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하나님 말씀 !!

[스크랩] 성경의 영감성

하나님아들 2013. 1. 30. 17:38

 

성경이 인간에 의하여 기록되었음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기록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인간적 오류를 막기 위하여 그 저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영감하셨다.


(1) 성경의 영감과 무오

하나님의 계시를 소멸하고 파괴하려는 세력들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화 할 필요성이 생겼고,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성립된다. 그리고 영감과 무오성 교리의 필요성이 나온다. 영감은 기록과 보존에서 영감 됨을 쉽게 공감하고(착오와 오류 없이 전체가 영감 됨), 영감 된 소설만 읽어도 감동이 되기 때문에 성경의 영감은 인정하지만 무오가 문제가 된다.

한철하 박사는 그의 저서 "나의 신앙과 신학사"에서 궁켈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이 고대 원시 형태를 거쳐서 성경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는데, 문제는 무오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합당한 변증이 있어야 되는데, 보수 신학계에서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 막으려고 하며 연구를 하지 않는다. "학"을 뒤로하고 믿음으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진리이면 증거 할 수 있어야 한다).

영감이니까 무오하다는 식에서 영감은 왜 무오한가? 신앙과 행위만의 무오한 법칙이라고 하는데 약간 잘못된 말이다. 우리 행동과 신앙의 무오한 규범과 학문도 성경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학문이란 자연에 대한 해석 활동이기 때문에 특별 계시인 성경과 빛과 조명 아래 다루어야 한다.

신앙과 행위에서만 무오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서도 무오하다. 성경은 일반 학문의 최고의 경지를 열어주는 열쇠이다. 성경을 통과하지 않은 학문은 학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성경에 담겨 있는 역사적,  과학적 사실도 무오하다. 영감은 믿음의 일이며, 성경의 영감은 신앙의 항목이다.

영감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 이는 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무오를 증명함으로 영감의 증명은 올바른 귀결에 이른다(기록된 사실과 그 때 시대적 상황하고 일치하는 그것이 무오이다).


(2) 영감에 대한 성경적 증거

디모데 후서에 영감 되었다는 말은 헬라어 "데오프뉴스토스"로 표현했는데, "하나님이 호흡하시다."라는 뜻을 가진다(딤후3:16). 이는 영감보다 더욱 강한 의미로 기록됨을 바울이 증명함으로 구약의 영감을 인정한다.


3. 영감의 성질

 

(1) 성경 영감의 방식 및 범위

 

A. 성경 영감의 방식

 

a. 기계적 영감설

필기자로 불러줌을 받아쓴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필기자들을 사용하셨다는 뜻인데 문제는 신언 전달에 동일 재생산이냐(본 대로를 그대로 옮김), 즉각적의 기록이냐의 문제가 제기 된다. 완전 동일의 재생산도 기록도 아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받은 자의 관점에서 이해 된 다음에(기록은 성령님의 감동, 성령님의 충만은 최고의 지식이요 경험보다 승함) 기록하였으며 일반 의식 수준에 이해되었기 때문에 저자의 특성이 살아있다.


b. 동력적 영감설

영감을 믿지만 기록의 지적 능력과, 영적 지각력을 극도로 향상시킨데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령님의 초자연적 영감을 부인하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사상이나 말을 영감한 것이 아니고 그 저자를 영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근본 진리는 무오하지만 역사적 사실들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설은 기계적인 영감에 반대하여 나왔따.


c. 직관적 영감설

모든 사람이 보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진리의 통찰력이 고등하게 발전했다고 하는 설이다.


d. 감력적 영감설

이 이론은 성경의 기록들이 영감된 것이 아니라 기록자들이 영감 되었으며 그 영감은 각 신자의 조명과 정도는 다르되 종류로는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e. 유기적 영감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영감 방식이다. 하나님과 저자와의 관계가 유기적이며, 죄의 영향을 제거 하여 하나님의 뜻이 추호의 오류 없이 기록되게 하신다는 견해이다.

역사적으로 특정 시대 사람들을 등장시켜 만제에 공통될 수 있는 영원한 진리,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성경 말씀은 시대와 상황에 성육신 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즉 그 시대의 문제와 느낌과 언어와 그 시대 풍속으로 말씀하셨다.


B. 성경 영감의 범위

 

a. 사상만의 영감

성경의 사상은 신적으로 영감 되었으나 그것을 옷 입은 문자는 저자들이 아무 신저 지도가 없이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영감뿐 아니라 신앙의 영감을 말하며, 사상의 담지자인 문장과 글까지도 영감 되었는데, 이는 사상이 언어에 담기기 때문이다. 좋은 언어는 좋은 사상이 표현된다. 문학은 철학보다 앞서며, 철학이 발달하기 전에 문학이 발달해야 한다. 좋은 시를 쓸 때 사상도 중요하지만 단어 선택을 잘해야 한다. 사상과 문장은 분리되지 않는다. 성경이니까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b. 부분적 영감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영감 되고 어떤 부분은 영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심적 교훈이 영감 되어서 무오하다는 것이다(역사적 사실에는 오류가 있다).

랍비들은 영감을 콤마와 엑센트까지 영감 되었다고 한다(기록할 때 글자의 모음 부호들이 없어서 맞지 않음) 맛소라 텍스트가 자음으로 된 성경인데 자기들의 전통에 의한 읽는 것을 갖다 붙인 것이 지금의 맛소라이다.

그렇다면 무오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성경 그 자체와 기록된 사실과 지시하는 역사적인 사실하고 일치한 그것이 무오인 것이다. 역사적 부분의 오류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파괴적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구속을 변조하면서 영감을 주장하고, 사본에 대한 본문 비평을 통해 원본을 복원할 지라도 성경은 반듯이 무너질 것이다.

영감을 변홀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사본을 통한 원문을 복원하는 것과, 기록과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며, 본문 전체의 증거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습니다"로 안되니까 "보수, 보수"하는데 무엇을 보수하는가? 현재하고 있는 것을 보수한다는 것인데, 무엇을 보수 하느냐는 내 것으로 받아드려진 것이다. 그것을 보수 할 때 이는 근본주의의 위험이 있다. 우리는 내가 아는 것은 좋지만 주장하지 말고 칼빈주의로 나와 성경 앞에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c. 완전 축자 영감

성경 각 부분 및 문자들까지 영감으로 완전 축자 영감은 별개의 명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등의 어구(語句)들이므로 연합해서 완전 축자 영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성육신(하나님의 말씀이 이성적인 진리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형체화 되어 있다). 한 것이 성경이다. 그러므로 사상과 언어와 모든 경우에 영감 되었다.

하이덱거는 말하기를 언어가 진리의 집이다라고 했다. 시를 읽을 때 언어를 빼고 시적인 사상을 생각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이 만인의 공통된 언어로 기록되지 않고, 그 시대의 언어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주어 졌으며, 또한 예언된 약속이 성취되지반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예수님에게서 성취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에로 약속과 성취의 도식으로 간다(구약의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

옛 언약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로 주었던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으니까 더 이상 우리를 규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권위로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 규범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d. 축자 영감설

성령님께서 성경을 기록할 때 죄와 오류가 개입하지 않도록 감동하고 보호하셨다. 문자의 선택과 문장의 오류가 없도록 하심이 축자 영감이다.

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이지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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