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회개에 대한 설교 예화

하나님아들 2024. 3. 2. 18:54

회개에 대한 설교 예화

 

웨슬레의 회심

173510월 대서양 한가운데에는 존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 형제가 탄 배가 미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옥스포드의 엘리트들로서 미국에 있는 야만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서양에는 심한 폭풍이 몰아닥쳤습니다. 급기야 그 배는 침몰 직전에 이르렀고 두형제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본 것은 평화 속에 찬송과 기도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있는 26명의 모라비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받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는 살아 남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2년에 걸친 조지아 선교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웨슬리는 공허한 마음으로 길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확히 말하자면 1938524일 저녁 915분 전, 웨슬리는 길가의 한 집에서 들려 오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우리는..."

이 대목에 이르자 그의 가슴은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그 회심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만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웨슬리 한 사람의 경험은 암흑과도 같았던 영국의 상황을 복음과 새로운 도덕으로 변화시켜 갔으며, 그 신앙의 불길은 전세계로 퍼져서 감리교회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감옥에서 거듭난 삶

한때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서 닉슨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던 챨스 콜슨 박사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가출옥 후 간증하기를 "4년동안 매일 아침 대통령 중심으로 12명의 참모들이 모여 세계를 요리한다는 자부심에서 열띤 회의를 가졌으나 돌이켜 보면 세계는 변함이 없었고 내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났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어떤 정책이나 철학, 폭력도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으나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보수의 유혹도 뿌리치고 오직 감옥전도에 전 생애를 바치겠노라고 결심했다.

 

 

평양 깡패 이기풍목사

초대 선교사 마포삼열 목사는 밤만 되면 불량배들과 유생들의 돌세례로 곤혹을 치르곤 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양 깡패로 알려진 이 기풍이었다.

그는 잔치집마다 찾아다니며 술과 떡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던 깡패였는데 마포삼열 목사의 집에도 끈질기게 찾아와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그의 행패는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때는 그가 던진 돌에 맞아 입원하기도 했다. 하루는 선교사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던 이기풍이가 다치게 되었는데 선교사가 찾아가서 치료를 해 주었고 사랑을 베풀었다. 이에 감복하여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평양신학교를 나와 초대 목사가 되었고, 초대 제주도 선교사를 파송을 받았다. 그는 일생 호남지방에서 목회하다 여수 돌산 앞 우학교회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했다.

 

 

고백을 꺼리는 것

한 여자가 더러운 빨랫감을 세탁하기 위해 강둑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여자는 빨랫감이 더러운 것을 누가 볼까봐 두려운 나머지 빨랫감을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그녀는 창피스럽게 여겨 빨랫감을 물 속에 집어넣고 단지 아래 위로 몇번 비비기만 하고는 거의 그대로 집으로 가져 왔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어리석은 여자와 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많은 잘못을 저지른 후 그 죄를 씻기 원하지만 그 죄들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죄와 도적질, 거짓말, 욕심, 증오심 등을 덮어 버린다. 그러나 누구든지 모든 죄들을 드러내놓고 회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속죄의 개념에 대한 이해

컬럼비아 북쪽에서 멕시코 만으로 뻗어나간 갈라진 땅에 사는 꼬아지로 인디언의 성경은 '사함'을 죄는 지나가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죄는 지나가고 다시 더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이보리 해안의 빠울리 족은 '죄를 떠나가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멕시코의 후이촐족은 '하나님께서 죄를 취해 가시는 것'이라 한다.

라이베리아의 케펠족은 보다 인간 주체적인 관점에서 사함을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죄를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를 비난하는 것으로부터 돌아선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그 사하시는 행동에서 우리의 죄의 주의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서 등을 돌리시고 참된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사악한 사람

위대한 스코틀랜드 설교가였던 알렉산더 화이트는 한 회중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다음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잠시말을 멈추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알렉산더 화이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신이 주앞에서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회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작은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위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왔다. 그러나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러기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바로 그거요! 하나님께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주워온 돌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듯이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교회 부흥의 원리

1907년 한국교회에 부흥에 불이 붙게 된 것은 어느 부흥집회에서 모든 성도들이 죄를 고백하게 된 것에서부터 였다. 이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던 사람은 부흥사로서 유명한 길선주 목사였다는데 1주일 동안 계속되던 부흥집회 마지막 날에 길선주 목사가 회중 앞에 나서더니 "나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놈 때문에 은혜를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죄를 고백합니다. 1년전 병들어 죽게 된 내 친구 한 사람이 나를 불러 그가 죽은 후 모든 일들을 맡아 처리해 달라고 하면서 죽었는데 그가 남긴 가산을 정리하던 중에 2백원을 내 소유로 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에 그 친구의 부인을 찾아가 훔친 돈을 갚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였다.

그 말은 모든 회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순식간에 온회중의 통회가 불일듯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죄를 고백하는 데에 성령이 임하시고 교회의 부흥도 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

185016,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하고 말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다시 그곳을 지나다가 아직 살아있는 그 장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엇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 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 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회개와 용서

미국 어느 도시에 사는 남매 메리와 존이 주말에 시골의 할머니댁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존은 삼촌이 선물로 사준 고무총을 가지고 가서 이것저것 쏘는 연습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오리가 걸어오는 것을 본 존이 고무총을 겨누고 오리의 대가리를 명중시켜서 오리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존은 겁이 났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죽은 오리를 가지고 큰 나무 밑에 파묻고 낙엽으로 가리워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가리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근거리고 두려워서 할머니께서 잘 준비하신 저녁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였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눈만 감으면 할머니가 보이고 죽은 오리가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할머니를 보면 공연히 무섭기만 하고 도무지 괴로워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존은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잘못한 바에는 할머니께 말씀드려서 벌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한 존은 할머니 방에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존은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존을 안아주시면서 󰡒, 착하다. 내가 네 잘못을 다 용서해주마. 사실은 어제 오후에 이층에 있으면서 네가 하는 일을 다 보았단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나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무 걱정말아라. 내가 다 용서했다.󰡓

죄사함 받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의 죄악성

로마의 네로 황제야말로 악을 가장 많이 행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와 부인도 살해했고 의심이 많아 부하를 2백여 명이나 죽였다.

또 시를 쓴다는 명목으로 로마 시를 불질러 쟀더미로 만들기도했다. 그는 결국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해 쫓겨 새벽에 비를 맞으며 궁궐을 빠져나가 휴온이란 신하의 집으로 피신했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충성했던 신하들이 자결하라고 권면했을 때 그는 "내 무덤을 만들어 주고 묘비를 잘 세워주겠다고 약속하면 자결하겠다."라고 했다.

로마의 원로원은 네로를 잡아 발가벗겨 시내를 돌게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그 내용을 통보했다. 그는 자결하라는 휴온의강력한 권면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혹시 우리를 도울 자가 올지 아냐?" 하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보다못한 신하가 "남자답게, 명예스런 로마인답게 자결하라"라고 윽박지르자 칼을 빼 자기 목을 찔렀으나 칼은 빗나갔다. 그러자 네로는 목을 감싸고 울었다. 이때 황제의 비겁한 모습을 본 에바브로가 네로의 목을 치자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31세의 나이로 14년간의 폭정을 끝내고 부끄러운 삶을 마감했다.

 

 

히틀러 경호원의 고백

히틀러의 경호원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하던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다읽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십니다]

 

 

회개와 신앙부흥

신앙부흥은 단지 성전의 문을 열고 그곳에서 예배하는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 신앙부흥을 위해서는 이러한 외적인 경건행위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신앙부흥에는 반드시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 방향전환은 이중적이다.

첫째는 죄에서 90도를 돌이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을 향해서 다시금 90도를 돌이키는 일이다.

돌이키다 혹은 회개하다라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슈브(shuv)'로 발음된다. 이 단어가 신앙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118회 모두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떠밀려고"(영어로 shove)하셨다.

'슈브'라는 단어가 일찌기 예언적으로 사용된 예를 사무엘의 통치하에서 일어났던 신앙부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역대의 모든 선지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회개(돌이킴)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그들의 사역의 정수로서 회개 행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슈브'는 예언자들의 전체 사역을 요약하는 유일한 표현이 될 것이다.

 

회개에는 두가지 국면이 있다고 했다. 돌아오다(구약에서 약 1.056)라는 단어는 신앙적인 의미로 118회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48회는 '---에게(to)', '----에게로(unto)'라는 조사와 함께 , 그리고 그 대상으로서 보통 '(Lord)'라는 단어와 함께 나온다.

이것은 회개의 적극적인 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인 행위에 앞서서 우리가 악과 죄로부터 돌이키는 소극적인 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돌이키다' 혹은 회개하다라는 단어가 '---로 부터'란 조사와 함께 40회 나온다. 두 국면 모두 가 필요하다.

사실 어원에서 알려진 것처럼 돌이킴 혹은 회심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죄로부터 돌이켜 주님께로 향하는 전 과정을 말한다.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을 내포하는 첫번째 행위는 '회개'라 불리워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손을 내미는 두번째 행위는 '믿음'이라 불리워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이르는 방식이며 그와 동시에 우리가 계속하여 믿음으로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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