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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비밀 (엡 3:1-13)

하나님아들 2024. 4. 25. 19:58

복음의 비밀 (엡 3:1-13)

이 세상에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사건, 남이 알아서는 안되는 사건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비밀이 있습니까? 비밀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밀은 많으면 많을수록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들에게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일꾼이 되었고, 갇힌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비밀은 과연 어떤 비밀일까요?

본문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아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방인들을 위해서 스스로 갇힌 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갇힌 자’라는 말은 이렇게 쓰면 멋있지만, 사실은 죄인 또는 죄수라는 말입니다. 죄수는 모든 활동에 제한을 받습니다.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고 싶은 곳에서 잘 수도 없습니다.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습니다.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누우라면 누워야하고, 찬송이나 기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한 마디로 자유가 박탈된 사람이요, 모든 것에 제한을 받는 사람을 가리켜 ‘죄수’ 또는 ‘갇힌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보통 죄수와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일 즉, 하나님의 비밀 때문에 갇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억지로, 또는 할 수 없이 죄수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갇힌 자라고 선포했습니다.

에를 들어 어떤 간첩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꼭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그래서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간첩은 그 속에서 억울함으로 눈물 흘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먹는 것이나 입는 것들을 제한받지만, 어떤 비밀을 알아내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꺼이 불편한 그 감옥 생활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목적이나 비밀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누릴 모든 자유가 있지만, 스스로 자유를 제한합니다.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습니다. 즐길 수 있지만 즐기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모든 조건들을 스스로 거부합니다. 이렇듯 비밀 하나를 위해서 스스로 제한된 삶을, 자유가 박탈된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기 전에 스스로 갇힌 자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이 비밀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유를 포기하고, 시간을 포기하고, 명예와 권력을 포기하고, 세상적인 모든 환상과 꿈과 성공을 포기하고, 스스로 갇힌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러하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아멘.
이것은 복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는 말은 경영, 관리,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은혜의 사건을 내가 맡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직분을 맡았다. 내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에서 맡고 있는 그 일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사명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사는 바울의 후예들이 많습니다. 우리 한믿음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스스로 시간을 포기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재물도 포기합니다. 재능도, 명예도, 권력도, 생애도 하나님께 드릴 마음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포기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 거기에 결코 미련과 욕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바울의 후예들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내 시간 중의 일부, 내 재물의 십일조를 바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이것이 바로 갇힌 자의 생활입니다. 갇힌 자의 모습입니다. 하늘의 비밀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로, 선교사로, 생애를 바친 사람들만이 바울의 후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신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최선을 다할 때, 열심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할 때, 하나님의 복음의 놀라운 역사가 바로 여러분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직업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 이런 놀라운 복음의 역사들이 오늘도 우리 안에 흐르고 또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늘의 비밀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본문에 보면 그것을 네 가지 형태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하늘의 비밀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고 설명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이요 특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그 큰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 때문에 우리가 긍휼을 입은 것처럼, 구원 얻은 것처럼, 이 비밀의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 곧 특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주 특혜 사건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러한 특혜보다도 더 큰 특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이란 나의 선행, 나의 공로, 나의 명예, 나의 권력 때문에, 당연하게 받을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일방적으로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3절에 보면, 이 비밀이 계시로 보여졌다고 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계시로 비밀을 알게 하셨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 하늘의 비밀의 사건은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비밀은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철학과 묵상과 선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계시란 숨겨진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뚜껑을 열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비밀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가르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었던 놀라운 깨달음을 똑같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멀리 할 수 있어도, 성경만은 멀리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4절에 “이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계시가 우리에게 임했다 하더라도 성경과 위배되는 것은 틀린 계시입니다. 우리가 주관적인 자신의 영적 체험에 우리의 신앙의 근거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더라도 그것이 성경과 다르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계시란 항상 성경과 일치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내 입술에 두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이 명하는 대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복음의 비밀을 확실히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이 비밀은 다른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 하늘의 비밀은 구약에서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나 베일로 감추어진 모습으로 어렴풋이 보여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에서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그 복음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언제 분명해졌습니까?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완전한 그림처럼 분명하게 그들의 머리 속에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지 않았을 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나서 복음의 비밀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강하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그리하여 이 복음의 능력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섰고, 전 아시아를 완전히 뒤엎었고, 전 유럽을 지진처럼 뒤엎게 만든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하늘의 비밀은 ‘성령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비밀은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먼저 보여졌는데, ‘성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하늘의 비밀, 하늘의 계시는 인간의 지혜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로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이나 골로새서 1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은 인간의 지혜로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도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경험으로도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령의 역사로만 깨달아진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비밀을 계시해 주셨고 ‘성령으로’ 우리의 둔한 머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어두웠던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으나, 성령을 뜨겁게 체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많으나 성경의 뜻을 성령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가 아니면 누구든지 예수를 우리의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헌신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성령으로 부은 바 되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힘이 와야 그 힘으로 모든 사건을 깨닫게 되며,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 가운데 되어지는 일들을 정확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서를 교회론이 아니라 성령론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령으로 인치시는 사건, 성령으로 깨닫는 사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사건이 에베소서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1장에서 하늘에 속한 세 가지 신령한 축복, 즉 선택과 구속과 성령으로 인치심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특별히 이 성령의 인치시는 사건을 통해서 하늘의 복음의 비밀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에베소서 2:22절을 보면, “너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지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5:18절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한 번 받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라. 성령으로 지어져 가느니라. 성령으로 이 비밀을 깨달으라. 성령 충만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 비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늘의 비밀은 복음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아십니까?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던질 용기를 가져 본 일이 있습니까? 바울에게는 그 용기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추어진 복음, 그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밀이 아닙니다. 공개된 비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공개된 비밀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는 비밀의 내용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입술을 열어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외치고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주님만이 나의 구주입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내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여러분의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당신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라고 강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복음 안에 들어왔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그야말로 소망이 없었던, 하나님 밖에 있었던, 약속 밖에 있었던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왔다는 선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것이 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로 한번 돌아가 보십시오.
예루살렘 성전만 해도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의 뜰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 중간에 막힌 담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넘으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는 선포는 이방인들에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0장에 나오는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 사건입니다. 이것은 유대교적인 종교가,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탈바꿈한 사건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는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 먹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방인을 용납하기 시작합니다. 소망이 없고, 하나님이 없다고 여겼던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으로, 하나님의 권속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직도 중간에 막힌 담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예수의 피로 다 허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 비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은 이 하늘의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과 ‘함께 후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유업을 받을 자가 되었는데, 그것은 유산을 함께 나누어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유산은 같이 나누어 쓰면 손해지만, 하나님의 유산은 같이 나누어 쓰면 커집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처럼, 이 후사에 대한 축복도 함께 하면 할수록 커집니다. 천국을 소유하게 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을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하면 할수록 더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항상 함께함으로 하늘의 유산을 더 풍성하게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밀의 두 번째는, 함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한 몸, 한 식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의 지체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입니다. 이것은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몸과 지체입니다. 연합된 한 형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색깔이 달라도 하나입니다. 성격이 달라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 한 몸입니다. 한 사람도 여기서 낙오될 자가 없고, 소외될 자가 없고, 필요 없는 자가 없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한믿음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을 때, 우리 한믿음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수 있습니다. 부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한 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무슨 일을 사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한믿음 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이 약속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즉 이 메시야의 약속이 온 이방인에게도 전파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들을 수행하는 것이 바울의 사역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교회 사역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이 사역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비밀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러분! 하늘의 비밀, 곧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게 된 이 축복을 나누는 사역을 위해 바울은 스스로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고 말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낮아지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이 되어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자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복음 앞에서 나는 작은 자다. 모든 성도 중에서 나는 지극히 작은 자다”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또한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사십년 동안 살인자로 광야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산에서 부름을 받아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가서 내 백성을 해방시켜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모세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예. 하나님!”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사십 년 전의 일입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은 사십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은 꺾일 대로 꺾이고, 낮출 대로 낮추고,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때였습니다. “주여, 나는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하나님! 사람 잘못 봤습니다. 다른 사람 시키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네 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나중에는 하다하다 할 것이 없으니까 급기야는 “나는 입이 둔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파멸된 마음, 죽은 마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마음, 그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또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이사야에게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때, 성전에 올라가,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옷자락이 나타납니다. 그룹들이 나타납니다. 이때 이사야가 그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죽는 마음, 죄악이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완전히 깨어지는 경험,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베드로에게도 이 마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 그물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에 그물을 던졌을 때,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할렐루야” 했습니까? 아닙니다. 두려움으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보니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죽는 마음, 이것이 바울이 주의 일꾼 될 수 있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비교할 수 없는 마음, 측량할 수 없는 마음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내가 작아질 때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십니다. 내가 무명해질 때 하나님은 유명해집니다. 내가 미련해질 때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작아짐으로 하나님이 크게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미련함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중요한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 놀라운 하늘의 비밀, 이 비밀을 맡은 일꾼으로서 일꾼 의식과 종된 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바울은 이 사명을 잘 감당했는데,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누가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까?
누가 이 복음의 비밀을 선포해야 합니까?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을 누가 드러내야 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바울은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라고 말하면서, 한 마디로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야 할 주체를 ‘교회’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우리 한믿음 교회가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복음이 교회를 통하여 선포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복음의 비밀을 외쳐야 합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믿음 교회에 속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임을 기억하고, 복음의 비밀을 선포할 때 우리 한믿음교회는 복의 근원이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고, 여러분은 행복한 가정과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의 역사를 이뤄나갈 때 가져야 할 두 가지 태도를 1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여러분! 세상이 두렵습니까? 고난이 두렵습니까? 장애물이 두렵습니까? 사탄의 세력이 두렵습니까? 전도하는 것이 두렵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향하여 이제 담대하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당하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개를 떨구지 마십시오. 어깨를 늘어뜨리지 마십시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감격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늘의 복음을 가진 자로서, 비밀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에게 속한 이런 놀라운 하늘의 유업을 나누며, 지체가 되며, 약속을 받은 자로서, 정말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소유한 자로서,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을 향하여 당당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죄악된 세상을 향하여, 사탄의 세력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고난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 내가 받은 고난은 너희가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다. 그 고난은 너희의 영광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8절 말씀에서는 “현재 받는 고난은 너희가 장차 받을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면서 받는 고난은 곧 영광입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하나님께 바쳐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영광으로 보상될 것입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여러분에게,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의 원천의 복이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행복한 가정과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