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 군인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자는 내용의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군인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항명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야권은 비상계엄 때 군인들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입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배경에 이런 법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시 등 긴급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군의 ‘상명하복’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군 안팎에서도 “명령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됐다. 모두 더불어민주당과 기본소득당 등 야당 의원이 발의한 것이다. 엄격한 상명하복 문화 탓에 군인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만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군인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나 처벌을 피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개정안을 내면서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권리를 명문화해 군 조직이 민주적 가치를 기반으로 운영되도록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이나 검찰, 국가정보원 등은 관련 법령에 상관의 지휘·감독에 이견이 있을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만 군인의 경우 이런 조항이 없어 형평성 보장 차원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유사시 전쟁을 수행해야 할 군 조직의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별 군인이 명령의 위법성을 판단토록 하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군 출신인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발포하라’는 명령에 군인들이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쏘겠다’고 한다면 군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달 19일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사실상 그 짧은 시간에 제한된 정보를 갖고 (군인에게) 이게 위헌·위법인지를 보고 판단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대한 국회 국방위 검토 보고서에도 ‘위법한 명령인지 여부는 객관적이고 명백하지 않아 수명자(명을 받는 군인)가 자의적 해석을 할 가능성이 있고, 적법한 명령조차 거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담겼다.
국방부는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명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게 군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군 조직에 어떤 명령이 합법적인지를 판단할 사람은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라며 “상급자가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도록 명령 시 어떤 구성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입법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