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미국의 피츠버그에서는 아주 훌륭한 최신 설비의 우체국을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마침내 수 억을 들여 공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완공식을 하는 날 발견한 것이 있는데 그 우체국 청사 안에 정작 있어야 할 우체통은 한 군데도 설치되지 않았더라는 것입니다. 우체통을 준비하지 못한 우체국은 사실 있으나마나 합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와 교우들의 상태가 우체통 없는 우체국과 같이 믿음 없는 교회, 성령 없는 성도, 제일 귀한 보배를 상실한 교회가 되지 않았나 살펴봅시다. 신령한 영적 싸움을 해야 할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휩싸여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빛된 사명과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멈추었고, 시대에 우뚝 서 예언자의 임무를 다하지 못함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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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도 같이 망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망할 때 로마 교회 신부들이 죄를 회개하고 바르게 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바늘 끝에 천사들이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3일이나 싸웠다.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결국 로마가 망한 것이다. 러시아 교회가 부패될 때 러시아에 공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러시아 교회 신부들이 모여서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사를 집례할 때 황금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빨간색 가운을 입어야 되나 하는 것으로 일주일간이나 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황금색 가운도 입지 않고 빨간색 가운도 입지 않았는데, 그것이 뭐 그리 중합니까?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 공산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교단 총회에서도 축도할 때 ‘축원하옵나이다’라고 해야 되나 ‘축원할지어다’라고 해야 되나 하는 것 가지고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교회의 부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 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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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양적인 성장이 아닌 본질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병든 교회를 치유하는 길은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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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같이 분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에 "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자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들을 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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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요?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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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요4:23-24)
세계 3대 피자 회사로 피자헛, 도미노, 리틀 시저스를 꼽습니다. 이 세 회사는 저마다 독특한 판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를,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을, 리틀 시저스는 ‘싼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최근 ‘파파존스’라고 하는 회사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0대 젊은 사장 슈네트가 만들었는데, 매출이 매년 배 이상 오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파존스가 기존 3대 피자 회사를 앞지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파파존스는 피자의 본질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맛입니다. 좋은 재료와 최고의 맛이면 족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기도, 봉사, 헌금, 축복인가.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나 70- 8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바뀐 내용은 크게 달랐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중심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그 기뻐하는 것이 ‘세상 즐거움’에서 ‘오직 예수’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세상나라에서의 형통을 복으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같은 욕망의 노혜가 되게 했습니다. 교회가 그것을 앞장서서 보여 주었습니다. 교인들의 가치관과 삶이 이전보다 더욱 세상나라 중심으로,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축복을 외치며 감정을 부추기는 교회들은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반면에 정의, 공의,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외치며 지성에 호소하는 교회는 외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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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을 벗어난 교회는 더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야 합니다. 말로만 그러하지 말고 실제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의 형통을 사모해야 합니다. 교인들의 감정을 부추기려고만 하지 말고, 교인들을 차분히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가리쳐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깨닫게 하고 감동받게 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경말씀이 삶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고,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롬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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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배가 바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는 일시적인 평안, 위로, 쉼, 기쁨을 얻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하고 귀항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자들은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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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마21:13)
사람들은 흔히 기도보다는 일을 중히 여깁니다. 일을 하고 여유가 생기면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혹은 일을 하다가 아니 되면 그때에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과 비교될 것이 아니라 양식과 비교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와 비교되어야 할 것입니다.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양식이 필요하듯 영혼을 강건케 하기 위하여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성숙하려면 자기보다 나은 부모나 스승과의 대화가 필요하듯, 거룩하고 영원하시며 권능과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아뢰는 이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기도로 채우십시오.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갑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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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교회는 영육간에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립니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능력"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습니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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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합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습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붑니다. 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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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입니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있습니다.(고전19:31, 엡1:3-14)
"교회의 참된 터는 우리 주 예수라 그 귀한 말씀 위에 이 교회 세웠네 주 예수 강림하사 피흘려 샀으니 땅위의 모든 교회 주님의 신부라"(찬송가 242장)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며 말씀하시길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죽음(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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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 출신의 아프리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영국의 유명한 대학에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장의 아들이었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0년 후 어떤 백인 동창생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그를 만났습니다. 다른 동족들과 달리 양복을 입고 세련된 모습의 추장은 동창생인 여행객을 반갑게 맞으며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추장은 다른 식인종들과 마찬가지로 사람 고기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여행객은 놀라 ‘아니, 영국에서 명문 대학까지 나온 분이 어떻게 사람 고기를 먹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추장은 한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면서 ‘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포크로 먹고 있지 않습니까?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손으로 먹고 있지요? 이게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의 차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추장은 본질은 접하지 못하고 껍질만 보고 온 셈입니다. 껍질은 본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본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처음에 예수님께 예배할 장소를 물었는데, 이는 본질이 아닙니다.(요4:20) 본질은 예배의 대상입니다. 본질을 깨달은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외칩니다.(요4: 2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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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로 착각하면 큰일입니다.
우리가 군 복무중에 사격장에서 총을 쏠 때 방아쇠를 당기는데 각도가 조금만 틀려도 과녁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비행기가 활주로 도착시 약간의 오차가 나도 비행기가 논밭에 꼴아 박히는 결과를 낳습니는다. 선무당이 사람잡는 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개 어설프게 안 성경지식이 이단(異端)을 낳고, 적그리스도가 되거나 죽정이가 됩니다. 신천지나 통일교, 구원파 등의 이단도 처음에는 작은 교리 차이가 나중에 이단종교로 변질 되었습니다. 작은 차이가 세월이 지나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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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책과 설교도 예수님이 없으면 헛되고 무용지물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이스라엘의 지혜서인 탈무드가 뛰어 났어도 핵심인 예수님이 빠져 있어 별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산에 있는데 사람들은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관심이 많고 치중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구약이 신약의 말씀을 앞서지 않습니다. 신약의 말씀은 구약의 말씀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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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7: 18, 19)
예를 들면 안식일이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되느냐 술과 담배를 피우는 문제 등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비본질적인 것은 시대에 따라 움직이고 변합니다. 구약에 보면 낙타, 토끼, 돼지,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물고기,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 등을 먹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레11:3- 47) 그러나 신약의 말씀은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5)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신약의 말씀이 우선합니다. 그리고 안식일 문제도 구약(출20:1- 17)에 언급되어 있으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하여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마12:8, 막2:28, 눅6:5) 하시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막2:27)고 하셨습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토요일 주장 등은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착각하여 주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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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고 본질을 알려면 거시(巨視)적인 눈과 미시(微視)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즉 숲과 나무를 다 보아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주장하고 강조하면 편견에 빠지고,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면서 소경이 코끼리의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같다고 한다든지 꼬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는 뱀같다든지 귀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부채같다든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한 말씀만 중시하는 것이 이와같습니다. 어떤 이는 일, 또 어떤 이는 구제만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지 구제단체나 사업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본질을 모르면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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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모임)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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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느 시골노인이 서울 사는 딸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있었지, 있었고말고.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노인은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표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삶의 목표를 그것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 사랑, 믿음, 소망 그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크리스천 교육의 목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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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질을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할 수 있고, 본질을 똑바로 알아야 우선순위를 바로 알고 행할 수 있으며, 본질을 알아야 무엇이 더 중요한 계명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 공동체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하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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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본질을 회복하고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외형적 제도만을 고친다고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도의 개혁은 개혁의 한 케이스일 뿐 모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개혁을 제도의 차원으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또 그런 개혁을 통해 스타가 된 자들도 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예, 결산 자료 공개, 작은 교회 살리기, 탈북자 돕기 등 그러나 진정한 교회개혁은 말씀과 성령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합니다.(마9;17, 막2: 22)
교회의 역사는 항상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습니다. 깨어 일어나자마자 빛을 비춥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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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중요한 사역은 한 생명,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사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며(마4:23), 심지어 한 영혼을 위해 풍랑을 무릅쓰시며 이방지역까지 찾아가시어 만나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갈릴리 공동체가 주로 할 일도 이와 같습니다.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의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공동체는 한국교회를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개혁하는 꿈(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온 성도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의 꿈입니다.
우리와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진 분은 누구든지 좋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꿈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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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사랑의 주님, 한국교회가 회개하여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미스바에서 일어난 역전을 우리가 다시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머뭇거리는 신앙을 접고 전심으로 돌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목자되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