. 게하르트 베지에르, 아르민 보이엔스, 게하르트 린데만 등 독일 학자들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동유럽의 정보기관들에 의해 침투를 당했고 이전 회장들 중의 한 사람인 메트로폴리탄 니코딤(Nikidim)이 러시아 비밀경찰요원이었음을 확증하였다.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독교보 1996년 10월 12일자(5쪽)에는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김영한 교수) 제1회 정기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장로회신학대학(예장 통합) 이형기 교수의 "한국개신교의 나아갈 방향: 선교신학의 입장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이 요약 보도되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이 교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촛점을 두었던 19세기 선교개념이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는 교회의 사회참여 측면을 포함하게 되었다고 전제한 후, 이 두 흐름의 선교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전체적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 참여를 선교에 포함시키는 '넓은' 선교 개념은 성경의 명확한 교훈과 교회의 바른 전통에 어긋난다. 영혼 구원의 일이 아닌 일반적 사회정치활동은 예수님의 사명 곧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사명으로 명하신 적이 없고 사도행전에 증거된 대로 초기의 제자들이 행한 적이 없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영혼구원의 전도만이 교회의 사명(선교, mission)임을 밝히 이해하고 실천해왔다.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1636년 목사들을 위한 양성 학교로 설립된 미국 하버드 대학교는 130억달러의 기금과 16억달러의 연간 수입을 가진 미국 고등 교육의 우상이 되었다. 학교에 출석하는 18,000명의 학생들 가운데, 학부 학생들은 매년 수험료와 기타 경비로 무거운 32,000달러의 금액을 낸다. 낙태 찬성, 반(反)군국주의, 인종 편애, 과격한 남녀평등주의, 종교적 상대주의 등의 자유주의적 입장은 캠퍼스에서 복음으로 간주된다. 천주교회 신부가 부장인 하버드 신학부는 자유주의와 개방적 마음가짐, 다양성(그러나 위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없다!) 및 정치적 정확성 등을 자랑한다. 기독교에 대한 편견은 하버드 대학교에 퍼져있다고 한다.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프리칭(Preaching)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을 열거하면서 빌리 그레이엄과 마틴 루터 킹을 처음 10명 중에 두었다. 그 목록은 또한 스코틀랜드 설교자 제임스 스튜어트, 죠지 버트릭, 해리 에머슨 포스딕, 캠벨 모건, 윌리엄 생스터, 죤 알 더블류 스토트, 마틴 로이드-죤즈, 및 클레어런스 매카트니를 포함한다. 두 번째 10명은 레슬리 위더헤드, 죠지 트루에트, 알 쥐 리, 노만 빈센트 피일, 피터 마솰, 이 스탠리 죤스,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 랠프 사크맨, 더블류 에이 크리스웰, 및 가드너 테일러이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해리 에머슨 포스딕, 노만 빈센트 피일 등은 정통 기독교와 거리가 먼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전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이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는 마틴 루터 킹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악한 거짓말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킹은 그를 기념하는 공휴일이 지정될 정도로 영예를 얻었고 천주교회에서는 신앙을 위한 순교자로 선포될 후보자가 되었다. 투투 대주교는 지난 12월 세계교회협의회 모임에서 그에게 찬사를 돌렸다. 그러나 크리스챤 뉴스 2000년 1월 3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렸다:
수많은 사실들은 킹이 공산당과의 의식적 협력자이었고 표절에 의해 그의 철학박사 학위를 얻은 거짓말장이요 . . . 간음을 행하는 자이었고 . . . 미국의 적국에게 원조와 위안을 준 반역자라는 것을 의심 없이 확증한다. . . . 그는 예수의 참된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신학교 출신이며 역사적 기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에게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말했다. 마이클 다이슨은 나는 당신을 거기에서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참된 면모라는 책에서, 위의 사실들 중 표절자, 간음자 등을 확증하고 킹이 죽을 무렵에는 미국의 불평등의 해답이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미국 침례교 목사이며 이스턴 대학의 사회학 은퇴 교수인 토니 캠폴로는 2001년 6월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의 아침 식탁에서 거의 1000명의 장로교인들에게 연설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교단 내의 권력을 위해 싸우지 말고 사랑을 통한 일치를 구하라고 요청하였다. 최근에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 문제와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독점적 수단인지에 관해 심각히 의견이 나뉘어 있다. 그는 말하기를, 실제로 교권 싸움에 불과한 신학적 문제들로 싸우기보다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쓰라고 촉구하였다. 그는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역사를 바꾼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로서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들었다. 미합중국 장로교회도, 토니 캠폴로도 무지한 배교자들이다.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제7일 안식교(SDA)와 개혁교회 세계연맹(WARC)은 교리적 차이점들을 제쳐놓고, 중요한 사회적 관심과 문제들을 표현하는 일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두 단체는 2001년 4월 1일부터 7일까지 스위스에서 첫번째 공식적 대화를 가졌고 에이즈 질병의 위기, 여성들과 아동들에 대한 폭력, 그리고 종교적 자유를 협력이 가능한 공통 분모라고 인정하였다. 2001년 5월 4일 에큐메니칼 뉴스 서비스에 의하면, 그 대화는 "일반적 교리 연구를 회피하였고 . . . 사회적 사명의 실제적 문제들로 직접 갔다." 그 단체들은 그들의 교리적 차이점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공통 분모를 개략적으로 표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대화에 참석하였던 WARC의 신학담당관 오데어 페드로소 마테우스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사회적 사명을 교리보다 우선하는) 이 같은 형태의 대화를 본받는다면 다른 교회들과의 모임들도 더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테우스는 말하기를, "고전적 형태로는, 만일 우리가 교리적 차이점들을 극복한다면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마 우리가 먼저 사명을 함께 수행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게 될 것이고 에큐메니칼 영성을 발전시킬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분열을 넘어서 우리의 믿음을 함께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라고 했다. 안식교 리뷰지 편집자이며 그 대화의 참석자인 윌리암 죤슨 박사는 말하기를, 안식교는 "개신교 기독교의 주류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부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복음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주류 그리스도인들이다. . . .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온 세계에 많은 중개자들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는다"고 하였다.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 제6차 뱅쿠버 총회시 "뱅쿠버의 복음주의자들: 공개 편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복음주의자들 다수의 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들이 복음의 핵심을 신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명백히 받으신'자들이므로,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지도자들로부터 물러나지 말고 기쁘게 그들을 영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선언할 압박을 느꼈다." 이 공개 편지의 서명자들은 풀러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이며 미국장로교회(PCA) 목사인 아더 글라서,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전 총무이었던 월드론 스카트,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 간사인 로버트 영블러드, 고든-콘웰 신학교 교수인 리차드 러블레스,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협의회(REC)의 총무인 폴 슈로텐보어 등 200여명이었다.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1998년 12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8차 총회는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지도자인 죠지 반더벨드를 주요 연사로 내세웠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지도부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 파송된 월드 비젼의 공식적 대표인 독일 루터교회의 쿠르트 방게르트 목사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2000년 2월, '교회 일치운동의 역사와 현황'이라는 제목의 제1회 에큐메니칼 포럼의 기조 발제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인 박종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보수적 교회]와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강조하는 부류[진보적 교회]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고, 이 둘을 포함하는 통합적 에큐메니즘이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상황의 경우, 지금에 와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운동과의 대립 구도로 자리 매김되는 축소된 위상을 지녀왔으며,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심화된 상태의 '적대적 냉전 구조'에서 파생되고 강화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과 적그리스도적이며 우상숭배적인 천주교회의 신학의 포용에 있다. 이단을 배제함이 없는 연합은 현대판 바벨탑 운동에 불과하다!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WCC 사무총장 코라드 라이저는 스리 랑카에서 로마 카톨릭 신학교 교수들과 개신교회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종(改宗)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개종시키는 신앙이었고 '이방인들'을 회심시키려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다른 종교들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에서는 그리스도의 독특성을 선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참된 대화를 원하는 내적인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특권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최근에 미국의 풀러신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WCC는 전세계의 모든 교단들을 연합할 전세계적 새 기독교 포럼을 제안하였다." 이 포럼은 단지 현재의 WCC 소속 교단들뿐 아니라,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단체들, 예를 들어 천주교인들과 오순절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도 포함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는 말세의 배교의 명확한 예이다. 구체적 한 예로 WCC에서 출판된 예배 지침서인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No Longer Strangers)라는 책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평화의 숙녀, 지혜의 숙녀, 사랑의 숙녀, 출산의 숙녀, 별들의 주, 행성들의 주, 어머니, 빵 굽는 여인, 단순하신 자 등의 이름들로 부르기를 격려한다. 이 책의 교독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을 불러 존재케 하신 어머니-아버지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여자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상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인성(人性)을 나누어 가지시고 거절을 당하시고 죽으셨으나 마침내 죽음을 정복하시고 세상을 그 여자 자신과 묶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카돌리코스 아람 1세는 2003년 제네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의 의장이었다. 중앙위원회는 WCC의 주된 운영기관이다. 아람은 종교간 대화가 WCC의 에큐메니칼 증거에서 충분히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지 못했다고 염려한다. 그는 종교들의 공존이 흔들리게 되고 있다고 말했고 또 근본주의가 "종교의 가장 큰 적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근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모든 종교들을 위해 첫번째의 긴급한 우선순위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선전이 강화될수록,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입장을 취하는 비타협적 근본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압박과 핍박이 올 것이다.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1998년 3월 실행위원회 모임에서, 침례교 세계연맹 총재 닐슨 패니니는 말하기를, "신학은 때때로 우리를 분열시키지만, 선교와 전도는 우리를 연합시킬 수 있다"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이 수년 전에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빌리 그레이엄과 코리타 스캇 킹은 1999년 1월 9-11일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릴 '인종차별반대 국제침례교회 지도자회의'의 공동회장이 될 것이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이 배교적 침례교 세계연맹의 회원 교단이다.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라고 알려진 제리 팔웰은 최근에 남침례교단에 가입한 바 있다. 미국 남침례교단은 1995년에 40,039교회, 1,566만 교인을 가진 세계 제1의 대교단이지만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그 교단 안에 있고 그 교단이 배교적 침례교 세계연맹의 회원 교단이라는 사실은 슬픈 일들이다.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1998년 기독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연합 그리스도교회, 및 미국 개혁교회는 국내외 선교협력과 목회자 상호인정 등을 포함한 '전면적' 교단 교류를 선언한 합의서를 수용하였다. 미합중국 장로교회 외의 다른 세 교단들은 지난해 총회에서 이미 그것을 수용했고,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3월 19일 현재 172개 노회 중 표결을 끝낸 111개 노회 중 109개 노회가 그것을 찬성함으로써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네 개 교단의 대략적인 교인수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520만명,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270만명, 연합 그리스도교회가 150만명, 미국 개혁교회가 30만명이라고 한다.
미연합 그리스도교회나 미복음주의 루터교회나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자유주의적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도를 말한다면, 연합 그리스도교회나 미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좀더 자유주의적인 것 같다. 그 교회들은 하나님의 참된 진리들을 저버린 배교적 교단들이다.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그러나 그 교단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순진한 교인들,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 마음은 심히 안타깝다. 성도들아, 정신을 차리고 깨어 성경 말씀에 굳게 서라. 자유주의 교회들에 머물러 있는 진실한 성도들아, 분별력을 가지고 거기에서 속히 나오라.
전국 기도의 날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제임스 답슨 목사의 사모(쉴리)는 매년 모이는 전국 기도의 날의 의장이었다. 공동의장은 대학생선교회의 빌 브라잇의 사모(보네트)이었다. 촬스 콜슨은 전국자문위원회에 들어 있다. 랍비 조슈아 하버만, '신부' 로버트 시로코, 및 디 제임스 케네디는 연결 고리들이었다. 전국 기도의 날 책자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들에 따라서 참여하도록 격려된다. . . . 전국 기도의 날은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해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만들어졌고 의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수 24:18-20). 그는 그의 영광을 유대교와 로마 천주교의 이방신들과 거짓신들과 함께 나누시지 않을 것이다.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앨러배머 뱁티스트 1999년 5월 13일자는 "'예수를 위한 행진' 은 예수를 경배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에큐메니칼 사건이다"라고 보도하면서 그것은 "사랑을 향한 더 큰 행보를 내딛는 자들을 연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의 버밍햄 행사는 크로스 대성당에서 시작되었고 라우얼즈의 숙녀 카톨릭 교회에서 끝났다. 슬프게도, 지역 행사는 웨스트 헌츠빌 침례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말하기를, 솔트 레이크 시의 예수 행진에서는 몰몬교도들이 참여하도록 초청되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의 예수 행진에 초청된 '거짓 그리스도들'을 열거했다: 1) 로마 카톨릭 미사에서 경배되는 떡 예수, 2) 일부다처자인 몰몬 예수, 3) 처녀에게서 탄생치 않으신 현대주의 예수, 4) 하나님이 아니신 유니테리언 예수, 5) 아무도 지옥으로 보내지 않을 보편구원론 예수, 6) 부요하신 번영의 예수, 7) 그의 영으로 사람들을 '죽이시고' 그들로 하여금 억제할 수 없이 웃고 술취한 자들같이 비뜰거리게 하는 웃는 예수, 8) 사람을 결코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그의 자화상을 건립해주기 위해 오신 자기 존중의 예수, 9) 해방의 신학의 창설자인 혁명적 예수.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AP통신에 의하면, 미국교회협의회는 새 조직체의 시작을 탐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만날 것이라고 한다. 이 발기통지문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와 미국 복음주의 협회에 보내졌다. 미국교회협의회는 지난해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새 에큐메니칼 모험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었다.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팻 로벗슨은 다양한 현장들을 통해 에큐메니칼 우상이 되었다. 그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천주교 연맹을 창설하였다. 1995년 천주교 교황이 미국 뉴욕시를 방문하는 기간, 로벗슨은 미사에 참여할 다섯 명의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27명의 개신교회와 헬라정교회 대표자들을 포함하는 에큐메니칼 행진을 인도하였다. 그는 교황을 칭송하고 "우리 모두는 천주교회와 다리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로벗슨이 명예총장이고 총장이 천주교인인 리전트(Regent) 대학교에서는 매 주일 교정에서 미사가 있다고 한다.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2000년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는 미국 교회협의회에 대한 그 교단의 270만불의 후원금과 세계 교회협의회에 대한 120만불의 후원금을 삭감하자는 두 개의 헌의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그것은 그 교회가 교회협의회를 위해 충분히 재정 지원을 계속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 장로교회는 미국 교회협의회의 두 번째로, 즉 연합감리교회 다음으로 큰 후원교단이며, 그 돈의 대부분은 세계 봉사국이라는 그 협의회의 기관을 위해 사용된다. 그 교회는 또한 그 협의회의 부채를 위해 50만불을 지원했었다.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교회협의회와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빈곤, 낙태, 동성애 등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진보적(자유적) 교회 협의체와 보수적 교회 협의체를 하나로 묶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로버트 에드가 미국 교회협의회 총무는 새 연합체가 탄생할 경우 앞으로 3년 안에 미국 교회협의회를 자체 해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950년에 창설된 미국 교회협의회는 개신교회의 주류 교단들과 동방정교회 등 35개 교단들에 5200만명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으며, 1942년에 창설된 미국 복음주의자협회는 51개 교단들에 3000만명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보수적 교회 단체와 자유적 교회 단체의 연합 움직임은 이전보다 교회들을 더욱 혼란시킬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적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결코 혼합될 수 없다. 이 두 입장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보수주의자들이 인도하는 남침례교단의 타협적 경향은 늘어나고 있고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2000년 주목되는 한 사건은 6월 11일 버밍햄에서 열린 '오순절 2000' 행사이었다. 7월 13일 앨러배머 뱁티스트는 이 에큐메니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한 신앙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많은 교단들의 가수들, 무용수들 및 기타 연주자들을 포함했다. 버밍햄 침례교회 협회와 기타 몇 지역의 침례교회들이 참여했다." 버밍햄의 사우스사이드 침례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성장 담당 부목사인 페기 샌더포드는 말하기를, "우리의 신앙 체제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 연합되어 있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침례교인들, 천주교인들, 그리스도의 교회와 자유주의적인 대교단들의 대표자들을 포함했다. 워터 버가트 신부는 말하기를, "교리는 분리시키나 봉사는 연합한다. 우리는 감히 경쟁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의 천주교회, 개신교회, 헬라 정교회 지도자들은 2001년 1월 5일 미국 프린스톤 대학교에서 새로운 '기독교' 연합 단체를 형성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2004년의 두 주간의 대회를 계획한다. 그 단체는 자신을 '북미 신앙과 직제 대회를 위한 재단'이라고 명명한다. 그것은 천주교인들, 복음주의자들, 주류파 개신교인들, 오순절파 교인들, 및 헬라 정교회 신자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16명의 위원들 가운데는 천주교회 대주교 윌리암 키일러, 헬라 정교회 대주교 디미트리오스, 풀러신학교 교장 리차드 무우, 하나님의 교회 신학교 교수 체릴 죤스, 프린스톤 신학교 교장 토마스 길레스피가 있다. 한 캐나다 수녀가 회계이다.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2002년 1월 18일, 미합중국 장로교회, 연합감리교회, 미국 성공회,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등 미국의 9개 교단들은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CUIC)라는 연합 교단 혹은 에큐메니칼 기구를 형성한다. 그 교회는 아직 교단들의 조직과 교권의 통합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2007년까지 소속 교단들의 목회자들의 강단 교류를 포함하여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속 대화하기로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단체는,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는 배교적 교회들의 연합체이다. 이런 류의 연합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적인 바벨탑에 불과하다.
미국 기독교회들 엽합
"미합중국 기독교회들 연합"(Christian Churches Together in the USA)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2002년 4월 미국의 천주교회, 자유주의 개신교회, 복음주의, 헬라 정교회, 오순절파 지도자들 혹은 대표자들에 의해 서명되었다. 그러나 연합주의자들의 그러한 넓은 연합은 적그리스도의 한 세계교회 형성의 한 단계이다.
여행 길을 위한 초청
미국의 주류 개신교회, 헬라 정교회, 천주교회, 오순절파와 복음주의 교회지도자들은 대화를 위한 두 차례의 모임을 가졌고 2003년 1월에 세 번째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34명의 교회지도자들은 어떻게 "우리가 새 삶의 비젼을 함께 보는가"를 묘사하는 "여행 길을 위한 초청"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비젼은 "우리로 하여금 임시적으로 우리 자신을 '미합중국 기독교회들 연합'이라고 부르게 인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큰 일치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미국교회협의회 사무총장 밥 에드가 박사는 실행이사들에게 "여행 길을 위한 초청"의 내용을 그들 회원교회들 안에서 두루 나누도록 강권하였다. "지금은 함께 모이고 더 넓고 더 깊은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 중요한 순간이다." 성경은 말세에 세계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로마 카톨릭 교인들의 숫자는 현재 10억에 이르며, 그들 중 절반은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 전문가들은 예측하기를, 2000년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는 세계 카톨릭 인구의 거의 4분의 3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총무는 주류 기독교회들이 2000년에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는 세계적 기독교 협의회에 도달할 한 절차를 시작하기를 재차 요청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수석 교리 고문 라칭거 추기경은 "교회의 일치와 신앙과 도덕에 대한 [카톨릭의] 책임"에 대해 말하며, 또 그는 "이제까지 분리된 공동체들이 교황과 더불어 일치 안으로 들어올 때" 교황직의 사용이 기독교계를 변화시킬 방식들을 구상한다. 1995년 교황은 비(非)카톨릭교인들을 초청하기를, 교황직의 사용이 기독교 일치에 장애물이 아니라 도구가 되도록 함께 재고하자고 하였다.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유럽의 로마 천주교, 헬라 정교회, 개신교회와 성공회는 에큐메니칼 관계를 촉진하고 유럽 대륙의 유익을 위한 가시적 일체를 위해 협력하기 위해 그들의 차이점들을 제쳐놓자고 뜻을 모았다. 서로 대화하고 유럽 교회들 간의 화해를 증진시키려는 헌장에 서명하기 위해, 여러 교회들과 교단들로부터 온 약 200명의 공식적 참석자들이 2001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모였다. 그 모임은 유럽 천주교주교협의회와, 전 유럽 120개 헬라정교회, 성공회, 개신교회들을 대표하는 유럽 교회 대회에 의해 공동으로 조직되었다. 그 모임의 마지막 날, 지도자들은 카르타 오에쿠메니카(에큐메니칼 헌장)에 서명했다. 기자 회견에서, 프라하의 로마 천주교 대주교, 카디날 밀로슬라브 비크는 이 헌장이 "유럽의 교회들의 가시적 연합운동"을 향해 길을 닦기 위해 의도되었다고 말했다. 비크는 부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기독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共有)하고 있는지 잘 느끼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주기도를 공유하고 있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공유하고 있고 . . . . 우리는 성령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바와 우리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하였다." 2001년 4월 23일 카톨릭 뉴스서비스 보도에 의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모임 참석자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격려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유럽 대륙에서 한 목소리로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쓰기를, "주께서 다락방에서 기도하셨던 일체성은 기독교적 증거의 신임성의 조건이다"라고 했고 또 부언하기를 "복음의 분명한 제시가 특별히 유럽에서 긴박하다"고 하였다.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개혁, 기장 등 장로교 주요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는 1997년 3월 31일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장로교 연합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서 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고, 통합측의 김순권 목사는 "권위주의와 신학교 난립, 감정 대립 등이 장로교 분열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정확하지 않다. 물론 한국 장로교회들의 분열 역사에서 권위주의나 감정대립의 요소가 없었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신앙인들도 성화의 불완전 때문에 겸손을 잃고 감정이 격화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국 장로교의 주된 분열의 원인이었는가? 한국 장로교회의 주된 분열은 고신, 기장, 통합, 합동의 분열이다. 이 네 교단이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52년 고신 교단의 분립은 총회측에서 신사참배가결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고신 교단은, 비록 인간적 연약성을 종종 보였지만, 가장 순수한 흐름을 잇고 있다. 1953년 기장 교단의 분립은 총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을 두둔하는 이들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교리적 문제로 인한 분열이었다. 19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은 일차적으로 분명히 세계적인 에큐메니칼 운동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보는 견해의 차이 때문에 일어났다. 통합측은 그 협의회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합동측은 그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창립당시부터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단체이었고 세계교계가 이미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하여 혼란한 때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분열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볼 때, 과거 역사상 한국 장로교의 가장 중요한 분열은 일차적으로 신학적 문제에 있었지, 단지 인간적인 생각이나 교권주의나 감정 대립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교회일치는 건전한 교리적 일치에서 찾아야지 교리적 오류를 무시한 일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불과하다.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의 대표적 두 장로교 협의체인 한국장로교협의회와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가 1997년 5월 15일 합동총회를 열어 통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기사에 의하면, 양측 5인씩의 합동위원회 모임은 '조건 없는 합동'을 결정하였고 두 단체의 회장들은 "두 단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데 동의하였다고 한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데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적으로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 통합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의 통합이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것은 특히 한국장로교협의회['한장협']가 신앙적으로 건전한 협의체인가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예장협']은 34개 교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보수적인 많은 군소교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장협은 예장 통합, 기장,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장은 물론, 예장 통합이 오늘날 불신앙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교단들과의 협의 혹은 그런 교단들을 포함하는 일치 추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장과 예장 통합에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그 동안 한국장로교회 일치 논의에서도 상당히 드러났다. 크리스챤신문의 한국장로교회 일치 위한 특별좌담 보도에서, 예장 통합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는 교회가 "과거 분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허위 구조 즉 정통성 수호라는 미명아래 교인들에게 강요해온 모든 허위구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주의'가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 좌담에서 기장 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교리적 확신]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대신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제의했다. 심지어 그는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 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 보수 신학에선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좌담은 한국교회 안에 자유적 교단과 보수적 교단의 사상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내 보인다. 예장 통합측 목사의 사상은 기장측 목사 못지 않게 자유적이고 심지어 예장 대신측 총무의 발언은 참 놀랄 만하다.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김재준 박사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니 그것이 예장 대신측의 입장인가? 기독교는 바른 교리 위에 세워졌다. 바른 교리와 잘못된 교리를 구별치 않는다면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의 건립과 진행을 위해 본질적이다. 그러나 한장협은 이런 심각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한국장로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활동해왔던 것이다.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1993년 한장협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궁극적으로 한 장로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한장협은 1994년 사업 계획에 각종 강단 교류, 신학생 예배 강단 교류, 세계 장로교와의 교류 등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바른 교리, 바른 신학을 무시한 교회 일치 운동은 성경적 운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운동이 아니다. 기장측이 명백히 자유주의 노선이고 예장 통합측도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기 때문에, 그 두 교단은 자체정화를 해야 하고 그 때까지 적어도 그 두 교단을 포용하는 한국장로교 연합활동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가르쳤고(딛 3:10), 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후 6:14).
잘못된 일치운동
1996년 9월 "한기총은 어디로"라는 주제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발제자 한명수 목사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과 교회협[한국기독교회협의회]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찬자로 나선 정진경 목사 역시 개신교계 대표성을 띤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 한기총과 교회협의 하나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도 "한기총 대표회장 최훈 목사도 하나되는 소망을 갖고 일한다"며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개념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교단의 목회자 양성기관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세력을 잡고 있는 소위 자유주의 교단들이 중심이 된 교회협[NCC]과, 비교적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인 한기총이 통합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후 6:14)는 성경의 교훈을 어기는 일이다.
장로교 연합예배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6월 8일자(15쪽)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협의회가 주최한 서울지역 장로교연합예배가 6월 1일 과천교회에서 있었다. 그날 낭독된 공동선언문에는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위에 세워진 하나의 장로교회이므로 이 본질 위에서 정통과 전통을 이어나갈 것,' '교단의 정치 부조리를 물리치고 점진적인 신학 교류, 강단 교류, 연합행사 등을 실시해 장로교회의 원형으로 회복할 것' 등의 내용이 있었다. 한국장로교협의회에는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이 예장 통합과 기장과 더불어 참여하고 있다.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 등의 교단이 신학적으로 보수적 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며, 예장 통합과 기장이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 혹은 포용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기장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한 교단이었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이 주로 한신대, 감신대, 연대 신대 등을 통하여 흘러들어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예장 통합측의 장신대도 신학적으로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에서 맴돌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보수적 신학을 가진 장로교단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들과 함께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장로교회의 원형'을 논하고 '신학 교류와 강단 교류'를 제안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 교회지도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수교회 지도자라는 분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런 류의 연합을 주장하고 거기에 참여하는가? 성경은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통]을 지키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말했다(살후 2:15; 고후 6:14).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기독교보 1997년 6월 21일자(3쪽)에는 예장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인 조순태 목사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조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 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심히 정신없고 무책임하고 잘못된 것이며, 그런 글이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로 알려져 있는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에 의해서 쓰여졌고 또 고신측 교단의 기관지에 실렸다는 것은 대신측과 고신측이 넓어진 증거 같아서 매우 가슴아프다. 이것은 고쳐야 할 생각이다. 비성경적 연합운동은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바벨탑 운동을 승인치 않으신다. 더욱이 자유주의 교단들이 마치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잘못된 주장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이단 사상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 연합이나 연합적 활동은 반드시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크리스챤 신문 1998년 11월 9일자(14쪽) 기사에 의하면,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 회장: 예장 통합측 총회장 서정래 목사)는 10월 29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회원교단의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축하예배를 통해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매진키로 결의했다. 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고신, 기장,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 31개 회원 교단 가운데 이날 참석한 신임 임원 120여명은 공동기도문에서 "지난날 장로교회가 분열된 아픔을 깊이 회개한다"면서 "장로교회가 하나로 연합해 이 땅에 바로 서서 주님의 정의를 아름답게 꽃 피우자"고 강조했다. 예장 통합 직전 총회장 민병억 목사는 '한 이름 이스라엘로'라는 설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로 똘똘 뭉친 것처럼 우리 장로교도 하나 돼야 한다"면서 "하나 된 장로교가 이 나라와 민족의 통일, 번영에 선구자가 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길자연 목사(예장 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자기의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했다. 서정래 대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축하예배는 예장 합동 길자연 총회장과 예장 고신 임종만 전총회장이 축사하고, 예장 합동 정통 홍찬환 전총회장이 대표기도, 예장 대신 김백수 전총회장이 축도했다.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잘못된 연합운동의 한 예이다. 어떻게 성경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예장 고신, 예장 합동, 예장 대신 등의 보수교회들과, 성경의 파괴적 비평에 근거한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을 받아 들이는 기장, 예장 통합 등의 자유적 교회들이 교회의 일치를 부르짖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참된 교회에게 이단 사상을 배격하라고 명령하셨지 이단을 포용하는 일치 추구를 허용하지 않으셨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악한 이단사상이다. 그러므로 한국장로교 총연합회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분별력 없는 연합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무지하고 불성실한, 혹은 심히 완악하고 인본주의적인 악이다. 참된 교회연합은 바른 교리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온 덩이에 퍼질 누룩을 포용하는 잘못된 연합운동은 하나님의 큰 책망과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1999년 1월 7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24개 회원 교단 총회장들과 총무들 등 120여명이 참석한 신년하례회를 가졌는데, 거기에서 대표 회장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신년사를 통해 '장로교 연맹'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는 그것을 120여개의 장로교단들이 하나 되는 꿈을 꾸면서 현재의 총회들 질서와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보다 협력과 결속이 강화된 조직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제안은 장로교 연맹을 만들어 3년 내지 5년 후에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연합 장로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며, 그 장로교 연맹은 하나의 장로교회를 위한 전단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연합의 움직임은 결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대로 그리고 보수교회들이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견지해 온 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이 바른 진리 안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시고, 진리와 비진리가 혼란스럽게 연합되는 것을 정죄하신다. 20세기 말의 기독교계는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 원리와 입장에 근거하지 않은 연합은 교회의 갱신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참된 교회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공통적 신앙고백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한국에 들어와 장로교단(기장측)을 형성한 지도 반세기가 되어간다.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입장을 취해온 예장 통합측이 생긴지도 벌써 거의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원칙이 없이 단순히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선전되고 그런 방향으로 교회들을 몰아가는 것은 결코 건전한 정신이 아니고 혼돈의 정신이다.
더구나, 교회들이 이런 식으로 연합된다면, 진정한 진리의 운동은 더욱 위축되고 쇠잔해지고 말 것이다. 지금도 온통 연합정신이 만연한 교계의 상황에서 참된 분별력을 가진 입장과 운동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장로교 연맹이나 연합장로교회가 형성될 때는 거기에 가담치 않는 극히 소수의 교회들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지금도 자유주의 배교나 신복음주의 타협을 지적하는 책들이나 방송 설교나 강연은 설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장로교 연맹이나 연합장로교회가 출현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진리 운동은 숫자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역사나 교회역사를 볼 때, 진리는 소수편에 속한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다수는 자주 참된 진리의 지식과 바른 입장에 대해 무관심했다. 구약의 엘리야 시대나 미가야 시대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아다나시우스 때나 종교개혁기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진리는 교인들이나 목사들의 숫자에 의해 판정되는 것이 아니고, 신구약 66권의 말씀의 바른 해석에 의해 판정된다. 성경의 바른 해석은 오랫 동안 교회들 안에서 유지되어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몇 십년 전까지 지켜 왔던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팔아 버리는 때가 되었다. 이상한 것은, 옛날에는 지켜졌던 입장이 오늘날에는 옛시대의 편견이나 미숙한 사상 정도로 매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오늘도 신구약 66권의 말씀에 집착하며 또 선진들이 싸우며 걸었던 옛길을 진지하게 배워 확신하고 요동치 말고 바르게 진행하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조선일보 1999년 8월 21일자(18쪽)에 의하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한장련: 대표회장 유의웅 예장통합 총회장)는 2000년 회원교단들의 총회 개시일을 9월 25일로 통일시켜 이를 '한국장로교의 날'로 선포하기로 했다. 이날 30개 회원 교단 임원과 대의원들은 한 자리에 모여 개회예배를 올리고 성만찬, 축하 공연 등을 함께 갖게 된다. 한장련은 또 총회 직전 주간과 일요일을 각각 '한국장로교주간', '한국장로교주일'로 지정, 장로교 여러 교단이 형제자매임을 고백하고 일치의식을 확인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보수적 교단들의 연합체이었던 예수교장로회협의회와 자유 보수의 혼합체이었던 한국장로교협의회가 합동하여 생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이제 명백히 교회연합운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류의 교회연합운동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왜냐하면 기장과 예장통합의 자유주의 신학을 책망함과 배제함이 없는 교제와 연합은 명백히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적 순결성을 고수함이 없는 연합운동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기독교보(고신) 2000년 2월 12일자(10쪽)에 의하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 회장: 김도빈 목사)는 2월 7일과 8일 내장산 관광호텔에서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 간담회를 열었다. 그 모임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전병금 목사(한장연 서기)는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 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들로서 △교단 간의 강단교류 활성화 △ 총회에 상호사절단 파견 △ 2000년 장로교 총회 개회예배 함께드리기 △ 같은 지역 안에서의 연합예배와 성찬식 △ WARC(세계개혁교회 연맹) 참여로 국제 교회와의 연합 강화 등을 제안했다. 논찬에서 김재규 목사(대신 총회장)는 "한국교회에서 사상 논쟁이 사라졌다는 발제에 동감을 표하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대화하면 사상 논쟁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일치를 위해 "우선 실현 가능한 선교, 예배에 대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과 일치의 강조와 제안은 얼마나 비성경적인 생각들인가? 20세기 초부터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들 안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신학교들을 부패시켰는가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어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고 또 이런 발언에 동조할 수 있겠는가? 한국 장로교회의 통합이야말로 가장 비성경적인 비젼이며, 통합과 일치를 위한 강단 교류 활성화나 지역 안에서의 연합 예배와 성찬식은 성경이 금하는 일들이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WCC) 못지 않게 자유주의적인 세계 개혁교회 연맹(WARC)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제안은 성경을 믿는 교회들은 받아들여서는 안될 제안이다. 이런 분별력 없는 혼란스러운 연합회로부터 보수교회들은 나와 바른 분별력과 입장으로 단합해야 할 것이다.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한국장로교단들에 속한 총회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한국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기독신학대학원, 국제신학대학원, 대한신학대학원, 중앙신학대학원, 합동중앙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등 11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2000년 9월 20일 기독신학대학원에 모여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 색채를 반영하기 위해 1인 대표체제를 지양하고 총회신학대학원 이재윤, 장로회신학대학원 고창준, 기독신학대학원 김상민 등 3명을 공동대표로 하는 복수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단체는 한국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보수적 입장과 자유적 입장을 구별하는 선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다. 이것은 바른 진리의 증거를 점점 더 혼란시키는 일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참된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교회들은 결코 분별력 없이 연합적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9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장로교회는 만국 교회 앞에 하나"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 선언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나 세속 이념을 두어 온 죄와 교권을 가지고 그것을 구실로 분열해 온 죄를 뉘우치자"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원시 시대의 신화적 사상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며 사도신경이나 니케야 신조가 당시의 언어와 사상과 표현 형식을 가지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17세기의 교리적 진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위의 선언문의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말이 이런 자유주의적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극히 불건전하고 악한 말이다. 사실, 포용주의적 진술은 진리에 대한 무관심에서는 허용될지 몰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표현이 역사적 신조들이나 보수주의적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분명히 표현되기 전까지는 이런 류의 선언문에 대해 동의해서는 안될 것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예장 통합, 예장 합동, 기장 등 21개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장로교 신학회가 2002년 6월 20일 창립대회를 열었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종윤 목사는 취임소감에서 "장로교가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적인 자화상이다"며 "이번 장로교 신학회의 창립을 통해 장로교가 분열을 극복하고 선교초기처럼 하나가 되어 새시대에 복음전파에 주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초대회장 이종윤 목사가 예장 합동측에 있다가 예장 통합측으로 간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진 중에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오영석 한신대학교 총장, 오덕교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김인환 총신대학교 교수 등이 섞여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장 통합과 합동, 기장 등이 모여 무슨 공통적 장로교 신학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주의 신학을 알 만한 보수신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무슨 토론을 하자는 것인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므로 이단자들과 더불어 무엇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교회일치운동을 위해 연합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공통적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고 성경은 말한다.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의 개신교 17개 교단의 총회장 및 총무 23명은 2000년 7월 6일 연세대에서 간담회를 갖고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할 '한국교회연합준비위(가칭)'를 구성하였다. 참여한 교단들은 예장 통합, 예장 대신, 감리교, 기장, 기하성, 기성, 기침, 구세군, 정교회 등이다. 교단 대표들은 90년대 이후 침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사는 길은 연합과 일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은 "지금의 위기감을 넘어서는 길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복음 등 이분법을 넘어서 형제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주요 교단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개혁 등 보수교단들의 참여, 그리고 현존하는 양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해체 등의 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모임의 초청자였던 기장측의 전병금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번에 하나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며 앞으로 상당 기간 연합하기 어렵다는 각오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알지 못하고 보수, 자유를 넘어서는 개신교 연합기구를 구상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를 명백히 어기는 연합운동에 불과하다. 보수적이었던 예장 대신측이 이런 비성경적 연합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한국교회의 위기의 극복은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의 말대로 진보와 보수의 연합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장측 전병금 목사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하나가 안되면 그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무분별한 교제와 협력에 있다. 기독교는 진리 운동이지 인본주의적 연합운동이 아니다. 그런 연합은 옛날 바벨탑을 쌓은 것과 같다. 바른 진리와 자유주의 신학은 결코 일치가 될 수 없다. 오늘날 교회 갱신의 일차적 과제는 교회들 속에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을 다 추방하는 것이다. 신학의 정화가 없이는 진정한 진리 운동이 바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런 곳에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복주심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상태에 교회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로 자처하는 이들이여, 정신 없는 연합과 일치 일변도의 강박관념의 잠에서 어서 속히 깨어라! 현대 교회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고 처방하라!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크리스챤 신문에 의하면, 제5차 한국교회 화합과 일치를 위한 정례기도회가 2001년 3월 15일 오후 신촌성결교회(담임목사 이정익)에서 250여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번 기도회의 주최는 한국교회 화합과 일치를 위한 기도회 준비위원회(한일준)이었다. 이날 기도회는 서경석 목사(예장통합, 서울 조선족 교회)의 사회로 이근수 목사(합동, 홍성교회)가 대표기도 하였다. 정진경 목사(기성,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는 설교에서 기독교회는 본질상 하나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현재 한국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첫째, 신학의 창조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둘째,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며, 셋째,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바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함을 역설했다.
설교 후 세 사람의 목회자들이 열린 발언을 통해 한국교회의 일치 방향성에 대한 제안을 했다. 전병금 목사(NCC 한국교회 연합운동 추진위원장)는, 교단의 지방행사로 인해 피치 못하게 참석 못한 최성규 목사(한기총 한국교회 일치위원장)와 생각이 거의 동일하다고 전제하고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통일상황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의 일치는 필수불가결적이며, 선교와 구제 및 사회봉사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하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구 목사(고신 신대원 교수)는 "한국교회 나누어짐의 원인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교단 소속 목사로서, 교단 내부의 문제가 수습되는 대로 교회연합운동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합신 총회장)는 "전병금 목사와 최성규 목사가 추진하는 일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렇게 기도하는 불씨가 점점 커져 좀 더 적극적으로 한기총과 KNCC가 기구적으로 협력하다가 마침내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또 긍정적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화합과 일치는 동일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동일한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이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독교회들 안에는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신학사상들이 들어와 있고,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단 사상이다. 그런데 정진경 목사가 '신학의 창조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자유주의 이단 사상을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자는 말로 들린다. 오늘날 신학적 혼란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또 그런 이단 사상에 대항하여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정신 없는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건전한 신학의 보수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수적 교단의 목사들이 그런 운동에 참여하고 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심히 통탄스럽다. 예장 합동측의 이근수 목사는 어떤 마음으로 그 기도회에 참여하여 대표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또 예장 고신측의 신대원교수인 이성구 목사는 "교단 내부의 문제가 수습되는 대로 교회연합운동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니,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고신측 교수로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장 합신 총회장 김명혁 목사의 발언도 실망적이다. 이들은 다같이 비교적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합운동의 기초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며 또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좋다. 그러나 그것은 일치된 신앙고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교단들(기장, 기감, 통합 등)에 대한 조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바른 신앙고백에 근거하지 않은 일치운동은 인본주의적 바벨탑 운동에 불과하다.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2002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사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로 나뉘어 있던 교회연합체가 이제 한 연합체가 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이 일을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의 총회장들이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 이 일에 예장 고신, 개혁, 대신, 합신 등의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이 긍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다. 성경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고(딛 3:10; 롬 16:17; 요이 9-11), 또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살후 3:6, 14). 오늘날 가장 파괴적인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런 신학이 바로 기장, 기감, 예장 통합 등에서 가르쳐지고 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2004년 3월 31일,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교회협=NCC]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의 대표자들 모임인 소위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18인 모임'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행과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회의에는 교회협에서 회장 김순권 목사(통합), 총무 백도웅 목사, 일치위원장 김상근 목사(기장)가, 한기총에서 공동회장 최성규 목사(기하성), 일치위원장 손인웅 목사(통합), 일치위원 박종수 목사(고신)가, 교단장협에서 상임회장 김순권 목사(통합), 상임회장 김진호 목사(기감), 서기 이용규 목사(기성), 사무총장 김원배 목사(기장)가 참석했다. 또 그 모임은 교회협과 한기총 양기구의 대표 각 5인과 창구위원 김상근 목사(기장), 손인웅 목사(통합), 이용규 목사(기성) 3인 등 모두 13인으로 구성하도록 했고, 그 위원회로 하여금 2007년 교회연합기관인 가칭 '한국교회연합'을 출범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결정했다.
일치의 이름 아래 자유와 보수가 함께 손잡는 것은 진리를 혼잡시키는 일이다. 성경은 그런 교제를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롬 16:17; 딛 3:10; 요이 10-11).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대 총무이었고 명예 회장인 빌렘 비셜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의 적극적 협력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가 반복해 말하는 바는, 세계교회협의회 내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는 이제 모두 한 동일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에밀리오 카스트로도 공언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 간의 현재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했다.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WCC의 현 총무 콘라드 라이저는 말하기를, "내가 에큐메니칼 운동 안으로 더 많이 이끌리면 이끌릴수록, 나는 헬라정교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전통들을 더 많이 존경하게 되었고 그것들에 의해 더 많이 풍성하여졌다"고 했다. 그는 후에 또 말하기를, 세계는 '교파 이후' 시대에 있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전통적 교단들을 넘어서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며,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비(非)교회들에 대해 열려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에 의하면, 미국 복음 루터교회의 에큐메니칼 지도자 프랑크 센(Frank Senn)은 말하기를, "나는 우리와 로마 천주교회와의 관계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진영에 있다"고 했고, 또 부언하기를,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유주의 교단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른 지식과 믿음에서 떠나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성경과 동등하게 높이고, 마리아를 거의 신적 존재와 같이 숭앙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명백히 부정하는 등 그 근본적 교리들에 있어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고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숭배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프랭크 센의 발언은 참으로 배교적이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1997년 9월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신자들 함께'(ECT)라는 모임에서 "구원의 선물"이라는 두 번째 진술서를 발표하였다. 그 글은 매우 복음적인 구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 얻는 다른 길이 없다고 바르게 진술한다. 또 그것은 의롭다 하심이 인간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만 근거한다고 바르게 말한다. 그러나 그 진술서는 카톨릭의 공로 개념, 연옥, 마리아 경외 등의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이해들'이 있다고만 언급하고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이다"고 말한다. 또 그것은 진술하기를, "종교개혁의 유산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고전적 신앙고백을 확신을 가지고 공언하는 복음주의자들로서, 카톨릭 교회의 교훈에 양심적으로 충실하는 카톨릭 신자들로서, 그리고 우리의 기독교 선조들에 대한 우리의 빚과 우리의 동시대인들과 우리 후에 올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함께 인식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여기에서 고백한 복음 안에서의 우리의 일체성을 선언한다"고 했다. 그 진술서에 서명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대학생 선교회 국제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해롤드 O. J. 브라운 박사와 존 우드부릿지 박사, 휘튼 대학의 마크 A. 놀 박사, 캐나다 리전트 대학의 제임스 I. 패커 박사 등이다. 이들은 다 오늘날 유명한 복음주의자들이다.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기독교신문 1998년 1월 11일자(1쪽)는 기독교 일치주간 연합예배가 1월 22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려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 기도할 것을 보도하였다. 거기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일반 개신교회, 한국 성공회, 한국 정교회, 천주교회 등이다. 예배 사회는 천주교 일치위원회 박기성 위원이 맡고, 교회협의회 일치위원장 박경조 신부가 주제 메시지 선포를, 그리고 교회협의회 총무 김동완 목사가 설교를 맡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일반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와 성공회가 신학적으로 자유화 되어 있고, 좋게 말해도 매우 포용적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순수성과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뜻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배교적 단체로 간주되어 왔던 천주교회와 더불어 추구하는 교회 일치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하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은 바른 진리와 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교리적, 도덕적 순수성을 저버린 교회 일치와 연합, 다시 말해 바른 진리와 이단의 일치 그리고 의와 불의의 연합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마귀적이다.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1998년 1월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CCA)와 아시아 가톨릭 주교회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2차 '기독교 일치를 위한 아시아 운동' 세미나를 갖고 아시아 지역 신구교 일치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세미나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신구교 사이의 공식적인 논의 기구이다. 이 기구는 1990년 당시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총무 박상중 목사가 제안했고 1991년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마닐라 총회에서 허락된 후 1995년 양측 모두 7인씩의 위원을 임명 '아시아 에큐메니칼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위원회는 1997년 제1차 '기독교 일치를 위한 아시아 운동' 세미나를 열었었고 1998년에 제2차 세미나를 연 것이었다. 그러나 신구교 일치 운동은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반대되는 비성경적 운동이다.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세계 루터교 연합회(WLFC)은 제네바에서 열린 최근의 연례 회의에서 제의된 "칭의(稱義)의 교리에 대한 [로마 천주교와의] 공동 선언문"을 만장 일치로 승인했다. 그렇지만, 하루 뒤, 바티칸의 고위 관리들은 그 문서를 칭찬하면서 몇 쪽의 '설명서'를 내어놓았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이 은혜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선행과 공적에 대해 주시는 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연합운동의 모습이다. 특히 로마 천주교회와의 일치를 위한 대화는 개신교회들이 철없이 따라가는 것 같은 처지이다. 우리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말을 해서도 안되겠고 또 그런 말에 속아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영생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신한다. 그것이 선행과 공적에 대한 하나님의 상이라는 생각은 진리를 혼잡시키는 오류이다. 우리는 로마 천주교회가 인간의 선행과 공적을 구원의 근거로 주장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1998년 12월 16일,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 박사는 위튼 대학교 총장 듀안 리트핀 박사와 트리니티 국제대학교 총장 그레고리 웨이브라이트 박사와 함께 추기경 프란시스 죠지(Francis George)의 집 만찬에 참석하였다. '친분관계'가 형성되었고, '동반자 관계'가 논의되었다. 스토웰 박사는 그 4사람이 '사회 문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나 협력 때문에 '신학적 이해들을 타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죠지 추기경은 '신학을 이야기하기를 원했으며' 또한 "우리 회중[개신교인과 천주교인]들에게 어떤 공통적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기도하고 예배하자는 요청을 가지고 다음 천년에 들어갈" 가능성을 논하였다. 리트핀 박사는 추기경과의 친분관계가 무엇으로 인도할지 모른다고 말했으나, '그러한 친분관계를 가지는 것이 가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저 복음주의자들은 죠지 추기경과 그들의 차이점들의 핵심이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었음을 빠르게 인식하였다. '사회적 문제들'은 우리 시대에 신복음주의자들을 적그리스도의 한 세계 교회로 유혹하는 거짓 복음 신봉자들과 에큐메니칼 관계를 가지도록 낚는 마귀의 유혹하는 미끼인 것 같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 총무 랄프 콜라스 박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8차 총회에 대한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번째 기자 모임에서 세계교회협의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WCC 총무 콘라드 라이저 박사는 WCC와 로마 천주교회 사이의 협력을 위해 연합실무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과거 7년 동안의 활동이었고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점점 진전되었다. 천주교회는 이미 온 세계의 56개국의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제8차 총회의 특별 손님들 가운데 많은 로마 천주교회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토마스 스트란스키는 신문 기자들에게 로마 천주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간의 관계에 대한 간단한 역사적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1972년에 바티칸이 가까운 미래에 WCC의 회원이 되기를 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나는 로마 천주교회가 미래에 WCC의 정회원이 되리라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공식적 편지가 콘라드 라이저 박사에게 전달되었는데, 거기에서 교황은 총회 대표들에게 문안하고 축하하면서 말하기를, "WCC와 로마 천주교회의 관계에 관하여, 연합 실무회의 골격 안에서 미래의 협력의 길들이 기독교 일치를 위한 추구를 강화하기 위하여, 또한 그것의 유형적 차원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라고 했다.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미국 천주교 주교 대회와 미국 교회협의회는 이제 매년 문안과 사절단을 교환하며, '커져가는 협력'과 배교적 교회협의회와의 계속적인 천주교회의 '공동적 활동'을 보고한다. 크리스챤 뉴스 1999년 6월 21일자는 보도하기를, "그러한 협력의 다른 한 상징으로, 교회협의회의 회장이며, 미국의 전(前) 유엔 대사인 [친 공산주의적인] 앤드류 영은 9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의 그의 임직식을 거행할 것이다"라고 했다.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브라이언 헤이르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의 새 학장인데, 이 직위에 임명된 최초의 천주교회 신부이다. 그는, 최근에 전문적 도움을 요청한 후 컴퓨터 기술자들이 그의 대학교 사택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수천 개의 음란물 사이트들을 발견하자 사임했던 로날드 디만의 후임자이다.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조선일보 2000년 1월 22일자(23쪽)는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18일부터 25일까지는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들이 화해와 단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치기도 주간을 맞아 국내 외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 . . 18일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00년 대희년(大禧年) 교회일치 기도회가 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영국 국교회 수장(首長) 조지 커레이 캔터베리 대주교, 동방 정교회 대표 헬리오폴리스 수석대주교는 함께 베드로 대성당의 '거룩한 문'을 열어 젖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예배 의식을 가졌다. 교황은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 형제들이지만 이제 굳은 결의를 가지고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길에 들어섰다'며 '지난 1000년간 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데 대해 그리스도께 용서를 구하고 새 밀레니엄에는 간절한 기도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자'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18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에서 가톨릭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개신교 교단들, 루터교, 한국정교회, 성공회 등이 참가하는 합동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회는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이 공동으로 의식을 집전했으며 성가대도 연합으로 구성하여 찬양을 불렀다. 교회협의회장 이성덕 구세군사령관은 설교를 통해 '신-구교 신자들은 관행과 제도가 다른 가운데 지내왔지만 이 순간 그리스도의 마지막 소원을 재확인하면서 "주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간절한 일치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천주교회와 더불어 행해지는 교회연합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운동이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천주교회는 명백히 이단이며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 . . 시험하라," 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분명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요일 4:1; 딛 3:10)!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와 바울에게 바쳐진 교회 절기를 구별하면서 2000년 6월 29일 24명의 새 메트로폴리탄 대주교들에게 영대(領帶, pallium)를 수여하는 성 베드로 성당 계단에서 가진 초저녁 미사에서, 기독교 일치가 새 천년이 시작되는 때에 "더욱 더 긴급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에큐메니칼 총대주교 바돌로메오 1세가 관례적으로 보낸 헬라정교회 고위 성직자 사절단에게 문안하면서 일치를 위한 그의 요청을 다시 새롭게 하였다. 그 사절단 대표는 헬리우폴리스와 데이라의 메트로폴리탄 아다나시오스이었다.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미국 교회협의회는 퀘이커 교도요 미국천주교 주교대회의 이전 직원인 앤 리그즈(Ann K. Riggs)를 에큐메니칼 토론을 위한 신학 작업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 임명은 교회협의회가 천주교인들, 복음주의자들 및 오순절파 교인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개혁하려는 비상한 때에 이루어졌다. 한 핵심적 지도자 모임은 천주교인들, 구세군 및 하나님의 교회를 포함하여 비NCC 회원교회들과의 미래에 관해 토의하기 위한 2002년 4월 4일부터 6일까지의 회의를 계획한다.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가 양측 지도자들에 의해 추인되었다고 한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의 총무인 백도웅 목사와 천주교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장인 최기산 주교가 주축이 되어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회원 교단들이 총회장, 총무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들, 루터교, 정교회 대표들이 모여 그 회의를 추인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치운동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다. 진정한 교회의 일치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의 일치이다. 그것은 이단을 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회 내에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포용되어 있으며, 또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명백해진 대로 적그리스도적이며 우상숭배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일치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교회의 일치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교제와 연합이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그런 류의 교제와 연합에 참여해서는 안될 것이다.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2001년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바티칸에서 150명 이상의 추기경들은 에큐메니칼 대화의 중요성, 기독교 일치, 및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포함하여 새 천년에 로마 천주교회가 우선 순위를 둘 일들을 토의하기 위해 추기경 회의로 모였다. 교황청의 기독교 일치 회의의 의장인 월터 카스퍼 추기경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제로 강연했고 또 말하기를, 비록 에큐메니칼 운동이 때때로 어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저항을 받지만, 그것은 제2 바티칸 회의 이후 크게 진전되었고 종교 간의 대화가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하에서 '가속화되었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일치는 세 번째 천년의 도전이다"라고 말했고 덧붙여 에큐메니칼 운동은 시대의 '주제'라고 했다. 애버리 둘레스 추기경은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에 대해 강연하면서 말하기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타종교들과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황의 수위권은 실제로 에큐메니칼 일치를 증진하는데 기여한다고 했다. 추기경들은 그 모임의 마지막 날에 로마 천주교회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일들을 간추려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해 투표하였다. 그 메시지는 진술하기를, "찢어짐들과 충돌들로 무겁게 특징지어진 세상 안에서 그리고 분열의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의 교제의 영성뿐 아니라, 사랑과 진실과 신뢰를 따라 에큐메니칼 및 종교 간의 대화의 길을 개발해야 할 보다 더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세계교회의 연합이 로마 천주교회와 교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이방종교들을 통합하는 단체가 될 것이며 요한계시록 13장에 예언된 거짓 선지자는 바로 그 단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천주교회와 미합중국 장로교회 간의 최근의 대화에 참여한 한 여자는 말하기를, 그는 천주교인들 편에서 "즐거이 대화하려는 새로운 분위기"를 감지하며 두 단체가 중심교리적 문제들에 관한 "구별된 의견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매코믹 신학대학원의 신학 부교수인 앤나 케이스 윈터즈는 말하기를, 미합중국 장로교회와 천주교회 간의 대화들의 내용은 "교리에 관해서는 많지 않고 함께 나눌 사역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장로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이 이미 의견의 일치를 본 영역들의 토의를 포함하였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위터즈는 말하기를, "그 대화들은 장차 '세계적 교회 회의'가 될 미래의 바티칸 회의--제3차 바티칸 회의--의 꿈과 또한 개신교인들이 교황제도를 '사탄의 회'라고 부른 과거의 '지나친 표현들'을 서로 없앰으로써 이루어지는 '기억의 치료'의 꿈을 일으켰다고 했다. 두 단체 간의 미래의 대화에 관하여, 참석자들은 어떤 미래의 공식적 모임들을 계획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의 일치와 이해를 향한 몇 가지 단계들을 취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와의 일치를 추구함은 종교개혁에 대한 배신이다.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매트 코스텔라는 미국 침례교회에 대해 직접적 보도를 하면서 말하기를, 미국 침례교회는 '사회복음', 즉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증진시키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전심으로 수용하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그 모임에서의 동성애 문제와 로마 천주교인들을 포함한 다른 교파들로부터의 연사들의 연합주의적 포용에 대해 논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침례교회 목회자협의회는 그 매2년 모임의 첫째날에 모였고 싸우스 다코타주 워터타운에 있는 하나님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온 베네딕 수녀 아드리엔 카우프만이 '실제적 대화: 회중들이 분열 가능한 문제들을 분열됨 없이 다루는 수단'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지난번 매2년 모임에서는, 한 로마 천주교회 추기경이 전체 모임에서 설교하였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1997년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의 에큐메니칼 관계자 프랭크 센 목사는 말하기를, "나는 우리와 천주교회와의 관계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진영에 있다"고 했고, 부언하기를,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하였다.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는 1997년 8월 모임에서 수세기 동안의 천주교도들과의 분열의 싸움이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과거의 정죄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진술을 958대 25의 표결로 승인하였다.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천주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의 대표자들은 1999년 10월 31일에 모여 칭의(稱義) 교리에 관한 애매모호한 공동선언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 교회 교의(dogma)가 된 이단들을 계속 주장한다. 천주교회가 그 무오한 교의들을 '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 일치란 개신교 당사자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믿었거나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행위의 복음(다른 복음, 갈 1:6-9), 즉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義)가 신자들 속에 주입된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도록 실제로 의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한, 빌리 그레이엄과 촬스 콜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위대한 기독교 목자로 찬양을 받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에 2천년을, 면죄부의 발행으로 완전케 되는 '희년'으로(연옥에서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때로) 선포하였다. 천주교회는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미국 북서 오하이오주의 루터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감독교인들은 릴리죤 투데이지가 "한 세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역사적 모임에 함께 참여하였다. 2001년 5월 18일 릴리죤 투데이지의 뉴스 보도에 의하면, 오하이오주 북서 지역의 감독교회와 로마 천주교와 루터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표시로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기로 서약하였다. 그 언약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맹세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로써 일치 운동의 장애물들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고 재연합의 길에 어떠한 장애물도 놓지 않기로 동의한다." 릴리죤 투데이지의 글은 한 로마 천주교 주교의 말을 인용하였다: "이것은 다른 하나의 차원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며 상호간의 존중이다. 우리 모두는 공개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탁하고 그것을 거행하고 있다." 감독교회의 한 지도자는 논평하기를, "나는 이것이 에큐메니칼 관계를 위한 하나의 획기적 변화이며 놀라운 실제적 관계성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창립 56년 만에 처음으로 천주교인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2000년 4월 앨버타 에드몬튼에서 열린 회의에서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천주교회 온타리오 주교인 안드레 발리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캐나다 최대 교파인 천주교회는 1997년 캐나다 교회협의회에 회원으로 정식 가입되었다고 한다.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현재 19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다. 발리 주교는 취임 인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를 위해 서로를 더 잘 아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일치가 내일 당장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떻게 천주교회를 포용하고 있는가를 보이는 생생한 증거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나 죤 칼빈은 천국에서 탄식할 것이다.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기독신문 1999년 5월 19일자(16쪽) 보도에 의하면,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로 구성된 '성공회-로마 천주교 국제위원회'는 5월 12일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에서 발표한 '권위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로마 주교는, 교회의 보편적 수위권[首位權]의 표현으로서, 진리를 분별하고 밝히는 특별한 사목 활동을 한다"고 명시했다. 이 위원회는 1966년에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와 로마 천주교 교황의 합의 하에 구성됐으며, 이번까지 세 차례 두 교회의 궁극적 재통합을 목표로 한 신학적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죠지 캐리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번 문서에 대해 "환영한다. 폭력과 분열로 갈라진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교회(성공회)는 처음부터 천주교적인 요소와 개신교적인 요소가 섞여 있었고 근래에는 자유주의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이런 포용적, 타협적 활동이 그 교회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참된 성도들에게는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와 로마 천주교 국제연합 위원회는 권위의 은사(The Gift of Authority)라는 제목의 문서를 통하여 모든 성공회 교인들에게 요청하기를, 만일 새로운 지구 교회가 창조된다면 교황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라고 한다. 그 문서는 교황을 '모든 교회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져야 할 은사'라고 묘사한다. 지난 5월 람베스 관저에서 발표된 그 성명서는, 비록 현재 구속력은 없지만, 새로 연합된 교회에서 세계적 수위권(首位權)을 행사할 자가 로마 주교[교황]일 것이라고 인정한다.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모인 천주교회와 성공회(영국교회)의 역사적 모임은 13개국에서 온 26명의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주교들이 두 교회가 466년간의 분열을 넘어서 연합할 방법을 연구할 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5월 19일 폐회되었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와 추기경 에드워드 캐시디는 새 위원회가 여성 안수와 윤리적 지위 및 두 교회의 성직 조직의 통합 등의 문제들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성공회-천주교회 국제연합위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천주교회 교황의 권위를 "모든 교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선물"로 수용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보수적 단체들의 지도자들은 "개신교 신앙에 대한 성공회의 배신"에 항거하였다.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미국의 앨러배머주의 헌츠빌 타임즈(Huntsville Times) 2000년 1월 15일자의 한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천주교 신부가 [남] 침례교회에서 연설하고 안식교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대 희년 예배를 위한 기독교 일치 축제'에서이다. . . . 기독교 공동체는 1월 23일 [헌츠빌] 제1침례교회에서 예배와 찬양의 시간으로 모일 것이다." 주최측은 이것이 이 곳에서의 새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천주교 연사는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와 개신교와 복음주의자들/은사주의자들이 대화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류를 포용하며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 더 낫다.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미국의 연합감리교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두 단체가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토론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최근에 달라스에서의 모임에서, 각 단체의 대화팀의 7명의 위원들은 무엇이 두 단체를 나누는지와 무엇이 둘 다의 공통점인지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감리교회의 윌리암 옥덴 감독이 거기 있었는데 그는 천주교인들과 김리교인들은 몇 가지의 노력들에서 서로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신학들의 일부와 또한 우리의 정치 방식 즉 우리가 교회로서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에 의해 나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선교에 있어서 참으로 협력적이다. 우리는 두 교회들이 다른 선교활동들을 함께하는 달라스 지역에서 많은 활동들에 함께 일한다." 감리교회와 천주교회 세계 대화 모임은 두 교단 사이의 가장 오래된 대화 모임이다. 옥덴 감독은 미국에서의 그 대화 모임이 수년 동안 진행되어 왔고 어떤 좋은 이해와 많은 중요한 신학적 논문들을 산출하였다고 말한다.
A DATA BOOK CONCERNING
MODERN CHURCH PROBLEMS
김효성편
Edited by Hyo Sung Kim
Th.M., Ph.D.
머리말
본 자료집은 편집자가 쓴 글들도 약간 있으나 대다수는 캘버리 컨텐더(Calvary Contender),1) 크리스챤뉴스(Christian News),2) 파운데이션즈(Foundations)3) 등의 미국의 정기간행물들과 국내의 기독교 신문들 등에서 인용했거나 내용을 요약하고 때때로 간단히 논평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주로 편집자가 그 동안 옛신앙지4)에 게재했던 것들이며 이제 그것들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책자로 만들어 내어놓는다. 그것들의 출처는 대부분 각주에 제시되어 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여러분에게 현대교회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려 줄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한마디로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회의 바른 길은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연합운동과 윤리적 부패와 은사운동과 신복음주의를 배격하고, 성경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교훈을 그대로 믿고 지키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일어나 이 시대의 잘못된 풍조들을 분별하고 배격하고 좌우로 치우침 없이 신앙의 바르고 선한 옛길을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는 본서가 오늘날 기독교계를 분별하고 바른 신앙의 옛길을 지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참고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제목 차례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칼 바르트(Karl Barth)
씨 에취 다드(C. H. Dodd)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불트만(Rudolf Bultmann)
틸리히(Paul Tillich)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조향록 목사
허 혁 교수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김경수 목사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67년 신앙고백
케이스맨 목사 사건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로버트 슐러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한 길 이상인가?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WCC의 과격 단체 지원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전국 기도의 날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미국 기독교회들 연합
여행 길을 위한 초청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잘못된 일치운동
장로교 연합예배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3. 교회의 윤리적 부패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낙태/ 안락사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입장
미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낙태를 허용함
낙태에 대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입장
프린스톤 대학의 생명 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
낙태는 매우 크고 심각한 현대적 죄악
동성애
[교회 일반]
세계교회협의회(WCC)
미국 교회 협의회(NCC)
동성애 활동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회협의회 회장이 됨
미국 콜로라도 교회협의회와 동성애 교단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순결 규정에 대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
동성애에 대한 소수파 보고서 채택
동성애자 제인 스파(Jane Spahr)에게 시상함
동북대회가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함
총회재판국이 동성애자 ‘결합식’ 주례 및 동성애자 목사후보생 인정
동성애 금지조항 통과
동성 결합식을 허용함
미국 장로교인들이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려함
미 장로교의 자유주의 총회장
장로교 목사가 동성애 결혼을 주례함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동성애에 대한 빅터 퍼니쉬(Victor Paul Furnish)의 의문
1982년의 동성애에 대한 보고서
1995년, 파운드리 감리교회의 공개토론회
지미 크리치 목사와 그 옹호자들
동성애 옹호 목사들
미 연합감리교회의 내분
동성결합식을 집례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감리교 목사들이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미 연합감리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반대함
동성 결합 예식 인도로 인한 감리교회 내의 고소 사건
연합감리교회 목사가 성 전환 수술을 받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보수적 결정
[미국 감독교회(ECA)=성공회]
1987년, 동성애 결혼을 인정한 교구들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동성애관
미국 감독교인들의 동성애관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감독교회 지도자들의 동성연애 옹호 입장
죤 스퐁(John Shelby Spong) 감독
동성애자를 수석 주교로 임명함
미 감독교회 동성애 주교 임명 논란
동성애자인 성공회 주교가 선출됨
동성애자 주교 서품식 거행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1972년, 최초로 동성애자에게 안수함
동성애자를 목사로 허용함
폴 쉐리와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의 동등권을 지지함
총회장 폴 쉐리의 목회서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동성애 지지자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미국 루터교회, 동성애 용납
[미국침례교회(ABC)]
동성애 목사 내디안 비숍
동성애적 교회들을 출교
미국 침례교회의 동성애 ‘교회들’
[하버드 대학]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
신학교수 피터 고움즈(Peter Gomes)의 동성애 견해
동성연애 교수들
[미국의 기타 교회들]
미국 형제교회의 최초의 동성애자 안수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의 동성애 지지 대표자
미국 남침례교회 머서대학교의 폴 듀크(Paul Duke) 교수
[캐나다 교회들]
1988년, 동성애 목사 안수를 합법화함
동성애 목사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안수함
1992년,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한 대회들
캐나다에서 동성 결혼식이 합법적으로 행해짐
캐나다 성공회 동성애 승인
뱅쿠버 교구는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영국교회(성공회)]
성공회의 보수적 결정
영국 성공회의 수장의 윤리관의 문제
영국교회의 소요(騷擾)
동성애와 영국교회
동성애자가 영국교회의 주교로 임직함
[기타 영국과 호주의 교회들]
영국 연합개혁교회는 동성애 목사를 허용함
남 호주 연합교회는 동성애자를 지도적 직위에 허용함
호주연합교회의 동성애 용납
[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 신학회(ETS)와 동성애자 행크스
친(親)동성애적 신복음주의자들?
친(親)동성애주의자 스미즈
루이스 스미즈(Lewis Smedes)의 동성애관
페기 캄폴로(Peggy Campolo)는 ‘동성애’를 긍정함
동성애에 대한 제리 팔웰의 태도
[기타]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동성애에 대해 호의를 가지기를 원함
YWCA의 여권주의적 동성애 지도자
가정을 파괴하려는 동성애자들의 계획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문제
1994년, 예장 통합측의 여성 안수안 통과
남녀평등주의
미국 교회에 여자 목사들의 증가
‘중성’(中性) 성경 번역에 대해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여성안수 반대를 비평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여성 안수 30주년을 기념함
미국 아프리카 감독교회(AMEC)는 여성 주교를 선출
윌로우 크리크 교회와 여자 목사들
예일 신학대학원의 여성신학
조용기 목사는 여자 목사를 옹호함
예성 교단 여성안수 통과
예성, 여목사 안수 허용
기성, 여성안수 압도적 통과
현대기독교음악(CCM)
교회 음악에 대한 릭 워런의 견해
크리스웰 목사 교회의 춤추는 록 연주회
세속적 음악
남침례교에서의 록 음악
남침례교단의 신년 록 댄스 청년 축제
현대기독교음악(CCM)은 어디로?
예배와 음악의 혁명?
현대 기독교 음악이 점점 유행함
세상이 교회 음악을 지배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복음성가의 영예의 전당에 앉혀짐
상업적 현대 음악
현대기독교음악은 신복음주의로 이끈다
현대기독교음악은 세속 음악에서 기원함
예배 음악이 중요하지 않는가?
‘거룩한 힙팝(Hip-Hop) 음악?’
열린 예배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참된 예배
하이벨즈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워십 댄스’에 대해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릭 워런의 장사광(狂)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적 풍조
릭 워런의 실용주의
극장 교회들
기타
제자 훈련이 성경적 목회 방식인가?
그리스도인의 전쟁관
4. 은사운동
베니 힌(Benny Hinn)
베니 힌의 저주와 축복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함
몇 가지 예언들
큰 사기꾼
신유센터 건립연기
은사주의적 혼란
기타 은사운동
펄시 콜레는 거짓말쟁이?
릭 조이너(Rick Joyner)
한 은사주의자의 고백
은사주의자들의 허황한 금 기적 주장들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쉽의 그렉 로리(Greg Laurie)
은사주의자 죠이스 마이어
은사주의 설교자 로버트 틸톤
은사주의자 하워드-브라운은 딸을 치료할 수 없었음
빈야드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에 대한 한 내부인의 보도
브라운스빌 ‘부흥’과 부유한 설교자들
은사주의적인 펜사콜라 건물이 불탐
알파코스(Alpha Course)
‘알파 코스’를 조심하라
천주교는 알파 코스를 좋아함
알파 코스에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대치함
천주교회는 알파 코스를 지지함
알파 코스의 위험스런 경향들
알파 코스가 선술집에서 모임
알파 코스가 천주교와 더 가까워짐
알파 코스의 주된 목표는 ‘초자연적 능력’을 받는 것
프로미스 키퍼스
‘프로미스 키퍼스’는 은사주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임
프로미스 커퍼스 운동의 한국 본부
프로미스 키퍼스가 리버티 대학교에서 모임
앤드류 러프트의 지적들
은사운동과 연합운동
은사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함
천주교회의 은사운동
성령과 세계전도 북미 대회에서의 한 예언
거대한 수의 천주교 은사주의자들
교황이 은사주의적 갱신을 환영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복음주의와 은사운동
‘만국을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the Nations) 선교회
대학생 선교회(CCC)와 은사주의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함께 사역함
빌 브라잇과 베니 힌
E. V. 힐(Hill)이 베니 힌과 함께 연사로 섬
청년 지도자 대회 강사들
R. 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미국 NAE의 은사주의 회장
NAE의 회장 테드 해가드
켄달은 은사주의의 길로 달려감
죤 해기의 은사주의적 사상
한국의 은사운동
조용기 목사를 인정하는 목사들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정체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통합측 목사들, 레마 선교회에 관여
잘못된 신비주의 경계해야
조용기 목사의 종교다원주의적 발언
방언과 병고침에 대한 이의(異議)
도날드 버딕의 이의(異議)
언어학자들의 이의(異議)
인위적 방언훈련의 예
악령도 병을 고친다는 쿠르트 코흐의 진술
5.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는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그레이엄은 교황을 ‘금세기의 인물’이라고 함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양에게 경고하지 않음
[빌 브라잇]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용납함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빌 브라잇과 천주교인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F. F. 브루스가 ‘복음주의자’인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단체들/ 기관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신임 회장 케빈 매노이아의 입장
은사주의와 천주교회를 포용하기를 원함
회장이 포용주의적임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교회를 용납함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NAE가 로버트 슐러를 연사로 세움
로버트 슐러와 NAE에 대해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타협적 태도
C. S. 루이스를 칭송함
[기독학생회(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자유주의 교단의 목사를 강사로 세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한기총’의 분별력?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4년의 연합사업 계획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
신년 하례회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한목협’ 형성 움직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한목협, 3대 개혁과제 천명
한목협은 어디로?
[기타 사례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학교들
[풀러신학교]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에 포함함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마가렛 서스터가 안식교 세미나에서 설교함
풀러신학교의 문제들
[달라스 신학교]
자유주의자 브루스 메츠거가 강연함
위클립 성경번역회와 협력함
달라스 신학교의 신복음주의적 연관
달라스 신학교 대럴 보크 교수의 잘못된 사상
[리버티 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포용적 행보
[베델 신학교]
베델 신학교 그레고리 보이드의 열린 신관(神觀)
[비손 신학부]
비손 신학부의 에큐메니칼 광태(狂態)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본래의 입장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칼빈대학]
칼빈대학의 변질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개교 15주년 찬양축제
합동신학교가 신대원 학생 대표자협에 참여
교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박형룡 신학의 의의
예장 통합측과 연합예배를 드림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니?
예장 통합과 가까와짐
예장 통합과의 연합의 서곡
예장 통합과의 교류 증진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예장 합동 총회장의 통합, 기장과의 교제
합동, 통합, 기장의 비성경적 강단 교류
한국교회도 배도에 동승할 것인가?
전북과 목포의 교회연합운동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의 강단 교류가 넓어짐
고신의 이성구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파문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미국 남침례교(SBC)]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그 외의 문제들
[잘못된 사상들의 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하는 자들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장로교회
[선교와 사회사업에 대한 생각]
복음주의자들의 ‘넓어진 선교 개념’
RES의 폴 슈로텐보어의 선교 개념
미국 NAE 인사의 자유주의적 ‘전도’ 개념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인류에의 봉사가 예배인가?
[천주교회에 대한 생각]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교황 비디오 광고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교황 칭송자, 반 임페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척 콜슨과 천주교인들
촬스 콜슨과 천주교인들
척 콜슨(Chuck Colson)을 후원치 말아야 할 이유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의 혼란
복음주의자들의 천주교회관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의 천주교회관
톨키엔, C. S. 루이스, 천주교회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신복음주의에 대한 평가
박형룡의 비평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극단적 중립
신복음주의의 평가
6.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개념
커솝 레이크의 정의
케넷 라투렛의 정의
죠지 마스든의 정의
박형룡 박사의 정의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신조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의 선언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CCC)의 선언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중립주의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근본주의의 지도력
성경적 근본주의
근본주의의 필요성, 기초, 요소, 임무
근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잘못된 관용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순결을 희생한 평화
관용이 타협이 될 때
이단과 배교(背敎)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속임: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배교의 길
옛 복음과 새 복음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극단적 중립
오류는 지적되어야
침묵의 죄
현대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가?
오류를 취급하기를 지체치 말라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진리를 위해 싸우라
공적인 오류는 공적으로 교정되어야 함
인기 있는 저자들의 에큐메니칼 정신
오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전투성과 분리
감리교회의 보수주의자들
공적으로 타협하는 형제들로부터의 분리
다리들을 불태우고 벽들을 쌓기
거대함이 복 받은 표시는 아님
스펄젼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가?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의 한 결의문
편의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자유주의 교회나 천주교회를 떠나야
성경적 분리
‘신앙이 건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전투적 근본주의자
7. 기타
천주교회
[반개신교적]
교황이 개신교에 대한 전쟁을 촉구함
천주교회의 유일성 자주장(自主張)
죤 매카더의 천주교회관
[마리아 숭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숭배
마리아에게 바쳐진 교황
마리아와 카톨릭 신자들
교황은 ‘전체 교회’를 마리아에게 맡김
[이방 종교들에 대한 태도]
교황은 회교도들이 같은 신을 섬긴다고 말함
교황이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에 입맞춤
김수환 추기경이 고유제에서 절함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교황의 아싯시 평화 기도회
[기타 교리들]
천주교회는 여전히 교황의 권위를 주장함
천주교회 교황의 구원관
가장 위대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의 불신앙
교황은 유신적 진화론을 받아들임
교황은 지옥이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함
지옥은 장소가 아닌가?
교황은 거짓 교사들과 그 교훈들을 포용함
[윤리적 문제들]
동성애
천주교회는 성 문제 사건으로 10억 달러를 씀
천주교 성직자의 절반이 ‘동성연애자’이다?
천주교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매우 높다
천주교는 신부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숨김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천주교회 대주교가 인정함
폭력적 동성연애자들
수만명의 수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는가?
천주교 신부들의 동성애 경향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테레사 수녀와 선행
[천주교 세계]
이태리의 천주교인들은 마술과 신앙을 혼합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이단종파들/ 이방종교들
이단종파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함
[안식교]
안식교가 엘렌 화이트를 재확인함
[몰몬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몰몬교 제국
몰몬경은 사기(詐欺)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지방교회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이단 및 사이비 종파들]
예장 합동측 총회(초창기부터)의 결의 연도 및 내용
예장 통합측 총회의 결의 연도 및 내용
[통일교]
통일교 활동, 관련 상품 조심
통일교 단체, 기업 및 상품 조심!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안상홍 증인회에 대하여
교주 안상홍에 대한 잘못된 신앙
안식일과 유월절 교리에 대하여
[구원파]
구원파 박옥수 목사의 오류
[뉴에이지 운동]
뉴에지 운동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거짓 종교
[종교연합]
종교연합이 오고 있다!
종교연합 발기인 헌장이 서명됨
윤리 문제, 질병, 세속 문화
[술/ 담배/ 마약]
대학생의 살해범
술독에 빠진 대학생들
술, 마약,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
[낙태]
피임약 RU-486은 ‘아기 독약’임
낙태는 흑인들 가운데서 주된 사망의 원인
낙태약 RU-486은 산모에도 위험함
[안락사(安樂死)]
화란의 안락사
화란에서 아프지 말라
화란은 안락사를 더 완화함
안락사: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인간 복제]
인간 복제를 반대하라
인간 복제술은 살인을 포함함
[음란]
청소년들의 성 의식 문제
매매춘 24조원의 나라
청소년 성매매 위험 수위
[음란물]
피해자 없는 범죄인가?
제목 차례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칼 바르트(Karl Barth)
씨 에취 다드(C. H. Dodd)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불트만(Rudolf Bultmann)
틸리히(Paul Tillich)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조향록 목사
허 혁 교수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김경수 목사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67년 신앙고백
케이스맨 목사 사건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로버트 슐러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한 길 이상인가?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WCC의 과격 단체 지원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전국 기도의 날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미국 기독교회들 연합
여행 길을 위한 초청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잘못된 일치운동
장로교 연합예배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3. 교회의 윤리적 부패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낙태/ 안락사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입장
미 연합그리스도의 교회는 낙태를 허용함
낙태에 대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입장
프린스톤 대학의 생명 윤리학 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
낙태는 매우 크고 심각한 현대적 죄악
동성애
[교회 일반]
세계교회협의회(WCC)
미국 교회 협의회(NCC)
동성애 활동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회협의회 회장이 됨
미국 콜로라도 교회협의회와 동성애 교단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순결 규정에 대한 근소한 표 차이로 통과
동성애에 대한 소수파 보고서 채택
동성애자 제인 스파(Jane Spahr)에게 시상함
동북대회가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함
총회재판국이 동성애자 ‘결합식’ 주례 및 동성애자 목사후보생 인정
동성애 금지조항 통과
동성 결합식을 허용함
미국 장로교인들이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려함
미 장로교의 자유주의 총회장
장로교 목사가 동성애 결혼을 주례함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동성애에 대한 빅터 퍼니쉬(Victor Paul Furnish)의 의문
1982년의 동성애에 대한 보고서
1995년, 파운드리 감리교회의 공개토론회
지미 크리치 목사와 그 옹호자들
동성애 옹호 목사들
미 연합감리교회의 내분
동성결합식을 집례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한 자들
감리교 목사들이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미 연합감리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반대함
동성 결합 예식 인도로 인한 감리교회 내의 고소 사건
연합감리교회 목사가 성 전환 수술을 받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보수적 결정
[미국 감독교회(ECA)=성공회]
1987년, 동성애 결혼을 인정한 교구들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동성애관
미국 감독교인들의 동성애관
감독교인들과 동성연애자들
감독교회 지도자들의 동성연애 옹호 입장
죤 스퐁(John Shelby Spong) 감독
동성애자를 수석 주교로 임명함
미 감독교회 동성애 주교 임명 논란
동성애자인 성공회 주교가 선출됨
동성애자 주교 서품식 거행
[미국 연합그리스도의 교회(UCC)]
1972년, 최초로 동성애자에게 안수함
동성애자를 목사로 허용함
폴 쉐리와 지도자들은 동성애자들의 동등권을 지지함
총회장 폴 쉐리의 목회서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동성애 지지자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배교적 증거들
미국 루터교회, 동성애 용납
[미국침례교회(ABC)]
동성애 목사 내디안 비숍
동성애적 교회들을 출교
미국 침례교회의 동성애 ‘교회들’
[하버드 대학]
동성애 목사 피터 고움즈(Peter Gomes)
신학교수 피터 고움즈(Peter Gomes)의 동성애 견해
동성연애 교수들
[미국의 기타 교회들]
미국 형제교회의 최초의 동성애자 안수
미국 그리스도의 제자들 교회의 동성애 지지 대표자
미국 남침례교회 머서대학교의 폴 듀크(Paul Duke) 교수
[캐나다 교회들]
1988년, 동성애 목사 안수를 합법화함
동성애 목사 팀 스티븐슨(Tim Stevenson)을 안수함
1992년, 동성애자 결합식을 허용한 대회들
캐나다에서 동성 결혼식이 합법적으로 행해짐
캐나다 성공회 동성애 승인
뱅쿠버 교구는 동성애 결합을 축복함
[영국교회(성공회)]
성공회의 보수적 결정
영국 성공회의 수장의 윤리관의 문제
영국교회의 소요(騷擾)
동성애와 영국교회
동성애자가 영국교회의 주교로 임직함
[기타 영국과 호주의 교회들]
영국 연합개혁교회는 동성애 목사를 허용함
남 호주 연합교회는 동성애자를 지도적 직위에 허용함
호주연합교회의 동성애 용납
[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 신학회(ETS)와 동성애자 행크스
친(親)동성애적 신복음주의자들?
친(親)동성애주의자 스미즈
루이스 스미즈(Lewis Smedes)의 동성애관
페기 캄폴로(Peggy Campolo)는 ‘동성애’를 긍정함
동성애에 대한 제리 팔웰의 태도
[기타]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동성애에 대해 호의를 가지기를 원함
YWCA의 여권주의적 동성애 지도자
가정을 파괴하려는 동성애자들의 계획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문제
1994년, 예장 통합측의 여성 안수안 통과
남녀평등주의
미국 교회에 여자 목사들의 증가
‘중성’(中性) 성경 번역에 대해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여성안수 반대를 비평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여성 안수 30주년을 기념함
미국 아프리카 감독교회(AMEC)는 여성 주교를 선출
윌로우 크리크 교회와 여자 목사들
예일 신학대학원의 여성신학
조용기 목사는 여자 목사를 옹호함
예성 교단 여성안수 통과
예성, 여목사 안수 허용
기성, 여성안수 압도적 통과
현대기독교음악(CCM)
교회 음악에 대한 릭 워런의 견해
크리스웰 목사 교회의 춤추는 록 연주회
세속적 음악
남침례교에서의 록 음악
남침례교단의 신년 록 댄스 청년 축제
현대기독교음악(CCM)은 어디로?
예배와 음악의 혁명?
현대 기독교 음악이 점점 유행함
세상이 교회 음악을 지배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복음성가의 영예의 전당에 앉혀짐
상업적 현대 음악
현대기독교음악은 신복음주의로 이끈다
현대기독교음악은 세속 음악에서 기원함
예배 음악이 중요하지 않는가?
‘거룩한 힙팝(Hip-Hop) 음악?’
열린 예배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참된 예배
하이벨즈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워십 댄스’에 대해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릭 워런의 장사광(狂)
현대 교인들은 오락을 구함
교회의 상업적 경영 방식(Marketing)
교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적 풍조
릭 워런의 실용주의
극장 교회들
기타
제자 훈련이 성경적 목회 방식인가?
그리스도인의 전쟁관
4. 은사운동
베니 힌(Benny Hinn)
베니 힌의 저주와 축복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함
몇 가지 예언들
큰 사기꾼
신유센터 건립연기
은사주의적 혼란
기타 은사운동
펄시 콜레는 거짓말쟁이?
릭 조이너(Rick Joyner)
한 은사주의자의 고백
은사주의자들의 허황한 금 기적 주장들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쉽의 그렉 로리(Greg Laurie)
은사주의자 죠이스 마이어
은사주의 설교자 로버트 틸톤
은사주의자 하워드-브라운은 딸을 치료할 수 없었음
빈야드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운동
브라운스빌의 ‘부흥’에 대한 한 내부인의 보도
브라운스빌 ‘부흥’과 부유한 설교자들
은사주의적인 펜사콜라 건물이 불탐
알파코스(Alpha Course)
‘알파 코스’를 조심하라
천주교는 알파 코스를 좋아함
알파 코스에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대치함
천주교회는 알파 코스를 지지함
알파 코스의 위험스런 경향들
알파 코스가 선술집에서 모임
알파 코스가 천주교와 더 가까워짐
알파 코스의 주된 목표는 ‘초자연적 능력’을 받는 것
프로미스 키퍼스
‘프로미스 키퍼스’는 은사주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임
프로미스 커퍼스 운동의 한국 본부
프로미스 키퍼스가 리버티 대학교에서 모임
앤드류 러프트의 지적들
은사운동과 연합운동
은사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여함
천주교회의 은사운동
성령과 세계전도 북미 대회에서의 한 예언
거대한 수의 천주교 은사주의자들
교황이 은사주의적 갱신을 환영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복음주의와 은사운동
‘만국을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the Nations) 선교회
대학생 선교회(CCC)와 은사주의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함께 사역함
빌 브라잇과 베니 힌
E. V. 힐(Hill)이 베니 힌과 함께 연사로 섬
청년 지도자 대회 강사들
R. T. 켄달이 ‘토론토의 복된 체험’을 받아들임
미국 NAE의 은사주의 회장
NAE의 회장 테드 해가드
켄달은 은사주의의 길로 달려감
죤 해기의 은사주의적 사상
한국의 은사운동
조용기 목사를 인정하는 목사들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정체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통합측 목사들, 레마 선교회에 관여
잘못된 신비주의 경계해야
조용기 목사의 종교다원주의적 발언
방언과 병고침에 대한 이의(異議)
도날드 버딕의 이의(異議)
언어학자들의 이의(異議)
인위적 방언훈련의 예
악령도 병을 고친다는 쿠르트 코흐의 진술
5.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는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대회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그레이엄은 교황을 ‘금세기의 인물’이라고 함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양에게 경고하지 않음
[빌 브라잇]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용납함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빌 브라잇과 천주교인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F. F. 브루스가 ‘복음주의자’인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단체들/ 기관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신임 회장 케빈 매노이아의 입장
은사주의와 천주교회를 포용하기를 원함
회장이 포용주의적임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교회를 용납함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NAE가 로버트 슐러를 연사로 세움
로버트 슐러와 NAE에 대해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타협적 태도
C. S. 루이스를 칭송함
[기독학생회(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자유주의 교단의 목사를 강사로 세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한기총’의 분별력?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4년의 연합사업 계획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
신년 하례회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한목협’ 형성 움직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한목협, 3대 개혁과제 천명
한목협은 어디로?
[기타 사례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학교들
[풀러신학교]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에 포함함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마가렛 서스터가 안식교 세미나에서 설교함
풀러신학교의 문제들
[달라스 신학교]
자유주의자 브루스 메츠거가 강연함
위클립 성경번역회와 협력함
달라스 신학교의 신복음주의적 연관
달라스 신학교 대럴 보크 교수의 잘못된 사상
[리버티 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포용적 행보
[베델 신학교]
베델 신학교 그레고리 보이드의 열린 신관(神觀)
[비손 신학부]
비손 신학부의 에큐메니칼 광태(狂態)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본래의 입장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칼빈대학]
칼빈대학의 변질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개교 15주년 찬양축제
합동신학교가 신대원 학생 대표자협에 참여
교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박형룡 신학의 의의
예장 통합측과 연합예배를 드림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함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니?
예장 통합과 가까와짐
예장 통합과의 연합의 서곡
예장 통합과의 교류 증진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예장 합동 총회장의 통합, 기장과의 교제
합동, 통합, 기장의 비성경적 강단 교류
한국교회도 배도에 동승할 것인가?
전북과 목포의 교회연합운동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의 강단 교류가 넓어짐
고신의 이성구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파문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미국 남침례교(SBC)]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그 외의 문제들
[잘못된 사상들의 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하는 자들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장로교회
[선교와 사회사업에 대한 생각]
복음주의자들의 ‘넓어진 선교 개념’
RES의 폴 슈로텐보어의 선교 개념
미국 NAE 인사의 자유주의적 ‘전도’ 개념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인류에의 봉사가 예배인가?
[천주교회에 대한 생각]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교황 비디오 광고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교황 칭송자, 반 임페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척 콜슨과 천주교인들
촬스 콜슨과 천주교인들
척 콜슨(Chuck Colson)을 후원치 말아야 할 이유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회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의 혼란
복음주의자들의 천주교회관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의 천주교회관
톨키엔, C. S. 루이스, 천주교회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신복음주의에 대한 평가
박형룡의 비평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극단적 중립
신복음주의의 평가
6.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개념
커솝 레이크의 정의
케넷 라투렛의 정의
죠지 마스든의 정의
박형룡 박사의 정의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신조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의 선언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CCC)의 선언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중립주의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근본주의의 지도력
성경적 근본주의
근본주의의 필요성, 기초, 요소, 임무
근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잘못된 관용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순결을 희생한 평화
관용이 타협이 될 때
이단과 배교(背敎)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속임: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배교의 길
옛 복음과 새 복음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극단적 중립
오류는 지적되어야
침묵의 죄
현대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가?
오류를 취급하기를 지체치 말라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진리를 위해 싸우라
공적인 오류는 공적으로 교정되어야 함
인기 있는 저자들의 에큐메니칼 정신
오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전투성과 분리
감리교회의 보수주의자들
공적으로 타협하는 형제들로부터의 분리
다리들을 불태우고 벽들을 쌓기
거대함이 복 받은 표시는 아님
스펄젼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가?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의 한 결의문
편의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자유주의 교회나 천주교회를 떠나야
성경적 분리
‘신앙이 건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전투적 근본주의자
7. 기타
천주교회
[반개신교적]
교황이 개신교에 대한 전쟁을 촉구함
천주교회의 유일성 자주장(自主張)
죤 매카더의 천주교회관
[마리아 숭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숭배
마리아에게 바쳐진 교황
마리아와 카톨릭 신자들
교황은 ‘전체 교회’를 마리아에게 맡김
[이방 종교들에 대한 태도]
교황은 회교도들이 같은 신을 섬긴다고 말함
교황이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에 입맞춤
김수환 추기경이 고유제에서 절함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교황의 아싯시 평화 기도회
[기타 교리들]
천주교회는 여전히 교황의 권위를 주장함
천주교회 교황의 구원관
가장 위대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의 불신앙
교황은 유신적 진화론을 받아들임
교황은 지옥이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함
지옥은 장소가 아닌가?
교황은 거짓 교사들과 그 교훈들을 포용함
[윤리적 문제들]
동성애
천주교회는 성 문제 사건으로 10억 달러를 씀
천주교 성직자의 절반이 ‘동성연애자’이다?
천주교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매우 높다
천주교는 신부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숨김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천주교회 대주교가 인정함
폭력적 동성연애자들
수만명의 수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는가?
천주교 신부들의 동성애 경향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테레사 수녀와 선행
[천주교 세계]
이태리의 천주교인들은 마술과 신앙을 혼합함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이단종파들/ 이방종교들
이단종파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함
[안식교]
안식교가 엘렌 화이트를 재확인함
[몰몬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몰몬교 제국
몰몬경은 사기(詐欺)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지방교회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이단 및 사이비 종파들]
예장 합동측 총회(초창기부터)의 결의 연도 및 내용
예장 통합측 총회의 결의 연도 및 내용
[통일교]
통일교 활동, 관련 상품 조심
통일교 단체, 기업 및 상품 조심!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안상홍 증인회에 대하여
교주 안상홍에 대한 잘못된 신앙
안식일과 유월절 교리에 대하여
[구원파]
구원파 박옥수 목사의 오류
[뉴에이지 운동]
뉴에지 운동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거짓 종교
[종교연합]
종교연합이 오고 있다!
종교연합 발기인 헌장이 서명됨
윤리 문제, 질병, 세속 문화
[술/ 담배/ 마약]
대학생의 살해범
술독에 빠진 대학생들
술, 마약, 담배
흡연으로 인한 사망
[낙태]
피임약 RU-486은 ‘아기 독약’임
낙태는 흑인들 가운데서 주된 사망의 원인
낙태약 RU-486은 산모에도 위험함
[안락사(安樂死)]
화란의 안락사
화란에서 아프지 말라
화란은 안락사를 더 완화함
안락사: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인간 복제]
인간 복제를 반대하라
인간 복제술은 살인을 포함함
[음란]
청소년들의 성 의식 문제
매매춘 24조원의 나라
청소년 성매매 위험 수위
[음란물]
피해자 없는 범죄인가?
인터넷 음란물이 심각함
인터넷 음란물 문제
한국어 유해사이트 세계 2위
화란이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곳인가?
외설물이 현대 사회의 주된 위협이다
좋은 질문들
음란사이트 아르바이트 성행
번창하는 외설 산업
현대의 음란 문화
[동성애]
캐나다, 동성애 배우자 인정
캐나다는 동성애자들을 가족 단위로 확정함
동성애에 대한 큰 거짓말
동성애가 학교에서 가르쳐짐
화란에서의 최초의 동성 '결혼식'
동성애 관계의 평균 지속기간
미국의 동성애 경향
동성애의 사실들
[도박]
건강에 해롭다
도박은 자살과 이혼과 가난의 원인임
[질병]
에이즈(AIDS, 후천적 면역결핍증)는 여전히 치명적임
에이즈(AIDS)로 인한 사망자수
에이즈 전염병이 아프리카 대륙을 강타함
아프리카의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
에이즈는 현대적 재앙
아시아의 에이즈 상황
[세속음악]
록 콘서트 폭력
[텔레비젼]
텔레비젼의 중독적인 힘
공산주의/ 독재정권
공산주의의 살인 통계
소련 비밀경찰(KGB)과 세계교회협의회
[북한]
굶주리는 군사 대국인 북한
북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자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
황장엽씨의 비장한 충고
북한 김정일의 진실
북한은 위험한 국가이다
북한의 테러 행위들
김정일 제거 전략
6·25 남침 확실한 증거 많다
[중국]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200개의 가정교회를 폐쇄시킴
공산 중국은 종교를 제한함
팅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기독교를 매도함
모택동은 역사상 가장 악한 집단 살인자
중국에서의 핍박
공산주의자들이 통제하는 중국 기독교 협의회
중국은 가정교회를 파괴함
[베트남]
베트남에서 핍박이 심각함
베트남의 기독교 탄압
[이라크]
이라크인들에 대한 한 여론조사
이라크 전쟁 1년 후의 변화
[박해와 전쟁]
콜럼비아에서의 박해
오늘날의 세계 기독교 박해 상황
테러 국가들에 의한 세균 전쟁
인도에서의 기독교 박해
한국의 정치 이념
한총련, 실체부터 공개하라
남북통일과 반공(反共)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자
조선일보를 때려잡자?
한미동맹의 붕괴?
한국, 적과 내통하며 동맹을 내쫓고 있다
애치슨 라인 재연?
민노당 '전력증강 없는 미군감축' 주장
북이 훈계하고 지시한 회의
북한 지원에 대한 이견(異見)
서해교전 유족이 조국을 떠나겠다는 이유
그 외의 주제들
[성경본문 문제]
킹제임스 영어 성경(KJV)이 무오(無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교회의 쇠퇴]
미국 교회의 쇠퇴
기독교가 서양에서 시듬
[시대적 사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가장 영향력 있었던' 기독교 지도자들?
포스트모더니티: 하나님 없는 생활
예수님 모독하는 것을 항거할 수 없는가?
[통계들]
한국의 개신교회 통계
일본의 교회 통계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들
슬픈 통계들
[과학]
우주 비행사들의 바른 고백
휴머니스트(인문주의) 선언의 진화(進化)
슈퍼 컴퓨터
[지진과 기근]
1988년-1999년 세계의 대지진과 사망/실종자수
30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
[덧 없는 생명]
한 건강식품업체 창업자 휴즈의 44세 요절
[세계 연합]
유럽연합(EU)의 점진적 권력
유럽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감
1. 자유주의 신학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차이
자유주의 잡지인 크리스챤 센츄리 1924년 1월 3일자 사설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매우 인상적이게 말했다:
근본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요, 현대주의에 의한 기독교는 다른 한 종교이다.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는 오는 세대들을 위해 우리 세대에 의해 아마 해결될 문제이다. . . . 근본주의자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요, 현대주의자의 하나님은 다른 한 하나님이다. 근본주의자의 그리스도는 한 그리스도요, 현대주의자의 그리스도는 다른 한 그리스도이다. 근본주의의 성경은 한 성경이요, 현대주의의 성경은 다른 한 성경이다. 교회, 하나님의 나라, 만물의 종말--이것들이 근본주의자들에게와 현대주의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어느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인가, 어느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그리스도인가, 어느 성경이 기독교의 성경인가, 어느 교회, 어느 하나님의 나라, 어느 구원, 어느 종말이 기독교의 교회,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의 구원, 기독교의 종말인가? 미래가 말해 줄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통계들
1967년,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의 설문 조사
1967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해든은 미국의 10000명의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실제로 7441명이 대답해 왔다고 한다. 그 설문 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그것은 당시의 미국 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증거한다:
1) '귀하는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임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87%, 감독교회 성직자들의 95%, 연합 장로교회 성직자들의 82%, 미국 침례교회 성직자들의 67%, 미국 루터교회 성직자들의 77%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귀하는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 성직자들의 62%, 감독교회의 37%, 연합 장로교회의 47%,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4%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귀하는 예수의 처녀탄생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0%, 감독교회의 44%, 연합 장로교회의 49%, 미국 침례교회의 34%, 미국 루터교회의 19%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귀하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51%, 감독교회의 30%, 연합 장로교회의 35%,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3%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1976년,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의 신학석사 논문
미국 남침례교신학교 학생이었던 노엘 홀리필드는 1976년에 제출한 그의 신학석사(Th.M.) 논문에서 남침례교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적 상태를 알 수 있는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 제목은 "남침례교 신학교의 선정된 학생들 가운데서의 '기독교 정통성'의 정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이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남침례교신학교는 미국의 남침례교단 소속의 신학교이다. 그 교단은 세계에서 제일 큰 교단으로서 세계교회협의회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교적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교단이다. 그러나 홀리필드의 설문 조사는 미국 교회들의 배교가 남침례교회에까지도 미쳤음을 보인다:
M.Div. M.Div. Th.M.
1학년 3학년 & Ph.D.
-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는다. 74% 65% 63%
- 마귀의 실제적 존재는 확실하다. 66% 42% 37%
- 기적들이 성경의 증거대로 실제로 일어났음을 믿는다. 61% 40% 37%
-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은 확실하다. 66% 33% 32%
-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음은 확실하다. 59% 44% 22%
- 예수께서 신적인 하나님 아들임을 의심치 않는다. 87% 63% 63%
-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85% 60% 59%
-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다. 42% 33% 21%
- 죽음 너머의 삶이 있음은 확실하다. 89% 67% 53%
- 예수께서 어느날 실제로 땅에 돌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79% 56% 53%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보도
1984년 런던 주말 텔레비젼의 '크리도우(Credo, 신조)' 프로그램은 영국교회(성공회) 39명의 주교들 중 31명에게 질문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그것은 영국교회의 배교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 (11명), 하나님의 최고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19명).
② 신약성경의 기적들은 후대의 삽입이다(15명).
③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살아계신다"고 확신시켰던, 예수님 죽음 후의 '일련의 경험들'이다(9명).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1985년에 약 125명의 개신교와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말씀하시지 않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 중심 인물은 로버트 펑크인데, 그는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신약학자이며,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부 교수이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 웨스타 연구원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학자 협회인 성경문헌협회의 증경회장이기도 하다. 이 세미나의 결과, 1988년에는 예수의 비유들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빨강색, 분홍색, 회색, 검정색으로 예수의 비유들의 역사적 신빙성의 정도가 표시되었다. 또 1993년에는 오복음서: 예수가 참으로 말한 것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1994년 초까지 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 연구 혹은 신학이 얼마나 배교적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인다:
(1) 예수의 말씀들의 오직 20%만이 실제로 그의 말씀으로 생각되며, 요한
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 그에게 돌려진다.
(2) 주기도문도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3)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4)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5) 예수는 죽은 자들로부터 결코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
(6) 예수는 자신의 재림(再臨)을 약속하지 않았다.
(7) 성경에 묘사된 신화적 의미의 지옥은 없다.
(8) 예수는 독신이 아니셨고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으셨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계속)
1999년의 한 보도에 의하면, 로버트 펑크는 미국의 한 연합 그리스도 교회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경에서 예수의] 말들 중에 확실한 것은 20퍼센트도 안된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의 신성(神性)과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비유들과 재치 있는 말들은 역사적이다," "니케야 신조는 넌센스이며 수정할 가치가 없다," "고대 교회의 신조들은 상상의 산물들이다."
펑크는 그 모임에서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인 21개의 명제를 배부하였다:
(1) 물질 세계 바깥에는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다윈의 사상은 창조의 교리를 영원히 말살시켰다.
(3) 창세기 이야기의 비(非)문자적 해석은 원죄의 교리를 종결지었다.
(4) 신적인 기적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완전에 대한 모욕이다.
(5) 저 밖에 있는 신에게 말해지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기도는 명상이다.
(6)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7) 예수를 구속자(救贖者)라고 하는 것은 낡아빠진 생각이다.
(8) 예수의 처녀탄생은 현대 지성에 대한 모독이며 여성을 모욕하는 것이다.
(9) 속죄의 교리는 반(半)이성적이고 반(半)윤리적이다.
(10)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11) 모든 계시적 요소들은 기독교 주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12) 예수 자신은 기독교 신앙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예수의 비젼이 그를 대치해야 한다.
(13) 예수는 인간의 선함을 믿었다.
(14) 예수는 축제를 믿었다.
(15) 예수는 성적 성향으로 인한 차별을 포함한 사회적 차별들을 거부하였다.
(16) 하나님과 인류 사이에 중보자들은 없다.
(17) 예수는 예배 의식들을 믿지 않았다.
(18) 하나님의 나라는 끝 없는, 영구적 방랑의 여행이다.
(19) 다른 신화들이 그러하듯이, 성경의 정경(正經)은 시대에 맞추어 축소되 고 확장되어야 한다.
(20) 성경은 객관적 행동 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
(21) 예수의 비젼의 재구성은 항상 수정되어야 한다.
미국의 불신앙적인 목사들
캘버리 컨텐더지는 바나 연구회(Barna Research Group)의 보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바나 연구회의 새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개신교 목사들의 49퍼센트가 핵심적인 성경적 신념들을 거부한다. 바나(Barna)는 모두가 긍정할 수 있을 기본적 성경 교훈들의 최소 목록을 다음과 같이 작성했다. 즉
- 성경에 기초한 절대적인 도덕적 진리가 있다.
- 성경의 교훈은 정확하다.
-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
- 사탄은 실제로 존재한다.
-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다.
-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
-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해야 할 개인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두 교단들 중에서, 남침례교회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가장 많은 퍼센트(71%)의 목사들을 가지고 있고, 감리교회는 가장 적은 퍼센트(27%)를 가지고 있었다. 바나는 말하기를, 네 명의 남침례교 목사들 중의 한 사람이 성경 교훈을 진지하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망적이라고 말한다.
대표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단사상의 예들
하르낙(Adolf von Harnack)
하르낙은 기독교의 핵심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What Is Christianity?, pp. 21, 22).
그는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다"고 말했다(Ibid., p. 159).
칼 바르트(Karl Barth)
1.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자신은 심지어 그들의 직분에 있어서도, 심지어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역할에 있어서도, 심지어 그들의 증거를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우리와 같이 실제, 역사적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죄가 있고 그들의 말이나 기록에 있어서 잘못을 범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범했다(Church Dogmatics, I. ii. pp. 528, 529).
2.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 제작의 산물들이든지 아니든지 무슨 문제가 되는가[!](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65).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불가능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Ibid.).
진정한 역사 속에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이 동반하고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의무적이다(Church Dogmatics, III. i. p. 81).
우리는 아담 안에 있는 전체 진리가 위치한 앞뒤 문맥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자체로는 그것이 거짓이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관계된다는 사실에서만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Christ and Adam, pp. 54, 55).
3. 성경의 천지 창조 기록은 사가(saga)이다.
그것은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에서 오직 순수한 사가(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Church Dogmatics, III. i. p. 42).
[그는 사가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시적 묘사"라고 설명했다(Ibid., p. 81). 그것은 신화와 같은 개념이다.]
4. 아담의 타락은 사가(saga)이다.
그 첫번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존재하게 된 자로서 존재했다고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오직 사가(saga)일 뿐이다. . . . 그리고 타락, 즉 그 첫 사람의 타락이 발생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영역에서, 다시 말해 예언적으로 증거된 말씀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이었다(Ibid., IV, i, p. 508).
5.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은 신화이다.
우리의 세계가 예수 안에서 다른 세계에 의해 접촉될 때, 그것은 역사, 시간, 혹은 사물로서 직접 관찰될 수 있기를 그친다. . . . 그리스도로서, 즉 메시아로서의 예수는 역사의 종말이시다. 그리고 그는 오직 역설로서(키에르케골), 승리자로서(블룸하르트), 원시 역사로서(오베르베크)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 있는 지평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 지평을 수직적으로 위로부터 가로지르신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역사 안에서 오직 문제 혹은 신화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Ibid., pp. 29, 30).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을 분명히 긍정하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가 젊은 부인으로 불리우는가 아니면 처녀로 불리우는가 하는 옛 논쟁은 그 진정한 의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Church Dogmatics, IV. i. p. 5, footnote).
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확실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이 아니다(The Epistle to the Romans, p. 3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Church Dogmatics, IV. i. p. 335).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의] 부활의 역사는--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Ibid., pp. 335, 336).
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한 사건 즉 비록 그것이 역사 안에서의(in) 유일한 실제적 사건이지만 역사의(of) 한 실제적 사건이 아닌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들은--물론 그것이 그들의 확신을 파괴하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재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9. 보편 구원론적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p. 90).
하나님의 '예'[용납]는 선언되었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 . . 그것은 영원 전부터 그가 아들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인류에 대한 그의 '예'이었고 '예'이다(Ibid., IV. i. p. 356).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하여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가, 심지어 가장 쓸데 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이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The Humanity of God, p. 5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그 어떠한 종류의 제한을 가할 아무런 신학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의 신학적 의무는 그것[하나님이 인자하심]이 우리가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고 깨닫는 것이다(Ibid., p. 62).
10.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은 스캔달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다(죽은 자의 부활, 89쪽).
11. 성경은 윤리의 객관적 규범이 아니다.
사람은 자유의 은사(gift)에 내재한 명령에 따라 행동할 때 선을 행한다. 그는 그의 자유에 반대되는 법에 복종할 때 악을 행한다. . . . [그러나] 어떻게 인간의 자유가 인간의 행위에 대해 지침과 기준이 되는지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유인은 하나님의 가장 구체적인 명령에 복종한다. 왜냐하면 이 명령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가 권위적 형태를 취하고 인간이 직면하고 측정되는 바 그 명령이 확고하게 되기 때문이다("The Gift of Freedom: Foundation of Evangelical Ethics," The Humanity of God, p. 84).
선과 악의 문제는 결코 사람이 일련의 규범들로서의 하나님의 권위적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대답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선하고 악한 행위들의 법전, 선하고 악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잣대로서 사람에 의해 발견되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부과되지 않는다(Ibid., p. 85).
씨 에취 다드(C. H. Dodd)
1. 성경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바울이 했다는 설교들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나 다른 이들이 했다는 설교들은 사도행전 저자의 자유로운 작품일지 모른다는 것은 가능한 생각이다(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s, p. 17).
비록 우리는 아마 디모데전서를 진짜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지만(Ibid., p. 30).
요한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하나의 추가적 기록보다 하나의 해석, 즉 새로운 대중을 위한 하나의 해석을 의도했다(About the Gospels, p. 31).
그렇다면 그[가나의 기적]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더 깊은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더 깊은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 단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The Interpretation of the Fourth Gospel, p. 297).
2.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14).
문자적 의미에서 성경은 사람의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 . . 그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로마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바울이다. . . .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가 아니고, 성경의 저자들이 나누어 가진 그 생명의 조성자이시다(Ibid., p. 16).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self-subsistent)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objective)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Ibid., p. 289).
3.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한다.
성경 무오(無誤)에 대한 옛날 견해가 과학적 발견과 역사 비평학의 연속적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과정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다.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서 성경의 정확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성경 무오의 변호자들이 희망 없는 입장을 택했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벌써 분명했다. . . . 성경의 그 옛 교리적 견해는 과학과 역사 비평학의 입장에서 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신중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종교와 공중도덕에 위험물이 된다(Ibid., p. 13).
바울이 잘못이라고 나는 때때로 생각하고, 과감히 그렇게 말해 왔다, 비록 전체적으론 그가 말하는 바가 내가 보기에 충분히 참된 것 같지만(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p. xxxv).
4. 하나님의 형벌적 의의 속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을 인격의 가장 높은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면서 비(非)이성적인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일관하지 않다(Ibid., p. 24).
5. 아담은 신화적 인물이라고 한다.
비록 바울에게는 그가 실제적 인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나의 신화이다(Ibid., p. 79).
6.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누그러뜨림을 암시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이교적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The Romans, p. 55).
7. 보편 구원론적이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서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Ibid., p. 186).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내면적 필요성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The Authority of the Bible, p. 208).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1. 교의(敎義)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교의(敎義, dogma)는 기껏해야 언약 공동체의 공동 견해를 나타낸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93).
2. 기독교 진리 일반에 대해 회의적이다.
기독교 종교에서 참된 것은 어느 정도 임시적이고 표면적인 거짓을 포함하는 상징들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 . . . 우리는 거짓에 의해 진리를 가르친다(Beyond Tragedy, p. 3).
기독교는 원시종교적, 예술적 신화들과 상징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한 종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Ibid., p. 7).
성경의 상징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지성들이, 역사를 초월하고 성취하는 것[신]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II, p. 289).
3. 창조는 신화적 개념이다.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Beyond Tragedy, p. 7).
4. 아담의 타락은 신화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의 이야기는 원시적 신화이다. 현대 신학은 현대 문화가 그런 신앙을 종교의 개화반대론의 증거로 간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즐거이 타락 이야기를 부정했다(Ibid., p. 10).
타락의 개념은 동산, 과일, 그리고 뱀이라는 원시적 신화를 역사적으로 참된 사실로 간주하는 오류에 굴복한다. . . . 타락은 역사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어떤 구체적 인간의 행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행위들의 전제이다(Ibid., p. 11).
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불합리하다.
영원이라는 것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Ibid., p. 13).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Ibid., p. 14).
6.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신화이다.
사람들은 처녀탄생의 원시적 신화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바로 역사 너머를 가리키기 때문에 의미 있는 그것을 하나의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Ibid., p. 17).
'처녀탄생'과 같은 기적들은 후대에 삽입된 생각들이다(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p. 66).
7.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는 신학적 오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Beyond Tragedy, pp. 17, 18).
8. 영혼불멸에 대해 회의적이다.
영혼의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사상으로부터 온 유산에 불과하다(Ibid., p. 290).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 속인 교리이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Ibid., p. 21).
10.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
몸의 부활의 개념은 물론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Beyond Tragedy, p. 290).
불트만(Rudolf Bultmann)
1. 성경은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책이다.
비록 그것이 요한의 예수님 세례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막 1:9-11)는 하나의 전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26).
예수께서 어떤 종류의 메시아인지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종류의 메시아를 믿는지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는 시험받으신 이야기(막 1:12 이하, 혹은 마 4:1-11)는 전설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전설로 채색되었고, 수난 이야기도 상당히 전설로 덮여 있다(Ibid., I, p. 27).
첫눈에 우리는 [요한복음의] 서두를, 그 주제로 판단하여, 신화라고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신적 존재,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운명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The Gospel of John, p. 14).
요한복음 서두는, 혹은 그것의 자료는, 그노시스 신화의 언어로 말한다. . . . 그 복음서 저자는 기독교 전파와 신학을 위하여 이 신화를 사용한 첫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비록 그 자신이 로고스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을지라도 안트로포스(사람) 신화의 용어로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의미를 빈번히 해석함으로써, 요한보다 앞섰었다(Ibid., p. 28).
2.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은 그노시스 신화이다.
[요한복음 17:1-5의] 언어는 신화적이다. 아들의 소원은, 그의 지상의 존재로부터 한때 그의 선재 상태에서 가졌던 하늘의 영광 안으로 다시 올리움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그노시스 신화의 사상 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Ibid., p. 496).
3.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전설이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그들은[아주 초기 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고, 예수의 처녀탄생의 전설은, 바울에게 그러했듯이, 그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50).
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신화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그 후 역사적 인물 예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화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5.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은 전설이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그 이야기가 이방의 전설에서 취해져 예수께 돌려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그 이야기의 주제, 즉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은 디오니서스 전설의 전형적 주제이다(The Gospel of John, pp. 118, 119).
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증거들을 부정한다.
그러나, 후대의 헬라주의적 교회와는 달리, [아주 초대교회는] 지상의 예수를 (신화적)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하지 않았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50).
여하튼, 아주 초대교회는, 비록 예수를 주라고 불렀다 하더라도, 그를 예배하지는 않았다(Ibid., I, p. 51).
7.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신화적이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말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 . . 특히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그노시스적(Gnostic)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17).
8.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은 전설이다.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한 바 그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들이다(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 p. 45).
만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지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Hans Werner Bartsch, ed., Kerygma and Myth: A Theological Debate by Rudolf Bultmann and Ernst Lohmeyer, Julius Schnie-wind, Helmut Thielicke, and Austin Farrer, p. 42).
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여하튼,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와 같이 그를[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그가 세상의 심판자로서 구원과 저주를 내리시려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인자(人子)로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했다. . . . 요한에게는 예수의 부활, 오순절, 그리고 예수의 재림(파루시아)은 한 동일한 사건이며,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Jesus Christ and Mythology, pp. 16, 33).
10.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
종말론적 드라마의 개념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나라' 개념은 신화적이다(Ibid., p. 14).
틸리히(Paul Tillich)
1. 근본주의는 마귀적이다.
그들은 영원한 진리와 이 진리의 시간적(temporal) 표현을 혼동한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근본주의로 알려져 있는 유럽의 신학적 정통주의에서 명백하다. . . . 근본주의는 현재의 상황과 접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상황을 초월한 곳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이 아니고, 과거의 상황으로부터 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어떤 것을 무한하고 영원한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높인다. 이 점에서 근본주의는 마귀적 특성을 가진다(Systematic Theology, I, p. 3).
2. 기독교는 최종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기독교 자체는 최종적이지도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단지 그것이 증거하는 바가 최종적이고 보편적일 뿐이다. 기독교의 이 심오한 변증법을 잊어 버리고 교회적인 혹은 정통적인 자기 주장들로 기울어져서는 안된다. 그러한 자기 주장들에 대항하여, 소위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의 종교가 최종성이나 심지어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함에 있어서 옳다(Ibid., I, pp. 134, 135).
3. 특별 계시의 종결성을 부정한다.
예언 활동을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 . . 예언자적 비평과 약속은 교회의 전 역사에서, 특히 수도원 운동과 종교 개혁과 복음주의적 급진주의에서 활동적이다. 그것은, 조로아스터교와 어떤 헬라 신비종교와 이슬람교와 많은 작은 개혁 운동들에서와 같이, 기독교 밖의 종교적 혁명들과 협회들에서 활동적이다(Ibid., I, p. 141).
4. 성경의 영감을 부정한다.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기계적, 혹은 기타 모든 형태의 비무아경적(非無我境的) 영감 교리는 마귀적이다. . . . 영감이란 이성의 주체-객체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지식의 복합체에 아무것도 더해 주지 않는다(Ibid., I, p. 114).
성경 저자들의 영감이란 가능적으로 계시적인 사실들에 대한 그들의 수용적이며 창조적인 반응이다(Ibid., I, p. 35).
5.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 율법적으로 생각되고 작성되고 인봉된 기록, 그래서 그것에 근거해 우리가 어떤 주장들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기록이 아니다(Ibid., I, p. 35).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른다면, 신학적 혼동이 거의 불가피하다. 그러한 동일시로부터, 구수적(口受的) 영감 교리, 성경 본문을 취급함에 있어서의 부정직, 한 책의 무오성(無誤性)이라는 '일성론적'(一性論的, monophysitic) 교의 등과 같은 결과들이 나온다(Ibid., I, p. 158).
6. 정경의 개방을 주장한다.
정경(正經, canon)을 창조한 자는 바로 성령이시며, 영적인 모든 것들과 같이, 정경은 율법적으로 확정적 방식으로 고정될 수 없다. 정경의 부분적 개방은 기독교회의 영성(靈性)의 안전 장치이다(Ibid., I, p. 51).
7. 하나님은 존재하신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는 본질과 존재를 초월한 존재 자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를 부정하는 것이다(Ibid., I, p. 205).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질문될 수도, 대답될 수도 없다. . . .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무신론적이듯이 그것을 긍정하는 것도 그러하다(Ibid., I, p. 237).
8. 인격적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러한 가장 높은 존재에 대한 무신론의 반항은 정당하다. 그의 존재에 대한 아무 증거도 없고 그는 궁극적 관심의 주체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참여가 없이는 하나님이 아니다. '인격적 하나님'은 하나의 혼동을 주는 상징이다(Ibid., I, p. 245.).
9. 진노의 하나님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사랑과 병행하는 하나님의 어떤 감정이나, 섭리와 병행하는 어떤 행동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저항하는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망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랑의 활동의 정서적 상징이다(Ibid., I, p. 284).
정죄란 피조물이 자기가 택한 비존재(非存在)에로 내버려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Ibid.).
[하나님의 진노의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아니면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Ibid., II, p. 77).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의 죄책에 따라 계산된 특별한 형벌 행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는 그가 실존적 소외의 자멸적(自滅的) 결과들을 그대로 허용하는 행위일 뿐이다(Ibid., II, p. 174).
10.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상징들은 변증법적이다. 그것들은 삶의 변증법 즉 분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반영한다.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라는 진술은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가장 나쁜 왜곡이었다(Ibid., III, p. 284).
11. 창조를 부정한다.
창조 교리는 '옛날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 간의 관계의 기본적 묘사이다(Ibid., I, p. 252).
'창조의 목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피해야 할 애매 모호한 개념이다. 창조는 그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Ibid., I, p. 263).
12. 천사와 귀신을 신화라고 한다.
천사와 귀신의 세력들에 대한 교리의 진리는 선(善)의 초개인적 구조들과 악(惡)의 초개인적 구조들이 있다는 것이다. 천사들과 귀신들은 존재의 건설적인 그리고 파괴적인 세력들을 위한 신화적 명칭들이다(Ibid., II, p. 40).
13.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 혹은 기적을 부정한다.
기적들은 자연 과정에 대한 초자연적 간섭으로 해석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해석이 참되다면, 존재의 근거의 나타남은 존재의 구조를 파괴할 것이다. 종교적 이원론이 주장했듯이, 하나님은 자신 안에서 분열될 것이다(Ibid., I, p. 116).
섭리는 간섭이 아니다. . . . 그것은 한 추가적 요인, 즉 초자연주의에 의한 어떤 기적적인 물질적 혹은 정신적 간섭이 아니다(Ibid., I, p. 267).
14. 인류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신학은 분명하게 그리고 애매모호하지 않게, '타락'을 옛날에 일어난 한 사건 이야기로가 아니고 보편적으로 인간의 상황을 위한 한 상징으로 표현해야 한다(Ibid., II, p. 29).
15.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부조리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인 말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Ibid., II, p. 94). ['역설적'(paradoxical)이라는 말은 '일견 모순된 것 같으나 바른'이라는 뜻임.]
문자적 해석은 옛날에 그의 하늘 처소로부터 내려보내져 사람으로 변형된 한 초월적 존재를 상상함으로써 네번째 단계를 취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참되고 힘있는 상징이 한 불합리한 이야기가 되며, 그리스도는 하나의 반신(半神, a half-god),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독특한 존재가 된다(Ibid., II, p. 109).
16.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증거들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모든 역사적 지식과 같이, 이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고 가설적이다. 역사적 연구는 이 지식을 방법론적 회의주의에 복종시키고 또 본질적인 부분들 뿐만 아니라 각개의 부분들에서도 계속적인 변화에 복종시킨다(Ibid., II, p. 107).
17. 예수 그리스도는 오류를 가지셨다.
유한성은 오류로의 개방을 뜻하며, 오류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실존적 곤경에 참여하심에 속한다. 오류는, 우주에 대한 그의 고대적 개념, 사람들에 관한 그의 판단들, 역사적 순간에 대한 그의 해석, 그리고 그의 종말론적 상상에서 분명하다(Ibid., II, p. 131).
18.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를 부정한다.
['대리적 고난'이라는 용어]는 불행스런 용어이며 신학에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실존적 소외의 고난에 참여하지만, 그의 고난은 피조물의 고난을 위한 대체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고난도 사람의 고난을 위한 대체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고난은, 보편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여와 변형에 의해 피조물의 자멸을 극복하는 능력이다. 대리가 아니고 자유로운 참여가 신적 고난의 성격이다(Ibid., II, p. 176).
1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명료한 신화적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한 자의 십자가이다. . . .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실존적 소외의 죽음에 복종시켰던 자의 부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적인, 의문의 기적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 . .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Ibid., II, p. 153).
역사적 연구는, [부활의 상징에서] 그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아마 그럴 것이라는]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Ibid., II, p. 155).
사건과 상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하는 자신의 승리의 확실성이다. 역사적 확신이나 성경 권위의 수납이 이 확실성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넘어서는, 어떤 확실성도 없고, 단지 개연성--흔히 매우 낮고 때로는 높은 개연성--만이 있을 뿐이다(Ibid., II, p. 155).
20.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은] 부활이 표현하는 동일한 사건의 다른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우리가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공간적 상징 표현은 우스꽝스러운(absurd) 것이 될 것이다(Ibid., II, p. 162).
21. 영혼의 불멸을 부정한다.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플라톤의 교리일 가능성은 있을지라도 기독교적 교리는 아니다(Ibid., II, p. 66).
불멸성의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너머의 삶'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기 때문이다(Ibid., III, p. 409).
22. 영원한 심판을 부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원한 정죄'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이다. . . . 그러므로 '영원한 정죄'라는 용어는 신학 용어들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 . . 사람은 존재의 기반[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잘리워버리지 않으며, 심지어 정죄의 상태에서도 그러하다(Ibid., II, p. 78).
23. 천국과 지옥의 장소성을 부정한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들이지 장소들의 묘사가 아니다(Ibid., III, p. 418).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 종교의 시대는 끝났다.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는 것은, 오늘 우리를 위해, 기독교가 참으로 무엇인가, 혹은 그리스도가 참으로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이다. 신학적인 말이든지 경건한 말이든지 간에, 사람들이 모든 것을 말로 들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고, 종교 일반의 시대를 의미하는 내면성과 양심의 시대도 그러하다. 우리는 전적으로 비종교적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단순히 더 이상 종교적일 수 없다(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1967], p. 152).
2. 종교의 개념 자체를 반대한다.
여기에 기독교와 모든 종교들 간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사람의 종교성은 그를 세상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은 데오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절박한 상황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력(無力)하심과 고난을 향하게 눈을 돌리게 한다. 오직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만 도우실 수 있다. . . . 이것이 아마 우리의 '세속적 해석'을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Ibid., pp. 196, 197).
'종교적 행위'는 항상 부분적인 것이지만, '신앙'은 사람의 삶 전체에 관계하는, 전체적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종교로 부르시지 않고 삶으로 부르신다(Ibid., p. 199).
3.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비종교적(religionless) 해석을 옹호한다.
만일 종교가 오직 기독교의 옷이라면 . . . 비종교적 기독교란 무엇인가? 이런 식의 생각을 시작한 유일한 사람인 바르트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으나, 하나의 계시의 실증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결국 근본적으로 하나의 회복이다(Ibid., p. 153).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관해 종교 없이, 즉 시간적 제한성을 가지는 형이상학과 내면성 등의 전제 없이 말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관해 '세속적' 방식으로 말하는가?(Ibid., p. 153).
나는 네가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에 관한 불트만의 논문을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오늘날의 나의 견해는 대분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가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이 아니고, 그가 충분히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기적, 승천 등과 같은, 윈리상 하나님, 신앙 등의 개념들과 분리될 수 없는 '신화적' 개념들만이 아니고, '종교적' 개념들 전반이다. 너는 불트만이 상상하듯이 하나님과 기적을 분리시킬 수 없고, 그 둘을 다 '비종교적' 의미로 해석하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Ibid., p. 156).
나의 견해는, 신약성경이 보편적 진리의 신화적 옷이 아니고 이 신화들(부활 등)이 본질이므로 '신화적' 개념들을 포함하여 그 모든 내용이 보존되어야 하지만, 그 개념들이 종교를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Ibid., p. 181).
4. 기독교는 속죄적 종교가 아니다.
다른 동양 종교들과 달리, 구약의 신앙은 구속(救贖)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항상 구속의 종교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구약과 분리시키고 구속에 관한 신화들에 맞추어 그를 해석하는 기본적 오류가 아닌가?(Ibid., p. 185).
오늘날 구속은 무덤 너머의 더 좋은 세계에서 근심과 고통과 공포로부터의 구속,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속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참으로 복음서들에서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내용과 바울이 선포한 내용의 본질적 성격인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말해야 하겠다(Ibid., p. 186).
5. 성경 전반의 확실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 . . 이것에 대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고, 우리는 단순히 그것이 그러하다고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성경과 기독교의 신앙은 이러한 문제들에 의해 서거나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Ibid., p. 210).
6. 창조 사건을 부정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과학적으로 매우 천진 난만하게 표현된 고대의 세계 묘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자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식이 급속히 변화되는 것을 볼 때, 너무 조소하거나 자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지만, 의심할 것 없이 이 구절에서 성경 저자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기인하는 모든 제한성들을 노출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그가 말하는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진술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매우 나쁜 양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축자영감[글자 영감]의 관념이 그것을 피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저자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신하고 있다(Creation and Fall: A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Genesis 1-3, p. 26).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흙과 진흙으로 그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더욱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이 진흙으로 모양을 만드시고, 사람은 흙 한 줌으로 빚어지는 그릇같이 빚어진다는 표현들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람의 기원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줄 수 없다. 확실히,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것은 다른 어떤 창조 신화처럼 부적절하거나 혹은 의미 있을 뿐이다(Ibid., p. 44).
7. 사람의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피조물들로서 그리고 악의 목소리의 장소로서 뱀, 하와, 지식의 나무의 애매함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고 명확한 해석으로 미숙하게 부숴지게 해서는 안된다. . . . 성경의 목적은 악의 기원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고, 죄책으로서의 그리고 인간의 무한한 짐으로서의 그것의 성격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악의 기원에 관해 질문하는 것은 성경 저자의 마음과 거리가 멀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대답은 명백하거나 직접적일 수 없다(Ibid., p. 65).
8.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으로 설명한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예수의 이러한 존재에의 참여이다. . . .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는 가장 높으신 분,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으신 분--그것은 진정한 초월성이 아니다--께 대한 '종교적' 관계가 아니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는 예수의 존재에의 참여를 통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로서의 새로운 삶이다(Letters from Prison, p. 209).
9. 교회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할 때만 교회이다. 우선 그것은 그것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목사들은 오로지 그들의 회중들의 자원하는 헌금에 의하여 살거나, 가능하면 어떤 세속적 직업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지배함으로써가 아니고 돕고 섬김으로써 인간의 일상생활의 세속적 문제들에 참여해야 한다(Ibid., p. 211).
10. 하나님의 말씀은 생활의 절대 표준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확립된 규범들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각기 다른 상황마다 새롭고 다른 어떤 것이며, 이 이유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Ethics [1955], p. 161).
[하나님의 계명은] 역사적이며 시간적인 것과 대조되는 보편적으로 타당하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Ibid., p. 244).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 성경은 사가(Saga)들과 신화들을 포함한다.
그 동일한 구속적(救贖的) 선(line)은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사건들 뿐만 아니라 또한 역사적 시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 예를 들면 역사적 구조 안에 있는 사가들(sagas)이나 창조와 자연의 과정들을 취급하는 신화들도 포함한다. 우선, 원시적 기독교는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 . . 원시적 기독교 글들의 저자들에게서는 역사 의식이 완전히 없으며,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와 신화 간의 구별은 선천적으로 멀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오늘날 낡은 세계관이 사용된 것과 같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역사, 사가, 그리고 신화가 동일한 수준에 놓여지는 것이 원시적 기독교에서 어떻게 쉽게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해 줄 뿐이다(Christ and Time, p. 94).
만일 원시적 기독교가 소위 원시적 역사나 종말론적 역사를 실제의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시키는 것은 오직 그 둘을 분리시킬 능력이 정식으로 없었던 결과라면, 우리가 역사적 지식을 통해 그 선의 역사적 요소들과 비역사적 요소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 때에 곧, 그 연결은 없어도 되게 될 것이다(Ibid., p. 95).
이와 같이, 불트만이 논리일관하게 구속의 과정을 하나의 전체로서 취급하고 '신화를 벗기는' 그 동일한 방법을 역사적 연구가 가능한 그 선의 부분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적어도 더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식하는 것은, 원시적 기독교에서 그 선은 실제로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형성한다는 것과, 오직 처음과 마지막으로부터만 시간 구조를 벗기고 그 역사적 중간 부분을 이 시간의 옷이 입혀진 채로 내버려둠으로써 그것을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Ibid., p. 96).
2.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가진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그러므로, '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첨가해야 한다--우리가 그 개념을 본체와 본질들에 관한 후대의 헬라적 사색들과 연결시키지 않고, 그것을 엄격하게 '구속사'(Heilsgeschichte)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조건에서(The Christology of the New Testament, p. 306).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후대에 혼란한 여러 가지 이단적 위장들에 대해 교회는 정당히 정죄했는데, 그러한 혼란이 초대 기독교에게 낯설었던 것은 정확히 말해 초대 기독교의 사고가 '구속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혼란의 위험은 오직 사람이 기독론의 문제를 본체와 성질들에 관한 사색들로써 풀어보려 할 때에만 일어난다(Ibid., pp. 306, 307).
3. 보편 구원론적인 경향을 가진다.
신약에 의하면 기독교적 보편주의가 있다. . . . 그것은 창조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화목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말론적 완성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의 모든 것이신 하나님께 복종될 것이기 때문이다(Christ and Time, p. 179).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한다(Salvation in History, p. 160). 하나님의 계획에서 선택에 주어진 구원역사의 집중이 어떻게 궁극적으로 보편주의를 그 목표로 가지는가 하는 것은 특히 바울의 구원 역사관(롬 9- 11장)에서 분명하게 된다(Ibid., p. 162).
우리는 모든 구원 역사가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방향을 띤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는 노선'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에 이르며, 그 다음엔 전세계에 이른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구원 역사는 여전히 선택의 원리에 의존하지만, 이제 선택은 이전보다 더욱, 단순히 구원을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을 세계에 선포하는 특별한 사명을 위한 선택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든 구원 역사의 길이다. 즉 보편주의는 그것의 목표요, 집중(선택을 의미함)은 그것의 실현의 수단이다. 여기에서 그 길은 심지어 비기독교 종교들, 혹은 더 잘 표현하면, 성경 밖의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다. 왜냐하면 확실히 유대교는 좁은 의미에서 구원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다(Ibid., p. 310).
4. 영혼 불멸은 헬라 철학사상이다.
만일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죽음과 영생이 항상 그리스도 사건과 묶여져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처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혼이 본질적으로 불멸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그러하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Immortality of the Soul or Resurrection of the Dead?, p. 17).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영혼 불멸]의 이 개념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Ibid., p. 15).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부정한다.
우리는 그의 이름, 그의 말씀을 통한, 혹은 율법과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 자기 계시의 개념을 거절한다. 그와 대조하여 최종적으로 나타난 바는, 역사 속에서의 그의 행위의 반사(reflex)로서의 하나님의 간접적 자기 계시의 생각이다(Revelation as History, pp. 13, 14).
2. 사람이 성경을 판단하기에 자유롭다고 한다.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에의 참여는 사람을 모든 다른 궁극적 권위로부터 자유케 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도록 자유롭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 생활 형태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교회적 조직들과 형식들에도 적용된다. 자유의 선물과 특권은 교회들에 의해 제출된 선언들, 교회들의 교리적 결정들, 성경의 책들, 그리고 심지어 예수 자신이 전한 내용에 관련하여 시행되어야 한다(Revelation as History, pp. 13, 14).
3. 사도신경의 진리성을 부정한다.
사도신경의 진술들이 부분적으로 현대인의 마음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 진술들 중의 많은 부분은, 이런 혹은 저런 방식으로, 상당히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The Apostles' Creed, p. 10).
사도신경의 표현형식들은 믿음의 기초적 사실들의 요약이며 또한 그것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그것들은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언어는 더 이상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언어일 수 없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는 질문하면서, 숙고하면서, 비평하면서 그 진술들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이런 방식은 초대교회의 방식과 다를 것이다. 또한 현대 그리스도인은 항상 동일한 결론들에 도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초대교회의 그 신조를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아직도 그것을 반복할 수 있는가? 책임 있게 이렇게 할 수 있는 때는 오직 우리가 그 근본적 의도들에 동의할 때 뿐인데, 이 근본적 의도들은 그 신조의 진술들에서 시대적으로 제한된 그 표현형식을 찾았다. 이 의도들의 언어적 심지어 지적 표현은 더 이상 항상 우리 자신의 현대적 사물인식을 표현할 수 없다(Ibid., p. 13).
4. 창조 대신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만일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같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오늘 바라보는 미래는 이전의 각각의 현재(現在)가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미래일 것이다. 지금의 나의 미래는 또한 쥴리어스 시이저의 미래이었고, 역사 이전 시대의 도마뱀들의 미래이었고, 약 10조년 전의 최초의 물질 과정들의 미래이었다(Theology and the Kingdom of God, p. 61).
5.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은 전설이다.
기독론적으로, 처녀탄생의 전설(legend)은 그 계시적 사건의 한 근본적인 요소, 즉 예수가 최초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에 대한 한 예비적 표현이라는 의의를 가질 뿐이다(Jesus--God and Man, p. 146). 신학은 예수의 처녀탄생을 그의 지상 생애의 기원에 요구되는 한 기적적 사실로서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만큼, 처녀탄생이 사도신경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Ibid., p. 149).
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 진술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Jesus--God and Man, p. 89).
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그러므로 본래는 육신적 아들의 신분을 의미하지 않았고, 예수를 신적, 초자연적 존재로 표시한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진 유다의 왕은 확실히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칭은 단지 예수의 역할, 즉 그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시행하도록 임명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본질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The Apostles' Creed, pp. 63, 64).
8. 보편 구원론적 경향을 가진다.
그의 죽음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단지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짊어지셨다. 그를 통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버리신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극복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홀로 그리고 소망 없이 죽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그 내용인 새 새명은 이미 예수 안에서 나타났고, 그 자신이 그 새 생명에 장차 참여하리라는 소망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Jesus--God and Man, p. 269).
물론,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효과는 이제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제부터는 아무도 더 이상 홀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특별히 죽음에서 그는 예수의 죽음과 교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 죽음과 예수의 죽음 간의 이 교통은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의미의 본질적 내용이다(The Apostles' Creed, p. 89).
9. 죽은 자들의 부활은 비유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죽은 자들의 부활 개념의 긍정적 타당성을 인식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또한 그것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성격에 관해 분명히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가능할 뿐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 개념을, 사람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감추어진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일종의 초자연 지식으로 보는 자에게, 그것은 사람의 경험에서 낯설은 요소로 계속 남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자기 이해에 있어서의 그의 상황의 표현으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비유로서의 그것의 독특한 성격에서일 뿐이다(Ibid., p. 104).
10. 지옥의 개념을 부정한다.
지옥 개념은, 수많은 심판의 그림들에서 묘사된 대로의 그 독특한 특징들에 있어서, 확실히 공상적이다. 이러한 그림들이 지옥의 고통들에 관해 말하는 바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진정으로 결정적인 특징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통으로부터 제외됨은 끝없는 구덩이의 전통적인 묘사들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제외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옥일 것이다. 지옥이 어디냐 하는 '장소' 문제는, 그러므로, 부적당한 그리고 우리에게 폐지된 사고방식에서 나온다(Ibid., p. 91).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
1. 성경의 기적 사건들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비평적인 문학적, 언어적 분석을 하면, 기적 이야기들의 내용은 매우 상당히 감소된다(New Testament Theology, p. 86). 기적 이야기들의 문학적 비평적 조사는 기적 요소를 높이는 경향을 나타낸다. 수가 증가한다. 기적들은 정교해진다. 이중적 보도들이 전달되어 내려온다. 요약들은 예수의 기적 행하는 행위를 일반화한다. 몇 가지 경우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적 이야기가 언어적 오해에서 자라나왔는지 볼 수 있거나 혹은 적어도 상상할 수 있다(Ibid., p. 86 footnote).
심지어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신 이야기(막 6:45-52; 요 6:16-21)도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막 4:35-41 참조)로부터 언어적 오해의 결과로 자라나왔을 것이다(Ibid., p. 87 footnote).
만일 우리가 랍비주의적 그리고 헬라주의적 기적 이야기들과 비교한다면 그 내용은 더욱 감소된다(Ibid., p. 88).
우리는 또한 특히 헬라주의 환경으로부터의 당시 유행하는 작품에서, 귀신의 추방, 병고침, 죽은 자들을 일으킴, 풍랑을 잔잔케 함, 포도주 기적들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기적 이야기들의 어떤 것은 복음서들의 그것들과 매우 밀접한 접촉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전통이 그것의 주위 환경으로부터 빌려왔으며 적어도 그것으로부터 어떤 개별적 주제들을 이어받았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Ibid., p. 88 footnote).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 보도의 확실성을 부정한다.
수난은 며칠의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하나의 관찰할 수 있는 사건이었던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顯現)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아마 여러 해들에 걸쳐서 계속된 다른 종류의 다양한 사건들이었다. 전통은 오직 비교적 후대에 그리스도의 현현들의 기간을 40일에 한정했다(행 1:3)(Ibid., p. 301).
처음에 보기엔, 부활의 주님의 나타나심들이 그 처음 증인들에게 직접 경험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우리의 자료들이 그 사건들로부터 수십년 동안 떨어져 있고 부활적 기사들이 그 동안 정교화되고 여러 점들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아주 절망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사고로부터 시작한다면, 하나의 가설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Ibid., p. 308).
부활절 사건들이 주는 직접적 인상의 추가적 반향은 예수의 부활이 그의 보좌에 앉으심이라는 생각에 보존되어 있을지 모른다. . . . 그렇다면 이것은, 그 종말을 향하여 재촉하는 역사의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독특한 능력의 행위로서가 아니고(비록 이것은 그것이 짧은 기간의 간격 후에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음에 틀림없는 것이지만), 종말 사건의 여명으로서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직접적 경험이었다. 그들은 비추는 빛 안에서 예수를 보았다. 그들은 그의 영광 안으로의 들어감의 증인들이었다. 다른 말로 말해, 그들은 파루시아[재림]를 경험했다(Ibid., p. 310).
3.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법정적(法廷的, forensic) 성격을 약화시킨다.
우리는 이와 같이, 법정적(法廷的) 비교가 묽어졌거나 심지어 완전히 포기된 것처럼 보이는 디카이우스다이의 용법을 보았다. 나는 이 용법을 법정적 용법과 구별하기 위하여 '구원론적' 용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의롭다고 하다'(혹은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용법이 법적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법정적 측면이 완전히 없지는 않지만. . . 구원론적 의미가 그의 말을 지배한다. 바울에게서는, 능동태 디카이운은 '은혜나 기뻐하심을 베풀다'는 것을 의미하고, 수동태 디카이우스다이는 '은혜나 기뻐하심을 얻다'는 것을 의미한다(The Central Message of the New Testament, pp.53, 54).
4. 성례가 구원의 은혜를 전달한다.
칭의가 어떻게 주어지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경건한 자들을 용납하시는가? 이 문제에서 우리는, 이 주어짐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세례에서라는 것을 지난 수십년 동안 배웠기 때문에, 오늘날 더 분명하게 사실들을 본다(Ibid., p. 59). 칭의와 세례의 연관이 바울에게 매우 분명하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세례에서라는 것을 그렇게 많은 말로 진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Ibid.).
바울은 성찬이 세례와 동일한 은사, 즉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에와 그의 몸의 친교에 참여함을 전달한다고 이해했다(Ibid., p. 65).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 범신론적이다.
그렇다면, 성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혼합이나 멸절의 독이 조금도 없는 훌륭한 형태의 '범신론'이다. 즉 그것은 각 요소가 그것에 깊이 빠져 동시에 우주로서의 그것의 완성에 이를 완전한 일체에 대한 기대인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294).
2.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들의 진화 즉 자연적 진화의 마지막 지점이고, 그러므로 진화는 거룩하다(Hymn of the Universe, p. 133).
모든 비교물을 초월하는 지구의 과제는 신실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고 그러므로 하나님 안으로 합병하는 물질적 합병이다. 그리고 이 최고의 일은 자연적 진화 과정의 정확성과 조화를 가지고 이루어진다(Ibid., pp. 143, 144).
무엇이든지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그것을 그것의 가장 단순한 요소들로 환원시키는 것과 동등하다. 그것들의 근원들의 방향으로 가능한 한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 집합체의 마지막 섬유들은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의 눈에서 바로 우주라는 물건과 합쳐지는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39).
원자가 단순한, 원소적 물질의 자연적 미립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포는 생명의 자연적 미립자이다. . . . 세포는, 만일 우리가 그것을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진화론적 선상에 두지 않는다면, 세상의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즉, 우주의 합리적 조직 속에 병합될 수 없을 것이다)(Ibid., pp. 79, 80).
쥴리안 헉슬레이의 인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진화가 자체를 의식하게 된 것 외의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의 현대적 지성들은 (그들이 현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 견해에 정착하기까지는 결코 안식을 발견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정상(頂上)에서 그리고 이 정상에서만 휴식과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 우리 자신의 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은 진화가 자체를 쳐다보고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Ibid., p. 221).
우리의 시간 척도에 의하면, 생명이란 3억년 이상의 거대한 시대의 현상이다. 더욱이 그것은 수만개의 분리된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온 세계에 덮여 있다(The Future of Man, p. 66).
3. 죽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란, 생물들의 경우와 같이, 한 개인이 종족의 혈통을 따라 다른 개인으로 대치되는 일정한, 불가피한 상태이므로, 그것[분해의 악]은 더 악화되고 이중적으로 운명적인 형태라고 덧붙여 말해야 하겠다. 죽음이란 기계에서의 레버요 생명의 증가인 것이다(The Phenomenon of Man. p. 312).
4. 에큐메니칼 운동을 옹호한다.
내가 믿기는, 이와 같이 기독교 사상에 의한 현대 진화론적 견해들의 병합과 동화는 수 세기 동안 계속 이성과 신앙 사이에 일어났던 장벽을 허물기에 충분하다. 그 부동(不動)의 장애물이 제거된 한, 미래에 카톨릭 교인들과 비카톨릭 교인들이 발견의 고속도로를 따라 손에 손 잡고 함께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 없다. 오늘날 양측의 협력은 가능하게 되었다(Science and Christ, p. 190).
이 순간, 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형태가 스스로를 주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지구의 정신적 성숙과 결합되어 있고 그러므로 그것은 확실히 올 것이다(Ibid., p. 197). 이러한 조건들에서, 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향한 유일한 두 가지의 효과적인 길들이 이런 것들이 아닌지 생각한다. 즉 (1) 참으로 '우주적' 척도에서 극단적 정통 기독교와 극단적 인본주의 기독교를 제시하려는 관심을 가지는 기독교인들 간의 (정상 에큐메니즘). (2) 인류의 미래에 하나의 공통적인 인간의 '신앙'의 기초들을 정의하고 확장하려는 관심을 가진 일반 사람들 간의 (기초 에큐메니즘). 이 두 노력이 결합된다면, 그것들은 자동적으로 우리를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에큐메니즘으로 인도할 것이다(Ibid., p. 198).
그 외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
마태복음은 마태 학파에 의해 쓰여졌다.
본 답슈는 [마태복음의 저자가] 개종한 랍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 . . 만일 우리가 그 복음서를 개종된 랍비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그가 전적으로 혼자서 사역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가 살았고 봉사했던 교회의 생활 속에서 활동적인 역할을 했다고 상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태의 교회 안에 활동적이었던 한 학파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The School of St. Matthew and Its Use of the Old Testament, p. 30).
이와 같이 마태 학파는 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한 학파로서 이해되어야 하고, 이런 이유 때문에 저 학파의 저작품은 교회 내에서의 가르침과 행정을 위한 안내서의 형태를 취한다(Ibid., p. 35).
바울은 교회의 전통에서 잘못 해석되었다.
여기에 바울과 루터 사이의 차이점들을 분별하는 것이 동등하게 중요한 점이 있다. 바울의 경험은 서방의 신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회심의 내면적 경험이 아니다. 이 차이점 배후에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서방에 있는 특히 종교개혁의 전통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바울을 루터나 칼빈과 같은 인물들의 경험을 통해 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의 오해들에 대한 주요한 이유이다(Paul among Jews and Gentiles, p. 12).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바울의 교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에서 그 신학적 맥락을 가지고 있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것인가 혹은 사람의 행위들이 어떻게 인정을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에서가 아니다(Ibid., p. 26).
신약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임을 부정한다.
현대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본문이 액면 그대로 해석될 수 없고, 그것이 초대교회의 신학적, 선교적 및 교리 문답적 관심들의 표시들을 보인다는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다. 또한, 신약성경이 초대교회 내의 서로 다른 발전 단계들과 상호충돌적 경향들과 행위들을 증거한다는 것도 명백하다(The Scrolls and the New Testament, p. 3).
우리가 방금 인용한 '[교의와 신적 계시로서 선전되었다기보다] 단순히 인간 역사의 한 에피소드[혹은 삽화]라는' 기독교에 관한 윌슨의 진술이 심각하게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 여기이다. '에피소드'와 '계시'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는 시초부터 기독교 신학의 기본적 신학적 문제이었다. 1세기에 기독교 사상의 주관심은 기독교를 영원한 진리의 체계로 변형시키려는 모든 경향들에 대항하여 그 에피소드의 면을 보존하는 것이었다(Ibid., p. 4).
기독교의 절대적, 불변적 성격을 부정하고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진다.
지구가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다원주의는 부채가 아니고 자산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실지 모르나, 종교들은 여러 개이다. 그것들은 그 문화가 가장 특징적인 곳 즉 바나라스, 메카, 로마, 예루살렘 같은 곳들에서 그 세력의 중심을 가진다. . . . 내가 이 책을 넘겨볼 때, 나는 우리가 동등한 것을 동등한 것과 비교해야 한다는 모든 종교 연구의 기본 법칙을 기억한다. . . . 사실,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과 구조는 문화에 따라 드러나게 다르다("Foreword," in Great Reli- gions of the World, p. 7).
우리는 또한 오늘날 우리 자신의 신앙과 고대의 종교적 행위들을 비교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교들은 발전하고 변화한다. 족장 아브라함과 신학자 아브라함 헤쉘에 의해 표현된 종교적 견해들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그 둘은 다 정당하게 유대교적이라고 불리운다. 혹은 복음서 기자 요한과 교황 요한 23세 간이나, 마르틴 루터와 마르틴 루터 킹 간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오늘날의 어떤 것과 오늘날의 다른 것을 비교해야 한다(Ibid..).
그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는 모든 경계선들을 넘는 능력을 가진 생명력 있는 종교들이다. 그리스도가 동양에서 자기 증인들을 가지게 될 것처럼 부처는 서양에서 자기 증인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Ibid.).
죤 스퐁(John Shelby Spong)의 이단 사상들
무신론적임
미국 감독교회의 유명한 자유주의자 죤 스퐁 감독은 인격적 하나님이 없으며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다. 그는 유신론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공격함으로써 유명해졌다. 2002년 4월 27일자 월드(World)지는 스퐁의 왜 기독교는 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인용한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의 한 방법으로서의 유신론은 명백히 부적절하게 되었고, 유신론의 신은 죽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마 회생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미래의 종교가 유신론의 개념들을 지키는데 의존한다면,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인간적 현상은 끝날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유신론적 신 개념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 . . 이 고상한 종교적 체계가 그 자신의 죽음의 고통의 좁은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 속죄, 부활, 지옥 등을 부정함
1999년 4월 26일자 뉴 아메리칸지에 의하면,
스퐁의 판단에는, 기독교가 생존하려면 기독교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육신(成肉身),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그리고 기적들과 같은 교리들을 치워버려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인식을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스퐁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안에서 조성된 것이며' '지식의 팽창으로 낡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자기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 신을 숭배하기보다 증오하기를 택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어린 소녀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들로서의 예수의 기적들, 동정녀 탄생, 부활, 그리고 승천을 부정하고 천국과 지옥, 영원한 형벌과 보상에 대한 '옛 견해'를 버린다. 또 그는 모든 도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2000년 1월 29일 은퇴하였으나 그 후 몇 달 동안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보편구원론자
스퐁은 "만일 모든 사람이 구속(救贖)함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도 완전히 구속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보편구원론자이다.
모든 성경을 믿지 말라고 강권함
미국의 은퇴한 감독교회 감독 죤 쉘비 스퐁은 최근 6백명 이상의 감리교인들에게 성경에서 읽는 모든 내용을 다 믿지 말라고 강권했다.
'새 기독교'를 제안함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및 역사적 기독교의 다른 많은 교리들을 부정한 죤 쉘비 스퐁은 지금 "우리의 실재(實在)의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할 "새 기독교"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우리 각자 속에 함께 오도록 허용될 수 있어야 한다. . . . 그것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예수와 유다, 남성과 여성, 이성연애자와 동성연애자를 연합해야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마귀적인 사상인지! 그러나 이런 사상을 가진 자가 교회의 주교이었고 교회는 이런 자를 권징치 않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자들을 제명출교해야 한다!
죠셉 스프라그의 이단 사상
미국 연합감리교회 감독 죠셉 스프라그는 2002년 6월 25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의 일리프 신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정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고 나타나는 교회에서 경험되는 예수에 관한 진리를 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태와 누가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 . . 나는 예수의 부활을 믿으나 그의 부활이 그의 육체적 몸의 회생을 포함한다고 믿을 수 없다. . . . 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배타적 생각들과 의견을 달리해야 한다. . . . 나는 다른 종교들이 열등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밖에 있다고 혹평하는 것보다 예수의 계시를 나의 삶과 교회의 삶에서 사는 것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 . 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흠 없는 양과 염소의 제사들이 하나님의 노를 누그러뜨리며 모든 사람의 죄를 속한다고 이해되었던 것처럼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피를 한 엄위한 희생적 인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신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묘사하는 대속의 이론을 찬성하지 않는다. . . . 피의 제사 개념은 최선으로 생각해도 미신이다.
마틴 마티(Martin Marty)의 이단 사상들
루터파 신학자 마틴 마티는 그가 편집인으로 있는 크리스천 센추리(Christian Century)지 1999년 4월 7일자에 "나는 성경을 포함한 아무 책도 무오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의 교리를 포함하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오래 전부터 부정해왔다. 그런데 그는 1992년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연사이었다.
커비 갓세이(Kirby Godsey)의 이단 사상들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머서 대학교 총장 커비 갓세이는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버리고, 회개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구원의 근거'임을 거부하고, "교리적 건전함이란 교만한 신학적 난센스[터무니 없는 생각]이다"고 주장한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George Carey)의 불신앙
영국교회(성공회)의 수장(首長)인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확실성을 가지고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 . . . 우리는 그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교수의 불신앙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ELCA)의 교수 필립 헤프너는 뉴스위크 2000년 5월 1일자의 한 면 전체에서 "왜 나는 기적들을 믿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나는 정말 어떤 관습적인 의미로도 기적들을 믿을 수 없고, 오직 복(福)들을 믿는다. 그것들은 매일 일어난다"고 글을 끝맺는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루터파 신학교(Lutheran School of Theology)의 조직신학 교수이며 자이곤 종교-과학 연구소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공격해왔다. "기적 이야기들--신앙에 대한 증언인가 신빙성의 세대 단절(credibility gap)인가"라는 그의 글은 루터파 신학교의 컨텍스트(Context)지 1968년 봄-여름호에 실렸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단의 임원들은 인간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하여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교단의 교수들에 대해 어떤 권징적 조치를 취하기를 오래 전부터 거절해왔다.
폴 듀크(Paul Duke)의 이단 사상
머서 대학교 신약과 설교 교수 폴 듀크는 "동성애와 교회"라는 제목의 1994년 협동 침례교 협의회(남침례교단의 자유파)의 총회전 학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우리의 최종적 권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에 그것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 . . 동성애는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니다. . . . 나는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 행위를 정죄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듀크는 동성애적 짝들의 결합에 대한 자신의 '넓은 후원'을 긍정하였으나, 자신의 개인적 취향은 이성애적 짝들이라고 주를 붙였다. 머서 대학교는 미국의 보수침례교협의회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교이다. 오늘날 보수적이라는 명칭을 가진 교단들이 다 참된 보수적 교회가 아니다.
시실 셔만(Cecil Sherman)은 동정녀 탄생을 무시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83년 8월 5일자는 당시 미국의 남침례교단의 목사이었고 후에 온건-자유파 협동 침례교단의 초대 전국 의장이었고 현재 자유주의적인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침례교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시실 셔만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인용하였다:
성경에 의해 또한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게 될 선생은 해고되어서는 안된다. . . . [동정녀 탄생은] 두 복음서들에 있으나 다른 두 책들에는 있지 않다. . . . 마가와 요한은 그것을 나열하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실수를 범했는가? 만일 동정녀 탄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 [마가와 요한은] 잘못을 범한 것일 것이다.
로버트 앨리는 성경무오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함
남침례교 소속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대학교수인 로버트 앨리는 신자에 대한 반란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E. J. Daniels, Family Magazine, May-June 1986, p. 13):
어떤 사람은 '성경무오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 신념이 계시 신학의 유일하게 타당한 출발점과 구조'라고 계속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미소로 지으며 들어야 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사회의 조례에나 넣어져야 할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을 조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직하다. 그들은 교육과 독서를 통해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섬기며 구원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는 무지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거짓된 교리를 이용하여 성공과 명성과 큰 교회들을 얻는다. 그러한 도덕적 태만은 현대의 많은 공적인 종교활동들에서 너무 일반적이다. 이런 종류의 속임에 대해 오직 경멸과 거부가 있을 뿐이다.
로버트 앨리는 또한 1977년 12월 6일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제1 유니테리안 교회에서의 무신론자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E. J. Daniels, p. 14):
예수는 결코 자신이 하나님이라거나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 . 나는 예수가 참으로 유대인이라고 본다. 나는 그가 자신의 신성(神性)을 주장하는 오만함을 가졌을 것이라고 잠시라도 상상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가르친 구절들은 후대의 편집, 즉 교회가 그에 관해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C. W. 크리스챤은 진화론을 수납함
남침례교 소속 베일러(Baylor) 대학교 종교학부 교수 C. W. 크리스챤은 워드북 출판사에서 간행한 신앙을 형성하기라는 책 67쪽에서 "창세기와 다윈 간의 차이는, 만일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다윈 편이라고 참으로 결정되었다"라고 썼다(Daniels, pp. 18, 19).
C. R. 데일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욥과 요나의 역사성을 부정함
켄터키주 남침례교 신문인 웨스턴 레고더지의 이전 편집자인 C. R. 데일리는 1984년 7월 20일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Daniels, p. 20):
내가 이 신학교에 왔을 때, 나는 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강하게 지지하는 단 한 명의 교수를 기억할 수 있다. . . . 신학교들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유럽 대륙의 신학사상으로 가고 있었고 그 사상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것이 신학교들의 방향이었다.
만일 여러분이 오경의 모세 저작성과 창세기 처음 11장들의 역사성과 욥과 요나를 역사적 인물로 보기를 원한다면, 중부(Mid-America) 신학교로 가라. 여러분은 거기에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신학교가 여러분이 그것을 얻을 유일한 곳이다.
로버트 케이트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함
골든 게이트 신학교의 구약교수이었던 로버트 케이트는 남침례교 주일학교부의 브로드만 출판사에서 간행된 평신도 성경주석, 2권 9쪽에서 "창세기의 언어와 본문의 주의깊은 비교 연구들은 현재의 형태로서의 창세기가 아마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의 어느 때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Daniels, p. 20).
죠엘 런스포드는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함
켄터키주 엘리자베스타운의 남침례교 소속 죠지타운 대학에서 헬라어와 구약 교수인 죠엘 런스포드는 1963년 봄 경건회 설교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하나님 안에 있는 '공의'나 '의'나 '거룩' 같은 어떤 추상적 특질을 만족시키기 위한 유화적(宥和的) 제물로 만드는 것은 내 판단에서 신성모독의 첫번째 사촌이다"라고 말했다(Daniels, p. 18).
남침례교 신학교의 한 이단 교수의 말
플로리다주 오란도의 델라니가(街) 침례교회의 목사인 짐 윌슨은 그가 남침례교 신학교 학생이었을 때 교수가 모든 학생들 앞에서 "나는 이 모든 피의 종교에 진저리가 난다! 우리는 '피, 피, 피밖에 없네' 같은 이 우스광스러운 찬송들을 부른다. 나는 남침례교의 모든 교회들의 찬송가집에서 그것들을 찢어내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썼다(Daniels, p. 18).
클라크 피나크(Clark Pinnock)는 배교자
캐나다의 맥매스터 신학교(McMaster Divinity School)의 신학 교수 클라크 피나크는 배교자라고 불리웠고 아마 정당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에 그는 남침례교단 소속 뉴올리언즈 침례교 신학교의 보수적 교수이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성경 영감과 지옥의 본질 같은 교리들에 대해 매우 비(非)정통적인 이해에 도달한 변화를 겪었다. 그는 최근의 복음주의 신학회에서의 논문에서 종말 사건들에 대한 '더 포용적인' 복음주의 이해를 요청했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포함한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하나 이상의 언약과 하나 이상의 백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다양한 길들'에 대해 말했고, 많은 이방인들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의 표준은 개인이 "다른 이들의 봉사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생활 방식에 참여함"이라고 했다.
레슬리 웨더헤드(Leslie Weatherhead)의 오류들
영국 감리교회의 저술가요 이전 총회장인 레슬리 웨더헤드는 그의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예수가 아마도 여러 번 성육신(成肉身)한 한 영일 것이라는 견해를 표현하는 마지막 책을 썼다. 크리스챤 뉴스 2001년 3월 5일자의 한 글은 "이런 견해들은 그가 비참하게 신비주의(occult)에 떨어졌음을 반영했다. 에프워스(Epworth) 출판사는 그 책을 출판하기를 거절하였다"라고 썼다. 웨더헤드는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내 생각에 기독교는 확실히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6과 충돌된다. 그는 매우 중요한 다른 교리들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이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적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은 이 배교자가 40여년 전 그의 런던 전도대회에 참여하도록 허용하였다.
멜빈 탤버트(Melvin Talbert) 감독은 회개를 무시함
미 연합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수석 위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는 것을 너무 강조하지 말고 그 대신 다른 이들과 평화로이 사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멜빈 탤버트 감독은 예수께서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했을 때 거기에는 기독교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께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호소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한다.
시실 윌리암즈(Cecil Williams)의 해방의 신학 사상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라이드 기념 연합감리교회 목사 시실 윌리암즈는 자기의 정박소는 '해방의 신학'이라고 말했다. 해방의 신학이란 민중들을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착취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구원이요 복음이라고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일파이다. 또 그는 "규칙들과 교리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애니 래못의 잘못된 견해들
많은 기독교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고 그녀의 책들이 수백만권씩 팔린 애니 래못(Anne Lamott)은 자신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좌파 평화주의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견해들에서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하며 "나는 극단적 우파 기독교의 지옥불과 유황불 정죄와 부끄러운 용어에 단지 움츠리며 반발한다(recoil)"고 말한다. 2003년 1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자'라고 소개된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신앙들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의 인격성이 임신 때에 시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자가 인기를 끄는 시대는 말세가 확실하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혹은 목사들의 예들
박대선 감독
대한기독교감리회 소속 박대선 감독은 1974년 6월 14일 고(故) 홍종철 특별보좌관 장례식 설교에서 그의 불신앙적 사상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죽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분이 두 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에녹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엘리야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신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에서 불의를 모르고 가장 뛰어나게 의롭게 살다가 죽은 에녹과 엘리야의 사랑하던 제자들과 가족들과 친지들이 에녹과 엘리야의 죽음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하던 에녹과 엘리야의 이미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강하게 그들에게 심어졌기에 도저히 죽었다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선생이 그들과 같이 앉아서 말씀을 하시는 것만 같고 길을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 죽지 않고 산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박하게 기록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안병무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 교수(조직신학)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안병무(한신대 대학원장, 한국신학연구소 창설, 현존지 발행)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예수교인'이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삼위일체, 신인양성(神人兩性), 성육신, 대속 등을 믿는 자이다. 그러나 안병무는 역사적 예수를 어떤 분으로 보았는가? 안병무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 곧 민중이 해방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붙잡혀 십자가 형틀에서 처참하게 죽임 당한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투쟁은 패배로 끝났다. 예수는 로마의 침략 세력을 쫓아내지도 못했고 헤롯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전복시키지도 못했다. 이리하여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민중해방자로서 예수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면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고 한 역사적 전거(패라다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송기득 교수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와 역사적 예수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론, 양성론, 육화론[성육신론], 대속론 따위는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교리로서 그 나름의 진리성을 갖는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교리는 부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한 안병무의 역사적 예수는 삼위일체적 존재, 성육신(成肉身)한 존재, 신인 양성(神人兩性)을 가진 존재 등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안병무가 '예수는 철저하게 "사람"이었다. 그것도 "보통사람"이었다'고 말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 . 사실 역사의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민중해방운동을 벌이다 그 대가로 십자가 형틀에서 살해된 것이다. 만일 예수의 죽음을 굳이 '대속'이라는 말로 이해하려면 그것은 이스라엘 민중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지배 세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를 대신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속론을 펴려면 '민중의 대속론'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속론에서 대속을 받아야 할 진정한 죄는 구조악에 연원하고 있다. 예수는 죄의 대속자가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죄, 즉 구조악에 대한 항쟁자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실로 보아 우리는 역사의 예수의 실상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송기득 교수는 안병무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자유주의 신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장이었던 안병무, 그리고 그에 대해 해석하고 있는 대한기독교감리회의 목원대학 조직신학 은퇴교수 송기득, 이들의 사상이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의 단면을 잘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송기득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교리들, 즉 성육신과 신인 양성과 대속의 진리들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심지어 부정할 수 있는 주제로 보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에 의하면, 안병무는 이런 교리들을 명백히 부정했다. 안병무에 의하면, 예수는 민중해방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한다. 단지, 예수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홍정수 교수의 이단 사상들
감신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홍정수 교수는, 첫째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베짜는 하나님에서 "신 없는 종교를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리고 무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종교까지는 몰라도 꼭 신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 . . 만일 신은 계신가하고 누가 묻는다면 '신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이단적 무신론 사상이다.
둘째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한 글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신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다"라고 했고 또 "예수의 죽음이 우리를 속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우리를 속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그의 저서에서도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던 한 설교자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의 신성과 대속 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셋째로, 그는 골고다 산상에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광주 망월동 민주 항쟁으로 죽은 많은 민주 인사들의 죽음을 동일시하였다. 그는 그의 책에서 말하기를, "예수라는 설교자의 죽음은 억울한 희생이 아니라 '말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선택된 죽음이다. 이런 현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구호를 외치면서 투신 또는 분신해 쓰러져 간 젊은이들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은 신성모독적이다.
넷째로,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부정하였다.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1년 3월 30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부활 신앙은 이교도들의 어리석은 욕망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동신문 6월 8일자의 글에서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빈 무덤이 아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다른 잡지에서 "나는 단연코 육체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그의 저서에서도 그는 "만일 예수 부활 사건이 오늘날의 우리가 소박하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역사적으로 육체적으로 발생했다면, 그 사건은 자연 현상 중의 기이한 일에 불과하며, 전혀 '하나님'의 행위가 아님을 뜻한다. 따라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 육체성을 실증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성격에나 하나님의 성격에 전혀 맞지 않는 이치임을 시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부정하는 명백한 이단이다.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의 사실을 확증한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한국 목사들]
문익환 목사
사도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 실존적으로 동참함으로 주의 부활에도 동참한다고 믿었다. . . .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부활한 몸에 관한 호기심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둔다고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 믿는 자가 전인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현재 구원받은 우리에게 새 새명을 주는 원동력이지만, 또한 그것은 미래의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조향록 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 . . 문제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용 자세에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기는 하나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요 대상이 된다. 신앙은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문제나 사건이 신앙하는 자에게 의미적으로 받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큰 문제가 아닌가?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만 돌리고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인식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허 혁 교수
그러므로 저는 성서에 부활의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부활의 보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 . . 이것을 학자들은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 . . 그것은 신앙을 사건으로 보는 입장이지요. . . . 저는 내가 믿는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허 혁 교수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과 부활의 보도를 구별하는 배면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이 있어 보인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 사건을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긍정을 보류하는 회의적 태도일 뿐이다.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그들은 1973년 부활절 메시지에서 한국교회가 인간의 영혼불멸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부활은 2천년 전의 골고다의 예수의 부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곳 한국 땅에서 날마다 사는 부활의 승리에서 영광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무시하고 현재적 부활의 의미만을 붙드는 것은 불신앙의 맛을 남길 뿐이다.
이종성 박사의 불신앙적 성경관
예장 통합측 장로회신학대학 학장이었고 기독교 학술원장이었던 이종성 박사는 2001년 2월 15일 제22회 학술세미나에서 성경에 대한 그의 견해를 말했다. 거기에서 그는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글자의) 영감과 성경 내용에 오류가 없다는 견해를 근본주의자들의 견해라고 배격하고, 성경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소위 신정통주의적(칼 바르트의) 견해를 '복음적 성서관'이라고 표현하며 받아들인다. 또한 그는 성경을 우주와 인류 역사에 관한 기록으로 이해하는 보수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창세기는 우주 생성에 관한 과학적 기록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신정통주의 성경관은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증한다.
김경수 목사
한국신학대학 출신 제주 남부교회 김경수 목사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3권)을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썼다:
신학적으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신학자는 김재준, 칼 바르트, 폴 틸리히라고 할 수 있다. . . .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조직신학 교수는 폴 틸리히의 신봉자였고, 그는 폴 틸리히를 빼 놓으면 신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틸리히 신학에 빠져 있었다. 내가 폴 틸리히에게 몰두하게 된 것도 그의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틸리히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을 빼앗곤 했고 공감을 일으켰다.
자유주의적 교단들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어번 선언서'
1923년 미 북장로교회에서 어번 선언서(Auburn Affirmation)라는 것이 작성되어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것은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하고 1916년, 1923년에 재확인한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총회가 1910년에 선언한 내용이란 다음의 다섯 가지 교리들이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첫째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이며, 셋째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며, 넷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며, 다섯째는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다섯 가지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주장했다.
1967년 신앙고백
1967년, 미 연합장로교회(현,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1967년 신앙고백'을 채택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성경의 초시간적 진리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의 유일 충족한 계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다. 그에 대하여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유일하고 권위 있는 증거를 한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락되고 복종을 받는다. 성경은 다른 여러 증거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비길 데가 없는 증거이다. . . .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서 주어진 것이지만 역시 사람들의 말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장소와 시대의 언어, 사상 형식, 문학 형태들의 지배를 받는다. 성경은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인생관, 역사관, 우주관을 반영한다(1. 3. 2).
타종교들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스도인은 타종교들과 자신의 종교 간의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며, 모든 종교들에 대해 열린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갱신을 도전하시기 위해 비기독교인들의 통찰력을 사용하셨다(2. 1. 3).
속죄의 교리를 한 이론으로 돌린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화목의 행위는 성경이 여러가지 방식들로 묘사하는 한 신비이다. 그것은 어린양의 제사,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주심, 제사장의 속죄로 불리우며, 또한 종의 속전(贖錢), 빚의 지불, 법적 형벌의 대리적 만족, 그리고 악의 세력들에 대한 승리로 불리운다. 이것들은 모든 이론의 범위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에 머무는 한 진리의 표현들이다(1. 1. 1).
화목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보인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은 그의 화목케 하시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보내지는 것이다. 이 공동체 곧 세계적 교회는 하나님의 화목의 메시지를 위탁받았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적의(敵意)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수고에 참여한다(2. 1. 1).
이 진술은, 사람과 사람 간의 화목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목이라는 성경적 개념을 혼란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 넓어진 화목 개념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그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사명이 이러한 화목의 사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 신앙고백서는 또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하였다:
교회의 회원들은 화평의 밀사(密使)들이며 정치, 문화, 경제면에서 세력 있는 자들이나 집권자들과 협력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 세력들이 인간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가장(假裝)과 부정(不正)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1. 3. 1).
인간을 향한 그의[그리스도의] 봉사는 교회가 모든 형태의 인간 복리를 위하여 일할 것을 위탁한다. 그의 수난은 교회가 인류의 모든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여 각종 궁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도록 만든다(2. 1. 1).
교회는 모든 민족 차별의 폐지를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으로 인해서 상해를 받은 자들을 위하여 봉사한다(2. 1.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인간 생활 전체 곧 사회와 문화, 경제와 정치, 과학과 기술, 개인과 단체, 전부를 포괄한다(3. 1. 1).
이 뿐만 아니라, 미 연합 장로교회는 목사의 임직서약도 변경하였다. 변경된 임직서약에서는,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선언되지 않았고,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문답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지도 아래 행한다고 선언되었다. 1965년 5월 17일자 자유주의 잡지 크리스챠니티 앤드 크라이시스(Christianity and Crisis)는 말하기를, "새 신앙고백서는 1924년 어번 선언서의 교리적 노선으로 내려간다. 40년 전에 겨우 허용되었던 소수파의 견해가 이제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로 제안되고 있다"고 했다.
케이스맨 목사 사건
1981년 미 연합장로교회(오늘날의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상설재판국은, 그 총회에서 봉사하던 연합그리스도교회 소속 맨스필드 케이스맨(Mansfield M. Kaseman)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무죄성, 대리적 속죄, 육체적 부활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판결하기를, 지노회가 케이스맨의 견해를 새 임직 서약에 의해 허용된 '용납할 만한 해석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함에 있어서 옳았다고 했다. 이단을 권징하고 제거할 의지가 없는 것이 교회의 배교가 아닌가?
자유주의 신학자 몰트만에게 수상함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루이즈빌 장로교 신학교와 루이즈빌 대학교가 수여하는 2000년 루이즈빌 그로메이어 상과 상금 20만불을 받았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3년 1월 11일자는 그를 "금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크리스챤 뉴스 1993년 1월 23일자는 몰트만이 삼위일체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거절하고 마르크스주의적 해방의 신학을 위해 문을 연다고 증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신학적 토론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많은 신학적 토론 후, 2002년 미합중국 장로교회 총회는 배타주의자들과 다원주의자들을 둘 다 기쁘게 하려는 중도적 진술을 승인하였다. 수년 동안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신가 여부에 대해 나뉘어져 있었다. 497대 11의 표로 승인된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진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구주와 주님이시며,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그에게 두라고 요청된다. 아무도 내재적 선이나 바람직한 삶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엡 2:8).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救贖)을 떠나서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딤전 2: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주제넘게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께 대한 명백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제한하거나 또는 모든 사람이 신앙에 관계 없이 구원을 받는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두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참된 사실을 분명히 부정한다.
예수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가?
2002년 10월과 2003년 1월 사이에 3500명을 상대로 우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 장로교인들의 거의 4분의 3은 "인류를 위한 절대적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믿으나, 기독교인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는 절반도 안된다. 미합중국 장로교회 교인들의 주기적 설문 조사에 의하면, 교인들의 70퍼센트, 장로들의 75퍼센트, 목사들의 71퍼센트, 그리고 군목 같은 특수 성직자의 55퍼센트는 "인류를 위한 유일한 절대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동의하였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했을 때, 교인들의 43퍼센트, 장로들의 50퍼센트, 성직자의 39퍼센트, 그리고 특수 성직자의 24퍼센트가 동의하였다. 또 교인들의 3분의 2 그리고 목사와 장로들의 80퍼센트는 "예수께서 어느날 지구로 돌아오실 것이다"라고 믿는다고 대답했고, 교인들의 86퍼센트와 목사들의 96퍼센트는 죽음 후의 생명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또 교인들의 93퍼센트는 천국을 믿는다고 했으나, 지옥을 믿는다고 대답한 자들은 오직 78퍼센트이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보수주의자들의 고통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이었으나 근래에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더 이상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드(World)지 1998년 7월 25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사실들을 긍정하지 않는 자들과 영적 동반자일 수 없다," "우리는 본교단에서 연합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 또 분열에 대한 존 웨슬리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되어 있다: "불경건과 배교가 우세한 교회들 안에서, 분열의 악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있다."
퍼킨즈 신학교 학생들의 신앙 상태
전에 남침례교인이었던 대주교 드미트리 로이스터는 현재 헬라정교회의 독립적 인사이다. 그는 말하기를, 그의 교회의 많은 방문자들은 자신들의 자유주의적 대교단들 내의 문제들 때문에 왔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거기에는 약점,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부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연합감리교단 소속 퍼킨즈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치고 있었을 때의 한 사건을 회고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믿는지 물었다. 내가 말뜻을 정의하여 예수께서 단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선생이 아니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하자, 그 반의 학생들 중 한 명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
미국연합감리교의 이단허용
미국 시카고의 연합감리교회 감독 C. 조셉 스프라그(C. Joseph Sprague)는 한 반대자의 주장들(Affirmation of a Dissenter)이라는 그의 새 저서에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그의 육체적 부활과 구원에서의 그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또 그는 작년 덴버 신학교에서의 강연에서 "동정녀 탄생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부활이 그의 물질적 몸의 회생을 내포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그의 견해를 취소하든지 그의 직책을 사임하라고 요청하는 28명의 보수주의자들의 고소를 다룬 위원회는 그 고소가 잘못이며 그는 이단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미연합감리교회는 바른 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버린 배교된 교회임이 분명하다. 그 교회와 교제하는 기독교대한감리교회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도날드 블뢰쉬(Donald Bloesch) 박사의 증언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교단이다. 그 교단의 듀부크(Dubuque) 신학교 신학교수 도날드 블뢰쉬 박사는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 교회가 된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삼위일체의 삼위를 구별된 존재보다 비유로 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블뢰쉬는 성경적 증거 협의회(Biblical Witness Fellowship)의 간행물인 위트니스(The Witness) 1996년 겨울호에 실린 한 대담에서 "유니테리안들은 이단종파가 되고 있다. 유니테리안들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 유니테리안으로의 표류, 즉 하나님을 양성적(兩性的) 혹은 자웅동체적(雌雄同體的)으로 보려는 강한 경향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의 중심적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읽혀지는 자라고 위트니스가 말하는 블뢰쉬는 주장하기를,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니테리안 사상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 교단은 이미 만인구원론적이다. 천국과 지옥, 구원과 멸망 같은 구별들은 이미 상실되었다. 유니테리안들과의 통합을 실제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교회들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UCC)을 떠남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과 기타 자유주의 교단들을 떠나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131개 교회들이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을 떠났고, 1960년대 이후 3분의 1이 떠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합 그리스도의 교단이 공식적으로 낙태를 지지하고 현재의 동성애자들이 목사로 봉사하는 것을 허용하고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공격하고 신학적 자유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배리 박사의 비판
미국 루터교회 미주리 대회(LCMS)의 회장인 A. L. 배리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에 관하여 이렇게 글을 썼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오늘날 성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포기했고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하고, 천명 이상의 여자 목사들을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과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교회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 루터교회로 간주될 수 없다."
도로시 죌러(Dorothee Soelle)의 책을 출판함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포트리스(Fortress) 출판사는 최근에 도로시 죌러의 조용한 부르짖음--신비주의와 저항(The Silent Cry--Mysticism and Resistance)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크리스챤 뉴스 신문은 그 여자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자요 신학적 무신론자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이전의 책에서 상당히 길게 인용하였다. 죌러는 또한 공산주의를 옹호한다.
[미국 남침례교회(SBC)]
미국 남침례교단과 침례교 세계연맹(BWA)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침례교 세계 연맹에서 이제까지 가장 큰 회원 교회이다. BWA 회원 교회들의 다수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계가 있다. WCC에서 BWA 회원 교회들은 전체의 15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도자요 침례교인인 빌리 그레이엄은 여섯 번의 BWA 대회에서 연설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그 단체를 후원하라고 격려하였다. 또 1995년 BWA는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BWA나 WCC는 현대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배교적 단체들이다. 남침례교단 같은 BWA 회원 교회들은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를 포함하여 완전히 다양한 다른 교회들과 에큐메니칼 대화에 참여하여 왔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교회들 간의 기구적 연합을 향한 어떤 움직임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침례교인들도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상황에서는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기 쉬울 것이다. 남침례교단이 '보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 교단이 BWA와 WCC 등 배교적 에큐메니칼(하나의 세계교회) 운동 단체들과 가지는 연관성을 기억해야 한다. 남침례교단이 참으로 '보수적'이라면, 그 교단은 배교적 단체들과 연관을 가져서는 안된다. 참된 성도들과 교회들은 마땅히 배교적 단체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에 대한 대니얼 에이킨의 비판
남침례교회 신학교 부학장인 대니얼 에이킨(Daniel Akin)은, 1998년 11월 앨러배머주 남침례교인들에게 한 연설에서, 미주리 주의 보수적 남침례교인들이 자유파 협동 침례교 협의회를 비판하며 준비한 비난 내용들의 목록으로부터 "그들[CBF]은 급진적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장막을 너무 크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에이킨은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과 처녀 마리아를 통한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협동 침례교 협의회 지도자들은 낙태와 동성애에 관한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포용주의
버지니아주 남침례교회들의 뱁티스트 배너(Baptist Banner) 1999년 1월호는 남침례교단과 협동 침례교 협의회 간의 몇 가지 '대조되는 점들'을 열거하면서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속해 있다고 하였다:
(1)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의 제사적 죽음의 필요성, 혹은 그의 동정녀 탄생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지도자들, (2) '그리스도-소피아(Sophia)'(그리스도의 여성화 주장)에 대한 예배를 요구하는 여권주의 신학 지도자들, (3) 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兩性愛者, bi-sexual), 성(性)전환자들(transgendered)의 안수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4) 하나님께서 때때로 여자에게 인구 억제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낙태시키라고 명령하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들, (5) 낙태를 위한 연방 정부의 기금이나, 부모의 승락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의 폐기를 옹호하는 지도자들, (6) 성경이 모든 형태의 동성애적 행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는 지도자들, (7) 여성을 담임 목사로 안수하기를 요구하는 지도자들, (8) 펜트하우스(음란물 출판사), 전국 남녀 동성애자 전문위원회, 가족계획 협회와 연합하여 활동했던 지도자들, (9)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지도자들, (10) 성경적 학문이 침례교인들과 무신론적 '세속 인본주의자들' 간의 공통적 기반의 영역이라고 진술하는 선언서에 서명한 지도자들, (11) 동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에게 특별한 일자리의 보호를 제공하는 고용-비차별 법령과 같은 입법 활동을 위하여 일한 지도자들. . . .
그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말하기를 협동 침례교 협의회(CBF)는 현재 동성애 활동을 하는 자들을 안수하는 교회들을 포함하고, 지도자들이 상황적 낙태 지지를 공공연히 선언한 기관들과 협력하고, 동성애를 환영 혹은 주장하는 교회들에게 지난해 모든 '선교 지원금들'을 제공한 단체와 협력하고, 핵심 지도자가 어린이들을 사용한 음란물의 복제와 판매를 옹호한 단체와 협력한다고 했다.
미국 남침례교회의 변질의 예
미국의 앨러배머주의 헌츠빌 타임즈 2000년 1월 15일자의 한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천주교 신부가 침례교회에서 연설하고 안식교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대희년 예배를 위한 기독교일치 축제'에서이다. . . . 기독교 공동체는 1월 23일 [헌츠빌] 제1침례교회에서 예배와 찬양의 시간으로 모일 것이다." 주최측은 이것이 이 곳에서의 새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천주교 연사는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와 개신교와 복음주의자들/은사주의자들이 대화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안식교 목사는 말하기를, "우리의 소망은 모든 분열의 장벽들이 제거되고 우리를 연합하고 함께 모으는 것들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 더 낫다.
침례교회 세계연맹과 카스트로
침례교회 세계연맹은 2000년 7월 2-8일의 총회에서 매우 특이한 초청 연사인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을 듣도록 예정되었다. 큐바의 공산주의 독재자인 카스트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최초로 열리는 침례교회 세계연맹 모임을 위해 하바나에서 그 모임에 참석한 지도자들에게 연설하게 된 것이다. 침례교회 세계연맹 회장인 빌리 김(김장환 목사)과 사무총장 덴톤 로츠는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침례교회 세계연맹은 유엔의 비정부조직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1998년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연사이었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이 배교적 침례교회 세계연맹의 중심적인 후원교단이다.
미국 남침례교단의 자유주의자들
미국 남침례교단 내의 자유주의자들의 단체인 협동 침례교 협의회는 2000년 7월 1일 배교적인 침례교 세계연맹에 회원 신청을 하기로 결의했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의 조정자인 댄 베스탈은 적어도 5000개의 남침례교회들이 최근의 '침례교회 신앙과 메시지'의 변경 때문에 교단을 떠나 협동 침례교 협의회에 가입할 것이라고 예측한다[*그 변경이란 목사직을 남성에게 제한하는 것 등의 내용임.] 보수적인 남침례교회의 주류적 지도자들은 그 수를 훨씬 적게 예상한다. 협동 침례교 협의회 회원이며 침례교 연맹의 회장인 스탠 해스티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들을 목회자로 부르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또 그리스도를 믿게 되지 않는 사람들이 지옥에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나는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결코 건전한 보수교단이 아니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Battle for the Bible in the 21th Century)은 미국의 R. L. 히머스 2세 박사가 쓴 최근의 책의 제목이다. 미국의 보수적 남침례교단의 지도자들은 남침례교단의 지배를 위한 싸움은 끝났고 그들이 이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가? 그들이 이겼는가? 히머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서는 남침례교단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직 끝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 확실히, 교단의 지도층과 6개의 남침례교단 신학교들에서 성경에 관한 보수적 입장을 향해 급진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것은 그 조류가 남침례교단의 교회들과 교단적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단 안에 54개의 자유주의적 학교들이 있고 단지 12,748명의 학생들을 가진 6개의 보수적 학교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같은 시간에 113,581명의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남침례교단의 학생들의 90퍼센트는 자유주의 학교 기관들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35쪽).
그의 책은 60개의 학교들의 이름과 학생수를 열거한다. 히머스는 머서 대학교 총장 R. 커비 갓세이 같은 어떤 남침례교단 대학교 총장들의 극단적 자유주의 사상들을 인용 열거한다. 그는 페이지 페터슨과 폴 프레슬러 판사가 성경 무오성을 위한 초기의 투쟁을 인도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프레슬러 판사가 최근의 책에서 성경 무오성의 싸움에서 해롤드 린젤이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는 언급을 생략하였고 또 빌 포웰의 주요 저작을 비평하였음을 꾸짖었다. 데이빗 비일은 "이 책은 구체적으로 남침례교단 내의 그리고 전체적으로 좀더 넓은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 문제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진술이다"고 말했다.
[캐나다 교회들]
캐나다 연합교회(UCC)의 총회장 빌 핍스와 그 지지자들
교인 300만의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 새 총회장 빌 필립 목사는 10월 24일 오타와 시티즌지와의 대담에서 "나는 예수가 하나님이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천국과 지옥의 성격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나는 지옥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지옥에 대하여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 땅 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 . . 천국이 장소입니까? 나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떤 지 모릅니다. 그것은 부적절한 문제입니다"고 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사상에 대하여 첨가하여 말하기를, "예수께서 신적이지 않다는 노골적인 진술은 잘못된 인상을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만큼, 하나님의 본질을 계시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전체적 개념은 예수에게서 표현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신비하고 더 거룩합니다"고 하였다. 그의 발언으로 한 달이 넘도록 교단내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주의 진영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 보도에 의하면, 논쟁이 가열되자 85명의 교단 집행위원들이 대책 회의를 연 후, "캐나다 연합교회는 개인의 신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총회장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존중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 캐나다 연합교회의 신학 노선과 총회장 신임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영국교회(성공회)]
지옥에 대한 영국교회의 견해
크리스챤 뉴스 1996년 2월 12일자(15쪽)에 의하면, 영국교회의 교리위원회가 준비한 "구원의 신비"라는 보고서는 많은 전통적 입장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의 교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지옥불과 영원한 고통과 형벌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가학적(加虐的) 괴물로 만든 두려운 신학들을 고백했다. . . .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해 아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의 최종적이고 취소할 수 없는 선택 . . . 즉 유일한 종말은 완전한 비(非)존재이다.
이 보고서는 지옥을 영원한 고통과 형벌의 장소로 보지 않고 악인들의 최종적 멸절을 주장한다. 이것은 지옥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다(막 9:43).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인 몇 가지 증거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등이 소속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이 자유주의적이라는 몇 가지 증거들을 열거해보자.
첫째로, 예장 통합측 신학교인 장로회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오랫 동안 재직하였던 이종성 박사가 신정통주의자이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에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신정통주의'란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파로서 칼 바르트, C. H. 다드, 라인홀드 니이버 등의 신학사상을 가리킨다.
둘째로, 같은 교단에 속한 학자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설립자 및 전 원장인 한철하 박사가 장로회 신학대학이 신정통주의적이라고 논평한 적이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셋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이 오래 전부터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로, 그 신학교가 성경의 처음 다섯 권 즉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적인 문서설을 용납하고 또 이사야 40장 이하를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어떤 익명의 저자가 썼다는 자유주의 학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자, 우선 이상의 것들이 사실이 아닌가?
다섯째로, 예장 통합측 교단지도자들은, 비록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인물들까지도, 오늘날 심히 배교적인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교단 안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문제점들과 그 단체로부터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로, 장로회 신학대학원의 한 석사논문은 그 결론 부분에서 솔직히 진술하기를, "우리 입장은 신정통주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고 하였다.
일곱째로, 예장 합동측 신학교에 3년간 재학하였다가 통합측으로 옮겨 수년 간 공부했던 필자의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은 "과연 예장 통합측 신학교의 분위기가 다르기는 다르더라. 그러나 구약교수 한 명은 보수적이며 문서설을 반대하고 있다. 나머지 교수들은 '고뇌하는 신학자들'이라고 보인다"고 증거하였다.
여덟째로, 1980년도에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 부근에서 개척교회를 하던 예장 통합측의 한 목사는 학교에서 배운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적 설교를 요구하는 현실적 교회의 목회 사이에서 자신이 '고민'하고 있음을 필자에게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아홉째로, 예장 합동측 기관지였던 기독신보의 주필로 오랫 동안 일했던 채기은 목사는 그의 책 한국교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필자가 진단하기에는 본교단(예장 합동측)을 비롯하여 고려측, 성경장로회측, 호헌파, 재건파, 복구파, 중립파는 전적으로 보수주의 신학편에 들 수 있으며, 통합측은 반반[半半]으로 나뉘어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장측에는 절대다수가 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열째로, 1994년 예장 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안수안을 통과시켰다. 다시 말해, 통합측 총회는 사도적 교훈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여자목사와 여자장로를 세우는 잘못을 허용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11-14과 고린도전서 14:34-38에는 여성 목사와 여성 장로가 비성경적이라는 다섯 가지의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이상의 사실들은 예장 통합측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교단의 목사양성원인 장로회 신학대학원이 자유주의적이라면, 또 교단의 지도자들의 다수가 자유주의적이라면, 그 교단은 자유주의적이라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1983년, WCC는 이방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함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의 뱅쿠버 총회는 세계교회협의회 35년 역사상 최초로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섯 개 세계종교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으로 연설케 했다.
WCC의 죤 테일러의 혼합주의 사상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의 지도자인 죤 테일러(John Taylor)는 대표자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종교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데 협의회 회원들 가운데 일치가 있다고 하면서, "이슬람교도들과의 대화가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선교 활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방해된다. 우리는 이슬람교도들 가운데서의 모든 선교적 노력들을 중지해야 한다. . . . 많은 유대교인들이 우리를 제발 그냥 홀로 놔두라고 말한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그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WCC의 더크 멀더의 혼합주의 사상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더크 멀더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느끼십니까?"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였다.
1985년, WCC의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혼합주의적 책
세계교회협의회의 타종교들과 이념들과의 대화 위원회 의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판한 성경과 타종교인들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였다. 그는, "절대적 의미에서의 진리는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고, 우리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이 성 요한, 성 바울,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27쪽). 그가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성경이 명확한 기독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서로 다르고 모순된 기독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21, 22, 67쪽), 성경의 언어는 신앙의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6, 9, 24, 26쪽). 또한 그는 이교도들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회개해야 할 자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신, 힌두교의 신, 이슬람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힌두교적 이해, 이슬람교적 이해가 있을 뿐이다. . . .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형제 자매요, 순례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는 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다"(9-11쪽). "힌두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순례자이다(56쪽).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의 가장 큰 방해거리이었던 한 가지 요인을 골라내라고 요청한다면,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하는 이 절대적 주장들이 그것이라고 말할 것이다"(53쪽).
1990년, 스위스 바아르 모임
1990년 1월, 세계교회협의회의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과의 대화 분과'의 스위스 바아르에서의 모임은 15개국으로부터 온 21명의 헬라 정교회, 개신교회, 천주교회 신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였고 '종교적 다원성: 신학적 관점들과 선언들'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과 백성들 가운데 항상 하나님의 구원적 임재(臨在)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문서는 선언하기를, 다른 종교적 전통들의 '추구와 발견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셨다,' '그들의 가르침에서의 진실과 지혜와 그들의 삶에서의 사랑과 거룩은 . . . 성령의 은사이다,'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 문서는, 종교적 다원성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성취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과의 그리고 이웃들과의 우리의 만남을 깊게 할 기회로 본다. 또 그 문서는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 외의 다른 길들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선함과 진실과 거룩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 . .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백한 인격적 의탁에 제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서 나아갈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라고 한다. 그 문서에 의하면, 그 세계적 차원이 십자가와 부활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적 신비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 성취를 향해 펼쳐질 때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들로 매개(媒介)되고 표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우리 밖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고 감동하는 종교적 전통들의 구조 안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로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문서는 주장하기를,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신앙들의 사람들의 삶과 전통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우리가 다른 종교들의 진리와 선을 해석할 수 있는 것는 바로 성령의 세계 안에서이다"라고 하였다.
1991년, WCC 호주 총회에서 정현경의 샤마니즘적 행위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7차 총회에서는 한국 이화여대의 조직신학교수 정현경은 주제 강연에서 한(恨)을 안고 죽어간 영들, 예를 들어 하갈의 영, 우리아의 영, 입다의 딸의 영, 헤롯에게 죽임 당한 어린 아이들의 영, 잔다르크의 영, 십자군 파병 때 죽어간 백성들의 영, 지구상의 토착민들의 영, 나찌 시대에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의 영, 히로시마와 나카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죽임 당한 자들의 영, 광주에서, 천안문에서, 리쿠니아에서 죽은 자들의 영,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을 부르는 초혼(招魂)적 행위, 즉 샤마니즘적 행위를 하였다. 그는 또 독일 영화인들 앞에서 "하나님은 나의 문화에서 부처를 통해, 무당들을 통해 . . .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해방-생존-혼합주의의 영'이라고 고백했고, 또 "나는 여러분처럼 혼합주의자이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선환 학장의 종교다원주의
감신대학 학장 변선환 교수는 기독교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심을 부정하였다. 그는 기독교 사상에 기고한 글에서 "저들의 종교[타종교들]도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또 그는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동일시 할 때 거침돌이 된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크리스챤 신문 1990년 12월 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하여서 돌고 있다는 것을 기독교는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예수님을 절대화, 우상화시키며,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마에서 벗어나 . . . 신 중심주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현대사조라는 책에서 "교회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선행하여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의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를 비기독교 세계에 가지고 오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나라는 거기서 역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명백한 이단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유일성을 밝히 증거한다(출 20:3; 요 14:6; 딤전 2:5).
페이스 장로교회의 혼합주의적 발표회
1998년 6월, 미국의 알라바마 주 헌츠빌의 '종교간 선교봉사회'는 그 월례회에서 미합중국 장로교단 소속 페이스(Faith) 장로교회에서 '거룩한 소리들'에 대한 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바하이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및 세 개의 '기독교' 교단들을 포함하는 종교 대표자들은, 소리가 그들의 예배 형식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로버트 슐러
로버트 슐러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기독교 일치 학교의 (뉴 에이지) 연례 대회를 위해, 문선명과 함께 통일교회 행사에서, 그리고 몰몬교 성전에서의 종교인 조찬 기도회에서, 주강사로 나타났다. 뉴 에이지 운동가들, 몰몬교인들, 그리고 천주교인들은 그의 수정 대성전 강단에서 연설했었다. 그의 가르침들과 행동들의 일부는 자유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이단적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잃어버리고 죄악된 상태를 깨닫게 하려는 비기독교적이고 투박한 전략보다, 더 인간 개성에 대해 파괴적이고 따라서 전도 사업에 반생산적이라고 증명된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기독교의 깃발 아래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래 전에 죄에 대한 바울의 교훈과 이별을 고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신을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우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김경재 교수의 종교다원주의
정현경의 사상에 대한 논평
한국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인 김경재는 정현경 교수의 캔버라 주제 강연에 대해 동감하면서 이렇게 썼다: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서 유대땅에 화육하셨지만, 영원한 그리스도로서 연민의 사랑과 지혜의 영으로서 모든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 속에 현존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 기독교 전래 이전 불교와 유교를 믿고 살고간 우리 조상들은 지옥갈 우상숭배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혹은 그림자처럼 우리 가운데서 창조와 구원과 속량의 일을 행하여 오셨다고 믿고 신앙고백하는 것이 정 교수의 신앙고백이다. 필자는 그의 신앙고백에 동의한다."
그의 종교다원주의 사상
한신대학의 김경재 교수는 조선일보에 실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종교다원주의적 신념을 표현하였다. 유일신 신앙이 어떻게 다른 종교들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일신'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들을 인정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신(神)이란 모든 것을 통섭(統攝)하고 근원지우는 존재를 말합니다. 여호와, 야훼 등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신의 모습을 일컫는 것입니다. 로고스(Logos), 법(法), 도(道), 이(理)는 모두 진리를 가리키는 용어들로 문화권에 따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이중 로고스만이 옳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이지요."
종교다원주의에서는 기독교가 절대적인 종교로서의 위치를 잃게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면 정체성과 본질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가 예수와 바울을 거치며 그 울타리를 벗어났듯이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도 다른 문화와 전통을 만나면서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런 인식이 늦은 편이지만 인터넷 보급 등으로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편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러 종교 중 왜 하필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른 종교가 진리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 종교가 자신의 실존적 고민을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이 개인의 '궁극적 선택'이 갖는 진지성, 결단성, 고유성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에 철저한 사람만이 다른 종교와의 진정한 대화와 협동도 가능합니다."
유일신관 비평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며 한신대학교 교수인 김경재 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그의 저서 이름 없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유일신관을 강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책에서, "각 역사적 종교는 서로 다양한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고백된 '구원의 길들'을 열고 있다"고 전제한 뒤, "타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존경심을 갖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깊이 헌신한 것, 이것이 신앙의 자세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하느님은 이름 없는 존재로 인간이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와 풍토와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실한 언어로 붙인 이름들이 있을 뿐이다"며 "그것은 하나님이기도, 알라이기도, 비로자나불이기도, 브라만이기도, 한울님이기도하며 신, 로고스, 태극이거나 혹은 이름 없이 가슴 속에 담아두며 흠모하는 우주적인 어떤 존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비록 그 언어적 표현과 문화적 형식, 역사적 행태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 진리성에서는 하나로 수렴되고 또 동일한 종교심의 발로라는 점에서 서로 소통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따라서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향해 가고 있다.
또 그는 "45억년 동안의 생명 진화 과정에서 불과 300만년 전에 출현한 인간 종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지구촌 각 지역에서 '영적 진리 체험', '하나님과 구원 체험', '인간의 제한성과 자기 초월성 체험'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경이로움을 넘어서 신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증험하는 커다란 증좌가 아닐 수 없다"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은 물론이고 우리의 동학이나 원불교, 무교 등과 같은 종교들도 지구촌이라는 정신적 삶의 동산에서 피어난 영적 꽃들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종교다원주의적 사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진리와 명백히 반대되는 오류이다. 성경은 성경의 하나님만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다른 신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의 하나님만이 자신의 뜻을 성경에 충족히 계시하셨기 때문에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알 수 없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사야 45: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요한복음 8:24,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구약 시대에 종교가 부패되었을 때마다 이방 종교들을 포용하는 혼합주의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이다.
WCC 지도자들의 이방 종교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지도자들은 교회 단체들에게 세계의 선교와 전도의 역할을 새롭게 보라고 요청하고 있다. WCC의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는 200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WCC의 '폭력 극복 10년'이라는 행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선교적 활동과 세계적 전도가 많은 국가들에서 충돌과 폭력의 원천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1년 4월 25일자 연합 감리교 뉴스 서비스 보도에 의하면, 라이저는 너더댓 나라들에서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과 불교인 간의 긴장 상황들을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교회는 선교 활동의 초점을 나라들 안에서나 관계에서 "화평과 화해의 사역"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 보도에 의하면, 라이저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화해의 중개자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대신 그들의 선교 활동이 충돌의 원천이 되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면 선교에 실패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라고 했다. 연합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위원인 멜빈 탤버트 주교는 라이저와 동감하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와 사랑의 복음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 보도에 의하면, 탤버트는 믿기를, 교회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초점을 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이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데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탤버트는 말하기를,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다른 종교나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시각은 전혀 타당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탤버트는 요한복음 17장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예수께서 지구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즉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호소하고 계신" 기도로 언급하였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부언했다.
한 길 이상인가?
다음의 인용문은 2002년 10월 22-24일간 미국 미주리주 모네트에서 모인 미국 기독교회협의회에서 통과된 일곱 개의 결의안 중 하나에서 발췌된 것이다.
개신교 대교단들, 몰몬교회, 여호와의 증인, 로마 천주교회, 이슬람교, 불교 등 가운데서 구원의 길에 관한 혼란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적 다원주의가 널리 용납되고 있기 때문에('모든 길은 결국 천국에 이른다'는 신념,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께 경배하며 천국을 향한 길을 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는 성경에서 발견되는(행 4:12; 딤전 2: 5; 요 3:36; 14:6) 기독교의 유일한 메시지를 선언할 것을 결의한다.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성경에 의하면 오직 구원의 한 길이 있다. 구원은 은혜로만, 믿음을 통해서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다(엡 2:8-10).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기독교회협의회 회원 교회들은 성경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왜곡을 경계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유일한 길을 선포하기를 요청할 것을 결의하는 바이다.
미국 감독교회의 혼합주의적 경향
미국 감독교회는 수년 동안 이방종교를 용납해왔다. 뉴욕의 성 요한 대성당이나 샌프란시스코 은혜 대성당에서는 불건전한 신비주의 의식들이 집행되었다. 캘리포니아 감독교회 감독 윌리암 스윙은 1996년 국제연합(UN)처럼 모든 종교를 모아 대화케 하려는 종교연합 발기인회를 설립했다.
선교 개념의 변질
1980년, 멜본 세계선교대회의 선교 개념
1980년 멜본에서 열린 세계선교 및 전도대회는, "인권을 위한 투쟁에의 참여는 그 자체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과 행위로 선포할 교회의 전체적 선교[사명]의 중심적 요소이다"라고 선언했다.
WCC 총무들의 선교 개념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필립 포터는 "우리는 경제적 정의와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갱신을 위한 투쟁들을 하나님의 선교를 통한 세계의 전체적 해방의 요소들로 본다"고 진술했다.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심지어 사회적 전도 개념을 주장하기를, "복음 전도에서 우리는 개인적 문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 질서 전체의 변혁을 목표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선포는 그 나라에 참여하는, 그 투쟁들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혁명적 참여가 된다"고 말했다.
1983년, WCC의 선교 개념
세계교회협의회의 1983년 선교와 전도선언서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개인의 회개를 요청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 . . 복음 전도는 이 세상의 구조들,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에 대해 말한다"고 진술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이러한 새로운 선교 개념은 특히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선교 및 전도위원회로 통합된 이후 그 위원회의 의장이 되었던 필립 포터의 지도 아래 나타났다. 그 후, 그 선교 개념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웁살라 총회에서 공적으로 제안되었고, 1973년 방콕에서의 세계선교 및 전도대회에서 강조되었다. 현재의 상태는 이전 역사의 계속일 뿐이다.
미국의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선교 개념
미국의 9개 교단의 통합을 추구하는 교회연합 협의회(COCU)는 교회의 공동적 선교(사명)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라고 선언했다.
WCC의 과격 단체 지원
세계교회협의회의 인종차별투쟁 프로그램(PCR)은 총체적 선교 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1970년 이후 남아프리카의 '아프리카 국가회의'(ANC)와 나미비아의 '서남 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등 과격한 마르크스주의 폭력단체들에게 1992년 9월말 현재 1,007만불 이상을 지원하였다.
WCC와 공산주의의 은밀한 결탁
이전의 소련 통신사인 타스 통신은 러시아 비밀경찰 요원들과 동독의 비밀경찰이 유럽 교회들의 대회와 세계교회협의회에 침투하였으며 1984년에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선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하였다. 3천명이나 되는 많은 교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자들로 행동했을 것이다. 일부의 러시아 정교회 신부들과 지도자들은 위험을 면하며 그들의 일들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그들의 성직자의 복장을 사용하였다. 1986-87년 미국 연방수사국 보고서에 의하면, 소련 사람들은 미국교회협의회나 세계교회협의회를 그들의 선전 목적들에 사용하고 공산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이것을 조종하였다. 한 신문은 보도하기를,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 아래의 정부의 도구이며 "어떤 정교회 신부들은 단순히 비밀경찰의 협력자들로서가 아니고 실제적 요원들로서 활동했다고 보인다"라고 하였다. 게하르트 베지에르, 아르민 보이엔스, 게하르트 린데만 등 독일 학자들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동유럽의 정보기관들에 의해 침투를 당했고 이전 회장들 중의 한 사람인 메트로폴리탄 니코딤(Nikidim)이 러시아 비밀경찰요원이었음을 확증하였다.
이형기 교수의 선교 개념
기독교보 1996년 10월 12일자(5쪽)에는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김영한 교수) 제1회 정기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장로회신학대학(예장 통합) 이형기 교수의 "한국개신교의 나아갈 방향: 선교신학의 입장에서"라는 제목의 강연이 요약 보도되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이 교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심시키는데 촛점을 두었던 19세기 선교개념이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에서는 교회의 사회참여 측면을 포함하게 되었다고 전제한 후, 이 두 흐름의 선교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전체적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 참여를 선교에 포함시키는 '넓은' 선교 개념은 성경의 명확한 교훈과 교회의 바른 전통에 어긋난다. 영혼 구원의 일이 아닌 일반적 사회정치활동은 예수님의 사명 곧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사명으로 명하신 적이 없고 사도행전에 증거된 대로 초기의 제자들이 행한 적이 없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영혼구원의 전도만이 교회의 사명(선교, mission)임을 밝히 이해하고 실천해왔다.
기타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교의 잘못된 정신
1636년 목사들을 위한 양성 학교로 설립된 미국 하버드 대학교는 130억달러의 기금과 16억달러의 연간 수입을 가진 미국 고등 교육의 우상이 되었다. 학교에 출석하는 18,000명의 학생들 가운데, 학부 학생들은 매년 수험료와 기타 경비로 무거운 32,000달러의 금액을 낸다. 낙태 찬성, 반(反)군국주의, 인종 편애, 과격한 남녀평등주의, 종교적 상대주의 등의 자유주의적 입장은 캠퍼스에서 복음으로 간주된다. 천주교회 신부가 부장인 하버드 신학부는 자유주의와 개방적 마음가짐, 다양성(그러나 위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없다!) 및 정치적 정확성 등을 자랑한다. 기독교에 대한 편견은 하버드 대학교에 퍼져있다고 한다.
'위대한' 설교자들 목록
프리칭(Preaching)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을 열거하면서 빌리 그레이엄과 마틴 루터 킹을 처음 10명 중에 두었다. 그 목록은 또한 스코틀랜드 설교자 제임스 스튜어트, 죠지 버트릭, 해리 에머슨 포스딕, 캠벨 모건, 윌리엄 생스터, 죤 알 더블류 스토트, 마틴 로이드-죤즈, 및 클레어런스 매카트니를 포함한다. 두 번째 10명은 레슬리 위더헤드, 죠지 트루에트, 알 쥐 리, 노만 빈센트 피일, 피터 마솰, 이 스탠리 죤스,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 랠프 사크맨, 더블류 에이 크리스웰, 및 가드너 테일러이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해리 에머슨 포스딕, 노만 빈센트 피일 등은 정통 기독교와 거리가 먼 사상을 가진 자들이다.
마틴 루터 킹은 참된 신앙인이었는가?
전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이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는 마틴 루터 킹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악한 거짓말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킹은 그를 기념하는 공휴일이 지정될 정도로 영예를 얻었고 천주교회에서는 신앙을 위한 순교자로 선포될 후보자가 되었다. 투투 대주교는 지난 12월 세계교회협의회 모임에서 그에게 찬사를 돌렸다. 그러나 크리스챤 뉴스 2000년 1월 3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실렸다:
수많은 사실들은 킹이 공산당과의 의식적 협력자이었고 표절에 의해 그의 철학박사 학위를 얻은 거짓말장이요 . . . 간음을 행하는 자이었고 . . . 미국의 적국에게 원조와 위안을 준 반역자라는 것을 의심 없이 확증한다. . . . 그는 예수의 참된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신학교 출신이며 역사적 기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에게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말했다. 마이클 다이슨은 나는 당신을 거기에서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참된 면모라는 책에서, 위의 사실들 중 표절자, 간음자 등을 확증하고 킹이 죽을 무렵에는 미국의 불평등의 해답이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 침례교 목사 토니 캠폴로
미국 침례교 목사이며 이스턴 대학의 사회학 은퇴 교수인 토니 캠폴로는 2001년 6월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의 아침 식탁에서 거의 1000명의 장로교인들에게 연설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교단 내의 권력을 위해 싸우지 말고 사랑을 통한 일치를 구하라고 요청하였다. 최근에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동성애자들의 목사 안수 문제와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독점적 수단인지에 관해 심각히 의견이 나뉘어 있다. 그는 말하기를, 실제로 교권 싸움에 불과한 신학적 문제들로 싸우기보다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쓰라고 촉구하였다. 그는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역사를 바꾼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로서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을 들었다. 미합중국 장로교회도, 토니 캠폴로도 무지한 배교자들이다.
안식교와 장로교회의 잘못된 교제와 협력
제7일 안식교(SDA)와 개혁교회 세계연맹(WARC)은 교리적 차이점들을 제쳐놓고, 중요한 사회적 관심과 문제들을 표현하는 일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두 단체는 2001년 4월 1일부터 7일까지 스위스에서 첫번째 공식적 대화를 가졌고 에이즈 질병의 위기, 여성들과 아동들에 대한 폭력, 그리고 종교적 자유를 협력이 가능한 공통 분모라고 인정하였다. 2001년 5월 4일 에큐메니칼 뉴스 서비스에 의하면, 그 대화는 "일반적 교리 연구를 회피하였고 . . . 사회적 사명의 실제적 문제들로 직접 갔다." 그 단체들은 그들의 교리적 차이점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공통 분모를 개략적으로 표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 대화에 참석하였던 WARC의 신학담당관 오데어 페드로소 마테우스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사회적 사명을 교리보다 우선하는) 이 같은 형태의 대화를 본받는다면 다른 교회들과의 모임들도 더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테우스는 말하기를, "고전적 형태로는, 만일 우리가 교리적 차이점들을 극복한다면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아마 우리가 먼저 사명을 함께 수행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게 될 것이고 에큐메니칼 영성을 발전시킬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분열을 넘어서 우리의 믿음을 함께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라고 했다. 안식교 리뷰지 편집자이며 그 대화의 참석자인 윌리암 죤슨 박사는 말하기를, 안식교는 "개신교 기독교의 주류에 있다"고 하였다. 그는 부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복음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주류 그리스도인들이다. . . .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온 세계에 많은 중개자들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는다"고 하였다.
2. 에큐메니칼 운동
세계교회협의회(WCC)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평가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 제6차 뱅쿠버 총회시 "뱅쿠버의 복음주의자들: 공개 편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복음주의자들 다수의 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들이 복음의 핵심을 신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명백히 받으신'자들이므로,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지도자들로부터 물러나지 말고 기쁘게 그들을 영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선언할 압박을 느꼈다." 이 공개 편지의 서명자들은 풀러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이며 미국장로교회(PCA) 목사인 아더 글라서,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전 총무이었던 월드론 스카트,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 간사인 로버트 영블러드, 고든-콘웰 신학교 교수인 리차드 러블레스,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협의회(REC)의 총무인 폴 슈로텐보어 등 200여명이었다.
WCC의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손짓
1998년 12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8차 총회는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지도자인 죠지 반더벨드를 주요 연사로 내세웠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지도부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 파송된 월드 비젼의 공식적 대표인 독일 루터교회의 쿠르트 방게르트 목사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의 사상'
2000년 2월, '교회 일치운동의 역사와 현황'이라는 제목의 제1회 에큐메니칼 포럼의 기조 발제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인 박종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보수적 교회]와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강조하는 부류[진보적 교회]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고, 이 둘을 포함하는 통합적 에큐메니즘이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상황의 경우, 지금에 와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운동과의 대립 구도로 자리 매김되는 축소된 위상을 지녀왔으며,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심화된 상태의 '적대적 냉전 구조'에서 파생되고 강화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과 적그리스도적이며 우상숭배적인 천주교회의 신학의 포용에 있다. 이단을 배제함이 없는 연합은 현대판 바벨탑 운동에 불과하다!
WCC의 진퇴 양난: 개종인가, 대화인가?
WCC 사무총장 코라드 라이저는 스리 랑카에서 로마 카톨릭 신학교 교수들과 개신교회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종(改宗)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개종시키는 신앙이었고 '이방인들'을 회심시키려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다른 종교들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에서는 그리스도의 독특성을 선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참된 대화를 원하는 내적인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특권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적 '기독교' 일치를 원함
최근에 미국의 풀러신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WCC는 전세계의 모든 교단들을 연합할 전세계적 새 기독교 포럼을 제안하였다." 이 포럼은 단지 현재의 WCC 소속 교단들뿐 아니라, 현재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단체들, 예를 들어 천주교인들과 오순절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도 포함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주의하라
WCC는 말세의 배교의 명확한 예이다. 구체적 한 예로 WCC에서 출판된 예배 지침서인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No Longer Strangers)라는 책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을, 평화의 숙녀, 지혜의 숙녀, 사랑의 숙녀, 출산의 숙녀, 별들의 주, 행성들의 주, 어머니, 빵 굽는 여인, 단순하신 자 등의 이름들로 부르기를 격려한다. 이 책의 교독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세상을 불러 존재케 하신 어머니-아버지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 여자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상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인성(人性)을 나누어 가지시고 거절을 당하시고 죽으셨으나 마침내 죽음을 정복하시고 세상을 그 여자 자신과 묶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WCC 지도자는 근본주의를 혹평함
카돌리코스 아람 1세는 2003년 제네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의 의장이었다. 중앙위원회는 WCC의 주된 운영기관이다. 아람은 종교간 대화가 WCC의 에큐메니칼 증거에서 충분히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지 못했다고 염려한다. 그는 종교들의 공존이 흔들리게 되고 있다고 말했고 또 근본주의가 "종교의 가장 큰 적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근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모든 종교들을 위해 첫번째의 긴급한 우선순위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선전이 강화될수록,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입장을 취하는 비타협적 근본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압박과 핍박이 올 것이다.
침례교 세계연맹(BWA)
침례교 세계연맹(BWA)의 연합주의
1998년 3월 실행위원회 모임에서, 침례교 세계연맹 총재 닐슨 패니니는 말하기를, "신학은 때때로 우리를 분열시키지만, 선교와 전도는 우리를 연합시킬 수 있다"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이 수년 전에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빌리 그레이엄과 코리타 스캇 킹은 1999년 1월 9-11일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릴 '인종차별반대 국제침례교회 지도자회의'의 공동회장이 될 것이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이 배교적 침례교 세계연맹의 회원 교단이다. 미국에서 근본주의자라고 알려진 제리 팔웰은 최근에 남침례교단에 가입한 바 있다. 미국 남침례교단은 1995년에 40,039교회, 1,566만 교인을 가진 세계 제1의 대교단이지만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그 교단 안에 있고 그 교단이 배교적 침례교 세계연맹의 회원 교단이라는 사실은 슬픈 일들이다.
미국 교회들의 연합운동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1998년 기독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연합 그리스도교회, 및 미국 개혁교회는 국내외 선교협력과 목회자 상호인정 등을 포함한 '전면적' 교단 교류를 선언한 합의서를 수용하였다. 미합중국 장로교회 외의 다른 세 교단들은 지난해 총회에서 이미 그것을 수용했고,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3월 19일 현재 172개 노회 중 표결을 끝낸 111개 노회 중 109개 노회가 그것을 찬성함으로써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네 개 교단의 대략적인 교인수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가 520만명,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270만명, 연합 그리스도교회가 150만명, 미국 개혁교회가 30만명이라고 한다.
미연합 그리스도교회나 미복음주의 루터교회나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자유주의적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도를 말한다면, 연합 그리스도교회나 미복음주의 루터교회가 좀더 자유주의적인 것 같다. 그 교회들은 하나님의 참된 진리들을 저버린 배교적 교단들이다. 배교적 교단들 간의 교제! 그러나 그 교단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순진한 교인들,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 마음은 심히 안타깝다. 성도들아, 정신을 차리고 깨어 성경 말씀에 굳게 서라. 자유주의 교회들에 머물러 있는 진실한 성도들아, 분별력을 가지고 거기에서 속히 나오라.
전국 기도의 날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제임스 답슨 목사의 사모(쉴리)는 매년 모이는 전국 기도의 날의 의장이었다. 공동의장은 대학생선교회의 빌 브라잇의 사모(보네트)이었다. 촬스 콜슨은 전국자문위원회에 들어 있다. 랍비 조슈아 하버만, '신부' 로버트 시로코, 및 디 제임스 케네디는 연결 고리들이었다. 전국 기도의 날 책자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들에 따라서 참여하도록 격려된다. . . . 전국 기도의 날은 모든 신앙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해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만들어졌고 의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수 24:18-20). 그는 그의 영광을 유대교와 로마 천주교의 이방신들과 거짓신들과 함께 나누시지 않을 것이다.
이단종파자들과 함께한 예수 행진(March for Jesus)
앨러배머 뱁티스트 1999년 5월 13일자는 "'예수를 위한 행진' 은 예수를 경배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에큐메니칼 사건이다"라고 보도하면서 그것은 "사랑을 향한 더 큰 행보를 내딛는 자들을 연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의 버밍햄 행사는 크로스 대성당에서 시작되었고 라우얼즈의 숙녀 카톨릭 교회에서 끝났다. 슬프게도, 지역 행사는 웨스트 헌츠빌 침례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말하기를, 솔트 레이크 시의 예수 행진에서는 몰몬교도들이 참여하도록 초청되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의 예수 행진에 초청된 '거짓 그리스도들'을 열거했다: 1) 로마 카톨릭 미사에서 경배되는 떡 예수, 2) 일부다처자인 몰몬 예수, 3) 처녀에게서 탄생치 않으신 현대주의 예수, 4) 하나님이 아니신 유니테리언 예수, 5) 아무도 지옥으로 보내지 않을 보편구원론 예수, 6) 부요하신 번영의 예수, 7) 그의 영으로 사람들을 '죽이시고' 그들로 하여금 억제할 수 없이 웃고 술취한 자들같이 비뜰거리게 하는 웃는 예수, 8) 사람을 결코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그의 자화상을 건립해주기 위해 오신 자기 존중의 예수, 9) 해방의 신학의 창설자인 혁명적 예수.
미국교회협의회는 더 넓은 연합을 추구함
AP통신에 의하면, 미국교회협의회는 새 조직체의 시작을 탐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만날 것이라고 한다. 이 발기통지문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와 미국 복음주의 협회에 보내졌다. 미국교회협의회는 지난해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새 에큐메니칼 모험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었다.
에큐메니칼 우상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
팻 로벗슨은 다양한 현장들을 통해 에큐메니칼 우상이 되었다. 그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천주교 연맹을 창설하였다. 1995년 천주교 교황이 미국 뉴욕시를 방문하는 기간, 로벗슨은 미사에 참여할 다섯 명의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27명의 개신교회와 헬라정교회 대표자들을 포함하는 에큐메니칼 행진을 인도하였다. 그는 교황을 칭송하고 "우리 모두는 천주교회와 다리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로벗슨이 명예총장이고 총장이 천주교인인 리전트(Regent) 대학교에서는 매 주일 교정에서 미사가 있다고 한다.
미국 장로교인들은 계속 미국 교회협의회(NCC)를 지원함
2000년 미합중국 장로교 총회는 미국 교회협의회에 대한 그 교단의 270만불의 후원금과 세계 교회협의회에 대한 120만불의 후원금을 삭감하자는 두 개의 헌의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다. 그것은 그 교회가 교회협의회를 위해 충분히 재정 지원을 계속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 장로교회는 미국 교회협의회의 두 번째로, 즉 연합감리교회 다음으로 큰 후원교단이며, 그 돈의 대부분은 세계 봉사국이라는 그 협의회의 기관을 위해 사용된다. 그 교회는 또한 그 협의회의 부채를 위해 50만불을 지원했었다.
미국의 진보-보수 교회들의 연합 추진
미국 교회협의회와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빈곤, 낙태, 동성애 등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진보적(자유적) 교회 협의체와 보수적 교회 협의체를 하나로 묶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로버트 에드가 미국 교회협의회 총무는 새 연합체가 탄생할 경우 앞으로 3년 안에 미국 교회협의회를 자체 해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950년에 창설된 미국 교회협의회는 개신교회의 주류 교단들과 동방정교회 등 35개 교단들에 5200만명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으며, 1942년에 창설된 미국 복음주의자협회는 51개 교단들에 3000만명의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에서 보수적 교회 단체와 자유적 교회 단체의 연합 움직임은 이전보다 교회들을 더욱 혼란시킬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적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결코 혼합될 수 없다. 이 두 입장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보수주의자들이 인도하는 남침례교단의 타협적 경향은 늘어나고 있고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2000년 주목되는 한 사건은 6월 11일 버밍햄에서 열린 '오순절 2000' 행사이었다. 7월 13일 앨러배머 뱁티스트는 이 에큐메니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한 신앙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많은 교단들의 가수들, 무용수들 및 기타 연주자들을 포함했다. 버밍햄 침례교회 협회와 기타 몇 지역의 침례교회들이 참여했다." 버밍햄의 사우스사이드 침례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성장 담당 부목사인 페기 샌더포드는 말하기를, "우리의 신앙 체제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 연합되어 있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침례교인들, 천주교인들, 그리스도의 교회와 자유주의적인 대교단들의 대표자들을 포함했다. 워터 버가트 신부는 말하기를, "교리는 분리시키나 봉사는 연합한다. 우리는 감히 경쟁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하나의 새 '기독교' 연합 단체
미국의 천주교회, 개신교회, 헬라 정교회 지도자들은 2001년 1월 5일 미국 프린스톤 대학교에서 새로운 '기독교' 연합 단체를 형성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2004년의 두 주간의 대회를 계획한다. 그 단체는 자신을 '북미 신앙과 직제 대회를 위한 재단'이라고 명명한다. 그것은 천주교인들, 복음주의자들, 주류파 개신교인들, 오순절파 교인들, 및 헬라 정교회 신자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16명의 위원들 가운데는 천주교회 대주교 윌리암 키일러, 헬라 정교회 대주교 디미트리오스, 풀러신학교 교장 리차드 무우, 하나님의 교회 신학교 교수 체릴 죤스, 프린스톤 신학교 교장 토마스 길레스피가 있다. 한 캐나다 수녀가 회계이다.
미국 최대의 연합교단 기구 탄생
2002년 1월 18일, 미합중국 장로교회, 연합감리교회, 미국 성공회,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 등 미국의 9개 교단들은 '연합하는 그리스도의 교회'(CUIC)라는 연합 교단 혹은 에큐메니칼 기구를 형성한다. 그 교회는 아직 교단들의 조직과 교권의 통합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2007년까지 소속 교단들의 목회자들의 강단 교류를 포함하여 완전한 일치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속 대화하기로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단체는,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는 배교적 교회들의 연합체이다. 이런 류의 연합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과는 상관이 없는 인간적인 바벨탑에 불과하다.
미국 기독교회들 엽합
"미합중국 기독교회들 연합"(Christian Churches Together in the USA)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2002년 4월 미국의 천주교회, 자유주의 개신교회, 복음주의, 헬라 정교회, 오순절파 지도자들 혹은 대표자들에 의해 서명되었다. 그러나 연합주의자들의 그러한 넓은 연합은 적그리스도의 한 세계교회 형성의 한 단계이다.
여행 길을 위한 초청
미국의 주류 개신교회, 헬라 정교회, 천주교회, 오순절파와 복음주의 교회지도자들은 대화를 위한 두 차례의 모임을 가졌고 2003년 1월에 세 번째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34명의 교회지도자들은 어떻게 "우리가 새 삶의 비젼을 함께 보는가"를 묘사하는 "여행 길을 위한 초청"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비젼은 "우리로 하여금 임시적으로 우리 자신을 '미합중국 기독교회들 연합'이라고 부르게 인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큰 일치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미국교회협의회 사무총장 밥 에드가 박사는 실행이사들에게 "여행 길을 위한 초청"의 내용을 그들 회원교회들 안에서 두루 나누도록 강권하였다. "지금은 함께 모이고 더 넓고 더 깊은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할 중요한 순간이다." 성경은 말세에 세계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새 에큐메니칼 연합기구
에큐메니칼 단일 세계교회
로마 카톨릭 교인들의 숫자는 현재 10억에 이르며, 그들 중 절반은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 전문가들은 예측하기를, 2000년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는 세계 카톨릭 인구의 거의 4분의 3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총무는 주류 기독교회들이 2000년에 모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는 세계적 기독교 협의회에 도달할 한 절차를 시작하기를 재차 요청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수석 교리 고문 라칭거 추기경은 "교회의 일치와 신앙과 도덕에 대한 [카톨릭의] 책임"에 대해 말하며, 또 그는 "이제까지 분리된 공동체들이 교황과 더불어 일치 안으로 들어올 때" 교황직의 사용이 기독교계를 변화시킬 방식들을 구상한다. 1995년 교황은 비(非)카톨릭교인들을 초청하기를, 교황직의 사용이 기독교 일치에 장애물이 아니라 도구가 되도록 함께 재고하자고 하였다.
유럽의 교회 연합 운동
유럽의 로마 천주교, 헬라 정교회, 개신교회와 성공회는 에큐메니칼 관계를 촉진하고 유럽 대륙의 유익을 위한 가시적 일체를 위해 협력하기 위해 그들의 차이점들을 제쳐놓자고 뜻을 모았다. 서로 대화하고 유럽 교회들 간의 화해를 증진시키려는 헌장에 서명하기 위해, 여러 교회들과 교단들로부터 온 약 200명의 공식적 참석자들이 2001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모였다. 그 모임은 유럽 천주교주교협의회와, 전 유럽 120개 헬라정교회, 성공회, 개신교회들을 대표하는 유럽 교회 대회에 의해 공동으로 조직되었다. 그 모임의 마지막 날, 지도자들은 카르타 오에쿠메니카(에큐메니칼 헌장)에 서명했다. 기자 회견에서, 프라하의 로마 천주교 대주교, 카디날 밀로슬라브 비크는 이 헌장이 "유럽의 교회들의 가시적 연합운동"을 향해 길을 닦기 위해 의도되었다고 말했다. 비크는 부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기독교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共有)하고 있는지 잘 느끼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주기도를 공유하고 있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공유하고 있고 . . . . 우리는 성령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바와 우리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하였다." 2001년 4월 23일 카톨릭 뉴스서비스 보도에 의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모임 참석자들에게 서한을 보내어 격려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유럽 대륙에서 한 목소리로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쓰기를, "주께서 다락방에서 기도하셨던 일체성은 기독교적 증거의 신임성의 조건이다"라고 했고 또 부언하기를 "복음의 분명한 제시가 특별히 유럽에서 긴박하다"고 하였다.
한국 장로교 연합운동
장로교 일치운동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대신, 개혁, 기장 등 장로교 주요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는 1997년 3월 31일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장로교 연합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서 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고, 통합측의 김순권 목사는 "권위주의와 신학교 난립, 감정 대립 등이 장로교 분열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정확하지 않다. 물론 한국 장로교회들의 분열 역사에서 권위주의나 감정대립의 요소가 없었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신앙인들도 성화의 불완전 때문에 겸손을 잃고 감정이 격화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국 장로교의 주된 분열의 원인이었는가? 한국 장로교회의 주된 분열은 고신, 기장, 통합, 합동의 분열이다. 이 네 교단이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52년 고신 교단의 분립은 총회측에서 신사참배가결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조치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고신 교단은, 비록 인간적 연약성을 종종 보였지만, 가장 순수한 흐름을 잇고 있다. 1953년 기장 교단의 분립은 총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을 두둔하는 이들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교리적 문제로 인한 분열이었다. 19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은 일차적으로 분명히 세계적인 에큐메니칼 운동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보는 견해의 차이 때문에 일어났다. 통합측은 그 협의회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합동측은 그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창립당시부터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단체이었고 세계교계가 이미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하여 혼란한 때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분열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볼 때, 과거 역사상 한국 장로교의 가장 중요한 분열은 일차적으로 신학적 문제에 있었지, 단지 인간적인 생각이나 교권주의나 감정 대립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한 교회일치는 건전한 교리적 일치에서 찾아야지 교리적 오류를 무시한 일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불과하다.
한국장로교 일치운동
한국의 대표적 두 장로교 협의체인 한국장로교협의회와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가 1997년 5월 15일 합동총회를 열어 통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기사에 의하면, 양측 5인씩의 합동위원회 모임은 '조건 없는 합동'을 결정하였고 두 단체의 회장들은 "두 단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데 동의하였다고 한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데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적으로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 통합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의 통합이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것은 특히 한국장로교협의회['한장협']가 신앙적으로 건전한 협의체인가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대한예수교장로교협의회['예장협']은 34개 교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보수적인 많은 군소교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한장협은 예장 통합, 기장,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의 교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장은 물론, 예장 통합이 오늘날 불신앙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교단들과의 협의 혹은 그런 교단들을 포함하는 일치 추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장과 예장 통합에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그 동안 한국장로교회 일치 논의에서도 상당히 드러났다. 크리스챤신문의 한국장로교회 일치 위한 특별좌담 보도에서, 예장 통합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는 교회가 "과거 분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허위 구조 즉 정통성 수호라는 미명아래 교인들에게 강요해온 모든 허위구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주의'가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 좌담에서 기장 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교리적 확신]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대신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제의했다. 심지어 그는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 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 보수 신학에선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좌담은 한국교회 안에 자유적 교단과 보수적 교단의 사상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내 보인다. 예장 통합측 목사의 사상은 기장측 목사 못지 않게 자유적이고 심지어 예장 대신측 총무의 발언은 참 놀랄 만하다.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김재준 박사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니 그것이 예장 대신측의 입장인가? 기독교는 바른 교리 위에 세워졌다. 바른 교리와 잘못된 교리를 구별치 않는다면 정통과 이단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의 건립과 진행을 위해 본질적이다. 그러나 한장협은 이런 심각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한국장로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활동해왔던 것이다.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일치 개념
1993년 한장협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궁극적으로 한 장로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한장협은 1994년 사업 계획에 각종 강단 교류, 신학생 예배 강단 교류, 세계 장로교와의 교류 등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바른 교리, 바른 신학을 무시한 교회 일치 운동은 성경적 운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운동이 아니다. 기장측이 명백히 자유주의 노선이고 예장 통합측도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기 때문에, 그 두 교단은 자체정화를 해야 하고 그 때까지 적어도 그 두 교단을 포용하는 한국장로교 연합활동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가르쳤고(딛 3:10), 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후 6:14).
잘못된 일치운동
1996년 9월 "한기총은 어디로"라는 주제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발제자 한명수 목사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과 교회협[한국기독교회협의회]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찬자로 나선 정진경 목사 역시 개신교계 대표성을 띤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 한기총과 교회협의 하나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도 "한기총 대표회장 최훈 목사도 하나되는 소망을 갖고 일한다"며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개념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교단의 목회자 양성기관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세력을 잡고 있는 소위 자유주의 교단들이 중심이 된 교회협[NCC]과, 비교적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인 한기총이 통합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후 6:14)는 성경의 교훈을 어기는 일이다.
장로교 연합예배
기독교연합신문 1997년 6월 8일자(15쪽)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장로교협의회가 주최한 서울지역 장로교연합예배가 6월 1일 과천교회에서 있었다. 그날 낭독된 공동선언문에는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위에 세워진 하나의 장로교회이므로 이 본질 위에서 정통과 전통을 이어나갈 것,' '교단의 정치 부조리를 물리치고 점진적인 신학 교류, 강단 교류, 연합행사 등을 실시해 장로교회의 원형으로 회복할 것' 등의 내용이 있었다. 한국장로교협의회에는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이 예장 통합과 기장과 더불어 참여하고 있다. 예장 합동, 고신, 대신, 개혁 등의 교단이 신학적으로 보수적 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며, 예장 통합과 기장이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 혹은 포용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기장은 처음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한 교단이었다.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이 주로 한신대, 감신대, 연대 신대 등을 통하여 흘러들어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예장 통합측의 장신대도 신학적으로 '신정통주의적'인 입장에서 맴돌았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보수적 신학을 가진 장로교단들이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들과 함께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장로교회의 원형'을 논하고 '신학 교류와 강단 교류'를 제안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 교회지도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수교회 지도자라는 분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런 류의 연합을 주장하고 거기에 참여하는가? 성경은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통]을 지키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고 말했다(살후 2:15; 고후 6:14).
오도(誤導)되는 연합운동
기독교보 1997년 6월 21일자(3쪽)에는 예장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인 조순태 목사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조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 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심히 정신없고 무책임하고 잘못된 것이며, 그런 글이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로 알려져 있는 대신측 교단의 직전 총무에 의해서 쓰여졌고 또 고신측 교단의 기관지에 실렸다는 것은 대신측과 고신측이 넓어진 증거 같아서 매우 가슴아프다. 이것은 고쳐야 할 생각이다. 비성경적 연합운동은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바벨탑 운동을 승인치 않으신다. 더욱이 자유주의 교단들이 마치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잘못된 주장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이단 사상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 연합이나 연합적 활동은 반드시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들의 일치 운동
크리스챤 신문 1998년 11월 9일자(14쪽) 기사에 의하면,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 회장: 예장 통합측 총회장 서정래 목사)는 10월 29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회원교단의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축하예배를 통해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매진키로 결의했다. 예장 통합, 예장 합동, 예장 고신, 기장,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 31개 회원 교단 가운데 이날 참석한 신임 임원 120여명은 공동기도문에서 "지난날 장로교회가 분열된 아픔을 깊이 회개한다"면서 "장로교회가 하나로 연합해 이 땅에 바로 서서 주님의 정의를 아름답게 꽃 피우자"고 강조했다. 예장 통합 직전 총회장 민병억 목사는 '한 이름 이스라엘로'라는 설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로 똘똘 뭉친 것처럼 우리 장로교도 하나 돼야 한다"면서 "하나 된 장로교가 이 나라와 민족의 통일, 번영에 선구자가 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길자연 목사(예장 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자기의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했다. 서정래 대표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축하예배는 예장 합동 길자연 총회장과 예장 고신 임종만 전총회장이 축사하고, 예장 합동 정통 홍찬환 전총회장이 대표기도, 예장 대신 김백수 전총회장이 축도했다.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잘못된 연합운동의 한 예이다. 어떻게 성경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예장 고신, 예장 합동, 예장 대신 등의 보수교회들과, 성경의 파괴적 비평에 근거한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을 받아 들이는 기장, 예장 통합 등의 자유적 교회들이 교회의 일치를 부르짖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참된 교회에게 이단 사상을 배격하라고 명령하셨지 이단을 포용하는 일치 추구를 허용하지 않으셨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악한 이단사상이다. 그러므로 한국장로교 총연합회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분별력 없는 연합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무지하고 불성실한, 혹은 심히 완악하고 인본주의적인 악이다. 참된 교회연합은 바른 교리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온 덩이에 퍼질 누룩을 포용하는 잘못된 연합운동은 하나님의 큰 책망과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장로교 연맹' 제안의 문제점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1999년 1월 7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24개 회원 교단 총회장들과 총무들 등 120여명이 참석한 신년하례회를 가졌는데, 거기에서 대표 회장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신년사를 통해 '장로교 연맹'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는 그것을 120여개의 장로교단들이 하나 되는 꿈을 꾸면서 현재의 총회들 질서와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보다 협력과 결속이 강화된 조직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제안은 장로교 연맹을 만들어 3년 내지 5년 후에 하나의 장로교회 혹은 '연합 장로교회'를 만들자는 것이며, 그 장로교 연맹은 하나의 장로교회를 위한 전단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연합의 움직임은 결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대로 그리고 보수교회들이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견지해 온 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이 바른 진리 안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시고, 진리와 비진리가 혼란스럽게 연합되는 것을 정죄하신다. 20세기 말의 기독교계는 자유주의적 배교와 신복음주의적 타협으로 매우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 원리와 입장에 근거하지 않은 연합은 교회의 갱신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참된 교회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공통적 신앙고백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한국에 들어와 장로교단(기장측)을 형성한 지도 반세기가 되어간다.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입장을 취해온 예장 통합측이 생긴지도 벌써 거의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원칙이 없이 단순히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선전되고 그런 방향으로 교회들을 몰아가는 것은 결코 건전한 정신이 아니고 혼돈의 정신이다.
더구나, 교회들이 이런 식으로 연합된다면, 진정한 진리의 운동은 더욱 위축되고 쇠잔해지고 말 것이다. 지금도 온통 연합정신이 만연한 교계의 상황에서 참된 분별력을 가진 입장과 운동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장로교 연맹이나 연합장로교회가 형성될 때는 거기에 가담치 않는 극히 소수의 교회들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지금도 자유주의 배교나 신복음주의 타협을 지적하는 책들이나 방송 설교나 강연은 설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장로교 연맹이나 연합장로교회가 출현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진리 운동은 숫자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역사나 교회역사를 볼 때, 진리는 소수편에 속한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다수는 자주 참된 진리의 지식과 바른 입장에 대해 무관심했다. 구약의 엘리야 시대나 미가야 시대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아다나시우스 때나 종교개혁기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진리는 교인들이나 목사들의 숫자에 의해 판정되는 것이 아니고, 신구약 66권의 말씀의 바른 해석에 의해 판정된다. 성경의 바른 해석은 오랫 동안 교회들 안에서 유지되어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몇 십년 전까지 지켜 왔던 바른 분별력과 입장을 팔아 버리는 때가 되었다. 이상한 것은, 옛날에는 지켜졌던 입장이 오늘날에는 옛시대의 편견이나 미숙한 사상 정도로 매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오늘도 신구약 66권의 말씀에 집착하며 또 선진들이 싸우며 걸었던 옛길을 진지하게 배워 확신하고 요동치 말고 바르게 진행하자.
장로교 교단들이 한자리에
조선일보 1999년 8월 21일자(18쪽)에 의하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한장련: 대표회장 유의웅 예장통합 총회장)는 2000년 회원교단들의 총회 개시일을 9월 25일로 통일시켜 이를 '한국장로교의 날'로 선포하기로 했다. 이날 30개 회원 교단 임원과 대의원들은 한 자리에 모여 개회예배를 올리고 성만찬, 축하 공연 등을 함께 갖게 된다. 한장련은 또 총회 직전 주간과 일요일을 각각 '한국장로교주간', '한국장로교주일'로 지정, 장로교 여러 교단이 형제자매임을 고백하고 일치의식을 확인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보수적 교단들의 연합체이었던 예수교장로회협의회와 자유 보수의 혼합체이었던 한국장로교협의회가 합동하여 생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이제 명백히 교회연합운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류의 교회연합운동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왜냐하면 기장과 예장통합의 자유주의 신학을 책망함과 배제함이 없는 교제와 연합은 명백히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적 순결성을 고수함이 없는 연합운동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일치 간담회
기독교보(고신) 2000년 2월 12일자(10쪽)에 의하면,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 회장: 김도빈 목사)는 2월 7일과 8일 내장산 관광호텔에서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 간담회를 열었다. 그 모임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전병금 목사(한장연 서기)는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 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들로서 △교단 간의 강단교류 활성화 △ 총회에 상호사절단 파견 △ 2000년 장로교 총회 개회예배 함께드리기 △ 같은 지역 안에서의 연합예배와 성찬식 △ WARC(세계개혁교회 연맹) 참여로 국제 교회와의 연합 강화 등을 제안했다. 논찬에서 김재규 목사(대신 총회장)는 "한국교회에서 사상 논쟁이 사라졌다는 발제에 동감을 표하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대화하면 사상 논쟁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일치를 위해 "우선 실현 가능한 선교, 예배에 대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과 일치의 강조와 제안은 얼마나 비성경적인 생각들인가? 20세기 초부터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들 안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신학교들을 부패시켰는가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어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고 또 이런 발언에 동조할 수 있겠는가? 한국 장로교회의 통합이야말로 가장 비성경적인 비젼이며, 통합과 일치를 위한 강단 교류 활성화나 지역 안에서의 연합 예배와 성찬식은 성경이 금하는 일들이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WCC) 못지 않게 자유주의적인 세계 개혁교회 연맹(WARC)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제안은 성경을 믿는 교회들은 받아들여서는 안될 제안이다. 이런 분별력 없는 혼란스러운 연합회로부터 보수교회들은 나와 바른 분별력과 입장으로 단합해야 할 것이다.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한국장로교단들에 속한 총회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한국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기독신학대학원, 국제신학대학원, 대한신학대학원, 중앙신학대학원, 합동중앙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등 11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2000년 9월 20일 기독신학대학원에 모여 '한국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 색채를 반영하기 위해 1인 대표체제를 지양하고 총회신학대학원 이재윤, 장로회신학대학원 고창준, 기독신학대학원 김상민 등 3명을 공동대표로 하는 복수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단체는 한국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보수적 입장과 자유적 입장을 구별하는 선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다. 이것은 바른 진리의 증거를 점점 더 혼란시키는 일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참된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교회들은 결코 분별력 없이 연합적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9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장로교회는 만국 교회 앞에 하나"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그 선언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나 세속 이념을 두어 온 죄와 교권을 가지고 그것을 구실로 분열해 온 죄를 뉘우치자"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원시 시대의 신화적 사상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며 사도신경이나 니케야 신조가 당시의 언어와 사상과 표현 형식을 가지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17세기의 교리적 진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위의 선언문의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말이 이런 자유주의적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극히 불건전하고 악한 말이다. 사실, 포용주의적 진술은 진리에 대한 무관심에서는 허용될지 몰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표현이 역사적 신조들이나 보수주의적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분명히 표현되기 전까지는 이런 류의 선언문에 대해 동의해서는 안될 것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예장 통합, 예장 합동, 기장 등 21개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장로교 신학회가 2002년 6월 20일 창립대회를 열었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종윤 목사는 취임소감에서 "장로교가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적인 자화상이다"며 "이번 장로교 신학회의 창립을 통해 장로교가 분열을 극복하고 선교초기처럼 하나가 되어 새시대에 복음전파에 주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초대회장 이종윤 목사가 예장 합동측에 있다가 예장 통합측으로 간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진 중에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오영석 한신대학교 총장, 오덕교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김인환 총신대학교 교수 등이 섞여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장 통합과 합동, 기장 등이 모여 무슨 공통적 장로교 신학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주의 신학을 알 만한 보수신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무슨 토론을 하자는 것인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므로 이단자들과 더불어 무엇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교회일치운동을 위해 연합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공통적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고 성경은 말한다.
한국 개신교 연합운동
한국 개신교 연합기구 준비
한국의 개신교 17개 교단의 총회장 및 총무 23명은 2000년 7월 6일 연세대에서 간담회를 갖고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할 '한국교회연합준비위(가칭)'를 구성하였다. 참여한 교단들은 예장 통합, 예장 대신, 감리교, 기장, 기하성, 기성, 기침, 구세군, 정교회 등이다. 교단 대표들은 90년대 이후 침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사는 길은 연합과 일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은 "지금의 위기감을 넘어서는 길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복음 등 이분법을 넘어서 형제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주요 교단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개혁 등 보수교단들의 참여, 그리고 현존하는 양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해체 등의 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모임의 초청자였던 기장측의 전병금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번에 하나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며 앞으로 상당 기간 연합하기 어렵다는 각오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알지 못하고 보수, 자유를 넘어서는 개신교 연합기구를 구상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를 명백히 어기는 연합운동에 불과하다. 보수적이었던 예장 대신측이 이런 비성경적 연합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한국교회의 위기의 극복은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의 말대로 진보와 보수의 연합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장측 전병금 목사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하나가 안되면 그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무분별한 교제와 협력에 있다. 기독교는 진리 운동이지 인본주의적 연합운동이 아니다. 그런 연합은 옛날 바벨탑을 쌓은 것과 같다. 바른 진리와 자유주의 신학은 결코 일치가 될 수 없다. 오늘날 교회 갱신의 일차적 과제는 교회들 속에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을 다 추방하는 것이다. 신학의 정화가 없이는 진정한 진리 운동이 바로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런 곳에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복주심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상태에 교회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로 자처하는 이들이여, 정신 없는 연합과 일치 일변도의 강박관념의 잠에서 어서 속히 깨어라! 현대 교회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고 처방하라!
한국교회 연합은 시대적 요청?
크리스챤 신문에 의하면, 제5차 한국교회 화합과 일치를 위한 정례기도회가 2001년 3월 15일 오후 신촌성결교회(담임목사 이정익)에서 250여명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번 기도회의 주최는 한국교회 화합과 일치를 위한 기도회 준비위원회(한일준)이었다. 이날 기도회는 서경석 목사(예장통합, 서울 조선족 교회)의 사회로 이근수 목사(합동, 홍성교회)가 대표기도 하였다. 정진경 목사(기성,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는 설교에서 기독교회는 본질상 하나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현재 한국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첫째, 신학의 창조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둘째,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며, 셋째,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바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함을 역설했다.
설교 후 세 사람의 목회자들이 열린 발언을 통해 한국교회의 일치 방향성에 대한 제안을 했다. 전병금 목사(NCC 한국교회 연합운동 추진위원장)는, 교단의 지방행사로 인해 피치 못하게 참석 못한 최성규 목사(한기총 한국교회 일치위원장)와 생각이 거의 동일하다고 전제하고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통일상황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의 일치는 필수불가결적이며, 선교와 구제 및 사회봉사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하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구 목사(고신 신대원 교수)는 "한국교회 나누어짐의 원인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교단 소속 목사로서, 교단 내부의 문제가 수습되는 대로 교회연합운동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합신 총회장)는 "전병금 목사와 최성규 목사가 추진하는 일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렇게 기도하는 불씨가 점점 커져 좀 더 적극적으로 한기총과 KNCC가 기구적으로 협력하다가 마침내 통합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또 긍정적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화합과 일치는 동일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동일한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이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독교회들 안에는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신학사상들이 들어와 있고,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이단 사상이다. 그런데 정진경 목사가 '신학의 창조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자유주의 이단 사상을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자는 말로 들린다. 오늘날 신학적 혼란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또 그런 이단 사상에 대항하여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정신 없는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현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건전한 신학의 보수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수적 교단의 목사들이 그런 운동에 참여하고 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심히 통탄스럽다. 예장 합동측의 이근수 목사는 어떤 마음으로 그 기도회에 참여하여 대표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또 예장 고신측의 신대원교수인 이성구 목사는 "교단 내부의 문제가 수습되는 대로 교회연합운동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니,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고신측 교수로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장 합신 총회장 김명혁 목사의 발언도 실망적이다. 이들은 다같이 비교적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합운동의 기초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며 또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좋다. 그러나 그것은 일치된 신앙고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교단들(기장, 기감, 통합 등)에 대한 조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바른 신앙고백에 근거하지 않은 일치운동은 인본주의적 바벨탑 운동에 불과하다.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2002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사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로 나뉘어 있던 교회연합체가 이제 한 연합체가 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이 일을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의 총회장들이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 이 일에 예장 고신, 개혁, 대신, 합신 등의 소위 한국의 보수교단들이 긍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다. 성경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고(딛 3:10; 롬 16:17; 요이 9-11), 또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살후 3:6, 14). 오늘날 가장 파괴적인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런 신학이 바로 기장, 기감, 예장 통합 등에서 가르쳐지고 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한국교회 연합체를 향한 행보
2004년 3월 31일,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교회협=NCC]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의 대표자들 모임인 소위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18인 모임'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이행과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회의에는 교회협에서 회장 김순권 목사(통합), 총무 백도웅 목사, 일치위원장 김상근 목사(기장)가, 한기총에서 공동회장 최성규 목사(기하성), 일치위원장 손인웅 목사(통합), 일치위원 박종수 목사(고신)가, 교단장협에서 상임회장 김순권 목사(통합), 상임회장 김진호 목사(기감), 서기 이용규 목사(기성), 사무총장 김원배 목사(기장)가 참석했다. 또 그 모임은 교회협과 한기총 양기구의 대표 각 5인과 창구위원 김상근 목사(기장), 손인웅 목사(통합), 이용규 목사(기성) 3인 등 모두 13인으로 구성하도록 했고, 그 위원회로 하여금 2007년 교회연합기관인 가칭 '한국교회연합'을 출범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결정했다.
일치의 이름 아래 자유와 보수가 함께 손잡는 것은 진리를 혼잡시키는 일이다. 성경은 그런 교제를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롬 16:17; 딛 3:10; 요이 10-11).
천주교와의 연합운동
WCC 초대총무의 증언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초대 총무이었고 명예 회장인 빌렘 비셜트 후프트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의 적극적 협력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가 반복해 말하는 바는, 세계교회협의회 내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는 이제 모두 한 동일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WCC의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증언
세계교회협의회의 전 총무인 에밀리오 카스트로도 공언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와 천주교회 간의 현재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했다.
WCC의 총무 콘라드 라이저의 진술
WCC의 현 총무 콘라드 라이저는 말하기를, "내가 에큐메니칼 운동 안으로 더 많이 이끌리면 이끌릴수록, 나는 헬라정교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전통들을 더 많이 존경하게 되었고 그것들에 의해 더 많이 풍성하여졌다"고 했다. 그는 후에 또 말하기를, 세계는 '교파 이후' 시대에 있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전통적 교단들을 넘어서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하며,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가 비(非)교회들에 대해 열려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천주교회와 가까와진 자유주의자들
캘버리 컨텐더 1997년 8월 1일자에 의하면, 미국 복음 루터교회의 에큐메니칼 지도자 프랑크 센(Frank Senn)은 말하기를, "나는 우리와 로마 천주교회와의 관계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진영에 있다"고 했고, 또 부언하기를,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유주의 교단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바른 지식과 믿음에서 떠나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를 성경과 동등하게 높이고, 마리아를 거의 신적 존재와 같이 숭앙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을 명백히 부정하는 등 그 근본적 교리들에 있어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고 적그리스도적이고 우상숭배적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프랭크 센의 발언은 참으로 배교적이다.
카톨릭 신자들과의 일치가 가능한가?
1997년 9월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 신자들 함께'(ECT)라는 모임에서 "구원의 선물"이라는 두 번째 진술서를 발표하였다. 그 글은 매우 복음적인 구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 얻는 다른 길이 없다고 바르게 진술한다. 또 그것은 의롭다 하심이 인간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만 근거한다고 바르게 말한다. 그러나 그 진술서는 카톨릭의 공로 개념, 연옥, 마리아 경외 등의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이해들'이 있다고만 언급하고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이다"고 말한다. 또 그것은 진술하기를, "종교개혁의 유산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고전적 신앙고백을 확신을 가지고 공언하는 복음주의자들로서, 카톨릭 교회의 교훈에 양심적으로 충실하는 카톨릭 신자들로서, 그리고 우리의 기독교 선조들에 대한 우리의 빚과 우리의 동시대인들과 우리 후에 올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함께 인식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여기에서 고백한 복음 안에서의 우리의 일체성을 선언한다"고 했다. 그 진술서에 서명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는 대학생 선교회 국제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해롤드 O. J. 브라운 박사와 존 우드부릿지 박사, 휘튼 대학의 마크 A. 놀 박사, 캐나다 리전트 대학의 제임스 I. 패커 박사 등이다. 이들은 다 오늘날 유명한 복음주의자들이다.
잘못된 일치 추구를 분별해야
기독교신문 1998년 1월 11일자(1쪽)는 기독교 일치주간 연합예배가 1월 22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려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 기도할 것을 보도하였다. 거기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일반 개신교회, 한국 성공회, 한국 정교회, 천주교회 등이다. 예배 사회는 천주교 일치위원회 박기성 위원이 맡고, 교회협의회 일치위원장 박경조 신부가 주제 메시지 선포를, 그리고 교회협의회 총무 김동완 목사가 설교를 맡는다고 하였다.
오늘날 일반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와 성공회가 신학적으로 자유화 되어 있고, 좋게 말해도 매우 포용적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순수성과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뜻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배교적 단체로 간주되어 왔던 천주교회와 더불어 추구하는 교회 일치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하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은 바른 진리와 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교리적, 도덕적 순수성을 저버린 교회 일치와 연합, 다시 말해 바른 진리와 이단의 일치 그리고 의와 불의의 연합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며 마귀적이다.
신-구교 일치 방안 모색
1998년 1월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CCA)와 아시아 가톨릭 주교회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2차 '기독교 일치를 위한 아시아 운동' 세미나를 갖고 아시아 지역 신구교 일치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세미나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신구교 사이의 공식적인 논의 기구이다. 이 기구는 1990년 당시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총무 박상중 목사가 제안했고 1991년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마닐라 총회에서 허락된 후 1995년 양측 모두 7인씩의 위원을 임명 '아시아 에큐메니칼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위원회는 1997년 제1차 '기독교 일치를 위한 아시아 운동' 세미나를 열었었고 1998년에 제2차 세미나를 연 것이었다. 그러나 신구교 일치 운동은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반대되는 비성경적 운동이다.
겉과 속이 다른 말(Doublespeak)
세계 루터교 연합회(WLFC)은 제네바에서 열린 최근의 연례 회의에서 제의된 "칭의(稱義)의 교리에 대한 [로마 천주교와의] 공동 선언문"을 만장 일치로 승인했다. 그렇지만, 하루 뒤, 바티칸의 고위 관리들은 그 문서를 칭찬하면서 몇 쪽의 '설명서'를 내어놓았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이 은혜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선행과 공적에 대해 주시는 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연합운동의 모습이다. 특히 로마 천주교회와의 일치를 위한 대화는 개신교회들이 철없이 따라가는 것 같은 처지이다. 우리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말을 해서도 안되겠고 또 그런 말에 속아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영생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신한다. 그것이 선행과 공적에 대한 하나님의 상이라는 생각은 진리를 혼잡시키는 오류이다. 우리는 로마 천주교회가 인간의 선행과 공적을 구원의 근거로 주장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스토웰 등이 로마 천주교 추기경과 만남
1998년 12월 16일,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 박사는 위튼 대학교 총장 듀안 리트핀 박사와 트리니티 국제대학교 총장 그레고리 웨이브라이트 박사와 함께 추기경 프란시스 죠지(Francis George)의 집 만찬에 참석하였다. '친분관계'가 형성되었고, '동반자 관계'가 논의되었다. 스토웰 박사는 그 4사람이 '사회 문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나 협력 때문에 '신학적 이해들을 타협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죠지 추기경은 '신학을 이야기하기를 원했으며' 또한 "우리 회중[개신교인과 천주교인]들에게 어떤 공통적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기도하고 예배하자는 요청을 가지고 다음 천년에 들어갈" 가능성을 논하였다. 리트핀 박사는 추기경과의 친분관계가 무엇으로 인도할지 모른다고 말했으나, '그러한 친분관계를 가지는 것이 가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저 복음주의자들은 죠지 추기경과 그들의 차이점들의 핵심이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이었음을 빠르게 인식하였다. '사회적 문제들'은 우리 시대에 신복음주의자들을 적그리스도의 한 세계 교회로 유혹하는 거짓 복음 신봉자들과 에큐메니칼 관계를 가지도록 낚는 마귀의 유혹하는 미끼인 것 같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천주교회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 총무 랄프 콜라스 박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8차 총회에 대한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번째 기자 모임에서 세계교회협의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WCC 총무 콘라드 라이저 박사는 WCC와 로마 천주교회 사이의 협력을 위해 연합실무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과거 7년 동안의 활동이었고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점점 진전되었다. 천주교회는 이미 온 세계의 56개국의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제8차 총회의 특별 손님들 가운데 많은 로마 천주교회 신부들과 수녀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토마스 스트란스키는 신문 기자들에게 로마 천주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간의 관계에 대한 간단한 역사적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1972년에 바티칸이 가까운 미래에 WCC의 회원이 되기를 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나는 로마 천주교회가 미래에 WCC의 정회원이 되리라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공식적 편지가 콘라드 라이저 박사에게 전달되었는데, 거기에서 교황은 총회 대표들에게 문안하고 축하하면서 말하기를, "WCC와 로마 천주교회의 관계에 관하여, 연합 실무회의 골격 안에서 미래의 협력의 길들이 기독교 일치를 위한 추구를 강화하기 위하여, 또한 그것의 유형적 차원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라고 했다.
천주교인들이 미국 교회협의회와 손잡음
미국 천주교 주교 대회와 미국 교회협의회는 이제 매년 문안과 사절단을 교환하며, '커져가는 협력'과 배교적 교회협의회와의 계속적인 천주교회의 '공동적 활동'을 보고한다. 크리스챤 뉴스 1999년 6월 21일자는 보도하기를, "그러한 협력의 다른 한 상징으로, 교회협의회의 회장이며, 미국의 전(前) 유엔 대사인 [친 공산주의적인] 앤드류 영은 9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서의 그의 임직식을 거행할 것이다"라고 했다.
천주교인 브라이언 헤이르(Bryan Hehir)가 하버드 대학교 신과대학장이 됨
브라이언 헤이르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의 새 학장인데, 이 직위에 임명된 최초의 천주교회 신부이다. 그는, 최근에 전문적 도움을 요청한 후 컴퓨터 기술자들이 그의 대학교 사택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수천 개의 음란물 사이트들을 발견하자 사임했던 로날드 디만의 후임자이다.
신-구교 '하나 되기' 기도
조선일보 2000년 1월 22일자(23쪽)는 위와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18일부터 25일까지는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들이 화해와 단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치기도 주간을 맞아 국내 외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 . . 18일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00년 대희년(大禧年) 교회일치 기도회가 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영국 국교회 수장(首長) 조지 커레이 캔터베리 대주교, 동방 정교회 대표 헬리오폴리스 수석대주교는 함께 베드로 대성당의 '거룩한 문'을 열어 젖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예배 의식을 가졌다. 교황은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 형제들이지만 이제 굳은 결의를 가지고 완전한 일치에 이르는 길에 들어섰다'며 '지난 1000년간 교회가 하나되지 못한 데 대해 그리스도께 용서를 구하고 새 밀레니엄에는 간절한 기도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자'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18일 저녁 서울 명동성당에서 가톨릭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개신교 교단들, 루터교, 한국정교회, 성공회 등이 참가하는 합동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회는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이 공동으로 의식을 집전했으며 성가대도 연합으로 구성하여 찬양을 불렀다. 교회협의회장 이성덕 구세군사령관은 설교를 통해 '신-구교 신자들은 관행과 제도가 다른 가운데 지내왔지만 이 순간 그리스도의 마지막 소원을 재확인하면서 "주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간절한 일치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유주의 교회들과 천주교회와 더불어 행해지는 교회연합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운동이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천주교회는 명백히 이단이며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 . . 시험하라," 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분명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요일 4:1; 딛 3:10)!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와 바울에게 바쳐진 교회 절기를 구별하면서 2000년 6월 29일 24명의 새 메트로폴리탄 대주교들에게 영대(領帶, pallium)를 수여하는 성 베드로 성당 계단에서 가진 초저녁 미사에서, 기독교 일치가 새 천년이 시작되는 때에 "더욱 더 긴급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에큐메니칼 총대주교 바돌로메오 1세가 관례적으로 보낸 헬라정교회 고위 성직자 사절단에게 문안하면서 일치를 위한 그의 요청을 다시 새롭게 하였다. 그 사절단 대표는 헬리우폴리스와 데이라의 메트로폴리탄 아다나시오스이었다.
NCC의 천주교인 고위직분
미국 교회협의회는 퀘이커 교도요 미국천주교 주교대회의 이전 직원인 앤 리그즈(Ann K. Riggs)를 에큐메니칼 토론을 위한 신학 작업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 임명은 교회협의회가 천주교인들, 복음주의자들 및 오순절파 교인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개혁하려는 비상한 때에 이루어졌다. 한 핵심적 지도자 모임은 천주교인들, 구세군 및 하나님의 교회를 포함하여 비NCC 회원교회들과의 미래에 관해 토의하기 위한 2002년 4월 4일부터 6일까지의 회의를 계획한다.
개신교-천주교 일치운동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가 양측 지도자들에 의해 추인되었다고 한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의 총무인 백도웅 목사와 천주교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장인 최기산 주교가 주축이 되어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회원 교단들이 총회장, 총무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들, 루터교, 정교회 대표들이 모여 그 회의를 추인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치운동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다. 진정한 교회의 일치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의 일치이다. 그것은 이단을 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회 내에는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포용되어 있으며, 또 천주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명백해진 대로 적그리스도적이며 우상숭배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일치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교회의 일치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교제와 연합이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그런 류의 교제와 연합에 참여해서는 안될 것이다.
바티칸의 추기경 회의
2001년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바티칸에서 150명 이상의 추기경들은 에큐메니칼 대화의 중요성, 기독교 일치, 및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포함하여 새 천년에 로마 천주교회가 우선 순위를 둘 일들을 토의하기 위해 추기경 회의로 모였다. 교황청의 기독교 일치 회의의 의장인 월터 카스퍼 추기경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제로 강연했고 또 말하기를, 비록 에큐메니칼 운동이 때때로 어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저항을 받지만, 그것은 제2 바티칸 회의 이후 크게 진전되었고 종교 간의 대화가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하에서 '가속화되었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일치는 세 번째 천년의 도전이다"라고 말했고 덧붙여 에큐메니칼 운동은 시대의 '주제'라고 했다. 애버리 둘레스 추기경은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에 대해 강연하면서 말하기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타종교들과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황의 수위권은 실제로 에큐메니칼 일치를 증진하는데 기여한다고 했다. 추기경들은 그 모임의 마지막 날에 로마 천주교회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일들을 간추려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해 투표하였다. 그 메시지는 진술하기를, "찢어짐들과 충돌들로 무겁게 특징지어진 세상 안에서 그리고 분열의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의 교제의 영성뿐 아니라, 사랑과 진실과 신뢰를 따라 에큐메니칼 및 종교 간의 대화의 길을 개발해야 할 보다 더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세계교회의 연합이 로마 천주교회와 교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이방종교들을 통합하는 단체가 될 것이며 요한계시록 13장에 예언된 거짓 선지자는 바로 그 단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교단과 천주교회
천주교와 장로교회 간의 대화
미국 천주교회와 미합중국 장로교회 간의 최근의 대화에 참여한 한 여자는 말하기를, 그는 천주교인들 편에서 "즐거이 대화하려는 새로운 분위기"를 감지하며 두 단체가 중심교리적 문제들에 관한 "구별된 의견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매코믹 신학대학원의 신학 부교수인 앤나 케이스 윈터즈는 말하기를, 미합중국 장로교회와 천주교회 간의 대화들의 내용은 "교리에 관해서는 많지 않고 함께 나눌 사역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장로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이 이미 의견의 일치를 본 영역들의 토의를 포함하였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위터즈는 말하기를, "그 대화들은 장차 '세계적 교회 회의'가 될 미래의 바티칸 회의--제3차 바티칸 회의--의 꿈과 또한 개신교인들이 교황제도를 '사탄의 회'라고 부른 과거의 '지나친 표현들'을 서로 없앰으로써 이루어지는 '기억의 치료'의 꿈을 일으켰다고 했다. 두 단체 간의 미래의 대화에 관하여, 참석자들은 어떤 미래의 공식적 모임들을 계획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의 일치와 이해를 향한 몇 가지 단계들을 취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와의 일치를 추구함은 종교개혁에 대한 배신이다.
미국 침례교회(ABC)는 천주교 연사들을 세움
매트 코스텔라는 미국 침례교회에 대해 직접적 보도를 하면서 말하기를, 미국 침례교회는 '사회복음', 즉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증진시키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전심으로 수용하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그 모임에서의 동성애 문제와 로마 천주교인들을 포함한 다른 교파들로부터의 연사들의 연합주의적 포용에 대해 논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침례교회 목회자협의회는 그 매2년 모임의 첫째날에 모였고 싸우스 다코타주 워터타운에 있는 하나님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온 베네딕 수녀 아드리엔 카우프만이 '실제적 대화: 회중들이 분열 가능한 문제들을 분열됨 없이 다루는 수단'이라는 주제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지난번 매2년 모임에서는, 한 로마 천주교회 추기경이 전체 모임에서 설교하였다).
미국 복음주의 루터파의 프랭크 센 목사의 진술
1997년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의 에큐메니칼 관계자 프랭크 센 목사는 말하기를, "나는 우리와 천주교회와의 관계가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진영에 있다"고 했고, 부언하기를, "우리는 16세기에 분리되어 나간 자들이며, 우리는 다시 함께 돌아가야 할 자들이다"고 하였다.
천주교인들을 향한 루터교인들의 서곡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는 1997년 8월 모임에서 수세기 동안의 천주교도들과의 분열의 싸움이 끝났다고 선언하였고, 과거의 정죄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진술을 958대 25의 표결로 승인하였다.
천주교회-루터교회의 일치
천주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의 대표자들은 1999년 10월 31일에 모여 칭의(稱義) 교리에 관한 애매모호한 공동선언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 공식적 교회 교의(dogma)가 된 이단들을 계속 주장한다. 천주교회가 그 무오한 교의들을 '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 일치란 개신교 당사자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믿었거나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행위의 복음(다른 복음, 갈 1:6-9), 즉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義)가 신자들 속에 주입된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도록 실제로 의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한, 빌리 그레이엄과 촬스 콜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위대한 기독교 목자로 찬양을 받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에 2천년을, 면죄부의 발행으로 완전케 되는 '희년'으로(연옥에서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때로) 선포하였다. 천주교회는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루터교회, 천주교, 감독교회의 연합 예배
미국 북서 오하이오주의 루터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감독교인들은 릴리죤 투데이지가 "한 세기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역사적 모임에 함께 참여하였다. 2001년 5월 18일 릴리죤 투데이지의 뉴스 보도에 의하면, 오하이오주 북서 지역의 감독교회와 로마 천주교와 루터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치의 표시로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기로 서약하였다. 그 언약의 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맹세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로써 일치 운동의 장애물들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고 재연합의 길에 어떠한 장애물도 놓지 않기로 동의한다." 릴리죤 투데이지의 글은 한 로마 천주교 주교의 말을 인용하였다: "이것은 다른 하나의 차원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며 상호간의 존중이다. 우리 모두는 공개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탁하고 그것을 거행하고 있다." 감독교회의 한 지도자는 논평하기를, "나는 이것이 에큐메니칼 관계를 위한 하나의 획기적 변화이며 놀라운 실제적 관계성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캐나다 교회협, 천주교 주교를 회장으로 선출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창립 56년 만에 처음으로 천주교인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2000년 4월 앨버타 에드몬튼에서 열린 회의에서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천주교회 온타리오 주교인 안드레 발리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캐나다 최대 교파인 천주교회는 1997년 캐나다 교회협의회에 회원으로 정식 가입되었다고 한다.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현재 19개 교단이 가입되어 있다. 발리 주교는 취임 인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를 위해 서로를 더 잘 아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일치가 내일 당장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떻게 천주교회를 포용하고 있는가를 보이는 생생한 증거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나 죤 칼빈은 천국에서 탄식할 것이다.
영국교회(성공회), 교황 수위권 인정
기독신문 1999년 5월 19일자(16쪽) 보도에 의하면,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 신학자들로 구성된 '성공회-로마 천주교 국제위원회'는 5월 12일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에서 발표한 '권위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로마 주교는, 교회의 보편적 수위권[首位權]의 표현으로서, 진리를 분별하고 밝히는 특별한 사목 활동을 한다"고 명시했다. 이 위원회는 1966년에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와 로마 천주교 교황의 합의 하에 구성됐으며, 이번까지 세 차례 두 교회의 궁극적 재통합을 목표로 한 신학적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죠지 캐리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번 문서에 대해 "환영한다. 폭력과 분열로 갈라진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교회(성공회)는 처음부터 천주교적인 요소와 개신교적인 요소가 섞여 있었고 근래에는 자유주의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이런 포용적, 타협적 활동이 그 교회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참된 성도들에게는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공회 교인들은 교황을 세계교회의 머리로 삼으려함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와 로마 천주교 국제연합 위원회는 권위의 은사(The Gift of Authority)라는 제목의 문서를 통하여 모든 성공회 교인들에게 요청하기를, 만일 새로운 지구 교회가 창조된다면 교황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라고 한다. 그 문서는 교황을 '모든 교회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져야 할 은사'라고 묘사한다. 지난 5월 람베스 관저에서 발표된 그 성명서는, 비록 현재 구속력은 없지만, 새로 연합된 교회에서 세계적 수위권(首位權)을 행사할 자가 로마 주교[교황]일 것이라고 인정한다.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미래
캐나다 토론토에서 모인 천주교회와 성공회(영국교회)의 역사적 모임은 13개국에서 온 26명의 성공회와 천주교회의 주교들이 두 교회가 466년간의 분열을 넘어서 연합할 방법을 연구할 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5월 19일 폐회되었다. 캔터베리 대주교 죠지 캐리와 추기경 에드워드 캐시디는 새 위원회가 여성 안수와 윤리적 지위 및 두 교회의 성직 조직의 통합 등의 문제들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성공회-천주교회 국제연합위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천주교회 교황의 권위를 "모든 교회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선물"로 수용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보수적 단체들의 지도자들은 "개신교 신앙에 대한 성공회의 배신"에 항거하였다.
한 남침례교회가 천주교 신부를 포용함
미국의 앨러배머주의 헌츠빌 타임즈(Huntsville Times) 2000년 1월 15일자의 한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천주교 신부가 [남] 침례교회에서 연설하고 안식교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대 희년 예배를 위한 기독교 일치 축제'에서이다. . . . 기독교 공동체는 1월 23일 [헌츠빌] 제1침례교회에서 예배와 찬양의 시간으로 모일 것이다." 주최측은 이것이 이 곳에서의 새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천주교 연사는 로마 천주교회와 헬라 정교회와 개신교와 복음주의자들/은사주의자들이 대화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류를 포용하며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 더 낫다.
감리교와 천주교의 대화
미국의 연합감리교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두 단체가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토론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최근에 달라스에서의 모임에서, 각 단체의 대화팀의 7명의 위원들은 무엇이 두 단체를 나누는지와 무엇이 둘 다의 공통점인지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감리교회의 윌리암 옥덴 감독이 거기 있었는데 그는 천주교인들과 김리교인들은 몇 가지의 노력들에서 서로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신학들의 일부와 또한 우리의 정치 방식 즉 우리가 교회로서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에 의해 나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특히 선교에 있어서 참으로 협력적이다. 우리는 두 교회들이 다른 선교활동들을 함께하는 달라스 지역에서 많은 활동들에 함께 일한다." 감리교회와 천주교회 세계 대화 모임은 두 교단 사이의 가장 오래된 대화 모임이다. 옥덴 감독은 미국에서의 그 대화 모임이 수년 동안 진행되어 왔고 어떤 좋은 이해와 많은 중요한 신학적 논문들을 산출하였다고 말한다.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e-no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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