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자유 예화들

하나님아들 2024. 4. 6. 22:31

1.자유

새는 하늘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워집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가장 자유로워집니다.

꽃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자유로워집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가장 자유로워질까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로워집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은 마치

새가 날지 못하고 땅위에 있는 것과 같으며

물고기가 뭍에 올라와 있는 것 같으며

꽃이 꽃병에 있는 것과 같이 불완전합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해집니다. ⓒ최용우

2. 자유

하늘의 새가 창공을 자유롭게 날지만

새는 그 창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다의 고기가 물속에서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헤엄쳐 갈 수 있지만

물고기는 그 물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고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사람들은 그 하나님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최용우

3. 자유롭게 사는 법

없는 것을 있는 척 하지도 말고,

있는 것을 없는 척 하지도 말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줄 아는 척 하지도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척 빼지도 말고

억지로 착한 척 하지도 말고,

억지로 힘쎈 척 하지도 말고

억지로 참지도 말고

억지로 존경받으려고도 말고

사람을 의식하면서 뭘 하지 말고

다만, 무슨일이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최용우

4. 무명의 자유함

작년 이맘 때 깊이 기도해야될 일이 있어서 양수리에 있는 어느 금식기도원에 한 주간 다녀왔었습니다. 방에서 자려면 숙박비를 내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돈을 준비 못해서 차의 창문을 조금 내려놓고 차안에서 잤습니다.

셋째날인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툭 치며 “혹시 최용우 전도사님 아닌교? 맞지예. 햇볕같은이야기 만드시는..저 억수로 홈페이지에 자주 가는 팬이라예..”

후~ 세상에 내가 모르는 사람 중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얼른 세면장으로 달려가 세수하고 머리 감고 몸단장을 했지요.^^ 혹시 또 누가 알아 볼까봐... (그런데 그 뒤로는 한 명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ㅎ ㅎ)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한 사람이 되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드러난 사람들은 매사에 대중들의 표적이 됩니다. 좋은 일을 하면 ‘생색낸다’하고 나쁜 일을 하면 사정없이 매도하는게 대중들입니다. 그래서 드러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장된 제스추어를 취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삶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인기라도 떨어지면 죽지요.

수많은 길거리의 사람들 속에서도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무명의 자유함! 일등보다는 중간의 느긋함! 경쟁에서 벗어난 꼴찌의 편안함!

오 이 무명의 자유함을 가진 자의 행복! 오예 ~ ⓒ최용우

5.자유로운 선택

우리 집 뒤쪽에는 꽤 넓은 산밭이 하나 있습니다.

아침마다 상당히 많은 까치들이 곡식 이삭을 주워 먹기 위해 몰려들어 시끄럽게 떠듭니다. 살금살금 다가가면 어느새 알아차리고 푸드득 날아가 버리는 까치들.

날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스러운 일인지!

두 길이 있는데 두 길 중 어느 길로 가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두 길 중 한 길은 나쁜 길이라면 그걸 알면서 그 길로 가는 것은 자유라기 보다는 차라리 무지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옳은 길을 선택하는 지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가정이 가난하고 환경이 나쁘다면 길은 두 가지.

첫째는 부모를 원망하며 조상 탓으로 세월을 낭비하는 길.

둘째는 가난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성실히 노력하며 사는 길.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이 더 아름답고 옳은 길입니까?

말할 나위도 없이 두 번째 길이 지혜로운 선택의 길입니다.

또 예를 들면, 가정이 부유하고 좋은 환경이라면 첫째는 자신이 잘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못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기분내키는대로 게으르게 사는 길. 둘째는 부모님께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품고 불쌍한 사람을 도우며 더 열심히 살아가는 길.

날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유스러운 일입니다.

지혜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게 합니다. ⓒ최용우

6. 나를 놔달라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놀라운 실험결과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가 말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진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7.자유케 하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가혹한 차별 대우를 받은 사람이 조선시대의 백정이다.백정은 기와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고 비단 옷도 입지 못하게 하였으며,공부도 못하게 하였고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게 했다.

이런 일을 안타깝게 여긴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서 고종의 주치의인 의사 에비슨과 함께 백정들에게 전도했다. 첫번째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박성춘이다. 그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고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왕에게 탄원하여 마침내 1895년 6월6일 백정 신분을 철폐케 하였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1908년 6월 세브란스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 일곱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사람을 자유케 하는 일을 실천하는 자가 주님의 제자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하신 일을 이어서 해야 한다. 주의 영으로 더불어 내 자신이 먼저 자유인이 된 후에 악한 제도와 여러 가지 죄에 포로 되고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해야 한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8.하나님의 통치와 자유

성경: 시편 97 장 1 절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한 나라의 국민은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기쁨을 경험할 수도, 슬픔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독립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광복절은 환희에 찬 날이기도 하지만 이민족에게 유린당했던 치욕을 되새기게 해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한민족의 가슴 속에 맺혔던 한은 풀렸지만, 속박의 굴레에서 권리를 빼앗기고 절망과 한탄 속에 지내던 고통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광복절은 우리가 누구에게 지배받으며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교훈해 줍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지식 등, 수많은 것들에 의해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회에 자유가 없는 것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존하기 보다는 자만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죄의 특성을 ‘자만’(pride)으로 묘사했습니다. 자만 속에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이 기쁨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 기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

9. 참된 자유

한 조류학자가 깊은 산 속에서 앵무새 둥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름다운 노래를 듣기 위해 앵무새를 새장에 넣어 마당 한 쪽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미 앵무새가 나타났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주었고, 조류학자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새장의 앵무새는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조류학자는 죽은 원인을 분석하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미새는 새장에 갇힌 자신의 새끼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는지 독이 든 과일을 조금씩 먹여 죽인 것입니다.

내 가족과 이웃의 희망을 내 기준과 잣대로 가뒤두지는 않는지요? 구속과 강요에 의한 삶은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지만,

새가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듯 스스로 내 능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류 중 현 | 지하철 사랑의 편지 운영자

10. 완전한 자유인

알렉산더 대왕은 유언 속에 자기가 죽으면 손을 묶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수의의 긴 소매 속에 손을 가리고 허리에 묶게 되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손을 묶지 말도록 유언한 것은 모든 조객에게 빈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의 손은 많은 민족을 정복하고 많은 나라를 굴복시킨 손이었습니다. 노획한 재물과 노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죽으면서 거지와 다를바 없이 빈 손이 된다는 것을 죽은 뒤에 실감 있게 교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하sk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지금 우리는 참으로 진리 안에서 자유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영접하고 영적인 노예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몇푼의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육성에 사로잡혀 사는 육신생활의 포로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거룩한 백성이며 왕같은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얽메여 포로 생활을 하지 말고 노예 근성을 온전히 버리고 자유인이 되셔야 합니다.

/송기현 목사

11. 늑대와 개

몹시 굶주려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남은 늑대가 어느 날 숲 속에서 반지르르 윤이 나고 살이 토실토실한 개를 만났다.

* 늑대: 넌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

* 개: 나랑 같이 가자.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너를 좀 봐. 너무 볼품없고 비참해. 그렇게 있다간 굶어죽고 말 거야.

* 늑대: 널 따라가면 난 뭘 해야 하는데?

* 개: 별거 없어. 가끔 사냥도 나가고, 집에서는 주인한테 잘 보이기만 하면돼. 그러면 주인이 귀여워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갖다 주지.

* 늑대: (기쁜 마음으로 개를 따라가다 문득 개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보며) 그게 뭐야?

* 개: 이거?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차고 다니는 목걸이일 뿐이야.

* 늑대: 목걸이! 그럼 넌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는 말이니?

* 개: 늘 그런 건 아냐.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해. 대신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

* 늑대: 그렇지 않아, 나한테는 무척 중요해. 아무리 맛있는 진수성찬을 준다고 해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와 바꿀 수 없어

12. 참된 자유

호주 시드니의 교도소에 수감된 한 죄수가 탈옥을 꿈꿨다. 그는 빵 배달차가 일정한 시간 교도소에 오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은밀히 그 차 안에 숨어들었다. 차 안은 산소가 부족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 온몸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됐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면 펼쳐질 자유로운 삶을 상상하며 고통을 꾹 참아냈다. 이윽고 차가 멈추었다. 그는 주위를 살핀 후 차에서 내렸다. 이제는 어떤 구속도 없는 행복하고 자유스런 삶을 살리라. 그러나 배달차가 도착한 곳은 인근 교도소 구내였다. 그는 곧바로 붙잡혀 다시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가 자유를 소망하며 탈출한 곳은 결국 다른 감옥이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다른 감옥으로 탈출하는 어리석은 죄수일 수밖에 없다. 죄의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13.자유하게 하시는 주님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칼로 자기 목을 베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 청년은 전국에 있는 유명한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해 보았지만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청년은 절망에 빠져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척 중에 한 사람이 그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귀신의 억압에서 완전히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후 그는 "예수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고 해방되고 보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간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간증합니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정신질환에서 자유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현재 그는 정상인이 되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원수 마귀가 성도들을 억압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포로 된 상태에서 자유를 얻는 해방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14.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한 대통령

1837년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론자 규탄안’이 통과된 것을 보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꼈지만 소신을 굽히지는 않았다. 링컨이 국회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노예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상대 후보인 민주당의 스티븐 A. 더글러스는 백인 노예 옹호론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노예제도에 대한 논쟁을 교묘히 피하며 ‘다만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링컨은 그의 주장이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선했다.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대다수의 백인들이 더글러스를 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60년, 더글러스 의원과 다시 겨루어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노예 해방을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과 지혜를 구했다. 그리고 착실한 준비 끝에 1863년 1월 1일 마침내 노예 해방령을 선포했다. “하나님께서는 백인에게 자유를 주신 것처럼 흑인에게도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날 즉시, 그리고 이후로 모든 노예들에게 영원히 자유를 선포합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흑인들 중 한 사람이 링컨 앞에 무릎을 꿇더니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대통령 각하, 당신은 우리 모든 노예들의 구세주이십니다.” 링컨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세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전광

15. 고귀한 자유

97년 05월29일 김포공항을 통해 주영희씨(49, 여)등 3명의 탈북가족이 입국했다. 이 곳에서 만난 주씨의 아들 홍진희씨(29). 홍씨는 4년전 귀순, 현재 대학생이다 .귀순자 가족이 탈북에 성공, 자유의 품에 안겨 가족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피는 사선(死線)을 넘을 만큼 물보다 진했다. 자유의 고귀함을 알았기에 홍 씨는 귀순지원금 전액을 가족의 탈출자금으로 썼다. 그리고 「꿈꾸는것」처럼 만난 가족. 홍씨는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16. 코뚜레가 일한다.

어미소가 두 마리의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맏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을 합니다. “저에게는 제발 코뚜레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농부가 대답합니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처럼 되고 말텐데.” “아닙니다. 주인님, 그것은 옛날 생각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코뚜레를 하지 않아도 곱절이나 일을 잘할테니까요.” 농부는 동생 송아지에게만 코뚜레를 했습니다. 맏송아지는 자신의 약속대로 코뚜레 없이도 스스로 멍에도 메고 쟁기도 끌었습니다. 코뚜레를 한 동생 송아지가 지쳐 쉴 때에도 더욱 힘을 내어 달구지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꾀가 나기 시작한 맏송아지는 일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농부에게 뒷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맏송아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행방을 묻는 동생 송아지에게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도 안하고 꾀만 부려서 도살장으로 보냈지.”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 살아가는 삶이며, 결코 내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강한 욕망, 술, 약물, 출세, 기분, 무서운 한에 끌려가는 사람 모두가 불행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매여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큰일을 당한 다음에 깨닫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17. 감옥에 울려 퍼진 찬송가

프랑스 황제 루이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의 권위를 세계에 널리 떨쳤다.하지만 그는 철저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신교를 박해했다. 특히 신교의 대표자였던 세오졸프를 ‘칙령 거역죄’라는 죄목으로 파리탑 위의 감옥에 가뒀다. 그해 부활절에 루이14세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대를 거느리고 파리시가에 나서려고 했다. 감옥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세오졸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찬송을 큰소리로 불렀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되신 성령 증거하시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159장)라는 곡이었다. 이때 ‘왕의 왕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가사가 루이14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곧장 감옥으로 달려가 세오졸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후 그를 석방하고 신앙의 자유를 선포했다고 한다.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는 죄인이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의 구세주요 고집과 이기심이란 감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다. 우리의 생명을 살려주신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 중 왕이시다.우리 모두 이런 믿음을 갖고 찬양을 드리자. /고수철 목사

18. 자유에 대한 착각

이런 현대 우화가 있다. 어떤 수감자가 감옥에서 간수에게 이빨이 아프니 뽑게 해달라고 요청, 이빨을 뽑았다. 며칠 후 이 수감자는 맹장제거수술을 요청했고 그대로 했다. 또 며칠 후 이 수감자는 이상이 있는 한쪽 눈의 제거 수술을 요청해 그렇게 했다. 나중에 이 수감자는 건강한데도 신체부분을 떼 내는 "의도적요청"이 있음이 드러났다. 간수가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수감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조금씩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갇혀 있는데도 "부분이탈"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사탄에게 수감되어 있으면서 착한 일을 조금하고 인격수양을 조금 쌓으면서 자유를 얻는 다는 착각, 진정한 자유는 복음과 진리 안에 있다

19. 자유를 지키라

본문: 갈라디아서 5: 1- 12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 자유 가운데는 여러 종류가 많습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혹은 신교의 자유, 언론과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이와 같은 외적 자유가 아닌, 이 모든 외적 자유의 근본이 되고 이 모든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내적, 영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옛날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에 이방 신도들에게 특별히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의식적 율법, 안식일, 음식을 구별하는 이런 모든 의식을 그대로 지키는지의 여부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옛부터 내려오는 허다한 의식을 다시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이나 돈, 정욕이나 악한 습관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슬을 벗어버리게 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허물과 죄에 쌓인 사람은 살았다고는 하난 실상 그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은 죽은 육체도 다시 살려 생명을 주십니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 이 귀한 자유를 얻었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열심히 있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우리 마음을 혼란케 하며 죄에 얽매이게 하는 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20. 자유를 얻은 새

본문: 고전7: 21-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인디안 부락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모두가 사고 팔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한 농부가 메추라기 한 떼를 가져왔다. 그리고 새마다 발목에 줄을 매었다. 중앙에 막대기를 세운 동그란 쇠에다 모든 줄을 한 끝을 묶었다. 그리고 메추라기들은 원형 안에서 마치 노새들이 당밀 제분소에서 계속 뺑뺑 도는 것처럼 슬프게 계속 돌면서 걷고 있었다. 브라만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메추라기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모든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힌두교 사상을 독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조그마한 불쌍한 동물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 브라만은 메추라기의 가격을 묻고 그 상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것들을 다 사겠소." 그 상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가 돈을 받은 후에 그 브라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랬다. "자, 이제 그 새들을 다 놓아주시오." "뭐라고요 손님?" "내가 말하지 않았소. 새 발목의 줄을 끊고 그들을 놓아주란 말이오. 그 새들은 모두 자유케 해주시오." "아, 네 손님, 그렇게 하지요 그것이 손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요." 그 농부는 칼로 메추라기 다리를 묶었던 줄을 끊고 그 새들을 풀어 주었다. 무슨 일이 벌어 졌는 줄 아는가? 그 메추라기 떼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원형으로 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새들을 억지로 날려보내야만 했다. 어느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후에도, 그 새들은 행진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아직도 묶여 있는 것처럼 원형을 계속 돌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이 장면에 나오는 새의 모습과 같지 않은가? 죄로부터 자유케 되고, 용서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족이 일원이 되었지만 자기 자신을 벌레나 짐승같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낮은 자존심은 사탄의 치명적인 심리적 무기이다(요 8:31-36, 사 61: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5:1)

* 기도: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시는 물질과 죄의 종이 되지 말고,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지킬 능력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21. 진정한 행복

한 사람이 40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그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자랑했다. "이제 나는 걱정거리가 없어. 출근할 필요도 없지. 서둘 것도 없어. 직장상사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사람은 행복을 전혀 모르고 있다. 행복은 무엇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이는 것이다. 사랑이란 매이는 것이지 서로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부나 자녀들도 서로 매여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노예"로 매일 때 참 자유를 누린다고 말한다.

22. 풀어 주려고 산 노예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를 해방하기 전, 뉴올리언스의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흑인 혼혈 소녀가 경매에 붙어졌다.

경매자들은 평소처럼 입찰을 하다가 군중 속에서 들려오는 강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 가격을 높여 불렀고 경매는 그 사람이 1,450달러에 소녀를 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사람은 북부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소녀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다음날 아침 그 사람은 소녀의 집으로 왔다. 소녀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과 함께 갈 준비가 됐어요."

그러나 그 사람은 웬 증서를 소녀에게 건네 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난 당신과 함께 가길 원치 않소.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당신을 샀소. 이걸 보시오. 이것이 당신의 자유를 보장하는 증서요."

소녀는 잘 믿기 지가 않아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샀다고요? 정말 자유의 몸인가요?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나요?"

"물론, 당신은 자유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소."

그러자 소녀는 기쁨에 차서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 남은 생애동안 당신을 섬길 수 있도록 저를 데려가 주시겠어요?"

드디어 소녀는 자유로운 봉사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우리를 그의 종이 되게 하셨다.

* 참조: 고전7:21-24, 롬8;21, 고후3:17, 요8:32

23. 세기의 망명사건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딸이 1967년 4월 21일 미국으로 망명한 사실은 역사상 사건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망명을 결심한 이유는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다. 성인이 되어서 기독교를 접한 그녀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죄악이며, 한 사람의 인간은 국가의 소유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 존중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우상적 지위를 누리던 스탈린이 국가적 역사적으로 매장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부재함'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녀는 믿음을 지키고자 망명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존재 근거와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그녀의 삶을 새롭게 한 것이다.

* 참조: 요3:1-5, 행2:37-42, 행4:12, 갈3:26-28

24. 자유 농사

소련은 한때 집단 농장 체제를 실시하였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적으로 정치범으로 구성된 소련 인구의 1%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가장 나쁜 땅을 사유지로 분배해 주었다. 박토에서 자유롭게 농사를 지어 그것을 먹게 한 것이다.

얼마 후 그 결과를 조사했는데. 실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소련의 전체 농업생산량의 27%가 그 박토에서 생산된 것이다. 감자는 62%, 우유나 쇠고기는 34%, 달걀은 47% 등등 종합 27%가 불과 1%의 정치범 농민들의 손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다. 통제와 자유가 생산에 끼치는 영향은 이만큼 달랐다.

* 참조: 요8:31-36, 요15:4-6, 딤전2:4, 14:6

25.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캔들러는 의지력이 나약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금주선언을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캐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는 바로 그 시간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다. 그리고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의 능력으로 술을 끊은 것이다. 캔들러는 그때부터 수입의 10%를 철저히 헌금했다. 코카콜라는 창업선언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생은 결단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순간순간 결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의 전환점에서 강인한 결단력을 보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캔들러 역시 결단력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의지가 나약한 사람으로 번번히 술을 끊는 데 실패했던 사람이었다. 알코올의 포로가 되어 갇혀 있던 그에게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이 함께 영혼의 안식, 그리고 강한 결단력을 주어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신 분은 우리를 온갖 억압과 사슬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이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국민일보(1999. 3. 4)

26. 어떤 삶을 살아야하나

해마다 6월은 아픔으로 다가와 아쉬움으로 사라진다. 아픔은 6^25동란을 말함이요, 아쉬움은 민족분단의 현실이다. 진정한 "자유"와 "애국"이 무엇인지를 생각나게 하는 달이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네 가지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요구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자유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점점 가열되는 대권경쟁과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굶주리는 북한동포들. 모두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첫째, 양심의 자유를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 성경에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나니"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사슬을 끊고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사회가 점점 더러워지는 이유가 뭔가. 그것은 양심이 더럽혀져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양심의 자유를 소유한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다.

둘째,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유를 육체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육체란 부패된 인간을 뜻한다. 인간은 남을 위해 봉사할 때 기쁨을 얻도록 창조됐다. 니체는 현대인들에게 두 가지 병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을 모르는 병이라고 했다.

통제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급속히 오염된다. 늘어나는 청소년 비행과 일부 교사들의 촌지수수.."촌지 기록부"를 작성한 그 열정으로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을 가르쳤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스승이 됐을까. 삶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지도자로 불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셋째, 이웃을 위한 희생과 사랑실천이 요구된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종은 없고 상전만 있는 세상이어서는 곤란하다. 공의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웃에 대해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큰 사랑을 베풀리가 만무하다. 작은 냇물이 강을 이뤄 바다로 흘러들듯이 작은 사랑은 이 사회를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된다.

끝으로 옳은 일에는 적극성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성경은 "만일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공동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계속 물고 먹으려하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데 있다. 일꾼은 점점 줄고 방관자와 불평꾼만 늘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민족들에게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굳건한 단결력과 왕성한 활동력과 진실한 국민성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방관자들은 도망간다. 그러나 주인은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킨다.6^25동란이 발발했을 때 이 민족을 지켰던 사람이 누구인가.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인들이 바로 이 나라의 주인들이다.

6^25는 해마다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부끄럽다. 선열들 앞에서 고개 들기가 민망스럽다. 사치와 향락과 방종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병든 이 땅을 만든 공범이 되어 지금 초라하게 서있다."하나님, 한번만 더 이 민족을 사랑해 주시옵소서. 참다운 애국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국민의 마음을 온유하게 해주소서".

뜰에 나와 간절히 기도드린다. 하늘은 잔뜩 심술을 머금고 있다.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다. 쏟아지는 이 빗줄기가 제발 맹목적인 증오와 이기주의, 과욕과 향락 등 정신적 불순물들을 모두 씻어내 주었으면 좋겠다.

27. 자유의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타락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적 인간론의 기본 주제임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아 잘 알고 있다."그 원죄의 결과로 인해 인간이 더 이상 자유로운 선택으로 선악간에 결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신학적으로 많은 토론을 낳았다.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인간이 원래 창조되었을 때, 이러한 자유의지를 다른 능력들, 즉 이성, 감성 등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의 부분으로서 부여받았다는 것이다.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였을 때,그는 과연 자유의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타락한 것일까,아니면 예정론자들의 결정론적 주장처럼 이 타락조차 하나님의 전능하고 영원하신 뜻에 의하여 예정된 것이므로 인간 편에서의 자유의지는 없었던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인간이 타락한 것이 그가 창조시 누렸던 자유의지를 악의 방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며,하나님은 인간이 이처럼 가변적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타락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인간의 선택에 맡기고 그의 타락을 허락했다고 보는 웨슬리의 신학적 입장을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개혁자들이나, 더 나아가서 그 전거인 후기 어거스틴적으로 경직화된 예정론에는 반대되는 생각이지만, 인간은 로봇 (ROBOT)처럼 아무 선택적 자유의지 없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로서 하나님의 뜻에 응답,동의할 수 있는 존재이다.비록 유전과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 제한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고, 인간의 인격의 자유는 선악간에 자신의 삶을 자유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웨슬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은 죄에 대하여 비난하시거나 책임을 물으실 수 있느냐고 논증하였다.

어거스틴의 경우, 우리가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전적으로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그의 초기의 글「자유의지론」에서 어거스틴은 마니교적 이원론과 결정론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간이 무엇을 자유롭게 선택할 것인지 미리 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후에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의 심각성에 따라 -사도 바울을 더 의존하면서 - 펠라기우스를 반대했던 입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거스틴을 좀더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자유의지론은 은혜론과 상관관계 속에 있지, 전적인 배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자유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성려의 은사 속에서 인간이 은혜를 받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곧 참된 자유이다. (「영과 문자」). 자유 속에서 성장하는 인간은 사랑을 열쇠로 하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인 사랑 속에서의 인간의 책임적 응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그의 은혜와 협력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뜻한다고 보면서,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율적 단독성을 반대하는 것이지, 협력적 자유의지와 동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러나 개신교의 전통에서는 자유의지에 대하여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따라서 루터나 칼빈은 노예의지나 예정론에 더욱 많은 신학적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조나단에드워즈와 같은 미국의 칼빈주의자에게서도 비록 자유의지를 부정하지만 인간이 본질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며 하나님께서 악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발견하게 된다.웨슬리를 포함한 이러한 예외를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인간의 죄성과 전적 타락성을 강조하면서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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