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게 대략 300만~350만년 전이라고 한다. 기원전 4000년 문명을 세운 뒤 도시, 국가, 제국을 발전시켰다. 20세기에 하늘과 우주로 진출했고, 21세기 들어 인간과 맞먹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모든 성과가 인류와 함께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십 분이란다.
어떻게? 핵전쟁으로.
미국의 유명 탐사 전문기자인 저자가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에서 주장하는 바다.
마침 지난달 말 미국 핵과학자 협회보가 ‘지구종말시계(DoomsdayClock)’의 초침을 자정 89초 전으로 맞췄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접한 이 책은 섬뜩한 묵시록으로 보였다.
자정은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89초 전은 1947년 처음 시계가 움직인 뒤 가장 자정에 가깝다.
건물의 모습을 따서 흔히 펜타곤(오각형)이라고 불리는 미국 국방부.
2022년 공중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전략공군사령부가 비밀회의에서 핵전쟁 계획을 세운 건 1960년의 일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 5분의 1인 6억 명을 죽음으로 몰 수 있는데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은 평균 매일 3.5기씩 핵탄두를 만들어내 1967년 3만 1255기를 보유했다. 100기가 20억 명을 사라지게 할 분량이니, 미국 혼자 세상을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셈이었다.
이 책이 그린 핵전쟁 시나리오에서 멸망의 발단은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을 미국 워싱턴DC를 향해 발사하는 것.
저자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비롯한 당국자와 정부 기관이 핵전쟁 때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꼼꼼하게 보여준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15년 동안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 리언 패네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수십 명을 인터뷰했고, 최근 해제된 기밀을 포함한 방대한 문서를 독파한 저자다.
미국에서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대통령뿐.
핵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핵 반격을 결정하기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분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적에게 기습당하지 않겠다며 핵 공격 신호를 포착하면 바로 쏘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onWarning)’ 원칙을 세웠으니
그보다 더 짧을 수 있다.
저자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갖춰 놓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은 무용지물이다.
원래 “총알로 총알을 쏘아 맞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게MD. 북한ICBM에 대한 요격이 실패하자 미국은 핵으로 반격하게 된다.
북미에서 아시아로 가는 지름길이 북극.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탐낸다.
이 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북극 위로 날아가는 미국의 핵미사일을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핵 공격으로 오해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때부터 우발적 충돌을 막고자 핫라인을 이어놨다.
하지만 2022년 11월 러시아의 미사일이 나토 동맹국인 폴란드를 타격했다는 오보가 나온 뒤 이를 확인하고자 미국이 핫라인을 가동했지만, 24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
결국 러시아도 반격한다.
핵으로. 최초의 핵 공격으로 최소 5억 명이 목숨을 잃는다.
책은 이들이 어떻게 사망하는지 자세히 묘사한다.
너무 참혹해 해당 구절을 건너뛰었다.
살아남는 사람도 결코 운이 좋은 게 아니다.
부상과 화상, 그리고 방사능으로 “생존자들이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핵전쟁은 두 시간도 채 안 돼 끝나지만,
북반구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고 낙진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핵폭발 후 하늘로 떠오른 재와 연기가 태양을 가려 지구는 핵겨울에 접어든다.
저자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등TV프로그램 작가 겸 제작자이기도 하다.
모든 과정이 테크노 스릴러 못잖게 긴박하게 돌아간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외교안보 당국자의 추천 덕분.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를 아마존으로 주문해 읽었다는 그는 “미국의 핵전략 교재보다 더 좋다”고 평했다.
제이콥슨이 제기한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 입장에선 양가적일 게다.
지구 멸망도 걱정해야 하지만,
북한의 위협은 당장의 생존 문제.
그리고 미국의 핵전력이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는 우리를 지키는 안전판이다.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공세적 핵 태세를 누그러뜨려다 접게 된 게 동맹국의 우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