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2서 강해
내용 목차
1장: 진리 안에서 행함
요한이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이 점에 대하여 초대 교회의 전통은 분명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264년경 사망), 및 키프리안(258년 사망)은 본서신을 사도 요한의 서신으로 인용하였다. 본서신은 아마 주후 85-9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본서신의 특징적 주제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다. 아울러 본서신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교리를 저버린 이단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밝히 교훈하였다(7-11절).
1장: 진리 안에서 행함
1-3절, 문안 인사
본문은 문안 인사인데, 그 가운데 진리 안에서의 성도의 사랑과 교제에 대한 귀한 사실이 증거되어 있다.
[1, 2]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한다. '장로'라는 말은 나이 든 노인을 암시하는 말로서 사도라는 말보다 더 친근감이 있는 표현일 것이다. 본서신은 사도 요한의 노년에 쓴 것 같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불렀다(벧전 5:1).
본서신의 수신자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다. 구원은 곧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표현을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부녀'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4절에 '너의'라는 단수 인칭대명사와 5절의 '부녀여'라는 단수 호격 명사와 13절의 '네'와 '네게'라는 단수 인칭대명사들은 한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은 하나의 작은 교회를 형성한다고도 볼 수 있다.
본문에는 '진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1절의 '내가 참으로'라는 말도 영어성경들처럼 '내가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할 수 있다. 사도는 자신을 '진리 안에' 있는 자로 표현하며 다른 성도들을 '진리를 아는 자들'로 표현한다. 또 그는 이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6에서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바울은 에베소서 1:13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 표현하였다. 진리의 내용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그를 믿으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는다는 약속이다.
성도는 진리를 아는 자들이며 이 진리가 그들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 진리는 그들 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그의 진리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는 것이 곧 구원이며 영생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이 진리 안에서, 이 진리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도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을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또 그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한다'고 말하며, 그 까닭은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리가 우리를 사랑의 줄로 묶었다. 진리가 우리를 한가족과 같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였다. 교회는 세상의 이익 집단과 다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이다.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집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대가족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그의 형제요 자매이다(마 12:50). 성도의 사랑의 교제에 교회의 교회다운 점이 있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그들에게 기원할 때에도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진리로 구원을 얻었고 사랑으로 그 진리를 실천한다. 우리가 진리를 우리 속에 굳게 붙잡고 믿고 확신할 때 그리고 그 진리 때문에 구원받은 다른 이들을 힘써 사랑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더욱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는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진리, 우리가 믿은 진리를 가장 귀히 여기며 확신하고 사랑하고 널리 전파하자. 그 진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성경 말씀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게 진리를 받고 진리로 구원받은 다른 이들을 사랑하자. 우리의 사랑의 이유는 오직 진리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 자들이 된 것이다. 천국은 성도들이 참된 사랑으로 사랑하며 영원히 살 곳이다. 천국에 들어갈 자들은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하고,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더욱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아 누릴 가장 귀한 복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자들이 되자.
4-6절, 진리 안에서 행함
본문은 신자가 진리 안에서 행함을 보고 기뻐하는 사도 요한의 기쁨을 증거하면서 우리 모두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한다. 또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 다른 말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진리와 사랑은 모든 성도에게 필수적인 두 요소이다.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본서신은 앞에서 말한 대로 사도 요한이 믿는 여성도에게 보낸 개인적 서신이다. 그러나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은 작은 가정 교회를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본서신의 교훈은 한 개인적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 여성도의 자녀들 중에는 진리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의 모든 자녀들이 다 잘 믿은 것 같지는 않다. '너의 자녀 중에'라는 말은 그 자녀들 중 일부가 잘 믿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부모가 잘 믿는다고 자녀들이 자동적으로 잘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진리에 행한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 행한다, 진리대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란 10계명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십계명대로,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을 뜻한다.
사도는 그 여성도의 자녀들 중 어떤 이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태도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도록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지 안 행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도는 그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그렇다. 죄인들의 심령 속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기쁨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심히 큰 기쁨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이 주 예수님을 믿는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큰 기쁨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자신의 기쁨과 자랑이라고 자주 표현하였다(빌 4:1; 살전 2:19, 20). 더욱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 진리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보는 것은 목사와 성도들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전파된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이 되지만(빌 3:18), 그것을 받아 그대로 사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다.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사도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강조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강조는 언제나 필요하고 유익하다. 본서신에 나타난 대로, 그 여성도가 처한 형편은 이단자들의 미혹이 있는 형편이었다. 이단과 오류가 교회 안팎과 성도들 주위에 많이 들어와 있을 때 성도들은 사랑이 식어지기 쉬울 것이다. 주께서도 당신의 재림 직전의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다(마 24:12).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진리를 굳게 붙들고 보수하며 이단과 오류를 배격하는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 간에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는 일은 성도에게 새삼스런 계명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믿기 시작할 때부터 배운 기본적인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새 계명으로 남겨 주셨고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우리가 그의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 35). 참 교회는 예수 믿어 구원받은 후 서로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의 필수적인 두 요소를 강조한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랑을 하나님의 계명들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려 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십계명을 범하거나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계명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우리가 믿기 시작할 때부터 들은 바와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은 '사랑으로 행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뜻이다. 계명을 순종함과 서로 사랑함, 진리 안에서 행함과 서로 사랑함은 별개의 일이 아니고 둘 다 필요하다. 그것은 둘 다 필수적이다. 여기에 사도 요한의 강조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4절부터 6절까지는 우리에게 몇 가지 기본적 사실을 교훈한다. 첫째로,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 즉 진리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어야 한다.
둘째로, 진리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힘써 읽고 배우며 그대로 실천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것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다.
셋째로, 진리대로 행하는 것은 또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한 내용이 사랑이다. 주께서는 인간 관계에 관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서로 사랑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셨다. 우리는 계명을 순종함과 서로 사랑함을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고 둘 다 지켜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진리와 사랑을 둘 다 지켜야 한다. 이단 사설이 난무하는 말세에 우리는 성경적 신앙의 옛길을 보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심령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오류와 악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하지만, 믿고 순종하는 이들 간에는 진실한 성도의 교제와 사랑을 힘써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7-13절, 미혹하는 자를 물리치라
본문은 미혹하는 자 곧 이단의 정체를 말하고 우리가 바른 교훈 안에 거하고 이단자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말한다.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미혹하는 자는 속이는 자라는 뜻으로 이단자를 가리킨다. 이단은 마귀의 활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 말씀을 빼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이다(갈 1:8, 9; 딤후 2:17, 18). 벌써 사도 시대에 많은 이단자들이 교회 안팎에 나타났다. 사도는 이제 그들의 정체에 대해 언급한다.
본절에 언급된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다. '임하심을'이라는 원어는 현재분사이지만 요한일서 4:2, 3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라고 불리우신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다(요 1:1). 그가 때가 되어 사람이 되신 것이었다.
본래 신적 인격 즉 하나님이셨던 그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렇다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두 인격이 아니시다. 그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본래 신적 인격이셨던 그가 인간의 본질을 취하셨다. 그럼으로써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 되셨다. 신성과 인성, 신적 본질과 인적 본질이 결합되셨으나 두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문답은 진술하기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救贖者)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지만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들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분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시다"라고 하였다. 이 지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요 성경적 지식이다. 이 지식을 버린 목사들은 다 미혹하는 이단들이다.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우리의 일한 것'이란 사도들이 행한 전도의 일과 그로 인해 받은 구원을 가리킬 것이다. 전통사본에는,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도록 하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여기에 '온전한 상'은 전도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을 뜻한다. 고린도전서 3:5-8,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사도 요한은 편지를 받는 그 여성도와 그의 자녀들이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자신의 전도 사역이 헛되지 않고 마지막 날에 주께 상을 얻는 일이 되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지내쳐'라는 말이 전통사본에는 '이탈하여' 혹은 '범죄하여'라는 말(파라바이노)로 되어 있다.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은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 즉 성육신의 교리 안에 거하지 않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 혹은 교리 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구주이시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질 때,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둘 다 영접하고 섬기는 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를 부정하는 자이다. 요한일서에서도 사도는 이 점을 강조하였다. 요한일서 2:22, 23,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4:1-3,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을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해야 한다.
[10, 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이 교훈[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교리]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이단자를 가리킨다. 사도는 '이런 자는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말한다. 이단들은 사탄에게 속하기 때문에 참 교회가 그들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로마서 16:17, 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너희가 배운 교리=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 적용해보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이단은 교황을 머리로 한 로마 천주교회의 사상과 조직체이다. 또한 현 시대에 가장 심각한 이단은 기독교계 전체를 부패시킨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용납하는 자유주의 혹은 포용주의 교회들은 잘못이다. 또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배격하지 않는 교회연합운동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들과 성도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배격해야 하고 그들을 용납하는 교회들을 책망해야 한다.
[12, 13]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결론적으로,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미혹하는 자들인 이단을 분별해야 한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둘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파악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신앙을 이탈한 한 것이 사탄의 미혹이다. 셋째로, 우리는 미혹하는 이단자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집에 들이거나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악한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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