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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선진들(11)-모세

하나님아들 2013. 1. 10. 16:30

믿음의 선진들(11)-모세

                                                  김 영익 목사

히11:23-28

모세는 신비한 사람입니다. 출생과정도 신비롭고, 소명도 신비합니다.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일도, 참 신비로운 드라마입니다. 120세로 죽을 때, 그의 눈은 흐리지 않았습니다. 비스가스 산에서 죽었는데, 그의 시체는 하나님께서 신비하게 감추어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신33:1), ‘여호와의 종’(신34:5), ‘하나님이 대면하여 아시던 자’(신34:10), 즉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삶을 살았던 비밀은 무엇인가? 믿음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가?

 

1. 거절할 줄 아는 믿음

거절할 것은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아는 믿음이였습니다.

본문 히 11장 24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모세는 장설하녀 바로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라고 했습니다 .

이 말씀은 모세의 믿음이 거절해야 될 것은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아는 결단적 믿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바로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거절1(세상의 권세)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왕자로 살 것인지 노예로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2) 거절2(세상의 즐거움)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약 4:4) 1)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3)거절3(세상의 제물)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히 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러면 왜 모세는 왕의 자리 , 세상의 명예와 부귀의 자리 , 심지어는 모정의 자리까지도 거절한 것입니까 ? 그것은 모세가 애굽의 제왕이 되어 불신과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데 방해가 된다면 단호히 거절하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총리가 되었다. 제법 성공하게 되었다. 이제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는데,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젊은 청년의 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절하면 자기가 높이 쌓아 올린 성공이,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의 옷을 잡고 늘어질 때, 그는 “안 돼요, 어찌 이 큰 죄악을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나요!” 그러나 많은 교인이, 세상 문화 앞에서 “아니요”라고 말해야 때에, 말하지 못하고 타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 신상 앞에서, 절하라고 강요받았을 때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며, 왕이여! 우리를 풀무 불에 던질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우리는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단3:17-18)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는 벌써 거절되어야 할 것들이 거절되지 못하고 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과연 그것들 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욕심이나, 명예욕이나, 물질욕이나, 권세욕 입니까 ?

바라기는 이 시간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모세처럼 이러한 것들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결단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거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yes와 no의 한계를 분명히 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손해 보지 않고 더 큰 축복으로 이끄십니다. 거절하는 믿음이 정말 귀한 신앙입니다. 이런 귀한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어떤 신학자는 정의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했다.

복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하는 복, 또 하나는 위대해지는 복입니다. 사람들은 성공이 남보다 잘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성공에 따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예수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복을 받으려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 위대해지는 복을 주셨습니다. 성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해서, 승리함을 말하지만, 위대함은 예수님과 비교해서, 예수님을 닮아 감을 말합니다. 성공이 다른 사람과 싸워 이겼다고 말한다면, 위대함은 자기와 싸워서 이김입니다.

 

성공은 세상을 얻는 일이라면, 위대해지는 일은 예수님을 얻는 일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주님이 위대해 지기를 원하신다고 깨닫기 바랍니다.

 

2. 버릴 줄 아는 믿음

‘모세’의 뜻이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아기 때 나일 강에 ‘던짐’을 받았는데, 바로의 공주에 의해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런대 ‘던짐’과 ‘건짐’을 받은 모세가, 나중에는 ‘던짐’을 받은 자기 백성을 ‘건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건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던짐’과 ‘건짐’을 받는 경험을 하여야 합니다.

애굽의 재물을 버리고 더 큰 보화 (행14:22, 롬8:18)를 취하였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애굽에 있는 어떤 보화와도 비길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고난 자체가 보화와 비교될 수는 없습니다.

죄악으로 더불어 잠시 낙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택했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는 세상의 연락보다는 믿음을 위한 고난을 선택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어떻게 고난을 더 좋아하여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을 택할 수 있었습니까 ?

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자처하였기 때문입니다.

② 상금이 있는 고난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 5장 10절-12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짖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큽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③ 자신의 고난이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 명예, 세상 낙, 세상 재물을 다 버리고 고의로 능욕을 받았습니다.

 

▶ “내려놓음” 저자 이용규 선교사는 하버드에서 공부한 재원으로 얼마든지 세상의 명예와 부를 누리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몽골의 선교사로 살며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명예와 부를 내려놓음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선교 사역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때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들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몽골 선교사로 헌신한 이용규 선교사님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세상의 낙을 버리고 고난받는 삶을 택하는 것, 세상의 보화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를 받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늘의 상급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영원하고 하늘의 상급은 이 땅의 모든 낙과 그 어떤 보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영원합니다.

 

성경은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을 ‘잠시, a short time’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천하의 바로의 권세를 누리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잠시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심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7,80년 인생의 영화도 지내놓고 나면 화살같이 금방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청년의 때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이란 쾌락은 다 즐겨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하며 성경기자들 중 가장 허무한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우리 인생은 풀의 꽃과 같이 짧습니다. 모든 인생의 낙을 다 즐겨보고 남은 시간에 의미있는 일을 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죄의 낙을 즐기며 살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 것인가?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가? 넓은 길로 갈 것인가? 좁은 길로 갈 것인가? 세상 잔재미를 즐기며 적당히 신앙생활 할 것인가? 분명하게 훈련받고 제자의 삶을 살 것인가?

모세는 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세상 락을 버렸습니다,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진리의 길을 택했습니다.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좁을 길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의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믿음으로 세상을 버렸기에 장차 출애굽의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세와 같은 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사명을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주님이 나를 따르라 했던 부자 청년은 버리지 못해 주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버리고 주를 따랐던 것입니다.

마19:16-22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19:28-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우리도 버릴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버림의 미학’ 의 글에서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빛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빛나고,

자신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존경받으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원치 않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고,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있고,

대항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에게 맞서지 않는다.“ -노자-

▶ 버림의 기술

버리는 연습은 가장 큰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얻기보다 백 배 천 배 힘든 것이 버리는 것인즉 버림에 미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최후에 버리는 것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버릴 때쯤 모든 것이 다시 열릴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열리는 것은 모두 버린 후입니다.

항상 내 것이 아닌 것은 취하고 싶은 것이며 내 것은 이미 취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이미 내 것이 되었거늘, 내 것이 아니라는 그 생각이 사람을 초조하고 서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얻는 것만이 아닌 잃는 것도 때로는 해야 하는 일이며, 잃되 발전적으로 잃어야 하는 것입니다.

잃고 퇴보하면 얻을 것이 없으나, 잃고 전진하면 두 발자국을 나간 것과 같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또한 기술인 것입니다.

▶ 수도의 표어 : '비우면 채워지고 버리면 얻게 된다.’

▣ 버려라 :

[살전1:9]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전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딤전4: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딛2: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히12: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약1:21]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3. 떠날 줄 아는 믿음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행7:23, 출 2:15)

모세가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것 같이 믿었기 때문입니다(27).

2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는 후에 노예의 신분으로 바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내어 보낼 것을 당당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과거의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계급도 직분도 없는 노예 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하였습니다. 천하의 바로와 일개 촌부의 싸움! 이것은 너무도 무모한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과감하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라운드의 대 격전 끝에 200만 동족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진군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손에 무기하나 들지 않고 맨손으로 애굽에서 자기 동족들을 완벽하게 탈출해 내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처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27b절 말씀처럼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참기 어려운 현실을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출애굽이라는 대과업을 완수하고 가나안 시대를 여는 새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 듣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

▣ 떠나라 :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롬16:17]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살후3:6]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겔14:6]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겔33:11]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4. 구원의 방법을 아는 믿음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함이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유월절과 피 뿌림을 정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린 양을 준비시키고, 피를 뿌려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하는 데에도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믿음을 존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장자를 멸하는 저주에서 안전하게 지켜진 것입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양의 피를 뿌려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백성들에게 구원의 도리를 심었습니다. 그랬을 때 마침내 바로는 장자재앙을 통해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 한 사람 다친 사람 없이 모두 건강하게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였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에 그 무엇도 더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한 가지를 예비하였으니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이것에 그 무엇도 더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 들일 때 우리는 그 보혈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습니다(28).

저자는 출애굽의 역사 등 절정인 유월절과 피 뿌리는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룬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로는 10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여도 여전히 마음이 강팍하여 이스라엘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멸하시겠다는 장자재앙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가 이 재앙으로도 과연 굴복할 것인가 믿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장자재앙을 면하기 위하여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에 바르게 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근성에 깊이 찌들어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애굽에 안주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어찌하든지 출애굽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그들에게 영적 소원을 심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믿는 믿음을 심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일을 믿음으로 이루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출애굽의 새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유월절은 구원과 심판의 역사입니다. 어린 양의 피 뿌림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그림자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구원의 방법을 따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죄와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의 보배 피로 죄와 사단의 권세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새 역사 창조입니다.

아무리 이론이 번질하고 가르침이 심오하다 하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변론일 뿐입니다.

모세는 바로 이 구원의 길을 안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시길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요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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