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설교 예화 – 하나님

하나님아들 2024. 3. 2. 18:57

설교 예화 하나님

 

육신의 눈과 영의 눈

신앙에 눈을 뜬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느 날 교회 목사를 찾아가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고 졸랐다. 구름이 한 점 없이 맑은 날, 목사는 학교 운동장으로 청년을 불러내 눈부신 태양을 가리키면서 저 태양을 자세히 보라고 말했다.

잠시 태양을 바라보던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이 부셔서 도저히 못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목사는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보게, 저 태양도 눈부셔 제대로 못 보면서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밝은 영광의 빛을 보려 하는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꼬마는 평생 처음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또 다시 아빠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 한 번 호되게 밀쳐내 버린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사랑의 대상이요. 다정한 친구요 자신의 삶은 몽땅 책임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아이에게만은 하나님이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까닭없는 배신의 아픔은 어린이가 제대로 소화하기에 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럴 때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가르친다.

 

 

십자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여기에는 고통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십자가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형국의 고통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분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이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 십자가야 말로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다.

 

 

하나님의 방법

유명한 성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 여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의 생각이 계속 그의 마음 속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그 여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모두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두번째 요청을 했습니다. 이때 이 여인이 허락을 해서 10년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 인간적인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10년간이나 계속해서 그 여인을 따라 다녔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주의 뜻을 구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후에 간증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잘 살펴야 합니다.

 

 

완전한 굴복

어떤 젊은 아가씨가 전도자에게 완전한 헌신의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나는 도저히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지를 못해요󰡓

그녀는 말했다.

󰡒그가 나를 비참하게 될 선교지에다 보낼까 두렵거든요.󰡓

그 전도자가 대답했다.

󰡒어느 춥고 눈 오는 날 아침에 한 마리 작은 새가 반쯤 얼어붙은 채 당신의 창을 쪼고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이 무력한 어린 새가 당신에게 붙들려 자기를 먹여 주도록 또 자신을 완전히 당신의 통제하에 맡겨버린다고 상상해 보시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렵니까? 말해 보시오. 당신 손안에 움켜쥐어 눌러버리겠습니까? 아니면 피난처와 따뜻함과 먹이와 보호를 베풀겠습니까?󰡓

즉시 그 아가씨의 두 눈은 그 말의 뜻을 깨닫고 빛이 났다. 여러 해 후 그녀는 다시 그 전도자를 만났으며 그로 인해서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기억나게 했다. 그녀의 표정은 다음과 같은 설명의 말을 할 때 후끈 달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사 선교지에서 일하게 했어요.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런던대학의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개이며 최신 전자 망원경을 가지고 한 은하안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2,000억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신 망원경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 전체 우주 속의 별들의 수는 2,000x 1,000억 개라는 천문학적 숫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지 못한 별의 수는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또한 지금 반짝거리는 별빛은 10만 광년전에 반짝였던 빛이 오늘 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지?" 하는 말은 얼마나 큰 거짓말인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공부하는 우주 물리학자인 보이드 박사는 전공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깨닫고 찬송가 40장을 자기 신앙의 간증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동업자

어떤 사람이 브라질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인 벨로 호리전테에 출판소가 있어서, 그는 적어도 매년 한 번씩 브라질을 여행하며 거기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여러 단체를 방문합니다.

한번은 서부 브라질을 떠나 벨로 호리전테로 가기 위해 비행기 출발시간 수 분 전에 공항 매표 창구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표 직원에게 그의 목적지를 말해 주자 매표원은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표를 끊을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완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비록 그가 탈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타야 했지만 그는 매표 창구에서 돌아나와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그가 기도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포르투칼어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공항이 안개에 싸여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그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6524절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가방을 집어들고 그는 서둘러 매표 창구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탈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표를 끊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직원은 마지 못해 이 일을 했고 그가 표를 받자 마자 안개가 걷히고 비행기는 이륙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가 어떤 일을 할 기회도 갖기 전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데 자신의 성공의 기준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며, 그는 우리가 자신과 협력하여서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인첩에 적힌 성구

세계적인 부흥사 디엘 무디의 오랜 친구 중에는 월터 박센데일이 있었다. 디 엘 무디와 박센데일은 서로 사명을 격려하며 복음사업에 주력했다.

어느날 월터 박센데일이 평소 소중하게 보관해온 사인첩을 한장한장 넘기다가 우연히 무디의 패기에 찬 서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서명 밑에는 무디가 평소 애송하고 다급할 때 크게 부르짖는 성구가 적혀 있었다 박센데일은 이 성구를 보며 큰 은혜를 받았다.

그것은 이사야 507절의 말씀이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줄 아노라]

 

 

이제 연구는 끝났다

어떤 철학 교수가 다음 날 있을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책상으로 가 앉았다. 그는 지저분한 책상에서는 연구를 할 수 없는 성격이라서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서류류뭉치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우편함에 들어있던 팜플렛, 잡지, 광고전단 등과 기타 우편물들로서, `우편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모를 때는 아버지의 책상 위에 모두 갖다 놓을 것'이라고 정한 규칙에 따라 딸 아이가 그의 책상 위에다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그날도 역시 교수는 책상 위에 잇는 서류뭉치들을 치우다가 파리선 교사협회에서 발행한 잡지를 집어 들었다. 그가 그 잡지를 쓰레기통에 넣으려는 순간 발행 저절로 펼쳐졌는데 `콩고 선교의 필요성'이라는 논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교수는 그 논설을 단숨에 읽어내 려갔으며 그 날 밤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제 나의 연구는 끝났다!"

이 철학 교수가 바로 알베르트 슈바이처 였다. 어떤 선교사의 보고서를 우연찮게 읽게 된 그 `기회'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천부적인 학자인 슈바이처로 하여금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의학공부를 마친 후 그는 남은 여생을 아프리카의 적도지방에서 보냈다. 그는 철학, 신학, 의학 그리고 음악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지만 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적도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눈에 우연처럼보일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게셔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높고 깊고 넓은 사랑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있군요."

하고 똑똑히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누가 갚아 주리요

1825년부터 1855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하던 니콜라이 황제는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다. 그는 친히 군대를 관리하였는데, 종종 평복으로 갈아입고 진영을 살펴 직분을 태만히 하고 자리를 비운 자는 엄히 벌하고 직분을 충실히 수핸한 자에게는 포상하였다.

하루는 어떤 장교가 처소에 앉아 자기의 빚진 것을 종이에 적어 계산해보고 있었다. 그 빚이 너무 많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음을 안 그는 탄식하며 종이 끝에 "이 산 같은 빚을 갚아 줄 이가누가 있겠는가."라는 말을 적어 그대로 책상에 놔두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가 자는 사이에 황제가 장교의 처소를 순찰하다가 들어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종이를 보았다. 황제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고는 "이 산 같은 빚을 갚아줄 이가 누가 있겠는가."하는 말 밑에 "니콜라이"라고 적어 놓고 나갔다. 장교가 아침에 일어나 종이 위에 쓰여 있는 황제의 필적을 보고서는 놀라 이상히 여겼다. 그날 밤 황제는 또 평복을 입고 가서 돈을 두고 나왔다.

우리의 죄의 빛은 우리가 갚을수 없는 빛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빛을 대신 갚아주셨다.

 

 

다르게 느껴지는 하나님 사랑

어느 가난한 시골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분반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잊어버리고 계신가봐요, 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옷도 누더기를 입고 작은 오막살이집에서 살게 되지요."

그때 또 다른 아이가 일어섰다. 그도 역시 가난하여 헌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모두 기억하고 사랑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좋은 부모님을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신것이 아니겠어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 주신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의 교만

지나간 세기의 유명한 무신론자 중에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무신론 강의 도중 탁상에 시계를 꺼내 놓고 󰡒내가 하나님께 5분간만 시간을 주겠다. 내가 5분동안 하나님을 저주할 터인데 그 동안에 나를 죽이기를 바란다.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거나. 있어도 실패자에 불과하다󰡓 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5분이 지난 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인간이 승리자요. 신은 실패자라고 외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신앙인 데오도르 파커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흥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실패한 것일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5분간으로 단축시켜 보려고 한 잉거솔의 시도가 패배한 것이 아닐까.“

옳습니다. 주께서는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그의 백성들이 또한 이 오래 참음의 옷을 입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라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은 영원까지 참고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래 참고입니다. 언젠가는 오래 참음의 마지막 순간이 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태극기를 걸고 올드랭 사인을 부르는 교포들을 보면서 애국가를 만들 결심을 했다. 안익태는 부다페스트 음악학교에 재학중이던 1935년 드디어 애국가를 완성했다.

훗날 애국가가 불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애국가는 내 작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버드 대학교의 정문에는 오늘날까지도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뉴잉글랜드에 안전하게 데려다주신 후, 우리들은 우리의 집을 지었으며 활에 필요한 필수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안락한 장소를 마련하였고, 시민 정부까지도 세울 수 있었다.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지식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배운 지식을 우리 세대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의 후대에까지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파스칼은 위대한 수학자 과학자 철학가였다. 그는 16세때 투영기하학에 관한 책을 펴냈으며 청년 때에는 계산기 수압기 등을 발명했다. 그는 이성과 과학의 차원 너머에 인생의 깊은 진리가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16541123일 밤 성경 요한복음 16장을 읽다가 깨닫고 진리를 탐구, 저 유명한 팡세를 썼다.

이날 그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요,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님이니라

 

기적의 손 선물받은 손

33살에 미국에서 최고의 전문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신경외과 주임의사가 된 흑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벤 카슨.그는 1987년 뒤통수가 맞붙은 쌍둥이를 장장 22시간에 걸친 사투끝에 분리하는데 성공,기적의 손이란 찬사를 듣게 되었다.

후에 그는 선물받은 손이란 자전적인 책을 썼는데 거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오늘의 내가 된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손은 하나님의 선물이니 그분 것이다

 

 

이민 소년서 발명가까지

1874년 헝가리 태생의 한 소년이 5센트만 지닌 채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러나 이 떠돌이소년25년 후 미국 전신전화의 경비를 최소한 1천만 달러나 줄인 업적을 남긴 위대한 전기물리학자가 되었다.

이 소년이 바로 2을 발견하고 유선통신의 장하방식을 발견한 푸핀이다. 신앙으로 현실의 난관을 극복한 푸핀은 퓰리처상을 받은 자서전 이민에서 발명가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자신의 신변안전에 남달리 신경을 쓴 인물이 있다. 과태말라 대통령 알폰소라는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반경 2KM안에 있는 건물은 무조건 관저쪽으로 난 창문을 폐쇄시켜 버린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니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극성이 오죽했겠는가?

그가 취한 몇 가지 조처를 살펴보자. 친위대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무기를 휴대한 채 자기 관저에 출입하는 것을 금했다. 주치의는 하루 세 번씩 그를 검진했고 어떤 물건이라도 친위대의 엄격한 사전 검사 없이는 절대로 관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음식물은 검사관이 시식한 다음이라야 그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대단한 극성이 아니겠는가?

이상과 같은 조처만가지고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당시 150만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대통령 전용의 방탄차를 구입했다. 이 차는 기관포로 습격을 당해도 끄떡없도록 설계된 것인데 경호용으로는 완벽한 것으로 알려진 차이다. 그런데 이 방탄차를 인수하고 한껏 기분이 좋았던 그 다음날 평소에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친위대원의 총탄을 맞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지옥으로 급행하고 말았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인간은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생명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