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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축사할 때 유의사항

하나님아들 2013. 3. 15. 01:23

축사할 때 유의사항

 - 이다윗 목사

 

 

 

 

 

 

사단의 정체

 

축사는 사단의 권세나 영향력을 내 쫓는 사역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사단의 무리를 내쫓으셨습니다.

이사야는 사단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 14:12)

 

계명성은 루시퍼를 가리킵니다. ‘계명성’의 라틴어를 보면 ‘루시퍼(Lusif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래 루시퍼는 천상에서 매우 밝고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그것이 저의 결점이었고 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빼어난 능력때문에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곤 하나님께 대적했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영광을 시기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피조물이 조물주를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루시퍼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사야는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14)

 

루시퍼는 모든 천사들 중에 가장 뛰어난 천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지극히 높은 자> 즉,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습니다.

결국 루시퍼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나 세상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에 대한 언급을 하셨을 때 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사도요한은 계시를 통해 마귀의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8)

 

미가엘은 천사장이었습니다. 용은 사단을 말하며 그는 루시퍼입니다. 루시퍼가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미가엘과 그의 군사들이 저를 대적했습니다. 루시퍼는 하늘 전쟁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른 천사들과 함께 이 땅으로 쫓겨 났습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 12:9)

 

사도요한은 사단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그는 사단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한번 땅으로 쫓겨난 사단은 다시금 하늘로 올라 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단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온 천하에 다니면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단이 이 땅에서 할 일은 오직 하나,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합니다.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도요한이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사단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사단의 유혹은 매우 자극적이며 보기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당했을 때 그것은 먹음직스럽고 보암직 스러웠으며 탐스러웠습니다.

 

“목사님, 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유혹을 막아주시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유혹을 막아주시면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생길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유혹을 막아주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욥이 그렇게 큰 고난을 겪은 것은 마귀가 했지만 하나님께서 마귀를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 가니라”(욥 1:1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마귀에게 세상의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

 

세상은 악한 자 곧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모든 추악한 행위를 참고 계십니다. 이제 때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제일 먼저 사단의 권세를 꺾으실 것입니다. 저들을 옥에 가둘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무저갱에서 천 년 동안 지내야 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1~4)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

 

이 땅에 쫓겨난 사단은 이곳에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사단은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입니다. 세상은 사단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단은 세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단의 나라에 속하도록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나라의 통치자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합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그 나라의 정치는 순식간에 사단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만들어온 백성으로 하여금 그 금신상에 절하도록 명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명령을 어기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만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느부갓네살의 명을 따라 금신상에 절을 했습니다. 물론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붙잡아 불타는 풀무에 집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의 도움으로 옷자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불에 그슬리지 않고 무사히 풀무에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다니엘 3장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뒷면에 깔려 있는 사단의 정략에 대해서도 눈치를 채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단의 지배하에 놓였던 것입니다. 처음 그가 금신상 꿈을 꿨을 때 그 꿈을 해몽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오직 다니엘만이 그 꿈을 해몽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오직 다니엘만이 그 꿈을 해몽했으며 느부갓네살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단 2:6~47)

 

적어도 다니엘 2장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한낱 속국의 학자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한 것은 다니엘에게 절했다기 보다는 다니엘에게 꿈을 해몽케 하신 하나님께 절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3장에서 보여지는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는 너무나 판이한 것입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처형 시키겠다고 선포했으며 다니엘과 세친구는 큰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그 상황에 없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만 왕 앞에 붙잡혀 왔던 것이지요. 죄목은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붙잡혀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니시리이다 그리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드겁게 하라 하고”(단 3:16~19)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를 보십시오. 저가 “분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자가 갑자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금신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는 세 친구를 죽이려고 평소보다 7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집어 넣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왜 느부갓네살이 이처럼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맞습니다. 바로 사단 때문입니다. 사단이 저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나라의 통치자를 자신의 권세아래 두기를 원합니다. 일단 통치자가 사단의 권세아래 놓이게 되면 그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핍박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 핍박에 못 이겨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바벨론 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단은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통치자를 자신의 권세아래 두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북한을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의 통치자가 사단의 권세아래 놓이니까 북한 주님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습니까? 세계인의 눈을 의식해서 정부에서 허락한 교회가 몇 개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선전용에 불과할 뿐 현재 북한에서의 하나님 숭배는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섬기다 발각되면 공개처형을 당합니다.

일본은 천황을 숭배하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실질적인 천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도 대통령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황은 단순히 일본의 전통에 따른 제도입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에 있어 천황의 위치는 우상과도 같습니다. 이것이 일본사람들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입니다. 일본은 사단의 권세아래 놓여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중국 역시 공산당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삼자교회는 정부에서 인정하고 허락한 교회이지만 가정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삼자교회의 헌금은 교회 스스로 사용할 수 없으며 심지어 설교자까지도 공산당에서 지정한 목사가 설교를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침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삼자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선되는 교회가 아니고 공산당이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한 나라의 통치자를 자신의 권세아래 두고서 그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훨씬 효돠적으로 사단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단은 지역권세를 장악함으로 자신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는 그 지역에 아데미 여신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행 19장 후반부). 이 여신상은 여러 개의 유방을 가지고 있는 다산을 상징하는 우상이었는데 그 크기가 자그마치 가로 160미터에다가 세로 60미터나 되어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아데미 여신상을 보기 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는데 저들을 위한 숙식업으로 그 지역 사람들은 많은 수입을 올렸을 것입니다. 그 중에 은감실을 만들었던 은장색 사람들이 가장 큰 돈을 벌었는데 이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갔기 때문입니다.

은감실은 은으로 만든 조그마한 아데미 모형을 말합니다. 은세공장이들은 바울로 인해 자신의 수입에 지장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을 고소를 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목음 전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지역권세를 사로잡아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합니다. 바울을 공격했던 은세공장이들은 사단의 권세아래 놓여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사단은 과학과 의학의 발달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확장해 갑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능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유전자공학으로 철따라 열매를 맺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감자만한 쌀이 생산되는가 하면 짧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식물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심지어 사람까지도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요 은혜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사단이 주는 세상의 복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 감에 따라 점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공략인 것입니다.

사단의 또 다른 전술은 문화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문화는 이전까지 느낄 수 없는 가장 극심한 상태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영향은 대중매체입니다. TV와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에 적응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TV를 가리켜 <바보상자>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TV는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그것은 사단이 의도 했던 것입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TV에 공개했던 범죄의 내용들이 실제로 사람들의 범죄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보고 있는 어린이 채널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어린이 채널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항상 괴물이 등장하며 해괴망측하고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만이 존재합니다. TV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 보았던 순정만화나 정서적인 내용은 이제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화면뿐이며 사건과 사고를 과장하는 프로만이 인기를 끌 뿐입니다.

TV와 컴퓨터로 인해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모가 집에 와도 자녀들은 인사하지 않습니다. TV를 보거나 게임하기에 열중할 뿐입니다. 모처럼 야외를 나가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해도 자녀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게임을 하고 TV를 보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 목사는 어떤 지역에 세미나 참석차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것에 갈 때 컴퓨터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어떤 집사의 컴퓨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켜고 화면이 열렸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포로노 그림이 화면에 떴기 때문입니다. 그 집사가 포르노를 상습적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이 되었다면 포르노 화면이 갑자기 뜰 수 있는 조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 집사가 인터넷 사용에 대해 잘 모른다면 졸지 않는 스팸메일을 통해 이미 컴퓨터가 감염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싫던 좋던 간에 집안에 사단의 세력이 침투해 왓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사단의 세력은 너무나 막강합니다. 너무나 조직적이며 그 침투가 너무나 거셉니다.

자녀들에게 세상을 떠나 사라고 하면 너무나 가혹한 말이 되었습니다. 부모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어린 자녀들이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사도요한은 이런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속해 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입을 열어 세상에 대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해 살고 잇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을 듣기에 좋아합니다.

나는 영성훈련을 하면서 가장 먼저 TV와 컴퓨터를 버렸습니다. 물론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아닙니다. TV를 보지 않았으며 교회 일을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자유스러웠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성경 읽을 시간이 많아졌으며 기도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내와 함께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전에는 뭔가를 함께 보고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함께 대화를 하고 서로 아픈 곳을 안수해 주면서 깊은 사랑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자연히 우리 아이들도 TV와 컴퓨터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서 TV와 컴퓨터를 완전히 멀리 하게 할 순 없었습니다. 내 큰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담임선생의 웹싸이트를 적어 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까 학교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이 총망라해서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단어나 산수와 같은 과목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더이상 컴퓨터는 게임이나 하고 이상한 것만 보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너무나 가깝게 살고 있으며 우리와 너무나 친근해졌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집에 들렀습니다. 그 집엔 남자아이만 네 명이 있습니다. 우리 집보다 한 명이 더 많은 셈입니다. 그것도 남자 아이로만……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게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손에 잡을 수 있는 게임기를 말합니다. 시중 가격으로 대략 100불에서 200불 정도 나가는 것입니다.

그 집 아이들이 각자의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놀았는지 아십니까? 자동차를 만지고 블록을 쌓으며 놀았습니다. 그 집 아이들이 디지털로 놀았다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아날로그로 논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자주 밖에 나갑니다. 가급적이면 TV와 컴퓨터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단의 문화 침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요?

문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할까 합니다. 나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관심이 많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 목사는 “멜로디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락(rock) 음악에 찬송가 가사를 붙인다면 그것이 영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목사가 말씀도 잘하고 목회정치도 잘 하는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에서만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음악은 살아 있은 음률입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지만 얼마든지 기쁨과 슬픔을 표현할 수 있으며 듣기 싫고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랜드 캐년과 같은 웅장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말들이 뛰어 다니는 광경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가사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단을 찬양하는 음악도 가능합니다.

시끄러운 음악을 들어 보십시오. 가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그 음악엔 이미 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나에게 어떠한 피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나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런 음악의 영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음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린 청년들을 교회에 붙잡아 놓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물론 세상적인 가요가 가사를 바꿔서 아름다운 찬송가로 변화된 것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음악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심하지 않지만 약간의 스타일을 섞어 교회에서 찬양곡으로 만들어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만큼은 세상의 그 어떠한 풍조나 풍습이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그 어떠한 세상의 문화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교회에 오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게임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예배 후에 실컷 컴퓨터 게임을 하게 하는 교회는 반성해야 합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동기와 과정을 간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루시퍼는 아름다운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천사입니다.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사 14:11)

 

루시퍼는 비파를 잘 탔던 천상의 음악가였습니다. 비파는 모든 현악기의 근원을 말합니다. 베에토벤의 그 웅장한 심포니 5번 <운명>은 현악기만으로 그 웅장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에는 악장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을 이끌어가는 실제적인 사람입니다. 어느 오케스트라 단이든 똑같이 1st violinist 를 악장으로 삼습니다.

루시퍼는 음악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자신의 권세아래 둘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락(Rock)음악에 빠져 있습니다. 게중에는 사단 숭배음악도 끼어 있습니다. 사단숭배음악이라고 하는 음악과 평범한 락음악을 함께 들어 보십시오. 두 음악이 거의 같음을 느낄 것입니다.

나의 둘째 아들이 4살쯤 되었을 때 내 기타를 들고 신나게 흔들어 댑니다. 물론 코드도 모릅니다. 어떻게 주법을 사용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뭔가 알고 있는듯 괴성을 지르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마치 음악 가수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움직입니다.

둘째 아들이 이렇게 하기 훨씬 이전에 샤워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물 묻은 머리를 음악 가수처럼 세워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음악 가수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싫어하고 아내도 싫어하는데 어떻게 음악 가수를 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롹음악은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누구와 영적 싸움을 하는가?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는 싸울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의 나라의 왕은 사단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꺾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고 이 땅에 살고 있으면 사단의 권세가 진치고 있는 위험천만한 곳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우선 우리 자신부터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사단의 권세아래 묶인 자를 해방시켜줘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는 사단과의 싸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우리의 싸움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입니다. 위 구절에는 영적인 싸움의 대상이 네 가지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정사>와 싸움입니다. <정사>는 헬라어로 <아르카이> 입니다. 원래 이 말은 <아르케>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의 뜻은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영적 싸움에 있어 첫 번째로 언급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싸워야 할 첫 번째 근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사>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거대한 통치자를 뜻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사단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대륙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보기도자는 마땅히 세계적인 통치자나 적그리스도를 대적해야 합니다. 어쩌면 매우 힘든 상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연합중보기도 입니다. 혼자서 이러한 통치자와 대적하지 마십시오. 매우 힘들며 당신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둘째는 <권세>와의 싸움입니다. 이는 한 나라의 통치자를 말합니다. 앞서 나는 한 나라의 통치자가 사단의 권세아래 놓이면 얼마나 많은 피해를 겪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중보기도자는 마땅히 한 나라의 통치자를 배후조정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와 대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일도 결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연합중보기도 팀을 만들어서 함께 해야 합니다.

셋째는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입니다. 이는 지역 권세를 사로잡는 사단 나라의 지도자급에 해당됩니다. 어떤 지역에는 음란의 권세가 사로잡고 있고 또 다른 지역은 도박의 권세가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범죄가 많은 지역이나 자살이 많이 자행되는 도시는 모두 특정한 사단의 권세자가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혼자의 힘으로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위험합니다. 절대로 혼자 지역 권세 잡은 사단 권세자를 향해 대적하지 마십시오.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에게도 피해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지 않으면 당신 가족에게 있을 수 있고 가까운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다른 중보기도 자와 함께 모여 지혜롭게 하십시오.

넷째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악의 영들은 도처에 깔려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이것들은 소위 <귀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악하고 더러운 영들입니다. 이러한 영들은 개인에게 공격하고 침투하며 거주하여 묶임을 놓습니다.

아사야 61장에 보면 성령사역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하며

The Spirit of the Sovereign LORD is on me, because the LORD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bind up the brokenhearted, to proclaim freedom for the captives and release from darkness for the prisoners.”(사 61:1)

 

여호와의 신이 임하고 기름이 부어진 사람은 성령사역자입니다. 이들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세 가지 입니다.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갇힌 있는 자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상했다는 것은 육적(body)으로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에겐 치유가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영어 성경에선 이러한 치유를 “bind up”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이것의 의미는 떨어져나간 것을 묶어주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저들 마음이 두 조각으로 동강난 것입니다. 성령사역자는 육적으로 상처 입은 저들을 다시 붙여주는 것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혼적(mind)인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세상의 정욕과 물질에 빠져 살아갑니다. 이미 세상에 포로가 된 것입니다. 성령사역자는 이러한 사람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 것은 영적(spirit)인 단계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release from darkness for the prisoners”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우리를 영적으로 감옥에 쳐 넣을 수 있습니까? 바로 사단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사역자는 영적으로 사단의 감옥에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줘야 합니다. 이것이 축사입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하고 더러운 영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들은 복잡하고도 여러가지 영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들의 조직은 치밀하고 단계적입니다.

주로 가장 먼저 활동하는 영은 <의심의 영>입니다. 의심의 영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 다가갑니다. 저들에게 의심을 가져다 줍니다. 멀쩡한 사람도 마음에 의심이 들어가면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고 맙니다. 의심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깨뜨려 이혼하게 만들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깨뜨려 이혼하게 만들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깨뜨려 가정을 파괴합니다. 의심의 영은 사제간의 관계와 사장과 사원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일단 의심의 영이 사람 안에 자리하게 되면 의심의 영은 또 다른 영을 불러 드립니다. 다음으로 들어 오는 영은 <걱정의 영>이나 <불안의 영> 혹은 <근심의 영>같은 영들입니다. 이러한 영들이 사람 안에서 활동하게 되면 다음으로 오는 영은 <슬픔의 영>입니다. 아마도 거의 동시에 <절망의 영>이나 <고통의 영>도 함께 올지 모릅니다.

이러한 영들에 의해 사로잡히게 되면 이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의 관게를 맺을 수도 없으며 왜 살아가는지 그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며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저들에게 찾아오는 영은 <죽음의 영>입니다. 죽음의 영은 저들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듭니다. 자살하는 것은 그 사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도 자살을 장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단만이 그것을 장려합니다. 그리고 함께 지옥에 갈 것입니다.

악한 영들에 대한 이해가 바로 잡혔다면 내가 누구와 싸움을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부분의 적은 악한 영들입니다.

 

 

어떻게 축사할 수 있는가?

 

첫째, 예수님의 피를 뿌리십시오. 기억하십니까?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양의 피 때문에 죽음의 그림자가 그 문을 넘어갔던 이야기 말입니다(출 12장).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던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피의 시대였습니다. 성전에는 매일 수많은 짐승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짐승의 피 흘림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사 제물로 사용했던 짐승들의 피를 통해 백성의 죄가 속죄함 받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으로써 사단의 머리를 짓 밟은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실제로 예수님은 사단의 머리를 짓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죽으심으로써 사단의 계획을 완전히 말살시키셨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사단은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을 통해 사단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권세아래 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이것은 사단의 완전히 패배를 의미합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예수님의 피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는 곳에는 사단의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개인에 들어있는 악한 영을 쫓아내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피를 뿌리십시오. 믿음으로 피를 뿌리십시오.

집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을 쫓아내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에다가 예수님의 피를 뿌리십시오. 물건에도 예수님의 피를 뿌리십시오. 천장에도 뿌리고 바닥에도 뿌리십시오. 이불에도 뿌리고 소파에도 뿌리십시오. TV에도 뿌리고 컴퓨터에도 뿌리십시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뿌리십시오.

교회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을 쫓아내기 위해 교회 구석구석에다가 예수님의 피를 뿌리십시오.

예수님의 피는 모든 건물과 거리와 지역사회에 뿌려져야 합니다. 한 나라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야 하며 온 세계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불을 지피십시오. 성령의 불에는 세가지 특성이 있다고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빛을 낼 수 있으며 또 다른 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특성은 태우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사람 안에 거주하는 것은 그곳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영적 상태가 거주하기 좋기 때문이고 악한 영은 계속해서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거주하기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세를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불이 일단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악한 영은 금새 변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좋았던 환경이 떠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악한 영의 공격단계나 침투단계이면 한두 번의 안수함으로 악한 영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악한 영이 그 사람 안에 거주하게 되면 악한 영은 최대한 발악을 할 것이고 나가지 않으려고 저항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것이고 결과는 정해진 것입니다. 악한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불의 특성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은 이처럼 악한 영을 쫓아내는 가장 최고의 도구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아래의 구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악한 영이 빠져나가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6)

 

악한 영이 타의에 의해서 그곳을 떠나게 되면 거주했던 그곳을 그리워합니다. 물론 자신을 떠나게 했던 능력을 미워하고 증오함으로써 또 다른 악한 영들과 함께 공격해 올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내적 치유에 있어 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축사작업은 한번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더 큰 악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불을 통해 축사를 하게 되면 한번 들어간 불은 그 사람 안에 자리하게 되며 그 사람이 영적인 생활만 유지한다면 그 불은 점점 더 커져서 빠져 나간 악한 영이 다시금 들어올 수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성령의 불이 갖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하고 더러운 영은 떠나가라”고 선포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른 복음서 저자의 말보다 훨씬 더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바른 말씀일 것이고 반드시 말씀대로 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큰 권세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적인 마귀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치유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단독 대면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예수님은 그곳에서 홀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놀라운 영광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유혹했던 사단에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단아 물러가라…”(마 4:10)

출처 : 오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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