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사탄의 전략 / 행 6:1-7

하나님아들 2024. 6. 22. 22:17

사탄의 전략 /  6:1-7 / 조종건 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는 마귀를 대적하라라는 설교를 통해서 사탄, 마귀, 귀신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사탄 마귀는 하나님 앞에 믿는 자들을 중상모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훼방을 놓고, 주님을 따른 자들을 유혹하여 멸망에 빠지게 하는 존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악한 마귀는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인정한 욥을 시험하고 고통가운데 빠트렸습니다. 사탄 마귀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에 불만을 품고 있던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배반하게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 베드로에게 역사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을 방해하고 훼방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을 하신 예수님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나게 했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렸던 다윗 왕을 충동질해서 죄에 빠지게 하고 결국 7만명의 백성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같은 자들이야 악한 사탄 마귀가 얼마든지 쓰러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 깨어 근신하고, 남자답게 강건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전략을 잘 파악해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탄의 전략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후에 제자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밖으로 나가 뜨겁게 전도하면서 초대교회는 놀랍게 부흥하였습니다. 믿는 자들의 수가 날마다 늘어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급기야는 제사장들의 허다한 수가 복음을 받아드리면서 예수를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날마다 부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행 2:42~47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는 참으로 부러운 공동체였습니다.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하기에 힘을 다하는 교회였으니 말입니다. 성령충만해서 열심히 전도하고 구원받는 무리가 더욱 많아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서슴없이 외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부흥하던 교회는 놀라운 기적이 더해집니다.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하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한푼의 돈을 구걸하던 거지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3:6)라고 명령한 후에 오른손을 내밀어 그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서서 걸어다니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을 통해서 믿는 자들의 수는 남자만도 5,000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4). 그런데 사탄이 교회를 노골적으로 핍박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1. 핍박과 박해

 4:5에 보면 이런 일이 있을 후에,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중심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을 처벌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놓고 도대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 4:7)라고 심문합니다. 우리들 생각으로 하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켜 세운 것이 소문이 나면 모셔다가 간증도 듣고, 환자들이 찾아와서 기적을 체험하려고 기도해달라고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하고, 이러한 일로 교회가 날마다 부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 일을 빌미로 오히려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육체적 고통과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저들의 요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달아 죽였으나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행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4:12)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 넣을 방도가 없자,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로 사도들을 위협하고 풀어 주었습니다.

 

 6에는 스데반 집사가 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에게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회당에서 온 자들이 스데반과 변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이 변론하면서 스데반의 지혜를 이겨내지 못하자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거짓증거를 합니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을 충동질해서 스데반을 잡고, 거짓 증인을 세워 대제사장에게 고발했습니다.

 

이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스데반은 저들 앞에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스데반이 설교를 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치자, 저들은 회개하지 않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면서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고통당하게 만들고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12장을 보면 헤롯 왕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야고보를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헤롯 왕은 사도들을 더 많이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베드로를 죽이려고 잡아서 감옥에 가두였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의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 나와 살았지만, 악한 마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훼방하고, 괴롭히고, 핍박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 속에 던져 넣었고, 다니엘의 친구들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불에 던져 넣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폭력과 무력으로 교회를 파괴하고,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감금하고 고문하고 핍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자 사탄 마귀의 공세가 더욱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2. 자기 합리화

사탄 마귀는 성도들에게 죄를 합리화시켜서 죄에 대해 무디게 만듭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야, 나는 그래도 너보다는 낫지, 이 정도는 죄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죄를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5장에는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던 초대교회에 찬물을 붓는 사건이 나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교회에 헌금을 하고도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도, 사랑이 충만해야 할 사도인 베드로의 저주로 인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부부는 바나바가 교회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소유를 팔아 헌금한 것을 알고, 우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괜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3). 중요한 것은 사탄이 마음속에 가득해서 성령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령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감동시켜서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이미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판 값 전체를 교회에 드리라고 성령께서 저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거부하고 일부를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 돈이 땅을 판 돈 전부냐?”라고 물었을 때에, 이실직고하지 않고 그렇다라고 속였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정도면 충분해, 남들보다 훨씬 많이 헌금하고 있어라는 자기 합리화라는 죄에 빠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돈에 대한 욕심만이 아니었습니다. 속임수였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했을 때에 제가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땅판 값 전체를 드린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속인 행위였습니다. 많은 헌금을 했으니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일처럼 보였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많은 헌금을 하고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지만, 이 사건은 저들 부부가 성령을 속여 하나님의 사도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성령을 속이는 행위는 거룩한 교회 공동체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의 재물을 드려 희생과 구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이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존경 받고 더 높임 받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미워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은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여기면서, 남들을 깔보고 내려다보고 형편없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훌륭한 사람을 비난하고 흉보고 거짓을 퍼트려 쓰러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에도 자신을 세리와 비교했습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저희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저기서 기도하는 매국노와 같은 세리와는 더더군다나 다른 경건한 사람입니다. 저희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기도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거룩함과 경건생활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18).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저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우위에 있으려는 교만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 정도면 내가 어느 누구보다 더 훌륭하고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을 했다고 자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를 속이면서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그마한 의를 행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남을 비방하고 험담을 하고 속이고 있을 때, 바로 그것이 사탄의 거짓 속삭임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거룩이고 경건입니다.

 

3. 갈등과 분열

 6장을 보면 성령의 은혜로 기적같은 부흥을 경험하던 초대교회는 또 다른 시련에 부딪힙니다. 그것은 갈등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밖으로는 전도 안으로는 구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사역을 사도들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기저기서 원망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헬라파 사람들과 히브리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헬라파 사람이란 흩어져 살던 유대인으로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히브리파 사람은 예루살렘 지역에 살면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언어가 달라서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두 개의 그룹이 교회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간에는 소통에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은 구제를 베푸는 영역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도 사람인지라 자기들과 언어가 잘 통하는 히브리파 사람들에게 더 많은 구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헬라파 과부들은 구제에서 제외되는 일이 나타나게 되었고, 헬라파 사람들 사이에서 원망이 일어나고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런 일로 인해 구제를 적게 받은 사람들은 사도들을 향하여 갖가지 비난을 쏟아내었을 것입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서 사도들을 공격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교회를 떠나겠다고도 말했을 것입니다.

 

교회는 갈등과 혼란에 빠졌고, 이것을 사탄 마귀가 놓칠 리가 없었을테고 교회를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구제로 인해서 자기 몫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원망의 소리가 커지면서 사도들의 권위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갈등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예루살렘교회는 헬라파 교회와 히브리파 교회로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되게 하여 달라( 17:22)고 기도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갈등을 해결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본질로 돌아갔습니다. 본질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본래 주께서 자신들에게 맡긴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 명을 택하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는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웠고, 저들은 사도들을 대신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것으로 초대교회의 헬라파 출신과 히브리파 출신의 갈등은 사라지고 하나가 되어 더욱 힘차게 부흥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따라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예수님이 거하고 계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교회 건물을 짓고, 선교를 하고, 구제를 하고, 장학사업을 하는데, 정작 그 일 속에는 자기 자랑과 불공정과 이권다툼이 있고, 주님의 참된 마음이 결여된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네가 하는 것은 틀렸다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인정받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딤후 3:5)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5장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갈등이 야기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놀랍게 부흥시키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와서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 14:27)라고 보고했습니다. 안디옥도 이방지역이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보고를 듣고 기뻐하면서 저들이 선교여행 중에 있었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유대에서 몇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가르치면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능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 15:1)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모세의 법을 따라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바울과 바나바와 모세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과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15:2). 치열한 교리적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할례와 구원의 논쟁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다시 논의가 되었습니다. 바리새파인들 중에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모세의 법에 따라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논쟁이 진행되다가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신이 이방인 전도를 할 때에 있었던 하나님의 일에 대해 간증하면서 하나님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구분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게 하셨다( 15:11)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도 베드로와 동일하게 자신들이 선교현장에서 역사하신 성령의 일에 대해 말하며 이방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말이 끝이 난 후에 예루살렘 회의의 의장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여러분, 제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할례 문제로 괴롭게 해서는 안됩니다. 할례는 구원의 문제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는 이들은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하니,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게 하는 것은 옳습니다”( 15)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야고보의 말에 아멘으로 받았고 할례와 구원의 문제는 정리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례와 구원의 문제로 혼란에 빠졌던 안디옥 교회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교리적 갈등이 있었을 때에 이들은 오직 예수님의 구원의 의미와 본질을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다툼이 심했다면 모세의 법을 따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들이 뭉친 교회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교회로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더욱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매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갈등이 있을 때에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지를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갈등이 생길 때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남의 잘못을 찾아내서 비방하고, 모든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남을 쓰러트려서 자신의 옳았다고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정치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악질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갈등이 일어났을 때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자기 주장과 생각의 잘못된 것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합당한 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 책망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서로 남을 꺽어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앞에서 아멘하고 순종할 때 갈등은 해결되고 하나님의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로 인한 갈등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전념했고,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다 했습니다. 모두가 본질로 돌아갔고, 주어진 사명과 본질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예루살렘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고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6:7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영분별을 하지 못하면 쓰러지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폭력과 무력으로 교회를 핍박합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자기 합리화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면서 교회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어떤 사탄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사탄 마귀와 싸워 항상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 새샘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