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선교사! 목회자란!

축 도 론 (Benediction)

하나님아들 2024. 3. 20. 17:45

축 도 론 (Benediction)

 

차례

1. 정의(Definition)

2. 축도의 어원(Etymology)

3. 구약의 축도들

4. 구약의 대표적 축도

5. 신약의 대표적 축도

6. 축도자(Benedictor)

7. 축도의 때(Time of Benediction)

8. '있을지어다(Proclamation)'? '기원하나이다(Petition)'?


 

1. 정의(Definition)

'축도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사람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목사 또는 감독)이 하나님의 복들(Blessings)을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간구(invocation)하며, 동시에 권위 있게 선포(proclamation)하는 축포(祝布, a pronouncement of blessings)이다.'

따라서 축도에는 두 가지 뜻을 가지는데 얼마는 간구(기도)하는 것과 얼마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축도에서 목사는 하나님을 대신해 회중 위에 복을 선포하는 것이다(the Minister acts on behalf of God in pronouncing a blessing upon the congregation).

그러기에 축도는 축도자의 격조 높은 어조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선포하고, 축도를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이다.


2. 
축도의 어원(Etymology)

축도(유로기아, a Blessing, an invocation of God's blessing; 축복, 하나님의 축복의 기원).


3. 구약의 축도들(Benedictions in the O. T. and N. T.)
구약성경에서 대표적 축도는 민수기 6:24-26, 고린도후서 13:13, 유다서 24-25 등이다.

 

4. 구약의 대표적 축도

민수기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을 일반적으로 '아론의 축도'(Aaron's Benediction)라고 한다.

아론의 축도는 사도신경 신앙고백과 더불어 마틴 루터의 예배 순서, 존 칼빈의 예배 순서, 마틴 부쩌의 예배 순서, 츠빙글리의 예배 순서, 존 낙스의 예배 순서, 청교도들의 예배 순서 등 모든 예배 순서에 들어 있다

아론의 축도는 민수기 6:24-26  3절로 되어 있으며, 각 절마다 여호와(Yaweh; Lord) 하나님이 주어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는 이는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24절은 3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25절은 5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26절은 7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각 절마다 두 문장씩 6문장으로 되어 있다.

 

1) 민수기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이 말씀은 여호와는 주어(subject)이고, 축복을 기원하는 동사는 둘(2)로서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지켜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두 동사가 동위접속사 '(and; 그리고)'로 연결되었다.

 

(1) 여호와는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May God bless you)

여호와 명칭의 의미

 여호와는 영원자존자 하나님(The Self-existent God)을 강조한다( 21:33,  3:14,  102:27,  57:15).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The God of the Covenant)을 강조한다( 2:15-17, 3:14-19, 4:15, 12:1-3).

 여호와는 구출자 하나님(God The Deliverer)을 강조한다( 6:6-8, 15:13, 20:1).

여호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실 뿐더러 복을 내려 주신다.

웨 바레크 야웨(여호와); May God bless you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를 언급하는 말씀이지만 여기서 대명사 ''는 단수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

 

본문에서 복은 번영과 행복을 강조한다.

 번영(Prosperity):

번영은 일이 잘되어 번성하고 창대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어 범사에 형통하고 번성하기를 축원하노라.

'여호와는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만사가 형통하고, 범사에 잘되는 번영의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창세기 12:2,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복을 베푸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크게)하셨다.

 

 행복(Happiness):

행복은 만족감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 행복감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는 즐거움과 기쁨(joy)으로 표출된다.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참된 행복이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2)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May God keep you)

'지키신다'(솨말; keep, observe, preserve, watch over, protect)는 지키다, 감찰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보호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지키신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121:7-8,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는 데마다 보호하시고, 위태한 것 면케 하시고, 출입을 지켜 주시고, 영혼을 지켜주시기를 축원하노라.

 

2) 민수기 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1) 여호와의 얼굴이 네게 비추기를 원하노라(The Lord makes His face shine upon you)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출애굽기 33:18,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간구하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통하고 두 돌비(10계명)를 받아 가지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광채가 해같이 빛났다( 34:29-30, 35). 그의 얼굴의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의 반사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그의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17:1-2,  9:30-32). 높은 산은 가이사랴 빌립보 동북쪽 20km 떨어진 헤르몬 산(Mount Hermon)이라고 추측한다.

모세의 얼굴에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가 빛난 것처럼, 예수님의 얼굴에 여호와의 영광이 해같이 빛난 것처럼,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도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난 것처럼,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의 얼굴에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가 해같이 빛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그리하여 인자한 얼굴! 인상 좋은 얼굴! 생각만 해도 보고 싶은 얼굴! 우리 각자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얼굴!

 

(2) 여호와는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Be gracious unto thee).

웨이 후네카, and may He be gracious to you

은혜(히브리어로 헨; grace, favour), 헬라어로 카리스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값없이 하사하시는 선물들(free gifts)이다. 하나님은 공기, , , 자연세계 등 자연 은총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2:5-8).

․'하나님께서 너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호의친절후의총애(favour, kindness, goodwill, gracious- ness, charm) 등이 너희 각 사람 각 사람에게 임하시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지금까지 내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나의 생명, 나의 믿음, 나의 건강, 나의 가정, 나의 교회, 나의 형제자매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야고보서 1:17, '각 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 부터 내게 오나니…'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3) 민수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1)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시기를 원하노라(His face toward us)

하나님이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호의, 친절, 사랑을 나타내신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노하시고, 돌이키신 얼굴을 다시 우리를 향하여 드시기를 원하나이다.

 

(2) 여호와는 네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Give you peace)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 헬라어로 에이레네, 영어로 피스(peace)이다. 평강은 고요함, 안정함, 평안함의 상태를 가리킨다. 평화는 전쟁의 반대이다.

유대인들에게 인사는 샬롬(peace)이요, 영국인들에게 인사는 좋은 아침(good morning)이요, 우리의 인사는 '안녕하십니까?'이다.

시편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도 말라'

우리의 심령에 참된 평안이 없다면 산해진미가 무슨 맛이 있으며 상아 침대가 무슨 편안한 잠을 이루게 하겠는가!

아론은 누구인가(Who was Aaron)?

아론은 아브람과 요게벳의 맏아들이고, 그의 남동생은 모세, 여동생은 미리암이다.

민수기 26:59,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여동생 미리암을 낳았고'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포로 생활할 때, B. C.  1523년경 태어났다. 아론은 모세보다 세 살 위였다( 7:7).

출애굽은 B. C. 1440경이니 그때 아론의 나이는 83세이었다.

아론은 유다 지파의 딸 엘리세바와 결혼하고 아들만 넷을 낳았다.

출애굽기 6:23, '아론이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취하였고, 그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아론은 성유(holy oil)로 기름부음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동생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시편에서는 아론의 제사장 계보를 '아론의 집'(house of Aaron)이라고 불렀다( 115:10, 12, 118:3, 135:19).

아론은 123세에 죽어 호르산(Mount Hor)에 묻혔고, 백성들은 30일 동안 애곡하였다( 20:22-29).

 

5. 신약의 대표적 축도

고린도후서 13: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을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은혜(grace),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love),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교제(fellowship)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도한다. 이것을 사도적 축도(Apostles' Benediction)라 한다.

 

1) 축도의 내용(Contents)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권위 있게 간구하는 목사의 축복 기도(기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은혜'(the grace manifested by the Lord Jesus Christ)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의 제물로 주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 영생 복락을 누린다. 그러므로 로마서 16: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하노라.'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권위 있게 간구하는 목사의 축복 기도(기원)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사랑(the love expressed by God)이다.

사랑은 깊은 애정(a deep affection)이다. 사랑은 정적인 면과 관계된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쌍히 여기심(compassion)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 희생적인 사랑, 무한한 사랑이다( 3:16,  5:8).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사랑하는 모든 자녀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하노라.

 

(3) 성령의 교통하심

축도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 위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권위 있게 간구하는 목사의 축복 기도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란 성령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교제(the fellowship created by the Holy Spirit)이다. 교제란 코이노니아로서 교제, 교통, 같이 나눔, 참여, 성만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 with God)

목사 곧 하나님의 종은 여러 성도들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하나님께 권위 있게 간구하는 축복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교제가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양 미쁘셔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들을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살리시고,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시 회복시키셨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3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고린도전서 1:9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는 인격적이어야 한다. 축복 기도는 목사가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 사귐이 항상 충만하기를 권위 있게 그리고 간절하게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통(Communication with God)

축도는 목사가 여러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통이 항상 충만하기를 하나님께 권위 있게 간구하는 축복 기도이다. 교통(communication)은 서로 막힘이 없이 오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의 마음에 거리낌이나 죄가 없어야 한다. 죄를 품고는 하나님과 교제 교통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 교통은 기도와 찬송 그리고 헌신으로 한다. 축도는 목사가 여러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통이 항상 충만하기를 하나님께 권위 있게 간구하는 축복 기도이다.

유다서 24-25,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 24-25절 말씀도 신약의 축도들 중 하나이나 20세기 이전은 물론 20세기 이후에도 대다수의 교회들은 축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6. 축도자(Benedictor)

공인된 축도자는 구약시대에는 아론의 제사장들에 의하여 행해졌으며, 신약시대에는 사도들과 사도들의 직분을 이어받은 목사 또는 감독에 의하여 시행되고 있다. 축도는 제사장들만의 특권과 임무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기능이 그들의 직무에 정점(climax)을 이룬다. 그와 같이 축도는 목사들과 감독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며, 직무의 정점을 이룬다. 구약시대 제사장들과 신약시대 목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께 기원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축복 전달의 귀한 도구들이다.

교회정치 문답조례 제178, 󰡒축도는 누가 할 수 있는가? 축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권위 있게 간구하며 선포하는 것이니, 목사가 할 것이요, 강도사나 장로 등 다른 직원들은 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526, '… 다른 직원이 폐회기도를 할 수 있으나, 축도는 하지 않는다.'

축도는 교회의 장로나 평신도는 할 수 없다(예배모범 1:5, 7:5, 정치문답조례 12:8, 15:14-15). 평신도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은 하되 선포할 수는 없다.

 

7. 축도의 때(Time of Benediction)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교회들은 공예배(Public Worship) 마지막에 목사가 축도한다. 다시 말해 축도로 공예배는 끝난다. 이때 목사는 서서 양팔을 높이 쳐들고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자녀들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간구함과 동시에 권위 있게 선포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일어서거나 앉아서 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축도를 받는다. 반면에 현대의 대다수 세속화된 교회들은 예배 순서에 축도 자체가 없다.

 

8. '있을지어다(Proclamation)'? '기원하나이다(Petition)'?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그런데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에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까지만 기록되어 있고 동사가 없다. 바울 서신들의 문안 인사에는 동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후 1:2, 13:33;  1:3;  1:2;  1:2; 살전 1:1; 살후 1:2, 3:18; 딤전 1:2; 딤후 1:2, 4:22;  3; 벧전 1:2; 벧후 1:2; 요이 3). 그리고 로마서, 히브리서, 요한일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에는 문안 인사가 없다.

따라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있기를 기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할 것인가? 다시 말해 축복의 선포(축도)인가, 축복의 기도인가?

선포(proclamation)는 하나님이 축도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선포(축포祝布) 하는 것이요, 기원(petition)은 축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1) '있을지어다' :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축포(Proclamation), 독립적 주격

은혜와 평강은 인격화한 주격(personified Nominative)으로서 이 주격을 독립적 주격(Independent Nominative) 또는 절대적 주격(Absolute Nominative)이라고 한다.

은혜와 평강을 독립적(절대적) 주격으로 볼 때, 그 주격은 문장의 전후 문맥이나 문법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된다. 이때 독립적 주격은 선포의 주격(Nominative of Exclamation)으로 선포(宣布)이다. 따라서 은혜평강을 독립적 또는 절대적 주격으로 영어의 'Be' 없이 '~있을지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축도는 하나님의 축포(祝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문안 인사의 시작과 끝의 종결을 맺는 글들에는 희구법이나 가정법, 명령법을 사용하지 않고 독립적 또는 절대적 주격 용법(Independent or Absolute Nominative)을 사용하였다(고후 13:13, 살전 5:23, 살후 3:16).

 

 축도는 희구(Optative)가 아니다.

희구는 소원을 나타내는 기원이다. 기원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 또는 간구이다.

 축도는 가정(Subjunctive)도 아니다.

가정은 미래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실성이 없는 바람이나 추측(wish or supposition)이다. 축도는 가정이 아니다.

 축도는 명령(Imperative)도 아니다.

명령은 지시나 요구(command or request)이니 축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축도는 직설(Indicative)이다.

직설은 확실한 사실, 실재(fact or reality)를 나타낸다. 직설은 희구보다 뜻이 더 강하다.

축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간구기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축포(祝布)이므로 축도 끝에 '있을지어다'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자고(自顧)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자녀들 각각의 머리 위에 양팔 또는 오른팔을 높이 들어 축도하여 왔다.

다시 말해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간구)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2) '기원하나이다' :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기원(Petition)

자유주의자들신오순절주의자들 그리고 성경의 원문과 기독교 정통교리에 무지(無知)한 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목사 또는 감독은 사도들이 아니고, 목사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는 것은 교만이요, 월권 행사이므로 '기원하나이다'라고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비평(A Critique)

 물론 사도 직분은 사도 시대에 그들에게만 주어진 비상직분이요 영구직분이 아니다.

사도들의 계승자는 없다. 그러나 후대의 교역자들은 사도적 직분(전도설교교육양육 등)을 수행하는 목회자들이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교만이나 권위적 행동과는 판이하다.

 구약시대, 신약시대, 종교개혁 이후 모든 교회는 아론의 축도(Aaron's Benediction,  6:24~26)를 해 왔다.

그러나 근래에 고린도후서 13:13,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로 축도하고 있다.

 축도를 기원으로 간주하는 자들은 축도의 내용과 외적 제스처(gesture)가 서로 모순된다.

축도의 내용은 '기원하나이다', 외형적 표시는 양팔을 높이 들고, 손바닥은 회중을 향하여 아래로 드는데 이는 축도의 내용과 제스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④ '기원하나이다' 또는 '있을지어다'는 자유주의신복음주의신오순절주의 계통의 교회들과 전통적정통적보수 교회들을 구별하는 하나의 전환점 또는 분수령도 된다.

 한편 세속화된 교회들은 축도 자체를 예배 순서에서 삭제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이후 복음주의 교회들은 고린도후서 13:13을 축도로 하고 있다. 

 

조영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