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리더 지침(CELL LEADER'S MANUAL) 8
제 8 장 셀 리더 지침(CELL LEADER'S MANUAL)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흥분되는 일은 왕중 왕이신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일입니다.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고, 아직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의 삶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목자로 섬길 작은 교회인 '셀'은 신약성시대의 교회를 모델로 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삶을 같이하시며 보여 주셨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시면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 천 명의 제자들이 작은 단위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며 모이고 사역했던 것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행2:46). 그 후에 생긴 모든 교회도 셀 교회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의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마 교회가 여러 개의 그룹으로 구성된 셀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지도자로 있던 교회(5절, "저의 교회"), 아순그리도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14절), 빌롤로고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한 교회(15절) 등이 있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는 에베소에 있을 때도 그들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고(골4:15), 골로새 교회 안에는 빌레몬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습니다(몬2). 이런 예들만 봐도 1세기의 교회들이 셀 교회였음이 분명합니다. 초대 교회들은 이런 '셀'을 기본 단위로 하여 신앙의 가족으로 뭉치며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했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모델이 지난 2천년 동안 잊혀져 왔으나, 20세기 후반인 지금 전세계적으로 성령님에 의해 다시 부활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성경에 근접한 교회를 만들려고 시작했던 많은 교회들이 거의 대동소이한 사역의 형태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책을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견학을 가서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거의 똑같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지금 성경적인 모델의 교회를 부활시키고 계시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바로 이 성령님께서 부활시키신 '셀 교회'의 사역자인 것입니다. 이런 새 물결 운동에 당신을 불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명감을 갖고 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시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할 때, 주님께서 교회다운 교회, 셀다운 셀을 당신을 통해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Family of God)
셀 그룹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이 혈육으로 맺어졌다면, 하나님의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가족에 속하게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크리스챤들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각 지역에 있는 지역 교회에 속하게 하여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해 나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지역 교회 안에 또 작은 단위로서의 가까운 가족을 형성하여 그 안에서 육신의 가족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연합하는 사람들이 바라 셀 그룹입니다. 그러므로 셀 그룹 그 자체가 또한 교회이며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안의 교회에서 누구나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는 이제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깥에서 헤매던 인생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운명을 같이 나누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만 들어오면 과거의 어떤 불행이나 열등한 것이나 괴로운 팔자나…이런 것들이 다 눈 녹듯이 녹아져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고 셀 그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교회의 모습이 과연 그렇습니까? 정말 성경이 말하는 한 운명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따로 따로 놀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 차별하고 더 인정하고 덜 인정하는 그런 세상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관계라면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이고 또 세상의 가치 기준들을 초월하고 그리스도 안의 신분만을 가지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오늘날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으로 가까운 그리스도 안의 관계를 보기가 쉬우며 인간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를 이룬 공동체를 보기가 그렇게 쉽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가 불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참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많은 사람들의 형식적인 연합이며,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관계를 '막대기 신앙인들'이 '콩자루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교회 공동체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하나님과는 꽤 잘 통한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막대기 신앙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면 틀림없이 '콩자루 교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콩을 자루에 잔뜩 넣어 보십시오. 자루 안에 있을 때는 모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콩과는 관계없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자루만 쏟으면, 각기 이리 저리 맘대로 굴러가 버립니다. 주일 예배는 같이 드리고, 구역 예배 때 같이 모이고, 기도회 때도… 많은 모임들을 같이 하지만, 그런 행사들을 끝내면 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교회가 바로 콩자루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메주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콩이라도 열을 가하면 딱딱하던 껍데기와 속이 푸석푸석해지면서, 속에서 진액이 나와 다른 콩들과 함께 이리 저리 붙어버립니다. 즉 콩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주를 만들 듯, 자신을 부인하고, 포기하고, 주님께 온전히 항복한 크리스챤들이 모이면 꼭 메주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한 운명이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교회를 '메주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족의 참모습입니다. 셀 그룹 사역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타파하고 일신하여 참다운 운명 공동체인 하나님의 가족을 오늘날 재현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성경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형제·자매가 서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그런 모습의 교회, 즉 예수님께서 디자인하신 바로 교회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셀 리더는 이런 하나님 가족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모든 양들이 그런 공동체를 이루게 되도록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셀이고 또 셀 리더의 모습이기 때문에, 셀 안에서는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같은 종류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어있고, 또한 셀 리더는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셀 구성원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서로 격려하고, 관계의 문제가 일어나서 괴로워하다가 해결하고, 참고 인내하고, 등을 두드려 주고…이러한 일들이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들이 셀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하나님의 가족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므로 육신의 가족 관계에서는 볼 수 없는 더 진한 사랑의 관계가 나타나야만 됩니다.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하나님과 공통된 목적과 관심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우리를 유일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가족보다도 더 진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셀 리더도 역시 육신의 부모를 뛰어넘는 하나님 차원의 사랑을 가지고 양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될 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35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던" 그런 차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이 세상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차원은 요한복음 13:1에서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책임지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그렇게 책임지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기를 찾으러 왔을 때,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9-5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고, 이것이 셀 그룹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의 참 사랑의 모습을 아래의 구절들을 읽으며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셀 그룹 리더의 삶 셀 그룹의 리더는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선생'(teacher)이 아니고 '목자'(shepherd), 또는 '부모'(parent)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공부하고 교제하는 그런 사역이 아니고 하루 24시간 내내 full time으로 양을 책임지는 목자와 같고, 자식을 위하는 부모와 같습니다. 가정에도 부모, 오빠, 누나, 형, 언니, 동생들이 있듯이 셀 그룹도 영적인 가족으로서 작은 단위의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셀 리더는 이런 영적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요, 부모로서 당신은 양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돌보고, 위로하고, 때로는 도전하고, 꾸짖고, 싸매 주고 등등 그때 그때 적절하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라난 모든 셀 그룹 회원들은 다 주님의 사역자요 제사장들로 은사 받은 대로 사역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크리스챤들을 실질적인 사역으로 인도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성장하는 회원들과 함께 당신은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 즉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당신의 셀 그룹 교회가 선교 센터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 명, 두 명…계속 구원받아 셀 그룹 교회가 자라나 10명 전후의 회원이 되면, 당신의 셀 그룹은 또 다른 셀 그룹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예비목자 생활을 통해 준비된 일꾼이 그 그룹을 맡아 당신이 한 것과 똑같은 사역을 그 그룹에서 이어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잘 감당하려면 목자로서 당신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는 생활이 몸에 배도록 힘써야 하며,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에 회원들 보다 앞서야 합니다. 또한 회원들이 본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생활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고 본받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리더가 본을 보여주고 열심히 섬기는 것을 볼 때, 모든 양들이 진정으로 순종하며 따라올 것입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순종을 가르치십시오. 또한 당신이 지도자에게 철저히 순종함으로 그들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제자를 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마태복음 28:18-20은 아래와 같이 한가지 명령에 3가지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학교나 학원은 가르치는 곳이지만, 가정은 자녀들이 가르친 내용대로 지킬 때까지 가르치는 곳입니다. 셀 그룹이 바로 영적인 가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때까지 리더와 모든 회원들이 서로간에 가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리더는 선생이 아니고 부모요, 목자입니다. 이것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잔소리로는 사람을 못 바꿉니다. 성령님만이 바꾸십니다. 그러나 리더인 당신이 인격, 가치관, 인생관, 사역…에 모범이 되어야만 성령님께서 그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회원들을 도전하시며, 참 가정, 참 공동체가 점점 이루어지게 됩니다. 즉 모자를 벗기는 일입니다. "순종해라", "복종해라" 한다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존경할 만 해야 순종합니다.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먼저 모자를 벗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를 삼아 계속 인도하면서 성숙한 주님의 종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의 사역의 핵심인데, 성숙하게 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무엇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가에 따라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회원들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숙한 단계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회원들에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며, 그 다음은 주님의 말씀이 옳으므로 너무도 당연하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제3단계에 이르렀는가를 매일 생활 중에 확인 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3단계에 도달한 사람의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시험에 들지 않으며, 또 모든 사역의 길에 자기가 생색을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무엇이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니, 내가 먼저 그런 삶을 살 때만, 회원들이 누가 뭐래도, 세상이 두 조각나도, 말씀의 원리만을 고집하며 사는 그런 성숙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숙한 삶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의 원리만을 고집하고 사신, 즉 십자가를 지며 철저히 하나님만을 섬기다 가신 삶입니다. 그것이 또한 셀 리더의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성숙한 삶이 나타나는 영역이 바로 '인격'과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처럼 사역하다가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항상 자신의 인격에 대해 의식적으로 민감하여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하며, 사역에 있어서 항상 예수님의 방법대로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인격과 사역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주님의 사역자로서 금방 한계가 오며 큰 벽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항상 이 두 가지를 심각하게 점검하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항상 셀 리더는 '공부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고 '부모'요, '목자'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자기의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런 선한 목자로 사는 것(요10:11)이 셀 리더의 삶임을 항상 기억합시다.
셀 그룹 회원 셀 그룹 회원이 되려면:
1)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
2) 성경대로 침례를 받는다.
3) 교회의 교인(회원)으로 가입 또는 허입한다.
4)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
5) 셀 그룹 정규 모임에 반드시 참석한다.
셀 그룹 회원의 임무:
1) 셀 그룹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
2) 교회 전체 예배와 각종 모임(수양회, 기도회, 세미나 등)에 참석한다.
3) 셀 그룹 리더에게 순종하며, 다른 회원들을 자기의 가족으로 알고 사랑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제자를 삼는 일이 나의 주전공이며 본업임을 늘 상기하고 양을 치는 일에 헌신한다.
셀 회원간에 철저히 지켜져야 할 원칙 셀 안에서 회원간에 다음과 같은 원칙이 지켜질 때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1. 성경 말씀에 항상 복종해야 하며, 말씀에 따라 적용해야 함 성경 말씀은 크리스챤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권위입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든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든지, 항상 성경의 원리에 의해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원리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고집하지 않고 성경 말씀의 원리대로 순응하도록 훈련받는 것이 셀리더의 책임입니다.
2. 모든 회원을 서로간에 용납하고 받아줘야 함 셀 안에서는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서 선입견을 갖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진짜 교제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조건 없이 받아줘야지, 누구를 더 위하고, 더 쳐주고, 인간적 조건에 의해 더 인정할 때 코이노니아는 깨져버립니다. 참 가족은 인간 조건에 관계없이 진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3. 각 회원 사이에 절대적인 용서가 있어야 함 서로 잘못이 있을 때 셀 그룹 안에서는 항상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잘못을 지적해 주고 징계도 할 수 있으나, 회개하는 모든 회원을 따뜻하게 용서하고 잘못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의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에 꽁하고 앙금을 품는 그런 의인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4. 상호협력(Genuine Support)과 완전한 비밀 보장(Total Confidentiality) 이 지켜져야 함. 그룹이 참 가족으로 뭉치고 서로 하나가 되려면, 진지하고도 솔직하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하며(즉 투명해야 함. 크레믈린처럼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게 하는 사람은 곤란함), 또한 그룹 안에서 나눈 모든 솔직한 이야기들은 절대적으로 그룹 밖의 사람들에게 비밀로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의 나눔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단, 목사나 다른 위의 지도자들이 알고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누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회원들이 그 문제들을 내 문제로 알고 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셀모임 셀 모임은 캠퍼스 셀 회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심된 가족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소그룹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원들이 모여서 사랑을 나누고 삶을 점검하는 가족 회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셀 모임은 어떤 형식보다도 우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진행해야 합니다. 그 때 그 때 성령님께서는 각 셀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고 리더나 회원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리더가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고 참석하여 그 다음 성령님의 인도를 감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셀모임에 관해서는 아래의 사항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셀 모임은 매 주 셀 그룹이 정한 시간에 갖는다 셀 회원들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을 정하여 모이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바꾸면 헷갈리니까 어느 정도 시간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꼭 1주일에 한 번은 셀모임을 갖는다 심심하면 모임을 갖지 않거나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의 주일 예배가 일이 있다고 드려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주일 예배처럼 셀도 1주일에 한번의 큰 모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2주에 한번 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리더와 회원들이 잘 판단하여 하면 됩니다.
3. 셀 모임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셀 모임은 가족들의 Fellowship입니다. 가족의 일원이 그 자리에 끼면, 가족들만의 대화가 안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회원들만으로 모임을 갖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 방금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나, 구원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 혹은 모임에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같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이 크리스챤들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회원만의 모임이 원칙입니다.
4. 셀 모임에는 셀 회원들 전원이 참석해야 한다. 공동체 가족의 모임에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분위기가 깨집니다. 아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셀 모임에는 무조건 모이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셀모임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야 참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셀 모임에 우선을 두도록 인도하십시오. 5. 셀 모임의 진행 셀 모임은 물론 그 날 그 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행해야 합니다. 셀 모임은 성경공부가 아닌 가족 모임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래에 있는 것들을 참고하여 모임을 갖도록 하십시오.
a. 얼음깨기 시간(5-10분) 일주일만에 만나기 때문에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간단한 다 과를 나누거나 게임을 함으로써 경직된 분위기를 풀 수 있게 해줍니다. 게임 이나 일상적인 사건들을 대화의 소재로 하여 나눔으로써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이 시간의 주 목적입니다.
b. 예배 및 찬양의 시간(20-30분) 리더 혹은 회원 중 찬양을 잘 인도하는 사람이 맡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간 에는 하나님께서 모임에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찬양, 그리고 간단한 메시지(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도움이 되는)를 적절히 안배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배와 찬양의 시간은 즉흥적이어서는 아니 되며 반드시 사전에 선곡하여 계획 을 세움으로써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예배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합니다. 선곡 할 때는 그날 모임의 예배 주제를 고려하고 같은 조의 곡들을 선곡함으로써 예 배가 막힘이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c. 나눔의 시간(30-40분) 이 시간은 자신의 삶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서 구성원 모두가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나눕니다(한 사람이 5-10분을 넘기지 않도록).
*지난 1주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눔:
힘들었던 것, 좋았던 것,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 은혜 받은 사건이나 말씀,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된 일들, 헤맨 것, 마음을 슬프게 한 일들, 지난주일 설교 말씀을 깨닫고 적용한 것들, 지난 1주일 동안 가졌던 QT(경건의 시간)에서 받은 은혜 등. 리더는 나누는 도중에 구성원들이 나눈 것들을 간단히 메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들은 표시를 해 놓고 나중 '토의시간'에 그 사람으로부터 더 자세 한 내용을 들은 후 집중적으로 토의할 수 있습니다.
d. 토의시간(1시간-2시간) 나눔의 시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뽑아 집중적으로 같이 토의함으 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입니다. 토의에는 회원 모두가 참여하여 적극적으 로 토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 격려, 위로, 도전, 권면, 책망 을 적절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TV 드라마에서 그날의 주인공에게 초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은 원리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드라마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 은 것으로서, 매 편마다 에피소드가 있고 그 에피소드에 따른 주인공이 그 때 마다 다른 것처럼, 셀 모임 때도 그날의 토의 주제의 주인공이 리더가 될 수 도 있고, 셀 회원 각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날 특별히 토의할 만한 것이 모임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리더가 미리 준비해 간 토픽을 중점적으 로 다루게 됩니다.
***좋은 주제의 특징***
1) 그룹 내의 모든 회원에게 다 적용될 만한 것.
2) 격려되고, 자극되고, 도전될 만한 것.
3) 가치관의 문제.
4) 모두가 은사를 발휘하여 해결할 수 있는 주제.
5) 지식적인 것보다는 삶과 직결되는 문제.
e. 비젼을 나누는 시간(10-20분) 앞으로 1주일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나눔. 그리고 어떻게 전도할 것인 가에 대해 모두가 같이 전도 전략을 세움. 이 때 리더는 각 사람의 발표한 비 전을 적어 놓았다가 다음 모임 때 꼭 평가할 수 있도록 함. 이것은 1주일간의 비전입니다(한달, 혹은 1년이 아님). 그리고 비전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평가가 가능한 것).
f. 기도회(20-30분) 앞서 나눔의 시간이나 토의시간, 또는 비전을 나누는 시간에 메모해 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또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비목자를 개발하라 As You Go, Develop Apprentices!
예비목자(Intern)란?
목자 사역의 준비를 위해 훈련받는 사람. 모든 사역자는 목장이 시작되는 순간으로부터 예비목자를 가짐으로써 특정 기간이 지난 후 그 목장이 배가를 위해 분열할 때 목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딤후 2: 2 살전 1:5-7 목양사역은 가르쳐지는 것(taught)이 아닌 사로잡혀지는 것(caught)이다. 성경공부로는 충분치 못하다. 성경공부 벌레가 사역하는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자훈련은 인턴과정을 필요로 한다.
모세의 인턴--여호수아 엘리야의 인턴--엘리사 침례 요한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바울의 인턴--디모데, 디도, 마가 인턴 훈련단계들
1. 당신의 인턴이 당신을 관찰하게 하라.
2. 당신이 행한 일과 그 일을 한 이유를 설명하라.
3. 인턴이 동일한 일을 하는 동안 그가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라.
4. 관찰을 통해 발견한 그의 장, 단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라.
5. 그의 약점을 보완시킬 방안을 제시하라.
6. 인턴에게 과업을 부여하라.
7. 전략적으로 그로부터 관심을 약화시키라.
8. 그가 자신의 인턴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라.
9.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당신과 동일한 자격자로 대해 주라.
목장 모임시간에 인턴과의 사역을 위한 제안
1. 모임이 있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2. 목장모임 후 각자가 그 모임을 통해 배운 바를 나누라. 그리고 다음 모임을 위해 함께 계획하라.
3. 목장 모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토의하라. 모든 사역에 당신의 인턴을 동참시 키라.
4. 인턴이 목장 모임을 인도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되면 그에게 모임의 인도를 맡기라.
5. 그가 목장 모임을 발전시켜 가는 동안 보여지는 장, 단점을 평가하라. 당신의 결론을 솔직히 말해 주라. 더 개발해야할 기술을 보완시키는 대책을 제시하라.
6. 목장이 분열되기 한달 전에 모든 목장 사역활동을 그에게 맡기라. 이렇게 함 으로써 그 목장이 배가될 때 구성원들이 그를 목자로 인정하는데 어려움이 없 게 된다.
목장 사역시 인턴과 함께 해야할 사항들
1. 목장사역의 모든 활동에 인턴이 함께 있게 하라. 활동 후 함께 평가하라.
2. 적절한 기회에 상담하는 상황에 인턴이 함께 하게 하라. 상담 후 당신이 행한 상담의 이유를 설명하라.
3. 심방이나 만남의 기회에 그가 함께 하게 하라.
4. 당신이 전도할 때 인턴이 볼 수 있게 하라.
5. 기도 모임, 철야 기도 등에 함께 하여 실제적으로 함께 기도하라.
셀 리더로서의 주의사항
셀 리더는 아래의 몇 가지 조항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1. 다른 셀 리더들과 하나되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함
사역하다 보면 셀 구성원들에게만 신경을 쓰다 힘이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료 셀 리더와 하나를 이루어 긴밀히 연락하고 같이 기도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다른 셀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 것
누구에게도 다른 셀 리더나 그 셀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아야 서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셀에 대한 어떤 견해가 있으면, 꼭 그 담당 셀 리더에게 말해야 합니다. 만약, 그 셀 회원 중에서 밖에 나와 셀 리더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불평을 털어놓을 경우, 절대로 그 사람과 동의하거나 위로해 주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설사 그의 말이 맞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럴 경우에는 꼭 담당 셀 리더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셀 자체 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 도적질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상 나의 셀 구성원 중에서도 밖에 가서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리더가 그 사람에게 장단 맞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목자의 노릇을 하겠습니까? 또한 죄인인 우리는 "내가 저 그룹의 셀 리더라면 저 리더처럼 하지 않았을 턴데. 이 형제/자매가 셀 리더를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구나"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잘하면 얼마나 잘합니까? 서로 서로 하나를 이루어 돕는 리더들의 공동체가 되어야지 교만한 마음을 먹으면 곤란합니다. 우리 셀 리더들이 다 한 공동체로서 사역하지 않으면, 양들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므로, 항상 리더들은 한 목소리를 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은 리더들 사이에게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같이 연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잘못하는 것까지 다 덮어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셀 리더들 자신이 하나의 셀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셀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다른 구성원들 앞에서 하지 말 것.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셀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편을 가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그렇게 한다면 참된 양육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4. 셀 원들의 중요한 문제를 존 디렉터(Zone Director)나 목사에게 보고할 것.
종종 "아무 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당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셀 원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다음과 같은 기초 원리를 기억하고 사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셀 리더는 '이 구성원은 내 양이기에 앞서 존 디렉터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하고, 존 디렉터는 '이 양은 내 양이기에 앞서 목사님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하고, 목사는 '이 양은 내 양이기에 앞서 예수님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물론 아무에게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디렉터와 목사님은 아셔야 합니다"라고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쉽게 약속했다가 오히려 나중에 그 영혼을 망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5. 중도에 포기하지 말 것.
사역을 하다가 힘들다고 "때려치우자"라는 유치하고 미성숙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우면 위의 리더와 상의하고 기도할 문제이지, 하나님의 교회의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힘들 경우,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나를 더 큰 신앙으로 성숙시키시려나 보다' 라는 믿음을 갖고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만 붙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한 운명인고로 항상 위의 리더가 나를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괜히 혼자 고민하고, 고독을 씹는 일을 중단하십시오.
6. 혼자 사역하지 말 것.
크리스챤은 누구나 각자가 주님의 제사장이지만 교회 공동체가 모르는 가운데 목자 혼자서 사역을 해서는 안됩니다. 셀 리더도 모르는데 셀 회원이 혼자 사역을 해서 실적을 올리려는 그런 자세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셀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한 가족임을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같이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운명을 함께 하는 그런 자세를 가지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다 서로 연결된 주님의 몸의 지체입니다.
7. 마음 도적질을 하지 말 것.
아무리 좋은 뜻으로라도, 그 셀 리더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문제가 있는 구성원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이것이 마음 도적질로 연결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면, 꼭 그 셀 리더나 존 디렉터를 찾아가도록 해야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월권은 금물입니다. 내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보는데 주력해야지 다른 셀의 구성원은 그 셀의 목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다른 셀의 구성원이 나에게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셀의 리더와 그것을 상의하도록 하십시오. 주제넘은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셀 리더 보고서
셀 리더는 1주일에 1회씩 보고서를 존 디렉터에게 제출함으로써 존 디렉터나 목회자가 각 목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과 상황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셀 리더는 분명한 간증을 가져야 한다. (딤후1:12)
2. 셀 리더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행6:5)
3. 셀 리더는 교회의 비젼을 지원해야 한다. (고전1:10)
4. 셀 리더는 인간적이어야 하며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5. 셀 리더는 열정적이어야 한다. (골3:23)
6. 셀 리더는 인도(지도)하는 은사 가진 자로서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7. 셀 리더는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딤전 3:6)
8. 결혼한 셀 리더는 배우자의 동의와 협조 하에 셀 그룹 리더가 되어야 한다.
9. 셀 리더는 교회에 십일조를 해야한다.
10. 셀 리더는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모세 (출3:10-12) 여호수아 (수1:9) 기드온 (삿6:13-16) 예레미아 (렘1:6-8)
1. 기도하는 책임 (겔22:30)
2. 통제가 아니라 격려하는 책임 (골1:28)
3. 셀 리더의 지도력을 제한시키는 것 네 가지
1) 성경말씀- 말씀의 범위를 떠날 수 없다.
2) 교회 지도력 (목회자 팀)
3) 모든 교인이 성령의 인도를 잘 받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음
4) 지도력의 남용이나 오용
1. 교리적 총체--셀 교회의 탈 중심화로 인한 특징. 셀 그룹의 교리적 극단화 가능성. 지역 사역자나 지역 목회자의 강력한 지도력과 신속한 대처가 필요.
2.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문제--가정에서의 모임. 성령님께 의지. 실제 삶의 나눔. 비형식적 예배 모임 등이 감정에 치우친 신앙 형성 가능성.
3. 말씀의 권위와 기초보다 경험에 의존하기 쉬운 문제--기존 교회의 경우 듣 고 이해하는 인지중심의 교육이나 결과로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를 만 들어내는 반면, 셀 교회는 말씀보다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 쉬움.
4. 탈 중심화 구조로 인하여 교회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셀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 문제--그러한 리더는 즉각 순종하거나 제거되어야 한다.
5. 정체의 문제--성장을 멈춘 셀은 즉각 해체되어 다른 셀들 속에 흡수되어야 한다.
제13장 셀 모임
셀 모임은 4Ws
1. Welcome(환영)--Ice-breakjng
간단한 활동으로써 일 주일만에 만난 상황에서 아직 경직되어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없애고 서로에게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얼음깨기 활동을 실시한다. 단순한 게임을 즐기는 재미가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윤활유를 주입하는 것이 주 목적이므로 지나치게 게임이나 흥미위주로 나아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2. Worship(예배)--경배와 찬양
주로 찬양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 인도자는 물론이고 참석하는 셀원들모두가 주님의 임재에 집중하며 그분 자신을 높이는 일을 통해 깊이있는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 Words(말씀)--말씀에 비취어진 자신의 삶을 나눔: 변화되지 않은 죄성, 습관, 태도, lifestyle, 가치관, 야망, 쓴 뿌리 등 자신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견고한 진들을 나눔.(wESLEY의 속회운동 당시 CLASS MEETING AGENDA에는 서로 한 주간동안 지은 죄나 유혹받은 일을 나눔으로써 영국 전체의 영적 성결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삶을 나눈다는 말을 단순히 자신의 생활을 나누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 이 자신의 영적 순례의 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들을 다를 것인지를 도움받기 위함이다. 따라서 영적 성공담은 다른 사람들에게 ROLE MODEL 이 되고 자신의 실패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길을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4. Works(사역)--비전과 기도
전도 소그룹 활동을 나누며 현재 사역하는 진행상황을 셀원들에게 알림으로써 함께 기도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이후 미국 유학과 군입대를 이유로 집을 떠난지가 벌써 8년도 더 넘었고 딸 역시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유학을 가고 그리고 시집을 갔기에 즙을 떠난지가 벌써 만 2년도 너 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은 그야말로 심리학들이 말하는 빈둥우리가 되어 저와 아내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아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모두 떠났고해서 굳이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야할 필요를 못느껴 지난해 여름에 대전 근교의 작은 농촌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맑은 공기, 조용한 환경, 넉넉한 이웃이심 등 모두가 더 말할 나위없이 좋게만 느껴집니다. 아아들도 없고 시골로 이사간 결과로 우리 집에는 개와 고양이와 닭들을 기르는 일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동물 식구들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닭 두 마리 등 모두 6식구일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동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종종 웃습니다. 지난 여름방학땐 남미와 미국을 3주간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닭들중에 수컷인 장닭이 새벽마다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낮에도 장닭이 마치 새벽처럼 울어대길래 무슨 닭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느냐고 아내에게 중얼거렸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달기 우는 수리가 아니라 개가 닭 흉내를 내는 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뭐? 개가 닭 소리를 흉내낸다고? 거짓말이지?라고 되물었지만 아내와 딸은 정말 그렇다고 재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있다가 다시 닭 우는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니 닭은 없고 개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개가 닭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라는 아내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개가 닭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꼴불견이라 생각한 아내가 개에게 야단을 몇 번 친 결과 그 개가 닭소리 흉내내는 일은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되었답니다.
여름에 대 여섯 마리였던 닭이 이제는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몇 일전에도 달고 개 사이에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어있는 것을 보고 한참이나 배꼽을 잡고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개에게 밥을 주고 닭에게 모이를 주는데 먼저 개에게 밥을 주었습니다. 아직 닭에게 모이 줄 차례가 되지 않았는데도 닭 한 마리가 개가 밥을 먹고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개가 닭을 쫓아다니고 닭은 날개를 퍼득이며 도망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터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밥을 먹으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닭이 개 밥을 얼른 쪼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개가 돌아보면 마치 아무 짓도 안했다는 듯이 닭도 시침이를 뚝 때고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장면이라서 한발자국 물러나개와 닭이 하는 행동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두 세 번쯤 닭이 개 밥을 몰래 쪼아 먹고는 딴전을 피다가 드디어 개에게 발각되고 말았지요. 저는 속으로 너 닭아 큰일났다. 어쩌다가 개밥을 훔쳐먹다가 들켰느냐며 걱정스럽게 다음 상황을 지쳐보던 저는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가 자기 밥을 뺏어먹는 닭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훔짓 뒤로 물러나던 닭이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개를 향해 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개가 오히려 놀라 뒷걸음질치는 것입니다. 아니 개가 닭한테 밥도 빼앗기고 혼도 나다니! 워낙 닭이 세게 나오니 그만 개가 슬그머니 물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개는 사냥개 종류로서 평소에 얼마나 활발하게 뛰어다니는지 그 이름을 힘쎈 놈이라는 의미의 영어단어인 마이티라고 붙여주었는데 개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지는 닭한테 먹이를 빼앗기고 뒤로물러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지요. 자기 이름 값도 못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폭소를 자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 후에도 몇 번 같은 일이 있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개가 다시 기선을 제압하고 닭을 눌러버렸지만 그렇게 하기까지는 개의 입장에서 다시 용기를 가져야만 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귀를 이기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닭에게 겁을 먹고 물러나는 개처럼 어쩌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공연히 사탄에게 놀라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름 값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그룹 인도법 조회 (152)
cell관련 자료 | 2005/10/30 (일) 22:42 공감 (0) 스크랩 (0)
소그룹 인도법
소그룹에서의 인간관계-
들어가는 말
적극적인 인간관계는 좋은 소그룹 형성의 핵심입니다. 그룹 내에서 사람들과 함
께 앉아 있다고 해서 돌봄과 소속감을 주는 인간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습
니다. 좋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서로를 보다 잘 알게 해주고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며 그룹 회원들을 결속시켜 주는 원칙들과 기술들 그리고 활동들이 있
습니다.
그룹의 역동성과 의사 소통의 기술들 그리고 나눔을 위한 질문들을 이해하는
것은 리더와 회원(조원)들이 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도
움을 줍니다.
1. 회원(조원)이 모일 때
그룹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
고 몇 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주의 모임에서 나누었던 것들에 관
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주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리더는 친한 친구들보다는 새로 온 사람이나 그룹에서 별로
친숙하지 못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자리
좋은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자리 배열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자리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모든 사람들이 몸을 돌리지 않고도 서로를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함으로써 그들이 친밀하게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늦게 오는 사람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도착하기를 기다
려서 모임을 시작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모임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거의 모든 회원들이 도착했을 때 시작하도록 하
라. 그리고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두도록 하라. 늦게 온 사람
에게는 "어서 오십시오. 우리는 지금 . .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리고 말
한 다음에 모임을 계속 진행한다. 늦게 오는 사람을 모르는 척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관심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
모임 도중에
모든 회원(조원)들로 하여금 그룹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모든 그룹 활동
을 가장 북돋아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특정한 사람이 토론을 주도해서
는 안된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첫 번째 모임에서의 토론 형태가 그 이
후로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름
이제 시작하는 그룹에서는 회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서로의 이름을 자
주 부르는 것이 모임에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
로 하여금 회원(조원)들의 이름을 되도록 빨리 알도록 도와 주라. 그러면 서로 편
안함을 느끼고 회원들 사이에 직접적인 교제가 증진된다. 첫 번 모임에서는 각
회원들로 하여금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게 하는 것이 좋다. 리더는 가능하면
회원들의 이름을 자주 부르도록 하라.
신상 카드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 신상 카드를 준비해서 회원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용
지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생일, 가족들의 이름, 나이, 직장 기타의 것들을 기록
하게 하라. 이 신상 카드를 한 부씩 복사해서 다음 모임을 가질 때 서로 참조할
수 있게 하라.
2. 의사 전달의 기술
의사 전달은 언어나 다른 수단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 또는 정보
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룹이 점점 결속되어 가고 회원들이 점점 깊이 신뢰하는 것
은 회원들 사이의 의사 전달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의사 전달의 수준
1) 피상적인 대화- 날씨, 스포츠, 일반적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
2) 지식과 사실들을 나눔
성경 공부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본문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가장 편
안하게 느끼고, 자신들의 신앙이나 가타 자신의 신상에 대한 것을 말하거나 대답
하기를 꺼린다.
3) 의견과 생각을 나눔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들을 보다 더 기꺼이 이야기하
려고 한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회원들은 서로
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차이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리더는 회원들이 자
신들의 생각을 더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4) 감정을 나눔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
기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대
화이다. 대개 "나는 . . .게 느낍니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표현
들을 통해서 회원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회원들은 자신
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회원들은 서로를 거의 알게
된다.
5) 최상의 의사 전달
회원들이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거부감이나 장벽이 없이 다른 사람들과 교
제를 나누는 단계이다. 회원들은 아주 강하게 결속되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때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도 서로의 마음과 의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된
다.
의사 전달의 기술 개발
기본적인 의사 전달의 기술은 리더와 회원들에 의해서 개발될 수 있다. 이것들
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토론을 진행하고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기술들을
의미한다.
좋은 의사 전달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하며, 자
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1) 경청
말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기에 동조하는 짧은 말(아, 그래요. 그렇군요. 그게 정말이
에요? 재미있군요)을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어서 대화를 흥미진진하
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할 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랑의 표시는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대화의 유도
". . .형제(자매)님,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2절과 3절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회원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로 토론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3) 명확성
때로 토론의 속도를 늦추고 회원들이 서로의 말을 충분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로의 말을 그 의도대로 이해할 때에만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토론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명확
성을 위한 질문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요약하게 하고 중요한 것을 다시 언급하
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도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다.
4)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말로 옮기기
이것은 수준 높은 기술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옮기기 위해서
는 그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그 뉘앙스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나도 그와 동일한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압니다"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비슷한 경험은 할 수 있지만 그 경험이 동일할 수는 없다.
5) 토론의 확대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한 다음에 리더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말하실 분 없습니까?"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6) 발언의 이유
회원이 그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회원들이 동감
하지 않는 주장을 하면, 그 이야기를 무시하지 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이
유가 무엇인지 말하게 하면 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다.
7)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게 하라
리더에게 질문이 제기되면 리더는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명해서 그에게 대
답을 하게 한다. 리더는 모든 것을 다 대답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다른 회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 하면 그들을 토론에 적극 참여시킬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격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8)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라
토론을 할 때는 참가자들이 '나'라고 하는 대명사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
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라는 주어를
사용해야만 이야기가 명확성을 띠게 된다. 자신들이 느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할
때 거기서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9)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 질문
토론이 너무 추상적으로 진행될 때는 어떤 의견에 대해서 회원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토론을 보다 구체적
이고 현실감 있게 만들게 된다.
10) 회원들을 토론에 균등하게 참여하게 하는 것
침묵을 지키는 회원은 리더의 맞은 편에 앉게 한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회원은 리더 옆에 앉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토론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너무 강압적이어서는 안된다.
3. 나눔을 위한 질문들
성경 공부 모임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는 나눔을
위한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대해서 이야
기하도록 권하는 질문이다. 나눔을 위한 질문은 모임을 시작할 무렵에 하는 것이
좋다. 나눔을 위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들을 포함해야 한다.
과거 - 현재 - 미래 - 확신 - 책임
과거 :열 살 때는 어디 살았습니까?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최초로 이야기를 들은 때는 언제입니까?
현재 : 어떤 운동을 좋아합니까? 몇 시에 일어납니까?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가가 생기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미래 :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꿈이나 희망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5년 동안에 어떠한 일을 하고 싶습니까?
확신 : 우리 모임에서 어떤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까?
이 모임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우리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책임 : 당신의 습관이나 행동 가운데 어떤 것을 고치고자 합니까?
이번 주에 어떤 영적인 훈련을 하려고 합니까?
이번 주에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까?
나오는 말
기도는 그룹을 연합되게 한다.
바람직한 성경 공부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
참고. 로베르타 헤스테네스, 소그룹 성경공부, 두란노, 1991, 145-165쪽
셀 그룹 목회에 있어서 담임 목사의 역할(Senior Pastor''''''''s Role in the Cell Church)
성도의 수가 150 명 정도 되는 한 교회가 크고 웅장한 교회를 구입하였습니다. 이 큰 교회에 150 명의 교인이 모일 때마다 성도들은 이 교회를 구입한 것이 자기들의 실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더구나 외부 사람들도 이 교회를 구입할 때 빚진 것을 다 갚을 수 있을까 하고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이 교회는 셀 그룹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놀랍게도, 이 교회를 구입하면서 생긴 빚이 이 교회의 주된 문제점이 아니었습니다. 교인들의 소극적인 자세가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담임 목사님이 설교, 심방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일들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셀그룹 목회도 전적으로 감당해야하며, 주일 설교와 그 밖의 모든 일도 총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교인들은 교회 부흥의 모든 책임이 담임목사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 목사님은 그저 그 일을 옆에서 돕기만 하면 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셀그룹을 시작한다라고 해서 이러한 교인들의 소극적 생각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은 셀그룹을 시작 할 수 있도록 초기 작업을 준비하고 동기 유발은 할 수 있습니다. 비젼을 제시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전체의 청사진을 그려보고, 이에 따른 상세한 사항들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성장이 정체되었던 이 교회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성장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금 제시될 사항들은, 이 교회의 담임목사님뿐만 아니라 셀교회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들께 도움이 되고, 또한, 교회의 성장과 교회 발전의 비젼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항들입니다.
1. 불 가까이 머물러라.
담임 목사의 사역에서 변치 않는 우선 순위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6: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담임목사님은 셀 그룹자체에 우선순위를 두지말고 예수님을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셀그룹으로 유명한 어느 한 목사님은 이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못하여 도덕적 위기를 겪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개인적 경건생활은 권위와 영적인 힘의 근원이 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의 이러한 점을 존경합니다. 목사님의 도덕적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리더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을 외향적으로는 따르는 척 할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목사님의 권위에 의심을 갖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목사님의 신뢰성 또한 개인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가 하는 도덕성이 중요한 것이 됩니다.
2. 큰 청사진을 그려라. 그리고 세부 사항을 생각하라.
어떤 담임 목사님은 셀교회 목회를 다른 목사님들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잘하십니다. 이러한 차이점이 생기는 이유는, 세부적인 일을 할 때, 항상 큰 청사진을 잊지 않고, 그것을 참고하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한가지 세부사항에 너무 집착하여 다른 중요한 사항들을 위해 일해야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오류를 범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부적인 일을 해나갈 때 전체의 청사진을 참고로 일의 진행을 점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항상 치유와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지만, 항상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딤임목사님은 이 점을 항상 상기하면서 일을 진행해가야 하고, 셀그룹 리더들에게도 이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잠시 점검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목사님은 제자화에 매혹되어 모든일을 제자화에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셀목회와 전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목회 분위기를 너무 축제분위기로 맞추어서 다음 단계로의 비젼을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바람직한 경우가 못되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일의 시작 전에 생각했던 청사진을 자주 상기하며, 그 청사진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꿈으로만 꾸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의 그림, 즉 꿈을 가지고 그렸던 청사진을 자꾸 생각하며 구체적 일들을 해나갈 때, 셀그룹 목회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작업을 합니다. 저는 꿈만 꾸고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담임목사님들을 봐왔습니다. 반대로 너무 세부 사항에 집착하여 전체의 숲을 못 보는 경우도 봤습니다.
‘데이비드 자라밀’(David Jaramillo)이라는 목사님은 셀그룹 목회를 아주 잘 하시는 목회자입니다. 열정과 분명한 셀그룹 비젼을 가지고 세부적 일을 잘 해나가시는 분입니다. 세부적 일이 진행되어 갈 때, 전체적인 청사진을 잊지 않고 매주 확인합니다. 심지어는 매일 점검을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소그룹에서 진행되어 가는 일이 전체의 청사진에 맞추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른 셀그룹 목회를 하시는 담임목사님들이 방향을 못 잡고 헤매일 때, 이 목사님은 처음 청사진대로 일을 잘 진행 시켰습니다. 마치 소가 자기 코 앞의 푸른 잔디만 보고 전체의 푸른 잔디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몇가지 소그룹에서 일어 나는 세부 사항에만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셀그룹 목회를 잘 하실수 있나요? 어떤 목사님은 영적 카리스마스같은 지도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르치는 일이나 설교 할 때에 많은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본인의 설교를 듣거나, 가르침을 받을 때 목회가 성공했다 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셀그룹을 하시는 담임목사님은 다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셀그룹은 각 하부조직, 즉 각 소그룹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건강해지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각 소그룹이 운영되어 번식해 가는 데까지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참석의 숫자가 이러한 소그룹 목회가 잘되어 가는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단지 소그룹을 통해 교인 숫자가 증가되기만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셀그룹 목회를 효과적으로 하시는 목사님은 전체의 셀그룹을 지켜보며 매주 상황 분석을 하고 점검합니다. 각 소그룹이 셀 목회의 목적에 맞추어 움직이는가 점검하고, 이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해야합니다.(예를 들어 성전 건축 문제, 셀그룹 목회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 운영 등) 이렇게 함으로 목사님은 셀 목회 전체의 청사진을 가지고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의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자연적으로 성장과 부흥이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담임목사님은 반드시 비젼을 가진 청사진을 잊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갖고 있어야하며, 이에 따른 세부 사항을 점검해야 하며, 한쪽으로 즉 너무 비젼만을, 또는 세부 현실적 사항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소그룹을 경험하기.
''''''''데일 갤로웨이''''''''(Dale Galloway)는 새 소망 교회의 모든 목사와 스탭들이 셀그룹을 인도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교인이 6,000명이고, 셀 그룹이 600 개 일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담임 목사가 모델로 만들지 못하는 것을 따라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데일은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따질 것입니다. “그러면 담임목사가 가능한 많이 교회를 대표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담임목사는 한 그룹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그룹을 돌아가면서 맡아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이러한 논쟁은 나름대로 유익한 면이 있지만 부족합니다. 셀그룹을 인도하는 유익함은 단점을 훨씬 더 능가합니다.
셀사역에서 담임목사가 개인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게 되는 셀교회에서는 느슨함과 냉담함이 개발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셀교회는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가동됩니다. 적당한 윤활유 없이.
어느 교회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의 중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딤임목사님은 셀 사역의 우수성에 대해서 웅변적으로 주장하지만, 프로그램이 성공을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셀 교회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말뿐입니다.
일년 후에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 셀 세미나를 인도할 때, 목사님의 리더십에서 조그마한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몇몇 긍정적인 결과들을 봤습니다. 일년 후 인근에 있는 신학교에서 제가 셀 교회 과목을 강의했습니다. 이 교회의 목사님이 참석하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청강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그 과정에서 얻은, 그의 사역을 변화시킨 원리는, 본인의 셀 그룹을 증식시키고 인도해야 한다는 필요였습니다.
3차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 목사님은 셀 목회에 불이 붙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제서야 본인이 셀 목회에 대해서 말하던 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본인이 양육하여 셀 그룹의 리더자가 된 교인을 저에게 기쁘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담임목사님의 권위가 교회에서 3 배 정도나 더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확신있는 말을 했습니다. “셀 목회는 내게 매우 중요하기에 나는 직접 셀 그룹을 인도합니다. 그것을 또한 번식시킵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일도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로만 외치던 셀 그룹 목회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소위 셀그룹 교회라고 불리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현재 사역에 관여하고 있으며 어떻게 성공적일 수 있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셀을 인도할 때 얻는 유익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 깊은 셀교회비전, 셀 지도자들에 대한 목회적인 관심이 높아진다. 어떤 셀 교훈이 실제로 적용되고 안되는지 통찰력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셀 목회가 매우 중요하기에 심지어 담임목사도 셀을 인도하고자 한다는 것을 수많은 방식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3500명 정도의 교인수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직접 한 셀 그룹을 맡아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오래 동안 이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셀 목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실천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본인이 직접 셀 그룹 사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본인이 직접 셀 목회를 실천하게 되자 전문직을 가진 6가정이 이 목사님의 사역하시는 모습 속에서 변화되어 지금은 셀 그룹의 리더자가 되어있음을 자랑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일년 안에 다른 새로운 셀 그룹을 번식하였고, 본인이 셀 목회에 관하여 설교한 사실을 실천에 옮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엘림 셀 컨퍼런스에 매년 참석하고, 베다니 세계 기도 센터를 방문하고, 보고타 국제 G-12 미션 회의에도 참석하고, 한국의 조용기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로 셀 목회가 성공하려면 각 교회의 상황과 현실에 맞게 셀 목회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담임목사 자신이 직접 셀 그룹 목회를 경험하는데 있습니다. 목회자가 직접 셀 목회를 할 때 생기는 유익은, 매주 새로운 교훈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으며, 각 셀 그룹 리더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같이 공감할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셀 그룹 목회를 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영적 에너지, 그리고 목회적 차원의 많은 관심이 요구됩니다.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여가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모두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면 이러한 불평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의 모범은 교인 전체에게 셀그룹은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무언중에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은 일상 생활이 너무 바쁘고 시간을 낼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목사님은 많은 성도를 지도하기를 원하고 작은 소그룹 지도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소그룹을 통하여 한사람 한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고 많은 성도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라는 것입니다.
셀 그룹의 목적 중 하나는 그저 교회 문턱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열심있는 성도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임목사님이 셀 그룹을 직접 인도해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목회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담임목사님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클레어런스 데이(Clarence Day)는 “실천을 통해 지식이 경험되어지기까지 지식 자체는 아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셀 목회를 하면 새로운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리더자를 양성하게 되며, 말씀을 더 준비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적 보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왜 목사님들은 셀 목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단치 못하고, 주저하고, 직접 실천하시지 않습니까?
사실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세계의 큰 교회 목사님들은 본인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위치에까지 교회가 성장하도록 이러한 교회의 목사님들은 많은 실천과 노력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회의 목사님은 본인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교회를 성장시킨 후, 본인은 일의 진행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간섭하십니다. 이러한 교회는 사실상 셀 그룹 목회에 있어 많이 앞서가 있고 성장한 교회입니다.
셀 그룹목회가 성장하고 성공적으로 되어질 때 예외적 상황이 생기기도 하며 특정 규칙이 필요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셀 목회에 있어 나쁜 경우가 아닙니다. 하지만 조심하여야 합니다. 가능하면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 지도를 하는 것을 저는 권장합니다.
4. 비젼을 키워라.
셀 그룹 목회를 위해 비젼을 키워가기 위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담임목사님이 셀 그룹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서재에는 최근에 출간된 셀 그룹에 관한 도서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용기 목사님의 ‘성공적인 가정 셀 그룹’라든가 랄프 네이버 주니어의 ‘셀교회 지침서’, 그리고 칼 조오지(Carl George)의 ‘Prepare Your Church for the Future’, 또는 빌 벡햄의 ‘제 2의 종교 개혁’ 그리고 저의 책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으로 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은 셀그룹의 비젼을 확실히 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고 계십니다.
셀 그룹 세미나를 하는 것도 담임목사님께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세미나의 목적은 목사님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셀 그룹 목회의 비젼을 교인들에게 제시하고 확신을 불붙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가장 설득력있는 세미나는 영적 감화력이 있는 성공 실화라든가, 하나님이 셀 그룹 목회에 있어 기적을 행하신 일을 소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미나를 하는 강사는 각 교회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폭넓은 주제의 강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셀그룹 목회의 비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세계 각 곳에서 하고 있는 셀 그룹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에 칭찬을 하고 싶습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점은 다른 셀 그룹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과 네트 워크를 잘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서로의 성공 사례나 실패한 경험을 통해 배워갈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들 중에는 이러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셀그룹 네트 워크는 이러한 상호 보완 관계를 제공해 줍니다. 다른 셀 그룹을 인도하고 있는 목사님들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목회적 관계를 돈독케 하고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셀그룹 네트 워크가 가장 잘되고 있는 곳은 벤웡(Ben Wong)의 감독 하에 운영되고 있는 홍콩 네트워크입니다. 그는 ‘HK 셀 교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약 160 개 교회를 회원으로 하여 서로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비기독교인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홍콩 네트워크를 통하여 세계 각 교회가 매해 셀 교회 목회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네트 워크는 셀그룹 목회의 전문가와 셀그룹 목회를 희망하고 시작 단계에 있는 교회를 연결시켜 도움을 주게 합니다. 또한 경험있고 성공한 지도자를 경험이 미숙한 목사님들과 연결하여 도움을 주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셀 그룹 목회의 비젼을 사실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셀 그룹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교회를 방문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이 이러한 교회에서 셀 그룹 목회에 관한 세미나를 할 때, 몇몇 교인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왜냐면 강의를 통해 듣는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현실화 된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5. 안에서 밖으로.
셀 그룹 목회를 효과적으로 잘하시는 목사님은 평신도가 셀 그룹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잘 해주며, 그 셀 그룹에 속한 성도들에게 목회적 차원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줍니다. 셀 그룹 목회에서 중요한 사실은 매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셀 그룹이 영적으로 살아 움직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수의 성도가 있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보다 소수의 성도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이러한 상태의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 조오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제가 목사님들께 도전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얼마나 인상적인 설교를 하는가 하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지도자를 양성했느냐에 더 열정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목사님이 얼마나 바쁜가, 목회에 열심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목회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을 포함한 사역자들이 리더를 얼마나 잘 양육하고 길러내느냐가 더 중요한 목회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 입니다.
셀 그룹 목회의 주된 전략은 리더십과 상관이 있습니다. 셀 목회의 핵심은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있습니다. 이 리더십 아래 셀그룹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그저 참석자의 숫자만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셀 목회를 하시고 계시는 목회자는 교회만 왔다 갔다하는 성도를 리더로 양성시키고, 목회자나 복음 사역자로까지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재 리더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후보 리더들을 계속해서 길러내야 합니다. 목회에 있어 교회의 전체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셀 그룹 목회를 매주 매주 충실히 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목사님의 주된 임무는 평신도 교육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을 주일날 하루의 연극 배우자에서 제자화를 위한 참된 교역자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매혹시켜 매주 많은 수의 사람들을 모을까 하는 생각에서 어떻게 리더를 잘 훈련시켜 세상으로 파견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목사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목사님은 셀그룹 지도자.(G-12)를 양육하고 영적 성장을 시키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셀 그룹 리더를 양성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진정한 G-12 리더)간의 신뢰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
저는 목사님들께 저의 책 중에 ‘How to be a Great Cell Group Coach’라는 책을 읽어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원리들을 셀그룹 리더들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몇 원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라.
-셀그룹 리더의 말을 경청하라.
-셀 리더를 격려하라.
-셀 리더를 돌보라.
-셀 리더를 개발하고 훈련키켜라.
-셀 리더와 함께 전략 세워라.
-셀 리더에게 도전을 주어라.
담임 목사님은 매주 계속되는 셀 그룹 회의나 성경공부, 또는 만남을 통해서 리더의 영적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여러 가지 필요한 충족을 리더에게 주기 위해 정기적인 만남 외에 별도의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6. 사역자들에게 하는 목회.
다음의 사항은 담임목사님이 부 교역자들이나 셀그룹 목회에 자원하는 리더(G12 group)들과 함께 생각해 볼 사항들입니다.
a. 말씀 묵상과 기도 시간
히브리어 4장 12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어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목사님은 모든 회의나 모임을 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읽은 후 잠깐의 묵상을 하고 삶의 적용을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말씀을 나눈 후 자연스럽게 기도의 시간을 갖으면 더욱 좋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부 교육자나 셀 그룹 리더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터놓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b. 셀그룹 목회 점검
우리가 셀 그룹 교회의 구조로 넘어가지 전에 지난 시간에 진행되었던 다양한 프로그램과 예배에 관하여 먼저 점검의 시간을 갖습니다. 셀 그룹 목회가 진행되어 가면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항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셀그룹 목회에 있어서 큰 장점은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중간 검토와 진단을 매우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중심으로 목회가 진행되어지는 교회는 이러한 구체적 점검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각 셀그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된 매주 모임 보고서를 목사님께 제출해야 합니다. -리더, 참석 인원, 회심자, 주제, 배가되어 독립된 날자와 리더, 심방자 명단과 방문자, 훈련자 수, 코치와의 만남 등등. 또한 기도 요청이나 목사님과 상담요청의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 있습니다.
그와 보고서는 모두 수집되고 요약되어 담임목사님이 최종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셀그룹 리더들은 각 교회간에 네트워크를 위해서 책임자에게 보고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에는, 개인 신앙 생활의 어려움이나 심방회수, 간증, 훈련되고 있는 사람들의 현황, 셀 그룹 모임이 취소된 이유, 각 소그룹의 계획 등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보고가 진행 되어갈 때 보고되는 내용을 통하여 담임목사님은 전체의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셀교회를 시작할 때, 교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이러한 보고서 검토가 빨리 진행됩니다. 그러나 셀그룹이 250 개 정도 될 때는 시간이 다소 소요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검토를 꼭 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전도서 27:23절 말씀과 같이 양들의 상태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각 셀그룹은 교회의 중요한 지체입니다 그 이유는 각 셀그룹 내에서 목회가 실제적으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c. 최종점검과 다른 세부적 문제들
각 셀그룹이 교회의 전체 목회의 부분 부분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전이나 각종 행사 전에 반드시 최종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 해야할 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도움이 더 필요한 곳은 없는지, 안내자, 설교자, 주일학교 진행자 확인 등, 특히 주일예배 담당자를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외에도 다른 세부적 사항으로는 각 셀그룹 계획 보고서 작성 확인과 재정 보고, 수련회등 교회의 행사나 셀그룹 목회의 비젼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서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7. 비젼 키우기
큰 비젼을 제시하고 계속적인 행사를 교회에서 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1993년에 셀 그룹 목회의 자화상을 그릴 때 실수를 범하였습니다.(그때 당시 저는 담임목사가 아니였습니다.) 저는 셀 목회의 모든 주관자가 되려고 분주히 행사를 하고 끊임없는 비젼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직접 셀 그룹지도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여 저의 수첩에 “담임목사가 이 사역을 담당할 필요는 없다”라고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저는 그러한 저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한 단계 한 단계 셀그룹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하나의 셀그룹을 맡아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조오지 바나(George Barna)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 “리더나 담임목사님의 역할은 실제적이고, 구체적 비젼을 제시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역동성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다른 직분자들은 이를 실천하고 전략에 맞추어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목회자만이 실제적 비젼을 효과적로 제시할 수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담임목회자가 직접 셀그룹을 지도할 때 이 실제적 비젼을 발견할 수 있고 구체화 할 수 있다.
이에 관련하여 데일 갤로웨이도 1984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치 교회들이 청년부 사역자나 성가대 지휘자를 찾듯이 저희 교회의 셀그룹 운영자를 찾기 위해 저는 3년 전 교회 밖에서 누군가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셀그룹 지도자는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구해야 합니다. 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의 비젼과 마음을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이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교회의 셀그룹 지도를 해야만 성공적인 셀그룹이 될 수 있습니다. 청년부 사역자나 성가대 지휘자처럼 고용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책임감있게 마음을 나누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젼과 열정, 정열을 가진 교회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세미나를 할때 평신도에게 셀그룹 이론과 정신을 항상 잊지 말고 상기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을 위해서도 비젼을 잊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교회나 담임목사님은 셀그룹 목회가 진행되고 있는 한, 다른 생각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셀그룹 목회와 관련되고 연관된 프로그램만이 진행되어져야 그 안에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8. 많은 프로그램에 대해 No라 말하십시오.
타이타닉이라는 배는 웬만해서는 가라앉지 않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배를 만든 사람은 배의 안전에 확신이 넘쳤기에 구명보트를 충분히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가 빙산을 만났을 때 불행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담임 목사가 다른 어떤 목회 방법이나 비젼 등에 유혹되고 매혹 될 때, 셀 목회에 매우 미묘한 빙하가 나타납니다. 사실 셀그룹 목회 방법 외에도 많은 다른 세미나나 목회 방법이 책이나 잡지로 출판되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법을 주장합니다. 각각의 제안들은 동등한 경비와 관심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산만해지면 셀 그룹 교회로 전환하려는 교회는 가라앉습니다. 결국 셀그룹 목회가 실패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이 방법은 셀 목회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할 때 주의하십시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반복됩니다. 잠재력있는 모든 것이 셀 목회에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력을 흩어 버리고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그룹 번식이 계속되어 셀그룹 목회가 잘 진행되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셀그룹 프로그램에 참석하도록 교인들을 격려하고 새 등록 교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다른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교인들이 이에도 동일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담임목사는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있어 조심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9. 설교에서 셀목회를 강조하라.
주일에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담임목사님이 셀그룹에 관련된 설교나 예화를 들려주는 것은 성도들에게 셀 그룹 이해를 돕고 확신을 심어주는데 기여합니다. 레어리 스탁스틸(Larry Stockstill)은 설교할 때 셀 그룹과 관련된 한가지 예화 정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셀그룹 목회는 성도들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교회가 셀 목회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설교를 통해 인지하게 됩니다. 설교를 통해 듣게 되면 사람들은 두가지의 반응을 나타냅니다. 셀 목회에 참석하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이때 담임 목사님은 셀그룹 목회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중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관심을 가지고 참석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계속 관심을 줘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셀그룹 리더들만이 중요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데, 셀그룹에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10. 자유
셀그룹 목회가 담임 목사에게 주는 결과는 자유입니다. 교인 한명 한명 돌보아야하는 부담감과 많은 목회적 사무에서 자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을 100명 또는 1000명 단위로 나누어 책임을 맡겼던 일과 같은 경우입니다. 교회를 이와 같이 소그룹화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신도 중에서 사역자와 목회자, 전도자들을 보는 것은 목사에게 자유와 평안함이라는 보상을,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출처 : 글쓴이: 조엘 코미스키
평신도 사역의 꽃 은사배치 사역
NCD 연구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사역에 관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그들의 은사와 무관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약 80%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
이런 교회는 실로 네모난 바퀴로 굴러가는 힘겨운 수레와 다름없다. 그래서 자신의 은사와 상관없이 사역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수레 안에다 자신의 둥근 바퀴를 그대로 실어둔 채 쓰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이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건강한 교회는 자신의 은사를 알고 은사에 따라 섬기는 평신도 사역자가 많은 교회이다. 평신도 사역은 교회건강의 척도이다. 그러므로 은사배치사역은 평신도 사역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자신의 은사대로 사역할 때 그토록 목말라하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실현된다. 은사배치사역에서는 은사배치사역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개인의 은사와 성격유형 및 관심사를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사역에 임하면 자신감이 넘쳐 사역에 임할 때부터 적극적이다.
은사배치사역은 단순히 성도들의 은사를 확인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교회안에서 평신도들의 올바른 자리매김이라 할 수 있다.
은사배치사역은 먼저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하는 은사발견세미나로부터 시작된다.
은사발견세미나는 먼저 개인이 가진 관심사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심사는 어디에서 섬길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 다음은 자신의 성격유형을 살펴보는데, 이는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세 번째 자신이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체크한다.
은사는 각 사람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옳고 그름이나 크고 작음이 없다.또 누구나 한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은사로 서로 분리되지 않고 협력하여 조화를 이뤄 섬기는 것이 은사배치사역이다. 관심사, 성격유형, 은사 등의 테스트를 마치면 자료를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은사사역팀을 체크한다. 그 자료를 가지고 은사배치사역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팀으로 배치된다.
은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발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마다 연말이면 은사를 새롭게 체크하여 은사에 따른 팀사역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은사에 따른 각 사역들은 팀 사역 지침서가 있어서 진행이 구체적이다. 은사를 발견한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사역해야 하겠는데 구체적인 지침이 없으면 네트워크 사역은 활성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네트워크 사역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은사대로 사역하게 하는 총체적인 프로세스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네트워크 사역 전체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사역을 진행해 나갈 때 네트워크 사역은 꽃을 피게 될 것이다.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는 길은 간단하다. 잠자고 있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에 의해 독점된 사역을 내려놓는 것이다. 은사배치 사역은 모든 신자들이 사역의 주체가 되어 봉사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와 성격유형 및 관심사를 발견하고 적절한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역의 주체인 평신도들을 통해 교회의 건강은 회복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될 것이다.
김성곤목사 2005-02-16 10:39:20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이다. 한 날개는 대그룹 날개로 축제예배의 날개이며, 다른 한 날개는 소그룹 날개로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이다. 전인적인 소그룹이란 소그룹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과 목적을 체험하며 전도, 정착, 양육, 훈련, 재생산이 일어나는 통합적인 소그룹을 뜻한다.
대그룹 축제예배의 날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며,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친밀하심, 내재성을 경험한다. 이처럼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룬 교회가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이며, 교회는 이 두 날개로 비상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나아가 세계비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사도행전 2장 46절에 교회의 두 날개가 잘 표현되어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절 상반절을 살펴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대그룹 날개의 모습이며, 하반절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셀가족 모임인 소그룹 날개의 모습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이처럼 두 날개를 가진 교회였다.
두 날개를 가진 교회를 셀교회라고 하는데, 셀교회는 공동체라는 성경적인 근거에서 출발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로 존재하시며, 창세기1장26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형태 역시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단은 에덴동산에서부터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깨뜨렸으며, 서로를 향한 비난은 아담과 하와의 부부관계를 파괴하였다. 창세기4장3~9에 나타난 가인의 살인사건은 최초의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단의 공격이었다. 심지어는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마저 공격받기도 했다. 사단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공동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가정이 깨어지고 교회가 분리되는 것이 집요한 공격의 결과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
마태복음 22장37~40에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과의 연합마저 관계가 아닌 행위, 성취에 두도록 유혹한다.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죄하며, 끊임없는 경쟁의식으로 지체들과의 연합을 파괴한다.
기억하라!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지체들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합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서로를 책임지는 삶을 뜻한다. 공동체란 다름아닌 가족이며 가족같이가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 상호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3~47에 나타난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살펴보자. 그들의 공동체에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셨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강한 성령님의 임재로 가능했던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으며, 그들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진정한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회복은 다름 아닌 초대교회에 강력하게 역사 하셨던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이 시대에 회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김성곤목사 2005-04-26 17:37:38
하나님나라 가치와 셀교회
어느 추운 겨울 저녁, 영국 런던 시내의 한 악기점으로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 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헌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었다. "저는 지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사주세요.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래서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1기니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1기니는 당시 영국 화폐 단위로 지금의 약 5달러에 해당한다.
그 사람이 떠난 뒤 베츠씨는 그 고물 바이올린을 무심코 켜보려고 손잡이 활을 줄에 대고 한번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소리가 풍부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불을 밝히고 먼지투성이의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기절할 만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 제작). +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그 바이올린이 행방불명이 되어 일, 이백년 동안이나 그 많은 사람이 찾으려고 애쓰던 거장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바이올린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팔고 간 사람을 찾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배가 고파서 밥 몇 끼니 사먹을 수 있는 값 5달러에 팔아버린 바이올린은 무려 10만달러 짜리였던 것이다. 그는 이 바이올린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는 그 고귀한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치란 무엇인가? 내면의 우선순위이며 가치에 의해 우리의 행동이 결정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행동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치로 여긴다. 가치는 나무의 뿌리와 같다.
그러므로 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이 셀교회에 대한 가치를 알고 그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로 무장될 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회복된다.
그렇다면 셀교회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성경적인 교회이며 교회본질에 대한 회복운동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이기도 하다. 셀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도시화된 구조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수용하며 미래의 인구폭발을 감당한다.
셀가족모임의 가치는 무엇인가? 예수 생명으로 하나된 가족모임이다. 가족같이가 아니라 예수 보혈로 하나된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상호책임진다. 아픔도 슬픔도 함께하는 육신의 가족보다 더 진한 가족이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에는 셀가족이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깝고 친밀했다.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 것이 생명과 맞바꾸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서로 위로하고 물건을 나누며 한 형제 자매로 가족이 되어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주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성전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또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기에 초대교회는 강력한 부흥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주께서 셀가족 모임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셀교회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그룹 날개인 축제예배와 더불어 소그룹 날개안에서 진정한 가족으로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교회 본질이 회복되며 교회는 두 날개로 날아올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르고 잃어버린 영혼을 감당하게 된다.
김성곤목사 2005-05-08 16:19:46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
교회는 주님이 주신 목적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그 목적은 다름아닌 마28:18~20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는 일’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비전이자 사명이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양육과 행사는 이 목적에 의해 기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이것을 프로세스 목회라고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해 프로그램 목회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 목회는 백화점처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어 성도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양육하고 재생산하는 과정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마치 백화점에 사람이 몰려들 듯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하나, 이것저것 맛을 보고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떠난다. 그렇기에 양육과 재생산이 이뤄지기 힘든 것이다.
D12 다이다몬드 양육시스템은 프로세스 목회를 시스템화한 것으로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을 거치면 건강한 평신도 사역자가 탄생되며 재생산이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그랜저를 생산하는 라인을 거치기만 하면 그랜저가 만들어지듯이, 교회 또한 시스템을 거쳐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제자며 군사로, 재생산 사역자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교회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은 전도에서부터 정착, 양육, 훈련 재생산에까지 일관성있으면서 체계적이다. 각 단계의 목표가 정확하여 확실한 일꾼이 세워진다.
1. 전도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특권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특히 성경적인 전도전략인 열린모임을 통하여 지역, 직장, 병원, 캠퍼스, 학교 등을 복음으로 정복해가고 있다. 열린모임이란 소그룹전도 방법으로 3,4명이 팀이 되어 각 삶의 현장에서 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혼자서는 전도한다는 것이 두려움이요 어려움이지만, 팀들이 함께 복음을 전하면 개인전도의 두려움이 극복되고 팀들의 기도 지원을 받으며 진도가 지속적이다.
열린모임은 특히 관계전도이기에 불신자들을 초처하기위해 6단계로 관계를 맺어간다. 건강한교회의 전도는 그렇기에 이벤트나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다.
2. 정착
전도되어온 새가족만 잘 정착시켜도 교회는 성장한다고 한다. 전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새가족의 정착이다. 뒷문이 열려있으면 성장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새가족정착 사역은 새가족 섬김이사역이다. 교회에 처음 온 새가족에게 비슷한 연배와 환경의 새가족섬김이를 붙여 3주 동안 식사하며 교제하여 정착시키는 사역이다. 우리 교회는 새가족 섬김이 사역으로 90%의 정착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리더십 "아비의 마음"
제자비전으로 목회를 하는 분들은 누구나 고백하는 말이 “목회는 힘든 고비를 넘나드는 일이다”는 것이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제자비전 목회에는 늘 아슬아슬하고 힘겨운 고비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기가 일쑤이다.
속은 또 얼마나 타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변화는 없고, 언제나 제 고집으로 맞서고, 그러다 덜컥 낙오해버리는 상황이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면 아마 이럴 때 제자를 바라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사나흘 몸살이 오고, 시무룩해지고, 주님앞에 서기조차 힘겨워지는 그 아픔의 시간, 홀로 앓고 또 앓을 뿐이다. 강대상에 서면 눈물은 또 왜 그리 주체없이 흐르는지, 열 두 제자와 함께 주님도 이렇게 우셨을까?
무엇보다 가슴아픈 건 그렇게 믿고 인간적인 애착까지 쏟았던 제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물러설 때이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해버릴 때, 나는 차라리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고통스럽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긴 하소연을 늘어놓았는가. 이렇게까지 어렵게 하지 않아도 다들 목회 잘하는데, 하는 돼먹지 못한 생각도 불쑥불쑥 솟구친다. 인자한 주님이, 가끔은 능청스럽기까지 하신 우리 주님이 나의 이런 슬픔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랬다. 늘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그 물음을 던지셨다. 이미 나의 대답은 정해진 터였고, 주님의 질문은 곧 한없는 격려가 되어 나는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일어서서 다시 제자들 앞에 서는 일, 그 끝없는 반복을 오늘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게 제자비전 목회이다.
그러면서 나는 배운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곧 아비의 심정을 갖는 것이라고. 어느새 제자가 아닌 자식이 되어버린 그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기르는 힘은 눈물과 수고, 끝없이 나를 깎는 해산의 수고다. 이것이야말로 결국은 사람의 성숙된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힘이란 사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깨닫는 진리가 됐다. 사람들은 흔히 제자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양 착각한다. 아니다. 아비의 심정이다. 사랑밖에 더 없는 아비의 심장, 언젠가 그것마저 내줘야 할 아비의 뜨거운 심장 말이다.
내가 아비가 되면 나의 제자들도 아비가 되어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돌본다. 어느 셀리더의 간증이다. 그의 셀가족중에는 매우 반항적인 성격을 가진 자매가 있어서 셀전체 분위기가 자주 살얼음판이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자매는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것이다.
자매는 성격이 감정적이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을 책망이라도 하면 불처럼 반응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자매의 행동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거칠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셀가족들은 참는데 한계를 느꼈다.
그러나 리더는 다시 자매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그 리더에게 보다 진지하게 물으셨다고 한다.
“너는 엄마가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니? 친구들은 모두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 홀로 남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의 외로움을 너는 아니?”
하나님은 더 뚜렷하게 한폭의 그림으로 응답하셨다. 해질 무렵 친구들이 모두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홀로 남아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원망이 그득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했다. “네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라. 그것이 바로 그를 너에게 보낸 이유란다”
그 날 리더는 한참을 울면서 회개했다. 어미처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엄마가 되는 일,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아비의 심정을 가진 양육이기 때문이다.
김성곤목사 2004-05-18 04:19:53
두 날개로 날아오르자!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다. 한 날개는 대그룹 날개로 전성도가 함께 드리는 축제 예배의 날개이고, 한 날개는 소그룹 날개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들은 함께 모여 대그룹으로 예배를 드렸을 뿐 아니라 날마다 소그룹으로 모여 떡을 떼며 교제했음을 볼 수 있다(행2:43~47)
오늘날 우리는 건물 중심 교회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교회라고 하면 대그룹으로 모여 드리는 예배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한 날개에 불과하다.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 드리고, 그 소그룹 안에서도 교제뿐 아니라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까지 일어나야하는 것이 또 한날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러한 소그룹을 전인적인 소그룹이라 표현한다.
흔히 소그룹이라고 하면 대그룹 교회안에 속한 하나의 조직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소그룹은 또 하나의 교회이며 대그룹에서 일어나는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이 동일하게 일어나 주님이 명하신 지상명령인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다.
대그룹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며, 소그룹안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과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룬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그룹 날개인 축제예배를 통해 전성도가 하나되고, 소그룹 날개인 소그룹 모임을 통해 육신의 가족보다 더욱 친밀한 돌봄과 나눔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NCD (자연적교회 성장 ) 컨설팅 결과 교회건강지수 세계신기록이 나타난 가장 건강한 교회라는 진단을 받은 것도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대그룹 날개에서는 축제예배와 더불어 은사대로 섬기며 기쁨을 맛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등, 각각의 달란트가 다르다.
우리 교회에서는 은사발견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여, 은사대로 섬기게 하고 있다. 안내팀, 차량봉사팀, 찬양팀, 드라마팀, 멀티미디어팀 등 교회내 봉사뿐 아니라,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돌봄 등 사회봉사에도 관심에 따라 참여하게 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취미 활동도 적극 권장하여 축구팀, 농구팀, 낚시팀, 등산팀 등이 활성화 되어 있다.
소그룹인 셀가족 모임에서는 초대교회와 같은 나눔과 돌봄, 사랑이 친밀하게 일어난다. 셀리더는 영적인 아비로 가족들을 돌보고, 헌신하며, 이들의 섬김을 통해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까운 공동체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면 셀가족들은 가장 먼저 셀리더에게 도움을 청하며, 셀리더는 그를 위해 철야, 금식기도는 물론 실제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는다. 부침을 부쳐도 셀리더는 셀가족까지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전화하고 만나고 기도하는 예수 생명의 한 가족인 것이다.
공동체는 함께 하며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 교회 셀가족모임에서는 셀리더가 가족을 책임지고, 셀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를 책임진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요, 곧 가족이다.
셀가족 모임에서 정말 가족이 된 사람은 교회의 손님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그룹 날개에서도 주인으로 섬기고, 의무에서가 아닌 기쁨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모두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교회 본질적인 모습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그룹 날개와 더불어 또 하나의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의 회복이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고 날아오를 때 진정한 공동체 회복이 이뤄질 것이다.
제 11 장
셀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Growth the Cell Church
내용 목차
들어가는 글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III.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반성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의존성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나오는 글
들어가는 글
교회는 성장해야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나 기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며,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서 언제든지 그 생명의 열매들을 통하여 또 다른 열매들을 맺는 생명의 연속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반 세기동안 교회성장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해 헌신해 왔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며 반드시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교회성장 그 이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풀러 신학교의 Macgavran 교수가 1955년부터 기초를 놓음으로써 시작된 교회 성장학의 주된 관심은 지난 40여 년간 교회의 양적 성장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양적 성장에의 관심은 교회의 질적 성장의 문제를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판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은 성서적, 신학적 뒷받침을 결여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님으로써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세기 말에 유행처럼 번졌던 "총동원 주일" 이라는 이벤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이벤트를 치루는 방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위적이고도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했으며 또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평소에 모이던 숫자에 비하여 어느 한 주일에 두 배, 세 배, 심지어 다섯 배까지 사람들이 모였다한들 그 결과가 일과성으로 끝나버린 수많은 경우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벤트가 교회의 질적 성장은 물론이고 양적 상장 그 자체에도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되돌아 볼 때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또한 한국에서도 그 관심이 봇물 터지듯 지대해지고 있는 셀 교회 운동의 경우도 이러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충성에 관한 심각한 검토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고 믿어진다. 이미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교회성장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양적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그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셀 교회에 쏟아지는 관심은 당연히 숫자적 증가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영적 성장의 한 방법"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본 연구자는 이미 그러한 각도에서 셀 교회를 접근해오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셀 교회 모델의 진정한 의도와 정신은 사실상 질적 성장을 전제로 양적 성장을 바라본다는 면에서 이러한 우려되는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교회 성장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의 관계를 규명하고 그것이 셀 교회의 경우 어떠한 관계성을 지니면서 조화를 이루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상반관계와 상호연관관계를 살핀 후 조화로운 관계를 연구하되 셀 교회 모델의 경우 이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구조 속에 나타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셀 교회의 구조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그 본질이 어떻게 이 양자의 성장을 촉진하게 되는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질적 성장은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으며 평가할 수 있는가? 오늘날에 이르러 교회의 질적 성장은 종종 "건강한 교회 성장(healthy church growth)," 또는 "자연스러운 교회성장"(natural church growth)이라 불려진다. 아마도 이러한 최근의 용어들이 시사하는 바는 인위적이고도 비정상적인 숫적 증가 위주의 교회성장에 대한 대안으로서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라 믿어진다. 이러한 각도에 비추어 볼 때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함을 의미하며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본질 구현이라는 과업은 양 차원을 지닌다. 첫째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이해이며, 둘째는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둔 교회의 질적 성장은 전적으로 그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개인의 영적 성장과 직결되며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이루는 삶과 직결되므로 여기에 철저한 교육과 제자훈련의 과정들이 전제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균형 잡힌 성장과 기능 수행은 개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의 응집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볼 때 개개 교인들의 제자도는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온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여부에 의해 그 건전성이나 건강성을 드러낸다할 수 있을 것이다.
1. 교회의 본질 구현으로서의 교회성장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교회의 본질에 부합되는 정도에 좌우된다. 즉 성서가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구현되었는지가 교회의 질적 성장 정도를 나타내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서의 언급과 그 언급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론에 관한 신학적 이해가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엡 3:4,5) 그러한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의중에 계획하셨던 바라고 말씀하신다(엡 3:9). 그러면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마음에 품으셨다는 말인가?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비밀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과 함께 그 신학적 의미들을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1)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Alvin J. Lindgren은 그의 책에서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고안해낸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권적으로 계획하신 것이며 하나님 쪽에서의 선택적 행위로 만드신 것이다. 그런가하면 교회는 그 본질이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단순한 사람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속성을 지닌다.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삶을 위하여 상호 의존관계를 맺는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 교회가 공동체라는 말은 교회의 구성원들 상호간에 자신들의 영적 생활을 위해 결정적인 의존관계를 맺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는 구성원 서로가 하나의 영적 생명체를 이룸과 동시에 서로의 존재가 곧 서로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개인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공동체에 붙어있을 때 그 개인과 공동체는 함께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공동체적 본질은 구성원 상호간의 영적인 유기적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관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말 속에 매우 적절히 나타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교회의 또 다른 본질에 관한 표현은 유기체(organism)로서의 교회이다. 교회의 본질이 유기체라는 말은 곧 교회가 생명체라는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있는 실체(living reality)이며 그 몸은 마치 육체가 성장하듯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유기체로서 성장하며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유기체의 건강함에 따라 그 기능수행이나 사명수행의 정도가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그것이 유기체로서의 건강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Schwartz는 「자연적 교회성장」에서 교회성장에 관하여 원리중심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 교회의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 생명체 원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이 생명체 원리를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제시한다.:
(1) 상호 의존--"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상호 연관된 많은 부분을 가진 복잡한 유 기체이다."
(2) 번식--유기체는 끊임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 장" 형태-하는 것이다.
(3) 에너지 전환--생명체가 생명 존속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힘과 에너지를 미세한 조절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4) 다목적--자연에서는 쓸모 없는 것이 없다. 나무로부터 떨어진 낙엽도 비료로 바뀌어 그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5) 공생--두 개의 서로 다른 유기체가 서로 유익을 주고 받으며 밀접하게 함께 사는 것 이다.
(6) 기능--하나님의 창조 세계 내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원래부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각각의 종류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생명체로서 이러한 생명체 원리들이 작용하는 장(場)이라면 교회의 본질이 구현될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발휘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가져 올 것이다. 교회본질이 구현되는 정도는 이와 같은 생명체 원리들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며 실현되어지는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하며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유기적 의존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다는 말은 교회는 모든 상황과 경우에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으며 그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관계를 지녔다는 말이다. 머리의 명령을 즉각 순종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지체를 지닌 몸을 일컬어 지체부자유자 또는 장애인이라 일컫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 분별했다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결코 건강하지도 못하며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반드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즉 교회 본질이 반드시 구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Lidgrern이 교회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구속적 몸(redemptive body of Christ)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 속에는 교회 구성원 상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강하게 내포한다. 마치 우리의 몸의 각 지체가 몸에 붙어있어 몸을 중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존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교인들이 교회에서 각자가 개체로서 서로에게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는 의미를 가진다. 몸에는 불필요한 지체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각 지체들이 서로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전체로서의 몸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하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다. 몸의 어떠한 지체도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건강을 유지하며 한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과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3)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본질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장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소란 영적 공간을 말하며 하나님의 임존이 이루어지는 영적 실체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로서의 교회는 그 현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코이노니아인 것이다. 교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현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어야 한다. 이것은 본질에 관한 문제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여기서 말하는 사귐이 곧 코이노니아인데 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귀는 곳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라는 말씀은 교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공간에서 삶을 함께 나누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 공동체 속에 나타나실 자신의 현현을 예고하셨다.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발생하는 곳에 주님 자신이 나타나심으로써 세상 속에 자신을 증거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우리가 믿을진대 교회는 반드시 교회 본질로서의 코이노니아를 실현해야만 한다.
4)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교회본질과 관계된 또 다른 성경의 중요한 표현은 "하나님의 가족"이다(엡 2:19; 딤전 3:15). "하나님의 권속"으로도 번역된 이 표현은 영어로는 "family of God," "household of God"으로 번역되어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가 영적 가족으로서의 본질적 실체임을 나타내 준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족관계만큼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없다. 교회가 가족이라는 말은 구성원들이 영적 혈연관계를 가진다는 말이며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 본질은 단순한 사람들의 사랑의 모임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며 함께 삶의 의존관계를 통하여 서로 세워주며 서로의 성장을 위해 서로 서로 기여하는 상호절대의존성을 지닌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비유법이 아니라 직설적인 선언이다. 직설법은 그 내용이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는 그것이 아니지만 그 본질적 성격이나 내용이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직설법으로 표현된 것과 비유법으로 표현된 것은 본질적으로 180도 다른 것이다. 직설법은 그 자체가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영적 가족으로서의 실체이며 이러한 영적 혈연관계는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다. 즉 교인들은 모두가 가족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인종과 년령과 성별 등을 모두 초월한 신성한 가족관계를 맺고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교회를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은혜의 경륜"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oikonomia인데 이 단어는 집이라는 의미의 oikos와 경영 또는 운영하다는 뜻의 nomia(원형은 nmeo)라는 단어가 합성된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어원학적 의미는 "집을 경영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에배소서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비밀이 전하지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깨달은 바울의 흥분을 보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본질을 지닌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 우리는 가족으로서의 교회 구성원들간의 독특한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가족관계의 독특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구성원들 사이가 혈연관계로 맺어져 있다. 둘째, 가족간의 관계는 지속적(영원한) 관계이다. 서로의 관계의 친밀성 여부에 따라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그 관계가 없어지는 한시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까지 연장되는 영원한 관계이다. 셋째, 진정한 가족관계는 가족 상호간에 책임지는 사랑(accountability)의 관계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책임지는 관계이다. 이러한 책임성은 모든 삶의 영역에 걸치며 따라서 가족은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구성원 상호간에 자기 희생적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영적 가족관계는 결국 그 본질이 영적 사랑공동체라는 뜻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사랑이 통용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마가의 다락방에서 자신이 떠난 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룰 것을 당부하시는 자리에서 "새 계명"을 당부하셨다(요 13:34,35). 으 새 계명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수준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체포를 당하시고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될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주님은 뒤에 남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자신의 현존이 계속 지상에 이루어질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사랑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이 복음전도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결정적 전략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셨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육체적 가족관계 이상의 사랑과 헌신으로 그 가족 됨을 실현하는 일을 필연적인 과제로 안고 있다.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결과적으로 이러한 본질의 구체적 실현을 의미하며 이러한 본질 구현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교회의 본질과 관계되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본질구현과 관계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회 곧 하나님의 집을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이며 진리를 세우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건물에서 기초와 기둥이 부실하면 그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따라서 더 이상 세상사람들이 그 건물을 볼 수 없게 된다. 건물이 우뚝 세워져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려면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튼튼한 건물에 있어서 기초와 기둥은 결정적 요건인 것이다. 아무리 외관이 미려하고 찬란하여도 기초와 기둥이 허술하면 건물 그 자체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라는 기초와 기둥이 튼튼해야만 진리가 세워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 본질이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며 교회다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이와 같이 교회 본질 구현과 밀접히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결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5) 교회성장의 본질적 기초로서의 제자도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본질과 동시에 그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 구성원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본질적 측면을 가진다. 개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제자도에로의 부르심은 일차적으로 개별적인 것이다. 집단 개종 같은 형태가 아니라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제자도의 삶으로 부르셨다는 면에서 개인적인 제자도(personal discipleship)가 교회의 기초가 된다. 공동체란 개개인의 영적 성정과 발전의 응집이라는 차원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해 개인적인 제자도는 근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을 기초로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도록 해야한다. 주님의 지상명령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대로 개개 그리스도인을 충성스러운 제자로 성장시키는 일이 교회 본질 구현에 결정적이다. 그리스도께로 향한 헌신과 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그분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자라가는 일이 계속될 때만 공동체로서의 전체 교회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면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온전한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의 주님께 대한 허신과 사랑, 곧 제자로서의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절대적으로 요청한다. 이것이 안 될 경우 공동체는 구성원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게되며 심할 경우 결과적으로 그 공동체가 와해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 Heinrich Arnold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살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교회 내부 생활 안에서 기생충과 같은 존 재가 될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남보다 더 많은 수입을 남긴다하더라도 그 와 같은 노고는 나머지 공동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만 될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 람에게 열린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제자생활의 도전을 받아들 여 함께 머물고자 하난 사람들을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산산조각 이 날 것입니다.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우리는 앞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으로서 신학적으로 교회 본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성장의 현상적 증거들을 연구하기 위하여 방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독일의 Schwartz가 제시한 자연적 교회성장 연구 프로잭트의 결과가 건강한 교회를 위한 질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제시된 바 있다:
1.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사역을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게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2. 은사 중심적 사역: 교인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돕고 자신에게 맞는 은사를 따라 사역할 수 있도록 조정해준다
3. 열정적 영성: 교인들이 열정적으로 불붙어 있으며 기쁨과 열정으로 헌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4. 기능적 조직: 교회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생적 조직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회 조직을 평가, 개선해 나간다
5. 영감있는 예배: 관념적인 성령의 임재가 아니라 성령께서 진정으로 역사하실 때 예배의 분위기와 예배 절차에 구체적 변화가 일어나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게 느낀다
6. 전인적 소그룹: 소그룹이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시키 는 전인적(holistic) 소그룹으로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해있는 개인적 문제나 질문들을 내어놓는다
7. 필요 중심적 전도: 교회가 전도의 초점을 불신자들이 당면한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맞춘다
8. 사랑의 관계: 교회의 사랑 표현 능력과 장기간의 성장 잠재력 간에는 매우 중요한 연관 이 있다.
이와 같은 임상적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게도 1993년까지 연구하여 저술한 Ken Hemphill 박사의 안디옥 이팩트에서 제시하는 건강한 교회를 위한 8가지 원리와 약간의 표현이 다를뿐 거의 동일한 원리들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논할 때 Schwartz가 제시한 8가지 원리가 그 타당성을 뒷받침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Schwartz의 연구는 1994년으로부터 1996년 기간동안 이루어졌으며 Hemphill 박사의 연구는 1993년까지 이루어졌으며 1994년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두 연구 사이에는 실질적인 참고나 관련이 없다고 여겨진다.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8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영적 능력이 충만한 교회
2. 역동적인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3.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
4. 목회 지도력이 확고한 교회
5. 영적 가족관계가 이루어진 교회
6. 하나님 주신 비전이 뚜렷한 교회
7. 복음 전도적 열정이 타오르는 교회
8. 성도들을 사역자로 무장시키는 교회
이상의 두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이 어떠한 것인지를 임상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원리들은 전혀 임상학적 접근이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Schwartz가 연구한 임상적 자료들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르로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여기서 제시된 원리들이 교회의 질적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본다. 또한 앞에서 신학적으로 살펴 본 교회 본질에 관한 설명과도 상당부분 겹친다는 면에서도 의미있는 연구결과라 믿어진다.
이렇듯 교회의 질적 성장은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정도를 의미하며 교회 전반에 걸친 성장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논의를 교회의 질적 성장으로부터 양적 성장으로 옮기도록 한다.
111.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반성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사용되는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는 주로 양적 성장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질적 성장을 경히 다루거나 관심을 적극적으로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문제를 느끼는 것이지 양적 성장은 불필요하거나 비성서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수많은 경우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양적 성장과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음을 기록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기독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단기간 내에 이루었음이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있었던 그 날에만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이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행 2:40).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기점으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으며"(행 2:47),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고"(행 4: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으며(행 5: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으며"(행 6:1),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행 6:7).
바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의 경우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속도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보여준다. 바울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도에 복종케 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성과 도시에서 그의 사역은 온 성을 소동케 했으며 온 도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각 도시와 성에서 믿는 사람들을 많이 얻음으로써 각 곳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전도한 지역은 주로 이방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급속도로 불어나는 교인들에 비하여 성경을 알거나 그리스도를 집적 만나본 적이 있는 일차적 목격자들을 거의 두지 못했던 지역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방지역의 개종자들은 충분한 성경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서 복음의 역사는 계속되었다는 말이다.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속담에 "꿩 잡는게 매"라는 말처럼 결과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만연한 듯 싶다. 물론 양적 성장에 따라 질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결코 무시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따라 순종한 결과가 아닌 지극히 인위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양적 성장에의 강조는 결과적으로 교회 속에 비기독교적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본질을 훼손하는 역기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맹신과 광신이 보편화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는 우려를 부식시키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으며 오늘날에 있어서 지난 50년간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와 그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양적 성장을 거듭한 중국교회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잘 나타나고 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될 당시 불과 834,000명 정도로 추산되던 기독교인의 숫자가 불과 30여년만인 1980년, 즉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개방이 되었을 때까지의 30여 년 간 그 혹독한 공산치하의 탄압 속에서 그 작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 무려 5,000만명으로 늘어나는 경이로운 양적 성장을 했음은 이미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는 1억을 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성경지식의 부족과 신학 부재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앙이 미신적인 양상을 띄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단들의 거짓 교리에 쉽게 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도 지난 30여 년 간 기록적인 양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빛과 소금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라는 면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사고와 사건 뒤에 기독교인들이 그 악역을 담당하는 모습 속에 양적 성장의 이면에 가리어진 질적 성장의 결여가 가져온 병폐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교회성장을 논함에 있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쉽게 결합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반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반대로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양적 성장의 둔화를 경험하게 되는다는 임상적 결과들로 말미암아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대립적 상황을 극복하고 승화시킴으로써 상호보완적인 역학관계를 이해함이 필요하다.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보완성
성경의 첫 모델인 예루살렘 교회는 이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예를 제시한다고 믿어진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열 두 제자들은 우선 유대인으로서 전통적인 율법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받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 두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율법을 대부분 암송할 만큼 토라(Torah)에 통달한 교육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출신성분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평민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출생 때부터 율법을 철저히 교육받은 경험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3년 반 동안 제자로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식과 이해수준에 배운 말씀들을 실제 생활이라는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경험함으로써 말씀의 체질화가 된 사람들이었다.
제자로서 이러한 질적 성장의 경험들이 그들로 하여금 양적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시는 일에 있어서 거의 무제한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그러하듯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왔을 때 즉각적으로 그들을 날마다 가르치며 제자로서 훈련시키는 일에 돌입했다. 이 점에 관하여 성경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은 날마다 집에 모여서 교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제와 기도로 제자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의 결과는 그 모든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로 엄청난 수의 개종자들을 얻는 양적 성장의 결과로 나타났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양적 성장을 가져와야만 바르게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직 충분한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충분치 못한 성장은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적지 않은 교회들의 경우 이 양자간의 불균형과 부조화로 말미암아 한쪽으로 치우쳐 다른 한 쪽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질적 성장에 집착하고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어떤 이는 코이노니아 질병(koinonitis)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양적 성장에 집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놓치는 경우는 그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 미신이나 맹신 또는 단순한 기복신앙에 불과할 수 있다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목회와 전도를 강조하는 목회 사이에 있는 긴장과 근원적으로 동일한 문제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이상적인 관계는 양자가 상호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즉 교회의 질적 성장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낳으며 또한 동시에 양적 성장은 교인들의 열성과 신앙의 질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다줌으로써 전체적으로 교회가 질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성장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셀 교회에 있어서도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셀 교회에 쏟는 관심의 원인들이 침체되거나 정체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다시 불붙게 하려는데 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셀 교회들의 경우 한결같이 셀 교회 운동은 교회성장 운동이 아니라 교회갱신 운동이며 교회혁신운동이라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하여 국제 터치 사역(Touch International) William Beckhem은 오늘날의 셀 교회운동을 제2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연유로 셀 교회로 하여금 셀 교회가 되게 하는 가장 근본요소가 되는 셀 모델이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 첫 번째 모델이 열린 형태의 셀(open type cell)이며 두 번째 모델이 닫힌 형태의 셀(closed type)이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셀 모델들은 각각 장점들과 제한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열린 형태의 셀 모델
열린 형태의 셀은 일차적으로 그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교회의 정회원(membership)으로만 한정짓지 않고 불신자들까지도 셀 회원이 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열어둔 모델을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도 대상자를 발견하면 어제든지 셀 모임으로 인도하여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방성은 교회 내에 불필요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다. 둘째, 먼저 믿는 사람들의 삶과 교제를 참여한 불신자들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본을 영적으로 어리거나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음으로써 영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의 경우 먼저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삶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모습이 자신들과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신자들간의 깊이있는 교제가 셀 모임 속에 있는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로 말미암아 깊이있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셋째, 영적 가족으로서의 셀 경험이 어려워지는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은 장점과 제한점들을 고려할 때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질적 성장보다는 오히려 양적 성장에다 그 방향성을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도 대상자가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접촉한 뒤 자신들이 영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 셀 모임에 그들을 초청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모델인 것이다.
2. 닫힌 형태의 셀 모델
한편 열린 형태의 셀 모델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은 셀의 구성원을 철저히 교회의 정회원으로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한다. 따라서 불신자나 교회의 회원이 아직 되지 못한 사람들은 셀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회원권을 가진 먼저 믿은 사람들이 영적 가족으로서의 경험이나 각자의 신앙의 깊은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해결받을 수 있게 해준다.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첫째, 회원간의 사랑의 교제와 나눔이 깊이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나눔은 단순히 영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나눔까지를 포함한다. 둘째, 이러한 나눔은 결과적으로 셀 구성원간의 영적 가족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교회의 본질로서의 가족됨은 교회본질 구현의 한 중요한 측면으로서 이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교회 내의 어떤 불신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아직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자신을 먼저 믿은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제한점이 있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들만의 교제권에 빠져들어 그 자체만을 즐기려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확실히 전도지향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닫힌 셀 모델에 비하여 양적 성장 지향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단기적으로 볼 때, 숫적 증가가 훨씬 빠르게 이루어지며 빠른 시간 안에 셀들이 배가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배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셀을 건강하지 못한 셀로 보고 해체시키거나 재구조화 한다. 그러나 닫힌 셀 모델의 경우는 보다 긴 시간동안 진정한 영적 가족관계가 형성되도록 기다리며 보다 실제적이면서도 영적 가족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질적 성장 지향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양자간에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이라는 역학관계가 형성되어있다.
3.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이루는 셀 모델
셀은 그 자체가 교회 속의 작은 교회로서 영적 유기체이며 생명체이다. 따라서 셀은 공동체로서의 본질 곧 그 자체가 생명체로서의 질적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셀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적적히 이룰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셀 모델 개발을 위해 지난 수년간 전세계의 셀 교회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형태의 모델들을 개발해왔다. 그중 첫 번째 형태가 목산침례교회이다
1) 목산침례교회의 모델--교회학교와 셀의 혼합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을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혼합이나 절충형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닫힌 형태의 셀이 자주 비회원인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을 자신들의 셀로 초청하여 교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구조와 제도 속에서 정기적으로 셀에 속한 사람들과 아직 셀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면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신자 또는 비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교회가 목산침례교회이다. 목산 교회는 전체 교인들이 매주 주일에 주일학교 반에 소속되어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 성경공부반은 교회의 정회원으로서 셀 구성원들로 핵심 반원이 중심이 되어 아직 회원이 되지 않은 교인들을 같은 반에 편성함으로써 한 셀의 구성원들은 매주 성경공부 시간에 자신들의 반에서 만나는 비회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제함으로써 전도의 기회 또는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셀 맴버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섬기는 기회를 가진다. 이러한 모델은 이를테면 주일학교 반 속에 셀 그룹이 존속하는 형태인 것이다.
2) 버클랜드 침례교회 모델--셀 스탶 모델
지난 3년간 버클랜드 교회는 열린 형태의 셀로 전환하면서 셀 스탶(Staff) 모임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한 셀 속에 닫힌 셀과 열린 셀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는 모델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10명의 셀 그룹원들이 있을 경우 그 셀에는 목자, 예비목자, 회계, 찬양인도자 등 5,6명의 스탶들이 핵심 그룹원으로서 별도의 모임을 가지는데 이 모임은 철저히 닫힌 형태의 셀을 유지하여 삶의 깊은 것들을 나누는 곳이다. 하지만 새신자나 불신들을 모두 포함한 열린 셀을 또 다른 요일에 가짐으로써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를 따라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유형의 모델을 온두라스의 데구치갈파에 있는 '살아있는 사랑의 교회'(Love Alive Church)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한다. 이 교회의 1,000여개의 셀들중 90%의 셀들이 그 안에 "리더 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리더, 예비리더, 재무담당, 그리고 특정한 책임을 가지지 않는 두 명의 회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매주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셀의 운영 전반에 걸친 논의를 비롯하여 깊이있는 교제를 나누며 셀의 핵심요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러한 혼합형 셀 모델은 지난 10년 동안 보다 광범하게 개발되어왔다. 그 증거로 엘살바도르에 위치한 엘림교회(Elim Church)의 경우에도 동일한 형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놀라운 질적, 양적 성장을 경험해오고 있다. 이 교회는 셀 그룹 속에 리더, 보조리더, 장소제공자, 재무담당, 비서, 아동담당교사, 그리고 특정한 임무를 맡지 않은 소수 회원들로 핵심 그룹 팀을 이루고 이들이 한 팀으로 셀 그룹을 인도하는 형태를 개발한 것이다.
나오는 글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국제은사교회(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s)는 지난 10년간 나름대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다. 1990년 당시 200명의 교인들이 70개의 셀을 이루어 시작된 교회가 1998년 6월말 현재로 무려 24,000개의 셀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2000년 말까지 50,000개의 셀에 500,000만명의 교인들을 예상하는 대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단순한 양적 성장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강력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 회가 개발한 모델을 G-12라 부른다. 이 모델은 한 사람의 셀 리더가 12명을 셀 멤버로 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그들 각자로 하여금 그들의 또 다른 셀을 개척하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그들의 셀을 가지게 될 때 최초의 셀 리더는 그 실 모임을 중단하고 그때로부터는 새롭게 세워진 12명의 리더들을 계속적으로 돕되 평생을 돕는 관계로 발전한다. 따라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은 이러한 평생관계 수립을 통하여 동시적으로 충족되는 체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교히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결코 쉬운 결혼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셀 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인 것이다. 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있어서 이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다면 온전한 의미의 교회본질 회복은 구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부단한 노력은 기필코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복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참고문헌
Lindgren, Alvin J. Foundations for Purposeful Church Administrat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81.
Arnold, Heinrich. 공동체 제자도 이상신 역. 서울: 도서출판 쉴터, 1997.
Beckhem, William. The Second Reformation. Houston: Touch Publications, 1995.
Finnell, David. Life in His Body. Houston: Touch Publications, 1995.
Hemphill, Ken. 안디옥 이팩트 이명희 역. 서울: 도서출판 서로사랑, 2000.
Komiskey, Joel. 셀 그룹 폭발 박영철 역. 서울: 도서출판 NCD,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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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er, Thom S. The Book of Church Growth(Nashville: Broadman Press, 1993), 27.
Schwartz, Christian. 자연적 교회성장 윤수인 외 3인 역. 서울: 도서출판 NCD, 1999.
Snyder, Howard. The Problem of Wineskin. Houston: Touch Publications, 1996
제 8 장 셀 리더 지침(CELL LEADER'S MANUAL)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흥분되는 일은 왕중 왕이신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일입니다.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고, 아직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의 삶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목자로 섬길 작은 교회인 '셀'은 신약성시대의 교회를 모델로 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삶을 같이하시며 보여 주셨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시면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 천 명의 제자들이 작은 단위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며 모이고 사역했던 것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행2:46). 그 후에 생긴 모든 교회도 셀 교회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의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마 교회가 여러 개의 그룹으로 구성된 셀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지도자로 있던 교회(5절, "저의 교회"), 아순그리도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14절), 빌롤로고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한 교회(15절) 등이 있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는 에베소에 있을 때도 그들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고(골4:15), 골로새 교회 안에는 빌레몬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습니다(몬2). 이런 예들만 봐도 1세기의 교회들이 셀 교회였음이 분명합니다. 초대 교회들은 이런 '셀'을 기본 단위로 하여 신앙의 가족으로 뭉치며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했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모델이 지난 2천년 동안 잊혀져 왔으나, 20세기 후반인 지금 전세계적으로 성령님에 의해 다시 부활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성경에 근접한 교회를 만들려고 시작했던 많은 교회들이 거의 대동소이한 사역의 형태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책을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견학을 가서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거의 똑같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지금 성경적인 모델의 교회를 부활시키고 계시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바로 이 성령님께서 부활시키신 '셀 교회'의 사역자인 것입니다. 이런 새 물결 운동에 당신을 불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명감을 갖고 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시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할 때, 주님께서 교회다운 교회, 셀다운 셀을 당신을 통해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Family of God)
셀 그룹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이 혈육으로 맺어졌다면, 하나님의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가족에 속하게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크리스챤들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각 지역에 있는 지역 교회에 속하게 하여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해 나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지역 교회 안에 또 작은 단위로서의 가까운 가족을 형성하여 그 안에서 육신의 가족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연합하는 사람들이 바라 셀 그룹입니다. 그러므로 셀 그룹 그 자체가 또한 교회이며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안의 교회에서 누구나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는 이제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깥에서 헤매던 인생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운명을 같이 나누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만 들어오면 과거의 어떤 불행이나 열등한 것이나 괴로운 팔자나…이런 것들이 다 눈 녹듯이 녹아져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고 셀 그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교회의 모습이 과연 그렇습니까? 정말 성경이 말하는 한 운명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따로 따로 놀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 차별하고 더 인정하고 덜 인정하는 그런 세상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관계라면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이고 또 세상의 가치 기준들을 초월하고 그리스도 안의 신분만을 가지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오늘날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으로 가까운 그리스도 안의 관계를 보기가 쉬우며 인간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를 이룬 공동체를 보기가 그렇게 쉽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가 불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참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많은 사람들의 형식적인 연합이며,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관계를 '막대기 신앙인들'이 '콩자루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교회 공동체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하나님과는 꽤 잘 통한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막대기 신앙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면 틀림없이 '콩자루 교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콩을 자루에 잔뜩 넣어 보십시오. 자루 안에 있을 때는 모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콩과는 관계없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자루만 쏟으면, 각기 이리 저리 맘대로 굴러가 버립니다. 주일 예배는 같이 드리고, 구역 예배 때 같이 모이고, 기도회 때도… 많은 모임들을 같이 하지만, 그런 행사들을 끝내면 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교회가 바로 콩자루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메주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콩이라도 열을 가하면 딱딱하던 껍데기와 속이 푸석푸석해지면서, 속에서 진액이 나와 다른 콩들과 함께 이리 저리 붙어버립니다. 즉 콩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주를 만들 듯, 자신을 부인하고, 포기하고, 주님께 온전히 항복한 크리스챤들이 모이면 꼭 메주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한 운명이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교회를 '메주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족의 참모습입니다. 셀 그룹 사역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타파하고 일신하여 참다운 운명 공동체인 하나님의 가족을 오늘날 재현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성경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형제·자매가 서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그런 모습의 교회, 즉 예수님께서 디자인하신 바로 교회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셀 리더는 이런 하나님 가족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모든 양들이 그런 공동체를 이루게 되도록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셀이고 또 셀 리더의 모습이기 때문에, 셀 안에서는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같은 종류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어있고, 또한 셀 리더는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셀 구성원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서로 격려하고, 관계의 문제가 일어나서 괴로워하다가 해결하고, 참고 인내하고, 등을 두드려 주고…이러한 일들이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들이 셀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하나님의 가족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므로 육신의 가족 관계에서는 볼 수 없는 더 진한 사랑의 관계가 나타나야만 됩니다.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하나님과 공통된 목적과 관심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우리를 유일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가족보다도 더 진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셀 리더도 역시 육신의 부모를 뛰어넘는 하나님 차원의 사랑을 가지고 양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될 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35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던" 그런 차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이 세상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차원은 요한복음 13:1에서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책임지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그렇게 책임지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기를 찾으러 왔을 때,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9-5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고, 이것이 셀 그룹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의 참 사랑의 모습을 아래의 구절들을 읽으며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셀 그룹 리더의 삶 셀 그룹의 리더는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선생'(teacher)이 아니고 '목자'(shepherd), 또는 '부모'(parent)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공부하고 교제하는 그런 사역이 아니고 하루 24시간 내내 full time으로 양을 책임지는 목자와 같고, 자식을 위하는 부모와 같습니다. 가정에도 부모, 오빠, 누나, 형, 언니, 동생들이 있듯이 셀 그룹도 영적인 가족으로서 작은 단위의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셀 리더는 이런 영적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자요, 부모로서 당신은 양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돌보고, 위로하고, 때로는 도전하고, 꾸짖고, 싸매 주고 등등 그때 그때 적절하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라난 모든 셀 그룹 회원들은 다 주님의 사역자요 제사장들로 은사 받은 대로 사역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크리스챤들을 실질적인 사역으로 인도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성장하는 회원들과 함께 당신은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 즉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당신의 셀 그룹 교회가 선교 센터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 명, 두 명…계속 구원받아 셀 그룹 교회가 자라나 10명 전후의 회원이 되면, 당신의 셀 그룹은 또 다른 셀 그룹 교회를 개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예비목자 생활을 통해 준비된 일꾼이 그 그룹을 맡아 당신이 한 것과 똑같은 사역을 그 그룹에서 이어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잘 감당하려면 목자로서 당신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는 생활이 몸에 배도록 힘써야 하며,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에 회원들 보다 앞서야 합니다. 또한 회원들이 본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생활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고 본받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리더가 본을 보여주고 열심히 섬기는 것을 볼 때, 모든 양들이 진정으로 순종하며 따라올 것입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순종을 가르치십시오. 또한 당신이 지도자에게 철저히 순종함으로 그들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제자를 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마태복음 28:18-20은 아래와 같이 한가지 명령에 3가지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학교나 학원은 가르치는 곳이지만, 가정은 자녀들이 가르친 내용대로 지킬 때까지 가르치는 곳입니다. 셀 그룹이 바로 영적인 가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때까지 리더와 모든 회원들이 서로간에 가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리더는 선생이 아니고 부모요, 목자입니다. 이것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잔소리로는 사람을 못 바꿉니다. 성령님만이 바꾸십니다. 그러나 리더인 당신이 인격, 가치관, 인생관, 사역…에 모범이 되어야만 성령님께서 그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회원들을 도전하시며, 참 가정, 참 공동체가 점점 이루어지게 됩니다. 즉 모자를 벗기는 일입니다. "순종해라", "복종해라" 한다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존경할 만 해야 순종합니다.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 먼저 모자를 벗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를 삼아 계속 인도하면서 성숙한 주님의 종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의 사역의 핵심인데, 성숙하게 된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무엇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가에 따라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회원들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숙한 단계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회원들에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며, 그 다음은 주님의 말씀이 옳으므로 너무도 당연하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제3단계에 이르렀는가를 매일 생활 중에 확인 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3단계에 도달한 사람의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시험에 들지 않으며, 또 모든 사역의 길에 자기가 생색을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무엇이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니, 내가 먼저 그런 삶을 살 때만, 회원들이 누가 뭐래도, 세상이 두 조각나도, 말씀의 원리만을 고집하며 사는 그런 성숙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숙한 삶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의 원리만을 고집하고 사신, 즉 십자가를 지며 철저히 하나님만을 섬기다 가신 삶입니다. 그것이 또한 셀 리더의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성숙한 삶이 나타나는 영역이 바로 '인격'과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처럼 사역하다가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항상 자신의 인격에 대해 의식적으로 민감하여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하며, 사역에 있어서 항상 예수님의 방법대로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인격과 사역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주님의 사역자로서 금방 한계가 오며 큰 벽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셀 리더는 항상 이 두 가지를 심각하게 점검하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항상 셀 리더는 '공부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고 '부모'요, '목자'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자기의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런 선한 목자로 사는 것(요10:11)이 셀 리더의 삶임을 항상 기억합시다.
셀 그룹 회원 셀 그룹 회원이 되려면:
1)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
2) 성경대로 침례를 받는다.
3) 교회의 교인(회원)으로 가입 또는 허입한다.
4)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
5) 셀 그룹 정규 모임에 반드시 참석한다.
셀 그룹 회원의 임무:
1) 셀 그룹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
2) 교회 전체 예배와 각종 모임(수양회, 기도회, 세미나 등)에 참석한다.
3) 셀 그룹 리더에게 순종하며, 다른 회원들을 자기의 가족으로 알고 사랑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제자를 삼는 일이 나의 주전공이며 본업임을 늘 상기하고 양을 치는 일에 헌신한다.
셀 회원간에 철저히 지켜져야 할 원칙 셀 안에서 회원간에 다음과 같은 원칙이 지켜질 때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1. 성경 말씀에 항상 복종해야 하며, 말씀에 따라 적용해야 함 성경 말씀은 크리스챤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권위입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든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든지, 항상 성경의 원리에 의해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원리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고집하지 않고 성경 말씀의 원리대로 순응하도록 훈련받는 것이 셀리더의 책임입니다.
2. 모든 회원을 서로간에 용납하고 받아줘야 함 셀 안에서는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서 선입견을 갖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진짜 교제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조건 없이 받아줘야지, 누구를 더 위하고, 더 쳐주고, 인간적 조건에 의해 더 인정할 때 코이노니아는 깨져버립니다. 참 가족은 인간 조건에 관계없이 진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3. 각 회원 사이에 절대적인 용서가 있어야 함 서로 잘못이 있을 때 셀 그룹 안에서는 항상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잘못을 지적해 주고 징계도 할 수 있으나, 회개하는 모든 회원을 따뜻하게 용서하고 잘못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의 잘못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에 꽁하고 앙금을 품는 그런 의인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4. 상호협력(Genuine Support)과 완전한 비밀 보장(Total Confidentiality) 이 지켜져야 함. 그룹이 참 가족으로 뭉치고 서로 하나가 되려면, 진지하고도 솔직하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하며(즉 투명해야 함. 크레믈린처럼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게 하는 사람은 곤란함), 또한 그룹 안에서 나눈 모든 솔직한 이야기들은 절대적으로 그룹 밖의 사람들에게 비밀로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의 나눔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단, 목사나 다른 위의 지도자들이 알고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누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회원들이 그 문제들을 내 문제로 알고 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셀모임 셀 모임은 캠퍼스 셀 회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심된 가족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소그룹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원들이 모여서 사랑을 나누고 삶을 점검하는 가족 회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셀 모임은 어떤 형식보다도 우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진행해야 합니다. 그 때 그 때 성령님께서는 각 셀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고 리더나 회원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리더가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고 참석하여 그 다음 성령님의 인도를 감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셀모임에 관해서는 아래의 사항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셀 모임은 매 주 셀 그룹이 정한 시간에 갖는다 셀 회원들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을 정하여 모이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바꾸면 헷갈리니까 어느 정도 시간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꼭 1주일에 한 번은 셀모임을 갖는다 심심하면 모임을 갖지 않거나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의 주일 예배가 일이 있다고 드려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주일 예배처럼 셀도 1주일에 한번의 큰 모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2주에 한번 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리더와 회원들이 잘 판단하여 하면 됩니다.
3. 셀 모임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셀 모임은 가족들의 Fellowship입니다. 가족의 일원이 그 자리에 끼면, 가족들만의 대화가 안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회원들만으로 모임을 갖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 방금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나, 구원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 혹은 모임에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같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이 크리스챤들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 회원만의 모임이 원칙입니다.
4. 셀 모임에는 셀 회원들 전원이 참석해야 한다. 공동체 가족의 모임에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분위기가 깨집니다. 아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셀 모임에는 무조건 모이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셀모임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야 참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셀 모임에 우선을 두도록 인도하십시오. 5. 셀 모임의 진행 셀 모임은 물론 그 날 그 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행해야 합니다. 셀 모임은 성경공부가 아닌 가족 모임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아래에 있는 것들을 참고하여 모임을 갖도록 하십시오.
a. 얼음깨기 시간(5-10분) 일주일만에 만나기 때문에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간단한 다 과를 나누거나 게임을 함으로써 경직된 분위기를 풀 수 있게 해줍니다. 게임 이나 일상적인 사건들을 대화의 소재로 하여 나눔으로써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이 시간의 주 목적입니다.
b. 예배 및 찬양의 시간(20-30분) 리더 혹은 회원 중 찬양을 잘 인도하는 사람이 맡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간 에는 하나님께서 모임에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찬양, 그리고 간단한 메시지(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도움이 되는)를 적절히 안배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배와 찬양의 시간은 즉흥적이어서는 아니 되며 반드시 사전에 선곡하여 계획 을 세움으로써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예배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합니다. 선곡 할 때는 그날 모임의 예배 주제를 고려하고 같은 조의 곡들을 선곡함으로써 예 배가 막힘이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c. 나눔의 시간(30-40분) 이 시간은 자신의 삶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서 구성원 모두가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나눕니다(한 사람이 5-10분을 넘기지 않도록).
*지난 1주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나눔:
힘들었던 것, 좋았던 것,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 은혜 받은 사건이나 말씀,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된 일들, 헤맨 것, 마음을 슬프게 한 일들, 지난주일 설교 말씀을 깨닫고 적용한 것들, 지난 1주일 동안 가졌던 QT(경건의 시간)에서 받은 은혜 등. 리더는 나누는 도중에 구성원들이 나눈 것들을 간단히 메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들은 표시를 해 놓고 나중 '토의시간'에 그 사람으로부터 더 자세 한 내용을 들은 후 집중적으로 토의할 수 있습니다.
d. 토의시간(1시간-2시간) 나눔의 시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뽑아 집중적으로 같이 토의함으 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입니다. 토의에는 회원 모두가 참여하여 적극적으 로 토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서로 격려, 위로, 도전, 권면, 책망 을 적절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TV 드라마에서 그날의 주인공에게 초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은 원리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드라마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 은 것으로서, 매 편마다 에피소드가 있고 그 에피소드에 따른 주인공이 그 때 마다 다른 것처럼, 셀 모임 때도 그날의 토의 주제의 주인공이 리더가 될 수 도 있고, 셀 회원 각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날 특별히 토의할 만한 것이 모임에서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리더가 미리 준비해 간 토픽을 중점적으 로 다루게 됩니다.
***좋은 주제의 특징***
1) 그룹 내의 모든 회원에게 다 적용될 만한 것.
2) 격려되고, 자극되고, 도전될 만한 것.
3) 가치관의 문제.
4) 모두가 은사를 발휘하여 해결할 수 있는 주제.
5) 지식적인 것보다는 삶과 직결되는 문제.
e. 비젼을 나누는 시간(10-20분) 앞으로 1주일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나눔. 그리고 어떻게 전도할 것인 가에 대해 모두가 같이 전도 전략을 세움. 이 때 리더는 각 사람의 발표한 비 전을 적어 놓았다가 다음 모임 때 꼭 평가할 수 있도록 함. 이것은 1주일간의 비전입니다(한달, 혹은 1년이 아님). 그리고 비전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평가가 가능한 것).
f. 기도회(20-30분) 앞서 나눔의 시간이나 토의시간, 또는 비전을 나누는 시간에 메모해 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또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비목자를 개발하라 As You Go, Develop Apprentices!
예비목자(Intern)란?
목자 사역의 준비를 위해 훈련받는 사람. 모든 사역자는 목장이 시작되는 순간으로부터 예비목자를 가짐으로써 특정 기간이 지난 후 그 목장이 배가를 위해 분열할 때 목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딤후 2: 2 살전 1:5-7 목양사역은 가르쳐지는 것(taught)이 아닌 사로잡혀지는 것(caught)이다. 성경공부로는 충분치 못하다. 성경공부 벌레가 사역하는 제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자훈련은 인턴과정을 필요로 한다.
모세의 인턴--여호수아 엘리야의 인턴--엘리사 침례 요한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바울의 인턴--디모데, 디도, 마가 인턴 훈련단계들
1. 당신의 인턴이 당신을 관찰하게 하라.
2. 당신이 행한 일과 그 일을 한 이유를 설명하라.
3. 인턴이 동일한 일을 하는 동안 그가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라.
4. 관찰을 통해 발견한 그의 장, 단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라.
5. 그의 약점을 보완시킬 방안을 제시하라.
6. 인턴에게 과업을 부여하라.
7. 전략적으로 그로부터 관심을 약화시키라.
8. 그가 자신의 인턴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라.
9.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당신과 동일한 자격자로 대해 주라.
목장 모임시간에 인턴과의 사역을 위한 제안
1. 모임이 있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2. 목장모임 후 각자가 그 모임을 통해 배운 바를 나누라. 그리고 다음 모임을 위해 함께 계획하라.
3. 목장 모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토의하라. 모든 사역에 당신의 인턴을 동참시 키라.
4. 인턴이 목장 모임을 인도할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되면 그에게 모임의 인도를 맡기라.
5. 그가 목장 모임을 발전시켜 가는 동안 보여지는 장, 단점을 평가하라. 당신의 결론을 솔직히 말해 주라. 더 개발해야할 기술을 보완시키는 대책을 제시하라.
6. 목장이 분열되기 한달 전에 모든 목장 사역활동을 그에게 맡기라. 이렇게 함 으로써 그 목장이 배가될 때 구성원들이 그를 목자로 인정하는데 어려움이 없 게 된다.
목장 사역시 인턴과 함께 해야할 사항들
1. 목장사역의 모든 활동에 인턴이 함께 있게 하라. 활동 후 함께 평가하라.
2. 적절한 기회에 상담하는 상황에 인턴이 함께 하게 하라. 상담 후 당신이 행한 상담의 이유를 설명하라.
3. 심방이나 만남의 기회에 그가 함께 하게 하라.
4. 당신이 전도할 때 인턴이 볼 수 있게 하라.
5. 기도 모임, 철야 기도 등에 함께 하여 실제적으로 함께 기도하라.
셀 리더로서의 주의사항
셀 리더는 아래의 몇 가지 조항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1. 다른 셀 리더들과 하나되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함
사역하다 보면 셀 구성원들에게만 신경을 쓰다 힘이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동료 셀 리더와 하나를 이루어 긴밀히 연락하고 같이 기도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다른 셀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 것
누구에게도 다른 셀 리더나 그 셀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아야 서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셀에 대한 어떤 견해가 있으면, 꼭 그 담당 셀 리더에게 말해야 합니다. 만약, 그 셀 회원 중에서 밖에 나와 셀 리더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불평을 털어놓을 경우, 절대로 그 사람과 동의하거나 위로해 주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설사 그의 말이 맞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럴 경우에는 꼭 담당 셀 리더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셀 자체 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 도적질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상 나의 셀 구성원 중에서도 밖에 가서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리더가 그 사람에게 장단 맞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목자의 노릇을 하겠습니까? 또한 죄인인 우리는 "내가 저 그룹의 셀 리더라면 저 리더처럼 하지 않았을 턴데. 이 형제/자매가 셀 리더를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구나"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잘하면 얼마나 잘합니까? 서로 서로 하나를 이루어 돕는 리더들의 공동체가 되어야지 교만한 마음을 먹으면 곤란합니다. 우리 셀 리더들이 다 한 공동체로서 사역하지 않으면, 양들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므로, 항상 리더들은 한 목소리를 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은 리더들 사이에게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같이 연구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잘못하는 것까지 다 덮어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셀 리더들 자신이 하나의 셀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셀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다른 구성원들 앞에서 하지 말 것.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셀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편을 가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그렇게 한다면 참된 양육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면 자식들이 부모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4. 셀 원들의 중요한 문제를 존 디렉터(Zone Director)나 목사에게 보고할 것.
종종 "아무 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당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셀 원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다음과 같은 기초 원리를 기억하고 사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셀 리더는 '이 구성원은 내 양이기에 앞서 존 디렉터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하고, 존 디렉터는 '이 양은 내 양이기에 앞서 목사님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하고, 목사는 '이 양은 내 양이기에 앞서 예수님의 양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물론 아무에게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디렉터와 목사님은 아셔야 합니다"라고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쉽게 약속했다가 오히려 나중에 그 영혼을 망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5. 중도에 포기하지 말 것.
사역을 하다가 힘들다고 "때려치우자"라는 유치하고 미성숙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우면 위의 리더와 상의하고 기도할 문제이지, 하나님의 교회의 직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힘들 경우,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나를 더 큰 신앙으로 성숙시키시려나 보다' 라는 믿음을 갖고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만 붙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한 운명인고로 항상 위의 리더가 나를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괜히 혼자 고민하고, 고독을 씹는 일을 중단하십시오.
6. 혼자 사역하지 말 것.
크리스챤은 누구나 각자가 주님의 제사장이지만 교회 공동체가 모르는 가운데 목자 혼자서 사역을 해서는 안됩니다. 셀 리더도 모르는데 셀 회원이 혼자 사역을 해서 실적을 올리려는 그런 자세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셀 리더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한 가족임을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같이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운명을 함께 하는 그런 자세를 가지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다 서로 연결된 주님의 몸의 지체입니다.
7. 마음 도적질을 하지 말 것.
아무리 좋은 뜻으로라도, 그 셀 리더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문제가 있는 구성원을 찾아가지 마십시오. 이것이 마음 도적질로 연결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면, 꼭 그 셀 리더나 존 디렉터를 찾아가도록 해야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월권은 금물입니다. 내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보는데 주력해야지 다른 셀의 구성원은 그 셀의 목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다른 셀의 구성원이 나에게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셀의 리더와 그것을 상의하도록 하십시오. 주제넘은 행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셀 리더 보고서
셀 리더는 1주일에 1회씩 보고서를 존 디렉터에게 제출함으로써 존 디렉터나 목회자가 각 목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과 상황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셀 리더는 분명한 간증을 가져야 한다. (딤후1:12)
2. 셀 리더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행6:5)
3. 셀 리더는 교회의 비젼을 지원해야 한다. (고전1:10)
4. 셀 리더는 인간적이어야 하며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5. 셀 리더는 열정적이어야 한다. (골3:23)
6. 셀 리더는 인도(지도)하는 은사 가진 자로서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7. 셀 리더는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딤전 3:6)
8. 결혼한 셀 리더는 배우자의 동의와 협조 하에 셀 그룹 리더가 되어야 한다.
9. 셀 리더는 교회에 십일조를 해야한다.
10. 셀 리더는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모세 (출3:10-12) 여호수아 (수1:9) 기드온 (삿6:13-16) 예레미아 (렘1:6-8)
1. 기도하는 책임 (겔22:30)
2. 통제가 아니라 격려하는 책임 (골1:28)
3. 셀 리더의 지도력을 제한시키는 것 네 가지
1) 성경말씀- 말씀의 범위를 떠날 수 없다.
2) 교회 지도력 (목회자 팀)
3) 모든 교인이 성령의 인도를 잘 받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음
4) 지도력의 남용이나 오용
1. 교리적 총체--셀 교회의 탈 중심화로 인한 특징. 셀 그룹의 교리적 극단화 가능성. 지역 사역자나 지역 목회자의 강력한 지도력과 신속한 대처가 필요.
2.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문제--가정에서의 모임. 성령님께 의지. 실제 삶의 나눔. 비형식적 예배 모임 등이 감정에 치우친 신앙 형성 가능성.
3. 말씀의 권위와 기초보다 경험에 의존하기 쉬운 문제--기존 교회의 경우 듣 고 이해하는 인지중심의 교육이나 결과로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를 만 들어내는 반면, 셀 교회는 말씀보다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 쉬움.
4. 탈 중심화 구조로 인하여 교회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셀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 문제--그러한 리더는 즉각 순종하거나 제거되어야 한다.
5. 정체의 문제--성장을 멈춘 셀은 즉각 해체되어 다른 셀들 속에 흡수되어야 한다.
제13장 셀 모임
셀 모임은 4Ws
1. Welcome(환영)--Ice-breakjng
간단한 활동으로써 일 주일만에 만난 상황에서 아직 경직되어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없애고 서로에게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얼음깨기 활동을 실시한다. 단순한 게임을 즐기는 재미가 일차적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윤활유를 주입하는 것이 주 목적이므로 지나치게 게임이나 흥미위주로 나아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2. Worship(예배)--경배와 찬양
주로 찬양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 인도자는 물론이고 참석하는 셀원들모두가 주님의 임재에 집중하며 그분 자신을 높이는 일을 통해 깊이있는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 Words(말씀)--말씀에 비취어진 자신의 삶을 나눔: 변화되지 않은 죄성, 습관, 태도, lifestyle, 가치관, 야망, 쓴 뿌리 등 자신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견고한 진들을 나눔.(wESLEY의 속회운동 당시 CLASS MEETING AGENDA에는 서로 한 주간동안 지은 죄나 유혹받은 일을 나눔으로써 영국 전체의 영적 성결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삶을 나눈다는 말을 단순히 자신의 생활을 나누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삶 이 자신의 영적 순례의 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들을 다를 것인지를 도움받기 위함이다. 따라서 영적 성공담은 다른 사람들에게 ROLE MODEL 이 되고 자신의 실패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길을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4. Works(사역)--비전과 기도
전도 소그룹 활동을 나누며 현재 사역하는 진행상황을 셀원들에게 알림으로써 함께 기도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이후 미국 유학과 군입대를 이유로 집을 떠난지가 벌써 8년도 더 넘었고 딸 역시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유학을 가고 그리고 시집을 갔기에 즙을 떠난지가 벌써 만 2년도 너 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은 그야말로 심리학들이 말하는 빈둥우리가 되어 저와 아내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아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모두 떠났고해서 굳이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야할 필요를 못느껴 지난해 여름에 대전 근교의 작은 농촌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맑은 공기, 조용한 환경, 넉넉한 이웃이심 등 모두가 더 말할 나위없이 좋게만 느껴집니다. 아아들도 없고 시골로 이사간 결과로 우리 집에는 개와 고양이와 닭들을 기르는 일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동물 식구들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닭 두 마리 등 모두 6식구일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동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종종 웃습니다. 지난 여름방학땐 남미와 미국을 3주간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닭들중에 수컷인 장닭이 새벽마다 울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낮에도 장닭이 마치 새벽처럼 울어대길래 무슨 닭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느냐고 아내에게 중얼거렸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달기 우는 수리가 아니라 개가 닭 흉내를 내는 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뭐? 개가 닭 소리를 흉내낸다고? 거짓말이지?라고 되물었지만 아내와 딸은 정말 그렇다고 재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있다가 다시 닭 우는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니 닭은 없고 개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개가 닭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라는 아내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개가 닭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꼴불견이라 생각한 아내가 개에게 야단을 몇 번 친 결과 그 개가 닭소리 흉내내는 일은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되었답니다.
여름에 대 여섯 마리였던 닭이 이제는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몇 일전에도 달고 개 사이에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어있는 것을 보고 한참이나 배꼽을 잡고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개에게 밥을 주고 닭에게 모이를 주는데 먼저 개에게 밥을 주었습니다. 아직 닭에게 모이 줄 차례가 되지 않았는데도 닭 한 마리가 개가 밥을 먹고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개가 닭을 쫓아다니고 닭은 날개를 퍼득이며 도망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터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밥을 먹으면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닭이 개 밥을 얼른 쪼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개가 돌아보면 마치 아무 짓도 안했다는 듯이 닭도 시침이를 뚝 때고 다른 곳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장면이라서 한발자국 물러나개와 닭이 하는 행동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두 세 번쯤 닭이 개 밥을 몰래 쪼아 먹고는 딴전을 피다가 드디어 개에게 발각되고 말았지요. 저는 속으로 너 닭아 큰일났다. 어쩌다가 개밥을 훔쳐먹다가 들켰느냐며 걱정스럽게 다음 상황을 지쳐보던 저는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가 자기 밥을 뺏어먹는 닭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훔짓 뒤로 물러나던 닭이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개를 향해 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개가 오히려 놀라 뒷걸음질치는 것입니다. 아니 개가 닭한테 밥도 빼앗기고 혼도 나다니! 워낙 닭이 세게 나오니 그만 개가 슬그머니 물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개는 사냥개 종류로서 평소에 얼마나 활발하게 뛰어다니는지 그 이름을 힘쎈 놈이라는 의미의 영어단어인 마이티라고 붙여주었는데 개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지는 닭한테 먹이를 빼앗기고 뒤로물러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지요. 자기 이름 값도 못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폭소를 자아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 후에도 몇 번 같은 일이 있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개가 다시 기선을 제압하고 닭을 눌러버렸지만 그렇게 하기까지는 개의 입장에서 다시 용기를 가져야만 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귀를 이기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닭에게 겁을 먹고 물러나는 개처럼 어쩌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공연히 사탄에게 놀라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름 값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그룹 인도법 조회 (152)
cell관련 자료 | 2005/10/30 (일) 22:42 공감 (0) 스크랩 (0)
소그룹 인도법
소그룹에서의 인간관계-
들어가는 말
적극적인 인간관계는 좋은 소그룹 형성의 핵심입니다. 그룹 내에서 사람들과 함
께 앉아 있다고 해서 돌봄과 소속감을 주는 인간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습
니다. 좋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서로를 보다 잘 알게 해주고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며 그룹 회원들을 결속시켜 주는 원칙들과 기술들 그리고 활동들이 있
습니다.
그룹의 역동성과 의사 소통의 기술들 그리고 나눔을 위한 질문들을 이해하는
것은 리더와 회원(조원)들이 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도
움을 줍니다.
1. 회원(조원)이 모일 때
그룹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
고 몇 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주의 모임에서 나누었던 것들에 관
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주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리더는 친한 친구들보다는 새로 온 사람이나 그룹에서 별로
친숙하지 못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자리
좋은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자리 배열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자리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모든 사람들이 몸을 돌리지 않고도 서로를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함으로써 그들이 친밀하게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늦게 오는 사람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도착하기를 기다
려서 모임을 시작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모임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거의 모든 회원들이 도착했을 때 시작하도록 하
라. 그리고 늦게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두도록 하라. 늦게 온 사람
에게는 "어서 오십시오. 우리는 지금 . .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리고 말
한 다음에 모임을 계속 진행한다. 늦게 오는 사람을 모르는 척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관심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
모임 도중에
모든 회원(조원)들로 하여금 그룹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모든 그룹 활동
을 가장 북돋아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특정한 사람이 토론을 주도해서
는 안된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첫 번째 모임에서의 토론 형태가 그 이
후로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름
이제 시작하는 그룹에서는 회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서로의 이름을 자
주 부르는 것이 모임에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
로 하여금 회원(조원)들의 이름을 되도록 빨리 알도록 도와 주라. 그러면 서로 편
안함을 느끼고 회원들 사이에 직접적인 교제가 증진된다. 첫 번 모임에서는 각
회원들로 하여금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게 하는 것이 좋다. 리더는 가능하면
회원들의 이름을 자주 부르도록 하라.
신상 카드
간단하게 작성할 수 있는 신상 카드를 준비해서 회원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용
지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생일, 가족들의 이름, 나이, 직장 기타의 것들을 기록
하게 하라. 이 신상 카드를 한 부씩 복사해서 다음 모임을 가질 때 서로 참조할
수 있게 하라.
2. 의사 전달의 기술
의사 전달은 언어나 다른 수단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 또는 정보
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룹이 점점 결속되어 가고 회원들이 점점 깊이 신뢰하는 것
은 회원들 사이의 의사 전달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표시이다.
의사 전달의 수준
1) 피상적인 대화- 날씨, 스포츠, 일반적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
2) 지식과 사실들을 나눔
성경 공부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본문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가장 편
안하게 느끼고, 자신들의 신앙이나 가타 자신의 신상에 대한 것을 말하거나 대답
하기를 꺼린다.
3) 의견과 생각을 나눔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들을 보다 더 기꺼이 이야기하
려고 한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회원들은 서로
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차이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리더는 회원들이 자
신들의 생각을 더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4) 감정을 나눔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
기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대
화이다. 대개 "나는 . . .게 느낍니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표현
들을 통해서 회원 상호간에 신뢰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회원들은 자신
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회원들은 서로를 거의 알게
된다.
5) 최상의 의사 전달
회원들이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거부감이나 장벽이 없이 다른 사람들과 교
제를 나누는 단계이다. 회원들은 아주 강하게 결속되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때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도 서로의 마음과 의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된
다.
의사 전달의 기술 개발
기본적인 의사 전달의 기술은 리더와 회원들에 의해서 개발될 수 있다. 이것들
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토론을 진행하고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기술들을
의미한다.
좋은 의사 전달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하며, 자
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1) 경청
말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함으로써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기에 동조하는 짧은 말(아, 그래요. 그렇군요. 그게 정말이
에요? 재미있군요)을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어서 대화를 흥미진진하
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할 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랑의 표시는 바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대화의 유도
". . .형제(자매)님,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 2절과 3절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회원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로 토론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3) 명확성
때로 토론의 속도를 늦추고 회원들이 서로의 말을 충분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서로의 말을 그 의도대로 이해할 때에만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토론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명확
성을 위한 질문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요약하게 하고 중요한 것을 다시 언급하
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도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다.
4)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말로 옮기기
이것은 수준 높은 기술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옮기기 위해서
는 그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그 뉘앙스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나도 그와 동일한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압니다"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비슷한 경험은 할 수 있지만 그 경험이 동일할 수는 없다.
5) 토론의 확대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한 다음에 리더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말하실 분 없습니까?"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6) 발언의 이유
회원이 그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회원들이 동감
하지 않는 주장을 하면, 그 이야기를 무시하지 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 이
유가 무엇인지 말하게 하면 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다.
7)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게 하라
리더에게 질문이 제기되면 리더는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명해서 그에게 대
답을 하게 한다. 리더는 모든 것을 다 대답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다른 회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 하면 그들을 토론에 적극 참여시킬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격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8)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라
토론을 할 때는 참가자들이 '나'라고 하는 대명사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
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라는 주어를
사용해야만 이야기가 명확성을 띠게 된다. 자신들이 느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할
때 거기서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9)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 질문
토론이 너무 추상적으로 진행될 때는 어떤 의견에 대해서 회원들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토론을 보다 구체적
이고 현실감 있게 만들게 된다.
10) 회원들을 토론에 균등하게 참여하게 하는 것
침묵을 지키는 회원은 리더의 맞은 편에 앉게 한다.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회원은 리더 옆에 앉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말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토론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너무 강압적이어서는 안된다.
3. 나눔을 위한 질문들
성경 공부 모임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는 나눔을
위한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대해서 이야
기하도록 권하는 질문이다. 나눔을 위한 질문은 모임을 시작할 무렵에 하는 것이
좋다. 나눔을 위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들을 포함해야 한다.
과거 - 현재 - 미래 - 확신 - 책임
과거 :열 살 때는 어디 살았습니까?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어린 시절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최초로 이야기를 들은 때는 언제입니까?
현재 : 어떤 운동을 좋아합니까? 몇 시에 일어납니까?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가가 생기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미래 : 미래에 대해 갖고 있는 꿈이나 희망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5년 동안에 어떠한 일을 하고 싶습니까?
확신 : 우리 모임에서 어떤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까?
이 모임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우리 모임에 참여한 회원들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책임 : 당신의 습관이나 행동 가운데 어떤 것을 고치고자 합니까?
이번 주에 어떤 영적인 훈련을 하려고 합니까?
이번 주에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까?
나오는 말
기도는 그룹을 연합되게 한다.
바람직한 성경 공부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
참고. 로베르타 헤스테네스, 소그룹 성경공부, 두란노, 1991, 145-165쪽
셀 그룹 목회에 있어서 담임 목사의 역할(Senior Pastor''''''''s Role in the Cell Church)
성도의 수가 150 명 정도 되는 한 교회가 크고 웅장한 교회를 구입하였습니다. 이 큰 교회에 150 명의 교인이 모일 때마다 성도들은 이 교회를 구입한 것이 자기들의 실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더구나 외부 사람들도 이 교회를 구입할 때 빚진 것을 다 갚을 수 있을까 하고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이 교회는 셀 그룹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놀랍게도, 이 교회를 구입하면서 생긴 빚이 이 교회의 주된 문제점이 아니었습니다. 교인들의 소극적인 자세가 오히려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담임 목사님이 설교, 심방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일들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셀그룹 목회도 전적으로 감당해야하며, 주일 설교와 그 밖의 모든 일도 총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교인들은 교회 부흥의 모든 책임이 담임목사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 목사님은 그저 그 일을 옆에서 돕기만 하면 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셀그룹을 시작한다라고 해서 이러한 교인들의 소극적 생각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은 셀그룹을 시작 할 수 있도록 초기 작업을 준비하고 동기 유발은 할 수 있습니다. 비젼을 제시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전체의 청사진을 그려보고, 이에 따른 상세한 사항들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성장이 정체되었던 이 교회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성장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금 제시될 사항들은, 이 교회의 담임목사님뿐만 아니라 셀교회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들께 도움이 되고, 또한, 교회의 성장과 교회 발전의 비젼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항들입니다.
1. 불 가까이 머물러라.
담임 목사의 사역에서 변치 않는 우선 순위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6: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담임목사님은 셀 그룹자체에 우선순위를 두지말고 예수님을 우선 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셀그룹으로 유명한 어느 한 목사님은 이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못하여 도덕적 위기를 겪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개인적 경건생활은 권위와 영적인 힘의 근원이 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의 이러한 점을 존경합니다. 목사님의 도덕적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리더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을 외향적으로는 따르는 척 할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목사님의 권위에 의심을 갖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목사님의 신뢰성 또한 개인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즉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어떠한 삶을 사는가 하는 도덕성이 중요한 것이 됩니다.
2. 큰 청사진을 그려라. 그리고 세부 사항을 생각하라.
어떤 담임 목사님은 셀교회 목회를 다른 목사님들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잘하십니다. 이러한 차이점이 생기는 이유는, 세부적인 일을 할 때, 항상 큰 청사진을 잊지 않고, 그것을 참고하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한가지 세부사항에 너무 집착하여 다른 중요한 사항들을 위해 일해야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오류를 범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부적인 일을 해나갈 때 전체의 청사진을 참고로 일의 진행을 점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항상 치유와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지만, 항상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딤임목사님은 이 점을 항상 상기하면서 일을 진행해가야 하고, 셀그룹 리더들에게도 이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잠시 점검의 시간을 갖는 것은, 그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목사님은 제자화에 매혹되어 모든일을 제자화에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셀목회와 전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목회 분위기를 너무 축제분위기로 맞추어서 다음 단계로의 비젼을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바람직한 경우가 못되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일의 시작 전에 생각했던 청사진을 자주 상기하며, 그 청사진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꿈으로만 꾸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의 그림, 즉 꿈을 가지고 그렸던 청사진을 자꾸 생각하며 구체적 일들을 해나갈 때, 셀그룹 목회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작업을 합니다. 저는 꿈만 꾸고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담임목사님들을 봐왔습니다. 반대로 너무 세부 사항에 집착하여 전체의 숲을 못 보는 경우도 봤습니다.
‘데이비드 자라밀’(David Jaramillo)이라는 목사님은 셀그룹 목회를 아주 잘 하시는 목회자입니다. 열정과 분명한 셀그룹 비젼을 가지고 세부적 일을 잘 해나가시는 분입니다. 세부적 일이 진행되어 갈 때, 전체적인 청사진을 잊지 않고 매주 확인합니다. 심지어는 매일 점검을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소그룹에서 진행되어 가는 일이 전체의 청사진에 맞추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른 셀그룹 목회를 하시는 담임목사님들이 방향을 못 잡고 헤매일 때, 이 목사님은 처음 청사진대로 일을 잘 진행 시켰습니다. 마치 소가 자기 코 앞의 푸른 잔디만 보고 전체의 푸른 잔디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몇가지 소그룹에서 일어 나는 세부 사항에만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셀그룹 목회를 잘 하실수 있나요? 어떤 목사님은 영적 카리스마스같은 지도력을 가지고 있어서 가르치는 일이나 설교 할 때에 많은 사람을 매혹시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본인의 설교를 듣거나, 가르침을 받을 때 목회가 성공했다 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셀그룹을 하시는 담임목사님은 다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셀그룹은 각 하부조직, 즉 각 소그룹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건강해지는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각 소그룹이 운영되어 번식해 가는 데까지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참석의 숫자가 이러한 소그룹 목회가 잘되어 가는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단지 소그룹을 통해 교인 숫자가 증가되기만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셀그룹 목회를 효과적으로 하시는 목사님은 전체의 셀그룹을 지켜보며 매주 상황 분석을 하고 점검합니다. 각 소그룹이 셀 목회의 목적에 맞추어 움직이는가 점검하고, 이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해야합니다.(예를 들어 성전 건축 문제, 셀그룹 목회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 운영 등) 이렇게 함으로 목사님은 셀 목회 전체의 청사진을 가지고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 의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자연적으로 성장과 부흥이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담임목사님은 반드시 비젼을 가진 청사진을 잊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갖고 있어야하며, 이에 따른 세부 사항을 점검해야 하며, 한쪽으로 즉 너무 비젼만을, 또는 세부 현실적 사항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소그룹을 경험하기.
''''''''데일 갤로웨이''''''''(Dale Galloway)는 새 소망 교회의 모든 목사와 스탭들이 셀그룹을 인도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교인이 6,000명이고, 셀 그룹이 600 개 일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담임 목사가 모델로 만들지 못하는 것을 따라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데일은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따질 것입니다. “그러면 담임목사가 가능한 많이 교회를 대표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담임목사는 한 그룹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그룹을 돌아가면서 맡아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이러한 논쟁은 나름대로 유익한 면이 있지만 부족합니다. 셀그룹을 인도하는 유익함은 단점을 훨씬 더 능가합니다.
셀사역에서 담임목사가 개인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게 되는 셀교회에서는 느슨함과 냉담함이 개발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셀교회는 마치 거대한 기계처럼 가동됩니다. 적당한 윤활유 없이.
어느 교회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의 중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딤임목사님은 셀 사역의 우수성에 대해서 웅변적으로 주장하지만, 프로그램이 성공을 가져올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셀 교회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말뿐입니다.
일년 후에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 셀 세미나를 인도할 때, 목사님의 리더십에서 조그마한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몇몇 긍정적인 결과들을 봤습니다. 일년 후 인근에 있는 신학교에서 제가 셀 교회 과목을 강의했습니다. 이 교회의 목사님이 참석하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청강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그 과정에서 얻은, 그의 사역을 변화시킨 원리는, 본인의 셀 그룹을 증식시키고 인도해야 한다는 필요였습니다.
3차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 목사님은 셀 목회에 불이 붙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이제서야 본인이 셀 목회에 대해서 말하던 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본인이 양육하여 셀 그룹의 리더자가 된 교인을 저에게 기쁘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담임목사님의 권위가 교회에서 3 배 정도나 더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확신있는 말을 했습니다. “셀 목회는 내게 매우 중요하기에 나는 직접 셀 그룹을 인도합니다. 그것을 또한 번식시킵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일도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목사님은 말로만 외치던 셀 그룹 목회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소위 셀그룹 교회라고 불리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현재 사역에 관여하고 있으며 어떻게 성공적일 수 있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셀을 인도할 때 얻는 유익함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 깊은 셀교회비전, 셀 지도자들에 대한 목회적인 관심이 높아진다. 어떤 셀 교훈이 실제로 적용되고 안되는지 통찰력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셀 목회가 매우 중요하기에 심지어 담임목사도 셀을 인도하고자 한다는 것을 수많은 방식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3500명 정도의 교인수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직접 한 셀 그룹을 맡아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오래 동안 이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셀 목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실천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본인이 직접 셀 그룹 사역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본인이 직접 셀 목회를 실천하게 되자 전문직을 가진 6가정이 이 목사님의 사역하시는 모습 속에서 변화되어 지금은 셀 그룹의 리더자가 되어있음을 자랑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일년 안에 다른 새로운 셀 그룹을 번식하였고, 본인이 셀 목회에 관하여 설교한 사실을 실천에 옮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엘림 셀 컨퍼런스에 매년 참석하고, 베다니 세계 기도 센터를 방문하고, 보고타 국제 G-12 미션 회의에도 참석하고, 한국의 조용기 목사님의 교회를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로 셀 목회가 성공하려면 각 교회의 상황과 현실에 맞게 셀 목회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담임목사 자신이 직접 셀 그룹 목회를 경험하는데 있습니다. 목회자가 직접 셀 목회를 할 때 생기는 유익은, 매주 새로운 교훈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으며, 각 셀 그룹 리더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같이 공감할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셀 그룹 목회를 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영적 에너지, 그리고 목회적 차원의 많은 관심이 요구됩니다.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여가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모두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면 이러한 불평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의 모범은 교인 전체에게 셀그룹은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무언중에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교인들은 일상 생활이 너무 바쁘고 시간을 낼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목사님은 많은 성도를 지도하기를 원하고 작은 소그룹 지도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소그룹을 통하여 한사람 한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고 많은 성도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라는 것입니다.
셀 그룹의 목적 중 하나는 그저 교회 문턱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열심있는 성도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임목사님이 셀 그룹을 직접 인도해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목회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담임목사님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클레어런스 데이(Clarence Day)는 “실천을 통해 지식이 경험되어지기까지 지식 자체는 아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셀 목회를 하면 새로운 사람을 전도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리더자를 양성하게 되며, 말씀을 더 준비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적 보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왜 목사님들은 셀 목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단치 못하고, 주저하고, 직접 실천하시지 않습니까?
사실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세계의 큰 교회 목사님들은 본인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위치에까지 교회가 성장하도록 이러한 교회의 목사님들은 많은 실천과 노력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회의 목사님은 본인이 직접 셀 그룹을 지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교회를 성장시킨 후, 본인은 일의 진행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간섭하십니다. 이러한 교회는 사실상 셀 그룹 목회에 있어 많이 앞서가 있고 성장한 교회입니다.
셀 그룹목회가 성장하고 성공적으로 되어질 때 예외적 상황이 생기기도 하며 특정 규칙이 필요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셀 목회에 있어 나쁜 경우가 아닙니다. 하지만 조심하여야 합니다. 가능하면 담임목사님이 직접 셀 그룹 지도를 하는 것을 저는 권장합니다.
4. 비젼을 키워라.
셀 그룹 목회를 위해 비젼을 키워가기 위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담임목사님이 셀 그룹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서재에는 최근에 출간된 셀 그룹에 관한 도서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용기 목사님의 ‘성공적인 가정 셀 그룹’라든가 랄프 네이버 주니어의 ‘셀교회 지침서’, 그리고 칼 조오지(Carl George)의 ‘Prepare Your Church for the Future’, 또는 빌 벡햄의 ‘제 2의 종교 개혁’ 그리고 저의 책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으로 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은 셀그룹의 비젼을 확실히 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고 계십니다.
셀 그룹 세미나를 하는 것도 담임목사님께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세미나의 목적은 목사님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셀 그룹 목회의 비젼을 교인들에게 제시하고 확신을 불붙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가장 설득력있는 세미나는 영적 감화력이 있는 성공 실화라든가, 하나님이 셀 그룹 목회에 있어 기적을 행하신 일을 소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미나를 하는 강사는 각 교회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폭넓은 주제의 강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셀그룹 목회의 비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세계 각 곳에서 하고 있는 셀 그룹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목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에 칭찬을 하고 싶습니다.
두번째로 중요한 점은 다른 셀 그룹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과 네트 워크를 잘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서로의 성공 사례나 실패한 경험을 통해 배워갈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들 중에는 이러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셀그룹 네트 워크는 이러한 상호 보완 관계를 제공해 줍니다. 다른 셀 그룹을 인도하고 있는 목사님들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목회적 관계를 돈독케 하고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셀그룹 네트 워크가 가장 잘되고 있는 곳은 벤웡(Ben Wong)의 감독 하에 운영되고 있는 홍콩 네트워크입니다. 그는 ‘HK 셀 교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약 160 개 교회를 회원으로 하여 서로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비기독교인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홍콩 네트워크를 통하여 세계 각 교회가 매해 셀 교회 목회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네트 워크는 셀그룹 목회의 전문가와 셀그룹 목회를 희망하고 시작 단계에 있는 교회를 연결시켜 도움을 주게 합니다. 또한 경험있고 성공한 지도자를 경험이 미숙한 목사님들과 연결하여 도움을 주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셀 그룹 목회의 비젼을 사실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셀 그룹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교회를 방문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이 이러한 교회에서 셀 그룹 목회에 관한 세미나를 할 때, 몇몇 교인들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왜냐면 강의를 통해 듣는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현실화 된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5. 안에서 밖으로.
셀 그룹 목회를 효과적으로 잘하시는 목사님은 평신도가 셀 그룹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잘 해주며, 그 셀 그룹에 속한 성도들에게 목회적 차원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줍니다. 셀 그룹 목회에서 중요한 사실은 매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셀 그룹이 영적으로 살아 움직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수의 성도가 있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보다 소수의 성도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이러한 상태의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 조오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제가 목사님들께 도전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얼마나 인상적인 설교를 하는가 하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지도자를 양성했느냐에 더 열정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목사님이 얼마나 바쁜가, 목회에 열심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목회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을 포함한 사역자들이 리더를 얼마나 잘 양육하고 길러내느냐가 더 중요한 목회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 입니다.
셀 그룹 목회의 주된 전략은 리더십과 상관이 있습니다. 셀 목회의 핵심은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있습니다. 이 리더십 아래 셀그룹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그저 참석자의 숫자만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셀 목회를 하시고 계시는 목회자는 교회만 왔다 갔다하는 성도를 리더로 양성시키고, 목회자나 복음 사역자로까지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재 리더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후보 리더들을 계속해서 길러내야 합니다. 목회에 있어 교회의 전체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셀 그룹 목회를 매주 매주 충실히 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목사님의 주된 임무는 평신도 교육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을 주일날 하루의 연극 배우자에서 제자화를 위한 참된 교역자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매혹시켜 매주 많은 수의 사람들을 모을까 하는 생각에서 어떻게 리더를 잘 훈련시켜 세상으로 파견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목사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처럼 목사님은 셀그룹 지도자.(G-12)를 양육하고 영적 성장을 시키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셀 그룹 리더를 양성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진정한 G-12 리더)간의 신뢰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5 ).
저는 목사님들께 저의 책 중에 ‘How to be a Great Cell Group Coach’라는 책을 읽어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원리들을 셀그룹 리더들과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몇 원리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라.
-셀그룹 리더의 말을 경청하라.
-셀 리더를 격려하라.
-셀 리더를 돌보라.
-셀 리더를 개발하고 훈련키켜라.
-셀 리더와 함께 전략 세워라.
-셀 리더에게 도전을 주어라.
담임 목사님은 매주 계속되는 셀 그룹 회의나 성경공부, 또는 만남을 통해서 리더의 영적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여러 가지 필요한 충족을 리더에게 주기 위해 정기적인 만남 외에 별도의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6. 사역자들에게 하는 목회.
다음의 사항은 담임목사님이 부 교역자들이나 셀그룹 목회에 자원하는 리더(G12 group)들과 함께 생각해 볼 사항들입니다.
a. 말씀 묵상과 기도 시간
히브리어 4장 12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어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목사님은 모든 회의나 모임을 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읽은 후 잠깐의 묵상을 하고 삶의 적용을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말씀을 나눈 후 자연스럽게 기도의 시간을 갖으면 더욱 좋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부 교육자나 셀 그룹 리더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터놓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b. 셀그룹 목회 점검
우리가 셀 그룹 교회의 구조로 넘어가지 전에 지난 시간에 진행되었던 다양한 프로그램과 예배에 관하여 먼저 점검의 시간을 갖습니다. 셀 그룹 목회가 진행되어 가면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항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셀그룹 목회에 있어서 큰 장점은 세부적이고 실질적인 중간 검토와 진단을 매우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중심으로 목회가 진행되어지는 교회는 이러한 구체적 점검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각 셀그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된 매주 모임 보고서를 목사님께 제출해야 합니다. -리더, 참석 인원, 회심자, 주제, 배가되어 독립된 날자와 리더, 심방자 명단과 방문자, 훈련자 수, 코치와의 만남 등등. 또한 기도 요청이나 목사님과 상담요청의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 있습니다.
그와 보고서는 모두 수집되고 요약되어 담임목사님이 최종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셀그룹 리더들은 각 교회간에 네트워크를 위해서 책임자에게 보고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에는, 개인 신앙 생활의 어려움이나 심방회수, 간증, 훈련되고 있는 사람들의 현황, 셀 그룹 모임이 취소된 이유, 각 소그룹의 계획 등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보고가 진행 되어갈 때 보고되는 내용을 통하여 담임목사님은 전체의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셀교회를 시작할 때, 교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이러한 보고서 검토가 빨리 진행됩니다. 그러나 셀그룹이 250 개 정도 될 때는 시간이 다소 소요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검토를 꼭 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전도서 27:23절 말씀과 같이 양들의 상태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각 셀그룹은 교회의 중요한 지체입니다 그 이유는 각 셀그룹 내에서 목회가 실제적으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c. 최종점검과 다른 세부적 문제들
각 셀그룹이 교회의 전체 목회의 부분 부분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주일 전이나 각종 행사 전에 반드시 최종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 해야할 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도움이 더 필요한 곳은 없는지, 안내자, 설교자, 주일학교 진행자 확인 등, 특히 주일예배 담당자를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외에도 다른 세부적 사항으로는 각 셀그룹 계획 보고서 작성 확인과 재정 보고, 수련회등 교회의 행사나 셀그룹 목회의 비젼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서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7. 비젼 키우기
큰 비젼을 제시하고 계속적인 행사를 교회에서 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1993년에 셀 그룹 목회의 자화상을 그릴 때 실수를 범하였습니다.(그때 당시 저는 담임목사가 아니였습니다.) 저는 셀 목회의 모든 주관자가 되려고 분주히 행사를 하고 끊임없는 비젼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직접 셀 그룹지도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여 저의 수첩에 “담임목사가 이 사역을 담당할 필요는 없다”라고까지 적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저는 그러한 저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한 단계 한 단계 셀그룹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하나의 셀그룹을 맡아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조오지 바나(George Barna)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 “리더나 담임목사님의 역할은 실제적이고, 구체적 비젼을 제시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역동성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다른 직분자들은 이를 실천하고 전략에 맞추어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목회자만이 실제적 비젼을 효과적로 제시할 수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담임목회자가 직접 셀그룹을 지도할 때 이 실제적 비젼을 발견할 수 있고 구체화 할 수 있다.
이에 관련하여 데일 갤로웨이도 1984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치 교회들이 청년부 사역자나 성가대 지휘자를 찾듯이 저희 교회의 셀그룹 운영자를 찾기 위해 저는 3년 전 교회 밖에서 누군가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셀그룹 지도자는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구해야 합니다. 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의 비젼과 마음을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이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교회의 셀그룹 지도를 해야만 성공적인 셀그룹이 될 수 있습니다. 청년부 사역자나 성가대 지휘자처럼 고용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책임감있게 마음을 나누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젼과 열정, 정열을 가진 교회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세미나를 할때 평신도에게 셀그룹 이론과 정신을 항상 잊지 말고 상기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을 위해서도 비젼을 잊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교회나 담임목사님은 셀그룹 목회가 진행되고 있는 한, 다른 생각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셀그룹 목회와 관련되고 연관된 프로그램만이 진행되어져야 그 안에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8. 많은 프로그램에 대해 No라 말하십시오.
타이타닉이라는 배는 웬만해서는 가라앉지 않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배를 만든 사람은 배의 안전에 확신이 넘쳤기에 구명보트를 충분히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가 빙산을 만났을 때 불행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담임 목사가 다른 어떤 목회 방법이나 비젼 등에 유혹되고 매혹 될 때, 셀 목회에 매우 미묘한 빙하가 나타납니다. 사실 셀그룹 목회 방법 외에도 많은 다른 세미나나 목회 방법이 책이나 잡지로 출판되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법을 주장합니다. 각각의 제안들은 동등한 경비와 관심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산만해지면 셀 그룹 교회로 전환하려는 교회는 가라앉습니다. 결국 셀그룹 목회가 실패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이 방법은 셀 목회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할 때 주의하십시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반복됩니다. 잠재력있는 모든 것이 셀 목회에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력을 흩어 버리고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그룹 번식이 계속되어 셀그룹 목회가 잘 진행되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셀그룹 프로그램에 참석하도록 교인들을 격려하고 새 등록 교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다른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교인들이 이에도 동일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담임목사는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있어 조심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9. 설교에서 셀목회를 강조하라.
주일에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담임목사님이 셀그룹에 관련된 설교나 예화를 들려주는 것은 성도들에게 셀 그룹 이해를 돕고 확신을 심어주는데 기여합니다. 레어리 스탁스틸(Larry Stockstill)은 설교할 때 셀 그룹과 관련된 한가지 예화 정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셀그룹 목회는 성도들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교회가 셀 목회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설교를 통해 인지하게 됩니다. 설교를 통해 듣게 되면 사람들은 두가지의 반응을 나타냅니다. 셀 목회에 참석하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이때 담임 목사님은 셀그룹 목회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중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관심을 가지고 참석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계속 관심을 줘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셀그룹 리더들만이 중요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데, 셀그룹에 무관심한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10. 자유
셀그룹 목회가 담임 목사에게 주는 결과는 자유입니다. 교인 한명 한명 돌보아야하는 부담감과 많은 목회적 사무에서 자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을 100명 또는 1000명 단위로 나누어 책임을 맡겼던 일과 같은 경우입니다. 교회를 이와 같이 소그룹화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평신도 중에서 사역자와 목회자, 전도자들을 보는 것은 목사에게 자유와 평안함이라는 보상을,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출처 : 글쓴이: 조엘 코미스키
평신도 사역의 꽃 은사배치 사역
NCD 연구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사역에 관여하지 않거나 아니면 그들의 은사와 무관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약 80%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
이런 교회는 실로 네모난 바퀴로 굴러가는 힘겨운 수레와 다름없다. 그래서 자신의 은사와 상관없이 사역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수레 안에다 자신의 둥근 바퀴를 그대로 실어둔 채 쓰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이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건강한 교회는 자신의 은사를 알고 은사에 따라 섬기는 평신도 사역자가 많은 교회이다. 평신도 사역은 교회건강의 척도이다. 그러므로 은사배치사역은 평신도 사역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자신의 은사대로 사역할 때 그토록 목말라하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실현된다. 은사배치사역에서는 은사배치사역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개인의 은사와 성격유형 및 관심사를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사역에 임하면 자신감이 넘쳐 사역에 임할 때부터 적극적이다.
은사배치사역은 단순히 성도들의 은사를 확인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교회안에서 평신도들의 올바른 자리매김이라 할 수 있다.
은사배치사역은 먼저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하는 은사발견세미나로부터 시작된다.
은사발견세미나는 먼저 개인이 가진 관심사를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심사는 어디에서 섬길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 다음은 자신의 성격유형을 살펴보는데, 이는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세 번째 자신이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를 체크한다.
은사는 각 사람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옳고 그름이나 크고 작음이 없다.또 누구나 한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은사로 서로 분리되지 않고 협력하여 조화를 이뤄 섬기는 것이 은사배치사역이다. 관심사, 성격유형, 은사 등의 테스트를 마치면 자료를 토대로 자신이 원하는 은사사역팀을 체크한다. 그 자료를 가지고 은사배치사역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팀으로 배치된다.
은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발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마다 연말이면 은사를 새롭게 체크하여 은사에 따른 팀사역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은사에 따른 각 사역들은 팀 사역 지침서가 있어서 진행이 구체적이다. 은사를 발견한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사역해야 하겠는데 구체적인 지침이 없으면 네트워크 사역은 활성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네트워크 사역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은사대로 사역하게 하는 총체적인 프로세스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네트워크 사역 전체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사역을 진행해 나갈 때 네트워크 사역은 꽃을 피게 될 것이다.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는 길은 간단하다. 잠자고 있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와 교역자들에 의해 독점된 사역을 내려놓는 것이다. 은사배치 사역은 모든 신자들이 사역의 주체가 되어 봉사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와 성격유형 및 관심사를 발견하고 적절한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역의 주체인 평신도들을 통해 교회의 건강은 회복되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될 것이다.
김성곤목사 2005-02-16 10:39:20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는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이다. 한 날개는 대그룹 날개로 축제예배의 날개이며, 다른 한 날개는 소그룹 날개로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이다. 전인적인 소그룹이란 소그룹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과 목적을 체험하며 전도, 정착, 양육, 훈련, 재생산이 일어나는 통합적인 소그룹을 뜻한다.
대그룹 축제예배의 날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며,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친밀하심, 내재성을 경험한다. 이처럼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룬 교회가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이며, 교회는 이 두 날개로 비상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나아가 세계비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사도행전 2장 46절에 교회의 두 날개가 잘 표현되어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절 상반절을 살펴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대그룹 날개의 모습이며, 하반절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셀가족 모임인 소그룹 날개의 모습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이처럼 두 날개를 가진 교회였다.
두 날개를 가진 교회를 셀교회라고 하는데, 셀교회는 공동체라는 성경적인 근거에서 출발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로 존재하시며, 창세기1장26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형태 역시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단은 에덴동산에서부터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깨뜨렸으며, 서로를 향한 비난은 아담과 하와의 부부관계를 파괴하였다. 창세기4장3~9에 나타난 가인의 살인사건은 최초의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단의 공격이었다. 심지어는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마저 공격받기도 했다. 사단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공동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가정이 깨어지고 교회가 분리되는 것이 집요한 공격의 결과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
마태복음 22장37~40에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과의 연합마저 관계가 아닌 행위, 성취에 두도록 유혹한다.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죄하며, 끊임없는 경쟁의식으로 지체들과의 연합을 파괴한다.
기억하라!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지체들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합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서로를 책임지는 삶을 뜻한다. 공동체란 다름아닌 가족이며 가족같이가 아니라 가족으로 서로 상호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3~47에 나타난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살펴보자. 그들의 공동체에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셨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강한 성령님의 임재로 가능했던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으며, 그들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진정한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회복은 다름 아닌 초대교회에 강력하게 역사 하셨던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이 시대에 회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김성곤목사 2005-04-26 17:37:38
하나님나라 가치와 셀교회
어느 추운 겨울 저녁, 영국 런던 시내의 한 악기점으로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 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헌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었다. "저는 지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사주세요.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래서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1기니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1기니는 당시 영국 화폐 단위로 지금의 약 5달러에 해당한다.
그 사람이 떠난 뒤 베츠씨는 그 고물 바이올린을 무심코 켜보려고 손잡이 활을 줄에 대고 한번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소리가 풍부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불을 밝히고 먼지투성이의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기절할 만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 제작). +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그 바이올린이 행방불명이 되어 일, 이백년 동안이나 그 많은 사람이 찾으려고 애쓰던 거장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바이올린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팔고 간 사람을 찾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배가 고파서 밥 몇 끼니 사먹을 수 있는 값 5달러에 팔아버린 바이올린은 무려 10만달러 짜리였던 것이다. 그는 이 바이올린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는 그 고귀한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치란 무엇인가? 내면의 우선순위이며 가치에 의해 우리의 행동이 결정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행동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치로 여긴다. 가치는 나무의 뿌리와 같다.
그러므로 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듯이 셀교회에 대한 가치를 알고 그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로 무장될 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회복된다.
그렇다면 셀교회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성경적인 교회이며 교회본질에 대한 회복운동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이기도 하다. 셀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도시화된 구조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을 수용하며 미래의 인구폭발을 감당한다.
셀가족모임의 가치는 무엇인가? 예수 생명으로 하나된 가족모임이다. 가족같이가 아니라 예수 보혈로 하나된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상호책임진다. 아픔도 슬픔도 함께하는 육신의 가족보다 더 진한 가족이다.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에는 셀가족이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깝고 친밀했다.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 것이 생명과 맞바꾸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서로 위로하고 물건을 나누며 한 형제 자매로 가족이 되어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주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성전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또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기에 초대교회는 강력한 부흥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주께서 셀가족 모임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셀교회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그룹 날개인 축제예배와 더불어 소그룹 날개안에서 진정한 가족으로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교회 본질이 회복되며 교회는 두 날개로 날아올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이르고 잃어버린 영혼을 감당하게 된다.
김성곤목사 2005-05-08 16:19:46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
교회는 주님이 주신 목적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그 목적은 다름아닌 마28:18~20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는 일’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비전이자 사명이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양육과 행사는 이 목적에 의해 기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이것을 프로세스 목회라고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해 프로그램 목회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 목회는 백화점처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어 성도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양육하고 재생산하는 과정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마치 백화점에 사람이 몰려들 듯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하나, 이것저것 맛을 보고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떠난다. 그렇기에 양육과 재생산이 이뤄지기 힘든 것이다.
D12 다이다몬드 양육시스템은 프로세스 목회를 시스템화한 것으로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을 거치면 건강한 평신도 사역자가 탄생되며 재생산이 이뤄진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그랜저를 생산하는 라인을 거치기만 하면 그랜저가 만들어지듯이, 교회 또한 시스템을 거쳐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제자며 군사로, 재생산 사역자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교회 D12 다이아몬드 양육시스템은 전도에서부터 정착, 양육, 훈련 재생산에까지 일관성있으면서 체계적이다. 각 단계의 목표가 정확하여 확실한 일꾼이 세워진다.
1. 전도
전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특권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특히 성경적인 전도전략인 열린모임을 통하여 지역, 직장, 병원, 캠퍼스, 학교 등을 복음으로 정복해가고 있다. 열린모임이란 소그룹전도 방법으로 3,4명이 팀이 되어 각 삶의 현장에서 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혼자서는 전도한다는 것이 두려움이요 어려움이지만, 팀들이 함께 복음을 전하면 개인전도의 두려움이 극복되고 팀들의 기도 지원을 받으며 진도가 지속적이다.
열린모임은 특히 관계전도이기에 불신자들을 초처하기위해 6단계로 관계를 맺어간다. 건강한교회의 전도는 그렇기에 이벤트나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다.
2. 정착
전도되어온 새가족만 잘 정착시켜도 교회는 성장한다고 한다. 전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새가족의 정착이다. 뒷문이 열려있으면 성장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새가족정착 사역은 새가족 섬김이사역이다. 교회에 처음 온 새가족에게 비슷한 연배와 환경의 새가족섬김이를 붙여 3주 동안 식사하며 교제하여 정착시키는 사역이다. 우리 교회는 새가족 섬김이 사역으로 90%의 정착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리더십 "아비의 마음"
제자비전으로 목회를 하는 분들은 누구나 고백하는 말이 “목회는 힘든 고비를 넘나드는 일이다”는 것이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제자비전 목회에는 늘 아슬아슬하고 힘겨운 고비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기가 일쑤이다.
속은 또 얼마나 타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변화는 없고, 언제나 제 고집으로 맞서고, 그러다 덜컥 낙오해버리는 상황이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면 아마 이럴 때 제자를 바라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사나흘 몸살이 오고, 시무룩해지고, 주님앞에 서기조차 힘겨워지는 그 아픔의 시간, 홀로 앓고 또 앓을 뿐이다. 강대상에 서면 눈물은 또 왜 그리 주체없이 흐르는지, 열 두 제자와 함께 주님도 이렇게 우셨을까?
무엇보다 가슴아픈 건 그렇게 믿고 인간적인 애착까지 쏟았던 제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물러설 때이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해버릴 때, 나는 차라리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고통스럽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긴 하소연을 늘어놓았는가. 이렇게까지 어렵게 하지 않아도 다들 목회 잘하는데, 하는 돼먹지 못한 생각도 불쑥불쑥 솟구친다. 인자한 주님이, 가끔은 능청스럽기까지 하신 우리 주님이 나의 이런 슬픔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랬다. 늘 주님은 베드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그 물음을 던지셨다. 이미 나의 대답은 정해진 터였고, 주님의 질문은 곧 한없는 격려가 되어 나는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일어서서 다시 제자들 앞에 서는 일, 그 끝없는 반복을 오늘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게 제자비전 목회이다.
그러면서 나는 배운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곧 아비의 심정을 갖는 것이라고. 어느새 제자가 아닌 자식이 되어버린 그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기르는 힘은 눈물과 수고, 끝없이 나를 깎는 해산의 수고다. 이것이야말로 결국은 사람의 성숙된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힘이란 사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깨닫는 진리가 됐다. 사람들은 흔히 제자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양 착각한다. 아니다. 아비의 심정이다. 사랑밖에 더 없는 아비의 심장, 언젠가 그것마저 내줘야 할 아비의 뜨거운 심장 말이다.
내가 아비가 되면 나의 제자들도 아비가 되어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돌본다. 어느 셀리더의 간증이다. 그의 셀가족중에는 매우 반항적인 성격을 가진 자매가 있어서 셀전체 분위기가 자주 살얼음판이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자매는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것이다.
자매는 성격이 감정적이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을 책망이라도 하면 불처럼 반응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자매의 행동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거칠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급기야 셀가족들은 참는데 한계를 느꼈다.
그러나 리더는 다시 자매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그 리더에게 보다 진지하게 물으셨다고 한다.
“너는 엄마가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니? 친구들은 모두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 홀로 남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의 외로움을 너는 아니?”
하나님은 더 뚜렷하게 한폭의 그림으로 응답하셨다. 해질 무렵 친구들이 모두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홀로 남아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원망이 그득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했다. “네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라. 그것이 바로 그를 너에게 보낸 이유란다”
그 날 리더는 한참을 울면서 회개했다. 어미처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엄마가 되는 일,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아비의 심정을 가진 양육이기 때문이다.
김성곤목사 2004-05-18 04:19:53
두 날개로 날아오르자!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다. 한 날개는 대그룹 날개로 전성도가 함께 드리는 축제 예배의 날개이고, 한 날개는 소그룹 날개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들은 함께 모여 대그룹으로 예배를 드렸을 뿐 아니라 날마다 소그룹으로 모여 떡을 떼며 교제했음을 볼 수 있다(행2:43~47)
오늘날 우리는 건물 중심 교회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교회라고 하면 대그룹으로 모여 드리는 예배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한 날개에 불과하다. 소그룹으로 모여 예배 드리고, 그 소그룹 안에서도 교제뿐 아니라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까지 일어나야하는 것이 또 한날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러한 소그룹을 전인적인 소그룹이라 표현한다.
흔히 소그룹이라고 하면 대그룹 교회안에 속한 하나의 조직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소그룹은 또 하나의 교회이며 대그룹에서 일어나는 전도와 양육, 돌봄, 재생산이 동일하게 일어나 주님이 명하신 지상명령인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다.
대그룹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며, 소그룹안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과 친밀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룬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그룹 날개인 축제예배를 통해 전성도가 하나되고, 소그룹 날개인 소그룹 모임을 통해 육신의 가족보다 더욱 친밀한 돌봄과 나눔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NCD (자연적교회 성장 ) 컨설팅 결과 교회건강지수 세계신기록이 나타난 가장 건강한 교회라는 진단을 받은 것도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대그룹 날개에서는 축제예배와 더불어 은사대로 섬기며 기쁨을 맛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등, 각각의 달란트가 다르다.
우리 교회에서는 은사발견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여, 은사대로 섬기게 하고 있다. 안내팀, 차량봉사팀, 찬양팀, 드라마팀, 멀티미디어팀 등 교회내 봉사뿐 아니라,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돌봄 등 사회봉사에도 관심에 따라 참여하게 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취미 활동도 적극 권장하여 축구팀, 농구팀, 낚시팀, 등산팀 등이 활성화 되어 있다.
소그룹인 셀가족 모임에서는 초대교회와 같은 나눔과 돌봄, 사랑이 친밀하게 일어난다. 셀리더는 영적인 아비로 가족들을 돌보고, 헌신하며, 이들의 섬김을 통해 육신의 가족보다 더 가까운 공동체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면 셀가족들은 가장 먼저 셀리더에게 도움을 청하며, 셀리더는 그를 위해 철야, 금식기도는 물론 실제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는다. 부침을 부쳐도 셀리더는 셀가족까지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전화하고 만나고 기도하는 예수 생명의 한 가족인 것이다.
공동체는 함께 하며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 교회 셀가족모임에서는 셀리더가 가족을 책임지고, 셀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를 책임진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요, 곧 가족이다.
셀가족 모임에서 정말 가족이 된 사람은 교회의 손님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그룹 날개에서도 주인으로 섬기고, 의무에서가 아닌 기쁨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모두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교회 본질적인 모습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대그룹 날개와 더불어 또 하나의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인 전인적인 소그룹 날개의 회복이다. 이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고 날아오를 때 진정한 공동체 회복이 이뤄질 것이다.
제 11 장
셀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Growth the Cell Church
내용 목차
들어가는 글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III.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반성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의존성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나오는 글
들어가는 글
교회는 성장해야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나 기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라며, 자라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서 언제든지 그 생명의 열매들을 통하여 또 다른 열매들을 맺는 생명의 연속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반 세기동안 교회성장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을 위해 헌신해 왔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당연한 것이며 반드시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교회성장 그 이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풀러 신학교의 Macgavran 교수가 1955년부터 기초를 놓음으로써 시작된 교회 성장학의 주된 관심은 지난 40여 년간 교회의 양적 성장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양적 성장에의 관심은 교회의 질적 성장의 문제를 강조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판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은 성서적, 신학적 뒷받침을 결여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님으로써 오히려 또 다른 문제점들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세기 말에 유행처럼 번졌던 "총동원 주일" 이라는 이벤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이벤트를 치루는 방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위적이고도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했으며 또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평소에 모이던 숫자에 비하여 어느 한 주일에 두 배, 세 배, 심지어 다섯 배까지 사람들이 모였다한들 그 결과가 일과성으로 끝나버린 수많은 경우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벤트가 교회의 질적 성장은 물론이고 양적 상장 그 자체에도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가를 되돌아 볼 때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또한 한국에서도 그 관심이 봇물 터지듯 지대해지고 있는 셀 교회 운동의 경우도 이러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충성에 관한 심각한 검토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고 믿어진다. 이미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교회성장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양적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그 관심이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셀 교회에 쏟아지는 관심은 당연히 숫자적 증가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영적 성장의 한 방법"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본 연구자는 이미 그러한 각도에서 셀 교회를 접근해오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만나오고 있다. 셀 교회 모델의 진정한 의도와 정신은 사실상 질적 성장을 전제로 양적 성장을 바라본다는 면에서 이러한 우려되는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교회 성장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의 관계를 규명하고 그것이 셀 교회의 경우 어떠한 관계성을 지니면서 조화를 이루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상반관계와 상호연관관계를 살핀 후 조화로운 관계를 연구하되 셀 교회 모델의 경우 이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떠한 모습으로 구조 속에 나타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셀 교회의 구조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그 본질이 어떻게 이 양자의 성장을 촉진하게 되는지를 밝히게 될 것이다.
I. 교회성장의 질적 측면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질적 성장은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으며 평가할 수 있는가? 오늘날에 이르러 교회의 질적 성장은 종종 "건강한 교회 성장(healthy church growth)," 또는 "자연스러운 교회성장"(natural church growth)이라 불려진다. 아마도 이러한 최근의 용어들이 시사하는 바는 인위적이고도 비정상적인 숫적 증가 위주의 교회성장에 대한 대안으로서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라 믿어진다. 이러한 각도에 비추어 볼 때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함을 의미하며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본질 구현이라는 과업은 양 차원을 지닌다. 첫째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이해이며, 둘째는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둔 교회의 질적 성장은 전적으로 그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개인의 영적 성장과 직결되며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이루는 삶과 직결되므로 여기에 철저한 교육과 제자훈련의 과정들이 전제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균형 잡힌 성장과 기능 수행은 개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의 응집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볼 때 개개 교인들의 제자도는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온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여부에 의해 그 건전성이나 건강성을 드러낸다할 수 있을 것이다.
1. 교회의 본질 구현으로서의 교회성장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교회의 본질에 부합되는 정도에 좌우된다. 즉 성서가 말하는 교회의 본질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구현되었는지가 교회의 질적 성장 정도를 나타내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서의 언급과 그 언급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론에 관한 신학적 이해가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비밀"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엡 3:4,5) 그러한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의중에 계획하셨던 바라고 말씀하신다(엡 3:9). 그러면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마음에 품으셨다는 말인가? 교회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비밀이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경의 표현들과 함께 그 신학적 의미들을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1)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Alvin J. Lindgren은 그의 책에서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선택된 공동체"로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이 고안해낸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권적으로 계획하신 것이며 하나님 쪽에서의 선택적 행위로 만드신 것이다. 그런가하면 교회는 그 본질이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단순한 사람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속성을 지닌다.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삶을 위하여 상호 의존관계를 맺는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 교회가 공동체라는 말은 교회의 구성원들 상호간에 자신들의 영적 생활을 위해 결정적인 의존관계를 맺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는 구성원 서로가 하나의 영적 생명체를 이룸과 동시에 서로의 존재가 곧 서로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개인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공동체에 붙어있을 때 그 개인과 공동체는 함께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공동체적 본질은 구성원 상호간의 영적인 유기적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관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말 속에 매우 적절히 나타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교회의 또 다른 본질에 관한 표현은 유기체(organism)로서의 교회이다. 교회의 본질이 유기체라는 말은 곧 교회가 생명체라는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있는 실체(living reality)이며 그 몸은 마치 육체가 성장하듯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유기체로서 성장하며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유기체의 건강함에 따라 그 기능수행이나 사명수행의 정도가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그것이 유기체로서의 건강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Schwartz는 「자연적 교회성장」에서 교회성장에 관하여 원리중심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 교회의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 생명체 원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이 생명체 원리를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제시한다.:
(1) 상호 의존--"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상호 연관된 많은 부분을 가진 복잡한 유 기체이다."
(2) 번식--유기체는 끊임없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 장" 형태-하는 것이다.
(3) 에너지 전환--생명체가 생명 존속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힘과 에너지를 미세한 조절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4) 다목적--자연에서는 쓸모 없는 것이 없다. 나무로부터 떨어진 낙엽도 비료로 바뀌어 그 나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자양분을 공급해준다.
(5) 공생--두 개의 서로 다른 유기체가 서로 유익을 주고 받으며 밀접하게 함께 사는 것 이다.
(6) 기능--하나님의 창조 세계 내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원래부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각각의 종류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생명체로서 이러한 생명체 원리들이 작용하는 장(場)이라면 교회의 본질이 구현될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발휘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가져 올 것이다. 교회본질이 구현되는 정도는 이와 같은 생명체 원리들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며 실현되어지는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하며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유기적 의존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다는 말은 교회는 모든 상황과 경우에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으며 그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관계를 지녔다는 말이다. 머리의 명령을 즉각 순종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지체를 지닌 몸을 일컬어 지체부자유자 또는 장애인이라 일컫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또 분별했다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결코 건강하지도 못하며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반드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즉 교회 본질이 반드시 구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Lidgrern이 교회의 사명을 그리스도의 구속적 몸(redemptive body of Christ)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 속에는 교회 구성원 상호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강하게 내포한다. 마치 우리의 몸의 각 지체가 몸에 붙어있어 몸을 중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존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듯이 교인들이 교회에서 각자가 개체로서 서로에게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는 의미를 가진다. 몸에는 불필요한 지체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각 지체들이 서로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전체로서의 몸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하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다. 몸의 어떠한 지체도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며 각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건강을 유지하며 한 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과 위치를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3) 코이노니아로서의 교회본질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장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소란 영적 공간을 말하며 하나님의 임존이 이루어지는 영적 실체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로서의 교회는 그 현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코이노니아인 것이다. 교회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임재와 현현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어야 한다. 이것은 본질에 관한 문제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여기서 말하는 사귐이 곧 코이노니아인데 이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귀는 곳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라는 말씀은 교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공간에서 삶을 함께 나누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 공동체 속에 나타나실 자신의 현현을 예고하셨다.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발생하는 곳에 주님 자신이 나타나심으로써 세상 속에 자신을 증거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우리가 믿을진대 교회는 반드시 교회 본질로서의 코이노니아를 실현해야만 한다.
4)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
교회본질과 관계된 또 다른 성경의 중요한 표현은 "하나님의 가족"이다(엡 2:19; 딤전 3:15). "하나님의 권속"으로도 번역된 이 표현은 영어로는 "family of God," "household of God"으로 번역되어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교회가 영적 가족으로서의 본질적 실체임을 나타내 준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족관계만큼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없다. 교회가 가족이라는 말은 구성원들이 영적 혈연관계를 가진다는 말이며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 본질은 단순한 사람들의 사랑의 모임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며 함께 삶의 의존관계를 통하여 서로 세워주며 서로의 성장을 위해 서로 서로 기여하는 상호절대의존성을 지닌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비유법이 아니라 직설적인 선언이다. 직설법은 그 내용이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는 그것이 아니지만 그 본질적 성격이나 내용이 유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직설법으로 표현된 것과 비유법으로 표현된 것은 본질적으로 180도 다른 것이다. 직설법은 그 자체가 실체라는 말이며 비유법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과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영적 가족으로서의 실체이며 이러한 영적 혈연관계는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다. 즉 교인들은 모두가 가족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인종과 년령과 성별 등을 모두 초월한 신성한 가족관계를 맺고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교회를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은혜의 경륜"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oikonomia인데 이 단어는 집이라는 의미의 oikos와 경영 또는 운영하다는 뜻의 nomia(원형은 nmeo)라는 단어가 합성된 용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어원학적 의미는 "집을 경영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에배소서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비밀이 전하지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깨달은 바울의 흥분을 보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본질을 지닌다. 이러한 표현 속에서 우리는 가족으로서의 교회 구성원들간의 독특한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가족관계의 독특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구성원들 사이가 혈연관계로 맺어져 있다. 둘째, 가족간의 관계는 지속적(영원한) 관계이다. 서로의 관계의 친밀성 여부에 따라 가족이 되었다가 다시 그 관계가 없어지는 한시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까지 연장되는 영원한 관계이다. 셋째, 진정한 가족관계는 가족 상호간에 책임지는 사랑(accountability)의 관계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책임지는 관계이다. 이러한 책임성은 모든 삶의 영역에 걸치며 따라서 가족은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구성원 상호간에 자기 희생적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영적 가족관계는 결국 그 본질이 영적 사랑공동체라는 뜻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간의 사랑이 통용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마가의 다락방에서 자신이 떠난 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룰 것을 당부하시는 자리에서 "새 계명"을 당부하셨다(요 13:34,35). 으 새 계명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되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수준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체포를 당하시고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될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주님은 뒤에 남을 제자들이 사랑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자신의 현존이 계속 지상에 이루어질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사랑공동체로서의 교회본질 구현이 복음전도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결정적 전략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셨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는 육체적 가족관계 이상의 사랑과 헌신으로 그 가족 됨을 실현하는 일을 필연적인 과제로 안고 있다. 교회의 질적 성장이란 결과적으로 이러한 본질의 구체적 실현을 의미하며 이러한 본질 구현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교회의 본질과 관계되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 본질구현과 관계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생각하게 된다. 교회 곧 하나님의 집을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이며 진리를 세우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건물에서 기초와 기둥이 부실하면 그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따라서 더 이상 세상사람들이 그 건물을 볼 수 없게 된다. 건물이 우뚝 세워져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려면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튼튼한 건물에 있어서 기초와 기둥은 결정적 요건인 것이다. 아무리 외관이 미려하고 찬란하여도 기초와 기둥이 허술하면 건물 그 자체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라는 기초와 기둥이 튼튼해야만 진리가 세워지며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 본질이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며 교회다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이와 같이 교회 본질 구현과 밀접히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결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5) 교회성장의 본질적 기초로서의 제자도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본질과 동시에 그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 구성원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본질적 측면을 가진다. 개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제자도에로의 부르심은 일차적으로 개별적인 것이다. 집단 개종 같은 형태가 아니라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제자도의 삶으로 부르셨다는 면에서 개인적인 제자도(personal discipleship)가 교회의 기초가 된다. 공동체란 개개인의 영적 성정과 발전의 응집이라는 차원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해 개인적인 제자도는 근본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을 기초로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들이 되도록 해야한다. 주님의 지상명령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대로 개개 그리스도인을 충성스러운 제자로 성장시키는 일이 교회 본질 구현에 결정적이다. 그리스도께로 향한 헌신과 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그분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서 자라가는 일이 계속될 때만 공동체로서의 전체 교회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면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교회공동체가 온전한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의 주님께 대한 허신과 사랑, 곧 제자로서의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절대적으로 요청한다. 이것이 안 될 경우 공동체는 구성원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게되며 심할 경우 결과적으로 그 공동체가 와해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 Heinrich Arnold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살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교회 내부 생활 안에서 기생충과 같은 존 재가 될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남보다 더 많은 수입을 남긴다하더라도 그 와 같은 노고는 나머지 공동체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만 될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 람에게 열린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제자생활의 도전을 받아들 여 함께 머물고자 하난 사람들을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는 산산조각 이 날 것입니다.
II. 교회의 질적 성장의 임상적 증거들
우리는 앞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으로서 신학적으로 교회 본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 성장의 현상적 증거들을 연구하기 위하여 방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독일의 Schwartz가 제시한 자연적 교회성장 연구 프로잭트의 결과가 건강한 교회를 위한 질적 특성으로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제시된 바 있다:
1.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사역을 위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게 기회와 권한을 부여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2. 은사 중심적 사역: 교인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돕고 자신에게 맞는 은사를 따라 사역할 수 있도록 조정해준다
3. 열정적 영성: 교인들이 열정적으로 불붙어 있으며 기쁨과 열정으로 헌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4. 기능적 조직: 교회가 스스로 움직이는 자생적 조직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교회 조직을 평가, 개선해 나간다
5. 영감있는 예배: 관념적인 성령의 임재가 아니라 성령께서 진정으로 역사하실 때 예배의 분위기와 예배 절차에 구체적 변화가 일어나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게 느낀다
6. 전인적 소그룹: 소그룹이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시키 는 전인적(holistic) 소그룹으로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해있는 개인적 문제나 질문들을 내어놓는다
7. 필요 중심적 전도: 교회가 전도의 초점을 불신자들이 당면한 문제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맞춘다
8. 사랑의 관계: 교회의 사랑 표현 능력과 장기간의 성장 잠재력 간에는 매우 중요한 연관 이 있다.
이와 같은 임상적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게도 1993년까지 연구하여 저술한 Ken Hemphill 박사의 안디옥 이팩트에서 제시하는 건강한 교회를 위한 8가지 원리와 약간의 표현이 다를뿐 거의 동일한 원리들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교회의 질적 성장을 논할 때 Schwartz가 제시한 8가지 원리가 그 타당성을 뒷받침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Schwartz의 연구는 1994년으로부터 1996년 기간동안 이루어졌으며 Hemphill 박사의 연구는 1993년까지 이루어졌으며 1994년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 두 연구 사이에는 실질적인 참고나 관련이 없다고 여겨진다.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8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영적 능력이 충만한 교회
2. 역동적인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3.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
4. 목회 지도력이 확고한 교회
5. 영적 가족관계가 이루어진 교회
6. 하나님 주신 비전이 뚜렷한 교회
7. 복음 전도적 열정이 타오르는 교회
8. 성도들을 사역자로 무장시키는 교회
이상의 두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교회의 질적 성장의 기준이 어떠한 것인지를 임상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Hemphill 박사가 제시한 원리들은 전혀 임상학적 접근이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Schwartz가 연구한 임상적 자료들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르로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여기서 제시된 원리들이 교회의 질적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본다. 또한 앞에서 신학적으로 살펴 본 교회 본질에 관한 설명과도 상당부분 겹친다는 면에서도 의미있는 연구결과라 믿어진다.
이렇듯 교회의 질적 성장은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정도를 의미하며 교회 전반에 걸친 성장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논의를 교회의 질적 성장으로부터 양적 성장으로 옮기도록 한다.
111.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상반성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사용되는 교회성장이라는 용어는 주로 양적 성장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질적 성장을 경히 다루거나 관심을 적극적으로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문제를 느끼는 것이지 양적 성장은 불필요하거나 비성서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수많은 경우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양적 성장과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음을 기록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후 기독교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단기간 내에 이루었음이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있었던 그 날에만 3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이 이루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행 2:40).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기점으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으며"(행 2:47),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고"(행 4: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으며(행 5: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으며"(행 6:1),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행 6:7).
바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의 경우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속도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보여준다. 바울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도에 복종케 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성과 도시에서 그의 사역은 온 성을 소동케 했으며 온 도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각 도시와 성에서 믿는 사람들을 많이 얻음으로써 각 곳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전도한 지역은 주로 이방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급속도로 불어나는 교인들에 비하여 성경을 알거나 그리스도를 집적 만나본 적이 있는 일차적 목격자들을 거의 두지 못했던 지역들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방지역의 개종자들은 충분한 성경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서 복음의 역사는 계속되었다는 말이다.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과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속담에 "꿩 잡는게 매"라는 말처럼 결과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만연한 듯 싶다. 물론 양적 성장에 따라 질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은 결코 무시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따라 순종한 결과가 아닌 지극히 인위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양적 성장에의 강조는 결과적으로 교회 속에 비기독교적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본질을 훼손하는 역기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맹신과 광신이 보편화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는 우려를 부식시키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으며 오늘날에 있어서 지난 50년간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와 그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양적 성장을 거듭한 중국교회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잘 나타나고 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될 당시 불과 834,000명 정도로 추산되던 기독교인의 숫자가 불과 30여년만인 1980년, 즉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개방이 되었을 때까지의 30여 년 간 그 혹독한 공산치하의 탄압 속에서 그 작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 무려 5,000만명으로 늘어나는 경이로운 양적 성장을 했음은 이미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는 1억을 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성경지식의 부족과 신학 부재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앙이 미신적인 양상을 띄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단들의 거짓 교리에 쉽게 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도 지난 30여 년 간 기록적인 양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빛과 소금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라는 면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각종 사고와 사건 뒤에 기독교인들이 그 악역을 담당하는 모습 속에 양적 성장의 이면에 가리어진 질적 성장의 결여가 가져온 병폐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교회성장을 논함에 있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쉽게 결합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반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반대로 교회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다보면 양적 성장의 둔화를 경험하게 되는다는 임상적 결과들로 말미암아 이 양자의 적절한 조화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대립적 상황을 극복하고 승화시킴으로써 상호보완적인 역학관계를 이해함이 필요하다.
IV.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상호보완성
성경의 첫 모델인 예루살렘 교회는 이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예를 제시한다고 믿어진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열 두 제자들은 우선 유대인으로서 전통적인 율법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받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 두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율법을 대부분 암송할 만큼 토라(Torah)에 통달한 교육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출신성분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평민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출생 때부터 율법을 철저히 교육받은 경험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3년 반 동안 제자로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식과 이해수준에 배운 말씀들을 실제 생활이라는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경험함으로써 말씀의 체질화가 된 사람들이었다.
제자로서 이러한 질적 성장의 경험들이 그들로 하여금 양적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시는 일에 있어서 거의 무제한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이 그러하듯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왔을 때 즉각적으로 그들을 날마다 가르치며 제자로서 훈련시키는 일에 돌입했다. 이 점에 관하여 성경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은 날마다 집에 모여서 교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제와 기도로 제자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의 결과는 그 모든 교인들이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 결과로 엄청난 수의 개종자들을 얻는 양적 성장의 결과로 나타났다.
교회의 질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양적 성장을 가져와야만 바르게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직 충분한 성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충분치 못한 성장은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적지 않은 교회들의 경우 이 양자간의 불균형과 부조화로 말미암아 한쪽으로 치우쳐 다른 한 쪽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질적 성장에 집착하고 양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어떤 이는 코이노니아 질병(koinonitis)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양적 성장에 집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놓치는 경우는 그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 미신이나 맹신 또는 단순한 기복신앙에 불과할 수 있다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목회와 전도를 강조하는 목회 사이에 있는 긴장과 근원적으로 동일한 문제이다.
교회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의 이상적인 관계는 양자가 상호보완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즉 교회의 질적 성장은 궁극적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낳으며 또한 동시에 양적 성장은 교인들의 열성과 신앙의 질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다줌으로써 전체적으로 교회가 질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양자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성장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V. 셀 교회에서의 질적 측면과 양적 측면의 조화
셀 교회에 있어서도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근본적으로 셀 교회에 쏟는 관심의 원인들이 침체되거나 정체된 교회의 양적 성장을 다시 불붙게 하려는데 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셀 교회들의 경우 한결같이 셀 교회 운동은 교회성장 운동이 아니라 교회갱신 운동이며 교회혁신운동이라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하여 국제 터치 사역(Touch International) William Beckhem은 오늘날의 셀 교회운동을 제2의 종교개혁 운동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연유로 셀 교회로 하여금 셀 교회가 되게 하는 가장 근본요소가 되는 셀 모델이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 첫 번째 모델이 열린 형태의 셀(open type cell)이며 두 번째 모델이 닫힌 형태의 셀(closed type)이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셀 모델들은 각각 장점들과 제한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열린 형태의 셀 모델
열린 형태의 셀은 일차적으로 그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교회의 정회원(membership)으로만 한정짓지 않고 불신자들까지도 셀 회원이 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열어둔 모델을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도 대상자를 발견하면 어제든지 셀 모임으로 인도하여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손꼽을 수 있다.
첫째,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셀 모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방성은 교회 내에 불필요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다. 둘째, 먼저 믿는 사람들의 삶과 교제를 참여한 불신자들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본을 영적으로 어리거나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음으로써 영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열린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의 경우 먼저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삶으로부터 나오는 삶의 모습이 자신들과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신자들간의 깊이있는 교제가 셀 모임 속에 있는 불신자들이나 새신자들로 말미암아 깊이있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셋째, 영적 가족으로서의 셀 경험이 어려워지는 점 등이다.
이상과 같은 장점과 제한점들을 고려할 때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질적 성장보다는 오히려 양적 성장에다 그 방향성을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전도 대상자가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접촉한 뒤 자신들이 영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 셀 모임에 그들을 초청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모델인 것이다.
2. 닫힌 형태의 셀 모델
한편 열린 형태의 셀 모델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은 셀의 구성원을 철저히 교회의 정회원으로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한다. 따라서 불신자나 교회의 회원이 아직 되지 못한 사람들은 셀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회원권을 가진 먼저 믿은 사람들이 영적 가족으로서의 경험이나 각자의 신앙의 깊은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해결받을 수 있게 해준다. 닫힌 형태의 셀 모델이 가지는 장점으로는 첫째, 회원간의 사랑의 교제와 나눔이 깊이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나눔은 단순히 영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나눔까지를 포함한다. 둘째, 이러한 나눔은 결과적으로 셀 구성원간의 영적 가족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교회의 본질로서의 가족됨은 교회본질 구현의 한 중요한 측면으로서 이는 교회의 질적 성장을 위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에 비하여 닫힌 형태의 셀이 가지는 제한점으로는 첫째, 교회 내의 어떤 불신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아직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자신을 먼저 믿은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제한점이 있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들만의 교제권에 빠져들어 그 자체만을 즐기려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열린 형태의 셀 모델은 확실히 전도지향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닫힌 셀 모델에 비하여 양적 성장 지향적 모델이다. 이 모델은 단기적으로 볼 때, 숫적 증가가 훨씬 빠르게 이루어지며 빠른 시간 안에 셀들이 배가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배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셀을 건강하지 못한 셀로 보고 해체시키거나 재구조화 한다. 그러나 닫힌 셀 모델의 경우는 보다 긴 시간동안 진정한 영적 가족관계가 형성되도록 기다리며 보다 실제적이면서도 영적 가족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질적 성장 지향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양자간에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긴장이라는 역학관계가 형성되어있다.
3.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이루는 셀 모델
셀은 그 자체가 교회 속의 작은 교회로서 영적 유기체이며 생명체이다. 따라서 셀은 공동체로서의 본질 곧 그 자체가 생명체로서의 질적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셀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적적히 이룰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셀 모델 개발을 위해 지난 수년간 전세계의 셀 교회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형태의 모델들을 개발해왔다. 그중 첫 번째 형태가 목산침례교회이다
1) 목산침례교회의 모델--교회학교와 셀의 혼합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을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혼합이나 절충형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닫힌 형태의 셀이 자주 비회원인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을 자신들의 셀로 초청하여 교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구조와 제도 속에서 정기적으로 셀에 속한 사람들과 아직 셀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면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신자 또는 비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교회가 목산침례교회이다. 목산 교회는 전체 교인들이 매주 주일에 주일학교 반에 소속되어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 성경공부반은 교회의 정회원으로서 셀 구성원들로 핵심 반원이 중심이 되어 아직 회원이 되지 않은 교인들을 같은 반에 편성함으로써 한 셀의 구성원들은 매주 성경공부 시간에 자신들의 반에서 만나는 비회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제함으로써 전도의 기회 또는 교회의 정회원이 되어 셀 맴버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섬기는 기회를 가진다. 이러한 모델은 이를테면 주일학교 반 속에 셀 그룹이 존속하는 형태인 것이다.
2) 버클랜드 침례교회 모델--셀 스탶 모델
지난 3년간 버클랜드 교회는 열린 형태의 셀로 전환하면서 셀 스탶(Staff) 모임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한 셀 속에 닫힌 셀과 열린 셀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는 모델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10명의 셀 그룹원들이 있을 경우 그 셀에는 목자, 예비목자, 회계, 찬양인도자 등 5,6명의 스탶들이 핵심 그룹원으로서 별도의 모임을 가지는데 이 모임은 철저히 닫힌 형태의 셀을 유지하여 삶의 깊은 것들을 나누는 곳이다. 하지만 새신자나 불신들을 모두 포함한 열린 셀을 또 다른 요일에 가짐으로써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를 따라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유형의 모델을 온두라스의 데구치갈파에 있는 '살아있는 사랑의 교회'(Love Alive Church)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한다. 이 교회의 1,000여개의 셀들중 90%의 셀들이 그 안에 "리더 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리더, 예비리더, 재무담당, 그리고 특정한 책임을 가지지 않는 두 명의 회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매주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셀의 운영 전반에 걸친 논의를 비롯하여 깊이있는 교제를 나누며 셀의 핵심요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러한 혼합형 셀 모델은 지난 10년 동안 보다 광범하게 개발되어왔다. 그 증거로 엘살바도르에 위치한 엘림교회(Elim Church)의 경우에도 동일한 형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놀라운 질적, 양적 성장을 경험해오고 있다. 이 교회는 셀 그룹 속에 리더, 보조리더, 장소제공자, 재무담당, 비서, 아동담당교사, 그리고 특정한 임무를 맡지 않은 소수 회원들로 핵심 그룹 팀을 이루고 이들이 한 팀으로 셀 그룹을 인도하는 형태를 개발한 것이다.
나오는 글
열린 형태의 셀과 닫힌 형태의 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국제은사교회(International Charismatic Missions)는 지난 10년간 나름대로의 셀 모델을 개발하여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다. 1990년 당시 200명의 교인들이 70개의 셀을 이루어 시작된 교회가 1998년 6월말 현재로 무려 24,000개의 셀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2000년 말까지 50,000개의 셀에 500,000만명의 교인들을 예상하는 대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단순한 양적 성장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강력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 회가 개발한 모델을 G-12라 부른다. 이 모델은 한 사람의 셀 리더가 12명을 셀 멤버로 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그들 각자로 하여금 그들의 또 다른 셀을 개척하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그들의 셀을 가지게 될 때 최초의 셀 리더는 그 실 모임을 중단하고 그때로부터는 새롭게 세워진 12명의 리더들을 계속적으로 돕되 평생을 돕는 관계로 발전한다. 따라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은 이러한 평생관계 수립을 통하여 동시적으로 충족되는 체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교히의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은 결코 쉬운 결혼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셀 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인 것이다. 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있어서 이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다면 온전한 의미의 교회본질 회복은 구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부단한 노력은 기필코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복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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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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