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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복음주의
신복음주의의 개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福音主義, Evangelicalism)는 역사적으로 16세기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를 중심한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 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에 성례(聖禮)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해서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이었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 신학들이 역사적 개신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는 두 부류 혹은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화 된 교회들에 대해 포용적인 신(新)복음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을 철저히 반대하며 자유주의자나 자유주의적 교회와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이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복음주의와 신복음주의는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근래에 여러 복음주의자들은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포용적이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케넷 칸쩌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를 어떻게 구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원래 근본주의자들은 정통 개신교 신앙을 고수하는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모더니즘[현대주의=자유주의]과의 투쟁과정에서 모더니스트[현대주의자]들과 결별하기 위해 분리를 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만약 누군가 나를 '성경을 의지해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이 진술에서 그는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본래 같은 입장을 가리켰는데, 점차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자들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복음주의는 그렇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그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 이단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물들
[빌리 그레이엄]
천주교인들의 지원을 받는 전도대회
휴스턴 크로니클 1997년 3월 30일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알라모도움에서의 전도집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지역 천주교회도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1987년 산 안토니오 방문 기간에 보인 그 침례교인[빌리 그레이엄]의 후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 . . 기독교 지도자로서 빌리 그레이엄은 신학적 이견(異見)들을 초월하여 존경을 얻었기 때문에 침례교인들과 천주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이 그레이엄 전도집회 준비를 위한 수개월 전의 계획 모임들과 훈련 회의들에 함께 모인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포용주의적 집회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이신 바른 방법은 아님이 분명하다.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
근본주의자로 자처하는 제리 팔웰은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히 지내왔고 빌리 그레이엄과도 가까와졌다. 1997년 5월 3일 그의 리버티 대학교 제24회 졸업식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연설을 하였다. 주의 검 편집자 쉘톤 스미스 박사는 빌리 그레이엄과 제리 팔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두 사람은 다 근본주의자로 시작하였다! 그 두 사람은 다 큰 성공을 이루었고 국제적 인물로 부상되었다! 그 두 사람은 다 그들의 사역의 거점을 그들의 근본주의적 기지로부터 보다 넓은 복음주의자들의 서클로 변경하였다. 표준들과 분리의 원리들은 사라졌다! 타협은 규범이 되었다! (50년대에) 그레이엄에 의해 채택된 에큐메니칼 태도는 이제 리버티 대학교에서 기정화된 방식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진리와 오류는 자유로이 섞인다. 바른 교리는 교제를 위하여 보류된다. 한때 성경적 권위의 강한 목소리가 있었던 곳에, 이제는 적응과 편의의 정신이 우세하다.
빌리 그레이엄의 방법론
빌리 그레이엄의 '금세기의 책'인 내 모습 그대로라는 책의 서평에서,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빌리 [그레이엄]의 접근 방식이 모든 사람들, 즉 로마 천주교인, 그리스 정교회 교인, 자유주의자에게 열려 있고 따뜻하다는 것은 . . . 분명하다. 근본주의자들 외의 모든 사람에게[!]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중심주제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적 혈육인 근본주의자들은 그를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이 그레이엄과 분리된 것은, 한 부류로서의 근본주의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위선적이고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직하다. 그들이 방법론에 관하여 그렇게 엄격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영적 사역에서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것은 죄악된 불순종이라고 믿는다. . . . 빌리는 기독교계를 나누는 많은 교리들을 힘써 무시하고, 연합하는 것을 전공한다. . . . 그의 강조점은 신앙의 순결성보다 그것의 일체성에 있다. . . . 그의 사역은 전도이다. 그는 인종차별은 (우리가 다루어야 할) 도덕적 문제지만, 낙태는 (우리가 피해야 할) 정치적 문제라고 [정의한다]. . . . 빌리는 신학적 차이점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낮춘다. 그가 신앙의 근본교리들을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빌리 그레이엄과 보편구원론
빌리 그레이엄은 1997년 5월 31일 로버트 슐러 박사와의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빛으로 향하며,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고 그들 주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로버트 코팔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표현한 교리는 . . . 정확히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의 에큐메니칼 연구소가 수년 동안 가르쳐 왔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우상숭배를 행하고 성경이나 은혜의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이름과 구속 사역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는 어떤 이교도도, 만일 그가 '좋은 사람'이고 그가 믿는 바가 무엇이든지 그 믿는 바에 있어서 신실하다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는다'는 관념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캐나다 퀘벡 전도대회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8월 10일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인구 약 백만명의 [오타와] 지역을 위한 지난 6월 25-28일 빌리 그레이엄 선교 활동에서,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간격--그리고 어느 정도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 간의 간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전도대회를 후원한 470개의 지역 교회들 가운데, 60개가 천주교회들이었다. 천주교회의 참여는 모든 그레이엄 전도대회 가운데 가장 중대하였다.
그 신문은 계속 보도하기를 일부 새 신자들은 천주교회가 데려갔다고 하였다. 가장 많은 회중이 모인 것은 '진흙 항아리'(Jar of Clay)와 마이클 스미스가 출연한 록 연주회의 밤이었다.
빌리 그레이엄은 현대 교회를 가장 혼란시킨 대표적인 신복음주의자이다. 그는 전도대회를 할 때 보수주의 교회들과 자유주의 교회들을 구별하지 않고 지원을 받고 심지어 천주교회들의 지원도 받는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구분선(線)을 앞장서서 지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인본주의적 방법론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
오 디모데(O Timothy)의 편집자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빌리 그레이엄은 천주교 대학들에서 명예 학위들을 받았고 천주교회의 복음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교회들[천주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주었다. 그는 교황이 전도자요 도덕적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천주교회 주교들을 그의 강단에 초청하고 그의 결신 초청시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한다. 그는 유아 세례 시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옥이 문자적으로 불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허용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현대주의자들[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다. 그는 변질된 성경 번역본들을 장려한다. 그는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기를 거절한다. 그는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다. 그는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다.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의 빈약한 결과
R. L. 히머스 박사는 크리스토퍼 케이건 박사와 함께 쓴 죽어가는 국가를 위한 설교라는 책에서 "통계는, 그레이엄 박사의 전도대회들의 결과로서 교회들에 등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음을 증명한다. 숫자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히머스와 케이건은 그레이엄의 전도대회에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하는 자들 중에 어떤 교회에 교인이 되어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통계 조사들을 인용한다. 그들은 또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은 그 대회들이 열린 지역들의 도덕적 분위기를 도와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히머스는 한 때 그레이엄의 열렬한 후원자이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낙태와 같은 죄에 대해 강한 공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사람이 동성애자로 태어난다고 말함으로써 변명했다. 마침내 히머스는 그레이엄의 촬스 피니 스타일의 '결심' 신학과, 유대인들과 회교도들과 다른 비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 신앙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견해로 인해 큰 실망을 느끼게 되었다.
히머스는 위의 책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사역을 믿었다. 나는 그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추종자이었다. . . . 나는 빌리 그레이엄을 신뢰했다. [그러나] 나는 속임을 당했다.
그레이엄 박사가 교황을 위대한 도덕적 지도자요 전도자라고 찬양하고 테레사 수녀와 그 동료들을 기독교의 고상한 모범들로 말했을 때, 나는 이 카톨릭 교도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결국 좋은 그리스도인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그의 판단이나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각별히 빌리 그레이엄을 만났고 그와 대화하였다. 나는 심지어 그와 함께 전문적 사진들을 몇 장 찍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의 결심주의의 오류들을 보기 시작하기 전까지 매우 확실하고 매우 강하게 그레이엄 박사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레이엄은 교황을 '금세기의 인물'이라고 함
빌리 그레이엄은 최근의 한 대담에서 자기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금세기의 인물로 뽑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말하기를, 현 교황은 "지난 200년 중의 교황들 가운데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의 용기, 결정, 지적 재능, 및 천주교회, 개신교회, 헬라 정교회의 차이점들에 대한 그의 이해, 그리고 어떤 형식의 화해에 대한 시도에 감탄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종은 역사상 참 교회에 가장 큰 해를 끼친 천주교 교황에 대해 그런 찬사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빌리 그레이엄의 암스테르담 2000 대회가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다. 그 대회에서 천주교회의 한 대주교가 연설했고 이어서 화란 교회협의회 회장도 연설했다. 교회협의회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 복음주의 연맹이 기도하기 위해 연합하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 신앙과 사회적 행동은 같이가기 때문에 우리는 동일한 사람들이다. 복음주의자들과 에큐메니칼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는 이 대회를 위해 4천만불을 사용했다. 척 콜슨은 그 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 함께'(ECT)라는 운동을 옹호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붙들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속적 자연주의에 대항하여 함께 설 수 있다. 장벽을 허물도록 우리를 도왔던 분이 바로 빌리 그레이엄이었다"라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요한 바오로 2세: 바치는 글(John Paul II, A Tribute)이라는 책의 서문을 썼고 가끔 교황을 찬양하였다.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천주교인이든지 개신교인이든지 누구나 빌리 그레이엄이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를 참 신앙이라고 칭찬함으로써 개신교 종교개혁을 암시적으로 부정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의 천주교 용납은 천주교 주교들이 실제로 그들의 희생자들과 성경적으로 일치하였고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전파하는 것과 동일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개신교인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고 그들을 불태웠고 로마 교황청은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명예를 주었다. . . .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로마 천주교회가 영혼들을 구원하는 참된 복음을 전파한다고 생각함에 있어서 옳다면,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잘못이었을 것이다. . . . 선택하라, 빌리 그레이엄이 옳은지, 아니면 종교개혁자들이 옳았는지, 그러나 그들이 둘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만일 천주교회가 참된 복음이라면, 로마 천주교인들 가운데 지난 5백년 이상 그 교회의 복음이 거짓되다고 확신하였고 참 복음을 믿었고 그 교회를 떠났던 수천만명의 사람들에 대해 무어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옳다면, 그들은 완전히 바보들일 것이다. 그들은 천주교회에 머물렀어야 했을 것이다--과연 빌리 그레이엄은 전도대회들에서 믿겠다고 앞으로 나온 모든 천주교인들을 바로 그 교회로 돌려보낸다.
빌리 그레이엄은 양에게 경고하지 않음
샌트루이스 디스패치지는 다음과 같은 빌리 그레이엄의 말을 전한다: "나는 한 교회의 목사가 아니다. . . . 나의 책임은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교회를, 그것이 천주교든지 개신교든지 헬라 정교회든지 무엇이든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한 개인과 교회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 바울의 태도와 다르다!
[빌 브라잇]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용납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7년 7월 14일자는 대학생 선교회의 창설자요 총재인 빌 브라잇 박사에 대한 글에서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은 브라잇에 의해 따뜻하게 용납된다"고 말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그가 1994년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의 진술서에 서명한 것 때문에 그를 이단이라고 비난했고 어떤 이들은 ECT에 대한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천주교인들 가운데 수천만명의 참된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빌 브라잇의 '98년도 금식과 기도' 집회
1998년의 '금식과 기도' 집회는 미션 아메리카와 대학생 선교회의 공동 후원을 받았다. 참석자 중에는 빌 매카트니(프로미스 키퍼스), 프랭클린 그레이엄, 돈 아규(NAE), 폴 시더, 케이 아더, 빌과 보넷 브라잇, 애드리안 로저스, 팻 로벗슨, 토마스 트래스크(하나님의 성회), 데이빗 브라이언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빌리 그레이엄과 존 퍼킨스와 빌 브라잇은 명예 공동회장이다. 앞에 열거한 이들은 실행위원회에 속해 있다. 스티브 그린, 로벗슨, 시더 그리고 브라잇은 한 시간을 인도한다. 다른 시간은 로저스와 매카트니에 의해 인도된다.
빌 브라잇과 천주교인들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제10 장로교회의 목사요 '고백하는 복음주의자 연맹' 회장인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최근 크리스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이 함께'(ECT)라는 문서의 서명자인 대학생 선교회 총재 빌 브라잇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빌 브라잇은 단지 신학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사업가입니다. 나는 그가 무슨 신학이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지 나가서 '세상을 복음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예수님' 영화를 보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는 이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천주교인들도 좋은 일들을 하고자 하므로, 빌 브라잇은 실제로 천주교인들이 주님의 놀라운 전사들이요 충성된 군사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아무런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지요? 천주교인들은 '사영리'를 믿으며 그것은 빌 브라잇에게 좋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는 그것보다 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ECT에] 서명한 제이 아이 패커 같은 사람입니다.
J. I. 패커는 신학자이지만 빌 브라잇과 같이 에큐메니칼적이다. 빌 브라잇과 대학생 선교회는 수년 동안 천주교인들과 가까이 일했고 그들을 간사로 환영했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카리스마지 2001년 10월호는, 빌 브라잇은 병고치는 전도자 베니 힌을 '사랑하는 친구'로 여기는 중재자라고 말한다. 또 브라잇은 "나는 은사주의자나 천주교인이나 헬라 정교인이나 주류적 기독교인이나 간에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함께 일한다"라고 말한다.
[기타 신복음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과 로버트 슐러
노만 빈센트 피일의 제자 로버트 슐러는 자신의 자기 존중의 철학에 일치시키기 위해 성경 교리들을 재해석한 자이다. 그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기 존중을 주는 예수이다. 그의 복음은 부정적 자기 개념들을 긍정적 개념들로 대치하는 것이다. 그에게 죄란 단순히 자기 존중의 결핍이다. 그에게 가장 큰 악은 성경적 방식으로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자기 존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슐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는 보편구원론자다. 그의 목표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이해하고 향유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방면의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슐러와 함께 나타나며 그를 칭찬한다.
J. I. 패커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평함
1995년 "2천년대 문앞에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대회에서, J. I. 페커는 근본주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보수적 개신교인들과 동방 정교회 교인들과 주류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내가 말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연합할 수 있는가? 구원 과정의 세부 사항들과 그 과정에서의 교회의 위치에 관한 우리가 이미 아는 그리고 계속되는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연합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 . 확실히, 우리의 세 전통들 내에서 근본주의자들은 이 일에 우리와 연합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마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긍휼이 개념적으로 정확한 사람들 위에 자동적으로 머물며, 개념적 정확성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자동적으로 보류되는 것처럼, 논쟁적 정통주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근본주의자들의 길이기 때문이다.
포커스 언 미션즈의 회장 레이 아담스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패커의] 욕설어린 비난은 이 유명한 신학자와 성경강해자를 위해 좋은 징조는 아니다. 슬프게도, 그는 오류와 분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교훈을 따르기보다 많은 무리와 함께 행하기를 선택한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논쟁적 정통주의의 길'이라고 정의될 수 없다."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C. S. 루이스의 사상의 '약한 점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속죄에 대한 그의 개념, 그가 죄의 용서에 대해 논의할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점, 세례 중생론에 대한 그의 환대, 그리고 성경은 무오(無誤)하지 않다는 그의 영감론, 거기에 덧붙여 연옥과 및 불신자로 이 세상을 떠난 일부 사람들의 최종적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긍정.
마틴 로이드-죤스는 C. S. 루이스가 과연 크리스챤이었는지 의심하였다. 루이스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다. 그는 또한 몰몬교인들에게 좋은 영접을 받았다. 그는 선하게 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중세 시대의 개념을 가르쳤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선하게 되도록 도우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입된 은혜에 의한 구원은 전혀 은혜가 아니다. 루이스의 신학은 치명적 결함이 있다.
F. F. 브루스가 '복음주의자'인가?
1990년에 암으로 사망한 스코틀랜드 신학자 F. F. 브루스는 복음주의자로 높이 칭찬을 받았으나, 많은 자유주의적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브루스는 신정통주의의 아버지인 칼 바르트를 루터와 칼빈과 웨슬레와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보았다. 그는 바르트의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경의 파괴적 고등 비평을 받아들였고, 바울이 여성의 지도자 역할들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루스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신복음주의적 포용주의에서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디 먼슬리 1986년 6월호는 F. F. 브루스를 '복음주의' 지도자로 높여 말했다.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의 글을 쓴 이들
크리스웰, 조용기, 폴 크라우취, 잭 헤이포드, 죤 윔버 등은 로버트 슐러의 자서전에 추천사를 썼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는 자유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를 조롱하는 뉴에지의 기독교 일치학교 연례대회에서, 문선명의 통일교 행사들에서, 또한 몰몬교 성전에서의 종교간 조찬 기도 모임에서 주강사로 나타났다. 뉴에이지 운동가들, 몰몬교인들, 또 천주교인들은 그의 교회당에서 연설했다. 그는 오래 전에 죄에 대한 바울의 교훈과 이별을 고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자신을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우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로버트 슐러 학교의 연사들
1999년 1월 로버트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는 다음과 같은 연사들을 세웠다: 토니 캠폴로, 빌 하이벨즈, 루이스 팔라우, 죤 맥스웰, 윌리엄 베네트(천주교인), 마이클 모인한 신부, 및 한국의 김선도 감독 등.
스토웰이 빌리 그레이엄의 이사회에 들어감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은 1999년 11월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이사회에 추가되었다. 그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자문 편집인이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 훈련센터에서 강연하였고, 그레이엄은 무디 성경학교의 100년 기념행사에서 강연하였다. 그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이다. 슬프게도, 그는 최근 무디 성경학교를 신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 안으로 빠르게 인도하였다.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
2001년 로버트 슐러의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의 강사들 가운데 복음주의자 토니 캠폴로와 빌 하이벨즈, 자유주의적인 클락 피나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슐러는 최근에 그의 수정(水晶) 대성전에 '무신론자' 고르바초프를 세웠다. 수정 대성전은 교회가 아니고 단지 관광객의 호기심을 끄는 곳이 되었다. 로버트 슐러는 '이단자'이며 그의 신학은 성경적 신학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주의자들이 그런 곳에 설 수 있는가?
죤 맥아더는 헤이포드를 칭송함
잭 헤이포드의 유망한 목사들이라는 1997년 책에서, 미국의 인기 있는 저술가요 연사인 죤 맥아더는 은사주의자 헤이포드를 칭송한다. 로버트 슐러, 빌 하이벨즈, 척 콜슨, 빌 브라잇, 그렉 로리 등도 추천의 글들에서 그를 칭송하였다. 헤이포드는 프로미스 키퍼스 운동을 장려하고 이사회에 참여하고 그 단체의 주요 행사들에서 연설한다.
콜슨과 팔라우가 골든-콘웰 이사가 됨
1999년, 척 콜슨과 루이스 팔라우는 골든-콘웰 신학교의 이사들로 선출되었다. 친(親)천주교적 교회연합운동가인 그들은 골든-콘웰의 신복음주의적 입장에 잘 맞을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은 골든-콘웰의 이사장으로 일해왔고 골든-콘웰은 지난 5년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로부터 4백만불의 장학금을 받았다. 골든-콘웰의 힐탑지는 죤 암스트롱, 앨리스테어 벡, 그리고 케이 아서 등의 교회연합운동가들을 가을학기 연사들로 열거한다. 지난 여러 해들에 골든-콘웰은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극단적 자유주의자 제임스 포브즈 등 자유주의 연사들을 단에 세웠었다.
팔웰 경내에서의 윙필드 전도대회
제리 팔웰은 최근에 스티브 윙필드의 전도대회 천막이 오는 가을 리버티 대학교 건너편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의 새 부지에 처질 것이라고 광고하였다. 윙필드는 이전의 리버티 대학교 학생으로서 "메노나이트 교회에 출석하는 웨슬리파 감리교회 목사"이다. 199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렌즈데일에서의 전도대회에 관하여, 윙필드는 에큐메니칼 사고방식으로 말하기를, "나는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들을 제쳐놓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 여러 교단들로부터의 약 75개 교회들이 그 전도대회에 참여하였고 그 대회에 랩 그룹과 록 그룹이 특별 출현하였다.
빌 브라잇에 대한 제리 팔웰의 평가
세계적 전도에 있어서 빌 브라잇과 대학생 선교회의 진실한 노력에 관하여 많은 좋은 말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 사역은 불순종의 사역이었다. 왜냐하면 언제부터인가 빌 브라잇은 천주교인들과 은사주의자들을 따뜻하게 포용하였고 자신을 과다한 에큐메니칼 활동들과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2년 5월 11일 제리 팔웰의 리버티 대학교는 "그들의 괄목할 만한 기독교적 봉사" 때문에 빌 브라잇과 그 아내 보넷 브라잇에게 명예학위들을 수여하였다. 졸업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는 순서 직전에, 팔웰은 "내 견해로는, 빌 브라잇은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이십니다"라고 말했다.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파운데이션지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창조학회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와 베레아의 외침(Berean Call)지의 편집자인 데이브 헌트가 최근에 '영원한 지혜' 사경회에 갈보리 채플 설립자 척 스미스와 연합하였다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실망을 주는 일이다." 여러 해 동안 모리스와 헌트의 유익한 경고의 사역들을 언급하면서, 그 글은 "이 슬픈 타협은 갈보리 채플 운동의 은사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노력들에 신임을 준다"고 말했다. 파운데이션지는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방언과 다른 계시적 은사들을 포용하고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 진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척 스미스와 함께 사역적 노력에 연합했을 때 타협이 일어났다고 했다. 헌트와 모리스는 성경적 분리 외의 다른 거의 모든 영역들에서는 탁월한 분별력을 보인다.
단체들/ 기관들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
신임 회장 케빈 매노이아의 입장
1999년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연례 집회는 단지 350명이 참석했다. 새 지도자인 자유감리교회 감독 케빈 매노이아는 경계선을 넓혀서 전통적 복음주의 영역 밖에 있는 함께갈 수 견해들을 가진 자들을 포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계 하나님의 교회는 1997년에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매노이아는 말하기를, 복음주의 협회는 빈야드[죤 윔버의 단체] 같은 은사운동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많은 복음주의적 연합 감리교인들이 복음주의 협회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우리는 판별 방법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벽돌담을 말뚝 울타리로 대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사주의와 천주교회를 포용하기를 원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새 지도자인 자유감리교회의 은사주의자는 자신이 '보다 넓은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오순절파 교인들은 1993년에 미국 복음주의 협회 회원들의 80퍼센트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콜슨/ 뉴하우스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는 신복음주의자들과 로마 천주교인들 간의 다리 놓기의 한 예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이전 회장인 존 화이트는 '복음주의자들과 로마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문서에 서명했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복음주의 협회는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적인 대교단들의 지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왔고, 창립 이래 최초로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장 돈 아규는 모슬렘 지도자와 함께 자유주의적인 미국 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연설했었다.
회장이 포용주의적임
1999년 7월 미국 복음주의 협회 회장이 된 케빈 매노이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음주의자'라는 말은 보통 인정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한편에서는 미합중국 장로교회 등의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이 있다. 그 다음에 은사주의적인 천주교인들과 감독교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다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프로미스 키퍼스와 웃는 부흥을 낳은 빈야드 같은 기타 단체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주의자라고 믿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 . . 우리는 포용적이기를 원한다. 물론 절대적 진리들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더 많은 교회들과 지도자들을 포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있다.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교회를 용납함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최근 회원 교단들이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에 이중 회원권을 갖지 못하게 금하는 규정을 취소하였다. 그러자 교회협의회에 소속한 미국 개혁교회는 복음주의 협회에 회원권을 신청하였다.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가장 최근의 회원교단은 은사주의적인 빈야드 교회 협회이다. 복음주의 협회 회장인 케빈 매노이아는 복음주의 협회의 존재 이유가 자유주의를 대체하는 단체를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교회들을 일깨워 변혁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크리스챤 뉴스 편집자 헤르만 오턴은 조언하기를, "복음주의 협회 안에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복음주의 협회가 교회협의회 교회들을 용납하는 것을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만일 그 단체가 그 방침을 변경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그 단체를 떠나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은 몇 년 전 복음주의 협회에 가입했었다.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함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NCC)에 반응하여 조직되었던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그 시작 때부터 중립주의적 단체이었지만 최근에 더욱 명백히 정책을 변경하여 회원 교단이 복음주의 협회와 교회협의회에 이중적 회원이 되는 것을 허용하였다. 복음주의 협회의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계속 우리 자신을 자유주의적 단체들과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중요성을 합법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없어져 가는 한 이유에 묶어 놓는 것이다," "지금은 쇠해가는 대적(예를 들어, NCC)과의 부수적 싸움을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의 싸움이 단지 '부수적' 싸움이라면, 우리의 일차적 싸움은 무엇인가? 오늘날에는 자유주의자들과 싸울 이유가 없는가?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교단의 문제
미국 복음주의 협회가 회원들이 교회협의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미 연합감리교회는 미국 교회협의회의 가장 큰 후원자이며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두 번째이다. 남침례교회와 루터교 미주리대회는 교회협의회의 회원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협의회의 헌법은 교회협의회의 부서들과 연관을 가진 부서들이나 위원회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교회들은 교회협의회의 모든 회원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미국 교회협의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고 낙태와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들을 포용한다.
미국 NAE가 로버트 슐러를 연사로 세움
미국의 복음주의 협회(NAE)는 배교자이며 보편구원론자인 로버트 슐러를 초청하여 2004년도 대회에서 연설하게 하게 하였다. NAE의 신임회장인 테드 해가드는 다음 대회는 대형교회를 다룰 것이며 슐러의 수정교회가 그러한 교회라고 말했다.
로버트 슐러와 NAE에 대해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가든 그로우브의 크리스탈 대성전의 목사요 180개국 이상의 수백의 방송국에서 2천만명 이상의 시청자를 가진 첫번째 TV 설교자 로버트 슐러는 2004년 3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릴 복음주의 협회(NAE) 제62차 연례 모임의 강사일 것이다. 슐러 씨의 참여는 NAE의 해로운 포용 정책을 한층 더 증명한다. 수년 동안 그 단체는 그 프로그램들을 위해 많은 강사들을 접촉하였지만, 내년은 다르다. 로버트 슐러는 거짓 선지자, 양의 옷을 입은 늑대이다! 죄를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 존중을 빼앗는 모든 것'이라고 보는 그의 잘못된 정의는 그로 하여금 은혜의 복음을 부정하고 왜곡시키게 만들었다. 사람의 가장 큰 필요는 자기 존중이 아니고 거듭남이다. 우리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셨다(마 7:15). 슐러의 가능성 사고는 노만 빈센트 피일의 적극적 사고와 다르지 않고 그것들은 둘 다 오류이다(벧후 2:1; 요일 4:1)! . . . 우리는 구원이 은혜로만 오며 믿음을 통해서만 얻으며 그리스도 안에만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배교(슐러)로부터의 그리고 배교와 타협하는 자들(NAE)로부터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또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NAE의 위험, 특히 거짓 선지자를 그 연례 모임에 강사로 초청하는 이러한 최근의 타협을 상기시키는 바이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
'개방적 신론'에 관해 의견이 나뉨
2001년,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회원들 약 70퍼센트의 찬성으로 '개방적 신론'에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유적 도덕적 행위자들의 미래의 모든 결정과 행위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들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하고 무오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고 우리는 믿는다." 개방적 신론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부정한다. 개방적 신론의 대표적 주창자들은 죤 샌더스(헌팅톤 대학), 그레고리 보이드(베델 대학), 클락 피낙(맥매스터 신학대학)이다. 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약 30퍼센트가 개방적 신론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대수롭지 않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변질된 복음주의는 복음주의가 아니다!
클락 피낙(Clark Pinnock)은 개방적 신론을 옹호함
1960년대의 클락 피낙은 남침례교의 복음주의자이었고 성경 무오성의 옹호자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그는 매우 자유주의적이다. 피낙은 지금 '개방적 신론'을 옹호하고, 하나님께서 새 지식을 얻을 때 때때로 생각을 바꾸신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예수께서 한가지 점에서 잘못이었으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제한적 지식 때문에 그는 때때로 잘못된 예언을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예언들을 인용한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타협적 태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했고 "그는 오늘날 탁월한 신약학의 종합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셨고 오류를 범하셨다고 말한 천주교 자유주의 신학자이었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을 거부했고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는 1971년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로 갔고 거기에서 첫번째의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적 풀러신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브라운을 근래의 풀러신학교 강사로 열거하였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의 설립자요 이사회 의장은 빌리 그레이엄이며 무디 성경학교의 죠 스토웰, 워런 위어스비, 및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회(IFCA)의 에드 답슨은 천주교인들과 더불어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자문 편집위원들' 명단에 올라 있다. 신복음주의의 근본적 문제점은 이단적 자유주의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용납하고 그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단과 교제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C. S. 루이스를 칭송함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2001년 4월 23일자는 "신화 문제들"이라는 논설에서 C. S. 루이스를 칭송하였다. 그 글은 그가 현대와 현대 이후(post-modern) 세계와 복음을 함께 나눌 방법과 언어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고 말했다. 그 글은 루이스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라고 불렀고 그의 신화적 책들을 칭송하였다. 그의 나니아의 연대기는 기독교와 이방 전통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결합하며 비유들과 상징들을 혼합한다(예를 들어, 애슬란은 '그리스도의 상징'이지만 또한 진짜 사자이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는 "애슬란에서 그리스도는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고 실제적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잡지는, "루이스는 이방종교의 뿌리들을 파고 들고 그 뿌리들이 기독교의 것들과 양립할 수 있는 곳을 적당히 할당하는데 능숙하였다"고 말했다. 이런 것이 신복음주의와 그 대표적 한 인물의 혼란스러운 묵상들의 일부이다! 루이스는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였고 진화론과 연옥설을 받아들였고 자기를 "매우 카톨릭적이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고 그는 몰몬교인들에게도 즐거이 환영을 받았다. 마틴 로이드-죤스는 심지어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인지도 의심하였다.
[기독학생회(IVF)]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미국과 캐나다의 IVF[기독학생회]가 후원하는 3년마다 모이는 2000년 12월 27일-31일의 집회를 위해 거의 2만명의 대학생들과 젊은 성인들이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 대학교에 모였다. 거기 참여한 거의 90개의 교단들은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복음주의 및 은사주의 등 뒤섞인 단체들의 일부이었다. 학생들은 풀러, 베델, 애즈베리, 고든-콘웰, 덴버, 비올라, 그레이스, 그랜드 래피즈, 무디, 위튼, 웨스트민스터, 아메리칸 뱁티스트, 그리고 어셈블리즈 어브 갓 등 타협적 단체들의 많은 학교들을 대표하였다. 기관들은 감독교회,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미국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을 대표하였다. 대학생선교회, 어린이 전도협회, 새 종족들(New Tribes), 티임(TEAM) 등의 종교 단체들은 청년들을 자기들의 기관들로 모집하려고 애썼다. . . . 어떤 부분들에서는 복음이 성경적으로 정의되었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그 핵심으로 사회적 행동 계획들과 인종 화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토니 에반스는 한 비디오에서 말하기를, "백성들이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는 곳에서 부정(不正)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 개정표준역(NRSV) 성경이 모든 참석자에게 주어졌다. 예배팀 밴드는 큰 소리의 CCM/록음악을 제공하였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KEF)]
빌리 그레이엄 집회를 수용함
1990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홍콩 국립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대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를 실시했는데, 그 장소는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 합동측 교회들을 포함했다.
자유주의 교단의 목사를 강사로 세움
1995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들 중에 기장측의 조향록 목사가 포함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창함
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의 'NCC 개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 발표회에서,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모두 자기 반성을 해야 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NCC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연합 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그 발표회에서 전호진 박사도 "보수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자유주의적 교단들(기감, 기장)을 받아들이려 함
1991년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제2회 정기총회는 "기감과 기장의 가입 문제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이 단체는 기감과 기장이 분명히 자유주의적 교단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단들을 배제할 의사가 없다.
'한기총'의 분별력?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는 1994년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강원용 목사에게 부탁하였고 임원 취임예배 설교를 기장측의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또 그 단체의 남북교회 협력을 위한 세미나의 강사에 강원용 목사가 포함되어 있다.
지도자들이 기독교회협의회(NCC)와 하나되기를 원함
1996년 "한기총은 어디로"라는 주제의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발제자 한명수 목사(전 한기총 총무, 창훈대교회 목사,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한국교회협의회, 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논찬자로 나선 정진경 목사(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전 한기총 대표총무) 역시 개신교계 대표성을 띤 연합기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 한기총과 교회협의 하나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한기총 대표회장 최훈 목사도 하나되는 소망을 갖고 일한다"며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8년 2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 회견에서 한국교회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특히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신인 대표회장의 입장
2000년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선임된 이만신 목사(중앙성결교회)는 그 동안 껄그럽게 여겨왔던 교회협[NCC]과의 관계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교회협의 모습은 보수권에서 보기에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한기총과 교회협의 통합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기총과 교회협이 기구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모색하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사업 동조를 통해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이단성을 알지 못하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연합을 가능하다고 보는 것보다 더 큰 무지와 혼란은 없다.
기독교회협의회(NCC)와 연합 행사들을 행함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회장: 이성덕 구세군사령관)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회장: 이만신 목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평화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특별연합예배'가 2000년 6월 4일 열리는데, 교회협의회 김동완 총무는 "이번 연합예배를 시초로 앞으로도 교회협과 한기총이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이만신 목사는 "[이] 연합예배가 한국교회가 하나되고 통일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한국장로교협의회의 연합 행사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 총연합회의 전신인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당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다. 그 5개 교단은 예장 통합, 예장 합동, 기장, 예장 고신, 예장 대신이었다. 그 행사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들은 150여명이었다.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에서, 예장 통합 부산진교회 박성원 목사는 교회가 "과거 분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허위 구조 즉 정통성 수호라는 미명아래 교인들에게 강요해 온 모든 허위구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주의'가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그 좌담에서 기장 신학연구소장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교리적 확신]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예장 대신 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제의했다. 심지어 그는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 보수 신학에선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3년의 공동선언문
1993년 한장협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장로교회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고 진술하였다.
1994년의 연합사업 계획
한장협은 1994년 사업 계획에 각종 강단교류, 신학생 예배강단교류, 세계장로교와의 교류 등을 포함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예장연)]
신년 하례회
2000년 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회(대표 회장: 김경희 목사)는 신년 하례회를 가졌다. 75개 교단 지도자 170여명이 모인 이 날 예배시 설교는 김의환 목사가 하였다. 이 날 대표 회장에 취임한 김경희 목사는 인사말을 통해 예장연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연합회를 중심으로 신학과 신앙을 바로 세우기 등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대표 회장이 제안한 '바른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은 자유주의와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를 배격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날 설교자이었던 김의환 목사는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진 자이다. 예장연이 바로 진행하려면 신복음주의적 입장을 분별해야 한다.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한목협)]
진정한 개혁은 어디에서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등 장로교 4개 교단의 개혁성향의 목회자 그룹들로 구성된 한국장로교 목회자협의회(장목협)(회장: 옥한흠 목사)는 1998년 6월 16일 경기도 광주군 소망수양관에서 수련회를 가진 후 '교회개혁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교회 도덕적 타락 현상과 대 사회 영향력 약화 현상을 뿌리뽑기 위해 목회자 개혁과 한국교회 일치가 시급하다고 천명하였다. 특히,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 현상에 대해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고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이런 선언이 바른 말인가? 첫째로, 목회자 개혁에 대해, 목회자가 도덕적으로 부패해 있다면 회개하거나 권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오늘날 목회자의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 문제가 아니고 일차적으로 교리적 문제이다. 기장측과 통합측의 많은 목사들이 바른 신학에서 이탈하여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의 개혁은 바로 이 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유주의 사상은 이단이며 불신앙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는 악이다. 그러므로 교리적, 사상적 순수성의 회복이 오늘날 요청되는 첫번째 목회자 개혁의 과제이다.
둘째로, 무분별한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의 강조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 교회 연합은 좋은 일이지만, 반드시 바른 진리 안에서 강조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러한 포용적 교회연합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현대판 바벨탑이 될 것이다. 이단과의 그러한 연합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합동측과 고신측 같은 한국의 보수교회들의 목사들이 정신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참된 개혁은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자유와 보수의 선이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교회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바른 교제의 원리부터 지켜야 한다.
'한목협' 형성 움직임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에서 교회 갱신을 목표로 활동하는 목회자 협의회들이 모여 가칭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한목협)을 발족한다고 한다. 예장 합동측의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해 예장 통합, 고신, 대신, 기장, 성공회, 기감, 기하성, 예성, 기성, 기침, 구세군, 나사렛 등 13개 교단 목회자 협의회에서 32명의 대표들은 1998년 9월 14일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에서 대표자 모임을 갖고 한목협을 발족키 위한 준비위원 9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비신학적, 비정치적 한도 내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도모하며 특히 성직자와 교회의 윤리성 회복을 통해 대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데 서로 협력하고 연대키로 했다고 한다. 준비위원들은 김경원 목사(합동), 김원배 목사(기장), 김광수 목사(기감), 조성기 목사(통합)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비신학적' 교회 일치가 무엇인가? 교회가 신학을 초월하여 연합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혼란한 연합운동의 청산이 바로 교회 갱신의 첫번째 과제이다.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 발족
한국 교회의 주요 교단들에서 교회 갱신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 협의회들은 11월 26일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에서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한목협) 창립 총회를 연다. 창립 총회에 참여하는 협의회들은 다음과 같은 14개의 교단들에 소속해 있다: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 예장(대신), 예장(합신), 기감, 예성, 기성, 기침, 나사렛,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한목협'의 설립 취지는, 비신학적, 비정치적 한도 내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도모하며 특히 성직자와 교회의 윤리성 회복을 통해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 데까지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총회를 전후해서 순서를 맡을 자들 중에는 이성구 목사(고신 정신 잇기 목회자 협의회 총무), 옥한흠 목사(예장 합동), 이동원 목사(침례교), 지 덕 목사(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등이 있다.
그러나, '한목협'의 출범은 한국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갱신을 위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들의 근본적 문제는 신앙의 변질 곧 신학의 변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갱신은 교단 신학교들 안에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교단들 내에 있는 자유주의 목사들을 찾아내어 권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사상적 변질을 문제삼지 않고 단지 '비신학적' 윤리 갱신만을 부르짖는 것은 매우 미흡하다. 이런 연합운동은 현대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혼동을 추가시킬 것이다.
한목협, 3대 개혁과제 천명
기독신문에 의하면, 한국의 13개 주요 교단 갱신그룹 협의체인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1999년 6월 첫번째 전국 목회자 연합수련회를 개최하고 교회 일치, 교회 갱신, 섬김 등 3대 개혁과제 달성에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단체는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인 바른 신학의 재확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바른 신학에 근거하지 않는 교회 일치의 추구는 비성경적 연합운동(에큐메니칼 운동)에 불과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반대된다.
한목협은 어디로?
[고려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한 허순길 교수는 기독교보에 위의 제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실었다.]
△ '한목협'의 정체
한국기독교 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는 현재 전국 14개 교파에 속한 목회자협의회들로 구성되어 있는 초교파 협의단체이다. 이 협의회는 1998년 11월 26일 예수교 장로회(합동) 사랑의 교회에서 13개 교파에 속한 주로 40, 50대 중견목회자들이 모여 창립하고, 교회의 일치, 갱신, 사회 책임을 내용으로 하는 창립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협의회에는 여섯 장로교단(합동, 고신, 통합, 기장, 대신, 합신)과 성공회, 감리교, 하나님의 성회, 성결교(예성, 기성), 나사렛교, 침례교 등에 속한 목회자 협의회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역사와 신앙고백을 달리하는 교회들의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협의회가 창립될 당시 국민일보는 이 기관을 이끄는 구성원들이 40, 50대 중견 목회자들로서 그 중에는 각 교단에서 규모도 크고 대표성도 있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정치집단화 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대체하려는 또 하나의 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교계에 있음을 보도했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차츰 현실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29일자로 발표된 선언문이나, 이 협의회 회원들이 각종 모임에서 발언하는 내용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협의회가 표방하고 있는 여러 선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 지향하는 바가 참으로 한국교회건설에 유익을 줄 수 있을지 우려를 갖게 한다. 이 협의회가 "종교개혁자들이 세운 개혁되었고 항상 개혁되는 전통에 서서,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은혜'로만의 역동적 신앙을 실천해 갈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개혁보다는 한국개신교 교회일치를 위한 하나의 혁명을 기도하고 있는 정치적 압력단체처럼 비쳐지고 있다. 특히 이 협의회가 보수와 진보, 각 교회가 가진 역사적인 신학과 교리의 벽을 넘어서는 교회일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신학과 신앙을 파수해 온 교단들로 하여금 깊은 우려를 갖게 하고 있다.
△ 교회분열에 대한 양비론적 입장
한목협은 그 창립선언문 서언에서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와 변명에도 한 몸인 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누어진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하며, 일곱 가지 결의를 다짐하는 가운데, 첫째로"그 어떤 이유나 변명에도 교회의 분열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협의회 선언문은 이유를 물을 필요 없이 분열은 정죄의 대상됨을 선언하고 있다.
반세기 전 하나의 교회 공동체였던 장로교회가 현재 백여 교단으로 분열된 현실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런 정죄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다. 교회 분열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한목협이 분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지 않고, 양비론(兩非論) 입장에서 무조건 정죄를 선언하는 것은 '프로테스탄트'답지 않은 일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신앙과 행위의 절대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스스로 심판자로 군림하는 듯 보여진다. 수백년 동안 개혁교회가 고백해 온 신앙고백은 참 교회가 있고,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교회라 할 수 없는 거짓 교회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양자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참 교회란 교회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적인 신앙고백의 터전 위에 서 있는 교회를 지칭한다. 지난 날의 교회사를 뒤돌아 볼 때,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라 하기보다 사탄의 회가 될 정도로 타락했었다". 지상에서의 교회가 이렇게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음을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타락한 교회는 엄밀한 의미로 교회라 할 수 없다.
이럴 때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사도적 가르침과 신앙을 파수하고 계승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게 될 뿐 아니라 새로운 교회 조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어질 수 있다. 이 새로 조직정비된 교회공동체가 외형상으로는 주류로부터 분열된 작은 공동체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역사적, 사도적인 하나의 거룩한 보편교회(a holy catholic Church)에 속해 있는 참 교회인 것이다. 지난 날 종교개혁시 개혁자들도 이런 사도적 신앙에 근거한 참된 교회 건설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다 부패한 로마교회로부터 추방당해 다른 교회조직체를 형성했던 것이다. 분열은 죄이다. 그런데 이 분열의 죄는 언제나 부패 타락한 교회편에 있는 것이다. "주의 교회는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다. 그러나 말씀에 불순종을 유도함으로 교회의 파괴를 노리는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이 역사 세계에서는 기존의 제도적 교회가 부패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으며, 사도적인 교회의 전승을 위해서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야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 이후에 신실한 우리의 선진들이 걸어온 길이었다. 한국교회 특별히 장로교회 분열의 대부분이 교회의 왕이신 주님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그러기에 그의 몸된 교회를 찢는 죄를 범하는 결과를 가져온 일들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분열에 대한 책임을 양자에게 묻는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좇는 태도가 아닐 뿐 아니라, 개혁주의 입장의 교회관과 역사관에도 배치된다. 교회의 전통적인 신학과 신앙과 교리의 파수를 위한 투쟁은 이따금 불행한 분열의 결과를 가져 왔다.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돌아 볼 때도 이 협의회의 분열에 대한 무조건 정죄는 지난날 일제시 신사참배로 무너져버린 한국교회 개혁과 재건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다 부패한 교권의 횡포로 축출당한 후 개혁주의 참 교회건설을 위해 교회조직을 새로 정비해야 했던 신실한 종들과 자유주의에 오염되어 가는 한국교회를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의 터전위에 세우려 선전하다 결과적으로 분열의 슬픔을 겪게 되었던 종들을 정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 새로운 신학의 추구
한목협은 보수 진보를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수립을 원한다. 1998년 11월 창립 총회시에 발표한 선언문에는 신학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모호하게 표현을 했다. "우리의 지평을 세계로 넓혀 세계교회의 흐름과 신학의 사조을 익히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있어서 게으르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일치된 역량을 복음의 능력으로 불타오르게 하고자 다짐한다"고 했다. 여기 "세계교회의 흐름과 신학의 사조를 익히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간다"는 말은 한국적인 새로운 신학의 생산을 시사하는 듯 들린다. 그런데 이 협의회의 창립회원 단체들의 각각의 창립 발기문들과 창립총회 자료집에 실린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 협의회가 신학문제에 있어서 어떤 공통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나게 된다. 몇 예를 들면 예장 통합측 '바른목회실천협의회'는 신학선언에서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교회에는 첫째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 둘째 진보적 급진주의 신학, 셋째 문화적 자유주의 신학, 넷째 실용주의적 교회성장주의 신학이라는 네줄기 흐름이 있어 왔는데 "이 신학들은 제각기 한국교회의 발전에 공허한 바가 적지 않았지만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그러므로 여기에 바른 신학이 요청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기독교장로회측 '21세기 목회자협의회'는 창립취지문에서 "열린 신학의 정신과 새로운 영의 눈으로 복음과 상황을 해석하고 응전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성장 그리고 갱신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감리교목회자협의회 창립선언문에는 "특정한 교리나 신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한 성령은 우리가 진리안에서 자유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여기 언급한 소위 '바른 신학', '열린 신학', '특정 교리에 매이지 않는 신학', 등은 모두 전통적인 신학과 역사적인 신앙고백들의 폐기를 의미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고신측의 고목협과 합동측의 목회자협의회는 그 창립선언문에서 신학문제에 있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는 교계의 예민한 반응을 예견한데 있는 것으로 추단된다. 유의웅 목사(당시 예장통합 총회장)가 행한 한목협 창립총회 축하 메시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온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진보와 보수의 벽을 넘어 교회가 하나되는데 하나의 거대한 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한목협이 신학과 교리면에서 어디를 지향해 가고 있는지 잘 말해 주고 있다. 지난 5월 29일 한목협의 대표회장인 옥한흠외 회원 목회자 일동 이름으로 선언한 '한국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한 선언'에서 신학자들에게 '교회화합과 일치를 위한 신학수립'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이로서 한목협은 실상 신학자들에게 보수, 진보의 신학,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이 가진 다양한 신학과 교리를 다 포기하든지, 저 다양한 신학과 교리를 다 수용하여 혼합 용해하든지 하여 모든 교회가 받을 수 있는 새 신학을 주조해 내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볼 때 한목협은 교회일치를 위해 신학적인 영역에서도 하나의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대범한 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한국교회의 분열상이 아무리 슬프게 보여도 교회일치를 위한 이런 혁명적 기도는 성공의 가능성도 없거니와 한국교회의 안녕과 발전에 도움을 주게 되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명분이 뚜렷한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신학 교리면에서 과거로부터의 전통적 역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교회일치를 위해 이 역사의 맥을 단절케 하고 새로운 신학과 교리를 창출하려는 혁명적 운동은 교회에 큰 불안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신학은 교회의 초석이다. 한목협은 신학의 혁명을 통해 교회의 터를 흔들려 하고 있다. 교회일치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모든 장로교회 교단간의 일치를 이룬다는 사실 자체가 허상일 수밖에 없다. 신학적으로 출발부터 진보입장을 취해 온 기독교장로회와 보수적 입장을 지켜온 고신이나 합동측 장로교회가 어느 한편에서 자기의 신학적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일치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혹 교권이나 다수의 세력을 가지고 교회의 일치를 강행한다고 하자. 그 때는 더 많은 분열이 있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교회일치를 누구 못지 않게 주장해 온 민경배교수가 지난 5월 29일 한국장로교연합을 위한 평신도초청간담회에서 '장로교연합운동과 과제'라는 발제강연 중 "교회연합운동에 있어서 인위적인 일치는 의미도 없고 불가능한 일이므로 장로교연맹 형태의 협조적 협동적 기구의 활성화와 장로교협의회 같은 협의체 형태의 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 말은 오히려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일치를 현실성 있게 추구하려면 신학과 신앙고백과 신앙이 같은 교단들끼리의 일치운동에 나설 것이다. 한목협의 일치운동은 너무도 혁명적인 것이다. 한목협의 교회일치를 위한 새 신학의 생산을 주장함으로 이상 더 교회를 혼란으로 몰아가지 않아야 한다.
△ 침묵하는 보수교계
한목협은 신학적으로 진보적 교계를 대표하는 당시 대한기독교교회협의회(NCC) 회장 정철범 대주교와 보수적인 교계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지덕 목사의 격려 메시지로 축복을 받으면서 창립되었다. 이로서 진보와 보수 양 연합기구는 정체성과 그 구별된 존재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러기에 한목협은 앞서 언급한 5월 29일의 '한국교회 화합과 일치를 위한 선언'에서 "한국의 사회와 민족을 향하여 기독교를 대변할 수 있는 단일 기구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진보 보수교회들의 무조건적 교회일치를 부르짖는 한목협의 선두주자들이 한국장로교계에서 신학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합동과 고신측 교회에 속한 목회자들(목회자협의회)이라는데 상당한 당혹감을 갖게된다. 그리고 이 양 교단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한목협이 추구하는 보수 진보 신학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뛰어넘는 새 신학의 생산, 모든 교파를 포괄하는 일치운동에 대해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한국 보수교회의 위기 의식을 갖게 된다. 화해 통일을 부르짖는 한국의 현 정치적 사회적 환경속에서 교회도 화해와 일치라는 힘찬 물결에 맥없이 휩쓸려 가고 있지 않는가 여겨진다. 교회는 본직적으로 세상과 다르다. 교회는 세상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주어진 진리를 파수하고 참 교회로서의 모습을 굳건히 지켜갈 때 그 나라와 민족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기타 사례들]
교단 총무회, 교회 연합 지지
한국 기독교 교단 총무회(회장: 김상학 목사)는 3월 7일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에서 회의를 열고 교회 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 움직임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단 총무회는 회장에 김상학 목사(예장 통합), 부회장에 서성수 목사(예장 합동), 총무 심군식 목사(예장 고신), 서기 한창영 목사(예장 합동보수), 회계 박봉규 목사(예장 개혁합신), 감사에 양회협 목사(침례교), 이요한 목사(감리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대원 원우회장단, 장로교대회 적극 참여 결의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대표회장: 예장 합동 김도빈 목사)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 준비위원회는 5월 1일 장신대 대회의실에서 가입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 제2차 회의를 갖고 한국장로교회는 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은 한국장로교회의 화해와 협력,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계기를 마련코자 실시되는 2000년 한국장로교대회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이 날 참석한 원우회장들은 예장 통합측, 예장 합동측, 예장 고신측, 기장측, 예장 개혁측 등 11개 교단 신학대학원 원우회장들이라고 한다.
보수적인 예장 합동측, 고신측, 개혁측 등의 순진한 신학생 원우회장들이 이런 류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분별력 없는 선배 목사들을 뒤따라 합세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한국 장로교단들에 속한 총회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한국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기독신학대학원, 국제신학대학원, 대한신학대학원, 중앙신학대학원, 합동중앙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등 11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2000년 9월 20일 기독신학대학원에 모여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 색채를 반영하기 위해 1인 대표체제를 지양하고 총회신학대학원 이재윤, 장로회신학대학원 고창준, 기독신학대학원 김상민 등 3명을 공동대표로 하는 복수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단체는 한국 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9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 장로교회는 만국 교회 앞에 하나"라고 천명했다. 또한 그 선언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나 세속 이념을 두어 온 죄와 교권을 가지고 그것을 구실로 분열해 온 죄를 뉘우치자"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또 여기의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를 둔다'는 말이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근본교리들을 지키려는 보수신학을 비난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것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2002년 6월,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등 21개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장로교 신학회가 창립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종윤 목사는 취임소감에서 "장로교가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적인 자화상이다"며 "이번 장로교 신학회의 창립을 통해 장로교가 분열을 극복하고 선교 초기처럼 하나가 되어 새시대에 복음전파에 주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종윤 목사가 예장 합동측에 소속했다가 예장 통합측으로 옮긴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진 중에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오덕교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김인환 총신대학교 교수 등이 섞여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장통합, 합동, 기장 등이 모여 무슨 공통적 장로교 신학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주의 신학을 알 만한 보수교단의 신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무슨 토론을 하자는 것인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므로 이단자들과 더불어 무엇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2002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 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세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경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연합 정신은 성경이 가르치는 연합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참된 교회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고,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 오늘날 가장 파괴적인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것이 바로 기장, 기감, 예장 통합 등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은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학교들
[풀러신학교]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에 포함함
1984-1985년 풀러신학교 요람은 천주교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를 강사로 열거하였다. 그러나 브라운은 성경의 무오성을 거부했고 예수께서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니셨고 잘못을 범하셨다고 말한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최초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
풀러신학교의 복음주의
복음주의적인 풀러신학교는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을 옹호했었다. 이 학교는 이 교리를 거부한 후 은사운동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풀러신학교는 이제 여자 목사들과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풀러신학교의 사상적 변질은 신복음주의의 결과이며 처음부터 예견된 바이었다. 오류의 포용은 오래가지 아니하여 타협과 변질을 가져온다.
풀러신학교 방문자의 보고
아더 후크 박사는 1999년 7월 27일 풀러신학교를 방문하고 신학부의 인기 있는 죤 골딘게이(John Goldingay) 교수의 강의실에 참석했는데, 그는 그 교수가 "여리고 성이 있었고 그 성벽들이 무너져내렸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 . . 아마 이것은 비유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분명히, 성경에 대한 불신앙과 부정이 여전히 풀러신학교에 우세하다.
마가렛 서스터가 안식교 세미나에서 설교함
펀더멘탈 다이제스트 1999년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풀러신학교에서 설교를 가르치는 '목사요 교사요 여성 성직자요 학자요 저술가'인 마가렛 서스터(Margaret Suster)는 1999년 4월 20일 안식교가 후원한 위성 생중계 '대화식 세미나'를 위한 초청 설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풀러신학교의 문제들
풀러신학교의 포커스(Focus)지는 한 천주교 수녀의 풀러신학교 학생으로서의 경험에 관해 인터뷰를 하였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풀러가 여성으로서 심각히 목회에 쓰임받기를 원하는 천주교 여성이 공부하기에 훌륭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죠지 마스든은, 풀러신학교가 100개 이상의 신학적 전통들을 포용하며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칼 성격에 대한 놀라운 성취"에 있어서 유명하다고 말한다. 풀러신학교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같은 교리들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그 학교는 여자 목사들을 권장하며 은사운동에 대해 개방적이다.
[달라스 신학교]
자유주의자 브루스 메츠거가 강연함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인 브루스 메츠거는 1992년 2월 4일부터 7일까지 달라스 신학교에서 강연했는데, 메츠거는 성경이 신화와 거짓말로 가득하다고 주장하고 성경의 역사성, 기적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는 자이다.
위클립 성경번역회와 협력함
달라스 신학교는 위클립 성경번역회(Wycliffe Bible Translators)와 협력하고 있는데, 위클립 성경번역회는 오래 전부터 로마 천주교인들, 자유주의 교회들,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근하다.
달라스 신학교의 신복음주의적 연관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와 관계하여 31년간 봉사했고 세계 복음화 로잔위원회 명예 평생회장인 레이턴 포드는 1997년 5월 달라스 신학교 졸업식 연사이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협력 편집자 앨리스터 맥그레이스는 1997년 경건회에서 그리피스 토마스 기념강연을 하였다.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인'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을 잘못된 종교체제로 인도하는 자를 '주목할 만한 자'라고 칭송해야 하는가? 달라스 신학교 교수들은 1997년에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에서 그리고 휫튼 대학, 무디 성경학교 및 브라이언 대학에서 강연했다. 달라스 신학교가 신복음주의적 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의심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달라스 신학교 대럴 보크 교수의 잘못된 사상
2001년 12월,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회장인 달라스 신학교 교수 대럴 보크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의 교리를 거부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 동안에 행한 복음주의 신학회 앞에서의 한 연설에서 "복음주의 운동을 위해 날카로운 경계선들이 그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그 대신 "복음주의는 경계선들에 의해서보다 중심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 '초원 위의 마을'에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잘못된 사상이다. 비록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가 열린 유신론을 정죄하는 구속력 없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보크는 그것을 반대하였다.
[리버티 신학교]
리버티 신학교의 에큐메니칼 연사들
네쇼널 리버티 저널 1998년 4월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리버티 침례교 신학교는, 게리 콜린스, ['성경으로 돌아가자' 프로의] 우드로 크롤, 죤 맥스웰, 스티븐 올포드, 제리 바인즈 및 죤 월보어드와 더불어, [하워드] 핸드릭스 박사가 우리의 훌륭한 방문교수 명단에 들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웰은 케이 아더와 다른 이들과 함께 '예수 2000 성지순례단'을 위한 연사로서 사진 보도되었다. 그의 1998년 대집회 연사들은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과 죤 맥스웰(로버트 슐러 연사)을 포함한다. 이 사람들은 다 에큐메니칼적으로 강단을 교류하는 목사들이다. 리버티 대학교와 신학교 및 제리 팔웰 박사는 한국에서 건전한 입장을 가진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성경적으로 건전하지 않다.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단에 가입함
리버티 대학교는 1999년 11월 15일 버지니아 남침례교 보수주의자 모임에 공식적으로 가입함으로써 남침례교단과 공식적 관계를 맺었다. 이 새로운 관계는 남침례교회 학생들로 하여금 리버티 대학교에 다니도록 격려하고 47,000개의 남침례교회들로 하여금 그 학교에 대한 재정 후원을 가능하게 만든다. 남침례교회 총회장 페이지 패터슨은 리버티 대학교의 남침례교회 가입이 우리 모두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침례교단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섞여 있는 교단이다.
[무디 성경학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일치 개념
무디 성경학교 교장이며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의 연사이기도 했던 조 스토웰은 1996년 5월 1일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서 모인 전국 전도협의회에 참석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참석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당신의 몸이 연합될 때만 움직이셨음을 상기시켰다." 당시 회장이었던 조 앨드리히는 연합이 모든 영적 질병을 위한 보편적 치료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연합을 진리보다 높이지 않는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나뉘는 것이 더 낫다.
무디 성경학교 교장의 포용적 행보
무디 동창회보(Moody Alumni)에 의하면, 무디 성경학교 교장 죠셉 스토웰의 1999년 9월부터 2000년 2월까지의 순회설교 일정은, 프로미스 키퍼스, 빌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공동체 교회, 빌리 그레이엄의 더 코우브, 미국 종교 방송협회, 달라스 신학교, 생명의 말씀사, 시다빌 대학(정규침례교회 총협의회 인준), 및 루이지애나 침례교대회 등을 포함한다. 그의 걸음은 포용적이다.
[베델 신학교]
베델 신학교 그레고리 보이드의 열린 신관(神觀)
미국의 베델 대학 및 신학교의 신학 교수이며 우드랜드 힐즈 침례교회의 목사인 그레고리 보이드 박사는 하나님의 예지(豫知)와 전지(全知)에 의문을 던지는 열린 유신론 논쟁의 핵심에 있다. 보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우쉽 비지터지 8월 2일자에 인용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결정들의 실재를 창조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하기까지,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 . .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도록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알 수 있는 아무것도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그들이 그들의 결정들을 창조하기까지 그가 창조하시는 사람들의 선하거나 악한 결정들을 미리 아실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거절해야 한다.
[비손 신학부]
비손 신학부의 에큐메니칼 광태(狂態)
샘포드(Samford) 대학교의 비손 신학부(Beeson Divinity School)와 옥스포드의 위클립 홀은 2003년 10월 미국 알라바마주 버밍햄에서 "성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과 기독교 생활에 관한 대회"라는 에큐메니칼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비손의 학장인 티모시 죠지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 대회는 로마 천주교회, 정교회, 그리고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성경적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실재, 즉 거룩과 사랑의 한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찬양하려는 것이다. 과거의 자유주의 신학들에서, 삼위일체는 빈번히 영성이나 현재의 교회 생활에 별로 적응성이 없는 낡은 교의로 간주되었다.
연사들은 죠지, 애버리 카디날 둘레스[로마 천주교회 예수회], J. I. 패커, 코넬리어스 플란틴가 2세[칼빈 신학교 총장], 앨리스 맥그레이드, 프레데리카 매튜에스-그린 [NPR] 등을 포함한다. 죠지는 이 대회가, 도움이 되는 에큐메니칼 사역을 격려하기를 소망한다. 비손 신학부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회원기관이며 샘포드 대학교의 일부이다. 샘포드 대학교는 최근까지 남침례교단의 학교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본래의 입장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초기 설립자들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그 용어가 개혁주의보다 축소주의의 기분이 들고 또 근본주의가 알미니우스주의와 세대주의를 포용한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근본주의적이었다. 즉 메이천을 비롯하여 반틸과 죤 머리와 에드워드 영 등은 배교와의 분리를 분명히 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입장은 불투명하다. 그 학교의 교장이었던 에드몬드 클라우니는 신복음주의의 대표자 빌리 그레이엄을 지지했다고 알려진다. 그 학교의 운영이사들은 정통장로교회(OPC)와 미국장로교회(PCA)와 기독교개혁교회(CRC) 소속 인사들로 구성되었는데, 미국장로교회는 신복음주의적 단체인 미국복음주의 협회(NAE)에 가입되어 있고 기독교개혁교회는 진화론이나 여성안수 등 신학적, 윤리적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교수들이 복음주의 교계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들이 분명하고 분별력 있는 목소리로 현대교회의 배교와 타협에 대해, 특히 신복음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신복음주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2002년 6월 크리스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행정 부총장 스탠포드 카슨은 자유주의적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관계에 대해 "내년 학기에 우리 교수 한 사람이 프린스톤에서 가르치기로 했다"며 "상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그 학교의 행정 부총장이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활발한 상호 교류를 긍정적이고 고무적이게 소개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그것은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방향이 어떠함을 나타내고 있다. 프린스톤 신학교와 미국 북장로교단 총회는 1920년대 후반 분명히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방침을 택했었고 그러한 방침에 대항했던 자들이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했었다. 1920년대 후반 두 신학교는 자유주의 혹은 포용주의와 보수주의라는 분명히 다른 입장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그렇게 진행되어왔다. 그런데 오늘날 두 신학교의 활발한 상호 교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린스톤 신학교가 성경적인 입장으로 돌아왔다는 뜻인가? 아니다. 오히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초창기 교수들의 입장을 버린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그 동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취하여 온 미지근한 태도가 가져온 결과이다.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교제하는 유화적 정책을 취하다가 마침내 자유화 되고 만다. 그것은 미지근한 타협주의자들의 말로이다. 우리 나라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들이 많다. 그들은 이 타협주의에 대해 통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 자신이 이런 타협주의를 좋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분별력이며 성경적 분리의 교훈에 대한 깨달음과 순종이다.
[칼빈대학]
칼빈대학의 변질
허순길 목사는 "북미개혁교회가 직영하는 칼빈대학 현실"이라는 글에서, 전통적 개혁주의 가르침에 대한 칼빈대학의 열심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기원, 여성신학, 동성애 등의 문제에서 성경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고 말한다. 20여년 전에 '기원' 문제에 있어서 이미 진화론과의 싸움이 중단되었고 유신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었다. 북미개혁교회에서는 10여년 전에 여자 목사, 여자 장로 제도가 도입되었다. 동성애 문제는 문화행사라는 이름으로 캠퍼스에 자리잡았다. 2001년 학교가 공개적인 여성동성애 가수들(Indigo Girls)을 캠퍼스에 초청하여 콘서트를 가졌을 때 상당한 반대를 받았으나 지난 해 다시 여성동성애 가수들이 칼빈대에 와서 콘서트를 가졌을 때는 어떤 논쟁도 없었다. 교무 담당 카펜터는 동성 성교가 죄이지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2002년 이후 칼빈대학은 '리본주간'을 지켜 오는데, 이 주간에는 동성애 학생들이 서로를 분별하여 자기 짝을 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리본을 단다고 한다.
[합동신학교]
합동신학교의 개교 15주년 찬양축제
합동신학교 학우회는 1995년 개교 15주년 기념 찬양축제에 총신대, 장신대 신대원 학우를 초청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동신학교의 김명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동안 분리에 분리를 거듭했던 총신과 장신, 그리고 합신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으고 목소리를 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울 뿐 . . . 역사는 종종 젊은이들의 순수한 헌신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한국교회 안에 이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합동신학교가 신대원 학생 대표자협에 참여
1995년 11월 23일, 감신, 성공회, 연대신, 이화, 장신, 한신, 협성신 등 8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의 연합 단체가 결성되어 각 교단 청년 신학도간의 교류와 한국교회의 일치 등을 다짐했다. 이 단체의 출범 선언문에는 "비본질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과 신학적 대립을 지양하고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존중하면서 . . . 궁극적으로 한국 신학과 교회를 갱신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진술되어 있다.
예장 합동측의 1979년 주류, 비주류 논쟁의 한 결과로 한국장로교의 존경받는 보수적 지도자 박윤선 박사와 예장 합동측 신학교의 여러 교수들에 의해 세워졌고 오늘날 한국내에 보수적 신학교로 꼽히는 합동신학교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의 입장이 무엇인가? 그들에게 이 배교적이고 혼란한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인가? 그들은 어찌하여 자유주의적 신학교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교제의 바른 원리를 따르지 않는가? 성도들의 교제는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자유주의적 단체들과의 교제는 하나님이 분명히 금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오늘날 주의 종들이 배교적 자유주의 사상에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중단하는가?
교단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박형룡 신학의 의의
1997년 5월 30일, 예장 합동측 총신 양지 캠퍼스에서 고(故)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평가하는 '제1회 죽산 세미나'가 열렸다. 박형룡 박사가 소천한지 19년 만에 있은 일이었다. 그 보도에 의하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한철하 박사는 박형룡 박사의 신학을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 사상을 전승한 '사도적 신학,' '바른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총신대학교 총장 김의환 박사는 "박 박사는 선교사들이 전수한 신학을 보다 체계화하고 한국교회의 현장에서 보수신학을 수호하고 전수했으며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을 극복, 결과적으로 우리 교단[합동측 교단]을 만들고 지켜왔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메이천의 '교회론적 취약점'"이라는 김의환 박사의 표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박형룡 박사는 '한국의 메이천'이라고 불리웠다. 그 까닭은 그가 메이천 박사처럼 자유주의를 철저하게 비평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고 변호하였기 때문이었다. 메이천이나 박형룡의 사상을 아는 자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론은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메이천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비평뿐 아니라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입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평하였다. 그러므로 박형룡 신학에 대한 평가는 그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이러한 점을 바르게 다루지 않고서는 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날 예장 합동측과 그 신학교에서는 그의 분별력 있는 바른 입장이 사라져가고 있다. 박형룡 박사를 논하는 자들과 그 교단과 그 신학교가 박형룡 박사가 그토록 조심하기를 원하며 경고하고 경계했던 바로 그 신복음주의적 오류의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예장 통합측과 연합예배를 드림
예장 합동측 기관지 기독신보는 예장 합동측 총회임원회가 예장 통합측과 함께 1995년 8·15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했다고 보도하면서 "우선 양교단이 화합을 도모해 . . . 교단 교류와 관련해 총회정서를 고려 단회적 행사임을 분명히 밝히고"라고 부언하였다. 또 동(同)신문은 두 교단이 37년만에 한국기독교 연합회관 대강당에서 함께 예배드렸음을 보도하면서, "양교단의 우호증진은 물론 한국교회연합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예장 통합측은 분명히 자유주의적 교단이다. 그러므로 예장 합동측 같은 보수교단들이 예장 통합측과 교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말했다(살후 3:6).
장로교 평신도들의 무지
예장 고신측, 예장 합동측, 예장 통합측 3개 교단의 전국 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대구 수성관광호텔에서 제4차 연석회의에서 채택한 결의문에서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면서 첫번째 내용으로 교단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그들 평신도들의 신앙이 비교적 순수하고 성경적일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각 교단의 지도적 장로들로서 오늘날 기독교계의 배교와 타협의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큰 슬픔과 탄식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면, 그들은 당연히 예장 통합측의 신학적 문제와 갱신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언급했을 것이며 단순히 '교단간의 화합과 일치'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적 목사들에게 분별력 필요함
예장 합동측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를 비롯하여 예장 통합측 '바른 목회 실천 협의회'(회장: 손인웅 목사), 예장 고신측 '고신 정신 잇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윤희구 목사), 기장측 '21세기 목회자 협의회'(회장: 전병금 목사) 등 장로교단들 중 대표적인 네 교단의 목회자 협의회들이 1997년 11월 3, 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장로교 목회자 모임'을 갖는다고 하였다. 동신문은 또한, 그 모임에서 선언문도 발표할 예정인데, "그 선언문에는 장로교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을 참회하는 한편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목회자들이 일치와 연합된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교회 갱신은 성경적 복음 진리에 입각해야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교들 속에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자유주의 이단의 추방이 없는 교회 갱신은 무의미하며 위선적이다. 교회의 갱신은 성경적인 바른 신학을 재확인하고 보수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잘못된 분열의 죄를 인식한다고 해서, 곧 무분별하게 교회 일치를 말하는 것은 교회를 혼란시킬 뿐이다. 하나님은 잘못된 분열을 정죄하시지만(갈 5:20), 또한 교리적, 윤리적 오류들로부터의 성별과 분리를 명백히 명령하신다(롬 16:17; 딛 3:10). 배교와의 타협은 분열 못지 않은 큰 죄악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니?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지 덕 대표 회장은 기자 회견에서 한국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합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특히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NCC)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교회협의회가 자유주의 교단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의 연합체로 알려져 왔던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의 대표 회장이 그 두 단체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하니 놀라울 뿐이다. 한국의 보수 교회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유주의는 죽지 않았다. 자유주의 교단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사상적 차이는 바른 교훈과 이단의 차이이다. 하나님의 참된 목사들과 교회들은 하나님이 인정치 않으시는 잘못된 연합활동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예장 통합과 가까와짐
예장 합동(총회장 길자연 목사)과 예장 통합(총회장 유의웅 목사)이 1999년 9월 제84차 총회시 개회예배를 함께 드리고 성찬식을 합동으로 거행할 전망이다. 또한 양교단은 이에 앞서 양교단 화해와 연합의 상징으로 내년 중 구국기도회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양교단 임원진은 이외에도 합동, 통합의 신학 교류를 위해 '총신대-장신대 신학포럼'을 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소속 교단에서 서로 노력키로 했으며, 1999년 1월에 개최되는 양교단의 신년 하례회에는 상대방 총회장을 초청하여 축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예장 통합측은 불신앙적이고 파괴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교단 소속 다수의 목사들은 그런 신학 입장에 서 있다. 그러므로 예장 합동측 목사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무분별한 교제는 보수교단의 순수성을 변질시키고 말 것이다.
예장 통합과의 연합의 서곡
예장 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1999년 1월 4일 오전 한국교회 백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예장 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왕성교회)를 초청한 가운데 신년 하례회를 가졌다.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하례회에서 총회장 유의웅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은 믿음과 사랑을 녹여 연합과 일치로 모일 때만 가능하다"면서 "앞으로 합동측과 함께하는 여름 구국기도회와 가을 총회 개회예배를 통해 한국 장로교 일치와 연합에 도움이 되며 세계 선교와 봉사에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축사에 나선 예장 합동측 길자연 총회장은 "하례회 초청에 감사하고 장족의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면서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장 합동측 총회장의 이런 발언과 행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시키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교회 연합과 일치는 바른 진리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예장 통합과의 교류 증진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 총회장들은 1998년 12월말 간담회에서 1999년 3월경 총신대학교와 장신대학교 교수들이 참여하는 신학 포럼을 열고, 7월에는 교단 지도부 뿐만 아니라 일선 교회 목회자들까지 포함하는 연합 구국 기도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두 교단의 분열 이후 40년 만에 처음 마련되는 일이다. 신학자들이 토론회를 가지는 것은 언제든지 좋은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연합 구국 기도회의 계획은 옳지 않다. 성경은,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遺傳)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분명히 명령했다(살후 3:6). 오늘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교단들은 명백히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다. 참된 교회들은 그런 교단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예장 합동측의 분별력과 입장
1999년, 예장 총회 제83회기 총대를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이상이 예장 통합과의 강단 교류와 신학 교류, 연합 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장 합동측 총회 총대들의 분별력과 입장은 매우 실망스럽다. 예장 통합측은 1959년 예장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계속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배격하지 않고 포용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승동교회와 영락교회의 강단교류
예장 합동측의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 통합측의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1999년 6월 27일 주일 오후예배 때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영락교회의 이철신 목사와 장로 30여명과 성가대원 100여명이 승동교회의 오후 3시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오는 8월 22일에는, 승동교회가 영락교회를 방문하고 예배를 인도한다고 한다. 우리는 통합측 총회 안에 진실한 많은 성도들과 목사들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총회의 신학교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보수하지 않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포용적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예장 통합측이 신학대학의 입장을 바로 가지지 않는 한, 예장 합동측 총회나 그 산하의 목사들과 교회들은 예장 통합측과 교제나 강단교류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총신·장신 교직원 체육대회
1997년 5월 3일, 총신대학교(총장: 김의환 목사)와 장신대학교(총장: 서정운 목사) 교직원 친선 체육대회가 장신대에서 열려 학교간 친선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행사는 성경의 교훈과 역행하는 잘못된 행사이다.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예장 합동측의 김경원 목사는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 교회의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한국 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함은 우선 대 정부적인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없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에 기독교의 소리를 하나로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며 사회 선교나 특히 앞으로 북한 선교를 앞둔 시점에서 '하나의 한국 교회'를 절대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한국 교회의 분열 원인에 대하여 인간 우상화와 신학을 원인으로 보는 견해에 공감을 표했다. 또한, 교회 연합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그는 말하기를, "교단장들이나 교계 지도급 인사들이 교제를 나누며 연합을 위해 뜻을 모으고 특히 가까운 교단끼리는 상호 인정하고 교류 협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글을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적하신 것과 같이 하나가 되라는 이 명제를 한국 교회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라는 말로 맺었다.
한국 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에 대한 그의 열망은 순수하여 보이며 그러한 순수한 소원 자체를 비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 동안 자유와 보수의 대립적인 견해가 있어 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성경적으로 바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교회들이 대 정부적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일치를 위해 그렇게 절대 필수적 이유가 되는가? 물론, 모든 교회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면 그런 일치된 목소리가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교회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런 바램은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 구약의 역사나 교회사를 볼 때, 진리의 증거는 오히려 다수의 교회들이나 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바른 길은 때때로 소수의 오해받고 따돌림 당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증거되었다. 대 정부적 목소리나 북한 선교를 위한다면, 차라리 자유와 보수의 선을 분명히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 교회나 북한 교회의 건전한 장래를 위해서 더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분열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 목사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고신 총회가 한상동 목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고 합동측 총회가 박형룡 박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그의 글에서 단지 '한모 목사, 박모 목사'라고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의 글이 위의 인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에 대해 심한 의혹을 느낀다. 그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위해 싸우고 간 신앙의 용사들과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랐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단순히 인간 우상숭배자들로 몰아버린 셈이 아닌가? 바른 보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입장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 교회 일치 운동을 경계해 온 것은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초창기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포용적 입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일어났었다. 기독교인들의 교제는 진리 안에서의 교제이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바른 교리들의 강조 없이 교회 일치만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셋째로, 교회 연합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 목사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속에는 오늘날 교회들 안에 널리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은 예전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하던 말과 같다.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회들 안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지는 법이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가 과거 여러 해 동안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활동해왔던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KNCC와 한기총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진리와 오류를 섞는 일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혼합적인 일치 운동은 성경을 진실히 믿는 모든 신자들이 가장 반대해야 할 바이다.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기독교보 2002년 1월 19일자(11쪽)에 의하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의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는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신정통주의가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최근의 표현이라면, 신복음주의는 정통주의에 대한 최신의 옷이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기피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겠다는 의도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개인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 사이에 이원론의 필요가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 개인의 구원 경험과 사회적 철학이다. 교리와 사회 윤리는 둘 다 기독교 학문이다. 근본주의가 리더십과 사회라는 영역에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사회를 변혁하거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무능해졌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믿는 모든 전통적 교리를 신봉하거나[신봉하나?] 사회적 철학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일 김 목사의 발표 내용이 그 신문에 보도된 대로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를 정통 기독교 교리의 신봉과 적극적 사회적 철학을 가진 최신의 정통주의로 정의한 셈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그의 사상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나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또 사회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책임과 교회의 단체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신복음주의는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될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신복음주의의 보다 본질적 내용은 자유주의를 포용하거나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를 거절하고 그 안에 머물고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성경에 교훈된 이단과의 분리의 명령을 어기는 타협적 죄악이다.
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 전통적 개혁교회나 근본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확신했던 바는 교회가 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표준적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4에는 "[교회의] 대회들과 협의회들은 교회적 문제 외에는 아무 것도 다루거나 결정해서는 안되며;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나;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 외에는,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간섭할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지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간에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교회가 직접 학교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운영하지 않았다. 물론 교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따라 정치가나 교육가나 자선사업가 등이 있을 수 있고 또 교회가 정신적으로 그들을 측면에서 후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교회가 직접 그런 일을 경영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교회의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저버린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고(막 1:38) 또 그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특별한 임무이었다.
물론 교회는 교회에 속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돌아보았고 그것은 사랑의 당연한 표현이었다(행 2:45; 갈 2:10). 또 교회 밖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선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교회의 제한된 시간과 힘과 물질을 가지고 교회는 힘써야 할 사명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다. 주께서는 그의 전능을 가지시고도 병고치는 일을 주로 하신 것이 아니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을 주로 하셨다(마 9:13).
근본주의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근본주의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 신학을 포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현재 세계적인 근본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북아일랜드의 이안 페이슬리는 목사로서 유럽 의회의 국회의원이며 북아일랜드 내에서 카톨릭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신교 지도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전도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다. 우리는 그의 활동을 북아일랜드의 특수 상황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여하튼 그것은 근본주의자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잘못된 비난에 대한 충분한 반박의 예가 될 것이다. 단지 근본주의나 전통적 개혁교회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의 단체로서의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소위 교회지도자들은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며 그것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들을 바르게 직시하고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죄악을 어떤 말이나 글로든지 가리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들이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적 교단들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실 혹은 배신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교제의 작은 오류는 마침내 온 기독교계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다. 유다왕 여호사밧 자신은 경건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왕 아합과의 그의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유다 왕국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부패시키고 말았다는 성경 역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건전한 화합인가?
1950년대 말 에큐메니칼운동에 따른 예장 교단의 분열의 여파로 1961년 분열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던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40년만에 설립 90주년 첫 강단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서문교회의 이성헌 목사와 이상민 목사, 그리고 제이교회의 강홍준 목사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찬양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더 이상 남남의 교회가 아니라 형제교회가 되기를 약속했고, 이들 교회는 올해 연합 체육대회와 성가대 교류 등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현재 교육관을 건축하고 있는 제이교회를 위해 서문교회는 헌금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예장 합동측 교회들의 잘못된 강단 교류의 또 하나의 예가 되었다. 예장 합동측과 예장 통합측의 분열은 이유가 있는 분열이었고 그 이유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예장 합동측은 적어도 보수신학과 신앙을 지켜오기 위해 애써왔다. 그것은 고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의 수고의 결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장 통합측은 그 노선이 달랐다. 그들은 자유주의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을 용납했고 성경 유오설과 모세 오경의 문서설 등을 용납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단과의 교류를 계속해왔다. 우리는 예장 통합측 교단이 이단이라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교단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교단이라는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분열의 이유가 있었고 우리의 교제나 강단 교류가 불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이유가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제하고 강단교류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단의 지도적 교회, 지도적 인사가 그런 일을 앞서 행하는 것이 바른가? 이런 중대한 일을 잘못 행함으로써 파급되는 교단의 급격한 해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예장 합동측의 깨어 있는 목사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기독신문 '교단 활성화 기획--(4) 올바른 미래 선교 대비'라는 글에서, 노충헌 기자는 21세기의 선교 방향을 (1) 미전도종족 선교, (2)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양육, (3) 협력선교라고 요약한다. 특히 그는 협력선교에 관하여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협력사역에는 인색하다. 한 예로 선교사 자녀수련회가 있다. 최근 예장 통합 선교부에서 예장총회측과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합동으로 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했다.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교단의 특색에 맞취 따로 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독자적으로 열 수 있는 단체가 국내에 거의 없다는 실정을 감안할 때 수련회 대상을 좀더 개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그러나 우선, 예장 합동측 교단신문에서, 그것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논설의 지면에서, 교단의 책임 있는 직책을 가진 인물이 아닌 일개의 기자가 교단의 방향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협력선교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원리는 무엇보다 선교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활동이 신학적 건전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장 통합측과의 교류 문제는 그 교단이 신학적으로 건전한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와 계속 교류를 가져왔고, 성경유오설, 문서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등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용납해왔다. 그러므로 통합측은 신학적으로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측과의 교제나 연합 활동 전반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그 교단과의 협력선교는 물론, 선교사 자녀수련회 등도 옳지 않다. 교단신문의 역할과 영향은 참으로 중대하다. 교단신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죄가 된다.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예장 합동측 교단신문인 기독신문 2002년 1월 23일자(1쪽)는 미국의 개신교 9개 교단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CUIC)라는 명칭의 단체를 형성한 일을 보도하면서 '아름다운 연합'이라는 큰 글자의 제목을 붙여 보도하였다. 그 9개 교단 속에는 미합중국 장로교회, 미국 연합감리교회, 미국 성공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40년 전에 조직된 '연합하는 교회협의회'(COCU)라는 단체가 좀더 발전적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연합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물론 이 글을 쓴 김지연 기자는 신학적 분별력이 없는 평신도 기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단 신문의 편집국이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지, 배교자들의 연합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신문이라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를 취급하는가? 이것이 개혁신앙의 보수라는 사시(社是)에 맞는 일인가? 기독교 신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한 큰 악을 행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9개 교단의 연합은 아름다운 연합이 아니다. 거기에는 보수적 교단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으실 배교자들의 연합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에 불과하다.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대구 서문교회와 제이교회의 '강단 교류'에 대해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제이교회를 방문했던 서문교회 이성헌 원로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만약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지금 온다면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어느 신부의 말을 인용하면서 "43년전 우리가 나누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사람의 생각이었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교회 일치를 향하여 가자"고 역설했다고 한다.
정말 1959년의 합동과 통합의 분열이 사람의 생각이었는가?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분열을 원치 않으시고 온전한 일치를 원하시는 줄 안다. 그러나 참된 일치는 신앙 사상과 입장에 있어서의 일치이어야 하고 거기에는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합동과 통합의 분열 당시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또한 좀더 깊이 들어가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사상과 입장의 첨예한 차이와 대립이 있었다. 세계 교회는 이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첨예한 차이와 대립을 경험하고 있었던 터이었다. 이 논쟁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0년대에 겪어야 했던 논쟁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뒤늦게 그런 싸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 두 상이한 신앙 색깔은 화합할 수 없었고 현재도 이후에도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역사적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믿는 자들은 그것들을 부정하는 자들을 용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분열의 실제적 원인자이었든지 간에,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불필요했던 인간적 싸움이 아니라 불가피했던 진리의 싸움이었고 갈등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단지 인간의 생각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당시의 자유주의적 입장과 보수주의적 입장의 갈등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뉘앙스가 있다. 만일 오늘날 고 박형룡 박사가 살아계셨더라면 그는 참으로 통분하며 이런 발언을 반박하셨을 것이다.
합동측 교단을 세웠던 보수적 선진들의 그 노력과 수고가 과연 인간적 생각을 위한 일들이었단 말인가? 오늘날 합동측 교단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왜 이런 변질된 신앙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 합동측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야 한다. 예장 통합측은 초창기부터 교단 신학교(장로회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왔다. 이미 그 교단의 상당수 목사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안다.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의 용납할 만한 현대적 표현 양식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지극히 변질되고 악화된 하나의 이단인가에 달려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면 자유주의를 용납하는 예장 통합측 교단은 교제와 일치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치 않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므로 통합측 교단에 대한 무분별한 용납은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예장 합동 총회장의 통합, 기장과의 교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는 총회 직원들의 2003년도 신년하례회 및 시무예배를 위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전병금 목사를 청하여 설교하게 하였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한명수 목사로 축사하게 하였다. 그들은 올해 본격화 될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파란불을 켜자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 한국기독교장로회 시무예배에 초청받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최병곤 목사는 설교에서 "기장교단은 숫자는 작지만 영향력은 큰 교단이다"고 강조한 뒤, "기장 교단은 특히 과거 어두운 시절 한국교회와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와 제사장적 역할과 소임에 충실히 감당, 타교단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별력이 없는 혼란 그 자체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김재준 씨의 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함으로 시작된 교단이다. 예장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과의 분열 이후 계속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쳐왔다. 아무도 통합측이 신정통주의적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기장과 통합은 그렇다 하더라도, 합동은 왜 이렇게 변했는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가? 이것이 합동측의 신학적 기둥이었던 고(故) 박형룡 박사의 입장이었는가?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이 다 죽었는가? 예장 통합과 기장은 건전한 교단들이 되었는가? 합동측은 경성해야 한다. 합동측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교제의 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잘못된 교제는 신앙의 분별력과 입장을 흐트러뜨린다.
합동, 통합, 기장의 비성경적 강단 교류
예장 합동측 기독신문 2003년 4월 2일자(18쪽)는 "3개 교단 총회장 강단교류가 시작됐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예장총회 총회장 한명수 목사와 예장통합 총회장 최병곤 목사, 기장 총회장 전병금 목사는 3월 30일 최병곤 목사가 시무하는 청주동산교회에서 '한국 장로교 일치를 위한 총회장 초청예배'를 드리고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를 기원했다.
각기 교단의 성례복을 갖춰 입은 한명수 목사, 최병곤 목사, 전병금 목사가 차례로 입장하며 시작된 이날 예배는 최병곤 목사가 인도하고, 한명수 목사가 설교했다.
동산교회 교인들의 환대 속에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제하 설교한 한 목사는 "교파를 초월한 교회 연합과 일치는 그리스도의 간곡한 가르침"이라며 "보수적인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배타성과 독선을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힘을 모으는 교회연합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는 설교 후 교단장 환영인사와 전병금 목사의 축도 등으로 마무리됐다.
한국 장로교 역사상 처음으로 예장총회와 예장통합, 기장 3개 교단 총회장이 교류한 이날 예배는 시종일관 일치와 협력을 강조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3개 교단장은 "각 교단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민족통일과 교회의 선교 과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일치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 강단교류의 취지를 밝혔다. 교단장들은 또 "합동과 통합, 기장 교단장의 강단교류가 한국 장로교회 전체 연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강단교류는 4월 13일 전병금 목사가 시무하는 강남교회와 5월 4일 한명수 목사가 시무하는 수원 창훈대교회로 이어질 예정이며, 교단장협의회 등 연합운동 기구를 통해 일치를 위한 논의와 실천을 더욱 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교파를 초월한 교회 연합과 일치는 그리스도의 간곡한 가르침'인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장 합동측은 1959년 통합측과 나뉘인 이후 43년이 넘도록 '그리스도의 간곡한 가르침'에 불순종한 교단이 될 것이다. 여하튼 합동측 총회장의 이 발언은 합동측의 신앙 선배들의 반(反)에큐메니칼 정신과 입장을 단숨에 짓밟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은 확실히 비성경적이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바른 신앙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의 일치가 없는 교회 연합은 오히려 성경의 교훈에 불순종하는 일이 된다. 현대 세계교회는 역사상 가장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해 치명적 도전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때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은채 '교파를 초월한 교회 연합과 일치는 그리스도의 간곡한 가르침'이라니 그 무슨 망언(妄言)인가? 더욱이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공공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예장 통합측과 기장측 총회장과 더불어 예배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으니 그것은 통합측과 기장측과의 연합과 일치를 포함하는 뜻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확실히 잘못인 것이다.
진정한 교회 연합은 신앙과 신학의 일치가 없는 단순한 외형적, 기구적 연합이나, 그의 표현대로 단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힘을 모으는' 정도의 연합이 아니다. 진정한 교회 연합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께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연합(요 17장), 곧 정신적, 사상적, 신학적 일치를 가진 연합이어야 한다. 사상의 일치가 없는 외형적 일치는 일치가 아니다. 교회 연합을 위해서는 적어도 공통적 신학 사상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장 통합측과 기장측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거나 포용하는 것이 분명한 한 그들 교회와의 연합과 일치는 있을 수 없다. 그들과의 연합을 논하기 전에 먼저 그들 교단의 신학적 정화를 논하라. 예장 합동측 총회장의 발언은 참으로 큰 문제이다!
한국교회도 배도에 동승할 것인가?
예장 합동측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의 서철원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자유주의는 성경비평으로 시작하여 기독교의 완전부정에로 결말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의 본래 목표가 기독교의 해체이었는데 20세기 중반에 완전히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교회들이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모든 교리를 다 버리므로 교회이기를 그치게 되었다. 우리 합동교회와 총신은 평양신학교에서 시작된 전통적 역사적 기독교의 신학을 지키므로 바른 교회로 남기로 작정하므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교수를 영입할 때 아무런 심리 없이 영입하므로 우리도 배도를 완료한 신학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성경이 창작이라는 문학비평, 정치신학, 종교다원주의, 또 틸리히의 신학 등을 가르쳤다.
이런 신학들을 교정하고 전통적인 역사적 개혁신학을 보존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이사회에서 일부 교수들을 교정하는 일을 결정하고 시행하였다. 그런데 큰 목사님들 다섯 분이 이 모든 것을 번복하여 전통적인 신학과 최첨단 신학 곧 배도를 완료한 신학들을 함께 가르치도록 총회의 결정을 유도하였다. 화합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다.
전북과 목포의 교회연합운동
지난 일이지만, 1999년 9월 6일 전주서문교회(예장 합동측)에서 결성된 전북장로교회연합회는 12월 12일 익산실내체육관에서 창립기념예배 및 찬양축제를 연 바가 있었다. 전북장로교회연합회는 전라북도 내의 예장 합동, 예장 통합, 예장 개혁, 기장 등 7개 장로교단 소속 교회들의 연합체이다. 이날 예배는 연합회 공동의장인 정복량 목사(전주전성교회) 사회로 공동회장 김종석 목사(군산개복교회) 기도, 기장 총회장 이중표 목사 설교, 예장 통합 총회장 이규호 목사와 예장 개혁 총회장 고병학 목사 격려사, 예장 고려 총회장 양문화 목사 선언문 낭독, 공동회장 서은선 목사(전주서문교회) 축도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편 목포지역에서는 1999년 12월 6일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목포시 기독교연합회와 진보진영이 모인 목포시 기독교교회협의회가 통합하여 목포시 기독교교회협의회를 결성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 죽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한국교회 내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구별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한국의 보수 교회는 분별력을 잃었다. 이것은 심각한 영적 어두움과 혼란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측]
고신 교단에 분별력이 있는가?
기독교보 1997년 7월 5일자(3쪽)에 고신 총무 심군식 목사는 "연합운동의 자세와 방향"이라는 글에서 사회적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두 성향을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 단합된 연합운동과 사업으로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심군식 목사는 2천년 교회 역사상 전무한 현대 자유주의 교회들의 사상적 변절과 혼란을 알면서 하는 말인가? 사회문제를 위해서는 배교자들과도 연합할 수 있는가? 더욱이 오늘날 교회 안의 가장 심각한 사이비가 자유주의 신학임을 아는가? 성경은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물리치라고 교훈한다(롬 16:17; 유 3). 고신 교단은 초기에 가졌던 바른 분별력을 회복해야 한다.
고신 총회, 2000년 장로교 대회에 참가하기로
기독교보 2000년 4월 1일자(1쪽)에 의하면, 예장 고신 총회 임원회(총회장 조긍천 목사)는 2000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될 한국 장로교 대회에 교단적으로 참가하기로 했고 한국의 장로교가 함께하는 연합 행사에 교단이 적극 참여하여 장로교 연합과 성장에 이바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신 총회 임원회의 이러한 결정은 비(非)성경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입장이다. 고신 총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본래의 순수한 입장을 지켜야 한다.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예장 고신 총회의 교단신문인 기독교보 2002년 1월 12일자 사설에서 "연합운동에서 고신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이는 작년 12월 2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에서 고신의 후보가 패배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고신이 연합운동에서 해야 할 일과 한계를 분명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 . . 고신은 신학적으로 다른 보수교회처럼 교회의 연합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은, 신학적으로 우리의 교회관은 교부들의 신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교부들의 신앙고백은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속에 교회관의 핵심이 담겨있다. 교단은 많으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다. 우리는 '분열주의자'도 '분열주의적'도 아니라는 것을 말로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고신 목사 중에 연합에 인색한 자들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개선해야 한다. . . . 우리는 연합운동에 내놓을 만한 리더십[지도력]도 돈도 없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3쪽).
나는 위의 글을 읽고 연합에 대한 고신 교단신문의 정신이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심히 통탄한 마음을 가진다. 우리 나라의 진실한 많은 목사들은 총신이 넓은 길로 갈지라도 고신만은 성경 교훈에 바로 선 좁은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종종 고신의 목사들이 잘못된 연합운동에 관련된 것을 볼 때에 실망적이었으며 이제 이런 교단신문의 사설을 읽게 되니 더욱 실망이 크다.
고신 교단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연합적 인식 혹은 연합 정신의 부족이 아니고 잘못된 연합 정신을 버리고 바른 연합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사설을 쓴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 되는 것이 바른 교회관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의 배교적 사상보다 더 배교적이다. 자유주의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신적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마지막 심판과 지옥,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을 믿지 않는 명백한 이단이다. 천주교회로부터의 분리가 단순히 '분열주의'가 아니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배교적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는 이 시대적 요청이다. 바른 연합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연합이다.
예장 통합측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교단이다. 그 교단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런데 고신교단은 어찌하여 그런 교단과의 교제를 문제 있는 교제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인가? 고신 교단은 어찌하여 '분열주의'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 교단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오히려 악으로 간주하는 것인가? 고신의 초기 선교사들은 소위 메이천파 선교사들이라고 불리웠다. 메이천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분리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확신하였었다.
오늘날 고신 교단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잘못된 교제를 청산하고 한국 교계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교단들 간의 교제를 주도하는 것이다. 한기총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려면 예장 통합측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그것을 배제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며 오히려 오래 전부터 기장과 기감 같은 자유주의 교단들까지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보여왔다. 이런 한기총이 어찌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겠는가? 고신 교단은 한기총을 갱신하든지 참신한 보수교단들의 협의체를 만드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고신 총무 전호진 목사는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의 "외국 교회와 고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을 나타내었다. 첫째로, 그는 현대교회의 연합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문제점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20세기 기독교회의 주요한 특징과 현상을 선교운동과,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오순절 운동 등 세 가지로 요약하면서, "그런데 복음적 개혁주의 기독교는 선교운동은 나름대로 발전시키지만 신학적 정통성을 강조한 나머지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의 특징으로서의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넓은 운동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은 건전한 성경적 연합운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교회들이 그런 류의 연합운동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었다. 또한 오순절 운동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건전한 이해에 기초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개혁교회의 바른 입장이다. 그런데 보수적 교회의 바른 입장을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둘째로, 그는 국제기독교협의회(ICCC)를 신학적으로 편협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ICCC는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으로 인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문제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도대체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나 강령을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와 강령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이다. 거기에 어떤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 있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것이 그의 말대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엘리야나 미가야가 그러했듯이 대중의 사상이 넓고 해이해져 있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 지도자 칼 매킨타이어 개인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입장을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적 기독교회는 성경적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진리 운동의 규모에 대해 인간적 위축감을 보인다. 그는 고신 총회가 국제개혁파 교회대회(ICRC)에 가입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보이기보다는 "그런데 ICRC는 너무나 적은 개혁파교회의 대회인지라 세계적 연합기구라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의 기독교계의 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세계 기독교회는 지금 배교와 혼란의 와중에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미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저버렸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은 역사적 신학교들에 침입해 들어와 있고 그 신학교들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연합기구라 할지라도 바른 정신, 바른 입장에 서 있는 기구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귀한 것이다. 성경 역사나 교회 역사에 있어서 진리 운동은 수와 규모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악을 포용하고 악과 타협하는 인본주의적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넷째로, 그는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교회 활동의 한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는 말하기를, "50년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교장을 30여년간 봉사한 존 매카이 박사는 명예박사를 무려 25개나 받았는데, 그는 세계적 신학자로, 선교학자로 나아가서는 WCC를 조직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앞으로는 고신 교단도 세계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절대 필요하다"고 하였다. 50년대의 프린스톤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교이며 존 매카이는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또 WCC는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단체이다. 어떻게 한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총무가 자유주의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모범으로 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보수적 교회들에 인재가 없으면 없는 대로 가야 한다. 자유주의 교회들에게서 모범을 찾을 필요가 없고 찾아서도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계적 활동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바르고 신실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신 교단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교단 지도자들과 특히 교단 총무는 고신 교단의 보수적 신앙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지킬 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고신 교단의 순교자적 뿌리는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고신측은 본래 그런 교단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신측은 실망적인 일이 많다. 아직도 허순길 박사 같은 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과 입장이 고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신은 본래의 정신과 분별력과 입장을 회복해야 한다.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측 기관지인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인 이성구 목사는 "한국교회 연합운동과 고신"이라는 글에서 연합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노출하였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비성경적이다.
우선, 그는 한국의 초대 선교사들의 교파적 확신을 무시하고 매우 불필요한 것들이 한국에 이식된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뉘인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서방의 교회전통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옮겨졌을 따름이다. 얼마든지 하나의 '한국기독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으나 이미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 . .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의 달라져 있던 전통의 교회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마치 우리가 교파적 차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교파적 차이는 역사상 불가피하였다. 교파적 차이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한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천진난만한 생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리적 통일성이 없이 하나되는 것은 겉보기의 하나에 불과하고 내면적 갈등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파가 나뉘거나 새 교파가 형성되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 연약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등의 교파는 분명한 교리적 확신의 차이 때문에 생겼다. 신학 교수가 그런 교파적 확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매우 의아스럽기만 하다.
또 그는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을 교회 정치 혹은 교권 장악을 위한 싸움의 결과라고 본다. 그는 말하기를, "고신과 기장이 떼밀려 나가고 남은 장로교가 다시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된 것을 두고 흔히 교회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한다. WCC에의 가담여부가 분열의 원인이라는 것이 밖으로 알려진 분열의 이유이다. 그러나 '총신 90년사'를 쓴 김요나는 승동측(합동)과 연동측(통합)의 분열의 이유를 네 가지로 들고 있고, 그 중에 WCC와의 관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계략을 동원하여 교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 일어난 분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적 안목을 가졌거나 흐려진 보수주의적 안목을 가진 자의 발언과 같다. 자유주의자들은 WCC문제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삼은 보수주의적 합동측 인사들의 주장에 결정적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오늘날 분별력 없는 보수주의자들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WCC가 분열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신의 입장이었는가? 보수주의의 본질은 교리의 순수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다. 고신의 보수적 입장은 어디로 갔는가? 어찌하여 보수주의적 교단의 신학교수가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선진들의 투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가?
그 다음, 더욱 본격적으로, 이 교수는 자신의 연합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최근 고신의 인사들이 연합운동에 적극 참여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최근 들어 우리 고신은 한기총, 한장연(한국장로연합회) 등에서 상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 . 최해일 목사가 사상 처음으로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고, 여러 교회들이 회장에 당선되면 활동을 후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연합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고신이 연합운동의 주류에서 멀리 있는 것을 안타갑게 생각한다. 그는 말하기를, "대한성서공회가 '개역개정판 성경'과 '표준새번역'을 발간할 당시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오병세 박사를 위원장으로 세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KNCC 비가맹 교단인 고신은 소위 한국교회의 주류적 흐름과 상관이 없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경래 장로,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손봉호 교수, '한국기독교회사를 정리하고 민족통일에 대한 건전한 기독교적인 이론을 집성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만열 교수 등 연합운동에 기여한 개별적인 고신인들의 활동을 칭찬한다. 또 나아가, 2001년 11월 한목협을 통해 창설된 22개 교단장 연합기구와, 그 기구를 통해 시작된 '한국교회 대표기구 단일화' 운동에 고신의 젊은 목회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또 각 지역에서 고신의 목회자들이 지역교회 연합운동, 연합사업에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는 것을 매우 고무적인 일로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교수의 사상이 오늘날 고신의 사상이라면, 그것은 성경적으로 비평받아야 마땅하다. 연합운동에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이다. 자유주의는 교회 역사상 전무한 가장 파괴적인 이단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 심각히 침입해 들어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라고 강력히 비평하였던 것이 성경적인 보수교회들의 입장이었고 고신의 입장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이 죽었는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을 제거하고 새로워졌는가? 어떻게 보수교단의 인사들과 신학교수가 정신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
고신의 강단 교류가 넓어짐
2003년 9월의 예장 고신 총회는 경기노회가 청원한 "타교단과의 강단 교류에 관한 건"은 "당회에 맡기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고신 신학을 하고 헌법을 알고 신조를 안다면 당회가 알아서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 주요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신 총회가 지교회들의 강단 교류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주어야 할 직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무분별한 연합 활동으로 인해 자유와 보수의 선이 흐려지고 있다. 이런 때에 이런 중요한 문제를 지교회의 당회에 맡긴다고 하는 것은 총회가 지교회들의 잘못된 강단 교류에 대해 통제할 의지가 없음을 나타낼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충성된 태도가 아니다.
고신의 이성구 교수의 자유주의 신학 파문
2003년 9월 예장 고신 총회에서는 고려신학대학원 이성구 교수의 신학 사상이 논쟁되었다고 한다. 총회의 신학교육부는 이 교수가 "아모스 예언에 나타난 선택과 윤리"라는 학위 논문에서 아모스의 예언을 그 이전의 독립된 다양한 전통들이 결합되어 형성된 것으로 봄으로써 그것이 신적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계시임을 부정하며 또 모세오경의 단일 저작성을 부인한다고 보고하였다. 총회는 찬반 토론 후 투표를 실시해 가 197표, 부 135표, 기권 3표로 신학부 보고를 받기로 가결하였다. 그러나 신학위원장이 청원한 이성구 교수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직 수행이 부적절하다는 건은 "인사 문제이기 때문에 신학교육부에서는 기각하기로" 가결했다고 한다.
신학교육부가 연구하여 보고한 대로 이성구 교수의 사상이 그러하다면 당연히 지적되고 제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총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교수를 옹호하려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고신은 선배들이 가졌던 바른 신학의 보수에 대해 열심과 충성심을 버렸는가? 이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사실이다. 더욱이 신학위원장이 청원한 건에 대한 총회의 결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만일 그를 교수직에 그대로 둔 것이라면 그것은 크게 잘못한 일이라고 본다. 마땅히 그것에 대해서도 조치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고신은 한국교회의 보수신학의 남은 보루와 같은 사명을 느끼며 충성해야 할 것이다.
[미국장로교회(PCA)]
미국 장로교회: 창조론, 전투에서의 여성 문제
가장 급성장하는 미국 장로교회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장로교단이다. 그 교단은 1973년 자유주의적인 합중국 장로교회(남장로교회)로부터의 분열로 시작되었고, 1986년 신복음주의적인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에 가입하였다. 미국 장로교회는 지난 7월 연례 회의에서 군대에서의 여성들의 역활에 대해서와, 창조 기사가 문자적 24시간의 6일로 구성되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교단은 또한 십년 만에 처음으로 새 서기를 선출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장로교회는 1995년에 1,299교회와 21만 세례 교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 교단은 미국에서 장로교단으로서는 자유주의적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1995년에 11,361교회, 세례 교인 266만) 다음으로 크다. 또 이 교단은 한국 장로교회들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카버넌트 신학교, 리폼드 신학교 등과 연관되어 있다(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이사들은 개인적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우리는 이 보수적인, 복음주의적인 미국 장로교회가 건전한 입장을 취하고 건전한 방향으로 진행해 주기를 바라지만, 1986년 신복음주의적인 NAE에 가입한 이후 그 방향이 더욱 포용적이게 되고 있다고 느껴왔다. 그 교단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빌리 그레이엄의 포용적 전도 방법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승인하고 거기에 동참하여 왔다.
[미국 남침례교(SBC)]
남침례교회의 프리메이슨 문제
수천명의 남침례교회 목사들과 수십만명의 남침례교회 평신도들은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들이라고 한다. 프리메이슨은 반(反)기독교적인 비밀조직체라고 알려져 있다. 남침례교단은 그 목사들에게 프리메이슨을 떠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편, 남침례교단의 '보수주의자들'은 남침례교 자유주의자들과 '공통 분모'를 위해 대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해야 한다(딛 3:10).
침례교세계연맹(BWA)의 영웅들
남침례교회는 침례교세계연맹의 주요 회원 교단이다. 데스몬드 투투는 1998년 침례교세계연맹 모임에서 연설했다. 침례교세계연맹의 1999년 10월-12월호 뱁티스트 월드는 빌리 그레이엄을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전도자"라고 높여 말한 글을 실었고, 본훼퍼와 마틴 루터 킹과 오스카 로메로와 같은 이들을 "20세기의 선지자들"이라고 불렀다.
미국 남침례교인들의 연합 활동
보수주의자들이 인도하는 남침례교단의 문제점들이 슬픔 가운데 계속 보도되고 있다. 어떤 남침례교단의 친구들은 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타협을 향한 경향은 늘어나고 있고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주목되는 최근의 한 사건은 6월 11일 버밍햄에서 열린 '오순절 2000' 행사이었다. 7월 13일 앨러배머 뱁티스트는 이 에큐메니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한 신앙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많은 교단들의 가수들, 무용수들 및 기타 연주자들을 포함했다. 버밍햄 침례교회 협회와 기타 몇 지역의 침례교회들이 참여했다." 버밍햄의 사우스사이드 침례교회의 양육담당 부목사인 페기 샌더포드는, "우리는 신앙 체제들이 다르지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 연합되어 있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침례교인들, 천주교인들, 그리스도의 교회, 및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대표자들을 포함했다. 워터 버가트 신부는 말하기를, "교리는 분리시키나 봉사는 연합한다. 우리가 감히 경쟁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외의 문제들
[잘못된 사상들의 포용]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의 두 얼굴
세계적 하나님의 교회가 허버트 암스트롱의 어떤 이단적 교리들을 버렸고 이제 삼위일체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 교회는 여러 방면에서 복음주의적으로 보이며 최근에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교회는 여전히 영원한 지옥 형벌의 교리를 거절하고, 유대교적 안식일 준수를 고집하고, 죽은 후의 구원의 두 번째 기회에 대한 비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지옥에 대한 그들의 결함 있는 교리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7년 8월 12일자에서 그 교회의 한 목사 교육 이사에게서 나타난다.
복음주의와 진화론의 영향
크리스챤 뉴스 1998년 7월 6일자는 신비주의(occult)에 대한 데이브 헌트의 최근의 책을 여러 곳 인용하면서, 로마 천주교회, 교황,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빌리 그레이엄, 프로미스 키퍼스 등 기타 많은 교회 단체들이 오늘날 진화론(進化論)과 함께 나아감을 보여준다. 오늘날 6일 창조를 옹호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 조차도 유신론적 진화론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휴 로스의 책들을 선전하여 왔다. 진화론이 온 세계와 세계 교회들에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큰 것 같다. 많은 복음주의적 인사들과 단체들이 어느 정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타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성경 진리와 배치되는 사상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밝히 증거한다.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하는 자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2000년 1월 31일자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은 지옥의 불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클라크 피나크는 지옥 형벌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아무리 그의 피조물들이 죄악될지라도 그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부과하는 그런 잔인하고 보복적인 신을 고안할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피나크는 또 그런 일을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보다는 사탄에 더 가깝다"고 한다. 죤 스토트는 성경적 비유인 불의 주된 기능은 멸망시키는 것이며, 지옥의 불이 영원하고 꺼지지 않을지라도 "만일 거기에 던져진 것이 멸망치 않는다고 판명된다면 매우 이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옥은 영원한 불의 고통이 있는 실제 장소이다.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장로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교회 내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이다"라고 표현되었다. 다섯 명의 미합중국 장로교 목사들은 "고백과 회개를 요청함"이라는 문서를 최근에 켄터키주 루이즈빌의 장로교 센터 입구의 벽에 붙였고 그 옆에 그 문서를 긍정하는 100명의 장로교인들의 서명이 있는 다른 하나의 종이를 붙였다. 그 문서는 "[교단 내의] 갱신에 대한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미합중국 장로교회는 "짐승의 배가 썩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으며" "현재의 행정체제 하에서는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이다"라고 부언(附言)하였다. 여러 해 동안, 그 교단은 동성애자의 안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인지 아닌지 같은 문제들로 씨름하였다.
하지만 이 보수주의자들은 미합중국 장로교회로부터 떠나기를 거절하고 자신들을 이 "회복할 수 없게 배교적인" 교단과 동일시하기를 택한다. 미합중국 뉴스에 의하면, 그 문서는 "장로교인들이 그 교단 내에 머물 것과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모든 일을 후원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된 교리와의 모든 동일시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구하는데, 미합중국 장로교회나 활동에 조금이라도 시간과 돈을 바치는 자들은 그 교회의 모든 비성경적 활동을 돕고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와 사회사업에 대한 생각]
복음주의자들의 '넓어진 선교 개념'
1974년 복음주의 로잔 언약은 교회의 선교에서 전도가 일차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전도와 사회 정치 활동의 불가결의 연관성을 강조함으로써 선교 속에 두 요소를 포함시키는 경향을 이미 보였다. 로잔 선교대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죤 스토트는 고백하기를,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마 28:19]의 결과들 뿐만 아니라 그 실제의 부탁 자체가 전도의 책임뿐 아니라 또한 사회적 책임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나는 지금 더 분명하게 본다"고 했다.
RES의 폴 슈로텐보어의 선교 개념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협의회(RES) 총무 폴 슈로텐보어는 진술하기를, "전도는 일차적이지만 또한 예비적이다. 전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개인적 회심과 구조적 개혁을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전도에 대한 '총체적(holistic) 개념'을 주장한 것이다.
미국 NAE 인사의 자유주의적 '전도' 개념
미국 복음주의 협회(NAE)의 세계구제기구(World Relief) 회장 클리브 캘버는 말하기를, "내가 나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린 것은 한 전도자가 한 설교 때문이 아니고 그가 산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이스턴 신학교의 란 사이더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배고픈 자들을 먹이지 않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 침례교회의 신문 크리스챤 시티즌 5쪽의 한 글은 전도에 대해 쓰기를, "전도는 우리 마음에 생각되는 모든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변혁시키시고 해방시키시는 능력을 가지고 그 왕국의 임함을 알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성경적 복음(고전 15:1-4; 롬 1:16)을 포함하지 않는 그 어떠한 전도도 성경적 전도가 아니고 무력(無力)한 '사회 복음'이다.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인가?
예장 합동측의 기독신문에 의하면, 총회의 중점사업의 하나로 총회 산하에 총회사회복지위원회가 창립되었고 그 초대회장에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가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 신문에 의하면, 총회 사회복지사업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교단산하 목회자 장로 사회복지전문가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창립예배에서 참석자들은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에 사회복지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고 한다.
사회복지사업이 교회의 '임무,' 그것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가? 만일 그러하다면, 전통적 교회들은 가장 기본적 임무를 망각하고 소홀히 한 심히 불성실한 교회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복지사업은 교회의 임무가 아니며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더더욱 아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활동과 지도적 인물들의 생각과 교단 신문의 논조가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 임무로 보고 있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이 옳다면, 교회들은 이제까지 매우 잘못되었고 지금도 다수의 교회들은 매우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이란, 예를 들면, 버려진 어린 아이들, 독거 노인들, 소년소녀가장들을 돌아보는 사업, 고아원 사업, 양노원 사업, 어린이집이나 탁아소 사업, 가정폭력 문제, 노숙자 문제, 정신박약아들, 지체장애인들 등을 위한 사업 등 사회의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사업을 일컬을 것이다. 이런 사업들은 다 선하고 좋은 일들이며 오늘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이런 일들에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며, 또 관여해야 한다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교회관에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3대 임무를 말해왔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임무요, 둘째는 자체를 향한 영적 성장 혹은 양육의 임무요, 셋째는 세상을 향한 전도의 임무이다. 가난한 자들의 구제나 병자들의 방문은 교회 안의 성도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으로서 초대교회로부터 이루어져왔지만,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는 결코 교회의 일차적 혹은 독립적 일로 행해지지 않았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영혼 구원의 전도에 전심전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필요를 따라 구제하고 병자들을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면모이기도 하였다. 주께서는 결코 전도와 별개의 사회복지사업을 행하신 일이 없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오신 목적이 사회복지사업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는 자신이 전도하기 위해 혹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막 1:38; 눅 5:32). 그가 병자를 고치신 것도 대부분 그를 믿는 자들을 고치신 것이었고 그가 떡 기적을 행하신 것도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 여러 날 동안 그를 따라왔던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부득이 행하신 행위이었다(마 14:15-21; 15:32-38).
사도행전에 밝히 나타나 있는 대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명령과 모범을 따라 오직 영혼 구원의 전도에 전심전력하였다. 그들이 성도를 구제한 것은 믿는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실천 행위이었다. 그들은 전도와 별개로 사회복지사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교회들을 포함한 전통적 교회들은 이런 성경적 생각을 따라 행해왔다. 그들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를 교회의 3대 임무로 믿고 그 일들에 힘써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단체들, 예컨대 YMCA나 YWCA 같은 것들은 달랐다. 그것들은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사실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영혼 구원의 전도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사함과 칭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자유주의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교회의 임무에 대한 바른 생각을 버리고 변질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사회복지사업이 교회가 그 동안 매우 큰 실수로 소홀히 하였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고 심지어 사회복지사업을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이지도 않다. 전도의 한 방편으로서의 구제나 봉사가 아닌 구제나 봉사는, 비록 그 자체가 선한 일일지라도, 주께서 교회에 명하신 임무가 아니다. 물론 교회는 그런 일을 기회가 있을 때에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또 신자 개인은 얼마든지 힘 있는 대로 그런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모임인 단체로서의 교회는 주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앞에 말한 대로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임무이다. 특히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즉 교회에게 세계복음화의 대 임무를 명하셨다(마 28:19; 행 1:8). 그러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가지는 특수한 임무,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miss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성경을 바로 알고 교회의 임무와 사명을 바로 깨달아 바른 목회, 바른 교회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사업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목회 패러다임'이 아니고, 목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슨 일에 전념해야 하는지를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잘못된 목회 패러다임이다. 주의 종들과 교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고 바른 일들을 해야 한다.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기독신문 '교단 활성화 기획--(4) 올바른 미래 선교 대비'라는 글에서, 노충헌 기자는 21세기의 선교 방향을 (1) 미전도종족 선교, (2)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양육, (3) 협력선교라고 요약한다. 특히 그는 협력선교에 관하여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협력사역에는 인색하다. 한 예로 선교사 자녀수련회가 있다. 최근 예장통합 선교부에서 예장총회측과 선교사 자녀 수련회를 합동으로 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했다.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교단의 특색에 맞취 따로 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독자적으로 열 수 있는 단체가 국내에 거의 없다는 실정을 감안할 때 수련회 대상을 좀더 개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우선, 예장 합동측 교단신문에서, 그것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논설의 지면에서, 교단의 책임 있는 직책을 가진 인물이 아닌 일개의 기자가 교단의 방향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협력선교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원리는 무엇보다 선교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활동이 신학적 건전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장 통합측과의 교류 문제는 그 교단이 신학적으로 건전한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와 계속 교류를 가졌고, 성경유오설, 문서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등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용납해왔다. 그러므로 통합측은 신학적으로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측과의 교제나 연합 활동 전반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그 교단과의 협력 선교는 물론, 선교사 자녀수련회도 옳지 않다. 교단신문의 역할과 영향은 참으로 중대하다. 교단신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죄가 된다.
인류에의 봉사가 예배인가?
대한예수교총회(통합)의 대표적 교회의 하나인 연동교회의 이성희 목사는 교회연합신문에 기고한 "하나님께 대한 최대 예배는 인류에의 봉사"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썼다.
사회를 향한 교회의 책임을 극대화해야 교회인 것이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의 세 가지는 케리그마와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이다. . . . 교회의 봉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섬김 즉 봉사이다. . . . 다른 하나는 사람에 대한 윤리적 봉사이다. 사람을 섬기는 수평적 봉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수직적 봉사의 결과이며 대가이다. 그래서 웨슬레(John Wesley)는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예배는 인류에의 봉사'라고 하였다.
미래 교회는 완전히 사회에 대하여 개방적 기구로 다가갈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둔감한 교회의 태도가 결국 한국교회의 쇠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오게 하였으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홀함이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요인이 되었다.
사회봉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구조를 전환해야 특징적이며 효과적인 사회봉사가 가능하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세상을 섬기기 위함이다. 교회는 세상을 섬길 때에 비로소 세상의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니며 사회가 인정하는 교회가 세상에 필요한 교회이다. 미래 사회에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하여 남은 한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봉사일 것이고 교회는 신속히 섬김의 구조로 교회의 구조를 조정하여야 할 것이다.
과연 사회적 책임과 봉사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며 사회봉사를 통해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교회의 당면한 과제인가? 현대교회는 사회봉사를 위한 체제로 신속히 구조 조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필자는 위와 같은 이성희 목사의 사상은 교회의 세속화적 발상이며 전적으로 비성경적이고 비역사적이라고 본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히 사회봉사를 위해서가 아니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었다. 또한 그는 제자들에게 사회봉사를 명하지 않으셨고 단지 세계복음화의 전도를 명하셨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사명 곧 미션(mission)을 전도로 바르게 이해해 왔고 수행해 왔다. 봉사와 섬김은 제한적으로 주로 교회내에서 수행되어 왔다.
[천주교회에 대한 생각]
누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할 것인가?
오늘날 누가 복음을 가지고 천주교인들[로마 카톨릭 교인들]에게 갈 것인가? 많은 선교 기관들과 교회 밖의 단체들이 이제 타협된, 무력(無力)한 복음을 가지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하여 일한다. 복음전파(Proclaiming the Gos- pel)지 1997년 6월호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천주교회는 이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전도대회를 선전, 촉진시키고 천주교 상담자들을 사용하는 댓가로, 그레이엄은 믿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오는 모든 천주교인들을 그들의 천주교회들로 돌려보내겠다고 지역의 주교와 약속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어린아이들은 이와 같이 성경적 복음과 그것을 전파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이리들에게로 의탁된다. 촬스 콜슨, 빌 브라잇, 제이 아이 패커 및 다른 복음주의자들, 곧 전도보다 일치를 위해 더 바쳐진 저들은 1994년 기본적으로 서로의 양무리를 '개종시키지' 않기로 천주교인들과 합의하여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하기를 중단하고 그들을 동반자로 여겨 그들과 함께 일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잘못된 입장과 태도에 항거하며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천주교인들에게도 전할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천주교의 테레사 수녀가 1996년 9월 별세하였다. 그는 인도의 극빈자들을 섬기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였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믿는 보편구원론자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신에게든지 당신이 평안하게 느끼는 신에게 기도하시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그들 각 사람은 고통 당하는 자로 위장된 예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를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말하기를, "우리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멸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상들은 비성경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충실한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그러나 빌리 그레이엄이나 촬스 콜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아낌 없이 칭송하였다. 촬스 콜슨은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리를 혼란시키는 발언들이다. 정통 천주교인들은 복음 진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들이요 마리아를 그릇되이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
교황 비디오 광고
신복음주의적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4월 6일자에는 '여섯 개의 영감 있는 비디오 세트'에 대한 전면광고가 실렸고, 그 중의 하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제목이다. 이것에 관한 광고문은 다음과 같다: "이 영감을 주는 비디오 선집은 가장 사랑받는 종교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과 연합하도록 여러분을 초청한다." 복음주의 잡지에 이런 광고가 실려도 되는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현시대에 참된 기독교에 가장 혼돈을 주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류의 광고를 허용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된다. 참된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진리에 성실해야 한다. 그것은 악을 포용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미국을 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연합?
오늘날 여러 교회들과 단체들에서 유행하는 많은 이상한 교훈들과 경험들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어떤 심각한 주제가 설교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개들과 같이 짖고, 사자들과 같이 으르렁대고, 웃는 발작증세를 보이며 마루에 넘어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이며 참으로 개혁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미국을 구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 교인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을 옹호한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국가를 구하기 위해 로마천주교회와 협력하는 것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놀랄 일이다. '영혼의 양식'이라는 란에서, "잃은 땅을 다시 얻기"라는 제목 아래--부제목은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은 사회 문제들에 관해서 연합할 수 있다"인데--월드지 기고자 매트 다니엘즈는 이런 '이상한' 혼합을 제시한다. 브레크빌 대학의 학장 로날드 쿡 박사는 위의 사실을 언급하면서 천주교회의 거짓된 교훈들을 반박하고 개혁파로 자처하는 재건주의자들이 얼마나 천주교의 예수회 회원들과 비슷한지 보여준다. 그는 말하기를, 사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우상숭배를 우리가 대강 처리하지 말고 공격해야 할 가장 큰 악들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과 협력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황 칭송자, 반 임페
최근에 미국의 부흥사 잭 반 임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변호하는데 그의 전체 방송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다음번 교황이 요한계시록의 거짓 선지자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하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로서 결합되었다"고 말했다.
국제 교도소 협의회 회장 마이클 티미스(Michael Timmis)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업가 마이클 티미스는 설립자 척 콜슨을 이어서 국제 교도소 협의회의 회장으로 지명되었다. 척 콜슨은 명예 회장으로 이사회에 머물러 있다. 티미스는 로마 천주교인이며 프로미스 키퍼스 이사회에서도 섬겼고, 1997년 10월 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의 프로미스 키퍼스 집회에서 연설했다. 주의 신실한 종들은 주의 일을 하되 바른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한다!
척 콜슨과 천주교인들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크리스챤 뉴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척 콜슨은 하나님을 위해 중대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 . . 정력적인 큰 활동가요 운동가이다. 그것은 굉장한 일이다. 그는 천주교인 아내를 가지고 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나 적어도 그가 그의 책들에서 존경하는 사람들은 천주교인들이다. 예컨대, 테레사 수녀는 매우 높게 평가되고, 말콤 머거리지 등. 나는 그가 천주교회에 대해 높은 견해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만일 그의 수입이 개신교인들로부터 오지 않는다면 그가 천주교회로 전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항상 말해왔다. . . . 그것이 내가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촬스 콜슨과 천주교인들
"[미국] 남침례교인인 촬스 콜슨은 미국에서 로마 천주교회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선전자이다." 트리니티 리뷰지에서 죤 W. 로빈스는 그렇게 말한다. 로빈스는 33가지 이유들을 열거한다. 콜슨은 교황을 칭송하였고 자주 천주교인들과 함께 활동했다. 그는 한 천주교인을 선택하여 교도소 선교회의 인도자로 자신을 대신하도록 했다.
척 콜슨(Chuck Colson)을 후원치 말아야 할 이유
척 콜슨은, "오늘날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희망적 말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부부는 척 콜슨과 그의 교도소 선교회를 후원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1. 콜슨 씨의 천주교회와 교황에 대한 높은 견해
2. 그의 글들과 말들에서 천주교인들을 기독교인으로 포함함
3.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 함께'라는 협정 문서들에 서명함
4. 교도소 선교회의 지도자들 속에 로마 천주교인들을 포함함
5. 교도소 선교회의 신앙 진술의 당혹케 함['칭의'가 천주교인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고안됨].
커버넌트 대학과 로마 천주교회
1999년 8월, 미국 성경장로교회는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장로교회(PCA) 총회가 이사회를 선출하는 커버넌트 대학은 한 합창단을 동부 유럽으로 보냈다. 그 합창단은 거기에서 두 차례 로마 천주교회들의 예배에서 노래하였다. 한번은 미사를 하는 동안 노래하였다." 보수적인 장로교회 대학의 학생들이 이런 분별력 없는 행동들을 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회
세계교회협의회 지도자들은 수십년 동안 로마 교황이 연합된 교회의 자연스런 우두머리라고 선언해왔다. 유명한 복음주의자들에 의한 최근의 성명서들(예를 들어, ECT1과 ECT2)은 로마 천주교인들을 그리스도인들로 인정하였다. 잭 반 임페는 한층 더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근본주의자라고 적극적으로 선언했다(빌 잭슨 박사). 다른 개신교 지도자들도 더 근래에 비슷한 견해들을 말했다. 1999년 7월 5-8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모인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는 로마 천주교회의 배교를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최근 소위 개신교회 지도자들이 로마 천주교회 교황을 세계 교회의 우두머리로 받아들이기를 제안하는 성명서들이 있어 왔기 때문에, 그리고 교황의 권위를 모든 교회들에 주신 '은사'로 받아들이려는 이러한 준비가, 로마 천주교회는 분명히 그 해로운 교리들, 그 우상숭배적인 행위들이나 그 신성모독적인 예배들을 변경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교회라고 자처하는 교회들이 얼마나 속임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 대회의 대표자들은 이 배교를 통탄하며, 강탈자요 속이는 자인 교황을 거절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참되신 유일한 우두머리이심을 재천명한다. 우리의 충성은 그에 대한 것이며 우리는 오직 그에게만 순종하기를 원한다.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의 혼란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1)'(ECT-1),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2)'(ECT-2)라는 문서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음주의적 축하물'이라는 제목의 새 선언서가 나온다. 이 문서는 성경적 복음을 분명히 정의하기 위해 지도적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승인, 서명되었다. 그러나 그 문서는 로마 천주교회의 구원 방법이 거짓됨을 (그것의 이름을 언급함이 없이) 강력하게 증거한다고 T. A. 맥메이언은 말한다. 그는 부언하기를, "하지만 15명의 서명자들은 또한 로마 천주교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과 자매들'로 용납하고 복음을 확산하기 위해 로마와의 동반자 관계를 제안하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1)'와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2)'라는 문서들 중의 하나에 혹은 둘 다에 서명하였다. 그들의 사역들 중의 일부, 예컨대, 프로미스 키퍼스 운동, 교도소 선교회, 대학생 선교회 등은 로마 천주교인 간사들을 지도적 위치에 둔다.
복음주의자들의 천주교회관
왜 척 콜슨의 교도소 선교회의 목사들의 70페센트 이상이 천주교인들인가? 왜 천주교회 신부 죤 뉴하우스와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라는 운동의 협력 전개자인 콜슨은 최근에 교도소 선교회의 책임을 현재 천주교인인 마이클 티미스에게 넘겨주는 것을 허락했는가? 왜 달라스 신학교는 '미국을 위한 천주교 캠페인'의 설립 이사인 윌리엄 베네트를 1999년 9월의 주강사로 세웠는가? 빌리 그레이엄, 빌 브라잇, 로벗슨, 답슨 및 기타 복음주의자들은 천주교회 지도자들을 형제들로 간주한다. 그들과 제리 팔웰과 잭 반 임페는 교황에게 찬사를 보냈고 전도대회들과 기타 행사들에서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더불어 활동한다. 가련하고 미혹된 천주교 이단들을 불쌍히 여기라! 그들의 지도자들이 전도 동반자들로 간주될 때, 그들이 어떻게 전도될 수 있으며 거짓 복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단들은 전도의 대상이며 전도자들의 동료가 아니다. 어떤 천주교 평신도들이 구원받을지 모르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천주교회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교황이 테레사 수녀를 성자로 추앙할 때, 그 여자는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의 존경을 받을 것인가? 그가 마리아를 그리스도인들의 협력 구속자요 협력 중보자요 보혜사(대언자)로 높이며 '캘커타의 성 테레사'를 칭송할 때, 잭 반 임페와 척 콜슨과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들은 다 테레사 수녀를 참된 신자라고 믿었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빌 매카트니(Bill McCartney)의 천주교회관
프로미스 키퍼스 창설자 빌 매카트니는 나이트 리더 뉴스 서비스의 리챠드 쉐이닌(Richard Scheini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은 천주교회를 합법적인 기독교회라고 간주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물론이죠'라고 답변하였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매카트니가 로마 천주교회가 거짓된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논평했다.
톨키엔, C. S. 루이스, 천주교회
질 사운더스는 카나디안 리바이발리스트 3-4월호에서 J. R. R. 톨키엔(Tolkien)의 경건한 로마 천주교회 신앙에 대해 많은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 마이클에게 보낸 편지에서, 톨키엔은 "매우 좌절되었던 나의 삶의 어두움 속에서, 나는 땅에서 사랑할 만한 하나의 위대한 것을 네 앞에 둔다. 그것은 복된 성례식[미사]이다"라고 말했다. 톨키엔의 아내는 그들이 결혼한 다음에 천주교회로 전향해야 했고 그들의 아들 죤은 임직받은 사제가 되었다. 사운더스는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
C. S. 루이스가 톨키엔을 통해 기독교로 전향하였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들은 거의 평생 친한 친구이었고 매주 옥스포드 선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더 잉클링스'라고 부르는 문학 모임에 속해 있었다. 루이스는 영국교회 교인이었지만, 연옥과 미사의 교리를 포함하여 어떤 천주교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임종시에 로마 천주교회의 '임종 의식'을 요청하였다.
톨키엔의 반지의 주님이라는 책은 기본적으로 천주교적인 작품이다.
[종교다원주의의 영향]
김영한 교수의 '변혁주의'의 오류
숭실대학교의 김영한 교수는 1993년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에서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그는 그 강연에서 타종교들을 우상숭배요 미신이라고 보는 근본주의 신학의 배타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공통점과 연속성을 취하는 연속주의적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을 말했고, 비록 종교다원주의는 수용하지 않지만,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를 적극 수용하고 "타종교의 경건성과 도덕성을 진지하게 배우며 타종교의 종교적 확신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변혁주의적 개혁신학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우리가 모든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이 타종교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로 여겨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타종교 사상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떠난 우상숭배적이요 미신적이고 부도덕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시편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신명기 12: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예레미야 10:2,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타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불쌍히 여기며 복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전도 대상자들이다.
노만 빈센트 피일(Norman Vincent Peale) 100주년 기념 축하
1998년 6월, 미국에서는 약 2천명의 예배자들이 1993년 95세로 사망한 노만 빈센트 피일의 100주년 기념을 축하했다. 피일은 1984년 필 도나웨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듭나는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가는 여러분의 길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의 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 신도교 사당에서 영원한 평화를 발견했습니다. . . . 그리스도는 그 [여러] 길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피일은 1980년 한 몰몬교 총회장 생일축하모임의 주 연사이었고 몰몬교 지도자들을 칭찬하였다. 그는 프리메이슨 회원이며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신성, 및 부활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는 빌리 그레이엄과 기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캠폴로와 예수님의 유일성
제릴 팔웰과 함께 한 CNN의 크로스파이어 시간에, 신복음주의자 토니 캠폴로는 예수께서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기를 거절했다. 또 그는 "나는 예수께서 오직 그리스도인들 속에만 살아계신다고 확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복음주의에 대한 평가
박형룡의 비평
고(故)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에 대해 다음의 요점들을 비평하였다.
1. 성경 무오, 창조, 그리스도의 처녀성탄, 지옥 등의 교리에 대해 불확실하다.
2.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대화를 나누며 특히 전도에 협동한다.
3. WCC 에큐메니칼 운동과 우호적 관계를 가지며 사회복음운동을 따라간다.
4. 결론적으로, 잘못 아는 형제들이거나 열렬하지 않은 이단자들이다.
신복음주의자는 진실하지만 잘못이다
잭 스티븐스는 오하이오 바이블 펠로쉽 비지터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내가 신복음주의자의 마음가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복음으로 세상을 접촉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그것은 더 빠를수록 더 좋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하기 위해 그 밖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는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을 포기하며, 그가 진전시키려 하는 바로 그것을 파괴한다. 그는 외적인 성공을 가지며 참으로 형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 . . 그는 그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형제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잘못이다.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죤 애쉬브룩 목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근본주의를 공격하는 거대한 오염 세력은 신복음주의 즉 안으로부터의 공격이다. . . . 신자와 불신자를 연합하는 에큐메니칼적인 전도가 있다. 은사주의와 비은사주의의 혼합이 있다.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의 연합에 대한 제안이 있다. 대교회 및 구도자 운동이 있다. 복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있다. 현대 기독교 음악 운동이 있다. 천국과 지옥의 문자적 이해에 대한 공격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개방적 견해가 있다. 이 모든 슬픈 광경이 근본주의 안에서 '제자들을 끌어 . . .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남으로 생겼다. 우리는 우리가 신복음주의자들과 친구가 되고 그런 책들을 읽고 그런 대회들에 참석하고 그런 연사들의 말을 들으나 그런 어그러짐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치명적 잘못을 범한다.
신복음주의가 치명적인 이유들
촬스 우드부릿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복음주의는 가장 치명적인 신학적, 도덕적 타협이다. 그 입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활한 공격이다.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보다 더 간교한 위협에 직면한 적은 없다. . . . 그 입장은 몇 가지 이유에서 치명적이다. 첫째로, 그것은 신학적 부패의 한 형태로서 복음주의 진영들 밖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또 그 진영들 밖으로부터가 아닌 안으로부터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어떤 경우들에서 수년 동안 성경을 믿는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자들에 의해 옹호되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참으로 한때 신앙의 변호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리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저들은 그들의 견해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따라 그들의 타협들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명확히 반박할 수 있는 분명하게 정의된 다른 신학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음흉한 성격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그것은 교리를 희생시키면서 사랑을 강조하고 복음의 사회적 측면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거짓된 가르침을 반대하는 정통 신자들은 사랑이 없거나 반(反)사회적이라고 간주될 위험이 있다. . . . 다섯째로, 그것은 자유주의 진영의 신학적 지식층의 비위를 맞추고 요구를 만족시키며, 자기의 견해들을 가지지 않는 자들은 전(前)근대적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정식적인 학구적 훈련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목사들은 이것이 낙심시키는 일로 생각될 것이다. 여섯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의 잘못된 그러나 그럴듯한 견해들로 세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교리적 윤리적 쇠퇴가 교회 생활의 여러 영역들에서 보여진다. 일곱째로, 신복음주의라는 낙타의 코는 이미 기독교 천막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낙타는 그 전체를 차지하려고 힘써 밀고 들어오고 있다.
극단적 중립
사람들은 극우(極右)와 극좌(極左)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극히 거짓되고 지극히 불순종적이며 지극히 위험하다고 폭로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극단적 중립이다. 예전에 W. B. 라일리 박사는 "중도적 인물은 20세기의 신학적 위협이다"고 말했다. 진리와 오류 간의 싸움에서 중립성은 덕이 아니다.
신복음주의의 평가
신복음주의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신복음주의는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에 대한 확신이 없다.
2.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다.
3. 신복음주의는 진리를 위해 싸우려는 거룩한 의지와 열성이 없다.
4. 신복음주의는 교제와 분리에 대한 성경 교훈에 대한 순종이 없다.
6. 근본주의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개념
커솝 레이크의 정의
자유주의자 커솝 레이크는, "근본주의를 하나의 새롭고 이상한 사상 형태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때 모든 기독교인이 보편적으로 주장했던 신학의 잔존물이다"라고 말했다.
케넷 라투렛의 정의
예일 대학교의 교회사학자 케넷 라투렛은, "1914년 얼마 전에 [자유주의, 사회 복음, 성경의 고등 비평, 진화론 등에]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교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보수하는 것 때문에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렀고 다른 이들로부터도 그렇게 불리우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죠지 마스든의 정의
죠지 마스든은, "미국의 근본주의는 전투적으로 반(反)현대주의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 운동으로 가장 잘 정의된다"고 서술했다.
박형룡 박사의 정의
한국 장로교회의 보수적 지도자이었던 고(故)박형룡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 신앙과 동일한 것이니만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다.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신조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들(World Congress of Fundamentalists)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근본주의자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重生)한 신자로서 다음과 같은 자라고 우리는 믿는다.
1. 무오(無誤)하며 글자까지 영감된 성경에 대해 확고한 충성심을 가지는 자.
2. 성경이 말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다 그러하다고 믿는 자.
3. 성경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판단을 받는 자.
4. 다음과 같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 진리들을 확언(確言)하는 자.
- 삼위일체의 교리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처녀 탄생, 대리적 속죄, 육체적 부활과 영광
스런 승천, 및 재림
-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 새 출생
- 성도들의 부활과 영생
- 불경건한 자들의 부활과 최종적 심판과 영원한 죽음
-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의 교제
5. 이러한 신앙에 대한 충성을 실천하며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려고
애쓰는 자.
6. 이러한 신앙에 대한 모든 교회적 부인과, 오류와의 타협과, 진리로부터의
배교(背敎)를 폭로하며 그것들로부터 분리하는 자.
7.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는 자.
1976년, 1980년, 1983년, 1986년, 1990년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World Congress of Fundamentalists)
우리는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가 선언한 위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은 역사적 성경적 기독교의 기본적 개요를 포함한다. 또 배교적이고 타협적인 오늘날의 상황을 인식할 때, '배교를 폭로하며 그것에서 떠나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는 입장은 성경적으로 완전히 옳다. 성경은 이단과 오류로부터의 분리를 분명히 가르쳤다(롬 16:17; 살후 3:6, 14).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의 입장은 성경적이고 순수한 보수신앙의 입장이다.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의 선언
북미 독립침례교 협의회(Independent Baptist Fellowship of North America)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근본주의자들은 (1) 성경무오를 포함하여 역사적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들을 주장하고 (2) 교회의 배교와, 타협적 개인과 단체를 폭로하고 그들로부터 분리하는 자이다.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CCC)의 선언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참된 근본주의적 기독교인은--비록 오늘날 신문에서 반대로 묘사되지만--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신자이며 하나님의 영감되고 무오한 말씀을 굳게 믿고 모든 일을 성경의 잣대로 판단하는 자이다. 근본주의자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 진리들을 주장한다. . . . 참된 근본주의자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한 중요한 표는--사실 그것은 근본주의자와 신복음주의자를 실제로 구별짓는 표인데--교회의 배교를 폭로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하며 또 성경적 분리를 실천치 않는 타협하는 개인과 단체를 폭로하고 그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 . . 근본주의의 적들은 자유주의, 연합운동, 로마 천주교회, 은사운동, 인본주의, 신복음주의이다. 성경에 대한 복종은 근본주의자들의 표어이며 구주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참된 증거이다.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1998년 10월 27-29일 미국 미주리 주 모넷에서 모인 미국 기독교회협의회(ACCC) 57차 대회는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세상의 여러 표준들에 적응시킴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신하였다. 그들은 근본주의자들을 '바리새인들, 사랑 없는 자들,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 등'으로 표현한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성공하기 위해 배교적 교회와 협력하여 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無誤), 진화론, 심지어 교회의 사명을 재검토하는데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만이 오늘과 내일의 일들을 위해 충족하다고 가르치는 신실한 근본주의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신복음주의--중립주의
페이스 복음주의 루터교 신학교의 데오도르 슈브케겔 교수는 신복음주의를 '치명적 악'이라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적 문제는 . . . 교회 내에서 오류와 잘못된 가르침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이다. 옛방식은 . . . 오류에 빠진 사람을 책망하고 그를 교정하는 것이다. 만일 그가 그의 잘못된 가르침을 고집하면,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그의 길의 잘못으로부터 돌아서기까지 그를 우리로부터, 혹은 우리 자신을 그로부터 분리시킨다. 이것이 성경적 방법이다. . . .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은 이 분리의 방침을 내버리고 그 대신 오류를 포용하는 침투라는 방침을 취했다.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침례교회 세계 선교회 선교사인 로코 피서치아(Rocco Piserchia)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의 근본주의는 성경적 분리의 교리와 실천으로 정의된다. 대체로 말해, 보수적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차이는 분리의 문제이다. 오늘날의 근본주의는 복음주의보다 윤리적, 교회적 (혹은 교리적) 분리에 대한 좀더 엄격한 견해를 주장한다. 보수적 복음주의적 진영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배교자들과 로마 천주교인들로부터의 분리를 실천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아무도 죄악된 교리나 죄악된 행위를 고집하는 동료 신자들로부터의 분리를 실천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우 어떤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가르침으로써 그것을 반대하기를 원하지만, 잘못된 교리를 고집하는 동료 신자들로부터 적극적으로 분리하기를 원하는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역사는 분리의 근본주의적 견해를 변호하였다. 즉 어떤 교리적 입장도 분리의 실천 없이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 . . . 1950년경에 시작된 신복음주의는 신학적 자유주의의 사회적 양심과 사회적 행동들을 근본주의의 보수적 신학과 결합시키려 했던 신학적 운동이었다. 신복음주의는 그 지성적 건립자들이 자유주의의 사회적 행동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직접적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치명적 잘못이 있었다. '사회 복음'이라는 표현은 이 복음이 신약성경의 복음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신복음주의는 개신교 배교자들로부터의 분리를 강하게 거부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교회적 분리의 교리와 실천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은 신복음주의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자 뿐만 아니라 또한 1세대의 신복음주의자 편에서의 성경적 분리의 거부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실용주의(實用主義)에 근거한 것이다.
근본주의의 지도력
미국 디트로이트 침례교 신학교의 롤랜드 맥퀸(Rolland McCune) 박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십년 혹은 이십년 사이 근본주의의 어떤 인정된 지도자들의 은퇴나 죽음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그들의 위치를 대신할 지도력의 쇠퇴가 왔다. 더 최근의 세대의 근본주의자들은 이 면에서 일종의 공백을 경험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근래의 지도적인 근본주의 후배들은 덜 강력하고 덜 확정적이며, 덜 전투적이고, 논쟁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려는 마음이 덜하다. 어떤 이는 신복음주의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근본주의 선배들 사이에 어떤 거리를 두기를 열망한다. 또 다른 이들은, 아직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기는 하지만, 더 조용하게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다.
성경적 근본주의
성경적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이 말하는 모든 영역에서 완전하게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신학적 정통주의에 바쳐진 사람들과 사역들의 운동이며 또한 불신앙과 및 신학적, 교회적, 사역적 타협에 대한 경멸의 태도이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완전하게 기록되어 있는) 단번에 주신 믿음에 대한 전투적 옹호와, 그에 부수되는 바 불신앙이나 타협을 품는 자들로부터의 분리에서 나타난다. 성경적 근본주의는 (1) 거짓된 교리를 선전하는 불신앙자들이나 심지어 형제들로부터의 교회적 분리와, (2)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절대적 진리의 옹호에 의해 항상 특징지어진다."
근본주의의 필요성, 기초, 요소, 임무
1. 근본주의의 필요성은 교회들의 배교 때문이다.
2. 근본주의의 기초는 성경이며 특히 교제와 분리에 대한 성경의 교훈이다.
3. 근본주의의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인데, (1) 교리적 정통성, (2) 배교와 타협으
로부터의 분리, (3) 인격과 삶의 건전함(예를 들어, 겸손, 사랑, 거룩 등).
4. 근본주의 임무는 교회들의 개혁과 재건이다.
근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1. 근본주의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교회의 교리적 순결성에 대한 강조
(2) 교제와 분리에 대한 성경 교훈에 대한 순종
2. 그러나 근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약점을 조심해야 한다.
(1) 단순히 원리에 대한 강조나 비평보다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 사랑과 덕,
그리고 전도에 대한 적절한 혹은 더 많은 강조의 결핍
(2) 주 예수님보다 인간 지도자들이나 단체들을 강조할 위험성
(3) 겸손을 유지하기보다 교만에 떨어지기 쉬운 위험성
(4) 이해와 관용과 인내의 부족으로 인한 불필요한 분열들
관용의 잘못
관용에 관하여
토저(A. W. Tozer)는 '관용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늘날 유행은 우리가 도량이 좁다는 평판을 얻지 않으려고 무엇이든지 관용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셨던 아말렉의 왕] 아각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참아 볼 수 없으며(삼상 15장),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오류와 악을 용납함으로써 오는 시대를 위해 교회의 건강을 희생하는 길을 택하며, 이것을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이름으로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악의 자리들을 소란시킬 의무가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한 신실한 사랑에서 행해지는 곳에 큰 유익이 따를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일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하는 심사(審査) 때문에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을 가장한 소심함 때문에, 많은 교회에서 쓸데 없는 형식들과 비성경적 행위들이 계속되도록 허용되었고, 그것들은 마침내 점점 교회의 생명을 질식시켰고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 . . [교회 문제들을] 심사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결점을 찾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 . . 그러나 만일 우리가 악한 시대에 하나님의 일이 순수하게 보존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혼란한 오늘날 교계의 현실에 사랑과 관용만을 부르짖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원수들을 이롭게 하는 것뿐이다! 교회 내의 오류들은 지적되고 제거되어야 한다.
잘못된 관용
G. 캠벨 몰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배신 행위인 관용이 있다. 마비 상태를 낳는 화평이 있다. 교회가 일을 할 때 타협에 근거한 교제를 요청하는 자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들이 있다. 그렇게 떨어져 서 있는 것은 추방과 핍박을 낳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능력과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다. . . . 오늘날 교회는 타협에 의하여 그 자신의 영향력을 파괴시켰다.
오류와의 연합--희미한 빛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중적 의무가 있다. 즉 '땅의 소금'이 되는 것과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많은 신복음주의자들은 낙태, 동성애, 음란물, 그리고 다른 악들과의 싸움에서 우리로 하여금 천주교인들과 힘을 합치기를 원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들과 함께 연합할 수 있지만,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종교적 방식으로 함께 행진하고 사역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함으로써 우리의 '빛'의 역할을 절충하고 혼란케 하는 댓가를 치루면서 '소금'의 역할을 강화시키려는 위험을 본다. 하나님의 일은, 그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의 일이 아니다.
스펄젼은, "오류에 연루되는 것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그 오류에 대한 어떤 성공적 저항을 할 능력을 취하여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학적 차이점들을 제쳐놓고' 거짓 복음을 조장하는 천주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고 예배할 때,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행위는 '빛을 말 아래 감추는' 격이다.
순결을 희생한 평화
참된 기독교적 일치는 공통적으로 믿는 고정된 성경 진리들을 믿고 주의하는 것을 포함한다. 오늘날 교회연합 운동의 거짓된 일치는 '다양성 속의 일치,' 다원주의,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섞는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다'(약 3:17). "외적 일치와 복음 진리 사이에 양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진리를 위해 일치를 양보해야 한다. 오류 안에서 연합하는 것보다 진리에 의해 나뉘는 것이 더 낫다." 그러한 분열의 책임은 진리를 떠난 자들에게 있다. A. W. 토저는 말하기를, "타협은 압박을 제거할 것이다. 사탄은 싸우기를 중지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지의 댓가는 평화로운 침체의 삶일 것이다"라고 했다.
관용이 타협이 될 때
테리 아놀드(Terry Arnold)는 다음과 같이 쓴다:
오늘날 '관용'이라는 말은 새 사고방식으로 찬미를 받고 있다. 기독교 세계에서와 기독교 교리에서 관용에 대한 점점 더 많은 요구가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의미한 바와 성취된 바는 흔히 관용이라기보다 타협이다. . . .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말씀을 타협하는 것은 죄이다! 중요한 교리들과 타협하는 것도 또한 죄이다! 거짓 교사들과, 사람들을 건전한 교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자들과 타협하는 것은 죄이다. 성경은 때때로 일치보다 분리에 관해 말한다. . . . 예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관용하셨지만 결코 타협하지는 않으셨다. 사실 그는 흔히 논쟁에 휘말리셨다! . . . 나는, 그들이 뒤에 더 큰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작은 것들에 대해 타협하는 소위 '화평케 하는 자들'을 주의한다. 많은 목사들은 사람들이나 그들 자신의 지위나 인기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어떤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 . . 진리를 희생하는 관용은 타협에 이른다. 타협은 항상 본래의 표준을 낮춘다. 진리는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만, 오류는 그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타협은 이제 덕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는 감정 상하는 일이 되었다.
이단과 배교(背敎)
밀톤 죤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교(背敎)는 진리의 거부이며, 이단은 진리의 왜곡이다. 그 둘 중에, 이단은 여러 면에서 더 위험하다. . . . 왜냐하면 그것은 탐지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단은 그 본질상 배교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 위조품이 진짜에 더 가깝게 될수록, 그것은 더 교활하게 된다. 참된 신자는 배교를 받아들이도록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단의 위협에 굴복하였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치 않은 이단을 거절하라고 분명히 명령하신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
교회가 어떻게 배교에 떨어지는가?
다음의 내용은 위와 같은 제목의 질문에 대한 클레이 나털(Clay Nuttal)의 글에서 발취한 것이다.
역사는 배교(背敎)가 한 시대에 걸쳐 일어나고 하룻밤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여러분은 "교회가 단지 두 명의 목사가 이어지면 자유주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첫번째 목사는 그 교회를 부드럽게 하고 그 다음은 그것을 배교로 인도한다. 자유주의로 향해 움직이는 교회들을 확인하는 길들이 많이 있지만, 그 길에 있는 자들은 친구들로부터의 경고를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와 같이 배교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그들이 거기로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여러분이 그들에게 그들의 교단이 장소적 천국이나 불붙는 지옥이 없다고 하는 자유주의 교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에라도 그 명백한 사실에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충성된 경고자들을 향하여 그들이 거짓 교리를 취급한다기보다 개인적 문제를 논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이 없다, 천박한 정신을 가졌다'고 부른다. 사람이 어떻게 배교에 도달하는가? 사사기 2:10에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속임: '무엇이 쥐를 죽였는가?'
쥐를 죽인 것은 98퍼센트짜리의 햄버거이었다. 오직 혼합물의 2퍼센트만 독약이었지만 쥐는 죽었다. 진리와 거짓의 혼합물은, 격리되고 분간될 수 있는 순수한 거짓보다 보통 훨씬 더 치명적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나 그 안에 좋은 점이 매우 많다"고 흔히 말한다. 모든 거짓 사상체계들은 진리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사실상, 더 많은 진리가 치명적 오류와 섞여 있을수록, 그것은 속임을 위해 더 많이 위험하다. 효력이 있으려면, 속임수는 본질적으로 참되게 보여야 한다. 목표 지점을 향해 전달되는 내용의 90퍼센트 이상은 참되어야 한다. 심지어 미혹의 시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속임 당함에 대해 핑계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우리 시대의 오류나 오류자들을 폭로하기에 충분하다(사 8:20).
관용은 이제 중립성을 의미한다
다원주의는 강요된 중립성이 되었다. 거기에서는 아무도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생각도 표현해서는 안된다. 어떤 목사는 예배하는 이들에게 구도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성경책들을 교회에 가져오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은 전도를 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는 많은 죄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 청년'을 포함하여) 많은 선교단체들은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험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회심자들이 그들의 문화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옛날의 종교적 신념들과 행위들을 지니도록 허용된다. 와이 더블유 에이 엠(YWAM)은 이런 관념을 '메시아를 믿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실험하고 있다.
배교의 길
종교적 연합의 역사에서 결코 어떤 단체도 배교나 현대주의나 자유주의로부터 나온 적이 없으며 결국 그리로 돌아가지 않은 적도 없다. 어떤 단체들은 좀더 시간이 걸렸고 다른 단체들은 그 과정에 있을 것이지만, 역사적 기록이 증거하는 바는, 한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옛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늦추거나 지연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은 또한 교육기관들과 선교회들과 교회들에서도 그러하다. 그들의 운명의 씨앗들은 자유주의로부터의 그들의 출생 속에 존재하는 것이 나타난다. "다리들을 불태우며 벽들을 세움"이라는 이전의 글에서, 나는 안전의 요소를 유지하기 위해 돌아감을 허용하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기구적 유대 관계도 계속되도록 남겨질 수 없다. 영원히 자유주의를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부수고 불태우는' 방침, 즉 돌아갈 모든 가능한 수단을 파괴하는 방침을 추구해야 한다. 배교를 떠날 단순한 벙법은 없다. 1920년대의 옛 자유주의와 배교를 떠날 때, 복음주의자들은 이 시험들에 실패했다. 그들의 '포용주의'의 방침은 현대주의적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하도록 기존하는 다리들을 남겨두었다. 슬프게도, '분리주의자들'이라고 조롱을 받았던 어떤 단체들은 자유주의로 돌아갈 다리들을 재건립하고 있다. 그들의 오류는 단절했어야 할 유대 관계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데 있었다. 이것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때의 이스라엘의 큰 죄이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진멸하고 쫓아내지 못했고 불순종의 댓가를 지불했다. 이 다리들이 그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나아가게 하였다. 역사 기록이 증거하는 바는,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그것을 뒤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남침례교단을 돌아감의 예로 사용하지 말라. 그 교단은 이상의 원리의 아주 좋은 예이다. 비록 약간의 지연이 일어났지만, 그 열차는 배교와 불신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여러분이 불신앙자들을 '자유주의자들'로, 자유주의자들을 '온건한 자들'(moderates)로, 또는 온건한 자들을 '보수주의자들'로 부를 때, 어떤 이들은 속임을 당할지 모르지만,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한 때 배교로부터 나왔으나 지금 오랫토록 그것을 관용해온 자들의 두려운 종착지는 숨겨지지 않을 것이다.
옛 복음과 새 복음
개리 길레이 목사는 말하기를, 새 복음은 결함이 있는 철학(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중시함)과 잘못된 방법론(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몰려 따라감)에 기초하며 그것은 결국 자기 존중(self-esteem)과 개인적 성취의 변이된 복음으로 구체화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옛 복음은 노하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상처 입은 우리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죄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필요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의(義)에 대한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었으나, 새 복음은 성취에 대한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이다. 옛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거슬리는 것이지만, 새 복음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 복음에 모여들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구원을 받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교회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변질된 치유적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의 어리석은 것을 전파함으로써 죄인들에게 바른 해답이 되는 용기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경찰이 범죄를 관용해야 하는가, 의사들이 질병을 관용해야 하는가, 법관들이 거짓 증언을 관용해야 하는가? 그러나 기타 다른 맥락에서는 미치광이짓일 관용이 영적 문제들에서는 명령된다."
극단적 중립
사람들은 극우(極右)와 극좌(極左)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극히 거짓되고 지극히 불순종적이며 지극히 위험하다고 폭로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극단적 중립이다. 예전에 W. B. 라일리 박사는 "중도적 인물은 20세기의 신학적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진리와 오류[즉 선과 악] 사이의 싸움에서 중립성(혹은 온건함)은 덕이 아니다.
오류는 지적되어야
침묵의 죄
스스로 기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정통적 기독교의 역사적 성경적 교리들로부터 심각하게 떠날 때, 우리는 게으르게 침묵함으로 서 있어서는 안된다. 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이며 그 오류의 전파자들과 그것을 듣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침묵하는 파수꾼은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파수군이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의 목자들을 '눈 먼 파수꾼들'이라고 부르셨고 그들을 '벙어리 개요 능히 짖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사 56:10). 그는 그들의 그릇된 교리를 비난하지 않으셨고, 오직 그들이 경고했어야 할 때 잠자고 있었음을 비난하셨다.
현대교회 문제들은 지적되어야 함
미국의 한 보수적 교단(GARBC)이 인준한 침례교 성경 대학 및 신학교의 교장인 밀로 톰슨 박사가 그 교단의 최근 연례 대회에서 캘버리 컨텐더 같은 현대교회 문제들을 지적하는 소식지들을 '(남을 비난하는) 문제의 종이들'(scandal sheets)이라고 표현하고 그것들을 목욕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거기에 대하여, 캘버리 컨텐더 편집자 제리 허프만(Jerry Huffman)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보도되고 있는 '타협'이 그것을 보도하는 것보다 '목욕'시킬 필요가 더 있다고 느껴야 한다. 보기를 원치 않는 자들처럼 눈 먼 자들은 없다! 그렇다. 캘버리 컨텐더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속임을 피하기 위해 알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보도하거나 폭로한다는 의미에서 '문제의 종이'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수치스런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근본주의자들'[보수주의자들]이 신복음주의의 궤도 안으로 집단적으로 변절하는 것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자유주의자들이나 포용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강단 교류를 한다. 이런 류의 타협이야말로 20세기 말의 가장 큰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우리는 심지어 개인적 조롱을 직면할지라도 계속 진리를 위해 서서 이러한 '문제들'의 나타남들을 보도할 것이다.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가?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교훈들을 비평하고, 교훈하는 자들을 비평하지는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둘을 항상 분리시킬 수 없다. 밴가드(Vanguard) 1999년 6월호의 한 글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논한다:
1.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성경적이다. 바울은 긍정적으로 사역들을 추천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고, 부정적으로 사역들을 경고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다(딤전 1장; 딤후 4장). 요한도 또한 구체적으로 이름을 들었다(요삼 9, 10).
2.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칭찬하기를 기뻐한다면(예를 들어, 루터와 스펄전과 웨슬리의 전기들), 부정적으로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논리일관하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가 되는 사람들에 관하여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똑같이 정당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가 글을 쓸 때, 우리는 여러분이 그들을 미워하라고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그들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다(딤후 4:15).
3. 사람들의 이름을 드는 것은 실제적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흔히 설교보다 설교자들[유명한 인물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들어야 한다.]
4. 사람들의 이름들을 드는 것은 역사적이다. 교회 역사를 통해 볼 때, 사람들은 그들이 반대하는 내용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진술하기를 겁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흔히 더 중요하게 보인다.
오류를 취급하기를 지체치 말라
촬스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다: "오류가 확립되었음을 내가 보았거나 내가 보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았고, 즉시 그 단체와 결별했습니다. 그 때 이후 나의 한가지 조언은 '그들로부터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
21세기에 성경을 위한 싸움은 미국의 R. L. 히머스 2세(Hymers, Jr.) 박사가 쓴 최근의 책의 제목이다. 미국의 보수적 남침례교단의 지도자들은 남침례교단의 지배를 위한 싸움은 끝났고 그들이 이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가? 그들이 이겼는가? 히머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서는 남침례교단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 아직 끝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 확실히, 교단의 지도층과 6개의 남침례교단 신학교들에서 성경에 관한 보수적 입장을 향해 급진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것은 그 조류가 남침례교단의 교회들과 교단적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단 안에 54개의 자유주의적 학교들이 있고 단지 12,748명의 학생들을 가진 6개의 보수적 학교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같은 시간에 113,581명의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남침례교단의 학생들의 90퍼센트는 자유주의 학교 기관들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책은 60개의 학교들의 이름과 학생수를 열거한다. 히머스는 머서 대학교 총장 R. 커비 갓세이 같은 어떤 남침례교단의 대학교의 총장들의 극단적 자유주의 사상들을 인용 열거한다. 데이빗 비일은, "이 책은 구체적으로는 남침례교단 내의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좀더 넓은 복음주의 운동의 핵심적 문제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진술"이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부정적인가?
어떤 잘못된 교리나 교사나 타협적 지도자에 관해 사람들을 경고하려고 애쓸 때 "왜 그렇게 항상 부정적인가?"라는 말을 듣는다. . . .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너무 부정적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로 그 말로 여러분을 향해 부정적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가 너무 부정적이고 사랑이 없다고 우리를 말로 찢고 빻으면서 우리에게 심히 부정적이고 사랑이 없었을 때 우리는 흔히 놀라운 마음으로 그의 글을 읽거나 그의 말을 들었다. . . . 한밤 중에 이웃의 집에 불이 났을 때 그를 깨우는 것이 너무 부정적이고 사랑이 없는 일인가? 어떤 이는 우리에게 양을 삼키려는 양의 옷을 입은 늑대들을 향해 부정적이지 말라고 하지만, 그들 자신은 양무리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경고자들'에게 부정적이려 한다.
진리를 위해 싸우라
"만일 우리가 단기간의 영향을 위해 오늘 진리를 희생한다면, 우리는 내일 우리의 행위가 어떠할지 보증할 수 없을 것이다. 싸워야 할 날이 연기될 때 싸울 의지가 우리에게서 떠날지도 모른다."
공적인 오류는 공적으로 교정되어야 함
데이브 헌트는 독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잘못들'을 지적하는 문제가 아니고 비성경적 교리와 행위를 바르게 하는 문제이다. 공적으로 가르쳐진 교리적 오류는 그것으로 잘못 인도함을 받은 자들을 위해 공적으로 바르게 되어야 한다. 사실, 바르게 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모든 가르침의 주된 목적이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의 목적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딤후 3:16). 참으로 22권의 서신들의 대부분은 바르게 함에 관한 것이다! 잘못된 것에 관해 경고함이 없이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의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한다고 말한다(딤후 4:2). 그리고 책망과 바르게 함은 잘못된 말을 한 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미완성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인기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참되게 행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기를 원치 아니하는' 이유를 적어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교회 안에 없는 한 주된 요소가 아닌가
인기 있는 저자들의 에큐메니칼 정신
마크 시드웰은 나누는 선(The Dividing Line)이라는 그의 책에서 제리 팔웰과 잭 반 임페의 '신근본주의'에 대해 경고한다. 또 그는 성경무오를 옹호하며(린젤), 신학적 타협에 항거하며(쉐퍼, 웰즈) 은사주의를 경계하고(죤 매카더) 천주교회를 경계하는(스프라울) 인기 있는 복음주의자들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근본주의자들이 저 복음주의자들의 비평서들을 읽고 큰 유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 저자들이 분리에 관해서는 여전히 근본주의자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여전히 거짓된 교훈과 잘못된 실천의 관용을 용납하고 촉진하는 기관들과 연맹들에 연계되어 있다. 어떤 위험에 대한 공통적 반대가 근본주의적 그리고 비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들 사이의 일치를 위한 근거가 된다고 추정하는 것이 신근본주의적 오류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일치의 근거는 오류에 대한 공통적 반대가 아니라 성경적 진리와 성경적 실천에 대한 공통적 신념이어야 한다.
오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
이안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류와 대결치 않는 것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이 흔히 하는 설명은 가혹한 전투성이 유익보다 더 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너무 자주 신앙에 손상을 준 귀에 거슬리는 논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빌리 그레이엄 박사는 흔히 '근본주의자들'을 이런 잘못 때문에 비난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사랑에 대해 말하는 바가 무시되었다는 사실이 오류에 대한 그것의 명령들이 순종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아니다. 어떤 이들이 이 명령들을 논쟁적 정신으로 따랐다는 것이 다른 이들이 그것들을 전혀 따르지 않아야 할 구실은 아니다. 오류에 대한 성경적 싸움은 사랑과 완전히 조화된다. 참으로 그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사랑이다. 믿음을 위해 싸우라는 명령은 어떤 이들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폐기되지는 않는다.
헌트와 모리스의 '타협'을 경고함
파운데이션지 7-8월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창조 연구소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와 베레아의 외침(Berean Call)지의 편집자인 데이브 헌트가 최근에 '영원한 지혜' 사경회에 갈보리 교회 설립자 척 스미스와 연합하였다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실망을 주는 일이다." 여러 해 동안 모리스와 헌트의 유익한 경고의 사역들을 언급하면서, 그 글은 "이 슬픈 타협은 갈보리 채플 운동의 은사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활동에 신임을 준다"고 말했다. 파운데이션지는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방언과 다른 계시적 은사들을 포용하고 은사주의와 신복음주의 진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척 스미스와 함께 활동할 때 타협이 일어났다고 했다. 헌트와 모리스는 성경적 분리 외의 거의 모든 다른 영역들에서는 탁월한 분별력을 보인다.
매킨타이어 박사가 때 늦은 사과를 받음
칼 매킨타이어 박사는 공산주의와 종교적 자유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적수이었다. 그는 흔히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와 많은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서 심한 비난을 받았으나, 2002년 3월 매킨타이어의 죽음 이후 풀러신학교 교장 리차드 모우는 솔직하게 매킨타이어를 더 호의적이게 논평하였다. 그는 매킨타이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소련 진영의 정교회들로부터 온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영접했을 때 원수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분, 이들은 공산주의 정부의 공작원들입니다!'라고 주장하려 했다. . . . 에큐메니칼 지도자들과 같이, 나도 그의 비난들을 광신적 폭언들이라고 물리쳤다. . . .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저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의 다수가 참으로 그들의 마르크스주의 정부의 지식 있는 지도자들임을 알고 있다. . . . 내가 아는 한, 에큐메니칼 개신교계에서 아무도 그의 비난들을 물리쳤던 태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비록 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 . . 매킨타이어 박사, 당신이 옳았다!
전투성과 분리
감리교회의 보수주의자들
미국 감리교회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더 이상 연합감리교회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월드지 1998년 7월 25일자의 한 기사는 "신자들은 신앙의 기본적 사실들을 긍정하지 않는 자들과 영적 동반자들일 수 없다," "우리는 본교단에서 연합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 분열에 대한 존 웨슬리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용되어 있다: "불경건과 배교가 우세한 교회들 안에서, 분열의 악은 교회 안에 머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있다." 최근의 많은 논쟁은 감리교회 목사 지미 크리치의 두 여성 동성애자를 위한 '언약'결합식 집례와, 미국 뉴욕시의 악명 높은 리버사이드 교회의 '동성애자 주일' 예배에서의 그의 '설교' 때문에 기인하였다. 또 미국 샌프란시스코 글라이드 기념연합감리교 목사 시실 윌리암스는 자신의 정박소가 '해방의 신학'이며 "규칙들과 교리들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30년 이상 동안 동성애자들을 위한 결합 언약식을 집행해 왔다고 말했다. 배교적 교단에서 보수적 목사들이 취할 태도는 오직 두 가지이다. 그들은 저런 자유주의자들을 축출하고 교단을 정화시키든지, 아니면 거기서 떠나 건전한 교단을 새로 만들든지 해야 한다. 아무 조처 없이 그런 교단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악에 타협하는 것이요 주께 대한 불성실이다.
공적으로 타협하는 형제들로부터의 분리
마크 시드웰은 나누는 선: 성경적 분리를 이해하고 적용하기라는 그의 새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바르게 말했다:
공적인 인물이 범하는 공적인 죄는, 속임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적으로 책망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배교(背敎)와의 교제를 옹호하고, 거짓 교사들과 불신자들과 협력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공적으로 도전한 죄가 있다. 그가 잘못 인도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또는 만일 성경적 경고를 적절하게 받지 못한다면 그에 의해 잘못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충성된 목사는, 비록 그 사람이 복음을 전파하는 체하고 또 혹 어느 정도 그러할지 몰라도, 그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기껏해야, 이것은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처럼 행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입장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불행스럽다. 우리가 오직 입장에만 집중하고 성경적 불순종이나 타협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비성경적 입장의 주된 선동자요 촉진자요 옹호자일 때, 우리는 그가 촉진하고 있는 그 죄를 비난하면서 그 사람을 폭로해야만 한다.
다리들을 불태우고 벽들을 쌓기
오늘날은 타협의 시대이다. 명료성을 주는 단순함보다 혼란을 주는 복잡함이 있다. 오늘날은 중재(仲裁)와 수용(受容)의 시대이며, 어떤 장벽들은 목적이 있다고 여전히 믿는 '옛 방호물'에 대한 격렬한 반작용의 시대이다. 어떤 이들은 배교가 저 멀리 있는 한 진정한 위협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목회하는 어떤 친구들이, 우리는 '옛자유주의'를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것은 힘 없는 옛흔적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충돌을 옛날 문제로 보았다. 지금 그들 중 다수가 자유주의적 교리를 그들 속에 품었거나 그것에 대해 그들의 눈을 감았다. 이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행위들은 배교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 . . 그 대답은 매우 분명하다. 그들은 그들을 돌아가게 허용할 다리들을 파괴하지 못했기 때문에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 다리들의 일부를 황폐케 했으나, 지금 그것들은 재건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선조들에 의해 건립된 어떤 장벽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장벽들은 인기가 없고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에 장애물이 되어 있다. 그것들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장벽들은 미움을 받고 조롱을 받고 멸시를 받는다. 다리들은 '신자유주의'를 옛자유주의와 똑같은 파멸로 인도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다.
거대함이 복 받은 표시는 아님
존 E. 애쉬브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복음주의의 불문의 기본 전제들 중의 하나는 거대함이 복의 표시이며 타협이 성장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 원리를 희생하는 전략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아니고 오직 사탄의 전략이다. 타협을 성장 전략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근본주의의 다른 한 장점은 일반 대중과 다르다는 데 있다.
스펄젼의 성경적 분리에 대한 사상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류에 연루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대항할 힘을 잃게 할 것이다. . . . 우리의 엄숙한 확신은, 진정한 영적 교제가 있을 수 없는 곳에는 교제가 있는 것 같은 모양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알려진 치명적 오류와의 교제는 죄에 동참하는 것이다. . . . 오류가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내가 보았거나 내가 보았다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심사숙고할 것도 없이 그 단체와 즉시 관계를 끊었다. 그 때 이후 나의 조언은 '그들로 부터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알려진 악으로부터의 명백한 분리와 비교할 만한 항거는 없다고 느꼈다. . . . 나는 나의 증거를 무의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신앙으로부터 탈선하는 자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그들과 교제하는 자들로부터 내 자신을 분명하게 단절시켰다. . . . 자신들을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분리시키는 자들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어떤 댓가를 치룬다 할지라도, 우리의 자유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배교적 교회연합가들은 "만일 우리가 양우리를 넓히고 양이든 늑대든 다 청하여 들어오게 하면, 우리의 문제들은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타협적 복음주의자들은 "양우리를 넓히고 거기에 든 자가 양인지 늑대인지 판단치 말라. 단지 그들을 다 사랑하라"고 말한다. 반성경적 은사주의자들은 "양우리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양이든 염소이든 단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확인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 잘못된 말들이며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한 태도이다.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가?
미국의 성경장로교회 65회 대회는 위의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우리가 천주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과 점증적 무관심이 있어 왔다. 촬스 콜슨과 J. I. 패커 같은 유명한 신복음주의 대변인들은 개신교인들이 신학의 많은 영역에서 천주교인들과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CT I과 II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이들은 칭의(稱義)의 영역에서 천주교 신학과 절충하였으나, 천주교회는 그 전통적 교훈을 떠나지 않았고 종교개혁 진리들에 더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대의 요리문답에 나와 있는 천주교회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트렌트 회의의 오류들 그대로이다. 성경을 믿는 영혼을 지옥불로 위협했던 16세기의 정죄와 저주 때문에, 천주교 국가들에서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화형을 당하였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자들이 천주교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메시지가 필요한 잃어버린 죄인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선언한다. 천주교회 안에 믿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자들은 그 적그리스도적 체제에서 나오라고 초청을 받아야 한다.
전투성 안에서 비열함을 피하라
펀더멘탈 다이제스트지 2001년 7-8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싸우는 근본주의자들은 전투적이면서 비열함이 없이 적절한 입장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중대한 싸움들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형제들과 친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항상 우리의 용감한 입장 때문이고 우리의 잔인한 성향 때문이 아닐 것이다. 죤 브로크(John Brock) 박사는 프론틀라인(Frontline)지 7-8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적 침례교 설교자들과 사람들은 불친절하거나 생각이 없거나 사랑이 없거나 율법주의자들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주의 입장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이 감정의 절제가 없거나 불친절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경적 교훈[분리의 원리]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귀의 거짓말이다.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의 한 결의문
근본주의 침례교 협의회는 근본주의 진영 안의 신복음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근본주의자라고 말하는 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계속 신복음주의에 빠진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성경적 분리를 이렇게 떠나는 것을 탄식하며, 또 흔들리지 말고 진리를 담대히, 전투적이게 옹호하기를 호소한다. 근본주의자로서 우리는 오류를 기꺼이 지적하고 그것을 정직하게 다루어야 하며, 또 필요하다면, 근본주의인 척하는 신복음주의와 분리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적 분리와 개인적 분리에 관한 우리의 신념들과 실천들을 재확인하며, 성경적 사랑, 지적인 정직함, 근면한 연구, 성경적 설교, 적절한 토론, 성령을 의존함, 기쁨으로 참음, 순결한 인격, 및 심령의 온유를 본보이기를 결심하지만, 위선, 대하기 어려움, 성급함, 반작용적 태도, 말다툼함, 및 말을 듣지 않음을 슬퍼하며 버린다.
편의주의적 근본주의자들
이전의 정규침례교총회 전국 대표이었던 고(故) 폴 탯설(Paul N. Tassell) 박사는 능력의 길이라는 그의 1983년의 책(142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미국에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근본주의가 있다. 하나는 내가 편의주의적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를 나는 순종적 근본주의라고 일컫는다. 편의주의적 근본주의는 신앙의 근본적인 내용들을 믿지만, 진리를 위한 싸움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근본주의적 과수원들에서 열매를 따는데 관심이 있지만, 그 과수원들에 조용히 침입한 원수들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탯설은 계속해서 배교와 "타협적 복음주의자들"로부터 분리해야 할 우리의 책임에 관해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와 그 자신의 정규침례교총회가 그의 선한 충고를 얼마나 빨리 저버렸는가를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유주의 교회나 천주교회를 떠나야
복음전파지 2003년 5-6월호에서, 마이크 젠드론은 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여러분은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떠나야 하고 그 예배의식들에 참여치 말아야 한다. 로마 천주교회는 사도들이 전파한 것과 반대되는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갈 1:6-9). 천주교의 미사는 예수께서 생명 없는 떡에 육체적으로 존재하신다고 선포함으로써 또한 그를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희생제물로 제공함으로써 날마다 그를 수치스럽게 한다.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요 17:17).
성경적 분리
제프리 쿠는 성경적 분리라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적 분리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 교리이지, 단지 한 교파적 특징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은 분리에 관한 교훈들로 가득하다. 성경적 분리는 어떤 선택 사항이 아니고 한 명령이다. 이 명령에 대한 복종의 실패는 우리의 교회들이 해를 입고 결국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에 욕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리스도 우리 구주께서 욕을 당할 때, 우리는 앉아서 아무일도 생기지 않은 것처럼 처신하는가? 부모가 공격을 받을 때 아들이 그들을 옹호하거나 보호하지 않는 것은 아주 부자연스런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우리는 자녀가 되었는가?
성경적 분리는 오늘날 교회가 무시해서는 안될 기독교 신학의 한 측면이다. 잘못된 신학들과 운동들의 침입이 실제로 모든 개신교단에 영향을 주었다. 강한 분리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싱가포르 성경장로교회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잘못된 '주의들'에 대한 선언된 입장을 취하는 교회들이나 교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공격들을 더 잘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준 바와 같이, 분리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 말세에 위험한 교회적 상황을 향해 무관심한 교회들은 마귀의 많은 직접적이고 교묘한 공격들을 받기가 아주 쉽다.
'신앙이 건전하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때때로 '우리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신앙이 건전하다'는 말을 듣는다. '신앙이 건전하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하지 않는 자는 '신앙이 건전한가'?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유 3)는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자를 '신앙이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사람은 영적으로 병든 자이다. 그는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을 공언한 후에 원수와 싸우기를 거절하는 군인과 같다. 그러한 '건전함'과 그러한 '충성'은 속임이요 수치이다! 속이는 자들에 관하여, 디도서 1:13은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다. 물론 이것은 사랑과 바른 정신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다.
전투적 근본주의자
개리 프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전투적 근본주의자는, 오류를 주장하는 사람을 단체나 교회로부터 쫓아냄으로써든지 혹은 오류가 관용되고 그 단체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이 그 문제를 고치기를 원치 않을 때 스스로 떠남으로써 단순히 불신앙과 타협을 관용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투적 근본주의자는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나 진리를 타협하는 자들과 종교적 활동을 함께 하기를 원치 않는 자이다. 그는 불신앙자들이나 성경의 분리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 타협자들이 학교나 기관을 지배함에 분노감을 가지며, 그 결과 오류를 가르치거나 실행하는 자들을 쫓아내거나 성경에 충실하려는 자의 양심상 그 사역을 떠나는 것이다.
7. 기타
천주교회
[반개신교적]
교황이 개신교에 대한 전쟁을 촉구함
로마교의 숫적 손실에 놀란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그의 최근의 멕시코 방문에서, 천주교에 충성된 자들에게 그가 '진실치 못한 이념'이라고 부른 개신교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요청했다. 커네이디언 리바이벌리스트의 편집자 프랭크 맥클레란드는 말하기를, "소위 개신교회들의 머뭇거림 속에서 그의 에큐메니칼 동료들을 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고 하였다.
천주교회의 유일성 자주장(自主張)
천주교회 교리를 수호하는 기관인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은 2000년 9월 5일 '도미누스 예수스'(Dominus Iesus) 선언문에서 "합법적인 사도계승권과 성례전적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본질을 보존하고 있지 않은 교회적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개신교회의 세계적 단체들(세계루터교회연맹, 세계개혁교회연맹 등)은 이번 선언을 교회일치정신을 역행하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으로 평가했다. 또 9월에 한 이탈리아 잡지에 소개된 천주교인들을 위한 또 다른 하나의 신앙 교리 문서는 천주교회 주교들이 개신교회들을 부를 때 '자매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천주교회의 이러한 선언과 명령은 천주교회가 개신교회들을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나타낸다. 사실상 천주교회의 근본 교리들은 변함이 없었고 그들의 입장은 옛날부터 항상 그러하였다. 변한 것은 자유주의 개신교회들의 천주교회에 대한 입장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뒤엎는 일이며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다.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는 조화될 수 없는 두 사상체계이다.
죤 매카더의 천주교회관
마이크 젠드론은 죤 매카더(John MacArthur)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천주교회는 잘못된 체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고 적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여러분이 천주교 신학을 따르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불친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진실하기 위해서다. 진실한 것이 친절한 유일한 길이다. 사람들은 그 체계로부터 나올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리아를 높이는 체계이며 그것은 이방사상과 거짓 기독교가 혼합된 체계이다.
[마리아 숭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숭배
로마 천주교회의 마리아 숭배는 마리아를 성경이 계시하는 수준 이상으로 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에서 무장 괴한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마리아가 자기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마리아에게 지극한 헌신을 보였고 "마리아여, 나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니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천주교 내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지위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것은 뉴욕의 추기경 죤 오컨너(John O'Connor)의 조용한 지지를 얻었다. 그것은 삼위일체를 확장하여 새로운 '거룩한 사위일체(四位一體, Quartet)를 형성하도록 요청하는데, 거기에서 마리아는 하나님 아버지의 딸이며 성령의 배우자로서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로서 인정될 것이다. 옹호자들은 그 계획을 위해 430만명의 서명을 수집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의 이런 사상과 그 사상의 노골적 표현인 근래의 움직임은 명백히 비성경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오류이다. 마리아는 결코 천주교회가 말하며 드리는 그런 존경과 숭앙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는 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마리아에게 바쳐진 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적 좌우명은, '마리아여, 저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니이다'이다. 그는 1984년 지구 전체를 마리아에게 바쳤다. 그는 유럽에서의 공산주의의 몰락을 마리아의 개입 때문이라고 돌렸고 1981년의 암살 시도에서 자기 목숨을 구해준 것도 마리아의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이 마리아에게 신적 속성들을 돌리는 교황들의 긴 대열에 서 있고 마리아에 대한 헌신을 새로운 고지(高地)에 올려놓았다. 카톨릭 새 요리문답은 마리아에게 '협력 구속자'(co-redeemer), '중보자'(media- trix), '보혜사'(변호자, advocate)의 속성들을 부여한다.
그러나, 마리아 자신은 자신이 구주가 필요한 죄인임을 알고 있었다. 누가복음 1:46, 47,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마리아는 결코 천주교 교황이나 교인들이 숭상하듯이 신적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구속자, 중보자, 보혜사로 추앙을 받아서도 안된다. 마리아에 대한 그러한 추앙은 명백한 우상숭배다.
마리아와 카톨릭 신자들
다음의 인용문들은 카톨릭 교인들이 출판하는 파디마 크루세이더 1998년 여름호에서 한 것이다:
[마리아의] 무죄 잉태는 우리의 구원의 첫걸음이다. . . .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이 마리아의 무죄한 마음에 대한 헌신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작정하셨다. 분명히 저 영혼들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마리아의 무죄한 마음을 먼저 믿어야 한다. . . . 마리아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쉬운 수단이다.
카리스마 1998년 8월호는 천주교인들이 마리아에 관해 신봉하는 네 개의 공식적 교의들을 열거한다: 1)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다. 2) 마리아는 그의 평생 처녀로 계셨다. 3) 마리아는 죄 없이 출생하셨다. 4) 마리아는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나 성경은 마리아를 그렇게 높이지 않는다. 성경은 그 여자를, 복되지만 구주를 필요로 하는 죄인으로 제시한다(눅 1:47).
교황은 '전체 교회'를 마리아에게 맡김
2001년 6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체 교회'를 마리아의 중보에 맡겼고 "세계의 평화와 정의의 기대들을 그의 손에 두었다." 그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 교황은 마리아가 작고한 교황 요한 23세를 그의 지상 여행에서 "보호하고 동행하였다"고 말함으로써 교황 요한 23세의 마리아 숭배를 칭찬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말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성령의 장막이신 분과의 우리의 관계를 깊게 하자. 그리고 새로운 열심을 받아,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간구하자." 이 사람이 바로 빌리 그레이엄과 잭 반 임페와 빌 브라잇과 척 콜슨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에게 찬사를 받은 그 교황이다.
[이방 종교들에 대한 태도]
교황은 회교도들이 같은 신을 섬긴다고 말함
1985년 모로코 방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메카를 향하는 회교도 순례자들에게 "우리는 같은 하나님,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고 말했다. 지미 카터와 다른 이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회교도들의 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시다. 회교도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사역을 부정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분께 경배한다. 회교도들은 유일신 알라에게 경배한다고 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 우상이다(사 44:8; 43:10).
교황이 이슬람교 경전인 코오란에 입맞춤
천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슬람교인들과 유대교인들과 기타 비기독교인들이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공로를 믿는 구원적 믿음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거듭거듭 반복해 말했다. 교황은 이슬람교 경전 코오란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는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본다. 1999년 5월 바티칸에서 3명의 이슬람교인들과의 면담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코오란에 절하고 그것에 입맞추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고유제에서 절함
한국 천주교회 김수환 추기경은 2000년 5월 24일 서울 수유리 심산 김창숙 선생 묘소에서 제13회 심산상 수상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를 올릴 때 두 번 큰 절을 했다. 그는 "심산 선생은 민족의 스승과 같은 분"이라며 "돌아가신 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큰 절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회는 1939년 제사 금령을 철회한 뒤 제례를 허용하고 있지만, 추기경이 공식석상에서 절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20에서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말했다. 천주교회 추기경의 고유제 제사와 큰 절은 천주교회가 얼마나 성경 교훈에서 이탈했는가를 보여준다. 천주교회는 참 기독교가 아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가?
요한 바오로 2세는 유대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기타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수년 동안 말해왔다. 2001년 9월, 교황은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연합하기를 요청하며 말하기를, "나는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를 요청한다. 우리 모두는 그의 자녀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천주교회가 '진정한 이슬람교인'에 대하여 오직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 신앙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는 2000년 12월에는 심지어 말하기를, 불신자들이 의로운 삶을 산다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교황의 아싯시 평화 기도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1월 24일 이태리 아싯시에서의 역사상 가장 큰 '기독교' 모임에서 천주교인들, 침례교인들, 루터교인들, 궤이커교인들, 메노나이트교인들, 및 헬라 정교인들, 그리고 유대교인들, 이슬람교인들, 힌두교인들, 시크교인들, 불교인들, 신도교인들, 유교인들 및 부족 원시종교인들을 포함하는 11개의 기타 종교 단체들을 함께 모았다. 약 200명이 순례의 행진을 했고 대화를 위한 요청과, 경제적으로 더 정의로운 [공산주의적] 세계를 창조할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교황은 "인간은 어떤 종교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인간에 대해 폭력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류의 종교간 연합기도회를 인정하실까? 참된 세계 평화가 이런 종교간 연합의 노력으로 올까? 또 과연 평화를 노래하면서 합법적 혹은 정당방위적 전쟁을 부정하는 반전주의가 옳은 일일까?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부정적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도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며,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은 종교적 색깔을 띨 필요가 없다. 종교 연합적 노력은 오히려 종교다원주의 혹은 혼합주의의 악영향을 가질 뿐이다.
[기타 교리들]
천주교회는 여전히 교황의 권위를 주장함
교황청은, 최근 '도미누스 예수스'라는 문서에서 천주교회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교황들]은 예수께로부터 교회를 다스리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선언하였다. 또 아무도 "[천주]교회의 전통과 교훈권 밖에서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주교들이 성경을 해석할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바티칸은 하나님의 권위를 그 자신의 권위로 대치시킨다.
천주교회 교황의 구원관
2000년 12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의로운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은 비록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천주교회를 믿지 않을지라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은 우리에게 팔복에 일치하게 사는 자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마음이 청결한 자들과, 생활의 고난을 사랑으로 견디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가르친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이 선한 한 천국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예수께서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요 14:6) 진리와 모순되는 잘못된 복음이다.
가장 위대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의 불신앙
많은 사람들은 천주교 신부 칼 라너(Karl Rahner)를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이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삼위일체와 그의 그리스도는 성경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다른 교리들도 부정했고 예수님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교황은 유신적 진화론을 받아들임
로마 천주교회는 더 이상 창세기의 창조 기사의 역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황이 추천했던 카톨릭 교회의 새 요리문답은 자유주의 성경 비평가들의 파괴적 이론들의 일부를 받아들인다. 교황은 오래 전부터 유신론적(有神論的) 진화론을 받아들여 왔다. 유신론적(有神論的) 진화론이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진화(進化)의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견해이다. 그것은 창조론도 진화론도 아닌 괴이한 잡종이다.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결코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의 증거대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다.
교황은 지옥이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말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옥은 실재(實在)이며 영원한 저주란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형벌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지옥이란 외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형벌이 아니고, 사람들이 이 생에서 채택한 태도들과 행위들로부터 결과하는 상태이다"라고 했다. 그는 덧붙여 "지옥은 존재한다. [그러나] 장소로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 중 어떤 점은 빌리 그레이엄의 견해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과 고통의 두려운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구원과, 그의 아들에 의해 준비된 은혜와 긍휼의 제공을 거절하는 자들을 위한 형벌로서 부과하신다고 가르친다.
지옥은 장소가 아닌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1월 31일자는 바티칸 교황청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한 예수회 잡지에서 "지옥이란 '장소'가 아니고 '상태' 즉 사람이 하나님의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존재의 상태'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의 청중에게 "지옥은 장소가 아니고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이 그리고 명확히 분리시키는 자들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지옥이 "하나님에 의해 외부적으로 부과되는 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을 떠나 살겠다는 회개치 않는 죄인의 선택의 자연적 결과라고 말했다.
교황은 거짓 교사들과 그 교훈들을 포용함
크리스챤 뉴스지에 의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를 거절한다는 것을 종종 말했다. 그러나 그 교리는 성경적 교리이다. 또한 교황은 유대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과, 부두교인들(voodooists)을 포함한 모든 비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적 신앙이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진화론이 성경과 반대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과 부활을 포함하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많은 천주교 신학자들과 주교들에 대해 어떤 징계도 하지 않았다. 이 교황의 재임 기간 동안, 크리스챤 뉴스지는 천주교회 내에서 포용되는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해 종종 증거 자료를 제시하였다. 또 교황은 신부로 봉직하는 많은 동성애자들을 제거하는 아무런 실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 잡지들과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를 높이 칭찬하였다.
[윤리적 문제들]
동성애
데이빗 클라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도덕적 타락의 정신이 기독교의 배교적 분자[교회 혹은 단체] 전체에 걸쳐서 명백함을 본다. 그것은, 강요된 악한 '독신생활'을 가진 로마 천주교회에서 항상 명백하였다. 로마 천주교회의 역사는 소돔과 고모라의 연대기의 어떤 것과 같다. 심지어 다수의 교황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고, 셀 수 없이 많은 카톨릭 신부들이 동성애에 빠졌다. 심지어 로마 천주교의 역사들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은 '모교회'의 도덕적 실패에 관하여 보통 덜 솔직하다. 널리 퍼진 타락은 오늘 시대에까지 계속된다.
미국의 천주교회는 동성애 신부들에 대항해 승소한 소송 사건들 때문에 벌금으로 수억 달러를 지불하였다. 1989년 11월 13일자 타임(Time)지는 '동성애 성직자에 대한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 그 글은 미국에서만 약 10,000명의 천주교 동성애 신부들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호주에서는, 최근 천주교 신부들이 어린 아이들과 홀로 있는 것을 금지하는 한 행위 규정이 추천되었다. 그곳의 천주교회는 신부들이 수백명의 어린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였음을 시인하였다. 뉴 사우스 웨일즈주에서 발행된 올해의 한 보고서는 '성직자' 가운데서의 동성애 문제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 보고서는 말하기를, 많은 신부들은 '그들의 독신 서약이 단지 이성적(異性的) 성관계에 관한 것이고 소년들이나 청년기의 남자들과의 단정치 않은[음란한] 행위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년들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는 이해하지 않았다! 카톨릭 신부들 가운데서의 도덕적 타락의 예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천주교회는 성 문제 사건으로 10억 달러를 씀
복음 전파(Proclaiming the Gospel)지에 의하면, 1년 남짓한 동안 3차례나, 성 문제로 천주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해임되었고 천주교 미국 관구는 피해자들에게 약 10억 달러를 지불하였다. 1993년에 미국 뉴멕시코주의 산타 페 대주교와 1998년 오스트리아의 추기경이 그러했다. 그리고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로자의 주교는 지난 10년 동안 성적 부정행위 때문에 고위직을 떠난 여덟번째 사람이 되었다.
천주교 성직자의 절반이 '동성연애자'이다?
크리스챤 뉴스 1999년 9월 27일자는 다음과 같이 천주교 출판물을 인용한다:
신부들을 상담하는, 산타 클래러 대학교의 심리학 부교수인 토마스 플랜트는, 비록 '그들이 다 활동적이지는 않다 할지라도' 천주교회 성직자의 50퍼센트가 남성 동성애자라고 주장한다. 아마, 이것은 과장된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신부들의 스캔들의 수효가 계속 증가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미국 안에 있는 가장 자유주의적 신학교들의 일부가 동성애의 온상이라고 오래 전부터 소문이 들려왔던 것은 더 이상 은밀한 일이 아니다.
천주교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매우 높다
미국에서 천주교 신부들은 에이즈(AIDS)에 관계된 질병들로 사망하는 비율이 일반 사람들보다 4배나 높으며 그 원인은 그들의 사망진단서에서 흔히 감추어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백명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지금 에이즈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고 있다. 에이즈를 가진 대부분의 신부들은 동성애 관계를 통해 그 병에 걸렸다. 천주교회는 신부들의 이성 결혼을 금한다. 그러나 '혼인을 금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과 관계된다(딤전 4:1-3). 고린도전서 7:1-9에서 바울은 음행을 피하기 위해 사람이 스스로 절제할 수 없다면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다.
천주교는 신부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숨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2000년 2월 14일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1980년 중반 이후, 미국 내의 천주교 신부들 중의 수백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고 보도되었으며 그것은 일반인들의 에이즈 사망에 4배에 해당한다. . . 지난 주 캔사스 시티 스타지에 의해 널리 알려진 그 보도는 그 문제를 따져보기보다 덮는데 더 여념이 없는 교회성직단에게서 불안한 정신을 일으켰다.
로마 천주교회에서 성 문제를 연구하며 30년 이상을 보낸 이전의 신부 A. W. 리차드 사이프는 전국적으로 약 750명의 신부들이 그러한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에이즈 관련 사망 비율의 8배를 의미한다. 미국 뉴저지주 정신과 의사이며 에이즈 전문가인 죠셉 배로운은 죽은 미국 신부들의 수를 1,000명으로 보는데, 그것은 일반인들의 비율보다 거의 11배에 해당한다.
수녀들에 대한 신부들의 성적 학대
바티칸 당국은 어떤 신부들, 주로 아프리카의 신부들이 창녀들로부터의 에이즈 감염을 두려워하여 정규적으로 수녀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주장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확인하였다. 어떤 경우들에서는, 신부들이 수녀들을 임신케 하고 난 다음 강제로 낙태케 하였다고 한다. 한 수녀는 주장하기를, 한 수녀원장은 지역 주교에게 그의 수녀들 중 29명이 임신하였다고 항의하였을 때, 그 주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를 교체시켰다고 했다. "결혼을 금하는"(딤전 4:3) 로마 천주교회의 비성경적 가르침이 그런 성적 학대를 가져온다.
천주교회 대주교가 인정함
미국 위스컨신주 밀워키의 천주교회 대주교인 렘버트 위크랜드는 2002년 5월 23일 인정하기를, 신부가 1979년과 1980년에 자기에게 반복해서 성적 접근을 했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을 조용하게 하기 위해 그가 45만불을 지불했다고 했다. 위크랜드는 1977년 이후 대주교로 있어왔다. 4년 전 마쿡스를 조용하게 하기 위해 지불했던 돈은 교회 기금에서 나왔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2002년 6월 3일자는 위크랜드와 마쿡스의 관계는 아마 "오랫 동안 동성애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보도한다. 미국 천주교회는 성적 학대 사건들로 적어도 8600만불을 지불하였지만, 이제 아마 수십억불의 소송료와 손해 배상을 내야 할 법정소송들의 쇄도를 직면하고 있다.
폭력적 동성연애자들
천주교회 내의 어린이 성 폭력의 가증한 범죄들을 저지르는 자들은, '어린이에 대한 이상 성욕을 가진 신부들'이 아니고 신부들로 가장한 강압적 동성애자들이다. 천주교 사제직이 제2바티칸 회의 이후 '남자 동성애 직업'처럼 되었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타임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그 기독교파의 최고위 직원들은 [미성년자들을 보호함에 있어서] 세속 형법이 가지는 것보다 더 낮은 표준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수만명의 수녀들이 성적 학대를 당했는가?
샌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취 2003년 1월 5일자의 한 논설에 의하면, 1966년에 완성되었으나 의도적으로 미발표된 미국의 한 설문지는 적어도 3만 4천명의 천주교회 수녀들 즉 미국 내의 모든 수녀들의 약 40퍼센트가 어떤 형태의 성적 상처를 입었다고 추산한다. 그 보고서는 그러한 성적 학대나 착취나 괴롭힘의 일부가 교회 내의 신부들과 동료 수녀들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천주교회는 신부들과 미성년자들이 관련된 오래된 성적 학대 추문으로 이미 요동되었다.
천주교 신부들의 동성애 경향
로마 천주교회와 대다수의 개신교회들은 이제 실제적 동성애자들을 포함하여 동성애자들이 성직자로 일하는 것을 허용한다. 천주교 당국은 이제 천주교 신학생들과 신부들의 약 절반이 동성애자라고 말한다. 미국의 로마 천주교회에서 신부들의 성 스캔달은 1960년대에 신학교들이 동성애자들을 처음으로 용납하기 전에는 거의 없었다. 신부들 중 동성애자들은 이제 30∼60퍼센트로 추산된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
테레사 수녀는 기독교인인가?
천주교의 테레사 수녀는 1996년 9월 별세하였다. 그는 인도의 극빈자들을 섬기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였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고 믿는 보편구원론자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신에게든지 당신이 평안하게 느끼는 신에게 기도하시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그들 각 사람은 고통 당하는 자로 위장된 예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를 강하게 반대하였으나, "우리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멸할 때 하나님을 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상들은 비성경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충실한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 그레이엄이나 촬스 콜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아낌 없이 칭송하였다. 촬스 콜슨은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리를 혼돈시키는 잘못된 말이다. 천주교인들은 복음 진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들이요 마리아를 그릇되이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다.
테레사 수녀와 선행
선행은 좋다. 그러나 선행은 사탄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위조품의 하나일 수 있다. 제임스 답슨 박사는 고(故) 테레사 수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그의 생애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잭 반 임페는 이 '상냥한 40킬로그램 숙녀'가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꾸짖는다. 그러나 빌 잭슨은 바르게 논평한다:
나는 어떤 개인의 구원을 판단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 자신의 입술로부터 그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어두움을 나타내는 말들이 나온다. 그는 누구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영혼이 연옥을 떠나기를 기도했다. 그는 성찬떡에 대한 사제의 축복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소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연히 교황에게 간청하기를 마리아를 '그리스도인의 협력 구속자(Co-Redeemer), 협력 중보자(Co- Mediatrix) 및 보혜사(Advocate)'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천주교 세계]
이태리의 천주교인들은 마술과 신앙을 혼합함
인구의 84퍼센트가 천주교인인 이태리에는 점쟁이들, 운수 보는 자들, 손금 보는 자들, 전문적으로 꿈 꾸는 자들, 점성술자들, 무당들과 마술사들이 번창한다. 4만명의 마술사들과 신비가들의 거대한 지하 공동체는 일년의 1억불의 수입을 자랑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천주교인들이지만, 그들은 또한 윤회(輪廻)를 믿고 무당들을 방문하고 '악한 눈'의 불운의 마술사를 찾는다. 천주교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 마술의 혼잡을 비난한다.
천주교 은사주의자들과 강신술(降神術)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로마 천주교 나라이지만, 실상은 강신술의 나라이다. 그 나라는, 2억명의 천주교인들이 있다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제일의 강신술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브라질 사람들의 3분의 2는 강신술자들(Spiritualists)이거나 그와 가까운 자들이라고 추정된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영의 생명과 영의 숭배에 관한 조직적인 종파적 집회들을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은사주의자들이다.
교황은 기독교 일치를 다시 요청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와 바울에게 바쳐진 교회 절기를 구별하면서 2000년 6월 29일 24명의 새 메트로폴리탄 대주교들에게 영대(領帶, pallium)를 수여하는 성 베드로 성당 계단에서 가진 초저녁 미사에서, 새 천년이 시작되는 때에 기독교 일치가 "더욱 더 긴급하다"고 말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에큐메니칼 총대주교 바돌로메오 1세가 관례적으로 보낸 헬라정교회 고위 성직자 사절단에게 문안하면서 일치를 위한 그의 요청을 다시 새롭게 하였다. 그 사절단 대표는 헬리우폴리스와 데이라의 메트로폴리탄 아다나시오스이었다.
이단종파들/ 이방종교들
이단종파들의 선교 활동이 활발함
캘버리 컨텐더지에 의하면, 이단종파인 몰몬교는 5만 5천명의 전임 선교사들을 가지고 있고, 여호와의 증인은 약 27만명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회의 선교사들은 다 합해도 단지 18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안식교]
안식교가 엘렌 화이트를 재확인함
안식교는 2000년 7월 총회에서 엘렌 G. 화이트의 예언들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총대들은 "엘렌 G. 화이트의 사역을 통한 예언의 은사에 관해 모든 교인들 특히 청년들에게 알리려는 노력들을 강화시키기로" 결의하였다. 안식교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안식교를 포용하고 있다.
[몰몬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몰몬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기독교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기독교가 아니다. 몰몬교도들은 다른 예수, 다른 영, 그리고 다른 복음을 믿는다. 그 창시자이며 자칭 선지자이었던 죠셉 스미스는 잘못된 신비주의에 관여되어 있었다. 그가 받았다고 주장했던 112가지의 계시들 중에, 88가지는 재정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몰몬교는 성경 말씀을 사용하지만 다른 의미들로 사용하기 때문에 혼란을 주고 있다. 몰몬경에 언급된 어떤 몰몬 도시들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떤 히브리어 비문도 인디안 폐허들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몰몬경의 어떤 고대 사본들도 발견된 적이 없다. 역사적 사실들은 몰몬경과 충돌한다. 이전에 몰몬교도이었던 한 사람은 일부다처(一夫多妻) 제도가 유타주와 서부에서 실제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몰몬교 제국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몰몬교가 다음 세대의 세계종교일 것이라고 한다. 55,000명의 선교사들이 160개국에서 사역하고 있고 1981년 이후 배갑절이 된 것과 더불어, 몰몬교는 지금 1000만명 이상의 교인수를 가지고 있다. 각 몰몬교 선교사는 평균 매년 약 6명씩 몰몬교로 인도하고 있다. 몰몬교는 한 해에 약 59억불의 수입을 내고 300억불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 몰몬교는 많은 성전들과 집회소들, 16개의 라디오 방송국들, 한 개의 텔레비젼 방송국, 일간(日刊) 솔트 레이크시 신문, 한 개의 서적회사, 8억 5천 8백만불의 가치가 있는 올란도 부근의 목장, 그리고 유타주에서 가장 큰 백화점 체인을 소유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몰몬교를 미국 내에서 로마 천주교회 외에 가장 큰 종교적-경제적 기업이 되게 한다.
몰몬경은 사기(詐欺)
크리스챤 뉴스 2003년 7월 21일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몰몬경은 기독교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허구(虛構)에 근거하며 거짓말하는 간음자 죠셉 스미스에 의해 조작되었다. 몰몬교는 삼위일체의 교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안에서 믿음으로만 받는 칭의(稱義) 같은 기독교 기본 교리들을 거부한다. 그것은 행위의 의(義)를 전하는 이단종파이다." 몰몬경은 허구와 모순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슬람교 다음으로 몰몬교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다.
[위트니스 리(Witness Lee)]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1997년에 죽은 위트니스 리는 지방교회(Local Church) 운동을 인도했다. 워치만 협회의 크레이그 브랜취는 말하기를, 리(Lee)는 특히 "하나님과 사람을 섞는 신비적 교리"에 있어서 그의 선생 워치만 니를 극단적으로 따랐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15만명의 교인을 가진 지방교회는 비(非)전통적인 삼위일체 견해를 가르치고, 자신을 어떤 도시에서의 유일한 참 교회라고 선전하고, 또 세례가 일정한 형식을 따라야 하고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지방교회에 대하여
지방교회는 중국인 윗트니스 리가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시작한 종파로서 '회복교회'라고도 한다. 윗트니스 리(Witness Lee)는 중국인 영적 지도자이었던 워치만 니(Watchman Nee)의 주요 동역자이었다. 그러나 그는 후에 그의 사상에서 떠나 독자적인 파를 형성하였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이 1966년 워치만 니의 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명, 권익원) 씨의 지도하에 시작되었으나 1980년대부터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다.
지방교회의 교리상의 문제점 하나는 신인합일주의이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사람에게 넣어서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이며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는 생각이다. 또 윗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와 같이 인간이 영, 혼, 육의 세 요소로 구성되었는 소위 삼분설을 취한다. 또 인간은 육적으로만 타락하였고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특별히 지방교회는 기존 교회들에 대해 "천주교는 마귀적이며 개신교는 그리스도가 없다"고 말하며 기성교회를 타락해서 죽은 교회요 바벨론 혹은 음녀라고 간주하고 기성교회의 목사들과 예배 등을 부정한다. 이러한 사상은 권신찬의 구원파 등에 영향을 주었다. 199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제76회 총회는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뉴에이지 운동]
뉴에지 운동
뉴에지 운동은 수많은 비기독교 신념들의 잡동사니이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적 내용이 있다: ① 모든 것이 신이다. ② 인간은 신적이다. ③ 인간의 근본적 결함은 자신의 신적 가능성에 대한 무지이다. ④ 인간의 최대의 필요는 개인적 변형이다. ⑤ 모든 종교는 참되다. ⑥ 인간의 완전 해방을 위하여 지구 전체의 종교적 연합이 있어야 한다. ⑦ 해방은 여성 신을 통해 올 것이다. ⑧ 도덕은 상대적이다. ⑨ 기독교 성경의 하나님은 남성적 구성물이며 인간적 고안물이다.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Freemasonry)은 거짓 종교
영국교회의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는 자신이 "프리메이슨 사상과 기독교 신앙이 양립할지에 대해 실제로 불안"을 품고 있으며 프리메이슨을 고위 성직에 임명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요가 있자, 그는 "걱정"(distress)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였다. 그러나 호주의 시드니 성공회 대회는 그 교단 산하의 교인들에게 프리메이슨과 교회 중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청했고 회중들에게 프리메이슨이 그들의 시설물들을 사용하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대회는 프리메이슨이 "거짓된 종교적, 영적 신념들의 체계를 가르치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종교연합]
종교연합이 오고 있다!
감독교회 감독 윌리엄 스윙은 1993년 이후 종교연합(United Religions) 발기인회의 창립을 위해 주요 촉매자 역할을 했다. 여러 나라들에서 많은 모임들이 있은 후, 종교연합 발기인회의 헌장 초안이 수정되었고 널리 회람되었다. 위스컨신 리포트 1999년 2월 11일자는 국제연합(UN)의 포용적 '영적 동반자'인 종교연합(UR)을 위한 이 꿈에 대한 한 상태 보고를 하였다. 종교연합 발기인회 헌장 초안은 지금부터 2000년 6월까지 계속 발전되고 수정될 것이며, 그 때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서명하고 종교연합을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그런 배교적 적그리스도적 세계교회에 결코 참여할 수도 없고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종교연합 발기인 헌장이 서명됨
2000년 6월 26일 세계 44개 나라들과 39개 종교들로부터 온 수백명의 대표자들은 종교연합(United Religions) 발기인회 헌장에 서명하기 위해 미국 피츠버그에서 모였다. 이것은 국제연합(UN)에 상응하는 것으로 연합된 세계종교를 위한 시작과 기초이었다. 종교연합 발기인회(URI) 헌장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온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과 영적 표현들과 토착적 전통들의 사람들인 우리들은 이로써 영속적인 매일의 종교간 협력을 증진시키고 종교적 동기의 폭력을 종식시키고 지구와 모든 생명체들을 위한 평화와 정의와 치료의 문화들을 창조하기 위해 종교연합 발기인회를 설립한다." 종교연합 발기인회(URI)는 배아 상태의 적그리스도의 전세계 종교이지 않겠는가?
윤리 문제, 질병, 세속 문화
[술/ 담배/ 마약]
대학생의 살해범
미국의 1,200만 대학생들이 한 주간에 마시는 맥주의 양은 약 2,270만 리터이며 과도한 음주(飮酒)가 연간 수천의 학생 사망 사건들과 관계된다고 한다. 대학 행정 당국자들의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학사 문제들의 38퍼센트는 술과 관련이 있고, 그 중 29퍼센트가 낙제이다. 그 조사는 말하기를, 술은 독(毒), 흔히 즐겁지만 무서운 독이라고 했다. 술은 싸움을 증가시키고, 판단을 손상시키고, 폭력 범죄들의 25퍼센트와 야만적 행동들의 약 60퍼센트에 관계된다.
술독에 빠진 대학생들
한국대학생 알코올문제 예방협회(회장 최현숙 상지대교수)는 최근 전국 14개 대학학생 2,496명을 대상으로 '대학생의 음주 문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학생의 94.3퍼센트, 여학생의 91.4퍼센트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미국 대학생의 음주 비율(86퍼센트)은 물론 우리 나라 성인 음주 비율(63.1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고 한다.
술, 마약, 담배
미국에서 매일, 8,000명의 젊은이들은 처음으로 불법적 마약을 시도하고, 18세 이하의 3,300명은 매일 담배를 피우는 자가 될 것이다. 평균, 아주 신실한 기독교 청소년들의 8퍼센트는 성인이 되기 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며, 13퍼센트는 마리화나를 시도하며, 19퍼센트는 술을 시도할 것이다. 그 숫자는 교회에 자주 출석하지 않는 자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높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전 세계에서 400여만명이 흡연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보고하였다. 그것은 8초에 한 명씩 죽는 것이 된다.
[낙태]
피임약 RU-486은 '아기 독약'임
미국 식품의약협회는 2000년 9월 28일 RU-486 피임약을 승인하였다. 이것은 낙태를 더 부주의하고 일반적이게 만들 것이다. 미국 뉴저지의 한 국회의원은 말하기를, "RU-486은 단지 아기들에게 독약일 뿐 아니라, 그것을 먹는 엄마들에게 독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그것이 연장된 출혈과 심각한 경련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낙태는 흑인들 가운데서 주된 사망의 원인
매일 천 명 이상의 흑인 아기들이 낙태로 죽임을 당하며, 그것은 흑인들을 위한 주된 사망의 원인이 된다. 3건의 낙태 수술 중의 하나는 흑인 여자에게 행해져서 흑인 아이를 죽인다. 미국 역사에서 일찌기 잘못된 형이 가해졌던 것보다 더 많은 흑인들이 전형적인 3일 기간에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흑인들은 낙태 찬성 입법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위해 많이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낙태약 RU-486은 산모에도 위험함
2년 전 미국 식품 의약품국이 승인한 이래, 두 명의 여성이 미페프리스톤이라고 불리우는 피임약 혹은 정확히 말해 낙태약인 RU-486를 복용한 후에 죽었다. 한 낙태반대자는 "우리는 이 약이 가게에서 제거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아주 빈번히 태아를 죽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혈액의 응고를 지연시키고 심각한 경련을 일으킨다. RU-486은 단지 '아기 독약'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복용하는 어머니들에게 독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안락사(安樂死)]
화란의 안락사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1997년 9월호에 의하면, 화란은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부터 만성적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 신체적 질병을 위한 안락사로부터 심리적 고통을 위한 안락사로, 그리고 자발적 안락사로부터 비자발적 안락사로 움직여왔다. 일단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 죽이는 것이 허용되면, 의사들이 보다 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들로 그 선을 넘는 것이 더 쉽다. 환자의 '죽을 권리'가 교묘하게 환자의 '죽을 의무'와 의사의 '죽일 면허증'이 된다. '죽음의 의사'(Dr. Death)라는 별명이 있는 잭 케보키안(Jack Kevorkian)은 적어도 45건의 '자살'을 도왔다. 그 중 많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아픈 상태가 아니었고 몇 경우는 질병의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매스컴은 케보키안을 의사라고 부름으로써 그의 행위들을 정당화하지만, 그의 의사면허증이 1991년에 중지되었음을 말하지 않는다.
화란에서 아프지 말라
의료 윤리지(Journal of Medical Ethics) 1999년 2월호의 한 보고서는 화란에서 남의 도움을 받은 자살의 다섯 사건 중 하나는 환자의 동의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조사는 또한 1995년에 화란에서의 안락사(安樂死)의 거의 3분의 2가 법이 요구하는 대로 보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의사들은 환자를 죽이는 위험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
화란은 안락사를 더 완화함
화란은 수십년 동안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를 허용하였으나 이제 새 법은 화란의 의사들로 하여금 그것을 합법적으로 행하게 한다. 그것은 단지 임종적 질병의 경우에서가 아니고, "끝이 없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경우들에서 안락사, 혹은 의사의 도움을 얻는 자살을 허용한다. 그 법은 또한 부모가 12세부터 16세 사이의 자녀들을 위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편, 16세와 17세는 부모와 상의하는 한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부모도, 의사도, 다른 누구도, 또 자기 스스로도 죽일 권한이 없다.
안락사: 좋은 의도, 나쁜 결과
화란에서 30년간 안락사가 진행된 상황을 보라. 화란 의사들은 "안락사를 요청하는 죽어가는 사람들, 그것을 요청하는 만성 질병자들, 그것을 요청하는 장애인들, 그것을 요청하는 빈민자들, 그 부모가 그것을 요청하는 장애 유아들에게 죽이는 약을 주사한다." 그 과정은 자원함을 넘어서서 "요청 혹은 동의 없이 목숨을 끝내는 것"으로 나아갔다.
[인간 복제]
인간 복제를 반대하라
여섯 개 가량의 회사들이 현재 여러 동물들의 복제를 하고 있다. 인간 배아를 복제하는 과학은 현재 비교적 바로 앞에 있다. 과학은 이 일에 있어서 위험한 영역에 있다. 인간 복제는 단지 '하나님 놀이를 하는 것'(playing God)이 아니고 하나님이 되려 하는 것이다.
인간 복제술은 살인을 포함함
생명공학의 발달로, 생명 보호는 인간 복제와 배아 파괴적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반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복제에 의해 만들어진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인간 생명을 취하는 것과 동등한 일이다. "인간 복제는 생명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공격이요 생명의 주인이신 그에 대한 모독이다. 인간 복제는 그것들의 줄기세포들을 위해 그것들을 파괴하기 위한 배아들의 복제는 그 공포를 증가시킨다."
[음란]
청소년들의 성 의식 문제
기독교연합신문 2000년 2월 6일자(9쪽)는 MBC가 1999년 10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전국의 중고생 1,5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실은 '2000 MBC 청소년 백서'의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중고생의 5.3%가 성경험이 있으며 84%가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응답했다.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들 가운데 첫경험의 시기에 대해 16-18세가 59.5%, 13-15세가 34.2%, 12세 이하가 6.3%이었다. 또 성관계의 이유에 관해 강제적인 상황이 아닌 쌍방간의 동의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92.9%이었고 성관계의 대상도 73.4%가 이성 친구이었다.
비록 탈선하는 학생들이 극소수이긴 하지만, 성관계에 대한 청소년들의 의식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성경은 결혼 관계 이외의 성행위는 음행이라고 규정한다. 이성 간에 서로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가져도 무방한 것이 아니다. 남녀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먼저 결혼해야 한다. 결혼할 수 없는 관계라면 결코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직 결혼 연령에 이르지 않은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은 이성 교제에 대해 극히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성적 자극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피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 개인 컴퓨터나 핸드폰, 비디오방과 PC방을 통한 음란물 접속과 음란한 채팅을 삼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개인과 사회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매매춘 24조원의 나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우리 나라에서 한 해 성매매 대금으로 오간 돈이 24조원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국내 총생산(GDP)의 4.1%를 차지한다고 한다. 한국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다!
청소년 성매매 위험 수위
하이패밀리(사랑의 가정 연구소)가 발간한 성매매 실태에 대한 보고 자료집에 의하면, 성매매로 오가는 돈이 연간 24조원에 이르고, 매춘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만 최소 33만명, 경제규모로 따지면 성산업이 우리나라 농림과 어업을 합한 규모와 맞먹는 정도다. 유사 매매춘 업소나 윤락알선업소 등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클 것이다. 원조교제를 한 혐의로 신상이 공개된 남성들과 성매수 대상청소년 414명의 진술서를 분석, 지난해 12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성매수 청소년의 나이는 15세가 21.7%, 16세가 25.4%, 17세 22%로서 중고등학생 시기가 가장 많았으며 13세 이하도 3.9%나 되었다. 성매수 대상 청소년의 가족관계는 친부모가정도 54.2%나 되었고 성매매시 비가출 상태도 46.4%로서 청소년 성매매는 소위 결손 가정이나 가출 상태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또 성매매의 이유로서 용돈이나 유흥비 마련이 51.5%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성매수 남성의 연령은 20대가 30.1%, 30대가 42.2%, 40대가 15.9% 등이었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 성매매는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 사회가 하루 속히 이런 부도덕한 풍조를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하나님께서 내리실 큰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음란물]
피해자 없는 범죄인가?
미국에서 음란물은 연간 100억불의 산업이며 조직적 범죄로 인한 세 번째로 큰 세입의 원천이다. 그것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이용하고 학대하며 남성들을 탐닉케 한다. 유죄 판결을 받은 강간범들 가운데 놀랍게도 86퍼센트가 음란물을 정규적으로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인터넷 음란물이 심각함
인터넷 온라인상에 7천 5백만명의 성인들과 2천 5백만명의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 음란물은 굉장한 관객을 가진 거대한 사업이다. 현재 인터넷 상에는 1백만개 이상의 쉽게 찾을 수 있는 음란물 웹 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음란물 중독은 특히 남자들과 청년들 가운데 점점 더 커지는 문제이며, '차단' 소프트웨어는 단지 부분적 해결책일 뿐이다. 욕망이나 유혹의 힘이 그 근원이다.
인터넷 음란물 문제
연구자들은 말하기를, 미국에서 적어도 20만명이 인터넷 음란물에 중독되어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으며 수백만명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이 그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현재, 쉽게 찾을 수 있는 음란물 웹사이트가 백만개 이상이 있다. 7만 2천개 내지 10만개나 접근 가능한 성인 오락사이트들은 인터넷상에서 세 번째로 큰 판매 분야이다. 매일 올라오는 3,900개의 새로운 인터넷 사이트들 가운데, 적어도 85개는 음란물을 판매한다고 한다.
한국어 유해사이트 세계 2위
음란, 도박, 자살 등 전세계 인터넷 유해 정보사이트 가운데는 한글로 만들어진 사이트가 영어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KT는 27일 자사 통신망 관리 지원단을 통해 각종 유해사이트 현황을 집계한 결과, 67만 5천여개에 달하는 유해사이트 가운데 한글로 된 사이트가 9.5%(6만 4천여개)를 차지, 영어에 이어 2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일본어 사이트는 2.2%(1만 5천여개), 독일어는 1.3%, 프랑스어는 0.6% 순이라고 한다. 유해사이트 중 음란사이트는 98.9%(66만 8천여개)라고 한다.
이 통계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영어권 다음으로 인터넷 음란물 보급에 앞장서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영어권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지만, 한국의 음란 사이트는 한글을 사용하는 자들, 주로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음란물 보급의 정도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우리의 많은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심각한 도덕적 문제이며 큰 재앙을 불러올 사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에 적극 대처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가정들은 반드시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화란이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곳인가?
9시 이후의 화란의 텔레비젼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사람들이 보통이다. 주말에는 음란성 영화들이 텔레비젼에 방영된다. 마약류들이 소위 '커피 전문점들'에서 공공연히 소모된다. 동성 결혼이 화란에서는 합법적이다. 안락사가 최근에 합법화 되었다. 낙태는 크게 성행하고 있다. 이혼은 화란인의 60퍼센트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잡지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사진을 겉표지에 싣고 있다. 근친 상간의 사고가 높은 것도 또한 충격적이다. 이 모든 도덕적 부패의 근본에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쇠퇴가 있다.
외설물이 현대 사회의 주된 위협이다
"외설물의 중독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정신적 건강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것은 에이즈(AIDS)와 기타 질병들의 확산의 명백한 원인이다. 외설물은 악이다. 그것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어린이 치한들과 성폭행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외설물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미국은 노골적인 외설물의 밀물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약 2천 5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일주일에 1시간내지 10시간까지 인터넷 음란 사이트들을 방문한다. 모든 인터넷 웹사이트의 방문들의 약 60퍼센트는 성격상 성적(性的)이다." 이러한 진단과 통계는 한국에도 해당될 것이다. 성도들은 외설물들을 끊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인터넷 직통선을 끊어야 한다. 실상, 상당한 필요성이 없는 인터넷 직통선의 개설은 돈 낭비와 시간 낭비이며 그보다 더욱 음란 마귀의 밥이 될 극히 위험한 일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인터넷의 위험에 대해 엄히 교훈하고 그들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자녀들은 사탄이 인터넷을 통해 주는 음란의 독주에 취해 멸망하고 말 것이다.
좋은 질문들
월드(World) 잡지 2000년 11월 11일자 우편함에는 이런 글이 있다. "'크리스챤 '미(美)의 여왕'? 어떻게 그들이 잠옷과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자기 살을 상품처럼 드러내 놓으면서 순결함과 정숙함에 관해 올바른 얼굴로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왜 크리스챤들은 이런 쓰레기를 시청하며 변호하는가?" 우리는 글 쓴이의 지적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음란사이트 아르바이트 성행
유료 '포르노'[음란] 사이트의 '파트너 회원'들이 부업으로 성행위 장면 등이 담긴 배너광고를 유포시키면서 인터넷이 온통 '포르노'판으로 오염되고 있다. 포르노 사이트의 '파트너 회원'을 수사한 서울 동부지청 관계자는 "국내 포르노 사이트는 수백 개 정도지만 10만여명에 달하는 '파트너 회원'들이 무차별적 포르노 광고를 하기 때문에 인터넷과 이메일이 포르노로 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인터넷 사용법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가져도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의 설치를 통해 자녀들이 깨끗하고 건전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선도할 수 있다. 성도들은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 대처해야 한다.
번창하는 외설 산업
미국에서 더러운 외설 산업은 오늘날 연간 100억불의 이익에 접근한다고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약 2만 5천개의 비디오 가게들이 노골적인 음란물을 대여하고 판매한다. 미국은 매주 약 211개 정도의 비율로 새 제목의 노골적인 음란물 비디오를 제작한다고 하니 세계의 선두적 음란물 공장이다.
현대의 음란 문화
"통계는 오늘날 [미국에서] 음란물의 완전한 문화적 승리를 나타낸다. 헐리우드는 매년 400개의 영화를 만들어내지만, 음란물 산업은 매달 700개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음란물은 최소한 일년에 100억달러의 사업이다. 그리고 인터넷 성(性)중독은 더 이상 단지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성인사이트 방문자의 거의 3분의 1이 여성이다."
[동성애]
캐나다, 동성애 배우자 인정
최근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은 동성애 파트너를 '배우자'에 포함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캐나다는 동성애자들을 가족 단위로 확정함
캐나다 대법원은 최근에 두 여자 동성애자들을 가족 단위로 확인했다. 즉 동성애 파트너를 '배우자'에 포함한 것이다. 커네이디언 리바이발리스트 1999년 6월호에서 프랭크 맥클렐란드 박사는 가족 단위의 주 목적은 자녀 출산이라고 강조한다. 동성애자들은 자녀를 출산할 수 없으며 그 특징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없다.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행위가 아니고 주로 후천적으로 배운 행위이다. 동성애적 습관은 비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비본성적이며, 성경의 교리 뿐만 아니라 인간의 관습에 의해서도 정죄를 받는다. '게이'(gay; '쾌활하다'는 뜻으로 남자 동성애자를 가리킴)라는 말은 잘못된 용어이다. 왜냐하면 "남자 동성애자들의 98퍼센트가 절망적이게 불행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큰 거짓말
동성애에 관해 거듭 반복되는 가장 근본적 거짓말은 동성애자들은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동성애가 학교에서 가르쳐짐
미국의 제임스 답슨은 그의 2001년 3월 20일 포커스 언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 전국의 학교들의 동성애화(同性愛化)"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부모들에게 "친(親)동성애적 학교 교과과정을 포함시키려는 최근의 압력"에 대항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그것이 "곧 거의 모든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전국적인 노력"이라고 믿는다.
화란에서의 최초의 동성 '결혼식'
화란의 새로운 동성 결혼법 아래서 두 명의 동성애자는 최초로 결혼하게 될 것이다. 이 새 법은 단지 화란의 부패에 대한 또 하나의 추가적 표시일 뿐이다. 화란은 마약과 매춘과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동성 '결혼'이 이제 그 목록에 첨가되는 것은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동성애 관계의 평균 지속기간
동성애 관계에 관한 화란에서의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동성애 관계는 평균 1년 반 지속한다. 그와 대조하여, 미국에서 이성 결혼자들 가운데서는 처음 결혼들의 67퍼센트는 적어도 10년간 지속한다. 화란의 그 연구는 동성애 관계의 남자들은 평균 그들의 관계 외에 일년에 8명의 상대들을 가진다. 결혼의 중요한 목적의 하나는 자녀 출산과 인류의 존속이지만 동성애 관계는 그런 목적을 완전히 무시한다.
미국의 동성애 경향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시는 2000년 주(州) 법이 동성애 결혼을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2004년] 2월 12일 이후 약 1,700명의 동성짝들이 결혼을 했다. 이와 같이 매사추세츠주도 금년 5월 중에 동성 결혼허가증을 발급할 것이다."
동성애의 사실들
1988년에 미국인들의 74.9퍼센트는 동성간의 성행위는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8년에는 54.6퍼센트만 그렇게 생각했다. 달라스의 소망 대성전은 교인이 3,000명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동성애 교회라고 주장한다. 하비 밀크 고등학교는 최초의 동성애 공립학교로서 뉴욕에서 올 가을에 열 것이다. 평균적 사망 연령에 대해, 동성애 남자는 42세, 에이즈를 가진 동성애 남자는 39세, 이성애 남자는 75세이며, 동성애 여자는 45세, 이성애 여자는 79세라고 한다.
[도박]
건강에 해롭다
제임스 답슨은 2년 동안 '전국 도박의 영향 연구위원회'에 봉사했는데, 결론내리기를, "도박은 생명들을 파멸시키고 가정들을 깨뜨리는 파괴자이다. [많은] 증거는 문제의 병적 도박과 이혼, 어린이 학대, 가정 내의 폭력, 파산, 범행 및 자살 간의 직접적 연관성을 보인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 1,54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런 전문적 기준의 병에 해당한다고 한다.
도박은 자살과 이혼과 가난의 원인임
미국의 도박의 중심지 네바다주는 미국의 50개의 주들 중에서 도박 중독과 자살과 이혼의 비율들이 가장 높다(Life Light). 돈이 우선 순위에 있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삶은 질에 있어서 가장 빈약하다. 가정의 1년 수입이 만불(1,2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1년 수입이 5만불(6,000만원) 이상인 사람들보다 거의 3배나 더 많게 복권에 돈을 건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박이나 투기 같은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질병]
에이즈(AIDS, 후천적 면역결핍증)는 여전히 치명적임
얼마 동안 혼합약이 에이즈의 죽음을 극적으로 감소시켰지만, 지금은 미국의 새 환자들의 수가 매년 4만명에서 정지 상태이다. 에이즈로 인한 죽음들이 1996년부터 1997년에는 42퍼센트가 급격히 줄었지만, 1997년부터 1998년에는 단지 20퍼센트만 줄었다. 새로운 약들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받고 있지만, 약에 대한 저항성과 부수적 결과들 때문에 다른 이들은 투약을 할 수가 없다. 에이즈는 현재 25세부터 44세까지의 흑인들 가운데 사망의 주요한 원인이다.
에이즈(AIDS)로 인한 사망자수
세계 인구의 10퍼센트를 가진 아프리카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세계의 4천만명 중에서 70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레코드(Record)지 1999년 가을호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에이즈(AIDS) 관련 사망자 장례식이 매일 5,500건이나 있다. 올해 560만명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새로이 감염될 것이고, 260만명이 에이즈 병의 결과로 죽을 것이다. 에이즈는 세계적으로 매 20건의 죽음들 가운데 하나의 원인이 된다.
에이즈 전염병이 아프리카 대륙을 강타함
1999년에 에이즈(AIDS)는 아프리카의 모든 내전들로 인해 사망한 숫자보다 10배나 많은 22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 감으로써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최고의 살인자가 되었다. 에이즈는 세계적으로 네 번째로 중요한 사망 원인이다. 개발도상국가들에서, 그것은 성인들의 죽음의 가장 빠른 증가 원인이며 이것은 네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잠비아의 루사카에서는 250명의 학생들 중 절반이 에이즈 고아들이다.
아프리카의 에이즈로 인한 고아들
에이즈(AIDS)로 인한 사망은 1,350만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고아로 만들었다. 150만명의 미국인들에 비해, 2,2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어 있다. 남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절반이 감염되어 있다. 에이즈 질병은 대체로 죄악된 생활 방식에 기인한 예방할 수 있는 비극이다. 에이즈는 세계적인 대재앙이 되고 있다.
에이즈는 현대적 재앙
전 세계 에이즈(AIDS) 감염자는 현재 약 4,000만(3,400만∼4,6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유엔 에이즈 퇴치계획(UNAIDS)이 2003년 11월 25일 밝혔다. 2003년 하루 평균 14,000명이 에이즈에 새로 감염되고 있으며 올해 신규 감염자 500만명 중 성인이 420만명, 15세 이하의 어린이는 70만명이며, 올해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300만명 중에는 성인이 250만명, 어린이가 50만명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역별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이 전체 감염자 2,500만∼2,820만명, 사망자 220만∼240만명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또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이 에이즈 감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2002년 말 현재 에이즈에 감염된 젊은 여성 비중이 1년 전 24%에서 33%로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우리는 에이즈가 현대 사회의 음란과 성적 부도덕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에이즈 상황
유엔 에이즈 퇴치계획(UNAIDS)에 의하면, 2003년 현재 전 세계의 에이즈 감염자 현황은 다음과 같다. 서유럽 52만∼68만명, 동유럽-중앙아시아 120만∼180만명, 북아프리카-중동 47∼73만명, 중남부 아프리카 2,500∼2,820만명, 남부 아시아 460∼820만명, 동아시아-태평양 70∼130만명, 호주-뉴질랜드 1만 2천∼1만 8천명, 북미 79만∼120만명, 중미-카리브해 35∼59만명, 남미 130만∼190만명으로 전세계에 약 4,000만명이라고 한다. 2003년 새로운 감염자는 500만명이고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는 300만명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과 교류가 많은 중국의 경우 에이즈 감염자가 약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 광시성(廣西省)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이 지역 성매매 종사자의 에이즈 감염률은 약 11퍼센트, 즉 10명 중 1명이 에이즈 감염자인 셈이다. 이것은 1998년에 약 2.5퍼센트에 비해 2년 사이에 4배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또 베트남의 경우 2001년 베트남 호치민시의 성매매 종사자의 에이즈 감염률은 약 22퍼센트이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2003년 9월 말 현재 새로운 감염자 398명을 포함하여 에이즈 감염자 총수는 2,405명이며 보건원은 새로 감염된 이들 가운데 역학조사를 마친 242명 중 97.9퍼센트인 237명이 성접촉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속음악]
록 콘서트 폭력
수천명이 매년 록 콘서트들에서 부상을 입는다. 1998년도에만 적어도 5,711명이 그러했다. 새로 유행하는 '랩 록' 장르에서의 정력적인 행위들은 주로 남성 군중들을 열광시킨다. 강한 여성 혐오증이 록 음악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랩 록 가사들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때리고 자르는 것을 묘사한다.
[텔레비젼]
텔레비젼의 중독적인 힘
베넷 죤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텔레비젼보다 더 큰 시간 도둑이 있는가? 그것의 극적인 제공물들은 점점 역겹다. 그것의 뉴스 보도는 주제넘게 편향적이지만 수많은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그것의 중독적인 힘에 굴하고 있다. 텔레비젼의 영향력은 점진적이다. 여러분이 더 많이 볼수록, 여러분은 더 많이 보기를 원할 것이다. 여러분이 더 많이 보기를 원할수록, 여러분은 더 많이 관용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더 많이 관용할수록, 여러분은 더 많이 모방할 것이다. 결국, 텔레비젼은 시간 이상의 많은 것을 취하여 갈 것이다.
공산주의/ 독재정권
공산주의의 살인 통계
캘버리 컨텐더의 보도에 의하면, 공산주의는 1917년 이후 지구의 4대륙에서 8천 5백만 내지 1억만명의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미국의 무역 최대 혜택 국가인 중공은 7천 2백만명의 많은 희생자들을 낸 나라로서 그 목록의 제1위이다. 옛 소련에서는, 약 2천만명이 숙청, 굶주림, 집단 추방, 그리고 강제 노역장들로 죽어갔다. 캄보디아에서는, 독재자 폴 포트가 집단 추방, 굶주림, 강제 노역을 사용하여 자기 동족 130만명 내지 230만명을 죽게 하였다.
소련 비밀경찰(KGB)과 세계교회협의회
이전의 소련 통신사인 타스통신은 공산당 비밀경찰 요원들과 동독의 비밀경찰이 유럽 교회들의 대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침투했으며 1984년에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선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했다. 3,000명이나 되는 많은 교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자들로 행동했을 것이다. 일부의 러시아 정교회 신부들과 지도자들은 위험을 면하며 그들의 일들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그들의 성직자의 복장을 사용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61년 이후 공산주의 교회와 러시아 KGB(국가보안위원회=비밀경찰) 성직자 회원들을 가지고 있었고 마르크스주의 테러 단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였다. 1986년-1987년 미국 연방수사국(FBI) 보고서에 의하면, 소련 사람들은 미국교회협의회(NCC)나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그들의 선전 목적들에 사용하였고 공산주의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이것을 조정하였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 1992년 3월 2일자는 보도하기를, 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 아래의 정부의 도구이며 "어떤 정교회 신부들은 단순히 KGB의 협력자들로서가 아니고 실제적 요원들로서 활동했다고 보인다"라고 했다.
게하르트 베지에르, 아르민 보이엔스, 게하르트 린데만 등의 독일 학자들은 수년간의 연구 끝에 최근에 1,074쪽짜리의 책을 썼는데, 그 제목은 국내 개신교와 에큐메니칼 운동: 냉전 기간 동안의 교회의 활동들이다. 이 책은 1992년에 공개된 러시아 KGB의 자료들에 근거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냉전의 절정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동유럽의 정보기관들에 의해 침투를 당했고 이전 회장들 중의 한 사람인 메트로폴리탄 니코딤(Metropolitan Nikodim)이 KGB요원이었음을 확증한다.
[북한]
굶주리는 군사 대국인 북한
북한은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군대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이란이나 시리아나 기타 잠재적 불량 국가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전쟁 무기의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기근이 주민들의 다수를 황폐케 하였다. 1995년 이후, 적어도 2백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고 한다. 국제연합은 식량 재정의 30퍼센트 이상을 북한에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큰 식량 제공자이며 북한에 매년 50만톤의 곡식을 보내고 있다. 메노나이트파 등 여러 교회 단체들이 수많은 원조를 보내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은 군인들을 먹이고 러시아로부터 새 무기를 구입하는 것 등에 사용되며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북한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자
황장엽씨는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제목의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북의 주체 사상을 정립한 사람이 이런 사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오늘날 이념 문제로 혼란한 우리 사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남북통일에 대해
우리 민족의 운명에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두 체제간의 모순을 제거하는 문제, 즉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에 대해
김정일의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곧 조선수령 제일주의다. 그는 조선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하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까지 노래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민족을 자기의 소유물같이 생각하는 자가 어떻게 민족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북한인민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수백만 명의 인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자기 아버지의 시신궁전을 꾸미는 데 막대한 자금과 자재를 낭비하는 사람이 과연 북한인민을 동정하고 사랑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가까운 사람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한 동포들에 대한 민족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지금 자기의 체제위기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출로가 남한경제를 이용하는 데 있다는 타산으로부터 출발하여 남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열렬한 민족주의자의 탈을 쓰고 남한에 접근하고 있다.
◇ 북한 '자주' 주장의 허구에 대해
북한은 6.25전쟁을 통하여 민족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 유엔의 모자를 쓰고 개입하였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고 하면서 계속 미국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면 6.25 전쟁을 통하여 북한이 승리하여 우리 민족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독재 밑에 통일되었다면, 이것을 자주적인 통일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도와주려는 벗들을 배척하고 통일문제를 북한과 남한이 단독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은 남한과 북한의 자주적인 관계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 대북 경제원조 방법에 대해
정부차원에서도 북한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원조는 주지 말아야 하며, 또 국제사회의 입장과 우리의 민족적 입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주변 4대국이 다같이 지지하는 것은 다 우리의 대북통일정책에도 맞는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
◇ 북한의 '변화'를 보는 기준에 대해
북한이 진짜 변하였는가 변하지 않았는가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상적 변화와 군사적 면에서의 변화를 기준으로 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수령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그만두고 이와 관련하여 왜곡하고 날조한 역사를 바로잡으며 수령의 지위를 세습제도나 종신제로 하지 말고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임기제로 하여 선거하도록 변화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군대수를 대대적으로 줄이고 군 복무연한도 단축하며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생화학무기 금지 조약에 참가하게 되었는가를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 '미국'을 보는 시각에 대해
미국을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외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흑백을 전도한 완전한 기만이다. 실지로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여 온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북한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간의 화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더는 필요없게 되었다는 국제적 여론이 환기되는 시기를 기다리는 한편, 한국 내의 반미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 한국 스스로 미국의 지원이 필요없다는 것을 선포하게 만들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는 것이다.
◇ 북한이 말하는 '연방제'의 핵심
김일성은 연방제와 관련하여 핵심 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조하였다: "연방제에서는 국가 수반을 한 번은 북측에서 담당하고 다음 번에는 남측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교대할 수 있다. 우리(북한) 헌법에는 국가 수반이 인민군대 총사령관으로서 일체 국가 무력을 장악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연방국가 수반이 남측에서 나올 때에는 우리 무력의 통수권도 남측 출신의 연방국가 수반에게 넘어가게 된다. 연방제를 실시하여도 무력에 대한 통수권은 우리가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에는 우리가 무력을 쓸 수 있다. 이번에 국방위원장이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헌법을 고친 것은 그 때문이다.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이기 때문에 국가 수반과는 관계가 없다."
◇ 북한내 저항운동의 어려움에 대해
그들은 남한에서 이인모가 40년간 장기수로서 전향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고 크게 내세우는 동시에 남한이 그를 40년 동안 가두어 두었다고 하여 남한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처럼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북한에서 반체제 인사가 자기의 반체제적 입장을 밝힌다면 40년이 아니라 40분 이내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고 만다.
◇ '냉전은 끝났다'는 견해에 대해
현실을 외면하고 외국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탈냉전시대니 뭐니 하는 따위의 술어를 써가면서 탁상공론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진짜 옳은가, 그른가를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끝났지만 북한은 확실히 냉전시대의 유물이며 우리나라에서 냉전상태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남과 북 사이에 판이한 두 체제의 대립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무시하고 체제간의 경쟁이 끝난 것처럼 주장하며 투쟁을 부정하고 화해 일면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냉전을 극복한 사람들처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속에서도 냉전을 볼 줄 모르는 철없고 분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민주화의 과제에 대해
북한의 독재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방법은 북한 인민들을 인권사상으로 각성시켜 북한 통치자들에게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는 쉬운 지름길이란 없다. 원칙적인 길이 가장 지름길이다. 북한 인민들을 수령우상화 사상에서 해방하고 민주주의적 인권사상으로 각성하게 하는 것보다 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
조선일보 2002년 1월 30일자(55쪽)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북한교회의 실상에 대한 한 보고를 실었다: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1988년)와 칠골교회(1992년)는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성가대, 부인전도회 등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순수 종교인으로 믿는 북한주민은 거의 없다. 종교조직이나 교회는 대외행사기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평양에 교회와 성당이 처음 생겼을 때도 놀라는 주민이 거의 없었다. 남한을 비롯한 바깥에서 오히려 의아해했을 뿐이다. 교회를 찾았던 외국인들도 "수령님 배려로 오늘 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북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방문했던 남한의 성직자와 신도들에 따르면 가끔씩 등장하는 '수령님 은혜' 운운하는 설교만 빼면 예배과정은 남한 교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건물에 인민과 함께 하는 수령의 사진이 걸리는 것은 북한주민에겐 당연한 상식이지만 외국인이나 남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장충성당에는 신부가 없는 게 특징이다.
평양에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장충성당은 '행사'가 없으면 조용하다. 이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교회 안팎을 기웃거려도 별로 통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이나 남한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행사 때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생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와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던 주민들이 보위부에 끌려가기도 한다.
목사나 전도사 등은 그리스도연맹 소속이고 월급도 그곳서 받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연맹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대남부서 가운데 하나인 통일전선부 제6과에서 관할하고 있다. 조선카톨릭교협회나 나머지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다.
탈북자 김희성(가명て45)씨는 절친한 후배가 인민군에서 제대하여 그리스도교연맹에 배치된 것을 축하해준 적이 있다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그의 '출세'를 부러워했고 집안식구들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연맹이라는 곳이 대남관련기구이기 때문에 잘하면 해외에 나갈 수 있고 달러도 만질 수 있는 '요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맹에 들어가기 전에 당원증을 조직에 맡기고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당에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평소 성경책은 비밀도서로 분류돼 열람이 금지된다. 성경과 찬송가책은 교회 내에 비치되고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성경은 중국 연길에서 인쇄한 것이 많다고 한다.
종교인들의 동원행사가 잦아지면서 98년에 '신도'들을 길러내기 위한 단기 강습코스(1~3개월)도 생겼다. 주로 그리스도교연맹 건물에서 교육이 실시되는데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 담당한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종교의 허구성이나 해악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며 더욱 철저한 반종교적 의식을 갖도록 요구한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방문하게 되는 가정예배소는 교육받은 신도들이 그리스도교연맹의 지시에 따라 행사 때만 모이는 곳이다. 평소 가정예배소는 존재할 수 없다.
'신도'가 되려면 노동당 당원이어야 한다. 통일전선부 소속 기독교단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가족이 우선 선발되며 보위부나 인민보안성(경찰)에서 제대한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성가대원들은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사상성이 투철해야 하며, 학생성가대는 중창조로 유명한 봉수고등중학교 음악소조가 전문 출연한다. 공식행사에 나오는 '신도'들은 워낙 사상이 투철한 사람들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산속의 절도 다를 게 없다. 진짜 스님은 존재하지 않고 사찰과 문화재 관리자가 스님 행세를 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은 이들을 '출퇴근 중'이라고 부른다.
보위부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보위부에서는 상당수의 진짜 신자들이 비밀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색출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황장엽씨의 비장한 충고
[김경래 장로께서 북한의 김일성대학교 총장이었고 최고인민회의 의장이었던 황장엽 씨와 면담 후 쓴 글로서 고신 총회 기관지인 기독교보 2003년 3월 8일자(4쪽)에 게재됨.]
(앞부분 약간 생략) 그는[황장엽씨는] 97년 봄 북을 탈출하여 중국과 필리핀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들어왔을 때 밝혀준 몇 가지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린 것 같다고 우려했다. 건망증을 오히려 부추기는 분위기가 5년을 지배해왔다고 탄식했다. 첫째, 북한 김정일은 제네바 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둘째,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은 오래 전부터 땅굴 작전을 펴고 있다고 경고하였었다. 셋째, 남한 내에는 친북좌익세력이 요소요소에 침투해 있으며 그 명단은 언젠가 드러날 거라고 말했었다.
황장엽씨는 오늘의 현상을 '위기'라고 단정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된 적이 누구인가? 김정일은 수백만 북한 주민들을 무참히 굶겨 죽이고 북한 땅을 하나의 큰 감옥으로 만든 전대미문의 독재자가 아닌가? 김정일은 시대착오적인 군국주의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인민들의 피땀을 무자비하게 짜내며 비법적으로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민주주의 국가 인민들을 위협 공갈하고 있다. 그는 국제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의축'의 대표자이며 평화의 원수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황장엽씨는 "한국의 일부 지도층이 김정일 독재집단의 범죄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민주주의적 제재조치를 반대하고 김정일 범죄집단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타협과 양보를 설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일 독재집단과 공조하여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은 평화의 원수에 의거하여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다름 없으며 그것은 평화의 간판을 내걸고 침략자들 앞에서 인민들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려는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황장엽씨는 대한민국이 제2의 월남처럼 패망하지 않으려면 네 가지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비장한 어조로 충고했다. 첫째, 김정일 독재집단과 독재의 희생자인 북한 인민들을 갈라보아야 한다. 둘째, 독재자 김정일이 남침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국의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고 미국 군대와 긴밀한 협조로 전쟁 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한국에서 친북, 반미 세력들의 책동을 견제함과 동시에 북이 대남공작(적화통일)을 집요하게 실시하여 왔다는 사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넷째,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한-미-일 3국의 공조체제를 더욱 공고히 발전시키는 노력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김정일의 진실
[일본에서 발간되는 북한연구전문지 코리아 리포터 창간편집자 변진일 선생이 쓴 김정일의 진실이라는 책의 내용 일부를 크리스챤 뉴스위크지 2003년 3월 15일자 5쪽에 실린 대로 소개한다.]
왜 김정일은 대량살상무기를 놓지 않는가?
한국과 미국과 일본, 세 나라는 대화에 의한 평화적 수단으로 북한의 김정일에게 대량살상무기 개발포기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대량살상무기를 그리 간단히 단념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위험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계산은 개발하는 것과 안하는 것과를 저울에 달아볼 때 개발하는 쪽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이익이 있다는 판단이다. 왜냐하면 대량살상무기는 무엇보다도 현 정권에게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모든 분야에서 유효한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첫째, 대량살상무기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구심력이 되고 있다. 그것은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권위를 높일 수 있고, 김정일 체제 공화국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고, 국가의 목표인 강성대국을 실현할 수 있고, 국민의 단결을 고무하고 인민 봉기나 폭동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대량살상무기는 군사적으로 만능의 무기이다. 그것은 조선반도 유사시 미국의 핵선제사용을 막을 수 있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억제력이 되며, 한국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구식화된 군사력의 약점을 보충할 수 있고, 군사비를 삭감할 수 있고,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는 카드가 된다.
셋째, 대량살상무기는 외교적으로 일조이석의 카드가 된다. 그것은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고 체제보장을 받아내며, 한-미-일 삼국에게 쐐기를 박을 수 있다.
넷째, 대량살상무기는 경제적으로는 황금알을 낳는 도구가 된다. 그것은 경수로와 중유를 얻어내고, 중동에 수출하여 귀중한 외화를 벌 수 있고,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제를 푸는 카드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정일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 무기의 카드를 선전함으로 미국의 관심을 끌고 정치군사외교경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정일은 핵개발 포기의 조건으로 미국의 부시 정권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악의 축이라는 이름을 벗겨줄 것. 둘째, 테러 지원국의 목록에서 제외할 것. 셋째, 경제제제를 해제할 것. 넷째, 선제공격이나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것. 다섯째,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맺음으로 체제를 보장할 것 등이다.
김정일의 전쟁 수행 능력
북조선의 총병력은 2002년 현재 약 117만, 총인구 2,300만으로 봐서 5%가 현역군인으로 추정된다. 나토의 병력을 다 합친 수보다 40만이 많고, 게다가 117만 정규군 외에 600만의 예비역이 있다.
북조선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체제로 적용하는 전시용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기본은 전격전 전략이다.
김정일은 전쟁시에는 전격전에 의한 단기적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서기는 망명 후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조선은 삼일만에 부산을 점령한다고 말하여 한국국민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북조선군의 배치는 지상병력의 3분의 1을 비무장지대 근방 100킬로미터 이내에 전방배치하고 있다. 80만을 전방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거리사정 화력포, 예를 들어 240미리 다연발로케트는 사정거리 70킬로, 170미리 자주포는 사정거리 약 50킬로인데 다 서울에 도달한다. 이 전방배치로 한국에 대한 기습공격이 가능하게 된다. 모든 장비는 거의 자주식이고, 거의 모든 무기가 100% 북한에서 생산되고 해리미사일 고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 화력은 한국을 세 번 폐허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기습공격은 밤에 이루어질 것이며, 그 전에 특수부대의 침투는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한국 공격작전을 시나리오로 생각한다면, 먼저 일만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로 공격한다. 초점은 미군의 공군기지와 한국군의 공군기지일 것이다. 전쟁 초 공군기지를 궤멸하여 제공권을 잡으려는 작전이 될 것이다. 미사일 발사와 동시에 전방에 배치하고 있는 240미리 다연발 로케트포나 170미리 자주포 등 장거리포, 12,500의 장거리 야포로 한국군의 진지와 수도 서울을 총공격할 것이다. 당연히 서울은 전기 개스관 폭발로 도처에 화재가 발생하고 수라장이 될 것이다. 통신라인도, 군의 통제도 불능으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어서, 북조선은 IL28 중거리 폭격기로 폭격을 가할 것이다. 공군력으로는 전투기가 790대, 폭격기가 80대, AN2 비행기가 300대, 지원기가 520대, 헬기가 320대이다. 신형 미그기가 40대, 김대중이 보내준 돈으로 최근에 도입한 것이 20대 정도된다. 미그기 무기대금을 지불하면서, 파키스탄에서 핵개발자료가 비밀리에 도입됐다. 10억 달러 가까이 보냈다. . . . 그러니까 계속 달러만 달라고 했다. 목사들이 갈 때도 달러만 달라고 했다. 미그 23이 46대, 미그 21이 130대, 미그 23에는 AA7 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게릴라전을 통해서 침투한 특수조가 한국공군기지 폭파, 교량들과 탄약고들과 연료저장고들을 파괴할 것이며, AA2 수송기는 시속 160킬로로 저공 비행하여 레이더 추적을 피하면서 특공대를 투입시킬 것이다. 밤에 보이지도 않는데, 이것을 방지할 자가 아무도 없다.
특수여단 경보병부대는 땅굴을 통해서 사전에 침투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일시에 지상으로 나와 한국의 군사기지들을 장악할 것이다.
1군단에서 5군단이 선봉군단으로, 1군단은 동쪽의 강원도에, 2군단은 개성에, 4군단은 해주에, 5군단은 철원을 중심하여 포진하고 있다. 서울을 침공하는 루트는 제2군단이 개성문산으로, 이 경우 제4군단의 반 이상은 2군단에 합류할 것이다.
제1군단은 태백산맥으로 해서 동해안으로 남진(南進)할 것이다. 제5군단은 한국의 제1군단이 서울 방어를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경우 이를 차단하는 임무를 가질 것이다. 제4군단은 남침에 참가하지 않고 미해병대가 서해안으로 상륙하여 배후에서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해안방어작전에 들어갈 것이다. 해주로 가면 그렇게 된다.
선봉군단의 침공이 끝나면 폭격기의 지원을 받아 4개 기계화 군단이 참가할 것이다. 그것은 전차여단, 자주포여단, 장거리 고사포 여단이 직속되어 배치되어 있는 별도의 선봉군단을 말한다. 기계화 군대의 전력은 전차가 3,700대이며, 장갑차가 2,300대인데, 매우 최신의 전차라고 한다.
해안으로부터의 공격도 시작될 것이다. 해군은 군인이 6만명, 함정은 730척, 잠수함이 35척, 소형잠수정이 60척, 어뢰정은 인간어뢰 즉 자폭어뢰로서 미항공모함 격침용으로 쓰여질 것이다. 소형잠수정이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 타고 거기에 고성능폭탄을 싣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미항공모함을 부수겠다는 것이다. 중동에서 실제로 미국 전함이 테러 공격을 받았다. 이것이 삼일작전이다.
북조선의 강석주 외무부 제1차관이 겔리 미국무부 차관보에게 자신들에게 핵무기 이상의 강력한 무기가 있다고 암시한 것은 생화학무기를 가리킨다. 북조선은 유독성 개스, 질식성 개스, 신경성 개스 5천톤 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물학 병기로는 13종류의 무서운 세균을 보유하고 있고 두 곳의 실험실에서 연구개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는 북한의 전쟁 위협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남북 문제를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항상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는 개인의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같이, 국가의 전쟁과 평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고 성실하게 살기만을 힘써야 할 것이다. 그가 지켜주시고 막아주실 때만 우리 나라의 안정과 평화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북한은 위험한 국가이다
미국 상원외교분과 전문위원 윌리엄 트리플릿 2세는 불량배 국가(Rogue State)라는 그의 책에서 세 명의 영국 고위관리가 사실은 소련의 간첩이었으며 이들이 스탈린을 부추겨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1969년 4월 미군 정찰기 EC-121이 공해 상공에서 북한 미그기에 격추돼 미군 31명이 사망한 일, 1976년 여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무장도 하지 않은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찍어 죽인 일, 아웅산 테러 사건, 대구 미문화원 및 김포공항 폭파, 대한항공 폭파 등을 열거하였다. 그 외에도 북한은 마약과 위조달러를 수출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참상과 김정일 일가와 고위층의 사치스런 삶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한다. 북한에 보낸 구호물자는 군대에 우선적으로 공급됐고 특히 공산당과 군 고위층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그 한 증거로 지난 1997년 동해에 좌초되었던 북한 잠수함에는 미국의 교회자선단체가 보낸 캔 음식이 남아 있었다. 그는 1995-1998년 북한에 식량을 보낸 것이 바로 북한정권을 파멸에서 구해내어 오늘날 세계적 위기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을 오히려 강하고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파키스탄은 그들의 핵기술을 북한이 개발한 미사일과 맞바꾸었다. 1998년 여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했는데, 그 미사일은 일본을 넘어 태평양에 떨어졌다. 미국과 일본은 경악했지만 정작 한국은 태연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북한을 돕기만 하는 것은 정신 없는 일이 아닌가?
북한의 테러 행위들
1974년 이후 북한이 대외적으로 감행한 주요 테러사건들은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육영수 여사 피격),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 858기 공중폭파사건, 1997년 2월 15일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피살사건 등이 있다. 특히 1997년 경기도 분당에서 발생한 이한영 피살사건은 이 씨가 국내언론에서 신분을 드러내고 공식인터뷰를 가진 지 정확히 1년 만에 발생한 사건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자에 대한 김정일의 전형적 테러수법이라고 한다. 김정일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아온 황장엽씨는 "김정일은 테러의 명수다"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테러지원국' 또는 '깡패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1987년 KAL기 폭파사건 이후 16년째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고 있다. 2003년 4월 발표된 '세계테러리즘의 유형' 정례보고서에서는 북한을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과 함께 세계 7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지정 이유는 북한의 대테러 국제협정 및 의정서 의무 불이행, 테러단체에 대한 무기수출 지속, 일본 적군파 등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은신처 제공 등이었다.
김정일 제거 전략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2004년 3월 25일 극동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북·중 동맹과 한반도 문제'를 주제로 강연했으며 26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제로타리클럽 지구대회에서도 같은 주제로 연설했다. 다음은 27일 북한민주화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김범수 기자 정리.]
북한 김정일 독재체제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동포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김정일 독재체제를 제거하는 것만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김정일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되야 한다. 폭력의 사용을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무장하고 범죄자는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은 이라크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군의 피해가 클 것이다. 북한은 전쟁이 시작되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원 없이도 6개월에서 1년을 버틸 수 있다. 북한의 모든 군사시설은 이미 6·25 이후 반 원자전 진지로 조성되었다.
북한과의 전쟁은 이겨도 후유증이 클 것이다. 승리해도 진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의 민주주의 실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일부 군사시설에 대해 부분적인 공격을 해도 문제가 된다. 그것은 북한이 발악할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생화학무기를 대량 갖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도 그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제거에 대한 절실한 결심과 희생에 대한 각오가 있으면 전쟁 없이도 김정일을 제거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변수가 들어온다.
자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법이 없는 중국이 정치·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면서 김정일과 동맹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 2001년 중국공산당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정부는 "미래에는 공산주의가 승리한다"고 보고했다.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철학으로 세우고 피를 흘리며 싸웠다. 현재도 그들은 관념론보다 유물론을, 형이상학보다 변증법을 분명히 고수하고 있다.
소련식 사회주의가 망했다고 계급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세계는 지금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와의 대립관계에 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결국 현재의 국제관계는 미국와 중국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의 근본이익은 고도성장이며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는 것이다. 혹자는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도 하지만 중국에 자본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중국의 경쟁대상자는 미국이고 동양에서는 일본이다.
북한의 핵개발 결과는 남한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제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전쟁공포증, 평화주의를 가장한 나약성 그리고 "우리가 더 힘이 강하니까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이다. 또한 친북반미세력과 친중세력이 최근 급속하게 증가되고 있다.
10년 뒤는 어떻게 될까. 인구가 많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세계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러시아가 북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게 되면 한국 내 친북반미세력은 얼마나 장성하겠는가.
그때는 미국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이 북한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북한이 남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시간이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한국, 일본이 중국에 붙으면 전세계가 중국쪽으로 기울게 된다. 구라파도 미국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지금도 후진국, 독재경향의 국가들일수록 반미를 하며 중국에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가.
결국 북한문제 해결은 미국의 운명과 연관이 된다. 이 사실을 미국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확고한 자세를 가지고 북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제거는 미국의 반 테러 정책의 궁극적인 승리를 말한다. 중국이 민주주의편에 서서 미국과 합작하면 김정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테러가 없어진다.
미국과의 협력과 김정일 제거는 중국을 위해서도 옳은 길이다. 더 나아가 중국의 발전, 미국의 발전, 세계의 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중국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중국에도 이익을 주어야 한다. 북한에서 김정일 독재를 끝내고 중국식으로 개혁을 유도하라고 양보해야 한다. 김정일이 없어지면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수교할 것이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엄청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며 한국도 더욱 친중적으로 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만약 설득이 되지 않으면 대만, 일본, 한국을 핵무장시켜서 방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이러한 방향으로 강경하게 명분을 세워나가면 중국은 결국 기형적인 김정일에 대한 지원을 끊을 것이다.
한편 김정일은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점차 경제개혁을 해 나갈 것이다. 그것은 독재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겠지만 결국 내부적인 와해를 몰고 올 것이다.
북한에는 정규군만 170만명이 있다. 이들을 먹이고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다. 김정일이 군을 우대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엘리트군과 간부들일 뿐 가장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일반 군인들이다. 이들은 13년 군 생활을 마치면 집으로 못 가고 탄광으로 보내져 집단노동을 하고 집단결혼을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불평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뺏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인권 유린이다.
따라서 중국만 떨어져 나가면 북한의 군대가 가장 먼저 나설 것이다. 이들이 제일 고생했고 무기를 쓸 줄도 알기 때문이다.
그때 미국의 평화유지군이 들어가면 된다. 또한 탈북자들과 교포들이 함께 들어가면 북한내부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통일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 우선 양곡 200만t 정도 주고, 서서히 자본과 기술을 들여보내면 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 사회내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반미친북세력이 창궐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정당성과 여력이 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6·25 남침 확실한 증거 많다
2004년 6월 23일 부산에 있는 한 큰 교회에서 장로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했는데 그 지역 어떤 장로가 내게 와서 "장로님 큰 일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들이 6.25를 두고 42%가 북침이라고 합니다. 남침이란 의견은 30%고 그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 .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너무나도 많다. 우선 1971년 10월에 김일성 자신이 남침한 사실을 인정했다. 두 번째는 스탈린의 고백이다. 그 또한 회고록에서 북한의 남침을 주도하고 도운 사실을 밝혔다. 셋째는 중국 백과사전에 '조선전쟁'이란 부분에 모택동이 스탈린과 함께 조선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쓰여 있다. 또 당시 남한의 군인들은 댄스파티 등을 하며 술에 취해 있었다. 탈북난민들이 그렇게 남침을 증언했다. 유엔안보리에는 '북한이 남한을 점령했다'고 결의문에 나와 있다.
[중국]
중국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카리스마(Charisma)지 1997년 7월호에 따르면, 중국의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는 최근에 말하기를, "우리의 적(敵)은 총을 가진 자들이 아니고 성경을 가진 선교사들이다"고 하였다. 월드(World)지 1997년 8월 2일자에 의하면, 중국 교회의 약 10퍼센트는 공산 정부가 "삼자(三自) 애국운동"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정신적 통제 아래 등록된 교회이지만, 신자들의 90퍼센트는 가정 교회들에서 예배드리며 많은 이들은 국가를 신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고 한다.
200개의 가정교회를 폐쇄시킴
크리스챤 뉴스 1997년 12월 1일자(3쪽)는 컴퍼스 디렉트(Compass Direct)지를 다음과 같이 인용, 보도하였다. 중국 정부관리들은, 비공식적 교회들을 정부에 강제 등록시키는 일이 강화되었던 1997년 초 이후, 남부 저장(Zhejiang)성의 원조우(Wen- zhou)시에서 200개의 교회들을 폐쇄 혹은 파괴시켰다. 남부 저장성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기독교인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부 후난(Hunan)성과 막상막하이다. 물론 4천만 인구의 저장성은 1억천만 인구의 후난성보다 훨씬 작다. 많은 신자들은 그들의 집들에 붉은 십자가를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그들의 점포들 위에 '임마누엘'과 '에벤에셀' 같은 글자들을 큰 금색 글씨로 써놓기도 한다. 종지아(Jong Jia)군 같은 곳들에는 매 킬로미터마다 교회가 있다고 한다.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앙생활에 분발하면서 중국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자.
공산 중국은 종교를 제한함
중국 정부는 종교를 엄격히 제한한다: 1) 예배 장소들은 등록되어야 하며, 그것은 정상적으로 다섯 개의 공식 승인된 종교 협회들 중 하나에 가입하는 것을 수반한다. 2) 성경들과 종교적 내용들의 출판은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3) 등록된 교회 목사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을 위한 신학교나 기타 종교 훈련의 입학 허가는 지역 당국의 허가를 요한다. 4) 신자들은 등록된 교회에서 성경을 사고 영수증을 받을 때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이 요구될 것이다. 5) 공산당원들은 종교적 신념들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오직 무신론자들만 종교를 규제하는 정부 기관들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허용된다. 6) 정부 관리들은 어떤 종교적 신념들이 이단적이며 따라서 비합법적인지 결정한다. 7) 중국 밖에 있는 어떤 종교 단체도 어떤 중국의 종교 단체나 종교적 일들에 대해 통제하거나, 독립적 운영을 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어느 때든지 공산 정권은 들어와 교회에게 등록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팅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기독교를 매도함
중국의 은퇴한 애국적 삼자 운동 개신교 지도자인 K. H. 팅 주교는 최근 중국의 한 공산당 정부기관지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비평했다. 그는 "사회주의는 인류 역사에 나타난 가장 좋은 사회제도이다"라고 말했고 "사회주의와 맞지 않는 [어떤 신학도] 설교되어서는 안된다"고 암시하였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교회 건물들을 소유하고 교회 건물 밖에서의 전도 활동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터교 평신도 연맹, 루터교 미주리대회(LCMS), 남침례교회,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및 그의 아들 넷 그레이엄)은 팅과 그의 후임자 같은 공산주의 앞잡이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보냈다.
모택동은 역사상 가장 악한 집단 살인자
20년전 세계 기록 기네스 북(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에 의하면, 역사상 가장 큰 집단 학살은 1949년부터 1965년 5월 사이의 중국의 모택동(마오 체-퉁)의 통치 기간에 이루어진 2,630만명의 중국인 학살이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에 의하면, 1971년의 워커 보고서(Walker Report)는 다른 더 학구적인 연구들과 더 일치하게 그 죽은 숫자를 3,225만명 내지 6,170만명 사이로 보았다. 그러나 연합통신(AP)의 한 기자는 모택동을 변화를 위한 긍정적 세력이며 '위대한' 인물로 묘사한다. 중공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들에서 모이는 것을 금하고 정해진 장소들에서 모이는 것만 허용한다. 또 공적인 전도를 금하고 정부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도록 요구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삼자교회(TSPM church)를 위해, 정부는 최종적 권위를 가지며, 이 '교회'는 마르크스주의의 가르침들을 믿고 조장하겠다고 동의해야만 한다.
중국에서의 핍박
"여섯 명의 가정교회 담당 지도자들이 중국에서 강제노동 수용소들에 보내졌다. 그 사람들은 8월에 약 40명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체포되었다. 그 여섯은 '악한 이단'을 사용하여 법을 파괴시켰다는 죄로 1년 내지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공산주의자들이 통제하는 중국 기독교 협의회
크리스챤 뉴스(Christian News)는 공식적으로 승인된 중국 기독교 협의회(CCC)와 삼자(三自, Three-Self) 운동 지도자들인 웬자오 한과 팅 주교가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대변자이며 심지어 마오 체 퉁(모택동) 같은 대량학살을 행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옹호했다고 거듭거듭 증명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적 중국의 살인적인 '한 가정 한 자녀'의 낙태 정책을 승인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조장하고 그리스도께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적 신앙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칭찬한다.
중국은 가정교회를 파괴함
중국내 소식통에 의하면 중공은 가정교회 운동을 파괴하고 있다. 중공은 비등록 교회들을 정치적 전복자들로 간주한다. 개신교회들은 중국기독교협의회와 그것이 관련된 삼자(三自) 애국운동을 통해서만 등록할 수 있다. 그 두 단체는 다 공산정권과 밀접히 협력하는데, 그 정권은 국가가 후원하는 공식적 '애국적' 종교단체들 밖에서의 예배를 금한다. 예배는 오직 정부가 감시하는 교회들과 사찰들과 사원들에서만 허용된다. 2003년 8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중국 당국은 한 마을에서 100개 이상의 교회들을 폐쇄시켰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약 1,500만명의 개신교인들과 1,000만명의 천주교인들이 공식적 교회들에서 예배드리고 있고 그 외에 수백만명이 비공식적 가정교회들에 속해 있다고 한다.
[베트남]
베트남에서 핍박이 심각함
1975년 남베트남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간 후, 북과 남이 연합되었고 수백개의 교회 건물들은 압수되었거나 파괴되었다. 공산주의 정부의 기독교를 취급하는 전략은 완전제거이었다. 목사들은 살해되었거나 투옥되었다. 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그러나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종교적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며, 공식적으로 그들이 통제하는 약간의 교회들을 인정한다. 비공식적 가정 교회들의 성장을 통제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믿는 회개 의식'에서 짐승 제물의 피와 막걸리를 섞어 마시게 함으로써 강제로 그들의 신앙을 부정하게" 한다. 우리는 공산세계 속에서의 기독교회의 변질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일제 시대에 일본이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써 기독교를 변질시키려 했던 것과 같다. 이것은 베트남뿐 아니라, 이북과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의 기독교 탄압
2004년 부활절 기간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인 몬타나드에 거주하는 한 소수민족 사람들은 부활절 감사기도회를 드렸는데, 베트남 당국은 이 기도회를 저지하려고 폭력과 총격과 돌 투척을 행했고 400여명의 기독교인들이 살해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고 160명의 기독교인들은 종교탄압을 피해 그 곳을 탈출하여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로 도피하였다고 전해진다. 베트남이 공산화 된 후 기독교의 신앙활동은 여전히 탄압과 통제를 당하고 있다. 만일 남한이 공산화된다면 제일 먼저 탄압을 받을 자들은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이라크]
이라크인들에 대한 한 여론조사
2003년 10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영국의 옥스퍼드 리서치 인터내셔널(ORI)과 옥스퍼드대학 사회학과가 공동으로 이라크 전역의 주민 3,2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축출된 것을 슬퍼한다고 답한 사람은 1퍼센트도 안되었고, 응답자의 42퍼센트가 지난 1년 동안 가장 좋았던 일로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응답자의 35퍼센트는 가장 나빴던 일로 이라크 전쟁의 패배를 꼽았다. 또 응답자의 57퍼센트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22퍼센트는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또 응답자의 거의 70퍼센트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이라크 전쟁 1년 후의 변화
이라크 전쟁이 1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에는 여전히 사회적 안정이 없으나 후세인 정권 때와는 달리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고신 기관지인 기독교보 2004년 3월 27일자 사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저 중동의 주변 국가에 미친 긍정적 결과는 시리아, 이란, 사우디, 리비아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으며 인권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고 여성에 대한 지위가 현저하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 . . 이라크도 인공위성 방송 청취를 위한 접시 안테나가 네 가정 가운데 하나 정도로 급성장, 외국 뉴스를 마음껏 접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여론은 아주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라크 국민들의 56.3%가 일년 전보다 생활상황이 더 좋아졌다고 응답하였고 반면 나빠졌다고 응답하는 자는 18.6%이다. 71%의 여론은 앞으로도 더 좋아질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 . . 선교적 차원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 이라크에는 외국 선교사는 엄두도 못내었다. 그러나 한국을 위시한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은밀하게 활동하고 새 교회들도 등장하며 미국의 두 선교 단체가 각각 신학교를 시작하였고 한국교회도 준비중이다.
[박해와 전쟁]
콜럼비아에서의 박해
1995년 이후, 약 50명의 목사들이 콜럼비아에서 살해되었다--25명의 복음주의 목사들은 지난 6개월 동안 게릴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고, 약 300개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강제로 폐쇄되었다. 월드(World)지 1999년 10월 2일자는 이보다 더 낮은 숫자를 언급하며 말하기를, 콜럼비아 복음주의자들이 게릴라들과 그와 같은 군인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교인들에 대한 공격의 소식은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헤드라인 뉴스들에 의해 가리워져 있다.
오늘날의 세계 기독교 박해 상황
기독교보 2000년 11월 4일자(7쪽)에 의하면, 오픈도어 선교회는 세계에서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국가로 그 박해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30개 국가를 열거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아프카니스탄, 중국, 체첸, 예멘, 북한, 몰디브, 이란, 모로코, 튀니지, 코모로섬, 리비아, 베트남, 수단, 이집트, 투르메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라오스, 부탄, 콜롬비아, 브루나이, 콰타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북부), 멕시코(남부), 아제르바이잔, 인도, 버어마. 또 위의 신문은 그 중에서 박해 지수 상위 10개국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1) 사우디아라비아--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 자동적으로 사형에 처해진다.
(2) 아프가니스탄--25년 동안 구 소련과의 전쟁으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7백만명의 피난민들이 주변국가로 흩어졌다. 1992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탈리반이 이슬람의 엄격한 사리아법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있어 기독교는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여자 아이들은 학교를 갈 수 없고 여성들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3) 중국--가정교회 기독교인들이 늘어나는 혹독한 박해에 직면해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투옥된 상태에서 믿음을 지켜가고 있다.
(4) 체첸--1999년 9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납치와 살해,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슬람 지역인 체첸은 1989년 소련 통치 시절까지는 모스크(이슬람교 사원)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 이후 6백개 이상의 모스크가 세워졌고 사우디 계열의 엄격한 와하비 이슬람교가 세력을 떨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자유가 없다.
(5) 예멘--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가 되지 않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인들은 가족들과 정부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고 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비밀리에 살해당하고 있다.
(6) 북한--북한에 있는 성도들은 전 세계에 있는 기독교인들과의 접촉이 없이 고립되어 있다. 교회가 극심한 억압적인 체제에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다.
(7) 몰디브--몰디브 정부는 몰디브를 이슬람 국가로 선포했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몰디브는 심지어 여행자들조차 성경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외국인이며 토착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실정이다.
(8) 이란--공개적인 전도 활동이 허락되지 않고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
(9) 모로코--기독교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다. 전도하는 자들은 체포당하게 된다.
(10) 튀니지--토착 기독교인들은 소외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믿음이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고 소수의 기독교인들만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드러내고 있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종교자유위원회 죤 캔덜린 위원장은 "오늘날 전세계 60개국 이상에서 2천3백만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성실해야 하며, 또한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의 성도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하겠다.
테러 국가들에 의한 세균 전쟁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유고슬라비아, 및 큐바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표본을 은밀히 가지기를 원하든지 혹은 이미 가지고 있는 국가들에 속한다. 이러한 알려진 테러 후원자들은 생물학 무기 제조계획을 가지기를 원한다. 10미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그것의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천연두 바이러스는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살인자이다. 세균전 자살 테러범은 그 질병을 비행기로나 스포츠 경기장에 가져가서 하루에 수천명을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도에서의 기독교 박해
인도에서 지난 5년 동안 성경 판매는 배갑절이 되었지만, 박해도 놀랄만큼 증가하였다. 노방 전도와 전도지 배포는, 특히 북부에서, 대체로 중단되었다. 네 개 주의 '종교 자유' 법안들은 기독교 개종을 비합법화시키든지 혹은 엄격히 통제한다. 5월에 폐지될 때까지, 개종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과 사회에 배신자가 되었다. 전도자들과 목사들을 괴롭히는 일들은 일반적이다. 박해와 노골적인 폭행이 빈번히 일어난다.
한국의 정치 이념
한총련, 실체부터 공개하라
[다음은 조선일보, 2003년 4월 29일자, A27쪽에 실린 김용철 변호사의 글의 일부분이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할 때 한총련 핵심 간부를 수사한 적이 있다. 한총련은 의장 등 공개된 간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 기구인 조국통일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정책위원회, 조직위원회, 투쟁국 간부 등이 한총련의 노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 재학생이 아니라 대부분 졸업생들이다.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에서 북한통일전선부 산하인 범청학련 북측본부와 팩스, 인터넷 통신을 통해 범청학련 북측본부로부터 투쟁 지침을 전달받아 한총련의 노선을 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 정책위원회, 조직위원회 구성원의 인적 사항은 극비 사항이며, 한총련 의장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총련이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한총련 의장은 한총련의 실체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중간 생략]
결론은 간단하다. 한총련이 이적(利敵)단체로 계속 남을 것이냐, 아니면 건전한 학생회 조직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느냐는 한총련의 몫이지 정부에 요청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총련의 실체에 대한 솔직하고 충분한 공개, 그리고 진정한 변화가 없고서는 한총련을 이적단체에서 철회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지금은 한총련이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대답할 때이지 정부가, 법무부가, 검찰이 먼저 나서 풀어주겠다고 나설 때가 아니다.
남북통일과 반공(反共)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남북통일과 반공(反共)의 이념 문제로 인해 매우 혼란한 것 같다. 오랫 동안 우리 나라는 반공 이념이 분명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더불어 이념 문제가 급속히 혼란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세속적,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신앙 생활, 교회 생활에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선,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 이념적으로 매우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남한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왔고 그 동안 군사 정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민주주의가 성장해왔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거주(居住)의 자유, 시장(市場)의 자유, 교육의 자유, 특히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상당히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점들에서 극히 통제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이산 가족들이 소원해왔던 상봉이 몇 차례 이루어진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것들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불만족스러웠다. 북한 정권은, 많은 인민들이 굶주리고 굶주림을 참지 못해 탈북 사태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잠수함과 전투기 구입,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등 군사력 강화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우리는 북한 체제와 정권에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남북통일이 가깝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북의 이념적 차이는 너무 크다. 우리는 통일을 원하지만, 오직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원한다. 자유민주주의만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특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경제 분배라는 공산주의의 이상은 결코 인권과 자유보다 우선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공산주의의 이념을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오기는 극히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오늘날 남한에서의 이념의 혼란이다. 오늘날 사회 일각에서 통일은 선이고 반공(反共)은 악인 양 선전된다. 그러나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우리는 심지어 통일이 없어도 자유 세계를 원한다. 자유 없는 통일은 무서운 공포 사회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고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견고한 국방력을 가지지 않은 남북 대화와 교류가 남한을 정신적으로 더욱 혼란 내지 무력화(無力化)시키고 결국 안보까지 위태하게 만들 것을 심히 우려한다. 우리는 이념적으로나 무력적(武力的)으로나 우리 나라의 공산주의화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자
제17대 국회의원들 중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한총련 합법화 등을 주장했던 자들과, 또 북한의 대남혁명노선과 궤를 같이해온 전국연합(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출신 및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사범들, 소위 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상당수(40여명)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친북성향과 운동권 출신 인물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평안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리는 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유지되기를 원한다.
1991년 설립된 전국연합은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북한식 1민족 1국가 2정부의 연방제 통일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고 한다. 전대협에 대해서, 1992년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와 자주평화통일 학생추진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예속 파쇼정권으로 규정하는 전제 하에, 반전과 반핵, 미대사관 폐지, 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 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임"을 밝혔다고 한다. 또 전대협 후신인 한총련에 대해서도, 2003년 대법원은 "한총련은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예속 파쇼정권으로 규정한 뒤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을 추종하는 이적단체임"을 재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나라의 장래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많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며 또 바른 사회정치이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를 때려잡자?
[오늘날 급격히 좌경화 되는 듯한 이 사회의 과격한 풍조에 대한 우려와 고발의 목소리로 진성호씨의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한다.]
"미친 놈은 때려잡는 것이 과거의 상식 . . . 조선일보가 제자리를 찾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정신건강과 사회적 비용 차원에서 옛날 방식이 맞다",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를 지지한다는 사람이 대낮에 활개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다"--'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국민의 힘' 등이 21일 낮 서울시의회 앞에서 개최한 안티조선 집회에서 KBS 김영삼 노조위원장이 내뱉은 말이다. . . .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공영방송사 종사자라면 굳이 노조위원장이 아니라 일선 기자, PD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기엔 지나치게 부적절하고 편향적인 발언이다.
이 자리에서 한국 PD연합회의 이강택 회장은 "조선일보는 요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과 동아는 상생을 얘기하지만, 범죄자와 상생이 가능한가. 범죄자는 격리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KBS의 시사교양프로그램 제작 PD이다. 일부 KBS 프로그램이 편파 시비를 받는 것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전국언론노조의 신학림 위원장은 "우리는 조선을 신문이라고 하지 않고 범죄집단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명계남씨도 참석해 "조선일보는 사악하고 교활한 사익추구집단", "조선 박멸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장에서 참가자들은 "조선일보는 요괴다", "조선일보는 악마다"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 . . 물론 조선일보 기사에 잘못이 있을 수 있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확실히, 그들의 말은 공산사회에서나 있을 법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매우 합당치 않은 말이다.
한미동맹의 붕괴?
[미래한국, 2004년 6월 12일자는 위의 제목의 다음과 같은 사설을 썼다.]
한미동맹이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다. 동맹이 유지된다는 수사(修辭)는 있지만 한미동맹의 실질적 근간인 주한미군이 급격히 감축, 철수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내년까지 1만2,500명의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3만7,000명이던 주한 미군의 1/3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아직 어떤 종류의 병력이 감축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육군 위주의 감축일 것이 확실해 보이며 이는 그 동안 한반도의 전쟁억지력으로 작동했던 군사력의 퇴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에서 억지기능을 담당하지 않으리라는 의미다. 남아 있는 미군은 동북아시아와 세계를 상대하는 군사력일 것이며 이는 방어가 본질인 억지력이 아니라 보다 공격력 태세를 취할 수 있는 군사력이 된다. 이제 북한을 억지하는 기능은 전적으로 한국군이 담당할 몫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정부는 예상 외로 빠른 미국의 철수 조치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의 초래는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 때문만은 아니다.
동맹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절친한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맹이란 '공통의 적'을 가진 나라들이 맺는 것이다. 그 공통의 적에 대해 힘을 합쳐 대항하여 군사적으로 협력하자고 맺는 것이다.
공통의 적이 있는 나라들은 비우호적일 경우에도 동맹을 맺는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더 골치아픈 적인 나치 독일과 함께 싸운 동맹국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나치 독일이 궤멸되자 곧 적대관계로 돌입했다.
현재 한미동맹에 나타나는 문제의 본질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미국은 테러전쟁 시대를 맞이하여 북한을 더욱 위험한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을 오히려 우호국처럼 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라는 적에 대처하는데 동맹국인 한국의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수순은 한반도에서 프리핸드(free hands, 자유행동)를 가지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동맹은 있으나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북한이라는 차원을 넘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역할도 동시에 담당했었는데 이제 한국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엄청난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한국, 적과 내통하며 동맹을 내쫓고 있다
[전 유엔주재 미 대사인 켄 아델만(Ken Adelman)은 폭스 뉴스(Fox News) 2004년 6월 2일자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DMZ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요즈음 북한은 남한에게 짜릿함(thrills)의 대상인 듯하다. 놀라운 것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염증을 느끼자 한국인들은 오히려 이를 반기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객관적 사실들을 토대로 봐도 북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최악의 국가임이 분명하다. ▲북한은 DMZ 근방에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양의 군사력을 집중시켜 놓고 있다. ▲생전에 '위대한 수령'이라는 이상한 호칭을 가졌던 김일성은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악명 높은 아들 김정일에게 정권을 물려줬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최초의 국가로서 현재까지 비밀리에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얼마 전 리비아의 핵물질이 북한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그들이 '깡패국가'들에 핵물질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염려스러운 일인데 만일 핵물질을 리비아보다 더 지독한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에 판매한다면 이것은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미국인들에게만 국한되며 한국인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외교관들의 경우 북한의 괴상한 지도자가 추진하는 외교정책을 상대해야 하는 것도 버겁다. 그런데 이는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한국인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백만의 북한동포들에 대한 염려는 왜 하지 않는가? 엄청난 크기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왜 없는가? 북한에 의해 납치되어 여태껏 풀려나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붙들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분노를 왜 하지 않는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국은 6·25 전쟁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장병들이 피를 흘려 한국을 구했으며 한국인들은 알아주지 않지만 3만 7,000여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은 여태껏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은 감사의 마음은커녕 오히려 배 아파하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수치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남한이 북한보다 GDP가 25배나 높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들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를 3%조차 할당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미군의 주둔에 분개하고 있다.
25년 전쯤에 미국은 한국에 1990년, 혹은 2000년 즈음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어야 한다. 충분한 경고를 통해 한국의 자유로운 시민들에게 북한이 얼마나 남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협하는지 그리고 국방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식시켰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을 것이다.
한미관계가 불협화음을 나타낸 이후 더 이상 한국인들은 미군의 철수로 인해 야기될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30년 전 DMZ를 방문했을 당시 나는 미군이 최전방에서 자유를 지키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흘 전 다시 찾아간 DMZ에서 여전히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미군들과 그들이 받고 있는 대접을 보면서 침통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다.
애치슨 라인 재연?
[전 국회의원 이동복 선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워싱턴의 내쇼날 프레스 클럽에서 '중국의 위기 . . . 미국의 대중국정책 점검'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연설은 주제가 미국의 대중국정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는 관련이 없는 엉뚱한 대목 때문에 두고두고 유명세를 물게 되었다.
문제의 대목은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에 관한 언급이었다. 애치슨은 이 연설에서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은 "북으로 알루샨 열도로부터 일본본토와 유구 열도를 지나 남으로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선언했다.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내팽개친 것이다.
이 같은 '애치슨라인'의 선언은 1949년에 있었던 주한미군의 철수에 이어서 나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애치슨의 내쇼날 프레스 클럽 연설 1주일 후인 1950년 1월 19일 미 하원은 푼돈에 지나지 않는 액수였던 트루먼 행정부의 대한(對韓) 군사원조 동의 요청안마저 부결시켰다. 그리고 5개월 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김일성의 공산북한이 스탈린의 구 소련과 마오쩌뚱(毛澤東)의 공산중국의 지원 하에 기습적 전면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애치슨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한국을 뒷날 '애치슨라인'으로 통하는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내침으로써 김일성의 북한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남침을 단행하게 했다는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형태는 다르지만 사실상 그 때의 '애치슨라인'의 부활극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14일 미국 아시아재단에서 행한 미싉 라이스 미 국무부 정책실장의 연설 내용이다.
'변화하는 아시아에서의 도전과 기회'라는 제목의 이 연설에서 라이스 실장은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 수행에 있어서 미국과 '핵심적 양자관계'(Key Bilateral Relationship)의 대상국가"를 오직 '일본·중국·인도·파키스탄' 등 4개국으로 한정했다.
이 연설에서 라이스 실장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따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태평양에서의 핵심동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때로는 보완적, 때로는 공통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상호 영향력을 결합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라이스 실장의 연설 내용은 특히 주한미군의 감축이 현실화하는 시점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1950년의 '애치슨라인'을 연상시키게 된다.
그 동안 3만7,000명 선을 고수해왔던 주한미군의 감축은 이번에 그 중 1개 여단의 이라크 전출을 계기로 표면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보다 더 근본적으로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 즉 독자적인 대북유화정책으로 인하여 전통적 한미 안보동맹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변질·훼손'된 데다가 '복구'될 여지도 없다는 판단에 입각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클린턴 행정부 때 북핵문제에 관한 이른 바 '페리 보고서'의 주인공이고 지금은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도와주고 있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장관의 최근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에서 조선일보와의 단독회견에서 "한미 양국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정책을 추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한미 양국이 "동맹국으로서의 '공동의 적'과 '공동의 목표'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생각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최근 "우리는 우리 군대를 원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곳에 주둔시킬 것"이라면서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이 2차대전 직전 독일의 주변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테러국가들과 개별적 평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잘 곱씹어 보면 바로 한국의 '반미정서'와 이른바 '민족공조'론에 입각한 대북유화정책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오는 11월 부시 대통령과 대권을 겨루는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최근 그가 당선되면 "북한과 단독협상을 시작하겠다"면서 심지어 북한과의 단독협상에서는 "북한의 핵포기를 유인하는 방안으로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군사력 감축은 물론,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함께 남북한의 통일문제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급변을 예고하는 주변 국제환경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그 동안의 생존과 번영 기조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이 나라 내일의 주인인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차원에서 이 나라 근세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탐구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민노당 '전력증강 없는 미군감축' 주장
미국이 '주한미군 1만 2,500명 2005년말까지 감축'방안을 6월 6일 한국에 통보한 가운데 평택지역에서 미군기지 이전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친북운동권들이 '전력증강 없는 주한미군감축'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한미국완전철수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민노당과 '평통사'(상임대표 문규현, 홍근수), '통일연대'(상임대표 한상렬), '전국민중연대'(상임대표 정광훈) 등 친북운동권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연일 시위를 갖고 있다.
민노당 등은 7일 기자회견에서 "대북한 선제공격과 대중국 봉쇄를 노린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또한 한반도평화의 위협으로서 즉시 철회돼야 한다"며 전력증강 없는 주한미군감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노당 등은 또 "초 과잉억지력인 주한 미군은 무기장비도 철수시켜야 한다"며 "주한미군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 날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원은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해온 만큼 이번 상황을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해 나가는 좋은 과정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나라는 지금 매우 위태한 때에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안정은 위협을 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때 정상적 신앙생활도 가능하다. 이 나라의 현실은 국민들의 불신앙과 교만, 안일과 부도덕의 결과이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불행은 안일했던 젊은 세대들의 몫이며 그 댓가는 클 것이다. 믿는 기성세대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북이 훈계하고 지시한 회의
[얼마 전 조선일보 사설의 한 내용을 소개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아시아판 최신호 표지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싣고 '이 사람이 왜 웃고 있을까'란 제목의 커버 스토리를 게재했다. 타임은 한국 내 좌파 민족주의(leftist-nationalist)의 집권, '악한 용'(미국)이 '로미오와 줄리엣'(남과 북)의 '결혼'(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초등학교 4학년 통일 교육 교재, 핵 개발에 따른 북한의 입지 강화, 한·미동맹 동요 등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김정일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그냥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광경이 엊그제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학술회의에서 펼쳐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 직접 참석해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 간 협력은 더욱 본격화될 것"이라면서 "그때에 대비해서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 참석자들은 빈말로라도 핵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발언 한마디 없이 온통 '반미(反美)'와 '민족공조'뿐이었다.
북측 인사들은 "동맹보다 중요한 것은 북남관계다" "미국은 통일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미국과 공조하는 건 결국 6·15 공동선언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철수, 주적론과 국가보안법의 폐지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이들은 남북경협이 지지부진한 것 역시 미국의 간섭 때문이라면서 경협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한국을 나무랐다. 경협대상은 경공업뿐 아니라 기간산업 첨단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와서 하고자 한 얘기는 하루빨리 이 땅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북한 경제 전반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한국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라는 말뿐이었다. 그것도 도움을 청하는 건지 훈계하는 건지 지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말이다. 북한이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동안 북한을 다뤄온 우리의 자세에 어떤 잘못이 있었기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북한 지원에 대한 이견(異見)
미국 남침례교 종교자유 전문가 리차드 랜드 씨는 최근에 "원조의 공정한 분배를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모든 원조의 완전한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말하기를, "김정일은 당신의 국민을 자유케 하라, 당신의 국민을 먹이라, 당신의 국민을 돌보라, 그러면 세계는 몰려와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 때까지, 비록 당신의 국민이 굶주리고 고통을 당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유여하게 만들 수 없고, 만들어서도 안되고 만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해교전 유족이 조국을 떠나겠다는 이유
[조선일보의 다음과 같은 사설을 소개한다.]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선제공격을 해 일어난 서해교전에서 6명의 장병이 전사한 지 2년이 지났다.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어제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내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으나 쓸쓸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이 소식보다 더 참담한 건 이 사회와 이 정부를 향해 유족들이 쏟아낸 질문과 절망감이다.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도 지금처럼 감사원이 나서서 경위를 감사했는가,' '우리 아이들이 죽었을 때 어느 누가 사과했는가,' '다른 나라에 갔다가 죽은 사람에게는 지위 고하를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조문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6명의 장병 영결식 때는 누가 왔었는가. 정부 인사는커녕,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도 불참했던 정부 아닌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 것 "현충원에 묻혀 있는 아들을 고향으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한 아버지의 토로다. 이 아버지는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북한 병사들에게 목숨을 잃은 자식은 죄인밖에 더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아들의 유해를 고향 선영 아래로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내 자식을 죽인 이북의 김정일보다 미국을 적이라고 하는 남한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도 했다.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이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 말을 전해 들으면서는 더 이상 나라를 변호할 용기조차 잃게 된다. 이 부인은 주한미군사령관이 2주기를 하루 앞두고 보내준 위로 편지를 소개하면서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더 기억해준다"면서 "솔직히 한국이 싫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6명의 장병들은 국가의 명에 따라 조국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바친 이들이다.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영결식엔 물론 대통령이 참석했을 것이고 그들은 지금 서해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해를 현충원에서 고향으로 옮기겠다고 하고 부인은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다. 이러고서 앞으로 누가 조국의 위난(危難)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겠는가. 아니 이들에게 이런 한맺힌 말을 토하게 하고도 나라가 무슨 염치로 그들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중요하다. 그러나 남북 화해를 추진하는 것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이토록 냉대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다운가 하는 품격(品格)의 문제다.
그 외의 주제들
[성경본문 문제]
킹제임스 영어 성경(KJV)이 무오(無誤)하다고 생각하는 자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1611년 제임스 1세 때에 영국에서 번역, 출판된 소위 킹제임스 성경만이 무오(無誤)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1885년 나타난 신구약 개역판과 그 이후의 대부분의 영어 번역 성경들, 그리고 한글 개역 성경을 이단적 번역이라고 비평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며 지나친 비평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문제는 성경의 사본에 대한 문제와 관계된다. 중세시대에는 천주교 세계에서 라틴어 성경이 주로 사용되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개혁자들은 원어성경, 곧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과 신약의 헬라어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다 전통적인 사본들에 근거한 성경이었다.
그러다가 1881년 소수의 고대사본들에 근거하여 번역된 신약성경의 출판으로 성경의 본문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특히 신약본문에서 문제되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서 소수의 고대사본들의 본문과 다수의 전통사본들의 본문에 대단히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 두 종류의 본문 중 과연 어느 것이 성경의 원본에 충실한 것인가?
우리는 소수의 고대사본들의 본문보다 다수의 전통사본들의 본문이 성경원본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고대사본들(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파피러스 사본들)은 서로 다른 경우들이 적지 않으며 그 차이성도 다양하다.
2. 고대사본들에 근거한 본문은 매우 주관적이고 비확정적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오늘 우리는 성경 원본의 믿을 만한 본문을 갖고 있지 못하다.
3. 우리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보호를 믿는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축자적으로 영감하셨고 그 본문을 훼손되거나 상실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잘 보존되게 섭리하셨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 "옛 하나님의 백성의 모국어(母國語)였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기록 당시 여러 나라들에게 매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직접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받았으며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종교상 모든 논쟁들에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그 성경[원어성경]에 호소하는 것이다."
4. 우리는 성경을 위탁받은 교회의 권위와 역할을 중시한다. 적어도 성경의 본문에 관한 한, 우리는 그것을 위탁받은 교회들, 특히 헬라어를 계속 사용해왔던 비잔틴 교회들의 권위와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보존해 왔듯이, 비잔틴 교회가 신약성경을 보존해 왔다고 본다. 로마서 3:1, 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더욱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가 신약성경의 맨 끝에는 기록되어 있다(계 22:18, 19).
5. 우리는 다수사본들의 지지를 중시한다. 이것은 헬라정교회의 전통적, 귄위 있는 본문을 밝히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의 5,000개의 사본들 가운데 다수사본들(약 85퍼센트 이상)이 일치하게 가지는 본문을 성경의 원본의 본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6. 전통사본의 본문에 대한 고대적 증거들이 없지 않다. 전통사본들이 주로 9-11세기의 후대사본들이지만, 그들의 본문이 반드시 후대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본문은 빈번히 고대의 사본들이나 역본들, 혹은 교부들의 인용문들에서 확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세기의 파피러스 사본들이 4세기의 다른 고대 사본들과 다르고 후대의 비잔틴 사본들과 일치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몇몇 고대사본들에 근거한, 그것도 때때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들에 주관적 선택에 의해 구성된, 매우 주관적이고 불확실하고 비확정적인 본문을 반대하고 다수사본들에 근거한 전통본문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다수의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본문들이 글자적으로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원본의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의 견해가 이러하지만, 킹제임스 성경만이 무오하다는 주장은 독단적인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후 교회들에게 무오한 사본을 주지 않으셨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본상에는 약간의 부정확성이 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도 무오한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당시에 최선의 원어성경에서 가장 잘 번역된 성경에 불과하다. 그 당시에 갖고 있었던 그리스어 신약 사본들은 제한되어 있었다. 오늘날까지 원본의 본문을 무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인정된 사본은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믿음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믿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통적 본문과 소위 고대 사본에 근거한 본문 간에 근본적 차이점들이 있는가? 물론 상당수의 차이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그 차이점들 때문에 그 두 종류의 성경이 전체적으로 교리적, 윤리적 내용의 차이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 종류의 성경이 주는 교리적 체계와 다른 종류의 성경이 주는 교리적 체계가 다른가 하는 질문이다.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는 한글 개역성경에 근거하여 성경 교리들의 체계를 정리하였으나 그것이 서양사람들이 킹제임스 성경에 근거하여 정리한 체계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두 종류의 본문이 내용적으로 전혀 다른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한 종류의 것이 이단적이라고 비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동안 그것을 사용하여 많은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하신 사실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통적 본문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까지 사용하여 오는 한글 개역성경에 대하여 과격하게 비난하는 말을 용납할 수 없다. 개역성경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성경의 바른 본문을 확인하고 확증하는 것이 건전한 태도라고 믿는다.
[교회의 쇠퇴]
미국 교회의 쇠퇴
헌츠빌 타임즈 1997년 7월 19일자에 의하면,
미합중국 장로교단은 매년 약 3만 5천명의 교인을 잃어버리고 있고,
감독교단은 지난 30년 동안 교인수가 30퍼센트 떨어졌다고 한다.
크리스챤 뉴스 1997년 7월 7일자는 새 갤럽조사에 의하면
미국내의 교회 참석자 수는 194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떨어졌다고 말한다.
기독교가 서양에서 시듬
영국에서는,
일정하게 주일에 교회 다니는
국민들의 비율이 27퍼센트이다.
서독은 교회 다니는 비율이 14퍼센트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단지 5퍼센트만
주일 아침에 교회에 참석하는 일에 마음을 쓴다.
스웨덴과 아이슬랜드와 핀랜드는,
단지 4퍼센트만 교회에 다닌다.
신학적 자유주의가 이러한 쇠퇴의 중심에 있다.
[시대적 사조]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는,
진리가 단순히 문화나 개인의 '구성물'이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내게 참된 것이 너에게는
참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적 경험주의,
과학 및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들이나
다른 모든 객관적 진리에 대한 점진적 거부를 대표한다.
상대주의와 개인의 경험이나 느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개인적 진리의 기초이다.
설문 조사 통계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86퍼센트는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72퍼센트는 절대적 진리의 개념을 부정하고,
61퍼센트는 문자적 사탄이나 지옥을 부정하고
40퍼센트는 하나님에 대한 뉴 에이지(범신론적) 견해를 믿는다.
'가장 영향력 있었던' 기독교 지도자들?
크리스챤 뉴스 2000년 2월 7일자(3쪽)에 의하면,
크리스챤 히스토리지의 최근호에 실린 글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기독교인들 10명의 명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2) 기독교 학자 씨 에스 루이스,
(3) 오순절파 흑인 목사 윌리암 시무어,
(4) 천주교 박애주의자 테레사 수녀,
(5) 신학자 칼 바르트,
(6) 교황 요한 23세,
(7) 소련의 소설가 알렉산더 솔제니친,
(8)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9) 선교 운동가 죤 모트,
(1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건전한 기독교 신앙에서 거리가 멀다.
교황 요한 23세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테레사 수녀는 천주교인이다.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자이며,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씨 에스 루이스도 결함 있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고,
윌리암 시무어는 현대 방언 운동의 시작자이며,
빌리 그레이엄은 신복음주의의 대표자이다.
이런 자들의 영향 속에 있는 현대 교회 혹은
현대 사회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염려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 하나님 없는 생활
한 구별된 묶음의 교리들이나
명제적 진리들이라기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음 두 가지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마음가짐이나 분위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나는 이성에 대한 깊은 불신이고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주의적 사고를 거부한다)
다른 하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근본적 거부이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의 거부 즉 진리의 죽음으로 인도하였고
진리를 여러 개의 진리들로 대치하였다.
불관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관용하지 않을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리가 성경이 제시하는 바대로가 아니라면,
성경적 기독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신학적 무정부상태는 일체성을 천주교회의 신부,
개신교회의 목사, 미국 원주민의 샤먼(무당),
불교의 수도승 같은 광범위한 신학적 다양성 안에서
찾을 만큼 포용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용에서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님이 없음을 주장하고,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한 자가 되어,
권위뿐만 아니라 또한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탐욕스럽게 붙잡는다.
예수님 모독하는 것을 항거할 수 없는가?
미국 필라델피아 시의 템플 대학교 당국은
그리스도를 동성연애자로 묘사하는 한 연극을 항거했다는 이유로
우등생 학생인 마이클 마캐비지를 정신병 감호소에 보냈다.
그는 1998년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비열한 연극
'코퍼스 크리스티'(그리스도의 몸)를 공연할 계획에 관해
불평하고 항의하는 전단지를 붙였었다.
예수님은 벌거벗은 여성으로 묘사되고 모독을 당할 수 있지만,
그러한 일은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통계들]
한국의 개신교회 통계
2003년의 교회 및 교인 통계에 의하면
(*는 2000년도 교회 및 세례교인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7,105개 약 235만명,
예장(고신) 1,602개 약 40만명, 예장(합신) 750개 약 12만명,
예장(개혁)* 5,200개 약 115만명,
예장(합동보수)* 857개 약 9만명,
예장(대신)* 1,312개 약 11만명,
예장(고려)* 331개 약 2만 4천명, 예장(고려개혁)* 154개 약 2만명,
예장(성장)* 197개 약 3만 5천명, 예장(합동정통) 2,680개 약 84만명,
예장(통합) 6,928개 약 233만명,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기장) 1,536개 약 33만명,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 5,386개 약 142만명,
성결교회(예성) 921개 약 16만명,
성결교회(기성) 3,275개 약 63만명,
침례교회(기침) 2,508개 약 75만명,
순복음교회(기하성) 1,870개 약 124만명,
구세군* 240개 약 4만 8천명,
루터교회* 30개 2,605명,
그리스도의 교회* 452개 약 5만 5천명,
나사렛 교회* 246개 약 1만 8천명,
성공회* 111개 약 5만명 등이다.
일본의 교회 통계
2001년 통계에 의하면,
이웃 나라인 일본의 개신교회수는 7,725개이며,
등록교인은 약 53만명이고 주일예배 출석수는 약 27만명이다.
인구대비 약 0.4퍼센트이다.
개신교파수는 160개이다.
교회 없는 리 동 부락은 2,557곳 중 1,737곳이며,
인구 20만명 이상 지역 중 79곳이다.
천주교 성당수는 1,072개이며 등록교인수는 약 48만명이다.
신도교 교인수는 약 1억 8천만명,
불교 교인수는 약 9천 5백만명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들
6,250만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는 로마 천주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단체이다.
남침례교회는 1,600만명을,
연합감리교회(UMC)는 830만명을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는
550만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다.
몰몬교는 530만명을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는
510만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다.
슬픈 통계들
카리스마지 2002년 5월호는 다음과 같은 통계를 실었다.
1. 지난 2천년 동안 전세계에서 7천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2. 세계에는 5억명의 고아들과 7천만명의 버려진 자녀들과 유아들이 있다.
3. 세계적으로, 2억명의 자녀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있다.
4. 2002년 현재에도, 세계에는 여전히 3천 5백만명의 노예들이 있다.
5. 아동 성학대자들은 약 5백 8십만명의 어린이들을 희생시켰다.
6. 세계에는 2천 4백만명의 창녀들이 있다.
7. 전세계에서 매년 약 470억불의 코카인이 팔리고 있다.
8. 교회 직분자들이 매년 약 160억불 교회돈을 도적질한다.
[과학]
우주 비행사들의 바른 고백
논리적인 과학자들과 대담한 조종사들이 우주 비행후 영적으로 변했다.
미국의 자유적인 민주당 상원의원이며 우주 비행사요
장로교인인 죤 글렌(John Glenn)은 최근의 비행 후,
"이런 종류의 창조 세계를 우러러 내다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인용된 헌츠빌 타임즈
1998년 11월 3일자 글은 다른 우주 비행사들의 비슷한 말들도 인용되어 있다.
랜덜 헤트케는 참된 과학 선생님의 곤경이라는 제목의
책 67쪽에서 다윈의 사상과 유신론적 진화론을 반박한다.
그는 말하기를, "학설로서의 진화론의 문제점은 설득에는
긴 말을 하지만 자기 비판과 실험에는
간단히 말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휴머니스트(인문주의) 선언의 진화(進化)
스트레이트웨이(Straightway)
편집자 H. T. 스펜스 박사는 쓰기를,
"우리 사회는 생활의 각 부분에서 하나님을 피함에 있어서
무신론적이게 되었다. 진화론은 인간 기원에 대한
대화에서 하나님을 드러나게 제거하면서
인간 존재의 각 방면에 침투해 들어왔다"고 했다.
창조과학회의 창설자 헨리 모리스 박사는
"미국 휴머니스트 협회(AHA)는 새 휴머니스트
선언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제1 휴머니스트 선언(1933년)은 죤 듀이와
몇 사람들이 미국 휴머니스트 협회를 조직했을 당시에 공포되었다.
제2 휴머니스트 선언(1973년)은
"어떤 신(神)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라고 진술했다.
제3 휴머니스트 선언(1980, 2003년)은
"인간은 자연의 필수적 한 부분, 즉 인도자 없는
진화적 변화의 결과이다. 인간은 자연을 '자존적'이라고
인정한다"고 진술한다. 국가들을 한 중앙 정부 속으로,
모든 종교들을 보편구원론으로 집결시키기 위해
사회를 세속주의의 새 환경에 순응시키는 것이 다음 단계이다.
창조를 믿는 모든 성도는 이런 사상들을 단호히 배격한다.
슈퍼 컴퓨터
"IBM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
'파랑 유전자'(Blue Gene)라고 명명된 그것은
13만개의 컴퓨터 처리장치를 사용하며
가장 빠른 현재의 기계보다 6배나 더 빠르게 작동한다.
기술자들은 그것을 2005년에 설치할 예정이다."
[지진과 기근]
1988년-1999년 세계의 대지진과 사망/실종자수
1990년 6월 21일 이란 4만명
1990년 7월 16일 필리핀 1,641명
1992년 10월 12일 이집트(카이로) 552명
1992년 12월 12일 인도네시아(플로레스) 2,000명
1992년 3월 13일 터키 653명
1993년 9월 30일 인도 7,601명
1995년 1월 17일 일본(고베) 6,424명
1997년 5월 10일 이란 최소 2,000명
1998년 12월 7일 아르메니아 25,000명
1998년 2월 4일 아프가니스탄 3,500명
1998년 5월 30일 아프가니스탄 5,000명
1999년 8월 17일 터키 15,000명(?)
1999년 9월 21일 대만 2,000명 이상
[참고]
1556년 중국 산시성 80만명
1923년 관동 20만명
30억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
2003년 7월 6일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인 30억명이 하루 2불($) 미만으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 중 3분의 1은 생활비가 1불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선진 20개국에서도 인구 10% 이상이
빈곤선 이하로 생활한다고 한다.
전세계 실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억 8천만명이며
실제 실업자는 약 7억 3천만명이라고 한다.
[덧 없는 생명]
한 건강식품업체 창업자 휴즈의 44세 요절
세계적 건강식품 제조업체인
미국 '허벌라이프'의 창업자 마크 휴즈 회장이
2000년 5월 21일 4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말리부 해변에 있는
자신의 2,500만 달러(약 275억원)짜리 저택에서 잠자다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허벌라이프는 다이어트
및 건강보조 식품으로 세계 48개국에 판매하여
1999년 한 해 9억 5,62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대기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덧 없다.
우리는 덧 없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계 연합]
유럽연합(EU)의 점진적 권력
유럽연합(EU)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세계적 초(超)권력'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2001년 12월 로얄 팰리스에서 모였다.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2001년 12월 16일자에 의하면,
유럽연합 정상회의는 "2010년이 되기 전에 더블린에서
두브로브니크(Dubrovnik)까지 5억 이상의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연합된 유럽을 구상할 제헌(制憲) 대회"를 시작하였다.
현재 유럽연합은 "공동의장(대통령), 의회, 사법 제도,
중앙은행, 국가, 권리 장전, 및 8만 페이지의 법전을 함께 가지고 있는
15개 국가들의 약 3억 8천만명"을 대표한다고 한다.
새 유럽연합의 확대 체포제도 아래서는,
유럽연합의 한 국가의 국민은 다른 한 국가로 이첩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 거대한 국가가 되어감
유럽 연합(EU)은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가진 거대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아일랜드로부터 러시아 경계까지
25개국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고 새 헌법을 초안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입법 권력 기관을 가질 것이다.
저자 소개
1973년, 연세대학교(철학과) 졸업(B.A.)
1979년, 총신대학 신학연구원[신학대학원] 졸업(72회)
1983년, 미국 페이스(Faith) 신학교 졸업(Th.M.)
1988년, 미국 밥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총회신학연구원(합동보수) 조교수 역임
예수교 장로회 신학연구원 조교수 역임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조교수
합정동교회 담임목사
J. G. 메이천, 신약개론, 신앙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 번역
현대교회문제: 배교, 타협, 혼란(옛신앙, 2001),
신약성경강해: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요한계시록 저술
현대교회문제 자료집
저 자
김효성
초판발행
2004년 9월 15일
발 행 처
옛신앙 출판사
Old-time Faith Press
주 소
전 화
팩 스
홈페이지
121-884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4-1
02-334-8291
02-337-4869
www.oldfaith.net
oldfaith@oldfaith.net
등록번호
제10-1225호
책값
6.000원
ISBN
89-951985-1-6 03230
♣ '옛신앙'이란,
옛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주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
오직 정확 무오(正確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성경에만 근거한 신앙,
오늘날 배교와 타협의 풍조에 물들지 않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출처 : 인터넷로고스선교회
글쓴이 : e-no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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