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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 8 장 역사 섭리와 성도의 사명

하나님아들 2013. 3. 16. 23:54

 

 

제 8 장 역사 섭리와 성도의 사명

 

 

역사 섭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시대 성도의 사명을 깨닫고 주님과 함께 살며, 주님으로 역사 종말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마지막 시대 성도의 사명을 믿음으로 확실하게 붙잡아야한다.

 

 

1. 누가 성도냐 ?

 

누가 성도냐?

일반적 의미로 교회 나오는 교인들이나 예수 믿는 신자들을 성도로 대부분 호칭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 성도는 본 『하나님의 역사 섭리』에서 말하는 성도는 아니다. 그리고 성경말씀도 교회 출석하는 사람이나 예수 믿는다고 해서 성도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살후 1:10)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엡 1: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상기 세 구절의 성구에서도 성도가 누구이며 그와 대조적인 신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구별해주고 있다. 엡1:1절에는 “성도들과 신실한 자들”로 구분했으며, 고전1:2절에는 “거룩한 성도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 구분하였다. 살후 1:10절에도 “성도와 믿는 자”로 구분하였는데 특히 이들은 주님 재림 하실 때에 그 영광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 섭리』 책속에 언급된 성도들은 역사 종말에 등장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자세히 말씀 드리면 주님이 재림 하실 때에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며 왕의 복음을 온 세계만방에 전파하는 사명을 다 감당하고 휴거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이들의 신분과 사역의 모습과 그 결말과 영광의 모습은 너무나 성경에 자세히 계시되어 있다. (아래 종말 성도의 사명 내용에 자세히 기록)

 

오늘 현대 교회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하게 선포해야 한다.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늘 연약하여 허덕거리는 신자들, 젖만 먹기를 좋아하는 신자들을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양육하여야 하며,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거룩한 신부성도로 양육하여야 한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19)

 

그러려면 주의 종 자신이 먼저 종말의 사명자가 되어야 하며, 주의 종 자신 속에 때에 따른 양식의 말씀을 먹어버리고 완전한 생명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서 생명의 빛을 비춰야 하고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성도이며 역사종말의 성도들이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5-46)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8)

 

 

2. 종말 성도의 사명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너무나 확실하게 종말 성도들이 왕이신 주님의 성령으로 감당해야할 사명의 내용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때에 감당할 사명을 세 분분으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다.

 

첫째 부분은 역사종말의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그리고 이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준비되어져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겠다.

 

두 번째 부분은 주님의 교회를 맡아 목회하는 주의 종 자신이 신부된 종으로 반드시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고

 

세 번째는 이와 같이 준비된 교회, 준비된 주의 종들이 대 환난 날에 감당하는 사명 구체적 모습을 말씀 드리겠다.

 

오늘 현재라는 시점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 계획을 미리 알고 미리 준비하는 삶이 중요하다.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준비된 교회와 준비된 종들은 반드시 주님이 사용하신다.

 

1) 재림 주님을 영접할 교회로 준비시키는 사명

 

⑴ 일곱 금 촛대로 상징된 금 촛대교회로 준비시키는 사명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1:20)

 

역사 종말을 사는 주의 종들은 내가 섬기는 교회가 반드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신부 단장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교회의 모습을 일곱 금 촛대로 상징하여 말씀하셨다.

 

금으로 만들어진 일곱 금 촛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순도 100%의 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풀무 불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풀무 불같은 그 날이 오기 전 이 시대에서부터 주님의 교회가 환난을 이기도록 주의 종은 주님의 백성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사 48:10)

 

어떤 환난을 만나도 지혜로운 주의 종은 주님의 교회를 더욱 거룩한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체험하게 하고, 말씀이 실체화가 되는 삶을 살게 하여 모든 옛사람의 찌꺼기와는 완전 분리되는 새 사람의 삶을 살게 하므로 정결하고 정화된 왕의 인격과 심정을 소유하게 만들고, 오직 왕권통치로만 사는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금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순결과 거룩함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물질이다.

 

일곱 금 촛대는 살구나무 모양인데 이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솨케드”로서 기본어근 “솨카드”는 그 의미가 ‘경계하다’ ‘잠자지 않는’ ‘밤 새우는’ ‘ … 을 감시하다’ ‘깨우다’ ‘ … 망보다’ 등의 뜻이 있다. 참으로 주의 재림을 대비하는 촛대 교회의 영적 기능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오늘 이 시대에 최고로 복된 교회는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교회, 짐승정권이 통치하는 환난 날을 경고하며, 짐승 표를 받으면 불 못 간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교회가 진짜 복된 교회다. 이와 같은 교회로 준비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 주의 종들의 사명이다.

 

그리고 아무리 죄악의 밤이 깊어가도 결코 꺼지지 않는 성령의 기름, 생명의 기름, 사랑의 기름, 말씀의 기름(예언의 말씀)을 충만히 준비하게 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생명의 빛을 발하는 교회로 준비시켜야 한다.

어두운 밤에 등불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리 밤이 깊어가고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 할지라도 끝까지 생명의 빛을 발하는 기름을 지속적으로 성도들의 영혼 속에 준비 시키는 것이다.

 

⑵ 일곱 교회 신앙을 재림신앙 지침서로 삼아 준비시키는 사명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계 2:1)

 

아시아와 유럽의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서 주님이 특별히 소 아시아 일곱 교회의 신앙을 예언의 말씀이 되는 계시록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님이 재림 할 때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대표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편지를 발송하지 아니하시고 일곱 교회의 사자를 수신자 삼아 편지를 보내신 것은 종말에 주의 종들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교회로 변화시키고 준비시킬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신 것이다. 오늘 이 시대 주님의 교회를 맡아 목회하는 주님의 종들은 주님이 보내신 편지를 감격과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변화시켜야 한다.

 

일곱 교회 신앙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칭찬, 책망, 경고, 권면과 권고 그리고 약속으로 이루어진 말씀이다. 주님이 칭찬하신 신앙은 현대교회가 계속 유지 발전시켜야 할 말씀이고 책망하신 말씀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방향전환을 해야 할 말씀이며, 경고의 말씀은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유혹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경성해야할 말씀이다. 그리고 권면과 권고의 말씀은 더욱 용기를 가지고 주님의 위로에 감사하며 충성해야 할 말씀이고, 약속의 말씀은 큰 소망과 영광의 때를 바라보고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신앙으로 승리의 열매를 쟁취해야할 말씀으로 주셨다.

 

한 마디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재림 신앙의 지침서이다. 이 말씀으로 주님의 교회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교회 곧, 신부 단장된 교회로 준비시키는데 최선을 다하자.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처음 사랑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처음 사랑은 십자가에 나타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아들 예수님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사랑이요 부활 승천하시고 아들의 영으로 피조물인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사시는 사랑이다. 이 큰 사랑을 받은 현대교회가 왜, 무엇 때문에 처음 사랑을 버렸나? 깊이 생각하고 회개하라!

 

교회조직과 행정, 아름다운 행위와 헌신적 수고, 영분별과 인내 그리고 열심 … 이 모든 것이 아무리 좋아도 이것 때문에 자랑이 되고, 그 교회의 의가 되면 안된다. 나도 모르게 형식과 생명 없는 외식에 빠진다. 내가 영으로 주님을 처음 만난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회개하므로 처음 사랑, 본질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자.

 

서머나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환난과 궁핍이 있는 교회나 영적으로는 부요한 교회다. 실상의 신앙이 너무나 좋은 교회다. 종말시대 교회는 앞으로 닥쳐올 대 환난 날의 환난과 궁핍을 미리알고 지금부터 영으로 부요한 영적생활을 누리며 살자. 세상을 이기는 믿음, 풍성한 영의 양식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생활, 오직 생명의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이 실상의 부요한 삶이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것을 책망 받았다. 이는 곧 불의한 제물에 눈이 어두워진 물질주의 신앙을 책망한 것이다. 지금 세상은 황금만능의 세상이다. 그러나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신다. (딤전6:10)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온 물질주의를 배격하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적 가치에 기반을 둔 목회, 선교, 전도, 부흥 등 교회의 모든 목회상황을 새로 점검하고 철저히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라. 말씀이 우리 인격의 실체화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 대 환난 날의 물질시험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666 짐승 표 시험)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을 책망 받았다. 이로 인하여 교회가 영적 음행 죄에 빠지고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큰 죄를 지었다. 종말에 주님의 교회는 교회와 주님의 종들을 미혹하는 음녀의 음행정책과 그들의 교훈을 절대 용납하면 안된다.

 

목사 자신이 먼저 역사 종말의 때에 따른 양식을 먹지 않으면 분별이 안된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님의 교회의 거룩함과 정결을 지키며 끝까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목사와 그 교회 성도들 모두가 작은 책의 말씀을 꿀처럼 먹어야 한다. 그 말씀 안에 작은 음녀에서 거대한 국가적 음녀까지 그리고 그들의 음행정책이 전부 다 보인다. 그리고 작은 책의 말씀 곧, 계시록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으면 강력한 예수사상의 사람으로 바꾸어지며 순교의 사람으로 바꾸어진다. 이것은 말씀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다.

 

사데교회는 영적실상이 거의 다 죽은 교회다. 교회라는 이름과 예수님을 믿는 이름은 가졌으나 모두가 허실이다. 교회의 거룩함과 권능을 다 상실하고 예수님의 이름은 받았으나 예수님의 생명이 거의 말라 버리고 죽어버린 상태 곧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에 빠진 교회다. 성령의 역사, 말씀의 역사가 전혀 없는 교회다.

 

오늘 현대교회도 사데교회 같은 교회가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거의 죽데 되었는가?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면 강도만나 죽는다. 세상이 좋고 육의 소욕을 따라 은혜동산을 떠나고 말씀을 떠나고 주님을 떠나는 육신적 신자가 되면 생명의 말씀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목사부터 먼저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신자들이 산다.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 밑으로 돌아가라. 내가 처음 받은 그 주님의 사랑과 생명과 말씀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회개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자. 주님의 긍휼이 임하기까지 엎드려 기다리자.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 칭찬받은 교회다. 적은 능력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것을 칭찬받았다. 이로 인하여 이 교회는 아무도 닫을 사람이 없는 열린 문을 주님께로 받았다. 참으로 복된 교회다. 주님 오실 때까지 내게 주신 은혜와 사랑과 내 안에 실체화 된 모든 인격적 능력에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하자.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신앙상태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한 상태를 책망 받았다. 영적으로 확실하지 못한 신앙은 허상의 신앙이요. 생명이 없는 신앙이요. 죽은 신앙으로서 외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주님의 강력한 책망과 징계를 감사함으로 받아라. 그리고 더욱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라. 계속 받아들이라. 자랑을 버리고 계속 회개하면서 순수한 주님의 말씀만 받아들이라. 그리할 때에 말씀의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므로 새롭게 영의 사람으로 태어난다.

 

상기 일곱 교회 신앙의 적나라한 모습을 오늘 우리들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주의 종 목사 자신부터 철저히 회개하면서 말씀이 일하시는 대로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하는 교회로 만들어지자.

 

⑶ 해를 입은 여자와 같은 교회로 준비시키는 사명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계 12:1-2)

 

본문의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는 교회이되 역사종말의 교회를 말한다. (구약은 아내, 처녀, 딸 등으로 신약은 신부로 말씀) 일곱 금 촛대 교회와 같은 교회이다.

 

해를 입은 여자는 의의 태양되신 예수님의 인격으로 옷 입은 교회 혹은 빛의 말씀으로 무장된 교회(말씀이 실체화된 인격)로 말씀하시며, 달은 오직 주님의 발아래 무릎 꿇고 주님의 말씀만 받아들이고 오직 주님의 말씀의 빛만 반사하는 성도들을 의미하며, 열두 별은 순교한 열두 사도와 같이 승리신앙, 승리의 인격으로 면류관 쓰는 교회로 만들어야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남자 아이를 배어 해산의 고통을 하는 장면은 반드시 이 교회는 주님의 형상이 완전 이루어진 주님의 종들(두 증인)을 낳기 위해 부르짖는 고통을 즐겁게 감당하며, 주님의 때에 해산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비전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준비하는 교회는 참으로 복된 교회다.

 

특별히 이 교회를 “하늘의 큰 이적”으로 말씀하심은 여자의 모든 부분들이 유일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각종 마법과 술수로 거짓 기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 환난 날에 거짓 선지자는 마귀의 힘을 빌려 우상으로 말을 하게하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적을 행한다. 모두가 미혹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거룩함과 영광의 비밀을 나타내는 교회는 해를 입은 여자 같은 교회가 유일하며 이것이 “하늘의 큰 이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 곧 “하늘의 큰 이적”이 되는 교회는 주님이 만드시고 준비하시는 교회다. 주님의 일하심에 전폭적으로 순종하자.

 

⑷ 남자와 자민을 해산할 수 있는 시온을 준비 시키는 사명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사 66:7-8)

 

시온은 누구인가?

남자를 낳고 자민(子民)을 순산하는 시온이 누구인가?

시온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남자도 낳고 자민도 낳을 수 있는 씨를 먼저 잉태할 것이 아닌가?

시온은 시온교회를 말하며 확대된 의미로는 하나님의 선민된 나라를 말한다. 곧 역사종말의 시온나라다.

 

역사 종말에 어느 교회가 시온교회이며 어느 나라가 시온나라인가?

답은 간단하다. 말씀대로 남자와 자민을 순산하는 교회와 나라가 시온교회이며 시온나라다. 지금 예수님의 씨(말씀)를 잉태하여 달수가 거의 다 차서 신음하고 해산의 준비를 하는 교회가 있고 나라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해산하며 생산 할 것이다. 대 환난 날을 바라보고 그 날이 오기 전에(구로 전에) 남자를 해산 할 것이며, 대 환난과 동시에(구로 즉시) 수많은 자민이 되는 수많은 민족을 낳는다. 주님은 이 모든 준비를 은밀한 가운데 계속 준비 시키시고 계신다.

 

⑸ 신랑을 영접하는 기름과 등을 준비시키는 사명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4)

 

슬기 있는 처녀는 분명 주님을 신랑으로 영접하는 신부교회다. 말세에 주님의 지혜로 목회하는 주의 종들은 반드시 준비하는 사명을 부지런히 감당하고 있다. 인본적 목회를 버리지 못하고 목회 성공에 안달하며, 프로그램 목회에 매달려 있는 종들은 준비자체가 결코 안된다.

 

그릇은 금 그릇 은그릇, 큰 그릇 작은 그릇 이전에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준비 곧 깨끗하게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동체 교회와 개인의 심령을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생명의 말씀으로,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로 강력한 회개운동을 일으키는 교회가 참으로 복 있는 교회다.

 

그리고 아무리 죄악의 밤이 깊어도 주님 오실 때까지 생명의 빛을 계속 발하는 교회가 되도록 성령의 기름, 진리의 기름 곧 생명의 기름을 준비하는 교회는 참으로 복 있는 교회다.

당신이 섬기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주의 종 자신이 먼저 감람유로 상징된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고, 마지막 때 양식을 충만히 먹고 실체화 되어서 성령님의 일하심을 따라 그대로 순종 할 때에 주님께 인정받는 교회로 만들어 진다.

(계6:6, 마24:45)

 

⑹ 체질변화가 이루어진 교회로 준비시키는 사명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19)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 24:45)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채식만 먹는 사람과 육식만 먹는 사람은 확실히 그 체질이 같을 수가 없음같이 오늘날까지 복음사역을 감당한 교회와 앞으로 대 환난 날과 심판기를 맞이할 교회는 영적체질이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먹는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나 개 교회별로 목회자의 영적상태에 따라 지금 현재에도 영적 체질이 구분된 교회가 많겠지만 앞으로는 개 교회나 개성도 차원이 아닌 역사 전체가 결코 과거 일반적인 영적 체질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이 사실을 깊이 알고 새로운 시대를 감당 할 수 있는 체질이 변화된 교회로 준비시켜야 한다.

 

신자들에게 젖이나 먹이고 기독교의 초보만 가르치고 만다면 그 신자들은 결코 성도의 신앙으로 올라 갈수가 없다. 유약한 체질의 신자들은 환난 날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모두 다 짐승 밥이 되고 만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히6:1, 5:12,고전3:2)

 

정말 유의할 사항은 목자들이 주님의 양들에게 젖만 먹이고 기독교의 초보만 먹이고 만다면 그 목자가 받을 화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24:19)

교회가 대 환난 날을 이 길 수 있는 말씀의 양식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이요 밥이다. 마24:45절에는 때에 따른 양식으로 말씀하시며, 그리고 때에 따른 양식을 계1:3절에는 “이 예언의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계10:10절에는 “작은 책” 곧 계시록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분명하게 대 환난 날을 앞두고 그 날을 대비하여 먹어야 할 양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계시록은 “위험하다” “이단들이 즐겨 사용한다” “혹은 봉한 책이다” 등으로 핑계를 대면서 양들에게 먹이지 아니한다면 그 책임을 결코 피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섬기는 교회의 양들에게 이 예언의 말씀을 먹여서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대체질로 바꾸게 하여 어떠한 환난 날이 와도 이길 수 있도록 하라. 목사 자신이 먼저 시행하라.

 

2) 재림 주님을 영접할 신부성도로 자신의 인격을 준비함

 

⑴ 주님의 오른 손에 붙잡힌 일곱별과 같은 주의 종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1:20)

 

⑴ - ⑹ 번은 반드시 준비되어야 할 교회중심으로 드린 말씀이나 2)번부터는 개체인격의 소유자 곧 주님의 종들 자신이 준비되어져야 할 말씀이다.

 

종말 성도의 사명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님 앞에 준비가 되면 주님의 때에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할 사항은 지식이나 이론공부로 준비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사실이다. 말씀을 철저하게 내 속 사람 곧 영의 사람으로 먹으므로 준비를 해야 한다. 말씀이 그대로 심령화 되고 인격화 되며, 생활화 되어버려야 한다. 곧 생명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모하는 심령과 갈망하는 심령과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심령으로 말씀을 받아먹어 버리자. 꿀처럼 받아먹자. 그러면 내 안에서 말씀이 직접 일하신다.

 

일곱 별은 주의 사자를 말한다. 특별히 주님 재림 하실 때 주님의 오른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주의 종들을 말한다. 주님이 인정하는 종으로 준비되려면 우선 내 혼적 인격으로 붙잡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야 한다. 내가 목회하고 내가 설교하며, 내가 선교하고 전도하며, 내가 … 하고, 내가 … 하며

 

내가 붙잡은 것을 과감하게 포기할 때에 전능하신 주님의 오른 손으로 붙잡아 쓰신다. 그러므로 주님의 통치 속에서 목회자 자신의 자아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종으로서 사명 감당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리고 별은 그 위치가 밤하늘이다. 죄악의 밤이 아무리 깊어가도 죄악에 물들지 않고 주의 종의 위치와 직분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세다. 그리할 때에 이 주의 종으로 비취는 별빛으로 말미암아 많은 영혼들에게 재림 주님을 영접하는 징조의 역할을 감당한다.

철저하게 이 시대 주의 종들은 다른 빛은 거부하고 주님의 생명의 빛만 받아들이고 그 빛 가운데서 나(옛 사람 자아)를 포기하는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

 

⑵ 하나님의 印을 맞는 것이 준비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2-4)

 

하나님의 인을 치는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종들에게 인을 치시겠지만 이 시대를 사는 주의 종들은 성경에 계시된 말씀 속에서 인을 치는 역사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심정과 기다리는 심정은 있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혹은 욕심으로 기다리거나 대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그 뜻을 알고 그 뜻을 순전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대비하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종말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역사에 최종적 동역자로 사용하시는 종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들 곧 14만 4천명이다.

해 돋는 곳에서부터 인치는 천사가 올라와 인을 친다는 말씀은 인치는 역사의 시발점이 어디인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것 자체도 준비하는 삶이다.

 

영적으로 해 돋는 곳은 생명의 역사, 빛의 역사 곧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주 재림 전 지금은 극도로 사망권세가 득세하므로 과거 어느 시대보다 해 돋는 곳에서의 빛의 역사가 절실하다. 왜냐하면 빛의 역사로 만이 어두움의 권세, 사망권세, 죄의 권세, 마귀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기 때문이다. 해 돋는 곳 곧, 동방은 하나님의 마지막 경륜이 이루어지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발판이다. (사60:13)

 

육적 이스라엘 민족은 생명의 빛을 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축하고 완성하는 귀한 복을 받은 선민이었지만 그 사명을 결코 감당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빛의 왕이신 예수님을 건축장의 쓸모없는 돌로 여기고 발로 차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1)

 

그러나 이 역사종말에 한국을 해 돋는 곳의 새 선민으로 택하시고 다시 오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모든 영혼들을 추수하는 추수국가, 제 二의 선민으로 세울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세우신 경륜이요 계획이다. 결코 한국민족이 잘나서 의로워서 또 하나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임한 복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경륜이요 계획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다. 자랑할 것은 왕이신 예수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인정하라.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주님의 종들이 준비할 정말 중요한 영적 진리이다.

첫 번째 건축자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버린 돌 취급했지만 두 번째 건축자 우리 한국민족은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황공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해 돋는 동방에서부터 인 맞은 주님의 종들을 일으키는 역사는 무한대로 하시는 역사가 아니다.

 

“땅 사방의 바람으로 상징된 대 환난의 바람, 전쟁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다.” 이는 계9:13절을 보면 6째 나팔 곧, 대 환난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다. 하나님이 정하신 한시(限時)다. 주님이 정하신 그 한시를 알고 대비하는 마음이 바로 준비하는 삶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특히 印맞은 대상이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다. 그리고 일반 신자도 아니다.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종들 가운데서 그 자격자를 뽑는 것이 바로 印을 치는 역사다. 동방한국에 목회하는 주의 종이라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주님의 종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옛 선민을 버린 것을 기억하라. 화려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버린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은 하나님의 印을 맞는 것이다.

하나님의 印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도장이며,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곧 왕의 이름으로 이마에 인침 받은 하나님의 종들은 “왕권성도”이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당신은 왕의 이름으로 인 맞을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가?

구원받은 영혼은 성령의 인을 다 받았다.(엡1:13) 그러나 해 돋는 곳에서부터 인치는 하나님의 인은 구원받은 종들 가운데서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대 환난 날을 이기고 주님 오실 때까지 복음증거 사역을 감당하는 종은 오직 하나님의 인 맞은 종외에는 없다.

 

내가 아무리 지난날에 크게 일하고 권세 있게 일하고 존귀하게 쓰임 받았다 하더라도 대 환난 날에 남은 영혼들을 구원시키는 마지막 추수사역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고는 절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절대로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인을 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인을 맞는 자격자의 인격은 아래 ⑶번을 받아먹어 버려라.

 

⑶ 14만4천 성도의 칠대 인격을 준비해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4-5)

 

14만 4천 성도는 역사종말 대 환난 날을 앞두고 하나님의 인을 맞은 주의 종들이다. 이들은 두 증인으로서 두 증인의 구체적 숫자와 등장시기와 등장하는 지역과 자격과 반열과 사명을 계7:2-8, 14:1-5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들 14만 4천 성도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정말 중요하게 준비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계14:4-5절에 계시된 칠대 인격이다.

 

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역사 종말 음녀의 정책적인 영적음행과 이 세상의 육적음행에 자신의 영 ․ 혼 ․ 육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보전하는 삶으로 준비한 인격을 말한다.(계17:1-5,고전6:18)

 

② 정절이 있는 자라

처녀로서 신부로서 한 남자, 유일한 남자이신 예수님만 사랑하며, 주님과 생명연합이 완전 이루어진 삶을 준비(렘31:22, 골3:3)

 

③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한마디로 주님의 생애를 그대로 사는 삶이다. 나는 매일 죽는 삶을 준비 하므로 말씀에 완전히 복종되고,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십자가 까지 가는 삶을 매일 준비하는 삶이다.(계11:8, 마16:24)

 

④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영혼만이 아닌 영육간 구속받아 첫째부활에 들어가는 성도들이다. 이들은 완전 주님의 죽음을 매일 짊어지고 생명으로 사는 성도들이며, 이로 인한 부활의 권능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이다. 이들의 삶 자체가 휴거 성도로 준비되는 삶이다. (고후4:10-11, 빌 3:10)

 

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마귀와 세상과 내 안의 옛사람과는 완전 분리되고 결별된 삶을 사는 성도들이다. 반면에 주님과는 뜻과 마음이 완전 하나가 된 성도들이다.육체의 내 생명을 포기하라. 십자가의 죽음보다 더 강력한 결속력은 없다. (엡4:22, 고전15:23, 요15:5,히11:38)

 

⑥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입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도구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다는 뜻은 빛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실제 그대로 성취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입술이 되었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거짓이 없는 입은 입에서 말씀이 나 오는 대로 창조역사가 나타난다. 이보다 더 진실한 입술이 어디 있겠 는가?

주님의 창조의 능력이 담긴 주님의 말씀이 내 입을 통하여 그대로 선포 되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라 이것이 준비하는 삶이다

.

무엇이 방해물이며 입술의 거짓이냐?

내 영혼 속에서 주님의 말씀이 희석되어 나오게 만드는 혼의 지각, 나의 이론, 나의 방법, 이것이 거짓이다.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영으로, 생명으로 그대로 나오지 않게 하는 모든 것은 입술의 거짓이다. 내 것을 빨리 포기하라. 죽여 버려라 이것이 준비다.

(사6:5-8, 말2:6-7, 롬8:6-7, 창1:1-3)

 

⑦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흠이 없는 자란 하나님의 제단에 완전한 제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완전한 제물은 예수와 함께 완전히 죽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명은 이미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는 종들이다. 그리고 흠이 없다는 말은 전인격적으로 완전하다는 말씀이다. 영도 혼도 육도 모두 거룩한 상태를 말한다. 이는 완전히 그 영이 주님의 영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의 통치를 전인격적으로 받고 있다는 뜻이다.

 

나를 지금 누가 통치하고 있는가?

율법이냐?

내 속에 있는 옛 사람의 경험과 지식이냐 또 나의 생각과 의지냐?

아니면 세속적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나?

 

진정으로 주님께서 주님의 종들을 지금 흠과 티가 없이 양육하고 있 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빨리 이 모든 것을 포기하여 버리고, 주님께 자신을 맡겨라. 그리고 왕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왕이신 주님이 직접 일하시며 나를 준비케 하신다. (말1:8-10, 갈2:20, 살전5:23, 롬8:2)

 

⑷ 작은 책을 꿀처럼 받아먹고 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 10:10)

 

작은 책은 8-2-1)-⑸번에서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계시록”이다.

주님은 주의 종이 된 우리들로 교회의 양들에게 이 작은 책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내가 먼저 먹지 않으면 결코 양들에게 먹일 수가 없다. 성경 66권이 동일하지만 특히 계시록의 말씀은 더욱더 양들에게 먹여야지 지식으로 습득하게 해서는 안된다. 전혀 생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책을 꿀처럼 먹는다는 말씀은 말씀을 받을 때 혼으로 받지 않고 영으로 받으며, 내 영이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소망이 넘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는 상태를 말한다. (렘15:16)

작은 책을 꿀처럼 먹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입맛이 없거나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생명으로 먹이지 못한 연고다.

이 신학 저 신학 이 세미나 저 세미나로 돌아다니면서 잡식성으로 취하다 보니 변해버린 나의 영적감각을 주님의 영적 감각으로 빨리 회복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으로 지식으로 논리로 받아들인 죄를 회개하라 !

하나님의 말씀에 이것저것 섞어서 말씀자체의 단맛을 버리고 혼합된 맛으로 먹인 죄를 회개하라 !

주님의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주님의 살만 먹고 피만 마시겠다고 결심하라. 주님이 입맛을 회복시켜 주신다.

 

입맛이 회복되면 작은 책의 말씀을 정신없이 먹어라.

계속 먹어라.

설사할 것 걱정하지 말고 정신없이 먹어라.

정신없이 먹으라는 말은 혼의 지각을 버리고 오직 영으로만 먹으라는 뜻이다. 작은 책의 말씀을 꿀처럼 달게 먹는 것이 준비다.

내 속의 혼합주의를 회개로 정리하고 순수한 영의 상태로 돌아오면 말씀의 단맛은 소망의 극치,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의 극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증대를 실시간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먹은 후에 배에서 쓰다는 것은 소화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위로 음식이 들어오면 반드시 쓸개에서 쓴 즙이 나와서 소화를 시키는 것과 같이 영의 말씀을 꿀처럼 먹은 후에 쓴 십자가의 과정이 반드시 있다. 십자가의 과정은 말씀이 생명화 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말씀이 심령화, 인격화, 생활화 되는 실질적 생명화의 과정이다. 작은 책의 말씀을 꿀처럼 먹고 십자가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체가 종말에 주님의 종으로 준비되는 과정이다.

 

⑸ 말씀으로 척량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 11:1)

 

지팡이 같은 갈대는 척량하는 도구로서 성도들의 영적 상태와 인격과 신앙생활을 공의롭게 판단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역사 종말에 쓰임 받는 종들은 반드시 그들의 신앙의 상태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공의로운 표준의 말씀으로 척량을 받아야 된다. 척량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신앙을 준비하라.

 

성전은 성전 신앙이다.

이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내 자신이 성전이다. (고전3:16-17) 말씀으로 척량 받을 수 있는 성전을 준비하자.

 

광야의 성막 모습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성과 인격과 사역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성도안의 성전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설계도 그대로 성막을 건축했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안에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자.

 

① 동편 문

주님만이 나의 문이 되신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고 고백하라. 문을 열고 닫으실 분은 목자이신 주님이시다. 내 의지로 문되신 주님의 문고리를 잡고 있다면 빨리 놓아라. 주님이 자유롭게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만지시고 일하시며, 자유롭게 내 안에서 나가셔서 주님의 생명의 빛 영광의 빛을 발하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라 (주님이 내 심정과 인격을 사용하심)

 

② 번제단

십자가의 경험이 있는가. 나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감격을 상실 했다 면 빨리 회개하여 회복하도록 하라.

 

③ 물두멍

날마다 말씀으로 씻김 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빼먹지 말고 잊지 말고 철저하게 두루마리를 빠는 회개의 삶으로 거 룩함을 준비하라(계22:14)

 

④ 진설병(떡상)

날마다 말씀의 떡을 구경만 하지 말고, 맛만 보지 말고, 신자들 먹이 려고 준비만 하지 말고, 내 자신이 먼저 먹으므로 말씀의 사람으로 준비되자. 그리하면 주님께서 주님의 양들을 나보다 더 마음껏 먹이신다. 왜냐하면 내가 목자가 아니라 주님만이 목자가 되시고 목사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기 때문이다.

 

⑤ 일곱 금 촛대

성령의 빛 가운데 거하는 삶으로 준비되고 있는가?

성령의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은 성령의 기름(말씀의 기름, 사랑의 기 름)이 내 안에서 타오르며 빛을 발하는 삶이다. 나의 지식과 철학의 빛이 아니고 나의 열정의 빛이 아니다. 내 의지의 빛 곧 나의 주관적 인격 속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주권적 다스림 속 에서 주님이 내 인격과 내 심정으로 비추시는 주님의 빛이다.

그렇다면 준비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순금과 같이 깨끗하고 거룩함의 심령성전을 만드는 것이다. 내 속에 담겨있는 더러운 것들을 버리고 포기하고 회개하므로 깨끗한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다.

 

⑥ 분향단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는 향기로운 기도의 삶으로 준비하자. 금 향로에 담기는 향기로운 기도는 죄짓고 회개하거나 옛 사람의 죄성만 회개하는 기도는 금향로에 담기는 기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드려지는 기도다.

 

⑦ 찢어진 휘장

주님 앞에 나를 깨뜨리고 찢어지는 삶으로 준비하자. 내 자아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깨뜨려지지 않으면 왕의 보좌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⑧ 법궤

왕의 보좌 앞에 사는 삶이다. 주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서 사는 최고의 신앙으로 준비된 삶이다.

왕의 법이 내 영혼 속에 십자가의 사랑으로 실체화 된 삶이다.

(율법 → 생명의 성령의 법)

왕의 부활의 생명이 실체화 된 삶, 곧 부활의 권능으로 누리며 사는 삶이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왕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실체화 된 삶이다.(금 항아리 속 만나)

 

척량 받는 제단은 무엇을 말하나

제단은 제물을 올리는 곳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물로 올려진 십자가의 제단을 말한다. 전체 성전의 신앙을 위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는데 또 다시 반복하는 것 같다. (② 번제단) 그러나 이 제단 신앙은 나 자신이 제물이 되어 제단에 드려지는 삶의 모습이다. 이는 한 마디로 순교자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계6:9,16:7) 내 영혼이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똑같이 제물로서의 삶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성도는 반드시 척량 받는다.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한다는 말씀은 가장 깊은 지성소의 신앙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도 전체 성전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이미 말씀 드린바다. “법궤”를 참조하라. 진정 법궤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저절로 참 경배를 드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⑹ 두 증인이 입는 굵은 베옷을 준비해야 한다.(입어야 한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3)

 

두 증인은 하나님의 섭리역사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거룩한 역사에 최후로 쓰임 받는 종들이다. 두 증인의 사명과 축복과 그 영광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두 증인의 인격과 심정이 실체화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굵은 베옷은 두 증인이 반드시 입어야 할 옷이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 사명을 보여주며 그 사람의 심정과 인격을 보여주고 있다.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주님의 심정과 인격이 완전히 이루어 졌다는 뜻이다. 멸망할 세상거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사랑이 완전히 실체화 된 종이다.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을 입어 흰 옷 입은 우리 주의 종들이 이제는 굵은 베옷을 입어야 한다.

 

아직도 자색 옷을 입기를 좋아하거나 부드럽고 화려한 의복을 사모한다면(눅16:19, 7:25) 두 증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흰 옷 입은 상태(속죄)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도 안된다. 세탁되지 못한 흰 옷(회개 없는 심령)만 입고 있으면 더더욱 안된다.(사1:8, 계3:4) 아직도 세상 풍속을 좇는 옛 사람의 초라한 옷들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2)

 

옛 사람에 속한 초라한 옷들을 벗어버려라. 그리고 증인의 신분과 인격과 사명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목사 자신이 젖이나 먹고 기독교 초보에 머물러 있거나 세상 학문이나 철학 혹은 이 것 저 것 섞어서 먹고 있다면 그 목사 수준이상의 교회가 될 수 없고 자신도 초라한 옛 사람의 옷을 벗을 수가 없다.

 

마지막 때에 먹어야 할 말씀을 반드시 먹고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통과하라. 진정한 회개도 진정한 사명도 또 그 사명 감당을 위한 거룩한 주님의 심정과 인격과 생활도 모두 말씀에서 나온다. 우리 앞에 다가올 대 환난 날과 심판기 그리고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먹어라. 젖만 먹고 젖만 먹이다가 화 받는 목사가 되지 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19)

 

필자의 소원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큰 충격을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먹어야 할 역사 섭리의 말씀 곧, 작은 책의 양식을 반드시 먹기를 바란다. 두려워하거나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갈망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꿀맛처럼 먹기를 바란다. 먹는 자의 그 영혼 속에서 말씀 하나님이 일하신다. 말씀이 내 안에서 내 영혼을 만지시고 일하실 때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방해하지 마라.

 

간섭하지 말고 뛰어들지 말고 왕 앞에 완전히 엎드려 있으라. 그리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증인으로 만들어진다. 생각도 마음도 인격의 구조도 주님 뜻대로 만드신다. 어느 순간에 굵은 베옷 입은 내 영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멸망 받을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눈물을 가지고 나가는 두 증인의 모습이다. 이 일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일이다. 주님께 영광!

 

⑺ 예수님의 아내가 입어야 할 세마포를 준비해야 한다(입어야 한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8)

 

세마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가 입어야 할 옷으로 말씀하셨다. 이 세마포 옷을 실제적으로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어떠한 행위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일까?

인간의 어떠한 행위가 주님 보시기에 옳은 행실이 될 수 있을까?

 

성경에는 성도들이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아야 할 귀중한 교훈과 생명의 말씀이 너무나 많다. 그 수많은 말씀을 읽고 받아들인 여러분들은 과연 주님 앞에서 내가 바르게 살았습니다. 내가 의로운 행실로 살았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은 신약시대에 살면서 너무나 율법적 개념으로 말씀을 대할 때가 많다. 교육적 개념으로 말씀을 받고, 교훈으로 받으려고 하는 자세가 너무나 많았다. 윤리와 도덕 선생 노릇하고 교사 노릇을 너무나 많이 했다. 목사도 신자들의 행위도 그렇게 살았다. 율법적 행위, 도덕적 행위 …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지도자가 그러하니 신자들도 목사의 신앙형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치자.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생명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주님을 너무나 무시하고 성령님을 너무나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나의 지식과 방법을 주도하는 주관적 인격을 버리고 애통해 하면서 모든 주권을 주님께 돌려 드리자.

선하신 분은 주님 밖에 없고 의로우신 분은 주님 밖에 없다.

 

의로우신 주님이 내 영혼 속에서 일하시며, 자유롭게 들어오며 나가시며 일하실 때 우리는 순종하면 된다. 이것만이 주님이 인정하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영으로 하지 않고 혼으로 행하고 육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결코 주님 보시기에 옳은 행실이 될 수 없다.

 

지금도 주님의 성령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여러분들을 자유롭게 통치하신다. 우리들이 조금만 더 민감하게 반응하자.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내려놓고 성령님이 어떻게 내 속에서 나를 감동하시고 일하시는가를 살펴보자.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체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소원이 성령으로 내 속에서 뜨겁게 올라온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그 소원을 따라 순종하며 행하자.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신부들의 아름다운 세마포다.

 

⑻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훈련되어야 한다.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사 13:3-4)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11)

 

역사종말에 쓰임 받는 종들은 가장 강력한 전투를 치러야 한다. 복음 대 반복음간의 전쟁이요 영과 육의 전쟁이며, 흰 말 탄자와 삼대 말 탄자의 전쟁이요 두 증인과 붉은 짐승과의 전쟁이며 미가엘 대군과 붉은 용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최후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과 육으로 싸우거나 세상의 전쟁무기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대 환난 날에 남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말씀으로 싸우는 영적전쟁이다. 그리고 심판 날에는 말이 전쟁이지 실상은 말씀으로 심판하는 때다. 그러나 그 표현이 아마겟돈 전쟁으로 계시되었다.

이와 같은 전쟁의 날을 말씀으로 알고 바라보는 종들은 그 날의 전쟁에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다.

 

① 소집과 응답

역사종말 최후의 전쟁을 위하여 주님의 소집(부르심)에 응답하라. 마지막 때에 먹어야 할 작은 책의 말씀을 꿀처럼 먹는 종들은 군사로 소집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용맹을 발하여 소집자 주님 앞에 나아간 다. (단11:32)

 

② 군대훈련

소집에 응답하여 대장되신 주님 앞에 나왔다면 군사훈련을 철저히 받아라. 사생활을 완전 포기하고 어떠한 훈련이라도 철저히 복종하라. 결코 변명하거나 이유를 대지 말고 복종하라. 이 훈련 속에서 무엇보다 전투자의 야성을 회복하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강력한 야성을 가지고 거리에서 담대히 복음 전파하다가 순교 당했다. 자기 목숨에 전혀 애착심이 없는 순교자의 심정을 갖추는데 최선을 다하라.

 

③ 완전무장

엡6장 11절과 계6장과 19장의 백마 탄 자처럼 완전무장하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군사훈련을 하루하루 잘 받는 종들은 그 자체가 날마다 완전무장 되는 삶이다.

 

④ 최후 군대검열

완전무장이 된 군대라도 전투 출발 전 마지막으로 군장검열을 한다. 우리 주의 종들은 날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무장상태를 체크하라. 미비하거나 빠진 것이나 함량이 모자라는 것이 없는지 면밀히 자기 영혼의 상태를 말씀으로 체크하라. 그리고 미비하거나 빠진 것이나 함량이 모자라는 것이 보이면 빨리 채워라.

 

주님의 사랑에 사랑을 더하고, 생명에 더 풍성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울 것이며, 말씀에 말씀으로 더욱 채워라. 나를 완전히 비우고 오직 예수님으로 가득 차게 하라. 오직 주님의 생명으로만 실체화가 되게 하라. 군장검열에 완전히 합격하면 실제 전투장으로 출발한다.

 

⑼ 왕권이 완전히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 16:28)

 

하나님은 최초사람 아담에게 이미 왕권을 주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과 타락은 그 왕권을 마귀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왕권을 상실한 아담은 만물을 다스리기는커녕 만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피해를 입고 사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반면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되어 세상을 통치하고 자연계를 움직이며 인간영혼들을 사냥하여 지옥에 보내는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왕권의 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는데 주님의 백성들에게 아들의 영 곧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바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왕권이 임한 것이다. 성도들의 심령 속에 내주하는 왕의 영 성령님은 율법시대와 같이 육체 밖에서 주의 백성들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그 영혼 속에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심령천국) 통치하신다.

 

만약에 율법시대와 같은 왕권통치가 오늘날도 계속 진행된다면 왕권회복은 영원히 될 수가 없다. 십자가 이후 오늘날까지 왕권 통치는 육의 자아가 부인된 진실한 영혼 속에서 계속 일하시므로 왕의 복음이 온 세계만방에 전파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지 전체는 아니다. 부분적이라고 하는 것은 각 개인의 심령 속에 천국나라가 이루어져 왕권회복을 누리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종말시대다. 종말시대 왕권 통치는 개인의 심령 속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역사의 현장에 전 세계 모든 만국 만민들 앞에 주님의 왕권 통치는 반드시 나타난다.

 

문제는 종말시대를 사는 주의 종들이 온전하게 왕권이 회복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왕권이 회복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실상은 목회자 자신이 왕이 되어 통치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휘두르며 제왕처럼 목회하는 것을 부러워 한 적이 없었는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성공적 목회를 하는 주의 종들이 주님의 왕권으로 목회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왕의 자리를 찬탈한 그 죄를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왕권회복의 실체가 시급히 이루어져야할 시대다.

 

내 안에 자기 보좌를 세우고, 교회 안에 목사의 보좌를 세우고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모든 조건의 틀 속에서 왕 노릇하는 추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혹시 보인다면 어서 내려오라!

그리고 주님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자.

회개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 안에 계신 생명의 성령님께서 십자가의 법으로 그 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시도록 해드리자.

종말의 성도들이 정말 시급히 준비 할 것은 나를 버리고 포기함으로 그리스도의 왕권이 완전 회복되는 것이다.

 

⑽ 종말의 역사 섭리를 철저하게 성령으로 먹어야 한다.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10)

 

이 책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깊이 읽으라. 또 한 번 더 읽어 보라. 하나님의 경륜이 보이고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보이면 아멘으로 먹어버려라.

 

3) 두 증인의 사명 감당

 

하나님의 역사 섭리에 대한 말씀을 꿀처럼 받아먹고 미리 준비한 교회와 미리 준비한 주의 종들은 반드시 대 환난 날에 너무나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된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사 49:5)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6)

 

다시금 말씀 드리거니와 이들 존귀한 주의 종들이 쓰임 받는 날은 대 환난 날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이 종들이 쓰임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본격적으로 전격적으로 쓰임을 받는 때가 대 환난 날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날 곧 역사상 전무후무한 환난의 날(단12:1-2)을 대비하여 주님의 종들을 주님의 방법으로 특별훈련 시키시고 양육하여 숨겨두신다.

 

원수 마귀들의 집중 공격에도 하나님은 절대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손 그늘아래(사49:1) 숨겨두셨다가 갑자기 사용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르나 주님의 통치 속에 특별훈련 받고 양육 받는 종들은 참으로 복된 종들이다.

 

⑴ 사명자는 두 증인이다.

역사 종말 대 환난 날에 영혼 추수사역의 대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에 대하여 성경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말씀하셨으나 그중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두 증인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3)

 

계시록에서 계시된 두 증인과 동일인물은 아래와 같다.

 

① 주님이 오른 손으로 붙잡은 일곱 별로 상징된 일곱 교회 사자들 (계1:20)

② 하나님의 인 맞은 14만 4천(계7:2-4),

③ 작은 책을 꿀처럼 먹고 다시 예언하는 종(계10:11)

④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 받은 자(계11:1)

⑤ 해를 입은 여자가 낳은 남자 아이(계12:5)

⑥ 부르심을 받고 빼내심을 얻은 진실한 종들(계17:14)

⑦ 어린 양의 아내(계19:7)

⑧ 백마 탄 예수님을 따르는 백마 탄 군대(계19:14)

⑨ 첫째 부활에 참예하며 천년시대 왕 노릇하는 종들(계20:6)

⑩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중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하 는 자(사49:6)

⑪ 시온이 구로하기 전에 낳은 남자(사66:7)

⑫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자(겔9:3)

⑬ 피조물이 그토록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롬8:19 하나님의 형 상이 회복된 아들들)로 말씀 하신다.

 

다른 인물 같기도 하지만 결코 다른 인물이 아니다. 종들을 사용하시는 주님께서 종들이 준비할 모든 면을 빠짐없이 말씀하신 것뿐이다. 그것은 두 증인의 인격은 한 인격이지만 한 인격체 속에 있는 구체적 인격의 세세한 면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온전한 성도로 준비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배려이다. 그리고 그들이 감당할 사명의 분야를 빠짐없이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우리 왕이신 예수님을 왕으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목자, 선지자, 제사장, 신랑, 주인, 구세주, 인자, 포도나무 등으로 말씀하시며 그 신분에 맞는 인격의 모습과 사명의 다양함을 보여주듯이 종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심도 그러하다.

 

특별히 두 증인이 입은 굵은 베옷을 통하여 그들의 인격의 절정을 보여주신다. 마지막 시대에 주님께 쓰임 받는 종들은 반드시 굵은 베옷을 입어야 한다. 흰 옷(속죄 은총)을 입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다. 굵은 베옷은 상복이다. 진정한 슬픔의 상징이다. 대 환난 날에 우상숭배와 짐승 표를 받고 지옥 갈 영혼들을 바라보고 주님의 사랑의 심정으로 복음을 외치는 종들이다. 지옥 갈 전 세계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이 완전 실체화된 종들이다.

 

⑵ 두 증인이 증거 하는 복음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계 10:11)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 11:3)

 

두 증인이 증거 하는 복음은 계11:3절의 말씀처럼 “예언의 말씀”이다. 계10:11절에는 “다시 예언”으로 말씀하셨다. 다시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계시록 말씀 자체가 해석하기를 10:7절에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으로 말씀하신다.

 

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이나 이미 과거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과 동일하다. 다만 계시록은 모든 선지서에 예언된 말씀을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확실하게 정립된 점이 다르다. 구조적으로 정립이 됐다는 말은 십자가를 기점으로 역사의 종.횡 체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거룩한 역사계획의 구조가 십자가 때부터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계시록은 분명하게 계시하셨다는 뜻이다.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까지 더 나아가 계시록의 계시가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제자들도 몰랐다.

 

구약 선지서에 모두 예언된 말씀이지만 그 당대나 주님 당시나 제자들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참으로 작은 책의 말씀이 너무나 분명하다. 분량이 작아서 작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말적인 모든 뜻이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계시록 예언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천년 왕국)가 완성되는 예언이다. 십자가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역사는 지난 2천년 동안 수도 없이 사단의 공격을 받아왔다. 마지막 대 환난기는 사단의 공격이 그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그들 마귀 역사는 지상의 짐승정권을 앞세워 세상을 짐승의 나라, 마귀의 나라를 먼저 만든다.

 

만드는 방법은 짐승의 우상숭배와 짐승의 표(666)를 온 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들로 받게 하는 방법이다. 육으로 사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거니와 영으로 산다는 교회와 주님의 백성들도 이 시험을 피하기가 힘이 든다. 이때에 두 증인으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의 복음증거는 “짐승의 우상 앞에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영원히 불 못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으로 경고의 나팔을 분다.(지금부터 불고 있다)

 

상기와 같은 부분의 예언은 이미 선지서에 역사적 사건으로 예언하셨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정책, 헬라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성전을 더럽힌 정책)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종들은 지금부터 이미 예언하신 말씀의 핵심 내용으로 경고의 나팔을 불 것이며, 오직 어린 양 예수님만 경배하는 참된 예배의 실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표(인)만 받는 신앙인격을 영으로 준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⑶ 두 증인의 복음증거 기간(1260일 증거)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 11:3)

두 증인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 하는 기간이 왜 1260일인가?

 

1260일은 삼년 반이다.

삼년 반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전도하신 기간이다. 이는 두 증인은 주님의 심정과 인격이 완전히 이루어진 종들로서 주님의 생애를 그대로 다시 사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주님은 이 두 증인 곧, 예언된 말씀의 종들을 얻고자 그토록 많은 세월을 기다리시며 일하셨다. 그 속에서 얻은 그야말로 최고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시원케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260일 하루하루를 오직 주님과 똑같은 심정과 능력으로 환난기 백성들을 구원시키는 삶이다. 삼년 반 전도기간이 지나면 다시는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들 증인들이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말씀은 너무나 합당하다.(십자가 이타주의 사랑의 심정이 실체화 된 종들이다) 하나님은 지금 최고의 영광의 때를 준비하시며, 그 영광의 때에 사용하실 종들을 아무도 모르게 양육하고 계신다. (사49:1-2)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4)

 

하나님의 최고의 영광의 때는 1260일 기간이다. 대 환난 날 곧 마귀의 최고조에 달한 악의 역사 속에서 두 증인이 하나님의 전능성과 사랑과 심판을 나타내니 그야말로 최고의 영광의 때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준비 하시는 그 영광의 때 1260일 기간에 들어갈 준비가 다 되었는가?

 

⑷ 두 증인의 권세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 11:5)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6)

 

계11:5-6절의 말씀은 두 증인이 행하는 놀라운 권세역사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불은 말씀의 불을 의미한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씀의 불은 마귀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아무리 복음역사를 대적해도 모두 파괴하고 파쇄하며 무너뜨리고 소멸시키며 멸망시키고 만다는 뜻이다. (렘1:10)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은 엘리야 시대처럼 자연계와 영계의 우로를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권세를 말한다.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다는 말씀은 모세 시대가 연상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모세로 하여금 강력한 권세역사를 행하게 하셨듯이 마지막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엘리야 시대나 모세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역사가 강력하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이 강력한 권세역사를 두 증인에게 허락하실까?

그것은 두 증인이 복음을 증거 하는 시대가 대 환난 시대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짐승정권을 앞세워 가장 강력하게 세상 사람들을 통치하며 마귀의 왕국을 만들고, 반대로 두 증인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출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짐승정권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강력한 권세역사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두 증인이 복음을 증거 하는 기간은 한정된 1260일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한정된 기간에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완료하기 위하여 전무후무한 권세역사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전능성은 드러나고 온 세계만민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 무한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두 증인은 자기가 없는 종들이다. 만약 자기라고 하는 존재의식이 있으면 결코 권세역사를 주님이 허락지를 않는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왕권통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그리고 우리 모두 마지막 증인의 길로 나가자.

 

⑸ 두 증인 증거사역의 열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두 증인이 마지막 복음을 증거 하는 사역을 감당하므로 이로 인한 열매는 너무나 엄청나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전무후무한 열매를 맺는다. 아니 창세 이래 수도 없이 쓰임 받은 그 어떤 종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영광의 열매를 맺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의 최 종말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경륜이 성취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두 증인의 본격적인 증거사역은 대 환난기다. 이때에 이들 두 증인의 복음증거는 교회를 완전히 둘로 갈라지게 한다. 그동안 기독교 역사는 심판기가 아니기 때문에 한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랐지만 이제 대 환난기가 지나면 심판기가 오기 때문에 심판 날이 오기 전에 알곡과 쭉정이를 완전히 갈라 세우는 추수작업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증인들의 마지막 추수사역을 통하여 거두어들일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다.

 

옛날 홍수 심판 때의 결과와는 비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환난기에 두 증인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은 휴거할 신부성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비록 하나님께 돌아 왔지만 결코 환난 날과 심판기를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처로 보내지고, 그 예비처 안에서 보호와 양육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천년왕국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두 증인의 전도사역은 백성들을 구원하는 열매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통치하는 선민나라가 세워지는 가장 중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 증인은 이미 말씀 드린바와 같이 14만 4천이다. 이들이 등장하는 출처가 해 돋는 동방이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해 돋는 나라에서 증인들이 먼저 등장하면서 전 세계 복음역사, 마지막 추수사역의 중추국이 될 나라가 세워지게 된다. 이 나라가 동방의 제 二 선민국이다.

 

제 一 선민이 하나님의 포도원 농장에서 열매 맺는 사명을 감당치 못하므로(하나님의 경륜) 빼앗긴 사명을 동방 해 돋는 나라 곧 제 二선민국이 감당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한번 세우고자 원했던 가장 완벽한 왕의 나라를 결국은 세우신다. 이 나라는 물론 천년왕국이 아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으로 이어지는 최후의 선민국으로서 그 사명을 멋지게 감당케 하신다.

 

이와 같은 제 二선민국의 출현은 결국 두 증인의 등장과 맞물려있다. 왜냐하면 이들 증인들이 왕이신 예수님의 거룩한 계획을 가장 완벽하게 실체화 시키는 사명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복음역사와 세계적인 구원의 열매역사는 결국 두 증인의 등장과 선민국가의 등장 속에서 시행되게 된다. 그러므로 선민국은 자연스럽게 온 세상이 짐승의 나라, 마귀의 왕국화 될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 예수님의 왕권통치를 전 세계에 빛의 영광으로 나타내게 되므로 세계 만민들의 보호처, 예비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모세 때 애굽 땅에 재앙이 내릴 때 예비처가 되는 고센을 기억해 보라.

 

고센은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모여 사는 곳으로 그 곳 전체가 예비처였다. 마지막 때의 보호처, 예비처는 고센과는 비교 할 수가 없다.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리가 어디 가서 보호와 양육을 받겠는가?

이와 같은 선민국의 등장은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두 증인의 등장과 그들의 사명 감당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참으로 두 증인의 사명은 너무나 막중하고 그 열매가 너무나 크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들 두 증인 사역의 열매는 순교자들의 숫자가 채워지는 결정적인 사명을 감당한다. 대 환난기는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는 마지막 시기다. 이때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인들의 강력한 증거사역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로 하여금 환난기의 모든 박해를 이기고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한다. 이도 두 증인의 열매라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

 

⑹ 두 증인의 최후와 영광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 11:7)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계 11:11)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계 11:12)

 

두 증인의 최후는 짐승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 짐승은 붉은 용 마귀의 권세를 받아 42달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한 붉은 짐승정권이다.(적그리스도 정권) 대 환난기 1260(42달)일 동안 자유로운 권세로 복음증거 사역을 감당하던 증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사역은 이들 증인들이 주님이 허락하신 기간 동안 증거사역을 다 감당하므로 이 땅에서 구원받을 영혼들을 다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 성취했기 때문에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주님이 삼년 반 동안 증거사역을 마치면서 여섯 번째 머리가 되는 로마정권에 죽임을 당한 것처럼 두 증인들도 증거사역을 다 마치면서 일곱 번째 머리가 되는 붉은 짐승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사흘 반 후에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처럼 증인들도 사흘 반 동안은 시체화 된 상태로 방치됐다가 그들 짐승들과 온 세계 모든 거민들이 보는 앞에서 부활 승천한다.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듯이 이들 증인들도 자기들의 몸이 시체화 되기까지, 십자가의 길을 가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른다.

이 시대 주님의 신부될 종들의 최후는 이미 결정 되어 있다. 내 몸이 시체화 되기까지 복음을 증거 하다가 실제로 죽는 것이다. 내 속의 옛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육체까지 완전히 죽는다. 그러나 그것이 부활의 영광, 휴거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당신이 이 시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명자라고 주님께 응답했다면 갈 길과 그 최후는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 주의 종들은 살기 위해 사는 자가 아니다. 죽기 위해 사는 자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십자가 죽음의 길을 알고 이 땅에 탄생하셨고 실제 그 길을 걸으셨다.

마지막 증인들은 주님의 형상이 완전 회복된 주님의 신부들로서 이미 예정된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쁨과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가며 찬양하며 간다. 왜냐하면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 휴거의 영광이 이미 그들 인격 속에 실체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우리 이제 가야할 그 길은

영혼 위하여 가는 길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생명을 위하여 가는 길

날마다 죽어라 날마다 죽어라 죽어라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죽고자 하는 자 살리라

(찬양 : 우리 이제 가야할 길)

 

 

3. 역사 섭리에 발맞춘 성도의 발걸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를 완성하시고자 지금 이 시대까지 줄기차게 역사를 섭리하셨다. 그리고 시대 시대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종들을 동역자로 삼으시고 말씀을 보내사 일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다. 말씀의 하나님이 빛으로 오셔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창조된 인간들에게 말씀을 주시며 말씀으로 통치하셨다. 비록 인간이 타락했지만 말씀의 하나님은 계속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담에게 말씀하시며 노아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통치)하심은 오직 말씀으로 하신 것이다.

 

말씀의 하나님이 일하실 때 말씀에 발맞추어 순종한 것이 성도들의 발걸음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들 귀에 들려진 율법의 말씀을 좇아갔고 오늘 신약시대는 우리들의 영혼 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통치하시므로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동역자의 삶을 살게 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생명의 성령이 성도 안에 내주하심은 말씀이 이제 내 안에서 달리고 일하는 결정판이다.

계6:1-2절의 말씀을 보면 첫째 인을 떼므로 흰 말 탄자가 활을 가지고 이기고 이기려고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 6:2)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장면이요 두 번째는 주님과 하나 된 성도들의 사역 장면이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 복음역사는 흰 말 탄자들이 온 세계를 두루 달린 결과다. (슥6:1-8)

 

이제 종말의 성도들은 그 바통을 이어받아 마지막 아마겟돈까지 달려가야 한다. 왕이신 주님이 그곳까지 달려가시니 우리들도 주님의 일하심에 발맞추어 달려 갈 수밖에 없다. 먼저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달려가시게 하라. 이것이 급선무다.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시 147:15)

 

내 안에서 말씀이 일하시지 않고, 달려가시지 않으면 나는 결코 주님이 가시는 그 역사의 현장까지 갈 수가 없다.

장애물을 제거하라.

그 장애물은 여러분 속에 있는 옛 사람이다. (엡4:22)

옛 사람의 죄성을 이겨라.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이천년 전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정하고 선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스리라.(롬6:6) 절대로 이미 죽어버린 옛 사람의 시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그리하면 우리는 마지막 까지 내 안에서 말씀이 달려감을 따라 아골 골짜기도 달려가며 애굽과 소돔 거리에도 갈 수가 있으며, 주님이 못 박히신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 까지도 달려갈 수 있다. (계11:7-8)

 

역사종말의 성도들이여!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님의 발걸음에 준마처럼 달려갑시다.(아1:9, 슥10:3) 왕의 나라에 왕권성도로 입성 할 때까지 달려갑시다. 아-멘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사 52:7)

   

 

출처 : 새 선민복음 선교회
글쓴이 : 큰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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