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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주의 새 사회, 새 문화, 새 교회

하나님아들 2013. 1. 23. 16:27

호주의 새 사회, 새 문화, 새 교회

 

 

      목 차

 

Ⅰ. 서 론
Ⅱ. 호주 한인사회와 교회의 현황 및 동향
Ⅲ. 호주 한인교회 목회현장의 문제점
Ⅳ. 호주의 새 사회, 새 문화 그리고 새 교회화
Ⅴ. 호주 한인교회 목회현장의 제의
Ⅵ. 결 론
   참고문헌  


 

Ⅰ. 서 론
 
  호주 한인교회는 선교 30년을 지나면서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마치 여호수아와 그를 따른 성도들의 세대가 지나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다른 세대의 출현 직전의 전화기와 닮은 모양새를 지닌다(삿 2:6).
  우리가 아는 대로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다. 여호수아는 개척의 세대이기도 하다. 피와 눈물과 땀으로 가나안을 개척했다. 그러나 저들은 불과 몇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비극적인 세대로 흘러가고 말았다.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 배우는 가장 놀라운 것이 있다면 역사를 통하여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지나간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그 역사가 우리에게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호주의 이민자들 삶가운데 비극이 있다면 현실안주와 우상문화와의 타협, 거룩한 약속의 상실들을 통하여 세상을 변혁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변하는 타협의 모습을 목도해야만 하는 실정에서 마침내 여호와를 모르는 다른 세대의 등장이다.
  선교 2세대를 바라보는 이때 논자는 호주 한인사회와 교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새 세대의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미래 한인교회의 대안을 조심스럽게 밝혀보고자 한다.  

 

Ⅱ. 호주 한인사회와 교회의 현황 및 동향

 

  1. 호주 한인사회의 현황

 

  1) 호주 한국인 이민의 역사
  호주는 1970년 이전 소수의 유학생 및 콜롬보계획 장학금 수혜 공무원 및 유학생체류(총 50-60명) 수준이었나, 1973년 Whitlam 노동당 정권의 백호주의(White Australianism) 폐지후, 지질학자, 헬리콥터 조종사, 교사 등 소수의 전문기술자 이민(총 이민체류자 100-200명 수준)이 있었다. 월남 패망직전인 1974년부터 파월기술자 500여명이 Whitlam정권의 비자 간소화 정책에 의하여 관광비자로 대거 입국(1975년부터 1,000단위 이상으로 이민급증)하였다. 대부분이 1976년 사면령에 의해 영주권취득 및 한국에 있던 가족초청이 많았다. 사면령 이후 남미체류자 및 중동 취업 근로자들이 계속 입국, 1980년 사면령에 의해 영주권취득 및 가족초청(1980년 총 약 6,000명 수준 육박)도 이루어졌다. 1980년 이후 입양가족 초청 이민, 취업, 사업·투자이민, 유학 등으로 이민자들이 급증하였다(1986년경부터 만 단위 이상 수준으로 증가). 1990년대부터 호주 경제 침체에 따른 이민 쿼타 감소 및 이민 심사 강화 한국 경제 수준의 상대적 상승과 역 이민 증가 등으로 최근 이민 감소 추세이다. 현재(2002년 4월) 주재국 공식발표 한국인 이민자수는 21,517명이다. 이민자의 구성비(1999-2000 기준)는 기술이민 31%, 가족이민 24.6%, 뉴질랜드 경유 이민 44.2%이다. 현재 호주 전체 한인 거주자(시민권자, 영주권자, 단기체류자 포함) 약 4만 5천명 중 약 3만 4천명이 NSW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한다(자료: 호주이민·다문화인구 조사국).

 

  2) 이민자들의 거주 및 생활 형태
  NSW주 거주자의 대부분(90%이상)이 시드니 시내 또는 주변지역 거주 Campsie, Eastwood 및 Strathfield 지역에 밀집 거주하며 상가를 조성하고 있으며, 타 소수민족에 비해서는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은 편이나, 대체로 영세하며, 숙련직·사무직·요식업·숙박·여행서비스업·상업(선물점등), 노무직 등에 종사하고 있다.

 

  2. 호주 한인교회의 현황 및 동향

 

  1) 호주 한인교회의 현황
   최근 '크리스찬 리뷰'지(발행인: 권순형, 시드니, 2004)의 대특집 기획에 호주 한인교회 30주년 기념 세미나가 있었다. 그 가운데 발제자 양명득 목사(NSW주 총회 선교국, 다문화 목회 세계 선교총무)는 현재 시드니에는 몇 가지 형태의 교단 속에 한인교회들이 소속되어 있다고 하면서 금년 4월에 발행된 '크리스찬 리뷰'지(2004년 9월 제177호)에는 시드니에 129개를 포함해 호주 전역에 총 177개의 한인교회가 나와 있으며 물론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교회들까지 합하면 시드에만 200개에 가까운 한인교회들이 있다고 보았다.
 

  2) 호주 한인교회의 동향 : 다문화 사회속의 교회
  호주사회는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하나의 리더십에 의해서 공동체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압도하므로 목회자의 지도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다. 따라서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도 목회자가 마음대로 결정하여 행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어떤 사항에 대한 결정이나 시행에 있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교회간의 일대일 친선관계의 실현에 있어서도 목회자의 지도력이나 관심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다문화 포용을 위한 노력들 호주정부와 사회는 인종차별적인 백호주의정책을 포기하고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약 25년전부터 본격적으로 호주사회는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며 나아가고 있다. 교회는 호주정부와 사회의 다문화 정책에 따라서 다문화속에서 신앙과 봉사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 적응하려는 교회들은 부흥하고 있었으며 다문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회는 교인의 노령화와 침체일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부흥성장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들과 목회자들은 다문화의 한 축인 한국교회 목회자와 한국교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Ⅲ. 호주 한인교회 목회현장의 문제점

 

  호주 한인교회의 역사는 이제 30년이란 청년기를 갖은 정도이다. 그런 가운데 호주 한인교회의 모습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교회를 향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호주 한인 사회가운데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살펴보자.

 

  1. 호주의 한인교회들에 대한 평가절하 현상

 

  호주 한인사회는 한국의 읍단위 정도의 규모이지만 많은 기관들과 조직들을 가지고 있다. 호주의 한인가운데 영주권자 및 시민권자가 5만명 미만임을 고려할 때 한국의 읍 정도의 규모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규모보다 많은 언론사와 잡지사, 각종 기관과 단체들이 난립해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가운데 교회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많은 교회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게 예배하는 교회들을 합친다면 그 수는 현재 교회 수의 여러 배가 될 것이다. 이런 교회의 난립가운데 현실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교회의 모습을 본다. 너무 많아 그것의 귀함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많은 교회로 인해 교회는 상대적으로 가치 절하되고 그에 따르는 복음의 내용마저 함께 평가 절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를 향한 기대가 컸으나 난립현상과 교인 수평 이동 등의 문제로 인해 교회의 제 역할이 힘들어 졌다. 기대가 큰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 호주 한인 교회내에 일그러진 교회관의 확대현상

 

  과거 교회는 영적인 운동과 아울러 문화와 지적으로 성숙되지 못하였기에 사회에 계몽적인, 봉사적인 사명이 있었다. 그런 역할을 과거에도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한편 한인 사회가운데 교회의 모습이 그러한 사명에 온전하지 못하다 하여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서 계몽사업을 하고 구제를 하고 자선사업을 하는 일들은 마땅히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1차적인 이유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기능이고 정신의 기능이고 영의 기능이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열심히 돕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기능을 일차적인 교회의 기능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래의 1차적인 기능인 마음의 기능, 정신적인 기능, 영의 기능이 되지를 않는다.

 

  3. 성도와 목회자의 역량과 인식의 부족현상

 

  호주 한인교회 목회자 선망도 및 신임도의 저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인과를 통한 자업자득 현상으로 본다.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고 금식하지 않으며 양보하지 않아도 교회와 목회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교회와 목회자의 자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목회자의 역량은 강조되어야 한다. 한국의 신앙지를 보면 가끔 '000목사의 사이비(이단)성을 진단한다'는 문구의 내용이 나온다. 이단성(사이비성)있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목사를 구약의 제사장이나 신약의 사도와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도 아니며 신약의 사도도 아니다. 성경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임을 말씀한다(벧전 2:5, 9). 목사는 교회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왕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의 양들을 맡은 청지기와 같은 존재다. 영혼을 죽이거나 살리는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약의 사도들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도 아니다. 사도들은 특별한 주님의 택한 종들로서 교회의 기초가 된 존재들이다. 목사가 사도적 전승을 따라 사역을 하는 자이지만 엄연히 사도들과는 구분된다. 따라서 목사의 반대편에 서거나 목회방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지옥을 가는 것이 아니며 마귀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구약의 제사장과 같이 십일조를 목사가 다 가져가고 마음대로 쓰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다. 목사도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교회가 부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목회자의 절대권위를 주장하는데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진대 권위적 목사의 목사관과 교회관은 많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Ⅳ. 호주의 새 사회, 새 문화 그리고 새 교회화

 

  1. 호주의 새 사회, 새 문화

 

  1) 세계화와 민족화의 파라독스
  메가트랜드의 저자인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와 패트리셔 애버딘(Pareicia Aburdin)은 2000년대의 가장 현저한 변화는 세계적 생활양식(World life-style)의 등장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세계의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민족화'라는 반동적 경향을 낳고 있다. 이런 변화속에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호주의 한인들은 한국의 전통국악을 지킨다든지 전통혼례를 행하고 한다. 호주화와 함께 한국 문화를 지키려는 역설적 반동으로 보인다. 세계적 문화의 균일화와 함께 주체문화의 보존이라는 역설적 운동을 촉진하고 있는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이는 복음주의적 상황화에 대한 대안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시대적 반동과 역설 속에서 한인교회는 어떤 길로 가야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2) 정보화와 전문화의 시대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MM의 시대(Multi Media)라고 부르기를 즐겨한다. 현대는 정보 초고속도로의 시대로 이미 진입하고 있다. 이는 호주사회가 앞으로 사회가 얼마나 크게 변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정보화는 자연스레 전문화의 경향을 띠게 된다. 미래로 가는 오늘의 세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미 전문화의 강한 요구를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주먹구구식 비판과 대응으로 다가오는 세대의 욕구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대응 방법이라 생각된다. 교회는 나름대로 건강한 전략과 방법의 구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효율적인 정보화와 전문화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이다.

 

  3) 여성화, 노인화, 싱글화의 시대
  20세기까지의 사회참여 형식이 2000년대 이후변화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의 영역이 여성의 사회진출, 고령화된 노인의 증대, 그리고 싱글로 사는 개인들의 폭발적 증가이다. 이런 사회 구성원과 사회활동중심 인구의 변천이 교회에 요구할 변화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실제로 교회의 여성화는 이미 오래전에 있어왔던 사실이며, 고령화는 현재 진행중이다. 호주의 보수적이면 전통적인 교회들은 노령화로 말미암아 교회의 힘을 잃은지 오래이다. 오순절적이며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들은 성도들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여성, 노인, 독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적용하면서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교회의 부흥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4) 기계화와 개인화의 시대
  현대 테크놀로지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진흥을 목도하고 있다. 컴퓨터로 인한 네트윜의 발달은 사이버상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지만 그 개인들은 더욱 철저하게 개인으로 남아야하는 불균형을 낳은 것이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설 것인가! 개인화의 현상은 매우 명백하다. 그와 함께 명백해 지는 것은 가정의 사회화이다. 점점 가정은 해체되며 가정단위마저도 사회조직화 되어 가정의 참다운 가치관을 세울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가치관이 급격히 세속화 상대화되면서 오히려 반대로 사람들은 절대적 가치관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명확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가치관을 제시한다면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복음으로 변혁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에게 놓여있지 않은가 하는 낙관도 해볼 수 있다. 

 

  2. 호주의 새 교회화

 

  1) 세계화와 지역화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교회
  급격히 호주화(세계화)되는 상황가운데 사람들은 세계성의 이미지를 찾게될 것이다. 그것은 이름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걸맞는 비젼, 스케일 그럴만한 의식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적 필요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교파적 교회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진취적으로 이런 이미지를 극복하려는 교회가 신선하게 보이고 있다. 요즘은 커뮤니티 처치를 말한다. 그것은 지역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역적 필요와 정서를 충족시켜야 한다.

 

  2) 섬김과 치유가 있는 가정화되는 교회
  과거의 전통적 교회는 일반적으로 권위적이다. 건축양식이나 장식, 강대상, 까운 등.. 그러나 현대교회는 섬기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종(servant)의 이미지이다.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섬김은 현대인들의 상실된 정서에 위로를 더할 것이다. 이는 교회의 가정화를 낳게된다. 이는 큰교회에서 적용하기에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작은 그룹들로 나누어 가정교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3) 팀사역과 전문화 사역의 교회
  담임교역자 초능력시대는 지났다. 한사람의 목회자로 효율적인 목회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팀사역이 필요하다. 물론 팀사역가운데는 사역의 전문화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기술에 따른 전문화 사역이 아니라 은사에 따른 사역을 맡아야 한다. 또 스탬들만 전문화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은사를 점검해 주기도 해야한다. 구체적으로 찾아서 그에 따라 사역을 맡기기도 해야 한다.

 

Ⅴ. 호주 한인교회 목회현장의 제의

 

  1. 이민 신학의 정립

 

  이제 호주 한인교회는 30여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웅비의 큰 꿈을 가질 때가 되었다. 특히 반세기 저 너머를 바라보면서 백년지계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보아야겠다. 생각과 꿈이 있는 개인·교회·사회는 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한인 이민교회의 존재의 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민 신학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공통적인 분모를 찾아서 이민교회가 이 시대, 이 사회에 있어야 할 역사의식이 분명하도록 해야 하겠다. 그리고 한인교회가 많다고 해도 여전히 믿는 이들보다는 안 믿는 교포들이 더 많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전교포 복음화 운동에 힘써야 할 것이다.

 

  2. 거시적 교회관을 통한 초대교회 공동체신앙으로의 회귀

 

  현재 호주 한인교회는 새로운 교회관을 요구한다. 그 답은 초대교회와 같은 본질로의 회귀이다. 초대교회의 모습과 현대 교회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가 흔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친다 하더라도 초대교회의 직제와 행정, 그리고 규모로 돌아가자는 의미이기보다는 그 정신과 뜻을 이어받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형태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3. 교회 본질적 사명의 전력

 

  교회는 본래의 기능을 균형있게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성서적 본질에 성실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기능들은 무엇인가?
  첫째는 예배기능이다. 교회가 갖는 모든 예배행위는 모든 기능과 행위에 우선한다. 만일 예배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무시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의 본질에서 떠나버린 것이다. 구약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예배를 위하여 성막 성소 성전이 세워졌고 예배에 관한 제반 규례가 제정되었다. 예배기능은 그 대상이 절대자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를 향하여 경배와 찬양을 드릴 의무를 지닌 채 세상에 태어나고 그리고 삶을 유지해 나간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삶이나 교회생활 속에서 예배가 삭제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삭제하겠다는 도전과 다를 바 없다.
  둘째는 선교기능이다. 선교란 기독교의 복음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회의 선교는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절대명령에 근거한다. 절대명령은 절충이나 타협을 배제한다. 액면 그대로를 수행하고 실천해야 한다. 물론 선교신학자들의 견해는 각양각색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문자적으로 전하는 행위를 선교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사회변혁과 개조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일련의 사회행동을 선교로 보는 입장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주된 관심이 인간의 영혼구원에 있는데 반해 후자는 사회현상과 역사현실에 있다. 이러한 상반된 듯한 입장의 차이 때문에 두 신학적 견해가 마치 대립적 관계로 이해될 때가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기독교선교의 진수는 두 입장이 교차하고 만다는 접목점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영혼 구원과 사회구원의 문제는 이원화되어야 할 성격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접목을 필요로 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교육기능이다. 한권의 책인 성서로 민족교육을 시작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모든 삶과 교육의 뿌리를 성서에서 도출해내고 있다. 교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최종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자는 것이다. 모든 교육에 목적과 목표가 있듯이 교회교육목표와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게 하자는 것이다.
  넷째는 친교기능이다. 교회는 부단히 선교의 영역을  넓히고 교육의 뿌리를 깊게 해 나가면서 더불어 사는 친교기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의 발생과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친교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성립시켰음을 물론,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의 담을 무너뜨렸다.
  다섯째는 봉사기능이다. 교회는 철저하게 봉사기능을 수행하는 단체이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옆으로는 이웃을 섬겨야할 기능적 책임을 안고 있다. 성경의 교훈은 남을 섬기는 자가 큰 자이며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섬겨야 한다고 교훈 한다.

 

Ⅵ. 결 론

 

  미래의 지도적 교회는 단순한 '대교회'(mega-church)가 아니라 인간요구에 성실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돌아서는 교회' 곧 'meta-church'가 될 것이다(Carl George). 이런 교회는 새로운 종류의 교회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대 새롭게 도전하는 상황을 과감하게 직면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 2세대를 바라보는 현대 호주사회의 한인교회는 마치 여호수아의 세대와 같이 여호수아 그를 따르던 성도들의 세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의 출현 직전의 전환기와 유사하다. 이 세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삶에 응답하지 못한 삶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에로 들어가서 질적으로 새로운 교회가 되는 일일 것이다.

 

 

참고문헌

 

Heinrich Arnold, 「공동체 제자도」 이상신 역, 서울: 도서출판 쉴터, 1997.
Joel Komiskey, 「셀 그룹 폭발」 박영철 역, 서울: 도서출판 NCD, 2000.
_____________, 「지투엘브 이야기」 정진우외 역, 서울: 도서출판 NCD, 2000.
권순형, '크리스찬 리뷰 177호', 시드니: 크리스챤 리뷰, 2004.
황성철, 「한국교회 성장정체의 현안과 심층, 그 대안의 모색」, 서울: 한국교회문제연구소, 1996.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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