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교육....
마태복음 28:18-20
오늘은 기독교교육진흥주일입니다.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 진흥책을 모색하기 위해 제정된
주일입니다.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의 유래를 살펴보면, 1929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가을에 초교파적 연합기관이었던 조선주
일학교연합회 제3차 총회가 평양에서 열렸을 때에, 주일학교 배가운동 안건으로 4년간 주일학교 진흥운동을 전개하기
로 했는데, 그것이 기독교교육진흥주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감리교회에도 1933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을 지켰습니다. 1933년 8월호 ‘감리회보’ 11면
에 ‘진흥주일을 어떻게 지킬까?’라는 기사가 실려 있고, ‘주일학교 진흥주일순서’가 게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감리회보’에 실린 기사 내용의 일부를 보면, 이렇습니다.
“여름철을 당하여, 농촌에서는 분망한 탓으로, 도시에서는 고향으로, 혹은 산으로, 혹은 바다로 흩어지는 탓으로, 주
일학교는 자연히 휴교상태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가을철을 기하여, 농촌의 분망함도 좀 덜어지고, 매일학교의
개학에 따라 사방에 흩어졌던 선생과 학생도 돌아왔으므로, 주일학교에서도 이때에 원기를 내어, 주일학교의 세력회복
운동, 곧 진흥운동을 펴야만 하겠다.”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의 의의와 목적을 잘 밝힌 기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오래 전부터 이처럼 기독교교육의 진흥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의 사명 가운데, 교육은 선교
와 더불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할 일을 분부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사명을 확실하게 일러주신 말
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
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뒤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
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교육의 사명을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푸는 것은 분명히 선교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것들을 가르쳐 지
키게 하는 것은 분명히 교육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는 선교와 교육의 사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 선교의 사명과 교육의 사명을 동시에 말씀하신 이유는, 선교를 교회의 외적 기둥이라고 한다면, 교육은 교
회의 내적 기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교를 위해서는 교회의 교육사역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
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교육은 언제나 선교에 밀려 뒷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
습니다. 가끔 연회적으로나 지방적으로 선교대회를 합니다. 모든 교회가 함께 모여서, 하루나 또는 이삼일 간 집회를
가집니다. 선교헌금도 많이 봉헌합니다. 하지만 교육대회는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육헌금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여
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나 교사대학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면, 선교는 전 교인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교육은 교회학교 교사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선교와 교육의 균형을 잘
맞추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 의하면,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베드로가 한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약 3천 명이었
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선교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절인 2장 42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구절은 초대교회의 교육에 대한 보고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음으로
써, 교제와 기도에 힘쓰며, 성만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선교와 교육의 균형을 잘 맞추었다는 것은, 사도행전 5장 42절에 더 잘 나타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
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어떻습니까?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도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언제 어디서나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전도하는 일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도 날마다, 어디에 있든지, 쉬지 않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
도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과 함께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도 쉬지 않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초대교회 안에는 유대인 성도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공동체에 들어옴으로
써, 이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바로 초신자세례준비학교였습니다.
이비가 쓴 ‘기독교교육사’라는 책에 의하면, 이 학교는 비유대인 초신자를 대상으로 시작되었지만, 남녀노소나 유대
인, 비유대인을 초월하여 초신자들을 교육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예비생들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수학기간은 2년 내
지 3년이었으며, 학생들을 3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별 학급을 설치하여 교육했습니다.
초신자세례준비학교에 이어서 운영된 것은 교리문답학교였습니다. 2세기 말과 3세기초 어간에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기독교교육사’에 의하면, 이 학교의 운영목적은 당시 이교교육을 받은 이교신도들과 대응할 수 있는 지
적교육으로 훈련된 성직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배출한 사람들은 당시 헬라와 로마문화를 통달한 교
사들이 소유한 지식에 못지않은 지식을 소유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학교들의 운영은, 초대교회가 선교와 교육의 균형을 잘 맞추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교회의 외적 기둥인 선
교가 초대교회 성도 전체의 관심사였듯이, 교회의 내적 기둥인 교육도 초대교회 성도 전체의 관심사였음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교육을 몇몇 교사들이 하는 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이
생각을 고쳐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교회교육을 몇몇 교사들이 하는 일로 여기는 생각을 고쳐야 할 첫 번째 이유는, 교인 전체가 피교육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교육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은 숨을 거둘 때까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평생을 피교육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야곱이 가족과 함께 외삼촌의 집에서 야반도주 할 때에, 야곱의 아내 라헬이 친정아버지의 드라빔
을 도둑질했습니다. 그런데 1919년 전까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드라빔을 가져가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를 모른 것입니다. 하지만 1919년 이후에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1919년부터 키르쿡이라고 하는 곳에서,
고대도시 누지에 살던 호리사람들의 생활풍습과 법이 기록된 토판문서가 발굴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같은 시대에
살던 호리사람들에 관한 기록물이 발굴된 것입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쳤던 문희석 박사가 편집한 ‘오늘의 오경연구’에 보면, 누지에서 발굴된 토판문서
에는 가정수호신인 드라빔을 소유한 사람은, 그가 아들이든, 딸이든, 사위이든, 양자이든 상관없이 그 가문의 상속자로
서 권리를 갖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라헬이 드라빔을 도적질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안타깝게도 1919년 이전에 돌아가신 분들은 이 같은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무척 궁금해 했을지도 모릅
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누지문서가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한 성서해석뿐만 아니라 시대상황에 따른 성서해석과 개인적인 삶의 변화에 따른 성서의 적용도, 모
든 교인을 숨을 거둘 때까지 교육을 받게 합니다. 같은 성경구절을 30대에 읽을 때, 50대에 읽을 때, 70대에 읽을 때
각각 깨닫는 것이 다르며, 같은 성경구절을 가난할 때, 몸이 약할 때, 병이 들었을 때에 읽을 때와 삶이 형통할 때에
읽을 때에 깨닫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은 어느 때든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점에서 예수님께서는 탁월한 교육자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주로 성인교육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인도 끝까지 교육을 받아야 함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교회교육을 몇몇 교사들이 하는 일로 여기는 생각을 고쳐야 할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모든 요소가 교육에 영향을 주
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회는 각기 나름대로의 공간과 시설물과 그룹들과 활동영역과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육에 큰 영향
을 줍니다.
제가 교회학교교사로 일했을 때에, 저를 가장 짜증나게 한 것은, 기도시간에 자리 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
들에게 기껏 기도시간에는 눈 감고, 예수님만 생각하며, 기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쳐 놓으면, 기도시간에 자리 이동
을 하는 어른들 때문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시간에 자리를 이동하는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이유를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기도시간에도 눈 뜨고 움직여도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모든 교인이 교사입니다.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적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교
육은 몇몇 교사들이 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첫째, 전교인이 배움의 자세를 확립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나 미래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 안에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인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 안에서 살려
고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교회학교에서 학생 수가 몇 명이냐를 묻기 전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에 참석하는
성도수가 몇 명이냐를 물어야 합니다,
단언하건데, 장년들의 성경연구시간이 활성화 되지 않는 한, 교회학교 학생 수가 증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전
교인이 배움의 자세를 확립해야, 자라나는 미래세대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 안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
니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전 교인이 배움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공동체적인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삶을 통해 본을 보이는 것입니
다. 자신을 바라보는 초신자나 미래세대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본’이라는 것은, 고대세계에서 어린이들이 글씨 쓰는 것을 배울 때 활용하던 것입니다. 곧 학습자가 따라 쓸 수 있도
록, 글자의 윤곽만 그린 것이 바로 ‘본’입니다.
교회 안의 모든 성도는 초신자나 미래세대에게 이런 ‘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낯선 길을 처음 가는 사람은 앞서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는지를 유심히 살핍니다. 그리고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앞서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합
니다. 좋은 본을 보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교육이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교사와 좋은 교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환경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맹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맹자는 중국 산둥성 추현 출신입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맹자가 어
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의 마을이었습니다.
같이 놀만한 벗이 없던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을 하며 장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이 광경을 본 맹자
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한 곳은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시장 근처였습니다.
하지만 맹자의 어머니는 또 실망했습니다. 맹자가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
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다시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글방 근처였습니다.
글방 근처에 살게 된 맹자는 자연스럽게 글 읽는 자세를 취하거나 절하는 법 같은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그곳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중국 전한 말의 학자 유향이 지은 ‘열녀전’에 나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입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환경이 미
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육공간의 확보나 교육시설과 교육자재 공급
등을 위해 필요한 교육비를 지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네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공동경험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전승은 머리로 되지 않습니다. 가슴과 가슴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함께 예배하는 것을 비롯해서, 함께 성경읽기, 함께 기도하기, 함께 찬송하기, 함께 봉사하기, 함께 성지순
례하기 등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과거세대와 현재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공동경험을 하면서, 가슴과 가슴이 연결되어,
신앙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 교인이 배움의 자세를 확립해야 하고,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하
고,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공동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교회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교회는 선교와 더불어 교육의 사명
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교육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 다시 한 번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생각하며, 교회를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2015. 9. 20. 기독교교육진흥주일 설교)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