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0∼11절
아무 조건없이 인류구원 완성한 예수님의 십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고
바라보고 믿고 고백하면 기적과 축복 누리게 돼
일반적으로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이것을 하라! 저것은 하지마라!”라고 요구합니다. 이처럼 다른 종교들은 모두 어떤 조건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10번을 되물어도 다 똑같은 대답입니다. “너희가 할 일은 없다.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니 믿고 의지만 하라”고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주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을 우리가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감사할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이 말은 상업적인 용어로서 ‘완전히 돈을 다 지불하였고, 전혀 빚지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완전히 지불되었다는 영수증의 의미가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빚을 90%만 갚은 것이 아니고 99.9%만 갚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갚아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면 우리의 모든 죄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허물과 죄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며 사망의 권세 아래 굴복해 태어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죄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옛 아담의 자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과 함께 법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뜻입니다. 옛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살아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할 때 혼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안고 함께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죽고 주 안에서 부활하여,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국! 내 천국! 예수 보좌! 내 보좌!”라고 고백하며 예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완전히 하나된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묻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늘의 보좌를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음으로 그냥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신 계획과 노력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6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나면 물로 침례를 받습니다. ‘침례’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의 옛 사람이 수장되어 죽고, 물에서 올라 올 때는 십자가의 공로로 부활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지낸 바 되었고, 이제 예수의 사람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침례를 받고 나면 이제 우리는 세상의 사람이 아닌 예수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사람 일생의 죄를 십자가를 통해 주님이 다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우리가 늘 그것을 마음속에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살아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머릿속에 그리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입술로 자꾸 고백하면 우리의 신앙이 굳어지고 점점 더 견고하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했다는 사실을 늘 말하면서 그것을 머릿속에 상상해보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였으므로 우리가 머리에 상상한 것을 입술로 시인하면 실제적인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삶속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뤄져 보이도록 만드는 기적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진리를 마음속에 그려보고 믿고 고백하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은 사람도 이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일이라도 우리가 마음속에 분명히 그려보고 꿈꾸며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고 말하자” 아주 간단한 실천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을 불러오게 됩니다.
2. 율법이냐 은혜의 선물이냐
율법의 삶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인이 되야 합니다. 율법의 삶은 자기를 섬기고 살기 때문에 모든 책임도 자기 자신이 걸머져야 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장성한 사람이 되어 죽을 때까지 모든 삶의 책임을 자신이 걸머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나는 내 마음대로 산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니까 누가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산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선악을 스스로 분별하겠다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분별해 주시는 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마음, 자신도 하나님처럼 좋고 나쁜 것은 자신이 구별하겠다는 마음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판단을 받기 전에 자기 스스로 판단해서 살겠다는 그런 교만하고 불순종하는 생각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되어 스스로 모든 결정을 하며 인생을 살게 된다는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행동에 대해 자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 스스로 지켜야 됩니다. 자기 힘으로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다 자신의 짐이니 스스로 짊어져야 되고 일도 모두 자신의 일입니다. 스스로 다 해결해야 되고 모든 일에 스스로 중심이 되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주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므로 주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즉, 주님 앞에 죄도 청산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우리 위해 일 해주시고 모든 생사화복을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책임져 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강을 건널 때 물이 삼키지 못하게 하시고 불이 났을 때 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것은 언제나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늘 마음에 생각하고 “나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라고 늘 고백해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에 휴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항상 불안과 공포, 염려와 근심으로 벌벌 떠는 것은 아직도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는 일입니다. 기도하고 구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약속을 믿고 맡기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다 맡아주셨으니 걱정하지 말아라’하시며 레마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레마를 따라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기적
이제 우리의 참다운 삶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 바로,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믿으면 다른 모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모두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대신하여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입니다. “그저 믿습니다”라고만 고백하면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 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4. 이 과정을 삶에 적용하라
이러한 이치와 과정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죄에서 해방되고 허물에서 놓여남 받는 것에만 말고 병들었을 때도 똑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병에서 고침 받으려면 먼저 합법적으로 누군가 우리의 질병을 치료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 53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 슬픔을 당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짐을, 질병을 전담해 주시고, 그 대가도 남김없이 모두 갚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해야 될 일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을 다 짊어지고 청산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앉으나 서나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병든 환자로 보지 말고 십자가를 통해 건강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치료받은 사람으로 바라봐야 됩니다. 가장 건강하고 활력있는 사람이 된 것을 마음속에 늘 꿈꾸고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믿었으면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내릴 때도 집에 들어가서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얻었느니라”고 고백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의 권능이 우리의 몸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꿈꾸고 바라보고 믿고 고백한대로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고 위대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한 모습을 너무나 싫어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가난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기 위해 몸소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을 다 담당했으므로 ‘나는 부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십시오.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때, 부요하게 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 바라보는 겁니다. 그리고 난 다음 믿으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이제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나는 부요한 복을 받았다. 나는 도와주면서 산다. 나는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 나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백하면, 이제 무엇이든지 술술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풀리고 좋은 일이 생기고, 나중에 지나고 보니 부자가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살아 우리를 위해 역사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고 청산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다. 그렇게 바라보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대속하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기록합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고 사는 문제에서 이미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시니, 예수님을 모신 우리는 이미 생명을 얻어 죽음도 삶도 겁나지 않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기록된 것처럼 이제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예수의 후손이 되었으며, 아담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담으로 죽음을 상속받았던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죽고 부활 영생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복은 도저히 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떤 조건도 필요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이뤄지는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므로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되고, 믿고 순종하므로 허물도 청산되어 거룩하게 되고, 믿고 순종하므로 질병도 낫고, 믿고 순종하므로 복도 받고, 믿고 순종하므로 천당도 가고 모든 것이 믿고 순종하므로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알고 보면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고 순종하여 은혜로 선물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신학자 매튜 헨리는 “와서 십자가의 승리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는 우리의 치료입니다. 그의 고뇌는 우리의 평온이고, 그의 신음은 우리의 노래입니다. 그의 아픔은 우리의 위로이고, 그의 수치는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고, 그의 고통은 우리의 구원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십자가의 승리 또한 우리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셨으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강한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고 환경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침례 요한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한 복음의 은혜를 우리가 깨닫아 알아 그 믿음위에 굳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즉, 죄의 종, 허물의 종도 되지 말고 병의 종도 되지 말고 저주의 종도 되지 말고 죽음의 종도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은즉 우리는 다른 데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품안에 안겨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누리라고 주신 복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몸소 죄된 인간의 가난과 고통과 아픔을 체험케 하시고, 그것을 모두 십자가에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청산해 주신 은혜를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는 율법의 삶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늘 믿음으로 순종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바라고 믿고 꿈꾸고 입술로 고백하며 시인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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