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치유!!! 신유!!!

[스크랩] 상처의 주범

하나님아들 2013. 3. 15. 01:31

상처의 주범

 - 이다윗목사

 

 

치유사역을 하다보면 수많은 상처들을 알게 됩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큰 상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한 여자들의 상처는 대부분 남편들이 준 것이었습니다. 물론 남편들의 상처는 아내로부터 받은 것이고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 주위 친구, 환경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의 상처는 대부분 자녀와의 관계에서 빚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상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는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이 나를 몰라 본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해?"라며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자가 "왜 너는 나를 안아주지 않는거야?"라며 인상을 쓰며 달라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우리의 환경을 이용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있습니다. 비록 부모를 모르고 자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혼자서 살지 않습니다.사람이 혼자서 살지 않기 때문에 마귀는 그 점을 이용해서 우리를 옭아매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상처를 받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부모와 사랑하는 형제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랑하는 이웃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으로 마귀의 공격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의 환경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상처를 입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치유사역을 받은 사람들은 마음 속의 상처가 치유를 받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성령님의 은혜는 사람들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 주십니다. 일단 성령님의 은혜가 사람들의 상처와 닿게 되면 일순간에 상처는 없어지고 맙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은혜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실제로 치유사역을 하다보면 상처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제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의 가슴이나 머리에 손을 얹으면 자연스럽게 성령님의 은혜가 저들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스며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 사람들의 공통적인 증상은 주로 눈물을 흘린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고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고백한다는 것은 이미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증거입니다. 치유를 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조건은 상처자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저들을 만났을 때는 대부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받은 상처로 인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데 성령님의 은혜가 그 사람들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의 내용들은 상처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고백했던 내용들입니다. 물론 이곳에 제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상처는 다양합니다. 그만큼 마귀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다음의 내용들을 앎으로써 마귀의 대략적인 공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내 마음에 뭔가 일어나는 나쁜 증상들이 마귀의 공격에 의해 생겨난 것인 줄 알게 됩니다. 

 

1.           버림받음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운 아이야.” 형들은 나를 약 올릴 때마다 이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나는 실제로 형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심한 우울증과 무기력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성장해가면서 형들의 말이 단순히 나를 약 올리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를 배반하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얼굴을 보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마음은 압살롬에게 상처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반하는 행위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첩들과 동침까지 하는 끔찍한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첫번째 왕이었던 사울도 버림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러한 버림받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다윗에게 적대심으로 돌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평생동안 다윗을 죽이는 데 온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버림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사랑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치료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기자신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성폭행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대개 ‘더러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저들의 상처는 심한 수치심과 불결함입니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 중 부부관계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불결해진 자신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폭행의 장면이 떠올라 부부 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의 상처는 매우 크고 깊은 것이어서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함입니다. 비록 성폭행을 통해 자신이 더러워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셔야 합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고 용서함을 받았을 때 성폭행자들을 용서하게 됩니다.

 

3.           장애

 장애를 신체적인 장애와 정신적인 장애로 구분 지을 때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장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장애자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증상은 자기방어(self defense)입니다.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으며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보입니다. 저들은 자신의 장애를 말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나 방문을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체적 장애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았을 경우엔 더 많은 상처가 있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엔 자기방어뿐만 아니라 타인공격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대해 갑작스런 난폭함이나 공격을 나타내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몸에 대한 학대를 하기도 합니다.

장애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장애자에게 정상인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정상인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제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은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치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장애가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 회복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때 자신보다 더 비참한 형편에 놓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치유사역자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4.           아동학대

 미국에서는 12세 미만의 어린이를 혼자 내버려두게 되면 아동학대 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어떤 부부는 곤히 잠자는 아이를 놔두고서 새벽기도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잠에서 개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자 울면서 밖으로 나가 엄마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이웃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고 그 부부는 변호사를 구해야 했고 법원에 여러 차례 가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동학대 죄가 너무 심한 법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이 없을 때 어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조그마한 폭언이나 폭행에 심한 상처를 받습니다. 어른들이 생각 할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 같은데 자녀들에겐 심한 상처로 남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나는 세 자녀를 키우다 보면 때때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자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아빠, 나뻐”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나로서는 너무 어이가 없고 왜 이 아이가 우는지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동생이 아빠에게 혼나는 것을 지켜보는 형으로선 동생이 야단 맞는 것을 매우 마음 아파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빠가 잘못 했어”하며 우는 아이도 감싸주고 어루만져 줍니다. 그리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아빠가 동생을 미워해서 야단친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이해를 시켜줍니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잠자기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서 “예수의 피로 덮어주시고 보호해 주시십시오.”라고 기도를 해 줍니다. 그리고 잠자는 아이들의 머리나 가슴에 손을 대고서 성령의 불을 넣어줍니다. 때때로 깜짝 놀라곤 하는데, 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처럼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놀면서 친구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주지 않거나 형에게 음식을 더 많이 주었을 때에도 상처를 받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꽃이나 식물과도 같습니다.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강한 믿음이 있으며 더 큰 능력을 받기도 합니다.

 

5.           가난

 나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내가 내리는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은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늘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차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 ‘저들은 내가 못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활발한 척 했고 도시락 반찬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때때로 별 볼일 없는 반찬 때문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버지에게 점심을 싸가지 않겠다고 했고 학교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었습니다. 차라리 그게 멋있어 보였고 나아 보였습니다.

다행히 가난이라는 억압으로부터 쉽게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가난이라는 놈이 제일 먼저 달아 났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마저 믿지 않으면 더 이상 가난으로부터 달아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더 이상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아들보다 더 큰 부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뭣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다 주신다는 사실도 그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실로 나에게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6.           편부모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요즘 들어 이혼하는 부부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적을 정도로 이혼율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될 때 두 사람 모두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더욱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반쪽자리 부모를 가지고 있는 자녀는 늘 반쪽의 사랑을 받습니다. 반쪽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이혼 후에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대합니다. 행여 부모의 이혼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 지거나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자녀는 상처를 받고 자랍니다. 아버지가 없이 자라는 자녀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두 가지 입니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더 남성적으로 자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여성스럽게 자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아버지 없이 자라는 자녀는 성인이 되었을 때 정상적인 아버지의 성품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표본이 없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기까지는 적절한 모범이 되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없이 자라는 자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절한 모범이 되는 어머니가 없이 자랐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어머니가 갖추어야 할 성품이 결여된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다섯 명의 새엄마를 두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모두 다섯 명의 새엄마가 바뀌었습니다. 대략 1년에 한 명 꼴로 바뀐 것 같습니다.

처음 새엄마와 함께 살았을 때는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새엄마가 금방 떠나 버리고 또 다른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얼굴을 보고서 말을 했습니다. <엄마>나 <어머니>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새엄마가 자꾸 바뀌면서 언제부턴가 점심을 싸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빵과 우유를 먹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그때 내 마음 속에 자리했던 것은 여자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여자는 변심을 잘 하고 자기 맘대로 있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여자친구가 생기면 ‘언젠가 이 여자도 떠나게 될 것이야’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생겼습니다.

편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늘 상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될 수도 있으며 어머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없이 자란 사람에게는 부모의 역할을 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           편애

 성경에 보면 야곱과 12 아들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은 모두 네 명의 부인으로부터 12 아들과 한 딸을 낳게 됩니다. 네 부인 중 특별히 사랑했던 부인은 라헬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특별히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색동옷을 입혔으며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녀들과 구별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자식 편애는 가정의 큰 불화를 가져왔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상처 받은 자녀들은 그 분노를 요셉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나와 아내는 세 아들을 키우면서 가급적이면 똑같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옷을 입힐 때나 목욕을 시킬 때도 그러했습니다. 심지어 저녁에 기도할 때에도 편애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며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부모가 있을 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편애는 자녀에게 상처를 가져 다 줍니다. 편애때문에 상처 받은 자녀는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그 자녀를 편애합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처럼 부모의 편애는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지는 악한 죄입니다.

편애로 상처 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은 저를 사랑해 주십니다. 비록 못나고 연약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8.           배우자 학대

 요즘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미국의 이혼율을 앞섰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은 '어머니날'이 있고 '아버지날'이 따로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버이 날' 하나밖에 없어서 잘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도 이혼을 많이 하니까 한 날로 정해 놓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다 찾아 뵙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부부가 이혼한 사례가 50%가 넘습니다. 다시 말해 두 쌍 중 이혼한 부부가 1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의 이혼율을 앞질렀으니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이 누구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할지라도 이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할 당시엔 뒷따를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약에 이혼해서 당하는 고통이 그토록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많은 부부가 이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혼의 가장 결정적인 동기부여는 <배신>입니다. 사랑을 받아야 할 배우자로부터 배신을 받기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처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할 때는 주고 받는 것이 오직 사랑이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배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됩니다. 배우자가 상대방으로부터 '배신'을 경험하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가장 큰 상처를 받는 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만큼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기 때문에 그만큼 상처로 특별한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배신'은 <학대>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주먹으로 배우자를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학대보다 더 심한 학대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마음의 상처는 그 어떠한 상처보다 더 큰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마음의 상처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거나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배우자에게 결정적인 마음의 상처를 가져다 줍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부인은 이러한 상처를 크게 받았습니다. 남편이 20년도 넘게 다른 여자와 살림살이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왜 그렇게 숙직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저 남편이 숙직이 있다고 하니까 그런줄로만 알았는데 하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으려 하기에 이상하다 싶어 딸과 함께 숙직한다는 남편의 뒤를 쫓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어떤 집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알고 보니 다른 여자에게 집을 사주고 일주일에 2-3일씩 그 집에 머물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외도가 1년도 아니고 2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그 부인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후로 그 부인은 남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여보, 물 좀 주소"하면 "이 썩을 놈~ 네가 떠 먹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은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아내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남편의 마음이 평안해 질 수 있습니다.

 

 

9.           사기

 'LA는 사기꾼 천지'라는 말을 사람들이 자주 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미국으로 도망을 쳐 온 곳이 LA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도망을 쳐 온 사람들이 LA에서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나쁜짓을 하기때문에 LA에는 사기꾼 천지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LA에는 사람들이 서로 믿지 못합니다. 한 두번씩 사기를 당해 봤기 때문에 더 이상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방어를 하는 것이지요.

LA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사기>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을 만나면 사기 당한 사람은 있는데 사기쳤다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다 피해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죠.

가정사역을 하다보면 사기를 당해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직접 만나서 하기보다는 전화상으로 상담을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더 구체적으로 내 놓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떤 여자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느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두 사람 사이에 개입되는 것이 뭐해서 아예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사기친 집사는 떳떳하다는 모습으로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밉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이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제게 지금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막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만가지 욕설을 퍼 부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지금 그 집사가 내 앞에 있으면 그 놈 껍질을 다 벗겨서 죽이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받은 상처가 컸으면 그렇게 말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면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르듯 넘쳐 납니다. 그 상황을 잘 참지 못하면 직접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기치는 사람을 만나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사기치는 사람은 없고 모두 피해자만 있는 셈입니다. 사기치는 사람은 마귀의 앞잡이입니다. 그 사람이 사기를 쳤다면 자신이 사기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스스로 "나 사기쳤어요"라는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합니다. 뻔뻔하게 "사기 당하는 사람이 바보죠"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무감각을 보이는 것은 마귀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공략 중에서 <묶임> 단계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 거하게 되면 죄를 지어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해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가 그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지만 실제적으로 마귀가 그 사람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역시 치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일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을 치유하지 않으면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게 됩니다.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증오와 복수심이 타오르게 됩니다. 그러니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사기친 사람을 <용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그 사람의 심령을 채우게 될 때 그 사람 속에 있었던 증오와 복수심은 서서히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출처 : 국제 성경 연구원
글쓴이 : 이다윗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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